2006년 12월 30일 토요일

2006년 12월 30일 토요일

사촌동생 경락이가 다음 주에 입대를 해서, 함께 홍대 앞 이탈리안레스토랑 치뽈리나에서 저녁 식사를 했다. 참석자는주인공인경락이와 민영고모와 (제대를 n달 앞둔) 수호아재, 나, 아우님,  승연, 그리고 이번에 수능을 치른 승희였다.

치뽈리나에는 자리가 있을 때가 많았기에 따로 예약을 하지 않고 그냥 갔는데, 연말이라 그런지 자리가 없어서 무척 당황했다. 결국 예약 시간이 아직 두 시간 정도 남은 다른 예약석에 자리를 잡았다.

일곱이서 피자 네 판과 뇨끼를 순식간에 뚝딱! 중간에 서버 분이 잘못 나온 피자인데 드시겠냐며 버섯+피자를 주셔서 그것까지 신나게 먹었다. 여럿이 앉아서 먹다 보면 배가 불러도 계속 음식에 손이 간다.

식후에는 투썸플레이스에서 차를 마셨다.

2006년 12월 26일 화요일

2006년 12월 26일 화요일 : 과학기술창작문예 송년회의

과학기술창작문예 3주년 결산 회의에 참석했다. 광화문 근처에 있는 모 중국음식점(예전 이름은 '공을기객잔'이었단다.)에서 과학문화재단 측 담당자 세 분과 기수상자 다섯 명, 그리고 심사위원 네 분이 참석했다.

2006년 12월 24일 일요일

2006년 12월 24일

올해 크리스마스는 파리바게트의 단호박 케이크로.


케이크를 다 정리하고 파란 산타 장식이 남았다.

어머니: (손 끝으로 산타와 악수를 하며) 안녕하세요~
나: 으앗, 엄마, 인사를 하시면 어떡해요. 관계가 형성되어 버렸잖아요! 이제 이거 어떻게 버리라고......
아우님:  그렇네, 관계가 형성되어 버렸네.
어머니: 아, 그런가. (잠시 생각하더니 다시 산타 손을 잡으며) 안녕히 가세요~
자, 이제 됐지?

.......정말로 그걸로 된 듯한 기분이 들었다.

2006년 12월 23일 토요일

2006년 12월 23일 토요일 : 라이언 킹

에라오빠 결혼식

아우님: 사자는 어떻게 표현했어?
나: 머리 위에 가면? 탈 비슷한 걸 달았는데......설명하려니까 잘 안 되는데 여튼 보면 그럴듯해.
아우님: 아하. 그런데 네 발로 걸어?
나: (폭소하며) 아니, 두 발이지! 뮤지컬인데 네 발로 걸으면 춤을 못 추잖아.
아우님: 그렇구나. 그게 사실 계속 궁금했거든. (혼잣말처럼) 직립보행이었군......

2006년 12월 15일 금요일

2006년 12월 15일 금요일 : 기말고사 근황

기말기간이(었)다. 일단 오늘 서양근대경험주의 시험을 치렀으니, 다음 주 초까지 한 숨 돌렸다. 월요일에 사회복지법제론 보고서를 제출해야 하긴 하지만, 내일 일을 오늘 하자는 대원칙에 따라(뻥) 대충 써 뒀기 때문에 주말에는 쉴 수 있을 것 같다. 하지만 수요일에 제출해야 하는 한국철학사 기말보고서의 주제를 아직 정하지 못한 점은 조금 걱정이다. 몇 가지 생각해 두긴 헀는데, '손으로 써서 내는' 과제를 받은 것은 처음이라 시간이 얼마나 걸릴지 잘 모르겠다. 아마 결국 컴퓨터로 작성한 다음에, 그걸 손으로 옮겨 쓰지 않을까 싶다.

수요일에는 기호논리학 기말고사를 보았다. 지난 주부터 계속 준비했는데, 막상 문제를 받고 보니 너무 어려워서 좌절했다. 나만 어려워하는 분위기가 아니었다는 점이 안심이라면 안심이지만 - 다 치고, 옆의 누군가가 "한 시간만 더 있었으면 다 풀었을 텐데." 라고 하더라. 무척 공감했다. - 중간고사에 미치지 못할 것은 분명해 보인다. 중간고사보다 기말고사 성적이 높아진 경우 가산해 준다는데, 그럼 나는 상대난이도가 어떘든지 난감해진다.; 단축규칙 T가 없는 형식체계 따위에서 살고 싶지 않아......

금요일에는 서양근대경험주의 기말고사와 소논문을 함께 제출해야 했다. 중간고사가 없었던 과목이고 소논문이 학점의 반을 결정짓기 떄문에 중요했다. 나는 처음부터 당연히 흄의 회의주의에 대해 쓰겠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학교 도서관에서 흄의 인식론에 대한 책을 잔뜩 빌려 와서 큰 꿈을 안고 개요를 잡다가. 중대한 문제점을 깨달았다.

1) 내용이나 사상 정리가 아니라, 반드시 자신의 비판적 견해를 전개하는 글이어야 한다는 조건이 있다.
2) 흄의 인식론에 대해 쓴다면 흄의 사상을 비판적으로 검토해야 한다.
3) 비판적으로 검토하려면 비판거리를 찾아야 한다.
4) 나는 흄의 사상에 거의 전적으로 동의하고, 놀라울 만큼 납득가능한 논증을 전개한다는 점에서 흄을 숭배하고 있다.
5) 따라서 흄의 회의주의에서 비판거리를 찾아 쓰는 것은 내게 무척 어렵다.

뒤늦게 이 상황을 깨닫고, 그러모은 흄 책을 쇼핑백에 도로 집어넣고 새벽 네 시까지 끙끙대며 로크의 인과적 실재론에 대해 썼다. (이 일로, 나는 졸업논문을 경험론이 아니라 중세 신학에 대해 써야겠다는 깨달음을 얻었다.) 로크를 고른 이유는 순전히 1) 집에 흄 다음으로 관련서가 많으니 급한대로 뭐든 쓸 수 있을 것 같았고 2) 버클리가 로크의 실재론을 정면으로 벌써 반박했기 때문에 로크를 비판하기 쉽고, 버클리를 재비판하는 것이 흄이나 로크를 비판하는 것보다 내게 쉬워서 였는데,

여기서 반전

잇힝~♡

흄 얘기를 하다 보니 생각났는데, 흄의 어머니는 독실한 칼뱅교도였으나 흄은 널리 알려진 것처럼 신의 존재에 매우 회의적이었다. 흄이 죽을 때가 되자 사람들이 이 유명한 무신론자가 회개를 하나 안 하나 궁금해 하며, 자꾸 괜히 찾아와서 회개 안 해서 지옥 가면 어쩔 거냐고 물어봤단다. 그러면 흄은 석탄이 한 무더기 있으면 불에 타지 않는 석탄 덩어리가 하나쯤은 있어도 좋지 않느냐고 답했다. 비록 그가 한 세기만 늦게 태어났다면 기적이나 도덕에 관해 생각한 것을 다 쓸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고 (그리고 어쩌면 무신론자라고 교수 임용이 두 번이나 거부되거나 출간도서가 금서 목록에 오르거나 그런 견해 때문에 신앙심 있는 일부 학자들에 의해 전혀 인용되지 않는 기묘한 일을 겪지 않았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면 아쉽지만, 그래도 나는 이 에피소드를 떠올릴 때마다 대단히 유쾌해진다. 

2006년 12월 11일 월요일

2006년 12월 11일 월요일 : 근황

1. 기말고사 기간이다. 이번 주 수요일부터 다음 주 수요일까지 기말고사와 기말보고서가 이틀 정도 간격으로 계속 이어진다.

2. 학원에서 정치학 수업을 듣고 있다.

3. 알랭 들롱 회고전에서 [사무라이] 가 빠졌다. 이에 대한 나의 반응은

이렇다.


4. 서울아트시네마에서는 시네마테크의 친구들 상영회를 위한 설문 조사도 하고 있다. 이에 대한 나의 반응은

다음과 같다.


5. 두고 두고 죄책감을 느끼고 있는 사소한 일들이 있다. 왜 했는지도 잘 알 수 없는, 들은 사람은 흘려 넘겼을 시시한 거짓말, 실수로 버린 작은 물건들, 그 다음의 일에 거의 영향을 미치지 않은 순간적인 오판 같은 것들.

6. 춥다.

7. 12월 5일 화요일에는 cosmo님의 사무실에서 IDA님을 처음으로 뵈었다. 글을 읽었을 때는 차분하고 정적인 분이시리라고 생각했는데, 실제로 뵈니 시원하고 서글서글한 느낌의 아가씨셨다. 직접 뵌 다음에 쓰신 글을 다시 읽으니 그런 외모가 어울린다는 느낌이 들어서 신기했다. cosmo님과 잡지 준비팀 직원분들, IDA님, 배명훈님, B사 대표님과 함께 점심을 먹었다.

8. 12월 6일 밤에는 녹차라뗴와 고구마 호빵을 먹었다.

9. 12월 7일 밤에는 짜장범벅을 먹었다.

10. 12월 8일에는 새로 주문한 차를 받았다. 이번에는 할센앤리온 아쌈(Assam)으로 밀크티를 만들어 마셔 보기로 했다. 할센앤리온의 홍차는 처음이다. 위타드(Whittard of Chelsea) 아쌈으로 만든 밀크티가 정말 맛있었지만 - 아마 홍차 한 통을 그렇게 빨리 비운 건 위타드 아쌈이 처음일 듯 - 더 맛있거나 취향에 맞는 차가 나올지도 모르니 계속 이것 저것 시도해 보고 싶어서였다.

11. 12월 9일에는 HL 아쌈으로 밀크티를 만들....려고 했으나, 딴 생각을 하다가 우유를 데워 거품을 내 버렸다.

2006년 12월 4일 월요일

2006년 12월 4일 월요일 : 제 48회 서울대학교 대학문학상

제 48회 교내 대학문학상 소설 부문에서 가작을 받았습니다. :)

소설 전문([마산앞바다])
심사평
수상소감

오늘부터 배포되는 12월 4일자 대학신문(1697호)에 실렸습니다.

2006년 11월 26일 일요일

2006년 11월 26일 일요일 : 조셉 멘케비츠 특별전 - 유령과 뮤어 부인

서울아트시네마의 멘케비츠 특별전 프로그램으로 1947년 작 [유령과 뮤어 부인] 을 보았다. 극장에서는 앞 회차를 보시고 이 영화를 기다리던 새벗님과 마주쳐셔, 상영 앞뒤로 잠깐 이야기를 나누었다. 새벗님 말씀에 혹해서 화요일의 [발자국]을 예매했다.

싫어하지 않았지만 사랑하지도 않았던, '그냥 그렇게' 같이 살던 남편이 죽은 후, 젊은 미망인인 뮤어 부인은 어린 딸과 예전부터 시중을 들어 주었던 가정부만 데리고 시어머니와 시누이의 집에서 나온다. 이제 독립적인 삶을 살고 싶다고 생각하던 그녀는 바닷가 부동산을 알아보러 갔다가 예전에 선장이 살았다는 마음에 쏙 드는 집을 발견하지만, 중개업자는 그 집을 소개하기를 매우 꺼린다. 자살한 선장의 유령이 나오는 집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전망과 시설이 좋으면서 집세가 놀라울 만큼 싼 집이 마음에 든 뮤어 부인은, 실제로 집을 보러 갔을 때 유령의 웃음소리를 듣고 놀라 나왔으면서도 그 집에 들어가기로 결정한다.

그리고 실제로 선장의 유령을 만난다. 계속 쓰려다가 귀찮아서 후략. 전형적이라기보다는 고전적이라고 칭하고 싶은, 인물의 성격과 그들 사이의 관계가 잘 살아 있는 로맨스이다. 대사들이 아름다웠고, 사랑보다는 인생과 시간에 대해 말하는 듯한 영상이 돋보였다. 보면서 많이 웃었지만, 재미있었다고 말하기는 조금 어려운 영화이기도 하다. 결혼을 앞둔 딸에게 뮤어 부인이 "I've found compensations.(정확한 대사는 기억이 안 남)"이라고 말하는 부분은 무척 슬펐다.

2006년 11월 19일 일요일

2006년 11월 19일 일요일

권교정, '매지션' 1권 작가후기


미리보기(?)

2006년 11월 18일 토요일

2006년 11월 18일 토요일 : 자크 베케르 특별전 - 앙트완과 앙트와넷

시네마테크에서 자크 베케르 (Jacques Becker) 감독의 1947년 작, [앙트완과 앙트와넷(Antoine et Antoinette, 78minㅣB&W)]을 보았다.

2006년 11월 14일 화요일

2006년 11월 14일 화요일 : 나도 모르게.....

몇 주 전 일이다.

우리 집 근처에는 거점(?)이 있는지, 지나가는 사람을 붙잡고 새로운 세계를 소개하려는 분들이 굉장히 많다. 평소에는 걸음이 빠르기 때문에 붙잡히는 경우가 거의 없는 내가 늦은 밤에 등 뒤에서 어깨를 붙잡혀 기겁한 적이 있을 정도이다.

이 날에는 너무 피곤해서 기진한 상태로 천천히 걷고 있었다. 위험지역에서 남다른 포스를 지닌 분이 접근했다. 일단 비스듬히 걸었다. 그런데도 따라 오면서 듣고 가란다. 적당히 싫은 소리 않고 가려고 몸을 피하는데, 이 아주머니가 작정하셨는지 내 팔을 아예 잡는 게 아닌가. 그 순간 폭발해버린 나, 소매자락을 탁 털면서 중후한 목소리로 말하고야 말았다.

"어딜 감히.....!"

2006년 11월 12일 일요일

2006년 11월 12일 일요일

오전 일
점심 아란양, 홍대 앞 치뽈리나, 로즈힙-히비스커스 잎차와 초콜릿 받음
후식 홍대 앞 하겐다즈, 벨지움 초컬릿 아이스 쉐이크
호미화방에서 수채물감 등 저널링 재료
리치몬드에서 고종사촌 승희양 수능 초컬릿
서점에서 [HAPPY SF] 2호 확인

저녁~늦은밤 증조모 제사. 육촌동생 가인양(배 뽈록, 외계어 사용 - 할 줄 아는 한국어는 '음마' 밖에 없음- , 취미는 탁자 위에 올라가기, 빡빡머리에 분홍색 하트자수가 놓인 빨간 옷, 돌을 갓 지남) 데뷔
-> 나무를 반쯤 뽑아 놓고 갔구려. 힘도 좋지.

2006년 11월 8일 수요일

2006년 11월 8일 수요일 : 과유불급?

내 취미 중 하나는 즉흥곡 부르기이다. 있는 노래의 가사를 바꿔 부르기도 하고, 가사와 곡을 모두 새로 지어 멋대로 부르기도 한다. 어릴 때 많이 배우는 동요 중에 이런 곡이 있다.

"나는 눈이 좋아서 / 꿈에 눈이 오나봐 // 온 세상이 모두 / 하얀 나라 였지/ 어젯-밤 꿈-속-에//
썰매를 탔죠 / 눈싸움 했죠 / 커다란 눈사람도 만들었죠 (후략)"

오늘 오전에 어머니가 내가 좋아하는 양배추쌈을 반찬으로 만드셨기에 아침으로 맛있게 먹었다. 그리고 점심 때 어머니가 양배추쌈을 곁들여 식사를 하시는 모습을 보고

제이: (흥겹게) 나는 양배추가 좋아서
꿈이 양배추쌈이 나오나봐
온 세상이 모!두! 양배추쌈! 이었지!
어머니: (깜짝 놀라 수저를 탁 내려놓으며) 안 돼에엣!
제이: (......꿈 속에요, 일단은. orz)

2006년 11월 4일 토요일

2006년 11월 4일 토요일 : 이성주와 조이오브스트링스 - Joyful Mozart

오전에 교정지를 받으러 H사에 들렀다가 tai0님을 처음으로 뵈었다. 하도 온라인에서 자주 뵈었고 다른 분들로부터 말씀도 많이 들었던 분이라 실제로 얼굴을 보면 "아, 그 때 그 분이시군요." 할 줄 알았는데, 정말로 초면이더라. (웃음)

집에 돌아가니, 예전부터 보고 싶었던 [마틴 스콜세지의 영화 이야기] DVD가 와 있었다. 게다가 보내 주신 분은 내가 이 다큐멘터리를 보고 싶다고 생각하게 만든 장본인인 sabbath님! 기쁨의 북북춤을 춘 다음 한 숨 잤다.

저녁에는 현악단 조이오브스트링스(The Joy of Strings)이 연주하고 박종호 님이 해설하는 공연 [Joyful Mozart]를 보러 갔다. 좌석 등급이 없는 공연이라 남은 자리가 마땅치 않았는데, 계속 보고 있었더니 용케 지난 달 말에 누군가 예매를 했다가 취소한 듯한 좋은 자리가 나서 기쁨의 북북춤을 추며 예매했던 공연이다.

프로그램
디베르티멘토 1번 D 장조 K.136
바이올린 협주곡 3번 G 장조 K.216 (독주 이성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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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레나데 D 장조 K.239
바이올린과 비올라를 위한 신포니아 콘체르탄테 K.365 중 2악장 (독주 이성주/ 배은진)
세레나데 7번 D 장조 K.250 '하프너'에서 4악장 론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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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기대한 곡은 물론 디베르티멘토 1번. 웬만한 프로 연주자들은 다 잘 연주하는 곡이라 어떤 공연에서나 편하게 들을 수 있는 점도 좋다. 첫 음이 울려퍼지는 순간 '와, 모짜르트다!' 하고 가슴이 두근거린다. 해설이 명확히 성인 관객을 대상으로 했고, 불필요하게 길지 않아 즐거웠다. 해설이 있는 공연에 가면 해설자의 유머 감각이나 관객의 반응을 이끌어내는 '타이밍'에 관해 생각해보게 된다. 대체로 곡이 잘려서 연주되고 해설자의 역량에 따라서 공연 자체의 질이 확 달라진다는 점 때문에 해설이 있는 공연을 썩 좋아하지 않는데, 그런 것 치고는 막상 지금까지 가서 실패(?)한 공연은 없었던 것 같다. 특히 예당 사장님이 직접 해설했던 11시 콘서트는 굉장히 좋았는데, 요새도 하는지 모르겠네.

신포니아 콘체르탄테와 하프너 세레나데가 한 악장만 연주되어 공연 후반부에서는 몰입도가 조금 떨어졌지만, 그래도 밝고 즐거운 프로그램이라 느긋하게 들을 수 있었다. 교수와 제자들로 이루어진 팀이라 리더가 확실하다 보니 듣는 입장에서도 편했다. 연주가 가장 돋보였던 수석 바이올리니스트가 마지막에 퇴장하면서 실수로 드레스 자락을 밟아서 넘어질 뻔 했다.

아아, 얼마만의 생음악이었는지. 기쁨의 북북춤을 춘 하루였다.

2006년 11월 3일 금요일

2006년 11월 3일 금요일

일주일 정도 감기몸살로 끙끙 앓았다. 요즈음 감기는 1) 심한 일교차 2) 건조한 날씨로 인한 3) 많은 먼지 때문에 쉬 떨어지지 않는다고 한다. 나도 아직까지 훌쩍훌쩍 하고 있는데, 어쨌든 일단 머리가 안 아프니 살 것 같다.

어제는 점심으로 국물이 시원한 쌀국수를 먹었다. 화실에서는 1) 몸통이 굵거나 2) 하체가 빈약한 크로키 양산을 잠시 멈추고, 이번 시간부터 옷 입은 사람을 그리고 있다.

일주일 동안 원고를 거의 하지 못했다. 시월 한 달 동안 정말 부지런히 일했기 때문에 아직 특별히 일정에서 어긋나지는 않았지만. 십일 월로 넘어오니 슬슬 신경이 쓰인다.

신경이 쓰인다고 하니 생각나는데, 어제 밤에는 시험과 관련된 식상한 악몽(합격자 명단 등이 등장하는)을 꾸었다. 잠을 잔 것 같지가 않다.

MEFF는 예매전쟁에서 처참하게 패배해서 한 편도 못 봤다.

2006년 10월 27일 금요일

2006년 10월 27일 금요일

오전에 학교 수업을 듣고 (흄-이제는 숭배하고 있다.) 신림사거리로 내려가 지구정복비밀결사 신림분회 모임을 했다. 참석자는 신림지역 활동원 n명.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며, 활동원 c님이 최근 계획하시는 여러가지 일에 대해 심도 있게 논의했다. 저녁에 퇴근하신 a님이 오셔서, 만화할인매장에 들러 만화책을 잠시 구경한 다음, a님이 추천하신 태국음식점 '파타야'에 갔다. 관악구청 근처에 새로 문을 연 곳으로 이태원/압구정의 파타야와는 무관한 듯 하다. 음식인류학을 전공하고 지금 강의를 하고 있는 분이 공동 운영자시란다.

너무 배가 고팠기 때문에 묵묵히 밥부터 먹은 후 - 맛있었다. 서울대입구역 근처에서 마땅히 갈 곳이 없어 늘 고민이었는데, 아마 앞으로 종종 찾게 될 듯. 사진기를 안 가지고 가서 아쉬웠다. - 다시 회의. 식사가 끝날 때 즈음 s님에게 번역자의 말을 내일 오전까지 써 보내 달라는 전화가 와서, 번역자의 말 쓰기가 얼마나 어려운가에 대한 얘기가 잠시 나왔다. 그런데 듣다 보니 그 책이 내가 애타게 기다리고 있는 [제인 에어 납치 사건]의 후속작, [카르데니오 납치 사건]이 아닌가!

제이: (훠이 훠이) 가세요! 가셔서 얼른 쓰세요!
M님: 그러면 제이님이 대신 쓰세요.
C님: 대리 번역이 아니라 대리 후기? s님은 "일곱 시간만에 한 장 다 썼다." 하시고, 출판사는 "우리는 한 사람에게만 청탁했다." 하고, 제이님은 일 년 있다가 "나는 고료도 안 받았다!"하고 폭로하시고......

이렇게 진지한 이야기를 하다 보니 어느덧 아홉 시 반이 되었다. 장장 일곱 시간동안 계속 말을 하고 들었더니 나중에는 몹시 지쳤지만, 굉장히 즐거웠고, 두근두근했다. 특히 개인적으로도 줄곧 관심을 갖고 생각하고 있던 부분이라 더욱 기대가 된다.

2006년 10월 26일 목요일

2006년 10월 26일 목요일

오전에는 화실에서 크로키를 했다. 몸 그리기는 얼굴보다 훨씬 어렵다. 늘 어딘가 커지거나, 작아지거나, 짧아지거나, 길어진다. 점심은 화실 바로 앞에 있는 '30년 전통 박찬숙 순대집'에서 먹었다. 맛있었다!

화실 수업이 끝난 다음에는 독일어 수업 전까지 원고를 할 요량으로 카페 뎀셀브즈에 갔다. 그런데 다섯 시 쯤 독일어 선생님이 전화하셔서, 학원에서 다른 회의가 있어서 오늘 보강을 못 한다셨다.(이 수업은 다음 주로 밀렸다.) 원래 수업이 없는 날이니 어쩔 수 없지, 하는 심정으로 나간 김에 원고나 더 하고 왔다. 요즈음은 일정이 널을 뛴다.

2006년 10월 25일 수요일

2006년 10월 25일 수요일

기호논리학 중간고사 날이었다. 평소보다 일찍 집을 나섰으나, 합정역에서 2호선 지하철이 연착되어 20분 정도 기다렸다. 게다가 연착된 다음에 오는 지하철은 신도림행. 서울대입구역에 도착하니 이미 열두 시 사십 분이 가까웠다. 버스를 타면 인문대까지 올라가는데 이십 분 이상 걸리기 때문에 (-_-) 급한 마음에 택시를 탔는데, 차를 출발시키며 기사님 왈, "그런데 인문대가 어디 있어요?"

......결국 문화관 앞에서 내려서 필사적으로 뛰었다. 열두 시 오십구 분에 교실에 들어서서 시험은 무사히 치렀다.

중간고사도 시험은 시험인지, 전날 공부하고 오늘 시험 치고 한국철학사 수업까지 듣고 나니 꽤 힘이 들었다. 그래서 독일어 수업을 목요일 저녁으로 미루고 집에 일찍 들어왔으나, 묘한 각성 상태가 계속되어 실제로 잠들기까지는 꽤 오래 걸렸다.

2006년 10월 23일 월요일

2006년 10월 23일 월요일

농생대에 있는 (비교적) 새로 생긴 식당, 두레미담에서 동기 미진, 보미와 점심을 먹었다. 농생대 건물에 처음 가 봤는데, 두레미담의 한쪽 벽이 유리창으로 되어 있어 관악산 중턱이 내려다보였다. 산이 보이는 쪽에는 일인용 바(bar)형 자리를 죽 놓아 두었던데, 그 자리에서 산을 바라보며 식사를 하고 싶더라.

후식으로는 대추차를 마시며 특히 보미가 최근 쓰고 있는 아시아 출신 외국인이주노동자 자녀의 교육환경에 대한 논문 이야기를 들었다. 왜 연구가 없나 했는데, 현장에 나가 보니 수도권에 거주하는 혼혈이 아닌 이주노동자의 자녀 수가 생각보다 훨씬 적더란다. 특히 예상과 달리 동남아 출신 노동자의 취학 연령대 자녀는 매우 적고, 있는 아이들은 대부분이 몽골 출신이다. 이것은 문화적인 이유 때문이다. 몽골에서는 가족이 함께 사는 것을 중요한 가치로 인식하기 때문에, 부모가 한국에서 어느 정도 자리를 잡고 나면 불법체류라고 하더라도 자녀를 데리고 온다고 한다.

흥미로운 이야기라 열심히 듣다가 그만 기호논리학 시간에 10분 정도 지각했다.

저녁은 동기 영호, 지홍, 그리고 02학번 수연과 후생관에서 먹었다.

2006년 10월 21일 토요일

2006년 10월 21일 토요일 : '오늘의 책'은 어디로 사라졌을까?

오전 열 시 반 쯤에 전션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최대한 멀쩡한 목소리로 받았다(고 생각했다). "응 전숑~"
"안녕 정션. 어, 자고 있었어?"
"아니, 가만히 누워서 눈 감고만 있었어."
".......미안, 자고 있었구나."
어떻게 알았지.;

낮에 어머니의 고모분 가족께서 오신다고 하셨다. 인사라도 드리려고 기다리다가, 예상보다 늦으시기에 그냥 나와 카페 뎀셀브즈에서 마끼아또 더블을 마시며 원고를 했다.

오후 세 시 이십 분 쯤 동진님과 만나, 대학로에 있는 이음 아트에서 연극 ['오늘의 책'은 어디로 사라졌을까?]를 보았다. 클럽발코니 회원이벤트에 당첨된 덕분에 처음으로 연극 시사회에 가 보았다. 원래는 무대에서 하는 공연이지만, 서점이 배경인 공연이라서인지 시사회는 진짜 서점에서 진행되었다.

연극은 '민주화 투쟁'의 막차를 탔던 사람들 내지는 386과 문민정부시대 학번 사이에 끼어 있는 사람들인 91학번들의 이야기를 다룬 것이었다. 문학부 동기였던 세 남자가 운동하다가 복역까지 했던 여자 동기가 개업한 헌책방에 모인다. 한때는 꽃병을 던지고 쇠파이프를 돌리고 밤새 술을 퍼마시던 이들은 이제 국문학과 박사과정을 자퇴한 백수, 일등신문 문화부 기자, 꽤 유명한 단편영화 감독이 되어 있다. [희미한 옛사랑의 그림자]와 [대학 시절]과 브레히트처럼 서점이라는 장소를 잘 활용해 의미를 담은 소재와, "대학 들어오고 첫 세미나 때 '지식인을 위한 변명'을 했는데, 군대 갔다 와서 복학해 보니 후배들이 '지식인의 종언'을 읽고 있더라." (요약) 같은 대사들이 인상깊었다. 대사와 관계설정이 무척 현실적이라 몰입해서 봤다. 단, 서점 바닥에 낚시용 의자를 줄세운 객석이 현장감 면에서는 일품이었지만(...) 두 시간 남짓 앉아 있기에는 너무 불편했던 점은 아쉽다.

연극 후에는 서태지, 시위, 85~92,3 학번대 사람들, 출연 배우들 등의 인터뷰가 담긴 영상물을 보았다.

저녁은 오랜만에 동대문역 근처에 있는 네팔음식점 에베레스트에서 먹었다. 볶음국수와 커리 둘 다 맛있었지만, 역시 커리에는 밥보다는 난이다. 그러게, 그냥 주인이 권하는 걸 먹어야 한다니까.;

집에 와서는 [The Absolute Sandman] 1권을 주문했다. 11월 출간 예정이었기 때문에 아직 안 나왔을 줄 알았는데, 벌써 나왔단 소식을 어제 A모님에게서 듣고 즉시 구입.

2006년 10월 20일 금요일

2006년 10월 20일 금요일

바쁜 하루였다. 오늘 동선은

집->사회대도서관->16동->6동->16동->사회대도서관->동원관->본부->중앙전산실->종로구 모 동 파출소->종로구 K출판사->종로 3가 카페 뎀셀브즈->종로 3가 학원->집 (헉헉)

오늘 짐은 :

집을 나설 때: 노트북(+어댑터), 노트 2권, 수첩, 수업교재 프린트 한 묶음, 필통, 소품주머니(주머니는 소형이 아님), 텀블러, MP3P, [십이국기] 3권, 포장한 미니머핀, 지갑, 번역 중인 책, 날짜도장, 비상식량(린트 70%), 함박웃음물수건
집에 올 때: 노트북(+어댑터), 노트 1권, 수첩, 필통, 소품주머니, 텀블러, MP3P, [살인의 진화심리학] 등 책 총 7권, 지갑, 번역 중인 책, 날짜도장, 비상식량, 물수건, 닥스 다크초콜릿

오늘 한 일은 :

1. 아스님께 책 돌려드리고
2. 수업: 서양근대경험주의 - 흄 (사모하고 있다.)
3. 수미언니에게 부탁했던 60주년 기념 할인도서전 책 몇 권 받아서 (동기 미진과 마주침) 사물함에 넣어 두고
4. 반가운 동기, 지훈과 동원관에서 식사(카레라이스)한 후 동원관 앞 벤치에서 이야기하고 선물로 닥스 다크초컬릿을 받고
5. 본부에 들렀다가 중앙전산실로 가서 네이버 지도 찾고
6. K출판사 가다가 파출소에 들어가 길 물어보고
7. 동사무소 앞에 그려진 번짓수 지도 보고(....전에도 갔던 곳인데!) 건물 찾아 들어가서
8. 오렌지 주스 마시고 계약서 쓰고 책 받고
9. 한참 기다렸다가 버스 타고
10. 버스가 종로 2가까지 가는 차라서 종로 1가에서 내려 3가 가는 버스로 환승하고
11. 카페 뎀셀브즈에 들어가서 로스트비프샌드위치+마끼아또 더블 먹으면서 원고 하고
12. 독일어 학원 가고
13. 집에 와서 부산서 올라오신 외조부모님께 방가방가 퐁퐁 뽀뽀 하고
14. 행담도휴게소 호도과자를 많이 먹고
15. H사 원고(단)와 B사 초고(오늘작업분량)를 인쇄하고
16. 일기를 쓴다.

오늘의 충격적인 사건은 :
전션으로부터, 맡은 일의 일정이 계획했던 여행 기간과 겹치게 잡혔다는 연락을 받았다. 비행기 표까지 예약했는뎃!

오늘의 느낀 점은 :
K사 사무실은 역시 멋지다. 나도 주인의 취향이 보이는 사무실을 갖고 싶다.

오늘의 기뻤던 일은 :
선물을 받았다. 외조부모님께서 오셨다. 집에 휴게소 호도과자가 있다.

오늘의 아쉬웠던 일은 :
수미언니를 못 만나서 책만 가지고 왔다.

오늘의 난감했던 일은 :
학원 텔레비전이 고장 나서, 동영상을 선생님 노트북 화면으로 봤다.

오늘의 다행스러웠던 일은 :
16일에 텀블러를 잃어버려서 18일에 새로 샀는데, 새 텀블러를 또 학원에 두고 나왔다. 다행히 금세 기억해 내, 돌아가서 챙겨 왔다. 또 잃어버렸다면 우울했을 터다.

오늘의 뿌듯했던 일은 :
일 관련.

오늘의 안타까웠던 순간은 :
외할머니 키가 더 작아지셨다.

2006년 10월 15일 일요일

2006년 10월 15일 일요일

추석 연휴가 끝나고, 하루하루가 평온하게 흘러가다 보니 일기를 쓰지 않는다. Books도 표지만 달아 놓고 미루어 놓았더니 이제 와서 쓰기도 귀찮고 힘들고......그리하여 간단히 근황.

10월 6일 금요일 (추석) - 루미큐브가 대히트.

10월 8일 일요일
추석이 간신히 끝난 일요일. 저녁을 차려 놓고 7시쯤 안방에 들어가 보니 어머니가 가만히 누워 계셨다. 30분만 주무시겠다고 한지 한 시간이 지났다. 어머니 얼굴 가까이에 몸을 숙이고 귀를 기울였는데, 숨소리가 잘 들리지 않아 덜컥 겁이 났다. 손등을 어머니 코 밑에 대어 보는 순간, 어머니가 깜짝 놀라며 깨셨다. "저녁 식사 하실 건지 여쭤 보려 왔어요. 왜 그렇게 놀라세요. 하하. 그럼 일단 덮어 놓을 테니 나중에 드세요." 하고 대충 얼버무리고 나왔지만, 사실은 무척 무서웠다.

10월 10일 화요일
영등포구청에 가서 여권을 만들었다. 성수기에는 새벽부터 기다려야 한다는 얘기가 많았기에 아침 일찍 서둘렀는데, 생각보다 훨씬 한산해서 접수 시작하자마자 끝났다. 참으로 오랜만에 '굿모닝 세트'를 먹었다. 일찍 일어나니 하루가 길었다.

10월 11일 수요일
중앙도서관에서 사회대도서관으로 내려가던 길에 이번에 복학한 동기 지훈을 만났다. 다음 주에 함께 식사 하기로 했다.

10월 12일 목요일
금요일의 성과에 고무되어, 일찍 일어나 원고를 했다. 화실에서는 크로키에 들어갔고, 화실 수업 후에도 해질녘까지 자판을 두드렸다. 정진정명 프리랜서 모드.

10월 13일 금요일
올해 박사과정이 끝나는 수미언니, 환경대학원에 다니는 혜수언니와 동원관 3층에서 점심식사를 했다.(참치스테이크) 혜수언니와는 작년 졸업식 후 일 년여만에 만났는데, 기억하던 그대로셔서 무척 반가웠다. 수미언니는 유학을 준비중이라니, 출국하기 전에 자주자주 보면 좋겠다. 혜수언니는 식후에 일이 있어 대학원으로 올라가고, 수미언니와 나는 언어교육원 1층에 있는 카페 FANCO에서 차를 마시며 한참 이야기를 했다.
저녁은 화실 선생님과 오무토토마토에서 먹었다.

기타등등

1. 개교 60주년 기념으로 학교 교문이 은색으로 새로 칠해졌다. 처음에 은색으로 한다고 했을 때는 반짝이는 펄을 생각했는데, 완성되고 보니 은회색에 가까운 진중한 느낌이다. 그래도 밤에 조명을 넣으니 제법 멋있다. 5년이나 10년마다 다른 색으로 칠하면 재미있겠다.

2. 9월 말 가을 축제 기간에 자하연에 큼지막한 '괴물' 조형물이 설치되어 있어 좋았는데, 사진을 찍기 전에 사라져 버렸다.

3. 역시 60주년 기념으로 교문과 미술관 사이에 이상한 조형물이 생겼다. 설치 초기에는 크립토나이트(주: 수퍼맨의 고향 크립톤에서 온, 수퍼맨의 힘을 약하게 하는 정체불명의 광석) 를 연상케 하는 모양이라 두근두근했는데, 이제 자주색과 청록색이 들어가서 그냥 조형물로 보인다.

4. 미묘한 쾌감의 제공자, 비열남 크렌셔 씨의 근황
“아하, 네......아렌델 씨로부터 당신이 장애인 고용 지원 조치를 비판하신다는 말씀을 들었습니다.”
“그런 식으로 말하지는 않겠소.” 크렌셔 씨가 말한다. “정말 필요한지 아닌지에 달려 있어요. 휠체어 경사로라든지 하는 것들은 좋지만, 소위 지원입네 하는 것들 일부는 그저 사치스런 - ”
“그리고 당신은 실로 전문가이셔서 무엇이 정말 필요한지 잘 아시는군요?” 크렌셔 씨의 얼굴이 다시 붉어진다. 나는 스테이시 씨를 본다. 그는 전혀 겁먹은 얼굴이 아니다.
(중략)
“당신들은 세금으로 먹고 살잖소. 이윤에 대해 걱정할 필요가 없지. 우리는 당신네들 따위에게 봉급으로 줄 돈을 벌어야 한단 말이야.”
“덕분에 맥주가 시원하시겠수."

2006년 10월 4일 수요일

2006년 10월 4일 수요일 : 라디오 스타

아우님과 불광CGV에서 [라디오 스타]를 보았다. 틀에 딱 들어맞는 '전통적인' 드라마로, 누구나 아는 이야기를 완급을 조절하며 잘 풀어나가 관객이 대단히 몰입하게 만드는 힘이 있었다. 뻔한 얘기를 뻔하게 하면서 뻔한 감동을 불러일으키기란 굉장히 어렵다고 생각한다. 줄줄 울면서 봤다.

영화를 본 다음에는 집에 와서 오랜만에 온 가족이 함께 식사를 했다. 내일부터 추석 연휴로 친인척 분들이 오시기 때문에 집 정리를 했다. 지난 주부터 차일피일 미뤄 왔던 복합기 설치와 책장 정리를 하고, 작년부터 찍은 폴라로이드 사진을 모두 스캔했다.

집에서 추석을 쇠니 소소하게 신경이 쓰이는 일은 많으나 막상 '명절'이나 '연휴' 다운 흥은 그다지 나지 않는다. 그래서 추석 연휴 한정 서비스를 마련해 보았다. (10월 7일 종료)

2006년 10월 3일 화요일

2006년 10월 3일 화요일 : 우회

용진군과 압구정 라리에또에서 점심을 먹었다. 오랫동안 못 간 터라 라리에또의 파스타를 꽤 그리워하고 있었는데, 어제 아우님과 어머니가 가서 맛있게 먹고 왔다고 하기에 나도-하고, 본래 종로에서 만나기로 했던 약속을 변경, 압구정으로 갔다. 리코타 치즈 샐러드와 루꼴라 스파게티를 냠냠 먹고 현대백화점에 가서 용진군이 선물 고르는 것을 구경했다. 현대백화점 와인샵에 갔는데, 소뮬리에 박모님이 용진군의 표현을 따르자면 '[신의 물방울]에서 튀어나온 것 같은' 매우 인상적인 분이었다. 하지만 선물은 아루의 티라미수로 결정.

현대백화점 지하에 있는 카페 자작나무에서 용진군이 가져온 다크 초콜릿을 곁들여 더치 커피 (Dutch Coffee)를 한 잔 마시고 헤어져, 나는 서울아트시네마에 가서 에드가 울머 회고전 [우회(Detour 1945ㅣ미국ㅣ69minㅣB&W)]를 봤다. 기대에 부응하는 멋진 영화로, sabbath님이 말씀하신 살인 후 시선을 따라 가는 카메라 처리는 보다가 무릎을 칠 만큼 훌륭했다. 그리고 베라 역을 맡은 배우가 정말로 무서워서, 이 여자가 나온 다음부터 영화가 심리 스릴러에서 공포물로 장르전환한 느낌이 들 정도였다. 베라가 내뿜는 존재감은 섬뜩한 숙명의 존재감이나 어떤 계기로 서서히 끌려나오는, 인간에게 내재된 범죄에 대한 불가피한 매혹을 상징하는 것으로 읽히기도 한다.

10월 25일부터 10월 29일까지 메가박스에서 제 7회 유럽영화제(http://meff.co.kr) 가 열린다. 서울영화제에서 보지 못했던 주요 상영작이 포함되어 있고, 그 외에도 꼭 볼 만 하다 싶은 영화가 많이 있는데 행사 기간이 워낙 짧은데다 중간고사와 겹치기 때문에 실제로 몇 편이나 볼 수 있을지 모르겠다. 일단 내가 주목하고 있는 영화들은:

1. [코미디 오브 파워(Comedy of Power)] 서울영화제에서 놓쳤던 영화. 끌로드 샤브롤 감독의 2006년 작이다. 공금횡령 사건을 조사하게 된 여판사가 권력의 복잡한 이면을 마주하면서 느끼는 갈등, 사법체계의 문제점, 유혹과 현실 등을 풍자적으로 다룬 작품이라 한다.

2. [수면의 과학 (The Science of Sleep)] 미셀 공드리 감독의 2006년 작. [이터널 선샤인]을 대단히 인상깊게 봤던 터라 절대 놓치고 싶지 않은 영화이다. 수업이 없는 날 상영하길 간절히 바라고 있다. 이번 유럽영화제 제1의 기대작으로, 제목에서부터 포스가 느껴지는 로맨틱 코미디.

3. [퀸즈 (Queens)] 마뉴엘 고메즈 페레이라 감독의 2005년 작. 스페인의 첫 게이 합동 결혼식에 참가하기 위해 모인 어머니 다섯 명을 통해 '편견에 대한 폐부를 찌르는 대사와 유쾌한 이야기, 어머니와 귀여운 아들들이 보여주는 사랑과 가족의 이야기'를 보여준단다. 혹할 수 밖에 없는 작품 설명이로세.
유럽 영화를 본다고 해도 사실 프랑스/독일, 기껏 더해봐야 영국과 이탈리아 영화 정도밖에 보지 않았던 터라, 경험의 폭을 넓힌다는 의미에서도 가능한 한 꼭 볼 생각이다. (스페인 영화임)

4. [어둠 속으로 사라지다 (Fade to black)] 1948년, 오손 웰스는 헤이워드와의 이혼 후 새출발을 위해 이탈리아에 찾아온다. 그런데 새로이 사귀게 된 여배우의 아버지가 촬영 중 죽임을 당하는 사건이 일어나고, 웰스 감독은 이 살인 사건의 배후에 있는 정치적 음모에 휘말리게 된다-는, 영화팬이라면 일단 눈이 번쩍 뜨일 스릴러다. 실제 영화를 봐야 확실히 말할 수 있겠지만, SF 팬에게는 대체역사로도 해석될 수 있을 설정이다. 감독은 올리버 파커.

5. [르네상스 (Renaissance)] 흑백 애니메이션. '2054년 파리는 모든 행동이 감시되며 녹화되는 미로 같은 도시가 되어버렸다. 파리는 이제 거대 기업 아바론의 암영 아래 있게된 것이다. 한편, 미와 지성을 모두 갖춘 젊은 과학자 일로나가 납치당하는 사건이 일어나고, 아바론은 유능하지만 문제 많기로 유명한 경찰 카라스에게 가능한 빨리 그녀를 구출하도록 의뢰한다....(후략)' 란다. '미와 지성을 모두 갖춘 젊은 과학자'가 찜찜하긴 하지만 애니메이션이고 2054년이니 보러 가야지. 2006년 ANSI 대상 수상작이기도 하다.

그 외 세일란 감독의 [기후] (서울영화제 개막작), 소설이 원작인 [소립자], 감독 20명의 5분짜리 단편을 모은 옴니버스 영화 [사랑해, 파리], 유럽판 [트루먼 쇼]라고들 하는 [미스터 애버리지], [헤드윅] 감독으로 유명한 존 카메론 미첼의 [숏버스] 등도 (나는 그다지 볼 생각이 없지만) 관심을 기울일 만한 영화.

2006년 9월 29일 금요일

2006년 9월 29일 금요일 : 나의 색깔은?

오랜만에 테스트.

Which Color Represents You?

나의 결과

2006년 9월 28일 목요일

2006년 9월 28일 목요일

오후에 광화문 오봉뺑에서 전션을 만났다. 자그마치 6년 전부터 있었던 '함께 여행가기' 계획에 대해 드디어 상당히 구체적으로 이야기를 했다.

전션: 정션 시간 되면, 나는 우리 집에서 추석 쇠니까 추석 앞뒷날은 안 되지만 7일부터는 괜찮거든. 그러니까 7,8,9,10일 정도까지 해서 3박 4일로 일본이라든지-
나: 오-나도 올해부터 우리 집에서 추석 하지. 그런데 잠깐만, 전션, 나 여권이 없어.

(중략)
전션: (불안한 눈빛으로 나를 보며) 정션이, 혼자, 먼저?
나: 응. 시내에는 카페 있다고 했으니까, 먼저 가서 원고 하고 있으면 되지 뭐. 전션전션, 가서 맛있는 차 마시고 케이크 먹자아. ♡

(중략)
나: 니하오, 워쉬한궈렌, 캔유스픽잉글리쉬? 자, 이만하면 생존에는 문제없겠지. 훗훗.
전션: (차마 그건 아니라고 말하지 못하고) ......그 순서대로 말하는 거구나.
나: 시에시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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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이런 나와 같이 여행하기로 한 전션이 위대해 보일 따름이다.

2006년 9월 24일 일요일

2006년 9월 24일 일요일

느즈막히 일어나 모 님으로부터 이태원에서 브런치를 먹자는 연락을 받았으나 - 열두 시 삼십 분이면 브런치라고 하기 민망하지만 - 한 주간 피로가 적잖이 쌓인 것 같아 집에 있기로 했다.

곰플레이어를 최상단에 뜨게 설정해 놓고, [오란고교 호스트부] 애니메이션을 보며 번역을 했다. [오란고교 호스트부] 애니메이션을 만든다는 소식을 들었을 땐 황당했는데, 원작의 민망함을 잘 살린데다 횟수가 정해져 있어서인지 원작보다 이야기의 맺음새가 좋아 무척 즐겁게 보았다. 키보드를 두드리며 1.2배속으로 17화까지 보고 나니 하루가 갔다.

2006년 9월 23일 토요일

사회대 교수회의실에서 2006년 하계 실습 총평가회를 했다. 오전 10시 까지인 줄 알고, 아홉 시 사십 분에 사회대에 들어서며 부지런한 자신을 칭찬했는데, 아홉 시 반 시작이어서 지각했다. (T_T) 실제 시작은 50분이 다 되어서였으니 놓친 부분은 없지만.

우수 실습생 세 명이 실습 내용을 발표하고(사당종합사회복지관/We-ing/아름다운 재단), 사당종합사회복지관과 We-ing의 우수실습지도자 분들이 기관 사업과 실습에 대해 기관 입장에서 말씀해 주셨다. 학과에서 현장 사회복지사들을 초대해 특강을 해 볼 계획이라는데, 무척 좋은 아이디어라고 생각한다.

실습지도자 발표 후 이봉주 선생님의 '프로그램의 개발과 평가 1,2,3 : 논리모델(Logic Model)의 적용'이라는 특강이 이어졌는데, 기력이 쇠해 좀 졸았다.

평가회 특강을 들으러 온 박사과정의 수미언니를 참으로 오랜만에 만나서 굉장히 반가웠다. 동원관 3층에서 다함께 식사를 힌 다음 과로 돌아가서 수미언니와 차를 마시며 이야기를 했다. 늘 궁금해 하기만 하고 직접 먼저 연락 드리지 않았던 점을 반성했다. 좋아하는 사람에게 먼저 좋아한다고 말하는 요령이 아직 많이 부족하다.

귀가길에 [씨엘 Ciel] 5권을 샀다. 홍대 앞에서 와우 북 페스티벌을 하고 있으나, 너무 덥고 잔짐이 많아 책만 사고 바로 왔다. 네 시쯤 집에 들어와서 일 하려고 노트북을 켰다가, 방에 뭐 찾으러 들어간 길에 그만 잠들어 다섯 시간이나 잤다. 일어나 보니 아홉 시. 늦은 저녁을 먹은 다음, 맛있는 커피를 한 잔 끓여 초콜릿과 함께 들면서 밀린 일기를 쓴다.

2006년 9월 21일 목요일

2006년 9월 21일 목요일 : 검은 고양이

오전에는 화실에서 베티 데이비스를 이어 그렸다. 니콜 키드먼을 그리고 싶었는데, 출력해 놓은 사진을 토요일에 집에 두고 나왔기 때문에 일단 잡지에서 골랐다. (이 사진은 오늘 가져 갔다.) 베티 데이비스도 좋지. 루비치 감독님 영화가 또 보고 싶구나.

화실 오가는 길에 크리스토퍼 프리스트의 [매혹]을 읽었다. 여자 한 명과 남자 두 명의 삼각관계를 다룬 인상 깊은 작품이었다. 프리스트의 책 중에서도 이런 것이 출간되는 데에는 역시 기획자의 공이 크다. 읽으면서 새삼스레 감탄.

번역 하니 생각나는데, 내가 요즈음 (마음 속으로) 작성하고 있는 '미묘한 쾌감' 목록에 번역과 관련된 항목도 있다. '미묘한 쾌감'이란 주 활동의 목적과 직접적인 관련이 없는 활동에서 느끼는 오묘한 즐거움이다. 예를 들어, 검은 파스텔로 그림을 그릴 때는 지우개를 흰색 재료처럼 사용한다. 그런데 파스텔은 가루가 많이 나고, 특히 검은 파스텔은 검은색 건식 재료 중에서도 가장 짙기 때문에 작업을 하다 보면 지우개가 금방 새까맣게 된다. 그래서 평소에 지우개를 왼손에 쥐고 엄지손가락으로 열심히 밀어서 가루를 밀어 내는데, 이렇게 하면 새까맣던 지우개가 하얗고 말랑말랑하고 따끈따근해진다. 이게 바로 미묘한 쾌감!

번역의 경우, 치졸한 악당의 비열한 언사를 번역할 때 미묘한 쾌감이 느껴진다. 책을 읽을 때는 악당이 나오는 부분을 참 싫어해서 그냥 '이 사람은 지금 나쁜 말을 하고 있구나.' 라고 알 수 있을 정도로만 훑어보고 넘어가는 경우가 많은데,
“그들 중에도 타고난 리더가 있다면요?” 알드린이 물었다.
크렌셔가 코웃음 쳤다. “자폐인들이 리더라고? 농담 마시오. 그들에게는 리더가 될 자질이 없어요. 사회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눈곱만큼도 이해하지 못하지.”
이런 악당의 말을 직접 쓰고 있으면, 참으로 희안하게도 기기묘묘한 즐거움이 느껴진다. 악당이 너무 거대하거나 최후의 승리자라면 재미 없겠지만, 나는 너무 강하고 잔인한 악당이 나오는 글은 맡지 않으므로(그냥 취향이다.) 마음껏 즐거워할 수 있다. (초고를 검토하기 위해 이런 부분을 다시 '읽을' 때에는 이런 미묘한 쾌감이 없다.)

화실 수업 후에는 종로 카페 뎀셀브즈에 가서 원고를 하다가, 오후 여덟 시에 서울아트시네마에서 하는 'B영화의 제왕: 에드가 G. 울머 회고전' 프로그램인 [검은 고양이 (The Black cat, Edgar G. Ulmer | 1934ㅣ미국ㅣ65minㅣB&W)] 를 보았다.

상영 전에 김성욱 프로그래머가 울머의 작품 세계를 간단히 소개했다. [검은 고양이]에는 건축과 철학을 전공했던 울머의 건축에 대한 관심이 드러나 있다고 한다. (실제로 주인공이 유명한 건축가로 나온다.) 또한 검열을 피하기 위해 집어 넣은 성적 코드들과 카메라의 움직임에 주목해 보라는 이야기도 들었는데, 이는 실제로 감상하기 전에 듣지 않았다면 놓쳤을 부분이다. 울머가 [검은 고양이]를 제작한 다음에 대형 스튜디오인 유니버셜을 떠났던 이유는 스크립트 걸과 연애를 하다가 간부에게 발각되었기 때문이란다. (...) 울머는 B급 SF영화도 많이 만들었는데, 이번에는 호러만 상영되어 조금 아쉽다. 그래도 서울아트시네마가 아니라면 DVD상영이라 해도 30년대 공포영화를 어디 스크린에서 볼 수나 있겠어.

영화는 보러 가길 잘 했다 싶었다. 워낙 공포물을 싫어해서, 이번에는 'B급'이라는 타이틀, 30년대 작품이라는 점, 그리고 짧은 러닝 타임을 보고 한 번 도전해 보자는 심정으로 갔는데, 검열이 있던 시대 작품이라 잔혹한 장면이 나오지 않아 편하게 보았다. 박사가 자신의 동족을 배신하고 아내를 죽였던 포울직을 묶어 놓고 '살갗을 벗겨 주겠다'고 한다. 놀래서 눈을 후딱 가렸다가, 조용하기에 살짝 내다 보니 찰흙 소조를 조각칼로 다듬는 것 같은 그림자가 잠깐 나오고 넘어간다.

여자 한 명과 남자 두 명의 삼각관계를 다룬 인상 깊은 작품으로, 잔인하다기보다는 무척 슬펐다. 과거 격전지/훈련장이었던 지하실의 구조와, 여자 시체를 세워 놓은 관들이 강렬했다. 번쩍이는 기하학적 건물이나 차가운 유리관이 음습하고 축축하게 느껴져 신기했다. 그리고 칼로프와 벨라 루고시 두 사람의 존재감이 굉장히 강해, 과장된 움직임에도 '과잉'이란 느낌이 들지 않았다. 두 사람이 나온 영화를 더 보고 싶다고 생각했다.

낮에 종로로 가는 버스 안에서 여자 한 명과 남자 두 명의 삼각관계를 다룬 인상 깊은 작품......이라기엔 조금 무리가 있는 만화 [노다메 칸타빌레] 15권을 읽었다. 이번에는 캐릭터 북, 메모지, 상자로 구성된 한정판도 나왔다. 메모지가 노다메가 치아키에게 달려갔다가 내던져지는 내용의 플립북(flipbook)이라, 아무래도 한 장씩 떼서 쓰지 못할 것 같다. 캐릭터 북이 파본이라서 한양문고에 전화했더니 11시 까지 영업한다기에, 영화를 본 다음 다시 홍대 입구에 가서 교환받아 왔다.

2006년 9월 17일 일요일

2006년 9월 17일 일요일

올 여름, 내가 2차 시험을 치를 때 돌아가셨던 분당 작은할아버지 묘소에 다녀왔다. 전망 좋은 공원묘지였다. 작은할머니, 고모들, 부모님과 함께 점심으로 회전초밥을 먹고 돌아왔다.

나에게는 정말 소중한 것을 잃어 본 적도 없고 무언가를 간절하게 원해 본 적도 없는 사람 특유의 잔인함과 무심함이 있다. 나는 내가 이런 사람이고, 이것이 그저 지금의 내가 가진 특징임을 안다. 그리고 나는 이런 사라질 수 밖에 없는 나들에 대해, 잃을 수 밖에 없는 것들에 대해 꽤 자주 생각한다.

새벽 두 시 까지 숙제를 하고, 포스트-잍에 '아빠 사랑해요 ♡'라고 써서 현관 문에 붙여 두고 잠자리에 들었다. 다음 날 아침, 일어나 보니 아우님이 그 밑에 '미연이도요-'라고 써 놓고 나갔다.

.....그럴 줄 알았다.

2006년 9월 15일 금요일

2006년 9월 15일 금요일

드디어 서양근대경험주의 수업을 들었다. 지난 번 휴강은 병원 예약 때문이었단다. 생각보다 연세도 많으셔서, 이번 학기에 신청해서 다행이다 싶었다. 내가 수업을 듣기 전에 퇴임하시기라도 하면 이만 낙심이 아니니.

수업은 즐거웠다. 다들 전공 시간표를 비슷하게 짜기 때문인지 몰라도, 매 수업마다 낯익은 학생들이 들어온다. 기호논리학 시간에는 '왜/어떻게 나는 같은 수업을 들으면서 저 생각을 못 했을까!' 싶은 날카로운 질문을 던지는 사람들이 몇 있었는데, 이번 시간에는 반대로 내용과 전혀 초점이 다른 질문이 몇 나왔다. 사실 질문을 듣는 순간 속으로 '에이, 그건 아니다.' 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선생님은 질문자에 맞춘 진지한 태도로 흐트러짐 없이 논의를 계속하시는 게 아닌가. 선생님 말씀의 내용도 결국 '그건 아니다'였지만, 자세가 달랐다. 나의 방자함을 깊이 반성했다.

말이 나온 김에 쓰자면, 기호논리학 시간에도 비슷한 깨달음을 얻고 있다. 기호논리학 선생님은 이번 학기에 뉴욕주립대에서 우리학교 교수로 온, '한국어로 강의해 본 적이 없는' 분이다. 그런데도 강의 중에 함부로 영어를 섞어 쓴다거나 하는 일이 전혀 없이 - 그럴까봐 조금 걱정했었는데 - 늘 한국어-영어 순으로 말하고, 영어를 쓸 때는 반드시 칠판에 그 단어를 적고 넘어간다. 앎과 관련된 많은 일들도 결국은 태도의 문제다.

오후까지 무척 졸렸다. 학교 가는 지하철에서도 계속 잤고, 수업 사이 쉬는 시간 10분에도 꿈 꿀 만큼 깊이 잤다. 집에 와서도 쿨쿨 잤다. 오후 다섯 시 오 분에 일어나 계란말이를 만들고 (이번 주부터 반찬이 되는 음식 -다른 말로 하자면 생존형 요리- 을 매주 한 가지 이상 만들기로 결심했다.) 독일어 학원에 갔다. 학원 가는 길에 모 님에게서 빌린 [Storm Front]를 읽었는데, 초반부터 다시 떠올리기도 싫을 만큼 끔찍한 살인 사건 현장 얘기가 나와서 깜짝 놀랐다.

돌아와서는 식빵을 토스터에 구워 아이스크림을 발라 먹었다.

2006년 9월 14일 목요일

2006년 9월 14일 목요일 : 인터코스모스

오전에는 화실에서 그림을 그렸다. 지난 주부터 연필과 검은색 파스텔로 제임스 캐그니를 그리고 있었다. 그런데 세부 묘사로 들어가서 눈을 그리다 보니, 이 얼굴이 엄청나게 무서워졌다! 내가 그렸지만 도저히 쳐다 볼 수가 없을 정도라, 고개를 돌리고 선생님께 SOS를 쳤다. 보통 눈은 눈꺼풀에 동자가 잠겨드는데, 내가 그린 것처럼 '눈동자가 동그랗다'는 생각으로 원형으로 그리면 희번득거리는 눈이 되어 무서워진단다. 선생님도 진짜 무섭다고 감탄(?) 하셨다. 자세히 들여다보면서 수정을 해야 하는데 차마 마주 볼 수가 없어서, 그냥 손으로 눈자위 전체를 문질러 지우고 새로 그려 넣었다. 게다가 하필이면 캐그니......

두시 반에 화실에서 나와, 서울영화제 프로그램 [인터코스모스 (Interkosmos, Jim Finn, USA, 2005, 74')] 를 보러 스폰지하우스에 갔다.

크레딧을 보고 : Finn씨네 가족은 대체 총 몇 명이냐?!

영화를 본 후 교보문고에 과자 사러 갔다가, 버스를 잘못 타서 엄청 고생했다. 대체 어쩌다 착각했는지 동교동 행 버스를 탔는데, 한참 가던 중에야 뭔가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쨌든 여차저차 해서 이대역에서 지하철로 환승, 저녁 여섯 시 사십분에야 귀가했다. 집에 들어서며 "버스 잘못 타서 엄청 고생했어요!"라고 하자 어머니의 즉답.
"그래? 오랜만이었네."

2006년 9월 13일 수요일

2006년 9월 13일 수요일

한국철학사 첫 수업. 예상보다 훨씬 더 재미있어서, 두 시간 반 연강인데도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즐겁게 들었다.

수업에 대해 더 쓰려고 했으나 생략. 어쨌든 선생님이 정말 이야기꾼이었다. 수업 외적인 잡담 없이 불교사를 설명하는 데도 어쩌면 그렇게 재미있는지.

학교 가는 길에 한양문고에 들러 [스킵비트] 13권과 [플루토] 1권을 샀다. [스킵비트]야 내가 사랑하는 순정만화 최상위권이고 -'출첵게시판'에 부지런히 글 올려서 팬카페 정회원도 되었다. ㅋㅋㅋ - [플루토]는 조금 애매한 기분으로 샀으나 정말 훌륭해서 감탄, 또 감탄. [마스터 키튼]이나 [몬스터]와 달리 소재부터 내 취향이라 훨씬 더 몰입해서 읽을 수 있었다. 구성의 밀도부터 시작해서 무엇 하나 예사롭지 않은 만화로 특히 마지막 두 페이지는 충격적이었다. 수요일부터 금요일까지 사흘을 이어, 3000제우스만 달라는 무시무시한 인간(?)에게 쫓기는 꿈을 꾸었다. (아톰은 수요일에만 나왔다.)

2006년 9월 12일 화요일

2006년 9월 12일 화요일 : 화성 식민지 / HD 애니메이션

오후 한 시, 서울영화제 프로그램 중 하나인 스캇 질 감독의 영상물 [화성식민지 (Mars Underground, 87', HD, 2005, USA)]를 보러 스폰지하우스에 갔다. 대체 어떤 내용인지 소개를 읽어도 잘 이해가 안 되었는데, 실제로 보니 로버트 주브린 박사의 연구와 주장을 소개하고, 그의 견해를 따른 화성 개발 모습을 컴퓨터 그래픽으로 영상화한 다큐멘터리였다.

영상이 굉장히 깔끔해서 감탄했다. 일단 바탕이 까만색이고 파란색이든 빨간색이든 은색이든 뭔가 동그란 게 둥실 떠 있는 장면을 보면 '피가 끓기' 시작하는 만큼, 일러스트레이션이나 CG가 많이 나오니 일단 보는 재미가 있었다.

주브린 박사의 주장에 대해서는, 기술적인 논쟁의 핵심을 정확히 이해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뭐라 말하기 어렵다. 효율성 측면에서는 상당히 일리 있는 주장이라는 글을 몇 번 읽은 적은 있다. 그러나 그 열정에 심정적으로 동조하고 싶어지는 것과 별개로, 유인우주선에 타는 '사람' 에 대한 고민을 더 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은 많이 들었다. 개인공간이 1평인 우주선/거주지 안에서 단 네 사람이 몇 년 동안 생활한다는 것이 과연 '인간적으로' 가능할까? 주브린은 세계적인 영웅이 되어 부와 명성을 누리고 역사에 이름을 남길 기회이니 수많은 사람들이 몰려들리라고 하지만, 그런 방향에서 접근하는 것 자체가 굉장히 위험하지 않아?

한때 그와 함께 일했던 과학자가 '아주 밝은 별 옆에 있으면 빛이 바래는데, 그렇게 느껴졌다. 내가 할 일이 없는 것 같았다.'는 요지의 인터뷰를 했던데, 그 심정을 왠지 알 것 같았다. 겨우 한 시간 반 보면서도 조금 짓눌리는 느낌이 들 정도였으니까. 그를 따르는 화성 협회 사람들을 보나, 그들이 하는 활동의 면면을 보나, 솔직히 말해 신흥 종교 지도자 같은 데가 있다.;

[화성식민지]를 본 후에는 카페 뎀셀브즈에 가서 원고를 매우 열심히 했다. 한참 하다 보니 배가 고파져, 이른 저녁 삼아 새싹새우샌드위치를 먹어 보았다. 무순과 작은 새우, 토마토 등이 들어 있는데, 딱 내 취향이었다. 앞으로 자주 찾게 될 것 같다.

일곱 시에 시작하는 'HD 단편 애니메이션' 상영을 보러 스폰지하우스로 돌아갔다. 앞 디지털 쇼케이스 상영의 GV가 늦게 끝나 조금 기다렸다. 이 상영분의 표도 마련해 놓았으나 원고 할 시간이 필요해 안 들어갔었다.

단편 애니메이션은 총 다섯 편이었다. 원래 상영 목록에는 한 편이 더 있었는데, 기술적인 문제로 인해 상영을 못 했다.

[통행료(The Toll, J Zachary Pike | USA | 7 min | HD | Short)]
[Vaudeville (Chansoo Kim | USA | 5 min | HD | Short)]
[사마귀 이야기 (Josh Staub | USA | 8 min | HD| Short)]
[임박한 체포 (Mike McCormick, Rob Taylor | USA | 3min | HD | Short)]
[코끼리의 꿈 (Blender Foundation | Neterland |11 min | HD | Short)]

다리에서 통행료 받는 일을 하는 트롤에 대한 가상 인터뷰인 [통행료]가 가장 재미있었다. 맨 마지막, 크레딧 올라간 뒤에 '이 영화를 찍는 중에 어떠한 동물이나 사람도 다치지 않았습니다. 아, 어쩌면 그때 그 남자는 빼고요.'라는 문구를 넣은 센스도 좋았다. (인터뷰 중간에 한 여행자(?)가 통행료를 안 내고 지나가려고 하자 트롤이 수상한 손잡이를 당기고, 비명 소리가 한참 들린다.) [사마귀 이야기]와 [임박한 체포]는 귀여웠다. 오픈소스만을 사용해 만든 [코끼리의 꿈]은 내용보다는 기술적인 면을 보여 주려고 만든 작품 같았다. [Vandeville]는 종잡을 수가 없었다. 설명을 보고 나서 다시 생각하니 납득은 가지만, 책이든 영화든 그 작품 안에서 하고 싶은 이야기를 다 전달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편이라......

귀가하여 늦은 저녁을 먹고 인터넷을 좀 한 다음, 검토서를 마무리했다. 취침 시간이 조금 늦어지긴 헀지만 계획대로 거의 정확히 진행된, 만족스런 하루였다.

2006년 9월 10일 일요일

2006년 9월 10일 일요일 : 시간은 흐른다 / 사운드 오브 발리우드

그린마켓(Green Market) -압구정 현대백화점 하늘공원
점심 - 떡볶이 & 순대

SENEF : 아르헨티나 감독 이네스 데 올리베이라 세자르(Inés de Oliveira Cézar)의 2005년 작 [시간은 흐른다 (Cómo pasan las horas, 85', color)]

일 - 카페 뎀셀브즈
저녁 - 베이글 연어 샌드위치

SENEF : 넬 뮌크마이어(Nele Muechmeyer) 감독의 다큐멘터리 [사운드 오브 발리우드(Bollywood - Indiens klingendes Kino, 60', Color, Germany/India, 2004)]

2006년 9월 9일 토요일

2006년 9월 9일 토요일

화실 / 신촌 클로리스(아란양)

2006년 9월 8일 금요일

지난 주에 휴강했던 서양근대경험주의 수업을 들으러 학교에 갔다. 신도림에서 앞 차인지 뒷 차인지의 문이 고장나는 바람에 열차가 줄줄이 밀렸다. 예전에 아우님과 함께 등교하다가 문이 고장난 지하철을 타서 신도림에서 내린 적이 있었다.(인파에 휩쓸리다가 로트링 아트펜을 잃어버렸었다.) 이번에는 내가 탄 차는 고장이 아니라, 그냥 멈춰 선 지하철 안에 가만히 앉아 있었다. 목요일에 쥐를 본 다음부터 지하철을 타며 이곳은 땅 밑이구나, 하고 자주 생각한다. 그러면 어째서인지, 지하철 타기가 예전만큼 싫지 않다.

느릿느릿 기어가 서울대입구 역에 도착할 때 까지 한참 걸렸다. 집에서 워낙 일찍 나온 터라 지각을 하지는 않았다. 지각한 사람은 휴강 사실을 알리러 온 조교였다. 이번 시간에는 출석을 불렀고, 로크와 버클리의 책을 복사해서 나누어 주었다. (다음 시간부터 로크를 들어간단다.) 혹시나 해서 교수님의 저서 [영국경험론]을 가지고 갔으나 원전 수업이었다. [영국경험론]이 매우 재미있는 책이었기 때문에, 깔끔한 주 2 시간표를 만들 수 있었음에도 굳이 등하교에 걸리는 시간과 수업 시간이 같은 이 수업을 신청했었다. 그런데 이 주가 지나도록 교수님 얼굴도 못 보아서 몹시 낙심했다. 평소에는 이런 일이 없으신데, 다른 사정이 있어서 학교에 나오지 못하셨다고 해서 짜증은 나지 않았다.

교실에서 나오니 열 시 이십 사 분이었다. 예정보다 일찍 나온 김에 농협에 가서 현금카드를 IC 카드로 전환발급 받고 (ATM 쓸 때마다 전환 대상 카드라고 나와 상당히 성가셨다.) 사회대에 가서 실습 최종과제를 제출했다. 실습생 중 두 번째였다.

집에 오자 졸렸다. 눈 비비고 원고를 했다. 너무 열심히 해서, 오후 네 시 반 경이 되자 낮보다 더 졸렸다. 그래서 잤다. 여섯 시 반에 깼다. [블레이드 러너] DVD 상영회에 못 갔으나, 한 숨 자고 나니 눈에 띄게 상태가 좋아졌다. 한 주 내내 바빴고, 제대로 쉬지 못했었다. 그래도 원고가 흐름을 타고 있어 적이 안심이 된다.

기분 전환 삼아 옷을 챙겨 입고 종로로 나갔다. 스폰지하우스에 들러 세네피안 카드를 받은 후, 인사동에 있는 찻집/술집 '좋은 씨앗'에 갔다. 번역자, 소설가, 회사원, 조금 수상한 직업에 종사하는 사람들 약간명이 모여 지구 음식 정복을 획책하는 자리였다. 해물파전, 알탕, 고구마튀김, 감자튀김, 계란말이, 두부전을 먹었다. 나는 쌍화차를 마셨고, 다른 분들은 최근 득녀하신 모 님을 축하하기 위해 다른 모 님이 가져오신 (맛있다는) 술을 비롯, 여러가지 알콜음료를 드셨다. 거의 삼 년여 만에 뵙는 분도 나오셔서 반가웠다. 이런 저런 재미있는 얘기를 하며 신나게 놀았다. 몇 주 전부터 오늘을 고대했던 터라, 늦게까지 앉아 있다가 자정이 되어서야 일어났다. 집에 열두 시 삼십 분 넘어 들어간 것이 몇 년 만인지 기억도 안 난다. (아마 01년에 세종문화회관에서 강수지씨 공연 보고 늦었던 이래 처음이 아닐까 싶다.) 어머니께 전리품을 자랑하고 새벽 두 시쯤 잠들었다.

2006년 9월 7일 목요일

2006년 9월 7일 목요일 : 정진정명 일상잡담

9월 4일 월요일

옛 제자 모 양으로부터 모카 홀케익이 왔다. 케이크 케이크! 초 네 개 꽂고 힘내자 파티 하고 냠냠 먹었다.

분석철학은 로망이라고 생각했다.

9월 5일 화요일

용량이 1GB인 USB 메모리를 하나 샀다. 학교 전산실-데스크탑-노트북을 오가며 작업할 때 마다 플로피 디스켓을 쓰기가 귀찮았는데, 이번 실습 때 다른 실습생들이 메모리를 잘 활용하는 것을 보니 하나쯤 장만해도 좋겠다 싶었다. 한 시에 잠자리에 들었으나, 실제로는 세 시 반이 다 되어 잠든 듯 하다. 잠 드는 데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린다......아니, 사실은 오후 다섯 시 반 부터 아홉 시 까지 잤었지......

9월 6일 수요일

합정역에서 2호선 열차를 오래 기다렸다. 신도림 행이 두 대 연달아 오고, 그 다음에는 외선순환이라고 쓰인 차가 오기는 했으나 방송이나 안내판은 신도림 행이라고 하기에 혼란스러워 그냥 보냈다. 그런데 그 다음에 또 신도림 행이 왔다. 다섯 대 째에 외선순환이 와서 타고 학교에 갔다. 결국 지각했다.

6일에는 하루 일과를 매 시분마다 적어 보았다. (수첩 한 장이 꽉 찼다.)
2:40~2:55 중도 밑에서 17차+ 호두과자 / 3:08~3:22 인문대 전산실……

9월 7일 목요일

합정역 구내 구석에 있는 사이다/콜라 자판기 밑에서 쥐를 봤다. 애완용이 아니라, 그림책에 나오는 것 같은 진짜 회색 시궁창 쥐였다. 생각해 보면 역사 내는 지하 터널인 셈이니 쥐가 없으란 법도 없다. 자판기 바로 옆에 쓰레기통이 있었는데, 내가 보고 있는 사이에도 두어 명이 아무렇지도 않게 가서 쓰레기를 버렸다. 쥐가 사람들이 다가오면 얼른 자판기 밑으로 쏙 들어가기는 했지만, 그래도 주위에 사람이 없을 때면 상반신을 거의 다 내밀고 수염을 만지작거렸는데...... 처음에는 혹시 내 눈에만 보이는 쥐인가 싶었다.

5일에 주문한 메모리가 왔다. 엄지손가락 만한 본품이 열린책들 미스터노 시리즈가 일곱 권쯤 들어갈 만큼 큰 상자에 담겨 와 웃었다.

2006년 9월 3일 일요일

2006년 9월 3일 일요일 : 플레이 타임

시네큐브에서 따띠 감독의 작품 [플레이타임(Playtime, couleur, 132')]을 봤다. 레스토랑 '로얄 가든' 장면과 놀이공원을 연상케 하는 마지막 부분에서는 웃으며 신나게 보았다. 영화관을 나와서도 떠올릴 때마다 기분 좋게 웃을 수 있는 영화였다. (수요일까지 효과 지속 중)

단, 감독이 의도한 유머의 코드를 이해하는 데 시간이 좀 걸렸다. 돌이켜 보니 초반에도 재미있는 장면이 많이 있었는데 -당장 맨 첫 장면의 날개 달린 모자라든가, 뱅글뱅글 도는 가방 이름표라든가-, 어리둥절 한 채로 지나갔었다. 한 번 더 본다면 훨씬 더 즐겁고 편하게 볼 수 있겠다.

저녁은 세븐스프링즈에서 먹었다. 이하는 귀찮으니까 생략. 역시 일기는 미루지 말고 그때 그때 써야 한다.

2006년 9월 2일 토요일

2006년 9월 2일 토요일 : 잠자는 파리 / 네 멋대로 해라

오전 열 시부터 학교 세미나실에서 학부실습최종세미나를 했다. 이번 여름학기 실습생은 열네 명 정도였다. 모두들 한 달이나 현장에서 일한 만큼 할 말이 많았다. 여러 기관의 사업이나 업무 현장, 실습 내용 등에 대해 새로이 알게 되어 무척 재미있었다.

원형 탁자에 앉은 순서대로 발표를 했는데 하필이면 내 자리가 반대편 끄트머리가 되어, 내 차례가 왔을 때에는 발표에 주어진 시간이 거의 없었다. (오후 두 시 부터는 대학원실습세미나가 있었다.) 일 주일도 전부터 PPT를 만들고 최종 보고서 개요를 짜며 준비했던 내용을 "시간이 없으니까 이 부분은 생략하고..." 라고 통과하려니 속이 쓰렸다. 세미나는 두 시 십 분 쯤 끝났다.

학교에서 광화문 시네큐브로 이동, '팡테옹 뒤 시네마 프랑세' 프로그램인 르네 끌레르(Rene Clair) 감독의 1927년 작 [잠자는 파리 (Paris qui Dort/ n&b, muet, 35')]를 보았다.

파리 전체가 갑자기 멈춘다. 움직이는 사람은 하늘 높이 올라가 있던 에펠탑 관리인과 비행기에 타고 있던 다섯 명(여자, 비행사, 도둑, 경찰(?), 신사) 뿐이다. 이들은 처음에는 어리둥절해 했으나 곧 잠든(?) 사람들의 돈이며 보석을 챙기고, 마음껏 술을 마시는 등 놀기 시작한다.

그러나 '모두가 잠든 세상에서, 돈과 술이 무슨 의미가 있겠나?' 이들은 에펠탑에서 치고 박고 싸우다가 -심심해 하며 술이나 마시다 보면 싸움이 나기 마련이다- 이하 스포일러. 확성기를 통해 '이 말이 들리는 분은 손수건이 걸린 창 앞으로 와 주세요'라는 방송을 듣는다. 시내로 나간 이들은 정말 손수건이 걸린 창문을 찾고, 그곳에서 역시 깨어 있는 여자를 만난다. 알고 보니 파리를 잠들게 한 사람은 이 여자의 삼촌인 한 괴짜 과학자 할아버지였다. 그가 연구실에서 내뿜은 이상한 광선을 받아 파리가 잠이 들었고, 하늘에 있던 여섯 명만이 광선의 영향을 받지 않았던 것이다. 이들은 과학자를 협박해 다시 파리를 움직이게 하고 밖으로 나간다.(커다란 레버를 당기면 된다.)

그러나 과학자의 조카딸과 그새 사귄 애인(?)은 과학자의 주의를 다른 곳으로 돌린 사이에 레버를 거듭 돌려 파리를 멈추고, 그 사이에 돈을 훔치려는 계획을 세운다. 허나 과학자는 자신의 발명을 자랑하지 않고 못 배기는 법! 커플이 돈을 가져가려는 순간, 동료 과학자에게 자신의 실험에 대해 설명하던 과학자가 다시 레버를 돌린다. 경찰서에 잡혀 간 커플은 경찰서에 이미 와 있는 일행들을 다시 만난다. 이들은 파리가 멈췄다는 둥 떠들다가 이상한 사람 취급을 받으며 잡혀 들어가는데, 그 때 또 파리가 잠시 멈춰 재빨리 도망친다.


프로그램에는 27년 작이라고 되어 있으나 IMDB에는 25년 작이라고 나온다. 잠든 파리 시내의 모습 -사람들이 행동하던 그대로 멈추어 있다-과 에펠 탑에 매달려 체조하는 것 같은 격투 장면 등이 인상깊었다. 칠판에 ax+2b+c=0 어쩌고를 열심히 써내려가는 과학자, 남장풍 정장을 입은 여성, 장광설을 늘어놓는 도둑, 까탈스러운 신사 등 겨우 35분 안에 전형적인 캐릭터를 선명하게 묘사해 낸 점에도 감탄했다.

그 외에 80여년 전 작품임을 느끼게 하는 부분들도, (감독이 의도한 바는 아니겠지만) 재미있었다. 예를 들어, 공항이 잡초밭이고 비행기가 라이트 형제의 비행기+ 1차대전 자료사진의 비행기처럼 생겼다. (정확한 명칭은 모르겠는데, 날개가 2층으로 되어 있고 앞에는 작은 프로펠러가 달려 있는 형태.) 건물 배치나 옷과 장신구의 형태, 경찰들의 행동거지 등도 아, 저게 20년대구나, 하고 생각하게 했고.

상영 후에는 시네큐브 영화학교 여름학기 선생님이셨다는 한창호 님의 마스터클래스가 있었다.

강의 내용 정리


무척 유익한 강좌였다. 강좌명이 '프랑스 영화사 100년'이라서 백 년 치를 다 할 줄 알았는데, 20년대에서 60년대 까지만 다룬 것은 조금 아쉬웠다. 잘 모르는 분야에 대해 공부할 때는 (여러가지 책을 찾아 보는 일도 즐겁기는 하지만) 그 분야의 전문가로부터 말로 풀어 설명을 들을 때 훨씬 잘, 빨리 이해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특히 이번에는 영화제에서 상영하는 영화를 중심으로 한 마스터클래스라, 이미 보았거나 내용을 잘 알고 있는 영화를 예로 들어 이해하기가 쉬웠다. 예전에 멋모르고 열심히 봤던 영화들이 시대적으로 어떤 사조를 따른 것인지에 대해서도 되짚어 볼 수 있어 즐거웠다. 다음에는 60년대 이후 영화나 헐리우드 영화에 관해서 강의를 들을 기회가 있으면 좋겠다.

마스터 클래스가 끝난 뒤에는 시네큐브 옆에 있는 카페 쉐누에 가서 이른 저녁을 먹었다. 무난한 샌드위치와 중상 정도의 커피를 파는 2층 카페이다. 늦은 오후 햇살을 받으며 샌드위치와 카페라테를 먹고 책을 읽었다. 혼자 온 손님 서넛이 각자 자기 일을 하는 조용한 분위기가 마음에 들었으나, 흡연 카페라 여섯 시쯤 되자 담배를 피우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저녁에는 궁님과 장 뤽 고다르의 59년 작 [네 멋대로 해라(A Bout de Souffle)]를 보았다. 목요일에 전션과 이 영화를 함께 보고 저녁을 먹기로 했었는데, 전션이 오늘 오후에 집안에 다른 일이 생겼다며 갑자기 약속을 취소했다. 거의 매진된 영화라 표를 취소하고 한 장만 다시 예매하는 대신, 이 영화를 볼 생각이라셨던 궁님께 연락해 보았다. 금요일 저녁에 예매 사이트가 잘 안 들어가진다고 하셨던 데다, 우리 쪽 예매가 더 앞섰으니 좌석 위치도 낫지 않을까 해서였다. 그런데 들어가 보니 궁님이 예매하셨던 자리는 우리 자리 바로 뒷 줄로, 별 차이가 없었다.;

여하튼 이 일기가 너무 길어졌으니 자세한 감상은 생략. 솔직히 한 줄로 요약해서 말하자면......그렇게 찌질한 남자 주인공은 진짜 처음 봤다. --; '한심하다'나 '멍청하다'가 아니라 '찌질하다'가 너무 딱 들어맞아서, 비극도 비극 같지가 않았다.

오전부터 계속 집중했던 터라 무척 피곤했는데 궁님이 데려다 주신 덕분에 편하게 귀가했다. 궁님이랑 네비게이터 만세다.

2006년 9월 1일 금요일

2006년 9월 1일 금요일

개강일이었다.

한 시간 십오 분 걸려서 학교에 갔는데, 조교님이 "교수님 사정으로 수업은 다음 주부터 해요~"하고 나가신다. 이 수업 하나 들으려 학교까지 왔는데 오 분도 안 되어 끝나(?) 버리다니. 허망했다.

학교에서 일하시는 as님을 만나 같이 점심을 먹었다. 비빔밥을 먹고 등나무 아래 의자에 앉아 있다 보니 기분이 좋아졌다. 가을이 오고 있구나.

집에 올 때는 한 시간 사십 분 쯤 걸렸다. 아무래도 수강신청을 변경해서 1교시 수업을 빼야 할 것 같다. 막상 오전에 가 보니, 새벽 여섯 시 반에 일어나 제때 등교할 엄두가 안 난다.

2006년 8월 31일 목요일

2006년 8월 31일 목요일 : 세상의 모든 아침

전션과 위치스테이블에서 샌드위치를 먹고, '팡테옹 뒤 시네마 프랑세' 프로그램 중 하나인 알랭 코르노 감독의 1991년 작, [세상의 모든 아침 (Tous les matins du monde)](114')을 보았다.

(중략)

영화를 본 후에는 전션이 함께 일할 통역 분과 만나야 한다고 해서, 그 분이 오실 때까지 광화문 오봉뻉에서 차를 마시며 이야기를 나누었다. 밤 아홉 시가 넘어서까지 일 관계로 사람을 만나야 하다니.....끄윽. 토요일에 장 뤽 고다르 감독의 [네 멋대로 해라]를 함께 보기로 했다. 오늘 관객이 굉장히 많아 깜짝 놀랐는데, 네멋도 벌써 30석 정도밖에 안 남아 있다고 한다. 볼 영화는 미리미리 예매하고, 영화 보면서 수다 떨거나 음식 먹지 맙시다. (b열 86번, 당신 말이오! 부탁을 하면 좀 들어요!)

내일 개강이다.

2006년 8월 28일 월요일

2006년 8월 28일 월요일

0. 어느새 월요일이다.

1. 기관 제출 실습 과제를 했다.

2. 검색 중에 우연히 '탯줄도장'이라는 걸 봤다. 정말로 탯줄을 안에 넣어 만드는 도장이다. '제대도장'이라는 것도 있다. 제대혈 할 때 그 제대다.
" ......조각하여 아기의 배꼽을 저장 할 수 있도록 제작되었으며 하단에는 아기의 이름을 새긴다. 3면의 창을 통하여 아기의 배꼽을 볼 수 있으며 평생의 신표로 사용되는 인감도장에 아기의 처음 생명을......"

3. 입양을 희망하는 양부모의 케이스는 국제 입양이든 국내 입양이든 비슷한 경우가 많다. 몇 번의 임신 시도, 실패, 가정을 이루고 육아를 경험하고 싶은 소망, (국제 입양의 경우) 자국 내 입양의 불확실성 등의 이야기가 이어진다. 친부모의 케이스는 각양각색이란다. 예전에는 강간이나 돌발 임신에 대처하지 못한 저학력 10대 미혼모가 많았으나, 최근에는 미혼모 연령대가 매우 높은 경우도 드물지 않다.

입양 절차는 아동을 중심으로 진행된다. 보호를 필요로 하는 아동이 기관에 들어오면, 이 아동의 파일이 만들어진다. 친부모 상담 기록, 친부모의 입양동의서, 출생증명서, 양부모의 가정조사 자료며 세금계산서 등이 모두 이 파일에 쌓인다.

열 대여섯 살에 불과한 소녀와 역시 그만한 나이인 소년이 출산 당일 입양동의서에 지장을 찍는다. 사귀다가 임신을 했으나 둘 다 계속 사귈 생각이 없고, 이미 몇 번의 중절 수술을 경험한 터라 더 이상 수술하기가 두려워 낳기는 하지만, 키울 수는 없으니 입양시키고 싶단다. 혹은 직장에서 2차 갔다가 호프집에 만난 상대와 한 번 했는데 임신해 버려, 어영부영 하다 보니 중절 시기를 놓쳤기에 그냥 낳긴 한다. 하지만 아이 아버지도 모르고, 출산 다음 날에도 출근 해야 하니까 아이를 기관이 바로 인수했으면 좋겠다. 마을 축제에서 술 마시고 동네 사람이랑 했는데, 이쪽이나 저쪽이나 배우자가 있는 고로 비밀로 입양시키련다. (이런 경우에는 국내 입양만 가능하다.)

'피임을 제대로 하던가, 낳지를 말던가.' 하고 문득 생각했다가, 내가 내 속에 놀라 섬뜩해진다. 아이는 이미 태어났다. 파일의 주인은 지금 이 순간 나와 같은 세계에 존재하는 생명이다. 눈도 제대로 못 뜬 이 증명 사진의 주인공을 기준으로 보면, 차라리 낳지를 말지-란 얼마나 끔찍한 말인지.
편견은 얼마나 쉽게 사람을 잔인하게 하는가. 그리고 그 편협한 냉정함은 얼마나 쉽게 당당해지는가. 서류 한 묶음을 앞에 놓고 부모와 사회의 책임을 말하기란 얼마나 쉬운가. 심지어 나의 책임을 말하기도 얼마나 어렵잖은가.

그러나 진심으로 부끄러워하기란 늘 얼마나 어려운가.



(위 사례들은 특정 사례 그대로가 아니라, 불특정 다수 사례에 해당되도록 요약, 변형, 가공한 것입니다.)

2006년 8월 26일 토요일

2006년 8월 26일 토요일 : 거북이는 의외로 빨리 헤엄친다

시네큐브의 일본인디영화제 서울앵콜상영작 중 미키 사토시 감독의 2005년 작, [거북이는 의외로 빨리 헤엄친다]를 보았다.

무료하게 살아가던 평범한 주부가 우연히 스파이 모집 공고를 보고 스파이가 되는(!) 이야기였다. 단순하고 꼬인 곳 없는 전개에, 소소한 에피소드가 즐거운 영화였다. 사실 배나온 스파이 아저씨라든지, 주위를 살피는 모습이 더 수상한 스파이 아줌마라든지, 어중간한 맛 라면을 만들며 눈에 띄지 않게 살아가는 라면가게 아저씨(멋졌음) 등을 보고 있자니 이건 지정사잖아!; 라는 생각이 들었다. 지정사 분들과 함께 보았더라도 좋았겠다.

2006년 8월 23일 수요일

2006년 8월 23일 수요일

인수오빠가 모 처에서 입수한 그라파이어 4를 넘겨 주셨다. 달(DAL)에 가서 같이 점심을 먹고, EGG에서 차를 마셨다. 오빠가 이번에 장만한 D200과 외장 플래쉬를 구경하고, 수상한 훌륭한 사진도 많이 찍었다.

오빠와 헤어져서는 압구정에 가서 원군님을 잠깐 뵈었다. 며칠 전, 타블렛을 마련하게 된 김에 원군님께 참고도서를 추천해 주십사 부탁드렸었다. 있는 책을 빌려주신다기에 갔는데, 인물화 책부터 만화 작법책까지 여러 권 챙겨 주셔서 고마웠다.

압구정까지 간 김에 커피도 200g 사 왔다. 너무 더워서 종일 몹시 힘들었지만, 집에 와서 맛있는 커피를 마시며 타블렛을 써 보니 신이 났다.

우리 가족 첫 작품

2006년 8월 22일 화요일

2006년 8월 22일 화요일 : 아파트 열쇠를 빌려드립니다 / 피아니스트를 쏴라

1:00 서울아트시네마 시네-바캉스 [아파트 열쇠를 빌려드립니다(The Apartment, 빌리 와일더, 1960, b&w, 125m)]

H사

맥도널드 (궁님)
7:00 하이퍼덱 나다 시네-프랑스 [피아니스트를 쏴라(Tirez sur le pianiste, 프랑수와 트뤼포, 1960, b&w, 80m)]


볼 때는 몰랐는데, 집에 오면서 확인해 보니 두 편이 같은 해에 개봉했더라. 너무 더워서 자세한 일기는 다음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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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영화제(9/9~17) 프로그램이 보기 너무 불편하게 되어 있도다.

[현대무용사 2] 11일 12:00, 15일 9:00 -> 다큐(인 듯)
[진 켈리, 춤을 해부하다] 12일 9:30, 16일 5:00 -> 처음에는 '진 켈리를 해부하다'로 잘못 읽고 깜짝 놀랐다.
[지젝의 기묘한 영화강의] 10일 8:30, 13일 4:00 -> 그 지젝이다.
[프로듀서스] 9일 7:00, 17일 1:30 -> 뮤지컬
[코미디 오브 파워] 9일 4:30 -> 영화.
[사운드 오브 발리우드] 10일 7:00 -> 다큐
[화성식민지] 12일 1:00, 14일 1:00 -> 다큐

2006년 8월 20일 일요일

2006년 8월 20일 일요일

포베이 신림역점에서 W사의 BK님, 경아님, (오랜만에 서울 오신) 동현님과 함께 점심 식사를 했다. BK님은 일전에 W사에서 뵌 후 처음이었는데, 이번에는 회사 밖에서 만나서 그런지 그 때 기억보다 더 상쾌한 미인이시더라.

식후에는 바로 옆에 있는 카페 아일랜드라는 찻집에 가서 차와 케이크를 먹었다. BK님과 동현님이 가져오신 여러가지 책들을 보며 일 이야기(즉 책 이야기)를 했다. 동현님이 Song of Kali 슬립케이스 한정판 사인본을 가지고 와서 자랑하셨는데, 새로 만든 하드커버도 깔끔했고 Dan Simmons의 서명도 멋있는, 탐나는 책이었다.

저녁에는 친구 재영과 이대 앞에서 만나 저녁으로 알밥을 먹고, 정문 앞 던킨도넛에 가서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다 집에 왔다.

2006년 8월 19일 토요일

2006년 8월 19일 토요일

저녁에 귀가하던 아우님에게서 전화가 왔다. 무지개가 떴단다. 얼른 나가 보니 정말 커다란 무지개가 북한산 자락에서 둥그렇게 뻗어 있었다. 빨주노초파남보 색이 다 보이는, 그림 같이 깔끔한 반원 무지개였다. 급히 사진을 찍긴 했으나 실물에 비하면 초라하도다.

그냥 집에서 쉬고 있었는데, 저녁에 일요일 낮까지 제출해야 하는 실습프로그램 평가서가 생각났다. 다 하고 잤다.

2006년 8월 18일 금요일

2006년 8월 16일 수요일 ~ 18일 금요일

16일 수요일 저녁 7:00 실습세미나

를 마치고 집에 오니 우재오빠로부터 요시토모 나라가 디자인한 장난감(으로 추정되는 물건)이 와 있었다. 여러 디자이너들의 작품을 제작 판매하는 Cereal Art 라는 회사에서 낸 PopCup이다. AA전지 두 개 를 넣고 전원을 켜면 컵이 천천히 돌면서 굴러간다. 장애물이 나타나면 뱅글 돌아 옆으로 방향을 전환, 다시 슬금슬금 움직이는데, 그 속도가 '약간 느림' 정도라 보고 있으면 왠지 힘이 빠진다. 그래서 일단 '탈력강아지'라는 이름을 붙여 주고, 심심할 때마다 켜서 거실에 풀어(?) 놓고 어디로 가나 구경하고 있다.


(실제로는 머리보다 컵이 더 크다. 컵 크기는 베어스터바하의 점보머그보다 조금 작은 정도.)

17일 목요일 오후 2:00 교수님 기관방문

18일 금요일 오후 12:00 실습 끝

2006년 8월 14일 월요일

2006년 8월 14일 월요일

이집트 연수를 다녀오신 동진님과 오랜만에 만나 달(dal)에서 저녁을 먹었다. 내가 좋아하는 달콤한 커리 파니트 마크니와, 탄도리 니샤라는 대하구이를 주문했다. 탄도리 니샤는 이번에 처음 먹어봤는데 굉장히 맛있었다.

식후에는 성곡도서관 앞에 있는 커피스트(Coffeest)라는 카페에 갔다. 커피가 맛있고 분위기도 좋았는데 -홍대 앞 비하인드(b-hind), 클럽 에스프레소, 이대 앞 티앙팡을 섞은 느낌이랄까나- , 이미 꽤 유명해져 주말에는 무척 시끄럽다고 한다. 소리가 빠져나가지 못하는 구조라 손님이 대엇 명 뿐인데도 제법 시끄럽게 느껴졌다. 손님들이 글을 남기는 수첩에 아주 어린 아이들이 그린 그림도 여럿 있는 것을 보니, 아이를 동반한 부모들도 적잖게 찾는 모양이다. 어쨌든 일단 커피가 맛있으니 추천.

카메라를 가져가지 않아 탄도리 니샤와 커피스트의 사진을 못 찍어 아쉬웠다. 결식아동 방학 프로그램이 끝나 일반 후원개발 업무에 들어갔는데, 이미 실습이 끝날 때가 되어 관심 있는 분야에 대해 다 못 배울 것 같아 안타깝다. 게다가 15일은 휴일이니......쉬는 것은 싫지 않지만, 차라리 기관에 나가서 뭐라도 하나 더 보고 싶은 것이 솔직한 심정이다.

2006년 8월 13일 일요일

2006년 8월 13일 일요일 : 기이한 밤

서울아트시네마에서 마르셀 레르비에의 1942년 작, [기이한 밤(La nuit fantastique, 104m, B&W)]을 보았다. 얼굴도 못 본 꿈 속의 여인을 사랑하게 된 주인공 드니는, 시도 때도 없이 졸다가 아르바이트하는 꽃집에서 잠이 들었다. 그리고 마법 대학 교수의 딸인 꿈 속 여인을 만나 단두대가 있는 교수의 집, 교수의 마술 쇼가 열린 루브르 미술관, 정신병원, 교수가 경영하는(!) 마네킹들이 있는 나이트클럽 등에 가는 모험을 한다.

몽환적인 연출 덕분에 무척 흥미진진하게 보았다. 특히 교수의 집, 눈 먼 지인이 등장하는 장면, 나이트클럽에 들어가는 장면, 정신병원 옥상 장면의 빛처리가 특히 인상적이었다. 원래 8시 30분의 [까마귀]도 보려고 상영 시간 사이에 할 일을 가져갔는데, 한밤의 모험(?) 을 다룬 흑백 영화를 보고 나오니 내가 밤을 샌 것 같았다. 아직 해도 지지 않은 일곱 시인데, 어서 집에 들어가야겠다는 기분이라 그냥 귀가했다.

화요일부터는 공포영화 상영이라, 22일 상영되는 빌리 와일더의 1960년 작 [아파트 열쇠를 빌려드립니다]를 마지막으로 나의 시네-바캉스는 끝. 하지만 하이퍼덱 나다의 브레송 전, 서울 영화제, 시네큐브 팡테옹 뒤 시네마가 기다리고 있다!

2006년 8월 13일 일요일 : 부모님 어록 모음

남은 이삿짐을 정리하면서 (아직도 하고 있다!) 일기에 쓰려고 메모해 두었으나 따로 쓰지 않았던 메모 쪽지를 몇 개 발견했다.

1. 2005년 11월 15~20일께로 추정

(늦은 밤, 어머니가 부엌에서 요리를 하다 말고 갑자기 자지러지게 웃으며 거실로 뛰어나오셨다. 깜짝 놀라 "엄마? 무슨 일이에요?"라고 하자 어머니가 웃음을 참으며 하시는 말씀.

"지금 청국장 재료를 다듬어서 한 통에 넣고 있었는데, (한참 웃다가) 밤새 파가 청국장 냄새에 기절하겠다! 아하하하하하"

2. 2006년 4월 28일

어머니: (전략) 그런 점은 엄마 참 소녀같지? 그래서 싫어?
제이: 하하, 좋아요.
어머니: 이렇게 물어보면 좋다고 해야지 어쩌겠어~
제이: 우웃, 그런 소녀답지 않은 권모술수를!
어머니: (웃으면서 안방 문을 닫고 들어갔다가 고개를 쏙 내밀며)
나는 소녀가 아니거든. ^-^v
---
사실 이 메모의 (전략)부분이 더 궁금하다. 대체 무슨 얘기를 하다가 이런 대화를 했는지 기억이 안 난다.

3. 이사 하기 전 주 월요일

(이사 때문에 물건을 정리하다 보니 분리수거 할 것이 많이 나왔다. 더운 날씨에 쓰레기를 들고 몇 번이나 오르내린데다, 아직 정리할 것이 많이 남아 있어 어머니와 나 둘 다 슬슬 짜증이 나고 있었다. 그런데 귀가해서 아버지 몫으로 우리 두 사람이 들지 못했던 가장 무거운 종이 상자가 잔뜩 쌓여 있는 것을 본 아버지는......)

아버지: (진심으로 감탄하며) 하이고야! 이거 왕건이가 남았네!
어머니, 제이: (저도 모르게) 풉.

우리 집에서는 이런 아버지 말씀을 "탈력 멘트"라고 부른다.

2006년 8월 11일 금요일

2006년 8월 11일 금요일

글을 쓰기 귀찮을 때가 있는가 하면, 글이 쓰고 싶어 견디기 힘들 때도 있다. 전자를 손발의 게으름이라고 하고 후자를 정신적인 설사라고 한다. (후자는 안정효 씨의 말이다.) 쓰고 싶은 글이 있는가 하면, 써야 하는데 쓰기 싫은 글이 있기도 하다. 쓰고 싶으면 즐거이 쓰면 된다. 쓰기 싫으면 마음껏 투덜거리고 왜 싫은지 생각해 본 다음에, 마음이 동할 때 쯤 주섬주섬 컴퓨터 전원을 켜면 된다. 가장 부담스러운 글은 좋지도 싫지도 않은데, 아니 그렇기 때문에, 어느새 '해야 할 일'목록에 들어와 완성되기를 기다리고 있는 항목들이다.

일기로 돌아와서.

수요일에 다른 행정일로 학교에 갔다가, 우리 과 바로 옆 사무실에 계신 아스님을 잠깐 뵈었다. 맛있는 차(계수나무 잎이 들어간 우롱차였던가?)를 마시고, 마침 들어온 아스님의 석사논문도 한 권 받았다. 날이 너무 더워 말도 못하게 고생했다. 마른 하늘에 천둥번개도 쳤다.

목요일에 새 컴퓨터 책상이 들어왔다. 수납 공간이 많고 책 등을 올려 둘 자리도 많은 좋은 책상이다. 좋은 도구의 힘에 새삼스레 감탄하고 있다. 예전에는 컴퓨터 책상에 책을 둘 자리가 없어서, 숙제를 하거나 여러 자료를 살펴야 하는 글을 쓸 때 무척 힘들었다.

목요일에 피곤해서 너무 깊이 잠드는 바람에, 금요일에 오전 8시에 일어났다. 지하철을 타면 5분 정도 지각할 것이 확실해서 부득불 택시를 잡았다. 그런데 택시님이 지하철 노선도를 따라 꾸물꾸물 돌아가 15분 지각을 하고 말았다. 택시비가 얼마나 나왔는지는 말하기도 싫다. 이러니까 내가 택시를 안 타지, 하는 말이 절로 나왔다. 설상가상으로 하필 오늘 오전에 총괄수퍼바이저가 우리 팀을 찾다가 내 지각 사실을 알았다.

오늘로 여름방학 결식아동 프로그램이 끝났다. 실습은 아직 한 주 남았지만, 어쩐지 이미 다 한 기분이라 같은 팀 실습생 두 명과 함께 홍대 앞 그리스음식점 그릭조이에 가서 저녁을 먹었다. 실습 하는 동안 계속 함께였지만 거의 애들 얘기만 계속 했던 터라, 한 숨 돌리며 편하게 이야기할 기회가 생겨 즐거웠다. 귀가길에는 한양문고에 가서 책을 한 권 샀다.

+ 이번 결식아동 프로그램에서 내가 얻은 가장 큰 성과는 아이들을 조금 쉽게 대하는 법을 익혔다는 점이다. 일 자체는 시작할 때부터 말썽이 많았고 진행되는 내내 덜컹거렸다. 사회복지전공자로서 배운 점이 있느냐는 질문을 받으면 먼 산을 바라보며 웃을 수 밖에 없을 상황도 많이 겪었다. 그러나 그냥 개인으로서는 이 정도로 만족한다. 나는 초등학교 1학년~중학교 2학년 연령대를 대하는 일을 무척 불편해했다. 아니, 무서워했다. 오죽하면 사촌 동생들에게도 (애들이 좀 자라기 전까지는) 인사 정도밖에 안 했다. 같이 놀아주기는 커녕 최대한 피해다녀서 그 나이대일 때 사촌 동생들에 대한 기억이 희미할 정도이다. 사실 아우님에게도 썩 잘 해주지 않았던 것 같다. 그런데 일이랍시고 어린이들과 부비적대고 나니 자신감이 조금 생겼다. 내 아이 키울 자신도 없었던 데 비하면 굉장한 진보다.

2006년 8월 7일 월요일

2006년 8월 7일 월요일: 질 수 없닷!

아이들과 한강시민공원 야외수영장에 갔다.

영혜(가명): 김가X 선생님, 선생님 몇 살이에요?
김선생님: 스물한 살.
영혜: 그럼 정소연 선생님이 선생님들 중에 제일 나이 많아요?
제이: 응.
영혜: 와, 정소연 선생님 할머니다 할머니.
제이: 뭣이! 그럼 영혜 넌.....할아버지닷!

이상 언제나 어린이 여러분을 진심으로 대하는 정소연 선생님 (23세, 서울시 은평구) 이었습니다.

2006년 8월 6일 일요일

2006년 8월 6일 일요일 : 카사블랑카 / 한나와 그의 자매들

서울아트시네마 '씨네-바캉스(Cine-Vacances)' 상영분 중 [카사블랑카(Casablanca)](마이클 커티즈, 1942, B&W, 102m)를 보러 갔다. 시간에 댈 수 있을까 걱정했는데, 열심히 달려 비상구 안내 중에 들어가는 데 성공했다. 이사한 후로 서울아트시네마가 가까워져서 좋다.

비시 정부 시절 프랑스령 모로코의 항구 카사블랑카를 배경으로 한 이 영화의 내용은 매우 유명하니 생략. 어쨌든 참으로 로맨틱한 영화다. 엔딩을 모르고 있었던 터라, 마지막까지 새드엔딩이 아니길 전심전력으로 기원하며 흥미진진하게 볼 수 있었다. 덕분에 엔딩의 감동도 두 배. 험프리 보가트의 대사 처리가 훌륭했다. 험프리 보가트는 트렌치 코트를 입으면 얼굴이 길어보여서 내가 유심히 보는 배우는 아니지만, 그 대사 읆는 방식이랄까, '목소리'가 아니라 '말하는 모습'이 매혹적이라는 생각은 볼 때마다 한다.

영화를 본 후에는 sabbath님과 잠깐 인사를 나누었다. DVD 건도 있고 해서 차라도 한 잔 살까 했는데 일행이 있으시기에 그만두었다.

카페 뎀셀브즈에 가서 2주 만에 원고를 참새 눈물만큼 하고, 내일 제주도로 내려가는 용진군을 만났다. 커피를 마시고 쿠키와 케이크를 먹으며 이런 저런 이야기를 했다. 어째서인지 몰라도 나중에는 결혼이 화제에 오르기도 했다.

여섯 시 십오 분에 일어나 나는 서울아트시네마로, 용진군은 지하철역으로 갔다. 우디 앨런의 [한나와 그의 자매들(Hannah and Her Sisters)](1986,103m)은 21일 상영분을 보려고 예매 해 둔 영화였는데, 여섯 시가 되자 나온 김에 보고 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서 현매해 들어갔다. 이번에도 관객이 평소보다 훨씬 많았다. 우디 앨런이 나오면 일단 웃고 보는 분위기여서 대체 왜 웃지 싶을 때도 있었으나, 관객이 적어서 심심한 것보다는 나았다. 특히 우디 앨런 특유의 장광설이 이어질 때는 같이 낄낄거리는 재미가 쏠쏠했다. 완소 우디 앨런!
(그렇지만 제발 음식물 반입은 하지 말자. 너무 들고 들어오는 사람이 많아서 내가 규정을 잘못 알고 있는 건가 싶기까지 했다.)

집에 들어오니 아홉 시쯤 되었다. [한나와 그의 자매들] 예매를 취소하고 다음 주말의 [기이한 밤(La nuit fantastique)]을 예매했다. 이제 실습일지와 개인일지를 써야지. 주말 동안 영화를 세 편 보고, 글도 쓰고, 어른인 지인들도 만났더니 좀 살아난 기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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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22 7:00 하이퍼덱 나다 [피아니스트를 쏴라](트뤼포, 1960)

2006년 8월 5일 토요일

2006년 8월 5일 토요일 : 사랑은 비를 타고


멜란쟈네

피자 꾸아뜨로 포르마쥐


아우님과 홍대 앞 치뽈리나에서 저녁식사를 했다. 전채로는 올리브오일에 가지를 절인 멜란자네를 골랐다. 가지라 반신반의하며 시켰는데 - 나는 가지, 버섯, 알로에, 호박 등 물컹물컹한 음식의 식감을 좋아하지 않는다 - 뜻밖에 개운하고 상큼한 게 무척 맛있었다.

피자는 꾸아뜨로 포르마쥐. 고르곤졸라, 모짜렐라(♡), 리코타, 브리에 치즈를 얹은 깔끔한 피자다. 그리고 내가 서울에서 두 번째로 좋아하는 새우와 샐러리 파스타! (첫 번째는 역시 라리에또의 토마토치즈 스파게티이지.) 계란을 넣어 반죽한 면에 새우와 샐러리, 크림소스.

피자와 파스타 모두 즐겨 먹는 맛있는 메뉴였고, 새로 도전한 가지 전채도 성공이라 기뻤다. 아우님과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며 하나도 남기지 않고 깨끗이 먹었다.

식후에는 버스를 타고 종로로 갔다. 원래는 카페 뎀셀브즈에서 커피와 케이크를 든 후 영화를 보기로 했었는데, 저녁 시간에 둘 다 늦어 종로에 도착해 보니 카페에 들어갈 시간이 없었다. 그래서 케이크만 두 가지 골라, 서울아트시네마 로비로 올라갔다. 서울아트시네마 내에 있는 커피집에서 커피를 시켜 케이크와 함께 먹을 생각이었다. 그런데 도착해 보니 이게 웬 걸, 로비에 빈 자리가 없는 게 아닌가! 서울아트시네마에 그렇게 관객이 많은 모습은 예전 안국동 시절 멜빌전 이후 처음 보았다. 그래서 로비 밖 벽 위에 베리베리스트로베리 케이크를 꺼내어 놓고, 둘이서 인사동을 내려다보며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나누어 마셨다. 냉방은 되지 않았지만 이미 해가 거의 저문데다 4층이라 그리 덥지 않았다.

그리고 드디어 [사랑은 비를 타고(Singin' in the Rain)](스텐리 도넌 & 진 켈리, Color, 1952, 103m) 상영 시작! 스크린에서 보는 건 이번이 처음이었는데, 역시나, 정말 재미있었다. 사실 ([베를린 천사의 시]같이 스크린으로 보니 훨씬 강렬했던 영화와 달리) TV나 뮤지컬로 볼 때와 크게 다르다는 느낌은 받지 못했지만, 여러 관객들과 함께 웃으면서 볼 수 있었던 점이 좋았다. [Make 'em Laugh]나 [Singin' in the Rain] 같은 유명한 넘버가 끝난 다음에는 관객들이 박수를 치기도 했다. 상영이 끝난 다음에도 박수를 꽤 많이들 쳤다. 극장에서 나오는데, 내 뒤로 나오던 관객이 일행에게, "정말 기분이 업 된다."고 하더라. 암, 그렇고말고. 나는 2주 전부터 [Make 'em Laugh],[Singin' in the Rain], [Good Morning] 등을 부르며 다녔었다. 아, [Beautiful Girl]도 좋아. 아우님도 웃으면서 재미있게 보아서 기뻤다.

밤에는 깼다 잠들었다, 에어컨과 선풍기를 켰다 껐다, 찬물을 뒤집어썼다 하면서 새벽 네 시 정도까지 잠을 설쳤다. 너무 더웠다.

2006년 8월 5일 토요일


놀랍게도, 아직도 이삿짐 정리중이다. 내가 무슨 부귀 영화를 누리겠다고 (이하동문)

7월 31일부터 여름방학 결식아동 프로그램을 시작했다.
"전 콜라 안 먹어요. 콜레스테롤 때문에요. 사이다 주세요." , "선생님 스물아홉살! 목 주름 보니까 스물아홉이다.", "다크써클을 없애려면 브로콜리를 먹어야 해요."

8월 1일에는 어린이 여러분들과 비누방울 그림그리기를 했다.
"싫어요.", "나가서 놀면 안돼요?", "고맙습니다.", "언니 진짜 미워요.", "아 이게 뭐야.", "저는 1학년 3반 3번이에요. 우리 가족도 세 명 이에요."

8월 2일에는 새 모니터, 키보드, 마우스가 도착했다. 한강시민공원 야외수영장에서 어린이 여러분들과 튜브 칙칙폭폭을 했다.
"하루 종일 놀았으면 좋겠어요.", "벌써 가요?", "꽃단장 하는데 무슨 시간이 그렇게 많이 걸린대." , "더워 죽겠어요." , "예약 왜 안 했어요?", "우리 이제 친하게 지내자.", "선생님 또 칙칙폭폭 해주세요.", "미끄럼틀 탈래요.", "짜장면 사줘요.", "선생님 몇 살 연상까지 사귀어 봤어요? 전 세 살 연상이랑 사귀었었어요.", "이수만은 돈수만이에요.", "아 나한테도 좀 줘!"

8월 3일에는 어린이 여러분들과 [괴물]을 보았다. 극장 간다는 데 대체 손전등을 왜 갖고 왔니......orz
"선생님~ 괴물이요~ 있어요." , "xxx가 죽어서 슬펐어요." , "괴물은 어떻게 됐어요?", "저는 진짜로 하나도 안 무서웠어요.", "xx가 잡았던 손이라서 싫어요.", "에스에스라니, 선생님 뭐에요? 안티에요? 안티들이나 에스에스 오공일이라고 한다고요."

8월 4일에는 실습 중간평가 발표를 하고, 어린이 여러분들과 풍선아트를 했다.

8월 5일에는 인터넷이 연결되었다. 그리고 어른인 아우님과 저녁식사를 하고 영화를 보았다. (별도정리)

2006년 7월 27일 목요일

2006년 7월 26일 목요일

실습 셋째날이자 이사 전날이다. 비가 많이 와서 내일 무사히 이사와 실습 업무를 할 수 있을지 걱정이다.

2006년 7월 25일 화요일

2006년 7월 25일 화요일

실습 첫날이었다. (중략) 가위바위보에서 졌다. 집에 와서 펑펑 울었다. 어찌나 섧게 울었는지, 어머니께서 "고시에 떨어져도 안 울던 애가 그걸로 대성통곡을 하네." 하셨다.

그건 내가 못 해서 떨어진 거니까 괜찮았지. 뭐, 가위바위보도 내가 해서 진 거지만.....

2006년 7월 24일 월요일

2006년 7월 24일 : 당신의 성공 파트너는?

'당신의 성공 파트너는?'

꽤 예전 테스트이지만 -

나의 결과

2006년 7월 23일 일요일

2006년 7월 23일 일요일

에라오빠, as님과 홍대 앞 하겐다즈에서 만났다. 한창 다이어트 중이라는 에라오빠가 맛있는 아이스크림을 사 주셔서 냠냠 먹었다. 아스님께 빌렸던 책을 돌려 드리고, 업계 얘기, 책 얘기, 요괴 얘기, 언제 들어도 멋진 프랫챗 얘기 등을 하다 보니 치즈케이크가 먹고 싶어졌다. 그래서 투썸에 갔는데, 자리가 없는 게 아닌가! 아쉬워하며 인클라우드로 옮겨가 치즈케이크, 커피, 팥빙수, 핫케이크를 먹었다. 에라오빠를 참 오랜만에 만났는데, 다이어트 때문인지 건강해 보여서 좋았다.

집에 와서는 글 쓰기가 귀찮아서 공부를 했다.

2006년 7월 22일 토요일

2006년 7월 22일 토요일

여전히 글 쓰기가 매우 귀찮다.

어제는 조부모님 댁이 이사를 했고, 우리 가족은 주민등록지를 옮겼다. 실 이사는 다음 주, 실습 와중이다.

부모님은 조부모님 댁에 정리 하러 가셨다. 나는 저녁 약속이 있었으나, 나가려고 보니 열쇠가 없었다. 집에 나밖에 없어 열쇠가 없으면 집을 못 비운다. 사실 아파트 현관문에 자물쇠가 몇 시간 쯤 안 걸려 있어도 별 일 없으리라고 생각하긴 하지만, 이 집은 내 집이 아니므로 저녁 약속을 취소했다.

나는 조부모님을 사랑하지 않는다. 생존을 위해 발버둥쳐야 했던 세대 전반에게 갖고 있는 막연한 안타까움과 안스러움을 그들을 보면서도 느낄 때는 있다. 그보다 조금 더 애틋한 마음이 들 때도 가끔, 아주 가끔 있다. 아버지의 딸로서, 아버지를 낳고 키운 사람들과의 관계에 대한 책임감은 분명히 갖고 있다.

그러나 개인으로서는 좋아하지도 사랑하지도 않는다. 싫어하지도 미워하지도 않는다. 그리고 이것은, 고개를 왼쪽으로 돌리면 보이는 뻐끔한 아파트 창들만큼이나 흔한 일이다.

2006년 7월 21일 금요일

2006년 7월 21일 금요일

중국에 가 있던 엠피매니아(mpmania) 시절의 동생 진영군이 귀국하여 거의 오 년여 만에 만났다. 그간 MSN으로 이야기를 나눈 터라 대하기는 어색하지 않았으나, 나보다 키 작던 아이가 올려다보아야 하는 남자 어른이 되어 있는 모습을 보니 기분이 묘했다. 말 하는 것도, 예전의 모습 그대로인 듯 어린 데가 있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나보다 더 자란 것 같은 데도 있어 반갑기도 하고 신기하기도 하고, 뭐랄까, 애가 남자가 되는 중간 과정을 보는 것 같았다. 참으로 열심히 사는 모습이 기특하여 쓰다듬 쓰다듬 해 주고 싶었는데 얼굴이 그렇게 위에 있어서야.....(웃음)

(본인 표현을 빌리자면) 니하오도 할 줄 모르는 상태에서 중국 유학을 갔던 진영군은 출국한지 일 년 반도 안 되어 북경대와 인민대에 합격해 돌아왔다. 특히 대입 유학은 석박사 과정과 또 달라서 자력으로 성공하기가 몹시 어렵던데, 처음에는 꼴찌나 다름없는 꼴찌에서 7등('꼴찌나 다름없는' 이유는 꼴찌부터 6등 까지는 중도탈락자이기 때문이다.)을 했으나 2학기에는 3등으로 공부를 마쳤다니 -1등은 대만 국비유학생이고 2등은 화교- 어지간한 각오와 노력으로는 엄두도 못 낼 일이다. 마지막 육 개월 동안에는 틀어박혀 하루에 열여섯 시간씩 공부했단다. 지금 귀국한 사이에도 중국어 학원과 영어 학원을 다니고, 대입으로 피폐해졌던 몸을 다스리기 위해 운동까지 하고 있다.

여러모로 이제 시작-이라는 느낌이 들어 이야기하는 내내 내가 다 가슴 설렜다. 나도 이 정도면 되겠지, 하고 안이하게 만족하지 말고 언제나 더 노력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2006년 7월 19일 수요일

2006년 7월 19일 수요일

16일 일요일에는 승민오빠와 창작 뮤지컬 [네버엔딩 스토리]를 보았다.

18일 화요일에는 궁님과 크라제 버거에서 점심을 먹고, 학교에 가서 복학신청을 한 다음, 조교실에 가서 동기 M양과 J오빠와 놀았다. 조교실에 자폐 관련서가 여러 권 있어서 - '도서출판 자폐연구'라는 곳이 있는 줄 처음 알았다. - 훑어보았고, 마침 자폐인 주간보호시설에서 일했다는 J오빠가 추천해 준 네 권 짜리 만화책을 빌려왔다.

19일 수요일에는 학원 수업 후 교보문고에 가서 신간을 둘러보고 단어장을 샀다. 저녁에는 피자를 먹었다.

글 쓰기가 귀찮다.

2006년 7월 15일 토요일

2006년 7월 15일 토요일

친구 전션과 일민미술관 1층에 있는 카페 이마(Cafe Ima)에서 만났다. 북적일까봐 일부러 열한 시 삼십 분이라는 어정쩡한 시간에 약속을 잡았는데, 비가 내려서인지 사람들이 많지 않았다. 샌드위치를 곁들여 커피를 마시며 수다를 떨었다.

전션은 이번에 맡았던 일을 끝낸지 얼마 되지 않아서인지 아직 피곤해 보였다. 이번에는 날씨 때문에 힘들었던 데다 다른 여러 일까지 꼬여서, 고생을 엄청 한 모양이었다. 비가 많이 내릴 때 강원도에 출장을 갔는데, 버스 앞 오 미터도 보이지 않을 만큼 시계가 나빠 산을 오르며 무척 무서웠단다. 별 탈 없이 돌아와서 천만 다행이다.

카페 이마가 너무 시끄러워서 서로 고함을 질러야 대화가 될 지경이라, 아무래도 힘들어서 안 되겠다 싶어 광화문 오봉뺑으로 자리를 옮겼다. 가을에 같이 홍콩에 놀러 가기로 했다. 고등학교 3학년 때, 대학교 4학년이 되면 같이 중국에 가자고 약속했었는데 (그 때는 대학 4학년이 굉장히 먼 미래 같았지.) 아직 같이 중국은 커녕 대관령도 못 갔다. 이제 홍콩 얘기가 나왔으니, 설마 십 년 안에는 같이 갈 수 있겠지.;

오후에 피라미드 번개가 있었기 때문에 그 쪽에 가려고 전화를 했는데, 벌써 파할 때가 다 되었다고 해서 아쉽지만 단념하고 전션과 계속 놀다가, 교보문고에 가서 책 구경을 했다.

교보문고 외서코너 앞 할인 코너에서 차이나 미에빌(China Mieville)의 장편소설 [Perdido Radio Station]을 3천원에 팔고 있다. 지난 주에 갔을 때도 있었던 터라 그새 누군가 사 갔으리라 생각했는데 아직 그대로 있더라. 브루스 코빌(Bruce Coville)의 청소년 도서 하드커버들도 7천원에 몇 권 남아 있다. 이런 저런 신간 서적들을 구경하고 저녁에 집에 들어왔다.

2006년 7월 12일 수요일

2006년 7월 12일 수요일

태국 여행을 다녀 오신 동진님과 여의도 까사 에서 점심 식사를 했다. 코끼리 초콜릿과 예쁜 기념품을 선물로 받았다.비가 많이 와서인지, 점심 시간인데도 실내에 사람이 많지 않아 좋았다.

식후에는 V사에 갔는데, 의사소통상에 약간의 문제가 있어 사실상 헛걸음 한 셈이었다. 설상가상으로 시위로 인해 종로 일대 교통이 통제되어, 종로 2가에 있는 학원까지 구두를 신고 30분을 걸었다. 분한 마음에 '카페 뎀셀브즈'에서 커다란 슈를 사 먹었는데, 새 슈보다 예전의 베이비 슈가 더 내 취향이더라.

폭우 때문에 일산에 사는 학생을 비롯, 결석자가 많았다. 나와 다른 한 명만 제 시간에 왔고, 타고 있던 버스가 사고가 나서 종로 6가에서 40분을 걸었다며 한참 후에 한 명이 더 왔다. 겨우 세 명이서 문법 진도를 나가 버리면 결석한 학생들의 공부에 지장이 갈 듯 하여, 여러 가지 예문 비디오를 보고 단어 공부를 했다.

귀가해서는 코끼리 초콜릿과 롯데리아 불고기 버거 세트를 먹은 후 어제 읽은 책을 번역하고, sabbath님이 빌려 주신 장 피에르 멜빌(Jean-Pierre Melville)의 [사무라이(Le Samouraï)](1967, 프랑스, 105min)를 보기 시작했다. 새벽 한 시가 넘었던 터라 보는 데 까지만 보고 나머지는 내일 볼 요량으로 켰는데, 내가 좋아하는, 트렌치 코트를 입은 남자들이 무더기로 나와서 도입부가 너무 강렬해서 다른 창 다 닫고 정좌하고 앉아 정신없이 봤다. 마지막 20분 정도 남았을 때 저녁에 드신 커피 때문에 잠이 안 온다며 어머니께서 거실로 나오셔서,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다 보니 새벽 네 시가 넘어서야 잠들었다. 그래서 나머지 부분은 목요일에 봤다.

[사무라이]를 보고, 아니 정확히 말하면 [사무라이]의 약 60분 지점에서부터, 나는 알랭 들롱이 엄청난 미인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알랭 들롱이 나오는 영화를 EBS에서 처음 보았을 때는 특별히 잘 생겨 보이는 사람이 없어서 '저 중에 누가 그 유명한 알랭 들롱이지?'라고 한참 생각했었다. [암흑가의 세 사람(Le Cercle Rouge)]에서의 알랭 들롱은 분명 미남이었으나 내게는 이브 몽땅이 훨씬 매력적이었다. 그런데 [사무라이]에서의 알랭 들롱은 '영화적으로' 아름답다. 알랭 들롱이라는 배우가 미인이라는 인식과 제프 코스텔로라는 등장 인물이 매력적이라는 느낌이 동시에, 갑작스럽게 찾아와서, 나는 영화를 보다 말고 정말로 충격을 받아 버렸다. 배우가 가진 카리스마와 극중 인물 제프의 창백하고 비현실적인 존재감이 결합하여 눈을 뗄 수 없게 하는 아우라를 만들어 냈다. (심지어 트렌치 코트를 벗고 있어도 변함없이 멋있었다.) 내가 압도당하고 있다는 것이 너무 또렷하게 느껴져 무서울 지경이었다.

sabbath님이 표지에 [무사도]라고 쓰인 직접 만드신 안내 책자도 함께 보내 주셨다. 영화를 본 후에 읽었는데, 덕분에 영화를 보면서 막연히 느꼈던 부분 -오프닝에서의 지연감이라든지- 에 대해 더 잘 이해할 수 있었고, 미처 눈치채지 못했던 연출상의 특징에 대해서도 여러 가지 배우게 된 점이 많아 큰 도움이 되었다. 그 외에 멜빌에 대해 재삼 감탄하고 감동한 점이 많으나, 다음으로 미루련다.

내가 본 영화래야 정말 몇 편 안 되지만, 그 가운데서도 '영화' 자체에 대한 존경심을 불러일으키게 한 영화와 감독을 감히 몇 꼽을 수는 있는데 - [베를린 천사의 시]의 빔 밴더스, [비트겐슈타인]의 데릭 저먼 등 - 장 피에르 멜빌도 그 중 한 명이다. 지금까지는 [암흑가의 세 사람]의 멜빌이라고 했으나, [사무라이]를 보고 나니 수식어를 바꿔야 할 것 같은 생각이 든다. sabbath님이 이런 고민에 빠질 나를 예상하기라도 한 듯 '다시 보고 싶으실 것 같아서'라며 [암흑가의 세 사람] DVD도 보내 주셨다.

그 외 생각한 것들로는-
1) 프랑스어를 배워야겠다. 대사를 알아 듣는 수준은 바라지 않지만, 사람 이름이나 거리 이름 쯤은 읽을 줄 알아야 할 것 같다.
2) 알랭 들롱도 무섭지만, 너무 완벽하게 내 취향인 영화를 만든 멜빌도 좀 무섭다.
3) 공부를 많이 해야겠다. 이번에 sabbath님이 보내 주신 DVD 중에 쥘 다신(Jules Dassin)의 [리피피(Rififi)]도 있는데, 나는 지금까지 다신을 헐리우드 느와르 감독으로만 알고 있었다. 중절모를 쓰고 트렌치코트를 입고 손에 총을 든 남자가 표지에 있는 느와르 관련서만 자꾸 보고, 좀 더 체계적으로 영화사나 영화연출, 영화비평을 공부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더 많이 알아서 더 많이 보고 싶다.
4) 영화관과 DVD, 비디오, 티브이의 차이란 굉장히 크다. 서울아트시네마를 사랑하자.
5) 나도 크라이테리온 시리즈 사고 싶다....

2006년 7월 11일 화요일

2006년 7월 11일 화요일 : EIDF - 돈과 생명의 거래

월요일 낮에 녹화해 두었던 존 알퍼트(John Alpert)감독의 다큐멘터리, [의료보장제도 - 돈과 생명의 거래(Healthcare: Your Money or Your Life)](1977, 미국, 60min) 를 보았다. 70년대 미국 의료보장제도의 문제점을 뉴욕 시립 병원의 현실을 통해 고발한 영상물이었다.

즉시 치료가 필요한 암 환자들이 대책없이 몇 달이나 기다리고, 의료진이 고장 안 난 케이블 찾는 사이에 응급 환자가 그 자리에서 사망한다. 인력 감축으로 과중한 업무에 시달리는 간호사들은 린넨 바구니가 없어 침대 시트로 직접 바구니를 만들고, 직접 빗자루를 들고 복도 청소까지 한다.

시립 병원의 여건에 대해 "이것은 나치의 학살과 다를 바가 없다. 방법은 다르지만 결과는 똑같다."고 분노하는 암 전문의는, 시립 병원과 길 건너 사설 병원 두 군데에서 진료를 하고 있다. 약사들은 하루 종일 아픈 몸으로 기다린 환자들에게 짜증을 내지만, 한편으로는 부족한 예산 때문에 약이 없어, 처방전에 쓰인 것과 비슷한 효과를 내는 약을 찾아내느라 종일 씨름한다. 비싼 사설 병원에서 일하는 세계적인 전문의는 그 나름대로 생명 연장과 신기술 개발을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 의료보조 승인 심사 업무를 맡고 있는 사회복지사는 제각기 사연이 있는 신청자들에게 법제로 정해진 규정에 따라 기계적으로 '승인 거부'를 할 수 밖에 없다.

제도 자체에 과부하가 걸려 있기 때문에, 어느 누구도 딱히 잘못하지 않는데도 점점 더 나빠질 수 밖에 없는 상황을 정확하게 짚어낸 점이 인상깊었다. 사회복지제도를 포함해서, 아니 사회복지제도의 경우 특히, 모든 것은 자원의 문제로 귀결된다. 미국 제도의 특징은 사회복지를 '서비스(service)'로, 대상자를 '고객(customer)'으로 보아 선택권과 자율권을 부여한다는 점이다. 이것은 시민이 복지를 수혜가 아니라 권리(right)로 인식하게 하고, 다른 시장의 상품과 마찬가지로 복지 서비스의 양과 질이 수요의 요구에 따라 향상되게 하는 원동력이 된다. 그러나 시작점에서부터 시민간의 경제적 편차가 큰 사회에서, 이런 제도는 아예 틀 밖에 있는 사람들을 배제하는 결과를 낳는다. 특히 미국의 경우 정치 제도 면에서도 '틀 밖에 있는 사람' 즉 정치적인 압력을 표로서 행사하지 못하는 비선거권자가 존재하다 보니 상황이 더 나빠진다.

미국식 제도는 대안이 될 수 없다는 생각을 다시금 했다. 우리나라의 4대 보장 제도가 (아슬아슬하게 유지되고 있기는 하나) 참으로 대단한 성과라는 것도 새삼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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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와 동네 일식집 '야미야'에서 점심으로 돈까스를 먹었다. 오후에는 [Lois and Clark]을 두 편 보고 아주 괜찮은 책을 한 권 읽었다.

2006년 7월 9일 일요일

2006년 7월 9일 일요일 : 캐리비안의 해적 2 - 망자의 함

제대를 이틀 앞둔 인수오빠와 압구정에서 만났다. 압구정 역 앞으로 이전한 인도음식점 강가(Ganga)에서 점심 식사를 하고, 커퍼빈에서 차 한 잔 마신 다음 압구정 CGV에 가서 [캐리비안의 해적 2 : 망자의 함 (Pirates of the Carribbean 2)]을 보았다.

유월 말부터 줄곧 커리가 먹고 싶었던데다 달리 아침을 챙겨 먹지 않고 나갔던 터라, 점심을 순식간에 다 먹었다. 강가가 역 가까이로 옮겨 와서 반갑다. 언주로나 도산공원 쪽은 역에서 걸어 가자니 멀고, 차를 타자니 가까운 거리라 가기 부담스러웠는데. 허나 오랜만에 압구정 역까지 갔는데 커피집이 휴일인 일요일이라 원두를 사 오지 못한 점은 유감이었다. 집에 커피가 없어서 괴롭다.

영화는 정말 노골적인 '상편' 이었다. 중간 중간 재미있는 장면이 많아서 - 뼈로 만든 원형 감옥에 매달린 장면이나, 잭 스패로우 선장님이 장대를 들고 탈출하는 장면 같은 곳에선 무릎을 치며 봤다. - 즐거웠고 한스 짐머의 음악도 좋았으나, 이야기로서의 긴장감은 좀 떨어져서 '길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래도 하편 나오면 꼭 보러 가야지.

날씨가 오락가락 하더니, 결국 집에 다 와서 비가 내렸다. 우산을 안 가져가는 바람에(오늘은 정말 나서기 직전에 깜박 해서 두고 갔다.) 또 아버지께서 출동하셨다. 피로가 많이 쌓였던 탓인지, 아홉 시도 되기 전에 스르르 잠들었다.

2006년 7월 8일 토요일

2006년 7월 8일 토요일

학교 세미나실에서 학부 실습 세미나를 했다. 내게는 실습 시작 전 마지막 세미나였고, 이미 실습 일정을 시작한 학생들도 다섯 명 정도 있었다. 실습을 시작한 학우들의 실습 경험담을 들었는데, 대단히 흥미로웠다. 1학기 실습생들의 실습 보고서도 받아 왔다.

세미나 후에는 동기 E양과 민들레영토 서울대점에서 점심을 먹었다. 아직 학교에 남아 있는 동기들이 더 많지만, 다들 자기 일로 바쁘고 휴학/복학 시기가 제각기 다르다 보니 실제로 학교에 다닐 때에는 마주치기가 쉽지 않다. 특히 E양과는 지난 학기에 겹쳐 들은 수업도 없었던 터라, 이번 여름 실습을 계기로 자주 만나 이야기할 기회가 생겨서 기쁘다. E양은 철저한 자본주의 시장경제 관점에서 사회복지 서비스에 접근하고 있는데, 그 논리가 정치하고 명확해서 대화하면 재미가 있다. 나와 문제 의식은 비슷하면서 해법이 다르다는 점도 흥미롭고......공부를 계속 해도 좋은 학자가 될 텐데, 하고 생각하고 있다. (본인의 계획은 다르단다.)

민토에서 나오며 E양이 반 농으로 우리 동기들끼리 모여서 사회복지 단체를 만들면 좋을 것 같다고 했다. 역할 분담 해서, 일부는 돈 벌어오고 일부는 연구 하고 일부는 프로그램 짜고 일부는 현장에서 일하면 못 하란 법도 없지-하고 웃었다. 다르면서도 같은 공부를 하는 사람들이 가까이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마음을 새로이 하게 될 때가 있다.

집에 와서는 [Lois & Clark]를 실컷 봤다. 어릴 적 TV에서 방영할 때도 열심히 봤었지만, 그 때는 지역방송이나 토요일 4교시 때문에 놓칠 때가 많았다. 다시 봐도 정말 재미있는 사내 연애 드라마다. 디비디를 사기로 마음먹었다.

2006년 7월 7일 금요일

2006년 7월 7일 금요일

아스님과 제니스 카페테리아에서 점심을 먹었다. 오랜만에 간 제니스는 굉장히 혼잡했다. 점심 시간을 살짝 피할 요량으로 일부러 한 시에 약속을 잡았는데, 삼십 분 정도 기다려서야 자리를 잡을 수 있었고, 오후 두 시가 지나서도 대기자가 계속 들어왔다. 마르게리따 샌드위치를, (계획에 없던) 후식으로 카푸치노와 티라미수를 먹었다.









실내가 한산해질 때까지 이야기를 하다 하겐다즈로 이동, 오늘의 메인(?)인 아이스크림을 먹었다. 초콜릿, 라즈베리 셔벳, 레몬 셔벳. 재미있는 이야기를 잔뜩 들으며 신나게 놀고, [십이국기] 6~8권과 [저녁뜸의 거리]를 빌렸다.



저녁 때가 다 되어서 헤어져 귀가, 집에 와서 [십이국기] 세 권을 보고 나니 열 시가 넘었다. 어제 읽다 만 [Talk]를 보며 토마토를 먹다생각해 보니, 아뿔싸, 실습 관련 문서를 오늘까지 올려야 했잖아! 마감 닥쳐서 준비하면 시간에 쫓겨 소홀해질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6월 초순에 미리 파일을 만들어 뒀었는데, 어디 저장했는지 기억이 안 나서 그냥 새로 썼다. -_-; 찾는 것보다 같은 글을 두 번 쓰는 쪽이 빠르겠더라.

요즈음은 너무 바빠서 할 일을 자꾸 잊어버린다. 할 일 메모를 쓰다 말고 뭘 쓰려고 했는지 잊기 일쑤고, 그나마 메모한 쪽지를 어디 뒀는지도 기억이 안 난다. 생각해 보니 아까 토마토를 먹으면서 [Talk]를 읽지 말고, 오늘 오전에 검토하던 책을 마저 봤어야 했다. [십이국기] 7권을 읽을 때 까지는 '[십이국기] 다 읽고 검토할 책을 보고, 토요일에 [현대소설작법]을, 일요일 외출 하는 길에 [Talk]를 읽고......(후략)' 하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8권 보다가 까먹었다. 그거 검토서도 마감은 없지만 이번 주말까지는 보내야 할 텐데. 그리고 주말부터 써야 하는 글이 하나 더 있지. 그리고 또 뭐가 있더라. 맞아, 내일은 독일어 단어장 만들고 노트 정리하기로 했지. 토요일에 단어장을 만들어야 일요일에 지하철에서 외울 수 있으니까 절대 잊지 말자. 학교 근처까지 가니까 [SNULT Deutsch]와 [현대문학 7월호] 사와야겠다고 생각했던 것도 그새 잊어버렸다. [수퍼맨 리턴즈]도 상영 끝나기 전에 봐야 하고, 일요일에 EIDF예약녹화 설정, 그러고 보니 내일부터 더글러스 서크(Douglas Sirk) 회고전이네. 한 편 정도는 볼 수 있으려나. 18일까지 실습일정 확인, 20일까지 거울 기획원고. 또 뭔가 잊은 게 있는 듯 하지만 일단 천천히 생각하자.

2006년 7월 6일 목요일

2006년 7월 6일 목요일 : 엑스맨 3

B사에 가서 점심으로 칼국수를 먹고 계약서를 썼다. 원래는 곧장 신촌에 가서 [엑스맨 3(X-men 3)]을 보려고 했으나 깜박 잊고 카드를 안 가져간 데다 상영 시간과 일정이 약간 어긋나서 일단 집으로 돌아왔다. 오후 다섯 시 쯤 다시 외출, 아우님과 아트레온에서 만나 [엑스맨 3]을 보았다.

이하 스포일러


영화를 보고 나오니 비가 많이 오고 있었다. 설마 하는 마음에 우산을 가지고 나가지 않았던 터라, 비가 그치길 기다리며 아우님과 KFC에 가서 저녁을 먹었다. 다 먹고 나서도 계속 비가 오고 있어서 그냥 아우님의 양산을 함께 쓰고 신촌 역까지 가서 지하철을 탔다. 아버지가 커다란 우산을 들고 집 앞 역에 마중 나와 주셨는데, 그새 비가 잦아들었더라.

2006년 7월 4일 화요일

2006년 7월 4일 화요일

오전에는 최근 관심을 가지고 있는 주제와 관련된 도서 목록을 찾아 인쇄해 놓은 다음 청소를 했다. 오후에 낮잠을 두어 시간 잔 후 일어나 오전에 찾아 둔 목록을 살펴보고 검토할 만한 책을 몇 권 고른 다음, Star Trek 에피소드를 세 편 보았다.

내가 VOY 초기 에피소드 가운데 가장 좋아하는 이야기 중 하나인 [Non Sequitur(2x05)]와, TNG 시즌 7의 두 편 짜리 에피소드 [Gambit(7x04,05)]. 지금은 [Gambit]의 다음 편인 [Phantams(7x06)]를 보며(들으며) 이 글을 쓰고 있다. [Non Sequiter]는 Harry Kim이, 자신이 보이저 대원 선발에 탈락하여 우주선 설계자가 되어 있는 다른 현실(reality)로 가서 헤어진 애인을 다시 만나고 이런 저런 일을 겪은 후, 껄렁껄렁하게 살고 있던 Tom Paris의 도움을 받아 본래 현실로 돌아가는 이야기이다. 이 에피소드를 좋아하는 이유는
(1) Harry의 애인이 나온다. (2) 껄렁껄렁한 Tom이 나온다. (3) 지구가 나온다. (4) Harry가 멋있다. (번호는 무순)
이다.

[Gambit]은 실종된 피카드(Picard)함장님의 흔적을 찾아 온 엔터프라이즈 대원들이 피카드 함장이 죽었다는 소식을 듣는 데서 시작한다. 분노한 부함장은 살인자들을 찾아나섰다가 덩달아 납치(...)되고 마는데, 그 밀수선에서 밀수꾼인 척 하고 있는 함장님을 만난다. 데이터(Data)의 팬들을 위한 에피소드라고 할 만치 함장 대리로 일하게 된 데이터의 활약이 대단하고 - 카메라도 데이터를 아래에서 위로 장엄하게 비춰 준다 - 시리즈 후반이기에 가능한 대원들 사이의 팀워크 묘사가 좋다.

하지만 이 다음 편인 [Phantams]는 얄팍한 프로이트 재해석이랄까나, 데이터의 꿈을 풀어나가는 에피소드로, 라이커(Riker) 부함장의 머리에 빨대를 꽂고 피를 빠는 의사라든지, 납작한 케이크가 되어 버린 트로이(Troi)라든지 하는 괴상한 볼거리는 재미있지만 내용 자체는 조금 지루하다. 데이터가 홀로덱에 들어가 프로이트 앞에서 긴 의자에 누워 이야기를 하는 부분을 넣은 걸 보면 뭔가 비틀어 보려고 한 것 같긴 한데, 아무래도 80년대의 틀을 벗어나지 못했다는 느낌이다. (그리고 데이터는 대체 왜 고양이를 알러지가 있는 울프에게 맡기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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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주 월요일부터 EBS 국제 다큐멘터리 페스티벌(http://www.eidf.org )방송이 시작된다. 이번에는 시험이 끝난 직후에 방송을 시작하니 가능한 많이 챙겨 볼 생각이다. 관심작은

마저 읽기


아, 방금 [Phantams]가 끝났다. 이왕 시즌 7꺼낸 김에 [Interface(7x03)]도 봐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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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bbath님이 홈페이지에서 책이나 영화 제목에 []를 쓰시는데, 특수 문자를 불러낼 필요가 없으면서 읽기에도 편하더라. 나는 생략 가능한 구절에 []를 이미 쓰고 있었지만, 일단 새벗님을 따라 한 번 바꿔 써 보기로 했다.

2006년 7월 3일 월요일

2006년 7월 3일 월요일

2일 일요일에는 조부모님과 조부모님 댁 근처에서 장어구이를 먹었다. 조부모님 댁에서 부모님을 비롯한 여러 친척 분들의 결혼 사진은 물론, 조부모님 결혼 즈음 사진이나 아버지 돌사진 같은 옛 사진들을 꺼내 보고, 몇 장 챙겨 왔다.

저녁에 책 상자를 정리하고 잠들었다가 새벽 네 시 쯤 깼다. 배가 고파서 정신이 들었나, 하고 생각하며 여전히 반쯤 잠든 채 누워 있는데, 갑자기 밖에서 새된 비명이 들렸다. 처음에는 바람 소리라고 생각했으나 몇 번 되풀이되는 걸 들어 보니 아무래도 숨이 막힐 듯한 여자 목소리였다. 신고를 하고 싶었지만 창 밖을 내다 보아도 어디 쯤에서 들려 오는 건지 방향도 원근도 도저히 알 수가 없었고, 어떻게든 가늠해 보려 머리를 내밀고 두리번거리는 사이에 소리가 끊겨 버렸다. 그냥 아파트 단지 근처 주택가에서의 부부싸움이었거나 술 취한 사람들이 지나가면서 낸 소리였다고 생각하고 싶었지만......그 뒤로 아침까지 자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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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일 월요일에는 W사의 BK님과 만나 점심 식사를 했다. 새로 맡을 책과 관련 기획에 대해 이런 저런 이야기를 했다. 겨우 한두 시간 있었으면서 입구에서 받은 방문증을 잃어버리는 바람에 BK님께 불편을 끼쳤다. 하반기 첫 월요일부터 사고를 치다니, 하고 반성했다. 좋은 책이 많이 들어간 기획이라 잘 되면 좋겠다.

오후에는 독일어 문법 학원 첫 수업을 들었다. 손에서 놓은 지 꽤 된 터라 문법 전반을 한번 훑어 보는 게 좋을 것 같아 등록했다. 다행히 폐강이 되지 않았고 (제2외국어 수업은 항상 이게 걱정이다.) 선생님의 수업 방식도 마음에 들어 즐거웠다. 수업 교재로 쓸 책을 예전에 샀던 것 같은데 아무리 찾아도 없다. 열지 않은 책 상자 어딘가에 들어 있을지도 모르겠다 싶긴 하지만 확실하지 않은 상황에서 상자를 다 꺼내 뒤질 수도 없고.......일단 내일까지 찾아 보고 없으면 새로 살 수 밖에. 굳이 두 권이나 둘 책은 아닌데.

수업 후에는 광화문에서고양이님과 접선, V사 분들과 함께 저녁을 먹었다. 서울시 교육청 앞에 있는 오래 된 음식점이었는데, 꽁치구이가 무척 맛있었다. 꽁치, 갈치, 굴비 정식이 있고 요리로 낙지볶음이나 파전, 홍어 등이 있다 한다.

고양이님과 함께 지하철을 타고 집에 왔다. 더운 하루였다.

2006년 6월 28일 수요일

2006년 6월 28일 수요일 : 원격조종

1. 2006년 6월 26일

나는 '염장질' 이라는 말을 잘 이해하지 못한다. 부러워하지 않는 게 아니라, 뭐가 부러운 건지 아예 파악을 못 하는, 말하자면 불완전정보보다는 불비정보에 가까운 상태다. 나이가 들자 다른 사람의 말에 맞장구를 쳐 줘야 할 때도 생기는데 (ex) 와ㅡ 멋진 애인 둬서 좋겠네.) 타이밍을 못 맞춰서 좀 피곤하다. 남이야 사적으로 뭘 하든 별로 신경을 쓰지 않는 성격이긴 하지만, 특히 남의 애인 얘기나 연애 자랑이나 스킨쉽에 대해서는 좀 지나치게 눈치가 없어 스스로도 이상하게 생각하곤 했는데, 오늘 점심 때 군만두를 먹다가 내가 이런 무감각인간이 된 이유를 깨닫고야 말았다.

통찰의 순간 보기



2. 2006년 6월 27일

어머니(굽기 담당)와 나(먹기 담당) 둘이서 저녁으로 삼겹살을 조금 구워 먹고 있었다. 어머니가 삼겹살에는 포도주가 어울리는데 꺼내기가 귀찮다고 하셨다.

아버지: 어디 있는데? 내가 갖다 줄게.
어머니: (의자에 앉은 채) 저기 안쪽 깊이 있어서, 커다란 솥 들어내야 해서 번거로워요.
아버지: 여기?
(우당탕쿵탕 끙차끙차 부스럭부스럭 끝에 와인 등장)
아, 마개 따는 게 있어야 하네. 집에 있나?
어머니: (아까 자세 그대로) 있는데, 어디 뒀더라.
......귀찮아라. 안 먹고 말래.

제이: (귀찮아 하는 사람이 미묘하게 틀린 것 같은데...)

아버지: (딸각딸각 챙강챙강 끝에 오프너를 꺼내서 마개를 따며) 끙, 끙.
어머니: (여전히 앉은 채) 하이고, 힘들어라~

제이: (아니, 그러니까 대체 왜 어머니가?!)

2006년 6월 15일 목요일

2006년 6월 15일 목요일 : 인생 경험치 문답

as님 댁에서 보고 해 봄.

보기

2006년 6월 14일 수요일 : 선택과 합리화

사람은 보고 싶은 것만 보고, 기억하고 싶은 것만 기억한다.

몇 년 전, 일리노이대의 다니엘 시몬스 박사는 간단한 실험을 통해 이 현상을 명백히 보인 바 있다. 실험 내용은 매우 간단했다. 피실험자들에게 농구 경기 비디오 테이프를 보여 주고, 패스 수를 세라고 했다. 그 경기 비디오 중간 즈음에 고릴라 분장을 한 사람이 천천히 등장해서 9초 동안 경기 중인 선수들 사이를 누비고 카메라를 보고 가슴을 쿵쿵 두드렸다. 비디오가 끝난 후, 중간에 나왔던 생뚱맞은 고릴라를 봤느냐는 질문에 피실험자의 절반 정도가 '그런 것 본 적 없다'고 답했고, 일부는 비디오를 처음부터 다시 보여주자 아까 내가 본 테이프와 다른 것 아니냐며 끝까지 믿지 않았다.

이 현상을 '변화맹(Change Blindness)'라고 한다. 시몬스 박사는 이와 유사한 실험을 하나 더 했었다. 피실험자에게 낯선 사람에게 길을 물어보게 시킨 후, 길을 설명하는 사람과 피실험자 사이에 문짝을 든 일꾼이 지나가게 하고, 그 사이에 설명자를 전혀 다르게 생긴 사람으로 바꿨다. 생김새도 다르고 옷차림도 달랐다. 그러나 자신에게 길을 가르쳐 주는 사람이 그새 바뀌었다는 사실을 눈치 챈 사람도 절반 정도에 불과했다.

작년 가을, Science 지에 변화맹 현상에서 출발한 흥미로운 실험 결과가 실렸다. 스웨덴에서 인지과학을 연구하는 요한슨과 홀 박사의 공동 연구였다. 피실험자들에게 인물 사진을 두 장씩 보여 주며 둘 중 마음에 드는 사진을 고르라고 한 후, 골랐던 사진을 다시 보여 주며 그 사진을 왜 골랐는지 물었다. 그러나 사실 열 장 중 세 장 정도는 피실험자가 고르지 않은 사진이었다. (사진을 덮었다가 다시 보이는 사이에 손장난으로 자리를 바꾸었다.) 피실험자 중 80%이상이 그 사진이 자기가 선택하지 않았던 사진임을 눈치채지 못하며 그 사진의 어디가 마음에 드는지 설명했다. 골랐던 사진과 아닌 사진의 인물이 전혀 다르게 생긴 경우에도 확률은 거의 달라지지 않았다. 사진을 보여 준 다음 아까 고른 사진이 이 사람 맞는지 충분히 생각해 보라고 해도, 2/3 정도가 자기 마음에 드는 얼굴은 확실히 이 쪽이라고 했다. 연구자들은 이 현상을 '선택맹(Choice Blindness)'이라고 이름 붙였다.

변화맹 현상은 우리가 일상 생활에서, 그리고 기억에서 원하는 정보를 어떻게 취사 선택하는지를 보여주는 단초가 된다는 점에서 무척 흥미롭다. 사고 장면을 동시에 목격한 사람들의 진술이 엇갈리는 경우, 같은 경험에 대해 전혀 다르게 기억하는 경우, 한 사람에게는 더없이 중요했던 사건이 다른 사람에게는 기억도 나지 않는 사소한 일이 되는 경우 등을 인지의 본래적 특성으로 해석할 수 있다. 신경과학, 화학, 뇌의학, 현상학 등 유관 분야의 연구와 통합된다면 우리 자신에 대해 여러가지를 설명할 수 있을 것이다. 극단적으로 말해, 왜 나와 너의 생각이 다른지를 아세틸콜린(....너무 거슬러갔나) 에서부터 설명해 낼 수 있을지도 모른다.

요한슨과 홀 박사의 연구 논문은 사이언스 지에 실려 있고(작년 10월호인가?), 구글링을 하면 실험에 사용된 사진과 자세한 결과 수치가 담긴 PDF 파일 버전도 나온다.

후속 연구를 계속 기다렸는데, 반 년이 지나도록 이쪽 팀에서나 다른 팀에서나 별달리 발표되는 것이 없는 듯 해 잊기 전에 써 둔다. (사실 내 요즈음 관심사는 선택맹이 아니라 쿠퍼카이퍼 벨트(Kuiper Belt)다.)

2006년 5월 30일 화요일

2006년 5월 30일 화요일


(아빠마마께서 엄마마마께 선물하신 장미화분)

부모님의 스물네 번째 결혼기념일이었다. 자정 즈음, 온가족에게 고른 지지를 받고 있는 파리바게트 치즈케이크에 초를 여섯 개 꽂고 손 잡고 아자아자 사랑해요 하고 케이크 쓱싹 자르고 와와 박수치고 냠냠 먹었다.

본래 5월은 행사가 많은 달이긴 하지만, 올 봄에는 다른 일도 겹쳐 케이크를 꽤 자주 먹었다. 지난 17일에 블루베리 쉬폰 케이크를 먹으면서 -

제이: (포크를 빨며) 30일 에는 치즈케이크 먹어요! 치즈케익~치즈케익~나는 치즈케익이 좋아좋아~
어머니: 결혼기념일에 [또] 무슨 케이크니.
제이: (헉) 아니, 결혼기념일이야말로 케이크를 반드시 먹어야 하는 날이죠. 우리 가족이 탄생한 날이잖아요. 우주적으로 보자면 저기 저 (발가락으로 책장의 과학잡지 코너를 가리키며 웅변조로) 비이익 배앵과도 같은 대사건이란 말입니다!
어머니:......먹어야겠구나.

지금 이 시간쯤이면 소연이는 벌써 있었을지도 몰라, 하는 어머니 농담에 같이 웃었다.

2006년 5월 20일 토요일

2006년 5월 20일 토요일

지구정복비밀결사 모임날이었다. 오늘의 정복 국가는 그리스. (지정사가 실은 '지구음식정복 결사'라는 비밀이 유출되고 말았더라.) 홍대 앞에 있는 그리스 음식 전문점 '그릭조이(Greek Joy)'에서 모였다. 동진님, 상현님 다음으로 도착해 보니 단체석을 ㄷ자로 배치하고 있기에, 흔치 않은 기회다 싶어 재빨리 대장 자리를 차지하고 앉아 보았다. 한가운데에 한 번쯤 앉아 보고 싶었단 말이지.

대장 자리


저녁 시간에 맞춰 동진님, 상현님, 강명님, 까리용님(+위스키 1병), 상훈님, 경아님, 명비님, 나 여덟 명이, 약간 늦게 scifi님과 파란날개임이, 그리고 여덟 시 넘어 라슈펠님, 서늘님, 정훈님, 야니님이 오셨다.

그릭조이에 3층이 있는 줄도 모르고 있었는데, 오늘 듣자하니 얼마 전에 문을 열었단다. 2층이 캐주얼, 3층이 정식 분위기. 전채 세 가지와 메인, 디저트, 커피로 이어지는 코스만 있다.


빵. 계속 준다.

연어 샐러드. (연어를 가장한 토마토가 많다.)

단호박.


수블라키

메인:치킨스테이크

메인:양갈비

디저트: 그릴에 구운 바나나와 무화과

식사가 굉장히 늦게 나왔는데, 원래 그런지 오늘 유별났는지는 모르겠다. 다섯 시 반에 주문했는데 메인이 나온 시각은 여덟 시 이후. 그 사이에 빵을 잔뜩 먹었다. - 따뜻하고 말랑말랑해서 자꾸 손이 가더라. 빵 및 양갈비 등과 같이 먹을 올리브/가지/요거트 소스를 내어 오는데, 올리브 소스와 가지 소스가 무척 맛있었고, 메인도 기대 이상이었다. 요리에 곁들여 넣는 소스의 양이 조금 과한 감이 있고 후식으로 주는 커피가 헤이즐넛이라는 점이 아쉽지만, 그 외엔 가격대 성능비를 보아 만족할 만 하다. 서버들이 아르바이트라기보다는 직원 같은 안정감을 주어서 편했다.

근래에 소설작법과 창작을 처음부터 정식으로 배우기 위해 여러 모로 궁리하고 있었는데, 마침 [요즈음 직접 강의를 하시는] 경아님 옆 자리라 조언을 구할 수 있었다. 경아님의 조언은 경험자의 실용적인 노하우를 담고 있고 고민의 핵심을 정확하게 짚어 주기 때문에, 늘 굉장히 도움이 된다. 오늘도 '이것이 바로 연륜이구나!'하고 새삼스레 감탄했다.

정복/출판/번역/만화/영화/정치/술/음식 등에 대해 이런 저런 얘기를 했다. 사람들이 많이 모이니 화제도 제각각이었다. 아홉 시쯤 박근혜씨가 피습당했다는 연락이 받은 강명님이 먼저 나가셨고, 나머지 사람들도 아홉 시 반 쯤 일어나 장소를 옮겼다.(나는 귀가) 오랜만에 모여서 수다를 떠니 상쾌하고 신이 났다.

다음날(일요일) 새벽에는 독재국가인 프랑스가 배경인 꿈을 꾸었다. 아니, 엄밀히 말해 독재는 아니고, 혁명전쟁 중 공포정치 시대의 분위기에 우리나라 80년대의 문화와 기술이 결합된 프랑스였다. 비합리적인 법이 많고 사회는 불안했다. 잠에서 깬지 한 참 된 지금까지도 기억에 남는 비합리적인 법의 백미는 '거리에 오랑우탄을 세 시간 이상 풀어놓으면 안 된다'.

2006년 5월 19일 금요일

2006년 5월 19일 금요일 : 강남심포니오케스트라 제 28회 정기연주회

프로그램
모차트르/마술피리 서곡
모차르트/피아노협주곡 제20번 K.466
모차르트/교향곡 제39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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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휘/서현석 Piano/이영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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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란양과 강남 심포니 오케스트라의 정기연주회에 갔다. 분수대 옆에 있는 카페 모짜르트에서 녹차라떼와 샌드위치를 먹으며 잠시 이야기를 하다가 공연장에 들어갔다. 아란양이 맛있는 다크 초콜릿을 잔뜩 주었다! 고마워하며 열심히 먹고 있다.

몇 달 만에 생음악을 들어서 기뻤다. 출입 제한 연령이 분명한 어린이가 앞 자리에서 앉았다 일어났다를 반복해도, 피아니스트가 확 깨는 미스터치를 내도, 플루티스트가 쉰소리를 내도 좋았다. ㅠ_ㅠ 스스로 '게걸스럽게' 듣고 있는 줄을 알겠더라. 악기를 배운다면 다시 피아노를 하는 쪽이 익숙해서 편하지 않을까- 하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오늘 보니 피아노는 역시 직접 연주하기보다는 듣는 편이 낫겠고, 드럼! 2학기에는 드럼을!

공연을 다 보고는 남부터미널 역까지 걸어 갔다. 우면산에 아카시아 꽃이 많이 피어 산바람이 무척 상쾌했다. 아란양과 신촌역까지 지하철을 함께 탔는데, 뜻밖에 사람이 많지 않아 편하게 귀가했다.

2006년 5월 15일 월요일

2006년 5월 15일 월요일

왜 사회복지학과를 선택했느냐는 질문을 받으면 보통 그냥요, 라고 한다. 전공을 선택한 이유 중에는 지극히 개인적인 것도 있고, 현실적인 것도 있다. 그러나 왜 사회복지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느냐-라 한다면 그 질문에는 분명한 답이 있다. 중학교 3학년 시절 담임 선생님 때문이다. 나는 기억나지 않을 만큼 어렸을 때부터 과학자, 그 중에서도 사람의 손이 닿지 않는 곳에 있는 우주를 연구하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중학생 때 였던가, 뭘 하고 싶느냐는 질문에 '연구실에 틀어박혀서 사람들 안 만나고 공부만 하고 싶어요.'라고 답했던 기억이 선명하다.

지난달 25일 오후 6시쯤 경남 창원시 용호동 대한적십자사 경남지사 건물 4층 총무과 「북한동포와 밥 한그릇 나눠먹기운동」 접수처에 30대 초반의 부부가 함께 들어섰다.
이들은 1백만원권 수표 10장이 들어있는 하얀 편지봉투 하나를 꺼내놓고 곧바로 자리에서 일어섰다.
경위는 이랬다. 그날 오전 10시쯤 경남지사 총무과에 『북한동포를 돕기 위한 성금을 내고 싶다』며 한 남자가 전화를 걸어왔다. 『금액과 신분을 알려주면 감사서한이라도 보내겠다』고 말한 공인배(공인배·37)대리는 『1천만원을 송금하겠다』는 대답에 깜짝 놀랐다. 『신분을 알고 싶다』고 했으나 이 남자는 『마산에서 중학교 교사를 하고 있는데 신분을 밝히지 않은 채 성금만 보내겠다』는 말을 되풀이 했다. 『적은 돈이 아니어서 은행계좌로 받는게 예의가 아닌 것 같다』는 공대리의 말에 이 남자는 『그러면 오후 5시 학교수업이 끝나면 찾아가겠다』며 전화를 끊었다.

이 익명의 교사가 십 년 전 내 담임선생님이었다. 담당자는 마지막까지 익명을 요구한 선생님 몰래 기자를 불렀고, 실제 성금이 접수된지 한 달 쯤 지나서 선생님의 사진이 지역 신문에 나오고야 말았다. 당시 기자를 피해 여관에서 자기까지 하며 취재를 거부하던 선생님에게 기자가 "이런 기사를 보면 다른 사람들도 이런 일을 할 동기가 생긴다."고 설득했다는데, 선생님은 정말 이런 말에 순수한 선의로 설득될 만한 사람이었다. 지역 신문 기자는 약속을 어기고 선생님의 실명을 실었다. 선생님은 굉장히 당황하셨지만, 그 기자 덕분에 내 세상을 보는 관점은 상당히 바뀌었다.

강원도 출신인 선생님이 마산에서 교편을 잡기까지의 과정은 '극심한 가난과 불우한 환경 극복'이라는 테마로 5부작 인간극장을 거뜬히 만들 만 한 이야기이다. 선생님의 형편은 결코 넉넉치 못했고, 갓 태어난 아이까지 있었다. 천 만원이라는 돈이 있지도 않을 것 같은 사람이었다. 그래, 선생님이 그 처지에 그만큼 저금을 할 수 있었다는 사실 자체에 깜짝 놀란 사람은 나만이 아니었으리라. 그런데 그 돈을 남을 주다니, 나로서는 도저히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학교에서 불우이웃돕기 성금을 내라고 하면 남들보다 많지도 적지도 않은 돈을 꼬박꼬박 냈다. 의무봉사활동을 가서 평소에 접하지 못하는 삶을 보고 오면 충격과 막연한 무력감에 울기도 했다. 그러나 나는 기본적으로 그 모든 일을 말하자면 바깥 세상 이야기로, 내가 당장 어찌할 수 있는 것이 아닌 남의 일로 생각했었다. 남을 돕는 것은 좋은 일이고말고. 대단해. 언젠가 돈을 많이 벌면 성금을 내는 것도 좋겠지. 지금은 이 용돈으로 사고 싶은 책도 다 못 사는걸. 언젠가 시간이 나면 봉사활동 같은 걸 제대로 해 보는 것도 좋겠지. 지금은 바빠서 어려워.

반 아이가 신문에서 오려온 기사를 보고 나는 말 그대로 '경악'했었다. TV나 연말 신문에 가끔 나오는 '그런' 사람이 내 생활 속에 줄곧 있어 왔다는 깨달음은 세상과 나 사이의 거리감을 허물었다. 그 즈음 나는 질풍노도였다고 할 만한 사춘기의 끄트머리에 서서 '[어떻게 하면 되는지는 모르겠지만] 더 이상 남에게 폐 끼치지 않고 제대로 한 번 살아보겠다.'는 각오를 다지고 있었다. 게다가 기사가 나왔을 때는 마침 부모님이 아버지의 건강 문제로 서울에 올라와 계실 때였다. (나는 부모님이 부재중이시란 사실을 선생님에게 말씀드리지 않았었다. 타인의 일에 도통 관심이 없던 내가 선생님의 개인적인 사정에 대해 지금까지도 꽤 기억하고 있는 것은 어머니의 전화로 뒤늦게 이를 알게 된 선생님과 대화할 기회가 몇 번 있었기 때문이다.)

선생님의 일은 내게 [어떻게 하면 되는지는 모르겠지만] 부분에 대해 하나의 보기를 제시했다. 마치 안경을 바꾸어 낀 듯, 갑자기 예전에는 보이지 않던 것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선생님처럼 생활 속에서 지금 당장 무언가를 실천하는 수많은 사람들, 행동이 필요한 사회의 많은 문제들, 내가 갖고 있는 것들 - 사람 한 명 한 명과 사람들 사이의 관계와 개인을 둘러싼 사회가 내가 늘 관심을 갖고 있던 '별과 별 사이를 채우는 무엇' 만큼 중요하고 의미있는 것이라는 인식이 찾아왔다. 책에서 수없이 읽으며 알고 있다고 생각했었지만 기실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던 세상이 펼쳐졌고, 일단 보기 시작한 이상 눈을 돌릴 수가 없었다.

종교에 귀의하거나 즉시 진로를 바꾸지는 않았다. 내가 이과에서 문과로 전향한 것은 이로부터 몇 년 뒤의 일이었고, 나는 점점 더 독실한 무신론자가 되고 있다. 갑자기 '원만한' 성격이 되지도 않았다. 나는 여전히 사람을 어려워하고, 평생 공부를 하며 살고 싶어한다. 그러나 삶이 상류에서 아주 조금만 꺾여도 하류에서는 처음과 전혀 다른 방향으로 흐르게 되는 강과 같은 것이라면, 나는 그 꺾임이 일어났던 자리를 십 년 전 그 때로 정확히 짚을 수 있다.

도저히 전공이 성격과 맞지 않는 것 같다는 자괴감에 시달린 적이 있다. 이도 저도 않고 시간을 흘려보내고 있다는 불안에 사로잡히거나 내가 받는 것의 백분의 일도 도로 내보내지 못하고 있음을 새삼스레 자각할 때도 있다. 그럴 때면 나는 크게 심호흡을 하고 돌에 새기듯이 한 글자 한 글자 마음 속으로 읊는다. - 지금 여기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내가 할 수 있는 만큼 하자.

얼마 전에는 나에 대해 누구보다 잘 안다고 여겼던 사람으로부터 나를 전혀 이해하지 못한 듯한 말을 듣고 무척 마음이 상했었다. 돌이켜 보니 아주 오래 전에도 이와 비슷한 일이 있었다. 그 때와 지금에 대해 생각하다가 문득 깨달았다. 나에 대해 그토록 잘 아는 사람이 내가 한 일을 잘못 판단한다면 그것은 그의 판단 실수라기보다는 내가 기대/예상되는 대로 행동하지 않았다는 뜻이리라. 그렇다면 나는 내가 가진 것과 갖지 못한 것, 할 수 없는 일과 하지 않은 일, 투입과 산출을 정직하게 판단했던가. 똑바로 눈을 뜨고 나와 타인을 보았던가. 자문하다 보니 감정이 풀리며 정신이 번쩍 들었다.

나는 제대로 살고 있는가. 두 눈으로 직접 보고 배우며 결심한 대로 살고 있는가. 할 수 있는 일을 할 수 있는 만큼은 하고 있는가.

2006년 5월 13일 토요일

2006년 5월 13일 토요일

오전에는 학교에서 실습 오리엔테이션을 했다. 올해 여름/2학기 실습생은 서른네 명인데, 실제 오리엔테이션에는 스무 명 정도 왔다. 동기 중에선 은영이가 참석해서 반가웠다. 그 외에는 아는 사람이 한 명도 없었다.

대부분 실습 기관이 정해진 상태라, 그 실습 기관을 결정한 이유와 실습에 대해 기대하는 바를 돌아가며 말했다. 이봉주 선생님이 실습 원칙과 관련 사항, 진행 과정에 대해 조언해 주셨다. 다들 이유도 결정 과정도 기대하는 바도 관심사도 다양해서 두루두루 들으니 무척 재미있었다. 실습을 시작하면 매주 세미나를 한다는데, 기대가 크다.

자하연에서 이봉주 선생님이 사 주신 점심을 먹었다. E양이 입양을 하고 싶다며, 현실적으로 최소한 '개인'의 삶은 구할 수 있으리라는 데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는 요지의 말을 했다. 처음 그 말을 들었을 때는 나와 전혀 다른 방향에서 문제에 접근하고 있다고 생각하여 그저 감탄했는데, 곰곰 되새기다 보니 내가 [특히 요즈음] 갖고 있는 여러가지 고민으로 생각이 이어졌다.

서울대입구 소렌토에서 휴가 나온 인수오빠를 만났다. 소렌토는 점심 메뉴를 없애고 전체적인 메뉴 구성을 바꾸었던데, 이미 점심을 먹은 터라 식사를 하지 않아 맛은 모르겠다.

식후에는 별다방에서 폴라로이드를 가지고 놀았다. 어버이날 이후로 줄곧 스트레스를 심하게 받고 있었는데, 가족이 아닌 사람에게 말 하고 나니 조금 편해졌다.

피곤해서 집에 일찍 왔다.

2006년 5월 8일 월요일

2006년 5월 8일 월요일

바쁜 하루였다.

오전에는 H회에 가서 면접을 보았고, 점심에는 B사에 가서 맛있는 영양삼계탕을 먹은 후 기획 관련해서 몇 가지 이야기를 나누었다.

발에 맞지 않는 구두 때문에 힘들어서 일단 귀가, 집에서 잠깐 쉰 후 오후 네 시쯤 동생과 함께 조부모님 댁에 갔다. 다른 친척분들도 몇 분 계셨다. 케이크와 카네이션을 드리고 잠시 있다가 아버지와 교대해서 나왔다.

저녁에는 용진군과 아지바코에 가기로 했었다. 약속 시간 사이가 약간 비어 한양문고에 잠시 들러 책 구경을 하고 만화책을 몇 권 샀다. 대충 시간이 되었다 싶어 이대 앞으로 가는 버스를 타고 자리에 앉아 래핑을 뜯었는데, 에잇, 파본이 아닌가! 게다가 인쇄상 파본이 아니라 책장이 죽 찢어진 파본이었다. 당장 교환하지 않으면 귀찮아 질 것 같아 신촌에서 내려 홍대 앞으로 돌아가 책을 바꿨다.

그리고 다시 버스를 탔는데 용진군에게서 전화가 왔다. 동진님이 아 따블르에서 식사하자고 했으니 광화문으로 가잔다. 떨떠름한 기분으로 (나는 일정이 갑작스레 바뀌는 것을 굉장히 싫어한다.) 이대 앞에 도착해 보니, 기다리고 있던 용진군이 아 따블르는 자리가 없으니 다른 데 가야 한단다. 그래서 원래 계획대로 아지바코에 가려고 했으나 - 정기 휴일이었다. -_-

중략하고 여덟 시 반 쯤 용진군, 동진님과 이대 후문 쪽에 있는 프렌치 레스토랑 '작은 프랑스'에서 저녁식사를 했다. 프렌치가 아니라 '한국식 양식'이라는 느낌이었다. 요리로 보아서는 어버이날에 붐비기 딱 좋은 레스토랑이던데 뜻밖에(?) 한산하고 조용해서 이야기하며 천천히 식사하기에는 괜찮았다. 금/흡연석 구분은 따로 없는 듯. 배가 고파서 허겁지겁 먹었으나, 그 와중에도 용진군에게 삶에 대한 가르침을 전수하는 일은 게을리하지 않았다.

저녁 식사를 늦게 시작한 터라 식사를 마치자 마자 일어섰는데도 열한 시가 넘어서야 집에 도착했다. 집에 와서는 아버지, 어머니, 동생과 안방에 옹기종기 모여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며 쉬었다. 혈연은 애정이 없을 때에도 관계를 외면할 수 없기 때문에 어렵다. (오늘 만난 소설가 S님은 '서로 안 친한 친척끼리 모여 봤자 결국 싸움 밖에 안 난다.'고 하셨다.) 우리 식구는 서로 사랑해서 정말 다행이다.

2006년 5월 1일 월요일

2006년 5월 1일 월요일 : 막상막하

어머니와 둘이 앉아 아침식사를 하고 있었다.

(전략)
제이: 그건 그 시대의 영향을 받아서 그랬던 부분도......
어머니: 내가 그렇게 고리짝 시대 사람은 아니다, 여보야.
제이: 푸헬~저는 여보가 아니라 동생이거든요?
......아니, 동생?! 이게 아닌데?!?!
어머니: (대폭소)

2006년 4월 30일 일요일

2006년 4월 26일 수요일

2006년 4월 26일 수요일

늦은 저녁에 98학번 K선배의 부고를 들었다. 지난 학기까지 같은 전공 수업을 듣고, 졸업식 날에도 보고, 바로 오늘 오전에 과 실습 게시판에서 현장에서 일하고 싶다는 선배의 계획서를 보며 아, K오빠는 집이 부산이구나, 하고 실습과 상관없는 생각을 했었다.

검은 점퍼를 대충 꿰어 입고 급히 빈소에 다녀 왔다. 상주 자리에 내 또래일 동생이 서 있었다.

밤에는 잠을 설쳤다. 나는 죽음이 두렵다.

2006년 4월 22일 토요일

2006년 4월 22일 토요일 : 우디 알렌 특선 - 스타더스트 메모리

필름포럼의 우디 알렌 특선전 '우디가 말하는 알렌(Woody on Allen)'에서 우디 알렌의 1980년 작 '스타더스트 메모리(Stardust Memories, 1980, B&W, 91m)'를 봤다. 우디 알렌도 드디어 '전' 을 하는구나. 우디 알렌의 90년대 이전 작품은 전혀 보지 못했던 터라, 마침내 특선전을 한다는 소식을 듣고 꽤 기뻤다. 예전에 사망하거나 작품 활동을 중단한 감독들의 영화는 DVD나 비디오를 애써 구해 보기도 하는데, 오히려 아직 살아서 활발히 활동하고 있는 동시대 감독들의 영화에 대해서는 그렇게까지 하지 않는다. 스크린으로 볼 기회가 많이 남아 있으리라는 생각 때문인지, '개봉'하는 신작들로 배가 불러서인지 느긋해 진다. (그렇다고 개봉할 때 보러 가느냐 하면, 이 경우에는 '이번에 못 봐도 특별전이라든지, 뭔가 또 하겠지.' 하고 늑장 부리는 사이에 종영하기 일쑤이다.)

그래서 '스타더스트 메모리즈'의 첫 장면에서 제일 먼저 떠오른 생각은 펠리니나 패러디에 대한 것이 아니라 '헉, 우디 알렌이 저렇게 젊다니!' 였다. 관객은 딱 필름포럼 특선전 정도로 들어온 것 같았는데, 다들 즐겁게 웃으면서 보아서 좋았다. 우디 알렌 영화를 보면서 웃고 있자면, 내가 이 감독의 감각에 맞춰 웃고 있다는 사실이 우스워진다. 그래도 우디 알렌의 유머에 들에 있는 정말이지 순진하다고밖에 할 수 없는 시니시즘에는, 자학적으로 공감하지 않을 수 없다.


영화를 본 다음에는 카페 뎀셀브즈에서 용진군과 만났다. 눈코 뜰 새 없이 바쁘단다. 재미있는 에피소드를 많이 들었다.

J: 와, 정말 재미있다. 그냥 이렇게 말로 하지 말고 글로 써 둬. 그러면 나중에 다시 보면서 또 즐거울 수 있잖아.
Y: 으흠. (조금 혹하는 듯 함.)
J: 제목은 'XX의대 귀염둥이 용진군의 본과일기'로 하는 거야. 아니, 아예 블로그에 올리는 게 낫겠다. 그럼 내가 잘 갈무리해서 인쇄해 뒀다가, 나중에 너 결혼할 때 신부한테 선물로 줄게. "이걸 읽어 보면 남편을 더 잘 이해할 수 있을 거예요." 하고.
Y: ......그렇게 더 잘 이해할 필요는 없는데요. OTL

늦게 만난 터라 차만 한 잔 하고 헤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