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12월 30일 금요일

2005년 12월 30일 금요일

화실 보일러 문제가 아직도 제대로 해결이 안 되고 있다. 어차피 난방이야 쓰지 않으니 괜찮은데, 온수가 나오지 않아 고역이다. 특히 건식 재료(파스텔)을 쓰는 나는 손을 두어 번은 씻어야 하는데, 추워서 정말 괴롭다. 수업 한 번 할 때 마다 배고픈 예술가 AP가 약간 상승하고 체력 AP는 대폭 하락. 그 때문은 아니겠지만 요즈음은 어쩜 이렇게 계속 배가 고픈지, 먹고 먹고 먹고 계속 먹는다.

점심 때 홍대 별다방에서 친구 전션을 만났다. 며칠 전에 입수한 폴라로이드 카메라로 같이 사진을 찍었다. 연말에 꼭 한 번 보겠다고 일부러 찾아 와 줬다. 올해에는 해가 바뀐다는 실감이 전혀 나질 않는다. 마음 속 달력은 벌써 2006년으로 넘어갔고, 딱히 그간 못 만났던 사람들에게 연락이라도 해 보아야겠다든가 하는 생각도 들지 않는다. 아아, 연하장도 아직 다 못 썼구나. 남은 카드는 설날에 맞추어 보내야겠다.

추우니까 정말 괴롭다. 올해 날씨가 유난한 건지, 내 건강이 나쁜 건지, 추워서 견딜 수가 없다. 겹겹이 껴입고 실내에 가만히 웅크리고 과자와 초콜릿과 차만 먹고 있다. 어서 봄이 왔으면.

2005년 12월 27일 화요일

2005년 12월 27일 화요일 : 해리 포터와 불의 잔

동진님과 용산 CGV 아이맥스관에서 '해리포터와 불의 잔'을 보았다. 책을 읽은 게 몇 년 전이다 보니 그새 누가 배신자였는지 잊어버려서, 굉장히 흥미진진하게 보았다. 퀴디치 월드컵 장면과 다른 학교 학생들의 등장 장면이 무척 재미있었다. 론 보는 재미도 대단하지. 그리고 개인 사진으로 봤을 땐 너무 자란 듯 했던 주인공들이, 더 나이 든 아이들과 같이 있으니 도리어 어려 보여 신기했다.

세계를 정복하려는 만화나 영화 주인공들을 볼 때 마다 대체 왜 저런 귀찮은 일을 하려고 할까 하는 생각을 하곤 한다. 사실 마음대로 살려면 그런 대중의 타겟이 되는 자리보단 정복자의 최측근이라든가, 최측근의 최측근이라든가, 그런 눈에 잘 띄지 않으면서 자기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자리가 좋을 텐데 말이다. 그러나......저런 마법계라면......나도 정복하고 싶겠다. 탐났다.

영화를 본 후에는 참으로 오랜만에 커피집에 갔다. 현대아파트 뒤쪽 길에 있는 '에디아르(Hediard)'에서 치즈빵과 치즈케이크를 사 갔는데, 치즈빵은 아주 맛있었으나 치즈 케익은 너무나 맛이 없어서 슬펐다. 어째 많이 남아 있더라니, 그래서였나! 동진님이 직접 추출하신 이디오피아와, 실장님께서 끓여 주신 에스프레소를 마셨다. 커피도 백 그램 사 왔다. 집에 커피가 없어서 그간 무척 괴로웠다.

저녁은 신촌 아웃백스테이크하우스에서 먹었다. 서울대 백신고 종강동문회였다. 종우오빠, 나, 두현이, 채우, 연수, 휴가 나온 태준이 여섯 명이 모였다. 형기오빠는 오늘[만] 일이 있었고, 혜진언니는 다음 주에 국가고시를 쳐서 몹시 바쁘시단다. 후배들이 연락을 돌려도 참석 여부조차 확인해 주지 않아 두현이가 많이 불편해 하는 듯 했다. 모임을 마련하는 사람 입장을 생각해 주면 좋을 텐데, 아쉽다. 태준이와 여행지에서 만났다는 여자분도 같이 오셨다. 처음에 태준이가 여자친구라고 소개해서 모두들 사진기까지 준비하고 두근두근하며 기다렸는데, 나중엔 동문회 자리에 그냥 아는 사람이라고 데리고 오기 뭣해서 그랬다고 해서 좀 김 샜다. 다음 달이면 상병이 되는 태준이는 여전했으나, 종례 시간을 실수로 점호 시간이라고 하는 걸 보니 군인은 군인이었다. 여하튼 건강하게 잘 지내는 것 같아 기뻤다.

식후엔 투썸 플레이스에 가서 차를 한 잔 마셨다. 일산에 사는 채우와 연수, 그리고 나는 먼저 들어가고, 종우오빠와 두현이는 군에서 못 마시는 술을 사 주겠다며 태준이를 데리고 갔다. 종일 열심히 놀았다.

2005년 12월 25일 일요일

2005년 12월 25일 일요일


올해의 크리스마스 케익! (아우님 협찬)

그리고.....화실의 산타님

2005년 12월 22일 목요일

2005년 12월 22일 목요일 : 강남심포니 제 26회 정기연주회 'Beethoven Story'

프로그램
베토벤/에그몬트 서곡
Beethoven/ Overture to Egmont op.84
베토벤/피아노 협주곡 제5번 황제 Eb장조 op.73
Beethoven/ Piano Concerto No.5 in Eb major Emperor op.73

베토벤/교향곡 제6번 F장조 op.95
Beethoven/ Symphony No.6 in F major Pastorale op.68

지휘 서현석, 피아노 이미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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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의전당에서 열린 강남심포니오케스트라의 제 26회 정기연주회에 어머니와 함께 다녀왔다. 일찌감치 가서 표를 받아서인지, 2열에 앉았다. 이렇게 앞 자리는 처음이었는데, 생각만큼 시끄럽지는 않았으나 너무 가까우니 답답하기는 했다. 특히 피아노 협연 때는 연주자들 다리만 쳐다보고 있었다.

송년 연주회라 해도 쓸데없이 거창한 데 없는, 무난하고 편한 공연이었다. 피아니스트 이미주의 황제는 상당히 좋았는데, 꽤 강렬한 곡을 힘들이지 않고 연주한다는 느낌을 받았다. 연주자들의 분위기도 그렇고, 객석의 분위기도 그렇고, 지역사회 주민을 위한 지방자치단체 규모의 공연다운 느긋함이 있었다. 정격적인 레퍼토리를 주민들이 무료로 들을 수 있는 기회가 된다는 점에서, 강남심포니의 정기연주회는 박수를 받을 만 한 기획이다.

앵콜은 당연히 캐롤송일 줄 알았는데, 뜻밖에도 오케스트라 규모로 편곡한 아리랑이었다. (어머니께서 무척 좋아하셨다.) 그 다음에 캐롤송 메들리(?)가 이어졌다. 밖으로 나와 보니, 눈이 제법 내리고 있었다. 갑자기 '크리마스 기분'이 나더라. 어머니와 함께 귀가했다.

2005년 12월 17일 토요일

2005년 12월 17일 토요일

10월, 나는 내가 처음으로 슬럼프에 빠졌다고 생각했다.
11월, 나는 내가 진중한 사람이 되었나 잠깐 고민했다.
12월, 그냥 게으름 게이지가 급상승했을 뿐임을 깨달아 버렸다. OTL

2005년 12월 11일 일요일

'만약에...' 문답

1. 길을 걷다가 100,000원을 주웠다. 그런데 주위에서 사람들이 보고 있다. 이럴 때, 나는 (근처 경찰서에 신고하고 연락처를 남긴 다음, 주인이 나타나지 않아 내게 연락이 오면 기부한)다.

2. 권상우가 많은 사람들 앞에서 당신에게 고백을 했다. 이럴 때, 나는 (정중하게 고백했다면, [권상우의] 자존심이 상하지 않도록 일단 생각해 보겠다고 한 후 사람들이 없는 곳에서 정중히 거절한)다.

3. 친한 친구가 갑자기 자신에게 절교 하자고 하면 나는 (알겠다고 한)다.

4. 나는 지금 애인이 있다. 그런데 첫사랑이 나타나서 '사랑해, 나랑 결혼하자.' 라고 하면 나는 (싫다고 한)다.

5. 지은성이 사귀자고 하면 나는 ("실례합니다만, 누구신가요?" 라고 한)다.

계속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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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늘님 블로그에서 보고 해 봄.

2005년 12월 7일 수요일

지난 주에 서울에 올라온 친구 정란이와 신촌에서 만나, 이코노스시에 가서 저녁을 먹었다. 여름에 마산서 본 다음이니 그렁저렁 사 개월여 만이다.

2005년 12월 5일 월요일

2005년 12월 5일 월요일

결혼을 앞두고 일시 귀국하신 YJ님, 아스님과 서울대입구 스타벅스에서 만났다. 볼 때마다 멋진 YJ님이 선물로 'Twelve Teas of Chirstmas'라는, 삼각형 상자 열두 개에 각기 다른 홍차 티백이 든 멋진 차 세트를 선물로 주셨다. 아스님이 받으신 선물은 자그마치 M&M 베이더경 통. 이런 저런 얘기를 하다 길 건너편에 있는 떡볶이 집에 가서 점심 식사를 했다. 내가 학교 앞 분식집 같은 곳에서 파는 떡볶이를 제대로 먹어 본 적이 없다고 해서, 이참에 도전해 보기로 한 것이다. 휴대용 가스렌지(?)위에 면, 떡, 오뎅, 고추장 등을 넣은 냄비를 얹어 놓고 끓으면 떠 먹는 떡볶이였다.

식후에는 맛있는 케익을 먹기 위해 스타벅스로 돌아갔다.(...) 서울대입구는 정말 황량하다니까. 커피와 케익을 먹으며 SF와 번역 이야기를 많이 했다. 번역서 중 가장 마음에 드는 책이라든지, 가장 번역하기 어려운 책이라든지......생각하고 있던 기획안에 대해서 말을 꺼냈는데, 말을 하다 보니 나 자신 정리되는 부분도 있어 즐거웠다. 어쩌면 몇 년 안에 실제로 해 볼 수 있을지도.

한참 수다를 떨다가 저녁 시간이 되어 또 뭘 먹을까 고민. 스타벅스 근처에 있는 '산채'라는 한식집에 갔다. 나는 처음 가 보았으나, 아스님과 YJ님은 일전에 가 보신 곳인 듯 했다. 들깨 가루, 들깨 소스 등이 들어간 요리가 많았다. 나는 들깨가 든 국을 곁들여 비빔밥을 먹었는데, 추운 날씨에 따뜻한 음식을 먹으니 속이 살살 녹았다. 저녁은 YJ님이사셨다. 여행지의 식사, 가장 이상한 음식, 도저히 못 먹을 것 같은 음식, 희귀식물/동물 등(ex 달의 위상 변화에 따라 배의 달 모양이 이지러졌다 차올랐다 하는 반달곰)에 대해 떠들었다. 은행나무는 중국-한국-일본 일부 지역에만 있는 희귀종이라는 사실을 새로이 알게 되었다.

여덟 시가 넘어 헤어졌다. 아스님과 YJ님은 지하철 역으로 가시고, 나는 마을버스를 타고 신림동으로 넘어가 예전에 다니던 독서실에 재등록을 했다. 오랜만에 YJ님을 다시 뵙고, 좋아하는 분들과 종일 재미있게 논 것이 너무 기뻤다. 그래서 싱글싱글 웃으면서 "오랜만이에요! 등록 하러 왔거든요. 좌석표 좀 보여주시겠어요?" 했더니, 낯이 익은 총무님이 "합격하셨어요?" 물으신다. 여전히 싱글벙글 하며, "아뇨, 떨어졌으니까 다시 왔죠!" 라고 답했더니 요새는 2차 합격 하고 연수원 준비 때문에 독서실 다니는 학생들이 많더라는 둥, 예뻐져서 좋은 소식 들으신 줄 알았다는 둥, 어쩔 줄 몰라 하며 수습하기 바쁘시다. 본의 아니게 곤란하시게 한 듯.

층은 다르지만 작년에 썼던 것과 같은 자리가 비어 있어 즐거웠다. 싸간 살림을 풀고 개정판 책을 두 권 사서 조금 풀어 보다가 열한 시에 귀가, 선물받은 차 중에 계피향 홍차를 마셔 보았다. 정말 맛있었다!

2005년 12월 4일 일요일

2005년 12월 4일 일요일


아버지 생신이었다. 아우님이 골라 온 케익으로, 이번 주제는 '풍성한 겨울' 이란다. 선물은 가디건. :)

2005년 12월 3일 토요일

2005년 12월 3일 토요일

화실 수업 후, 홍대 앞 카페 인클라우드(in cloud)에서 인수오빠와 만나 차를 한 잔 마셨다. 휴가를 끝내고 복귀하는 길이라 군복을 입고 있기에, 이왕 군복 차림으로 카페에 오셨으니 패기를 자랑하며 팥빙수를 드시라고 했다가 혼났다. ( -_)

인클라우드에서 두어 시간 놀다가, 나는 이태원으로, 오빠는 부대로. 날씨가 추워서 괴로웠다.

저녁은 이태원 타지마할에서 승민오빠와 먹었다. 본래는 인도네사이 음식점인 발리에 가기로 했었는데, 벌벌 떨면서 가 보니 아뿔싸, 문을 닫았다! 일요일도 아닌 토요일이라, 영업을 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생각을 전혀 못 했던 터라 몹시 당황했다. 어디로 갈까 하다, 꾸루미 꾸루미 꾸루미♡ 를 먹으러 타지마할에 가기로 결정. 꾸루미 난과 커리를 주문하고, 도전정신을 살려 솔티라떼도 두 잔 주문했다가...... 도전은 도전 자체에 의미가 있는 것이죠! 그렇고 말고요! 하하하하하하하하하
열혈 연애중인 승민오빠를 오랜만에 만나 반갑고 기뻤다. 그리고 토요일 밤 이태원은 좀 무서웠다.

귀가길에는 눈이 왔다. 이번이 서울 첫 눈이었다고들 한다. 렌즈를 살 겸 롯데마트로 들어서자, 입구 께에서 대걸레질을 하던 아주머니가 코트 자락에 얹힌 눈을 보고 "하이고, 소복하니 쌓였네." 하신다. 함께 웃었다.

2005년 12월 3일 토요일 : 동생의 역할

나는 아침잠이 많아 기상시 끙끙대어 주위 사람들을 괴롭히곤 한다. 오늘은 아우님이 와서 깨워 주었다.

제이: (이불 안에서 버둥거리며) 애애애애애앵 [해석: 일으켜 줘, 일으켜 줘. 이불에서 나가기 싫어어어]
아우님: 안 돼. 혼자 힘으로 일어나.
제이: 애애애애애애애애앵 [해석: 너무해. 일으켜 달란 말이야. 춥고 졸려.]
아우님: (단호한 어조로) 강하게 키우겠어!

2005년 12월 2일 금요일

2005년 12월 2일 금요일 : 칭찬

아점을 먹고 티브이 앞에 앉아 무심코 채널을 돌려 보다가, '내 아이 영재로 키운 교육법'이라는 특집 프로그램을 잠깐 보았다. 화면 하단에 '칭찬을 아끼지 말라.'라고 쓰여 있었다.

나: (의미심장한 눈으로 뒤를 돌아보며) 엄마, 엄마, 칭찬을 아끼지 말래요.
어머니: (즉시) 그래, 칭찬을 아끼지 말아야 해.
칭찬해 줘.

나: ......엄마, 요즈음 점점 더 강해지시는 것 같아요.

2005년 11월 30일 수요일

2005년 11월 30일 수요일

1. 데스크톱은 여전히 코마 상태.

2. 부품 문제로 인터넷을 검색할 일이 생겨 신촌 투썸에 갔다. 저녁 다섯 시 즈음에 MSN으로 접속하신 아스님과 접선, 홍대 앞 그리스 음식점 '그릭조이'에서 저녁을 먹고, 인클라우드에서 차와 와플과 핫케이크(!)를 먹었다. 빌려 드렸던 마리아님도 받았다. 한참 수다를 떤 후 옷깃을 여미며 집으로 돌아가자니, 놀라울 만큼 기분이 좋아졌다.

3. 번호를 붙였으면 3번 까진 있어야 할 것 같은데......

2005년 11월 28일 월요일

2005년 11월 28일 월요일 : 이터널 선샤인

상준님, 동진님, 파란날개님, 아스님, 인수오빠와 신촌 아트레온에서 '이터널 선샤인(Eternal Sunshine of the Spotless Mind)'을 보았다. 영화를 본 후에는 크라제 버거에서 점심식사를 하고, 투썸플레이스에서 차와 케익을 들었다. 카페에 앉아 창 밖을 내다보니 노란 나뭇잎이 빗줄기처럼 흩날렸다. 나중에는 진짜 비도 왔다.

타이어가 날리고 전차가 쨍쨍거리고 서로 곁눈 보고 비켜서고 오르고 내리고 사라지고 나타나는 것이 모두 영화와 같이 유창하기는 하나 영화처럼 곱지 않다. 나는 아주 熱해졌다. (정지용, '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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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톱은 여전히 원인불명 대책무용 기절상태.

2005년 11월 26일 토요일

2005년 11월 26일 토요일

지구정복비밀결사 모임일이자, 오늘의 운세에 '손에 쥔 것을 놓치기 쉬우니 스스로 삼가라'라고 쓰여 있을 것 같은 하루였다. 일단 목요일부터 수상한 상태이던 데스크톱이 금요일이 되자 부팅불능 상태가 되었다. 금요일 저녁에 컴퓨터를 이리저리 만져 보다 '에이, 모르겠다' 라고 생각하며 일단 잠자리에 들었으나, 어디 신경이 쓰여서 도무지 잠을 잘 수가 있나! 결국 새벽 세 시 반 까지 드라이버와 각종 메뉴얼을 들고 씨름했으나 잘 되지 않아 방치. 토요일 아침에는 콘택트 렌즈를 떨어뜨렸는데, 넓지도 않은 욕실 어디로 빠졌는지 결국 못 찾았다.

화실에서는 파스텔(두 동강 남)과 연필파스텔(심이 부러짐)을 떨어뜨렸다. 연필파스텔의 경우, 충격을 받으면 '속 심이 조각나서 깎아도 쓸 수 없는 상태'가 된다고 한다.

화실 수업을 끝내고 잠시 헤매다 인사동 커피빈에 가서 결사원들과 접선. as님, scifi님, 파란날개님, yarol님과 만나 점심 때 드셨다는 곱창인지 내장인지와 엠티계획에 대한 얘기를 듣고 있자니 luke님(귀여운 네팔 등산복을 입고 오심.) 과 동진님('게임회사이야기' 저자 사인본 자랑)도 오셨다. 커피빈 실내가 대화가 어려울 만큼 소란스러워, 아트선재센터 근처에 있는 카페 EGG로 옮겨 갔다. 이 곳에서는 스타트렉, 스타워즈 등 티브이시리즈와 그에 등장하는 배우들, 술, SF, 미스테리 등 흥미로운 주제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 이원님께서 내가 연습장에 그린 거실 그림이 왜 어색해 보이는지 가르쳐 주셨다. 에라오빠와 강명님도 등장, 여덟 시 정도까지 EGG를 점령하고 앉아 놀았다. 나는 일곱 시 쯤 부턴 춥고 배고프고 졸려서, 구석에 웅크리고 앉아 식사 시간을 기다렸다. (...)

scifi님과 파란날개님은 귀가하시고, 나머지 사람들은 근처에 있는 덮밥집 '밥店'으로 갔다. 수제카메라를 만드는 주인아저씨가 혼자 운영하시는 한산한 음식점이었다. 카메라를 가지고 갔으나, 어이없게도 메모리카드를 빼 놓고 나와 내 카메라로는 사진을 한 장도 못 찍었다. 따뜻한 별채에 앉아 덮밥과 우동과 계란말이를 먹었다. 다른 분들은 데운 정종(?)과 맥주도 드셨다. (따라서 나는 절대 '지구정복을 위하여'라고 외치지 않았다!'위하여' 만 했....) 근래의 시사논점과 주도와 다양한 술의 명칭과 분류 기준과 인터넷 실명제와 팬덤의 음모와 마이너리티의 거부감과 후세에 발굴될 ㅋㅋㅋ와 이름의 힘과 체계와 개인의 책임에 대해 이야기했다. 늘상 하는 말이지만, 재미있게 놀다 보니 정말 시간 가는 줄 모르겠더라. 다른 분들이 이야기 하시는 걸 들을 때면, 일단 아는 것이 많으신 것에, 그리고 그 앎을 표현하는 방법에 감탄하게 된다. 나도 그렇게 대화의 완급을 잘 조절하고 흥미로운 화제를 흥미롭게 이끌어 갈 줄 아는 사람이 되고 싶다.

아스님과 버스를 타고 가다, 지하철로 환승하려 이대역에서 내렸다. 그런데 십 분 가까이 기다려도 지하철이 아니 오더니, 잡음 섞인 안내 방송이 울렸다. 홍대입구역 방향으로 가는 지하철은 지금 신당역에 있으니 참고하시란다. orz 버스를 타고 홍대입구로 가서 집으로 가는 버스로 다시 갈아타 간신히 귀가했다. 열한 시 오십 분. 정말 오늘 왜 이러지- 싶은 피곤한 하루였지만, 무척 즐거웠던 덕분에 마음은 편했다.

2005년 11월 25일 금요일

'11월 25일은 아무 것도 사지 않는 날'

11월 25일은 정훈님(일명 지양님) 께서 제안하신 '아무 것도 사지 않는 날' 입니다. 원문은 이곳에서 보실 수 있어요. 이벤트에 참여하여 아무 것도 사지 않으신 분이 댓글이나 트랙백을 달아 주시면, 정훈님과 정직한님께서 인당 천원씩 유니세프에 기부하신답니다.

저처럼 원래 교통비와 식비 외엔 거의 쓰지 않는 사람에겐 해당되지 않는 이벤트일지 모르지만, 이 참에 소비생활에 대해 한 번 생각해 본다면 그도 좋겠지요. :)

이상 전파소녀 제이였습니다.

2005년 11월 20일 일요일

2005년 11월 20일 일요일




바닷가재 스프

에스카르고

메인(양갈비)

메인(햄버거스테이크)

메인(생선-금태)

디저트

서늘님, 동진님, 서늘님의 동생분(이하 '공주님')과 방배동에 있는 [서늘님의 단골] 프렌치 레스토랑 라뜰리에에서 점심식사를 했다. 오랜만에 일요일인데도 일찍 일어났다고 뿌듯해 하다가 그만 식사 시간에 지각. 어리버리 걸어 가 보니 말로만 듣던 공주님을 비롯한 다른 분들은 이미 와 계시더라.

모든 음식이 매우 맛있었으나, 특히 양갈비에 곁들여 나온 버섯이 굉장히 좋았다. 대체 어떻게 요리를 하면 버섯으로 그런 맛을 낼 수 있을까? 오늘의 메인이나 다름 없었던(?) 디저트에도 모두들 대만족! 침대에 누운 채로 세계를 정복할 방법, 가장 맛있었던 코스, 압구정 현대백화점의 엽기적인 루돌프 장식 등에 대한 이야기를 하며 즐겁게 놀았다. 이 참에 F.O.D.라는 모임을 결성하기로 했다.

서늘님께서 동진님을 그려 주시기에, 재빨리 스케치북을 꺼내 내 얼굴도 그려 달라고 부탁을 드렸다. (비뚤어진 경쟁심?!) 그러나 서늘님께서 내 인상이 귀엽지는 않다고 하셔서 조금 충격을 받았다. 난 지금까지 내가 엄청 귀여운 줄 알았는데. (...)

식후엔 집에 갈까 하다, 광화문 교보문고에 들러 외서 3000원 할인 코너를 살펴 보고 왔다. 예상대로 새로운 재고 서적이 꽤 나와 있었는데, 그 중에 리처드 모건의 'Altered Carbon' TPB가 한 권 있는 것이 아닌가! 잽싸게 가져 왔다. 몇 년 전 모 헌책방에서 'Star Trek TNG: Generations' 의 하드커버를 천 원에 산 이래 최고의 수확이라 할 만 하다. 캐서린 아사로(Catherine Asaro)의 스콜피언 시리즈 한 권이 아직 남아 있고, 올슨 스콧 카드(Orson Scott Card)의 엔더 시리즈 후속편 'Children of the Mind'도 너댓 권 쌓여 있다. 래리 니븐(Larry Niven)과 스티브 반즈(Steve Barnes)의 공동작과 해리 터틀도브(Harry Turtledove)의 브리태니아, 아들 허버트(Brian Herbert)의 듄 시리즈, 앤 라이스(Ann Rice)의 뱀파이어 연대기 등도 남아 있으니 관심 있는 분은 참고하시길.

2005년 11월 19일 토요일

2005년 11월 19일 토요일 : [잡기]

낮, 화실 수업을 마친 후 연필콘테와 스케치북을 사러 화방으로 갔다. 막 계단을 오르던 차에 전화가 와서 문간에 서서 통화를 하고 있는데, 까만 고양이 한 마리가 서두르지도 않고 발치를 천천히 지나간다. 몸집이 내 팔뚝 길이도 안 되는 것으로 보나 어딘가 위태로운 걸음걸이를 보나 다 자란 고양이는 아니었다. 고양이는 계단을 지나 상자들 틈으로 사라졌고, 나는 전화를 끊고 실내로 들어갔다.

삼십 분 쯤 지나 밖으로 나와 보니, 고양이는 그새 다시 문 앞으로 와 몸을 돌돌 말고 웅크려 있었다. 내 양손을 모아 펼친 크기가 될까말까했다.

작년, 정확한 계절은 기억이 나질 않으나 비가 많이 왔으니 추석 즈음이 아니었을까 싶다. 저녁 식사를 마치고 식당에서 독서실로 돌아가는 길에 꼬질꼬질한 흰 개를 한 마리 보았다. 개는 청소년 회관 주차장 근처를 오가며 지나는 사람들 발치를 킁킁거리고 있었다. 그 날 밤에는 비가 굉장히 많이 왔다. 다음 날, 식당 앞 전봇대에 잉크젯 프린터로 흑백 인쇄한 '강아지를 찾습니다' 에이포 지가 붙어 있었다. 키는 몇 센티미터 - 선 사람 무릎 아래 정도란다 - , 흰 색, 사진과 같이 생긴 강아지, 근처에서 잃어버렸으니 보호하고 있는 분이 있다면 공일육 어쩌고 저쩌고 번으로 연락 달란다. 개 이름도 있었다. 내가 본 개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했다. 품종만 같으면 모두 같은 개처럼 보는 내 눈으로야, 아무리 살펴도 전날 저녁에 본 개와 같은 개인지 아닌지 정확히 알 수가 없었다. 품종과 색은 같았다. 덩치도 비슷한 것 같았다. 식사 하고 독서실로 들어가는 내내, 전화를 할까 말까, 한들 도움이 될까, 같은 개이기는 했을까 고민했다. 청소년 회관 근처를 부러 살피며 천천히 걸었지만, 어제 그 개는 보이지 않았고, 나는 전화를 하지 않았다.

까만 고양이를 보고 일년 전 그 개 생각이 났다. 화방 후문가는 에어컨 실외기가 여러 대 설치되어 있어 여름엔 덥고 겨울에도 답답할 만큼 훈훈한 곳이다. 어쩌면 까만 고양이는 갈 곳이 없거나 어미고양이가 없어서가 아니라, 그저 따뜻한 바람이 좋아 게 웅크리고 있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비가 많이 온 날 밤, 신림동 어귀에 사는 누군가는 지저분한 꼴이 된 자신의 반려동물에게 짜증을 내며, 흰 개를 벅벅 씻기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공일육 어쩌고 저쩌고는 며칠 뒤 동네 곳곳에 붙였던 포스터를 기분 좋게 떼어 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어째서인지 아무리 애를 써도 이런 엔딩이 진심으로 믿어지지가 않아서, 나는 이불을 목끝까지 덮어쓰고 미이라처럼 가만히 누워 자정이 다 되도록 천장만 올려다보았다.

2005년 11월 16일 수요일

2005년 11월 16일 수요일

나는 생활잡문을 잘 쓰고 싶다.

독자에게 원작의 감동을 전해 줄 수 있는 번역자가 된다면 좋을 것이다. 기억에 남을 만한 소설을 쓰는 작가가 될 수 있다면 그도 좋으리라. 하지만 하나만 고르라면, 나는 좋은 수필가가 되고 싶다.

이는 무척 어려운 일이다. 모든 글이 - 심지어 번역조차도! - 쓰는 사람을 반영하지만, 특히 생활문에서는 쓰는 사람의 일상이 전면에 드러난다. 나에 대한 글이되, 독자가 있다.

2005년 11월 15일 화요일

2005년 11월 15일 화요일 : 2차 불합격

2차 시험 불합격했습니다. 예상했던 바라 저 자신은 덤덤합니다만, 격려해 주신 분들께 송구하네요. 겨울에 재개될 고시생 잡담을 기대해 주세요. (이게 아닌가......)

2005년 11월 13일 일요일

2005년 11월 13일 일요일

사진: nyxity.com


서늘님, 동진님과 남산 하얏트 호텔 2층 정원부페에서 점심식사를 했다. 부페는.......귀찮다.; 서늘님으로부터 아가씨의 道를 배웠다. 식후에는 남산 식물원을 산책하며 단풍 구경을 했다. 밤에 비가 왔으니 이제 잎이 거의 다 떨어졌겠지. 그림으로 그릴 사진을 찍으려 카메라를 가져갔으나, 동진님도 카메라를 가져오셨기에 풍경 사진을 몇 장 부탁드렸다.

식물원을 돌아본 다음에는 서늘님의 차를 타고 남산 아래로 내려갔다. 예전에 외관을 설핏 구경한 적은 있었으나, 시승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컨버터블은 처음 타 봤는데, 머리 위로 하늘이 보이고 바람이 귓가를 스치니 신이 났다.

오후 네 시쯤 귀가, 생산성 향상에 힘썼다.

2005년 11월 12일 토요일

2005년 11월 11일 금요일, 12일 토요일

금요일에는 종일 집에 있었다. 롯데마트에 가서 백설 군만두(특별할인 240g 추가)를 사와 잔뜩 구워 먹고 로투스 쿠키를 사와 커피에 찍어 먹고 칙촉을 사와 밀크티와 함께 먹은 것 외엔 그다지 한 일이 없었다. 최근엔 생산적으로 살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데, 노력의 부작용인지 몰라도 (아니다) 이 생산성이라는 것이 특정 분야에 미묘하게 집중되고 있는 듯 하다.

토요일에는 화실 수업을 했다. 처음부터 좋아서 시작한 일이지만, 특히 요즈음은 그림이 좀 그림다워 지는 듯 하여 참으로 즐겁다. 오늘은 파스텔과 색연필로 색을 입힌 사회대 건물 그림을 마무리하고, 8절에 연필 스케치를 한 장 했다. 내가 봐도 일취월장한 솜씨라, 스스로 마음껏 감탄했다. (그리고 이후 세 시간 동안 색연필로 8절지에 영국 공원 풍경을 그리며 괴로워했다.)

집에 오는 길에, 특화된 생산성을 고양하기 위해 계피향 쿠키를 한 통 샀다. 아, 한방 치킨도 한 마리 먹었지. 역시 21세기는 스페셜리스트의 시대다.

2005년 11월 10일 목요일

2005년 11월 10일 목요일 : 시상식

그랜드 인터컨티넨탈에서 열린 과학기술창작문예 시상식에 다녀왔습니다.

작년 수상자 모 님의 뒷이야기 포스팅을 무척 재미있게 읽었던 고로 저도 후일담 몇 가지.

마저 읽기

2005년 11월 9일 수요일

2005년 11월 9 일 수요일 : 월래스와 그로밋 - 거대토끼의 저주

미엽이와 아트레온에서 조조로 월래스와 그로밋을 보았다. 강력 추천. 굉장히 유쾌했다.

영화를 본 뒤에는 근처에 있는 회전초밥집 이코노스시에 가서 점심을 먹었다. 미엽이가 레슨 때문에 열두 시 반에 일어나야 해서 식사만 급히 하고 - 바쁜 와중에도 배부를 만큼 먹었지만- 헤어졌다.

2005년 11월 5일 토요일

2005년 11월 5일 토요일 : 유령신부

동진님과 신촌 아트레온에서 팀 버튼의 신작 애니메이션 유령 신부(The Corpse Bride)를 보았다.

'유령 신부'는 재미있는 범작이었다. 그렁저렁 끝까지 즐겁게 보기는 했으나(동진님은 중간엔 좀 지겨우셨단다.), 기대에는 미치지 못해 아쉬움이 남았다.

이하 스포일러


팀 버튼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기대치를 살짝 낮추고 보러 갈 만 하겠다.

저녁은 간사이에서 먹었다. 맛이 예전만 못해서 실망했다. 대학가에 자리 잡은 식당은 거의 예외 없이 이리 되는 것 같다. 홍대 쪽도 매한가지고. 식후에는 이대 앞 티앙팡-오후의 홍차에서 차를 들었다. 탁자가 넓고 실내가 한산해서 좋았던 티앙팡 본점은 문을 닫았더라. '오후의 홍차'에는 처음 가 보았는데, 조금 더 번잡하긴 했지만 티앙팡의 차는 그대로라 마음에 들었다. 시원한 아이스 허브티를 마시며 그림을 그리고 놀았다. 주중에 색연필화를 좀 연습해 볼까 하고 색연필과 콘테연필을 화실에서 가져 온 덕분이었다.

여덟 시쯤 일어나 귀가. 자정께에 가족과 축하 파티를 했다.

2005년 11월 1일 화요일

2005년 11월 1일 화요일 : 트리오 탈리아 2005 정기연주회 '아름다운 비상'


PROGRAM
Josef Suk Elegie Op.23
Frank Martin Trio sur des mélodies populaires Irlandaises
Dmitry Shostakovich Piano Trio No.2 in e minor, Op.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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뎡만님과 금호아트홀에서 열린 트리오 탈리아 정기 연주회에 다녀왔다.

2005년 10월 28일 금요일

2005년 10월 28일 금요일 : 제 6회 서울유럽영화제 '5X2' / '베를린 천사의 시'

메가박스에서 프랑소와 오종 감독의 2004년 작 '5X2'와 빔 밴더스 감독의 87년작 '베를린 천사의 시(Der Himmel Ueber Berlin)'를 보았다.

오종의 5X2는 인터넷 예매분이 매진되었기에 어제 현매했다. 이 영화도 그렇고, '타임 투 리브'도 그렇고, 대체 어떻게 15세 관람가를 받았는지 도무지 모르겠다.

'5X2' 는 연인의 이혼 - 결혼생활 - 출산 - 결혼 - 만남을 역순으로 보여 주는 영화였다. 사랑이 아무 것도 아니고 사람의 마음은 변하고 만다는 얘길 지극히 냉정하게 해서 좀 안타까웠지만, 일단은 '현실적인 영화'라기보다는 '현실적인 영화라는 환상'을 파는 영화라는 느낌이었다. 그래도 연인끼리 가서 볼 건 아니더라.

저녁은 Cafe Mix&Bake라는 샌드위치/빵집에서 들었다. 커피 맛에 확신이 서지 않을 땐 에스프레소를 주문하지 않는 편인데, 오늘은 무슨 바람이 났는지 바게트와 에스프레소를 먹었다. 크림이 잔뜩 든 바게트를 뜯으며 책을 읽었다. 에스프레소는 괜찮은 편이었으나, 배가 고파 바게트 하나를 다 먹었더니 조금 메스꺼웠다.

'베를린 천사의 시'는 티브이로, 비디오로, 디브이디로 여러 번 되풀이해 보았던 영화지만, 스크린으로 본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연이 닿지 않는지 상영시 관람 기회를 몇 번이나 놓쳤던 터라 이번에는 반드시-란 심정으로 화실 수업 시간까지 바꿔 가며 예매했는데, 그만한 보람이 있었다. '원래 보이기로 되어 있는 대로' 영화를 본다는 것이 얼마나 특별한 경험인지 마침내 이해했다. 지금까지는 회고전을 하면 영화관에서 본 적이 없는 영화를 골라 보았기에 이런 세상(?)이 있는 줄 몰랐는데, 각종 회고전이나 영화제에서 관객들이 비디오/디브이디로 몇 번이나 본 영화를 굳이 또 보며 열광하는 이유를 알겠다. (이제 나도 동참......;)

시작부터 끝까지 꼼짝 않고 봤다. 특히 첫 도서관 장면에서는, 수십 번을 봤으면서도 매번 몸을 낮추고 숨을 죽이게 된다. 도서관과 사람과 천사와 시선과 [무엇보다도] 음악......현기증이 날 만큼 사람을 흔든다. 오프닝부터 이 도서관 씬까지가 내가 이 영화에서 제일 좋아하고, 많이 본 부분이다. 아아, 사실은 이 영화의 127분 중에 128분을 더하고 덜할 것 없이 좋아하지만 말이다.

독일어 대사가 꽤 잘 들려 기뻤으나, 영화 중반 정도부터 그게 내 독일어 실력이 녹슬지 않았기 때문이 아니라 그저 여러 번 되풀이해 본 영화다 보니 대사가 대충 머리 속에 들어 있었기 때문일 뿐임을 깨달았다. 적게 본 장면일수록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겠더라. -_-;

30일에 한 번 더 상영하는데, 보러 갈 수 없어 유감이다. 영화관에서 볼 기회가 자주 자주 생겼음 좋겠다.

2005년 10월 27일 목요일

2005년 10월 27일 목요일

오전에는 홍대 스타벅스에서 작업을 했고, 낮에는 화실에서 그림을 그렸다. 저녁에는 친구 진오와 만나 홍대 앞에 있는 멕시칸 음식점 까사마야에서 저녁을 먹었다.

2005년 10월 26일 수요일

2005년 10월 26일 수요일 : 제6회 서울유럽영화제 '타임 투 리브'

홍대 앞 리치몬드 과자점에서 수현님과 만났다. 점심으로 샌드위치와 커피를 들었고, 후식 삼아 케익도 두 조각 먹었다. 수현님은 녹차티라미수, 나는 몽블랑. 리치몬드 앞으로 수없이 지나다녔건만 실제로 들어가 본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전혀 상관없는 얘기지만, 지난 주 토요일엔 길에서 파는 계란빵을 처음으로 먹어 보았다.) 서비스는 서비스랄 것도 없는 수준이었으나 어쨌든 케익은 무척 맛있었다. 좋아하는 몽블랑을 오랜만에 먹어 기뻤다.

'종일 집에 있으면서도 영화 볼 시간이 없다고 괴로워하는' 프리랜서의 고충, 완벽주의와 설렁주의, 그냥 성격, 병원, 드라마, 섹스어필, 졸리님 등에 대해 이야기했다. 더없이 즐거웠고, 수현님의 말씀이 큰 위로가 되었다.

수현님과 헤어진 후, 메가박스에 가서 프랑수와 오종(François Ozon)의 2005년 작 '타임 투 리브(Le temps qui reste)'를 보았다. 이번 서울유럽영화제의 개막작이다.

서른한 살 사진작가 로망은 촬영 중에 쓰러져서 병원에 갔다가, 자신이 살 날이 얼마 남지 않은 처지임을 알게 된다. 온 몸에 암이 전이되어 수술할 수도 없을 지경이었던 것이다. 항암 치료를 한다 해도 살아날 확률이 매우 희박하고, 그대로 있으면 '평균적으로' 삼 개월 정도 살 수 있다. 로망은 가망 없는 치료를 받느니 그냥 있기로 결정하고, 주변을 정리하기 시작한다. 아니, 뭘 어떻게 정리해야 할지 모르는 상태로 남은 시간을 채우기 시작한다. 애인과 헤어지고, 자기와 마찬가지로 죽을 날이 멀지 않은 할머니를 만나러 가고, 할머니를 찾아 가는 길에 만난 불임 부부와 사랑을 나눈다. 처음의 어리둥절함은 분노가, 절망이, 슬픔이, 미련이 되었다가, 나중에는 아무 것도 아니게 된다.

대단히 아름답고 인상적인 영화였다. 흐느껴 우는 관객도 있었으나, 나는 ('TV는 사랑을 싣고'를 10분만 봐도 펑펑 우는 사람 답지 않게) 조금도 울지 않았다. 그냥 취한 듯이 영화관을 나와, 역시 반쯤 취한 듯이 지하철을 탔다. 지하철을 탈 때 까지만 해도 '나는 왜 영화를 보는 걸까' 같은 중요하지 않은 고민에 빠져 있었으나, 아홉 시쯤 되자 배가 고파서 더 이상 영화 생각은 나지 않았다. 집에 들어가서 뭘 먹을까 한참 궁리하다, 아, 살아있다는 게 결국 이런 거구나, 하고 속으로 피식 웃었다.

덧붙여: 처음 '타임 투 리브'라는 제목을 보았을 땐, 시한부 삶에 대한 영화임을 알면서도 당연히 'time to live'라고 생각했었다. 한참 뒤에야 'time to leave'라는 것을 알았는데, 어쩐지 배신당한 기분이었다.

2005년 10월 23일 일요일

2005년 10월 23일 일요일 : 헐리우드 엔딩

아우님의 친구이자 내 제자인 보영이와 홍대 치뽈리나에서 점심식사를 했다. 일전에 보영이가 우리집에 놀러와 일박한 이후 처음 봤으니 꽤 오랜만이다. 과외를 마치고 왔다는 보영이는, 3학년인데도 벌써 선생님 같았다. 원래 진중한 데가 있는 아이라서 더 그런 느낌이 들었는지도 모른다.

보영이는 새우와 샐러리 스파게티, 나는 피자 프레스코를 주문해서 나누어 먹었다. 서버 분이 날씨가 추우니 따뜻한 차를 드시라며, 녹차를 피처에 가득 담아 주셨다. 배려가 고마웠다.

식후엔 차를 마시러 갔다. 일요일 낮이라서인지 빈 자리 있는 카페 찾기가 생각보다 어려웠다. 결국 홍대입구 역까지 내려가 근처에 있는 Coffee Brown이라는 카페에 들어갔다. 흡연/금연 구분이 없는 듯 했고, 커피도 어정쩡했다. 그래도 따뜻한 실내에 아끼는 동생과 편안하게 앉아 있자니 행복하고 즐거웠다. 즐겁게 수다를 떨다 보니 시간도 금세 가서, 순식간에 저녁이 다 되었다. 보영이는 집으로 돌아갔으나, 나는 버스를 타고 광화문에 있는 시네큐브로 향했다. 갑자기 우디 앨런의 2002년 작 '헐리우드 엔딩(Hollywood Ending)'이 보고 싶어졌기 때문이었다. 혹시 시간이 맞지 않는다면 교보문고에서 책을 봐도 좋겠다 싶었고.

시네큐브에 가 보니 한 시간쯤 뒤에 시작하는 회차가 있었다. 표를 사고, 칸 광고 필름 페스티벌 상영에 맞춰 전시중이라는 광고 포스터들을 찬찬히 뜯어 보았다.

영화는 우디 앨런 팬이라면 무척 즐겁게 볼 만한 로맨틱 코미디였다.

발은 한때는 오스카 상을 두 번이나 탈 만큼 '잘 나갔으나' 지금은 탈취제 광고나 찍으며 생계를 잇고 있는 감독이다. 까탈스럽기 그지없고, 온갖 심리적 질병을 앓고 있으며, 혼자 자기가 싫어서 머리 빈 무명 연극 배우와 동거중이다. 이런 그에게 재기의 기회가 찾아온다. 억만장자 영화사업가와 약혼한 전처가 자신이 기획한 상업영화에 발을 적임자로 추천한 것이다. '딴 남자와 바람나 버린' 전처를 만나는 것도, '돈만 많은 치사하고 더러운 놈인' 전처의 약혼자를 만나는 것도 싫지만 예술 어쩌고 해도 일단 먹고 살아야 하는 법. 발은 투덜거리면서도 '잠들지 않는 도시'라는 리메이크 영화 감독직을 맡기로 한다.

하지만 돼지구제역부터 흑사병까지 온갖 희귀한 병에 다 걸렸다고 떠들어대는 그가 이런 커다란 스트레스를 쉬 견뎌낼 리 없다. 결국 그는 너무 긴장한 나머지 촬영 개시를 이삼 일 앞두고 갑자기 눈이 멀어버리고 만다. 스트레스성 실명이란다! 시신경에도 뇌에도 아무 이상이 없는데, 간신히 감독할 영화를 잡은 지금 앞이 안 보이다니 그야말로 눈앞이 깜깜할 일이다. 결국 그와 에이전트는 일단 시침 뚝 떼고 촬영에 나서기로 하는데.....

우디 앨런이 만들어낸 신경질적이고 괴팍한 감독 이미지는 무척 매력적이었다. 인물 자체가 아니라, 그 현실감 있는 이미지가 매력적이었단 말이다. 안절부절 못하는 모습과 통통 튀는 대사 등을 통해 인물에 분명한 성격을 부여하는 과정이 흥미로웠다.

완급 조절을 조금 더 잘 했다면 훨씬 더 재미있는 영화가 되었으리란 생각은 들었으나 - 예를 들어, 에스콰이어 기자의 경우 역할에 비해 설명이 많았고, 아들 쪽은 반대로 역할에 비해 설명이 적었다. - , 가볍게 웃을 만한 장면이 많았고, 무엇보다도 엔딩이 통쾌해서 멋있었으므로 만족했다. 우디 앨런은 정말로 미국적인 감독이었달까나.

영화를 본 후 교보문고에 잠시 들렀으나, 폐점 시각이라 책은 거의 보지 못했다. 외서 코너 앞에서 요리, 건축, 미술 외서 일부를 70% 할인 판매 중이다.

2005년 10월 20일 목요일

2005년 10월 21일 금요일 : 화실 이야기

취미 수업의 좋은 점 중 하나로 커리큘럼과 별개로 원하는 작업을 시도해 볼 수 있다는 것을 들 수 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그것이 중간 과정을 생략할 수 있다는 뜻은 아니다.

(지난 주)

제이: 선생님, 저 도장 한 번 파 볼 수 있을까요?
선생님: 아, 전각이요? 그래요, 그럼. 어디보자......화실에 제가 연습하던 재료와 도구가 있으니까 일단 다음 시간에는 그걸로 조금 해 보죠. 재료는 여기 화방 말고 인사동 가서 사셔야 하거든요. 필요한 것 써 드릴게요.
그런데 소연씨, 전각도 선긋기 연습부터 하셔야 해요.
제이: 꾸웨엑!

(이번 주)
선생님: 자, 이제 다 갈았으니까 여기에 연필로 선을 일정한 간격으로 그으세요. 파낼 부분을 그리셔서...(중략)
-한참 후-
선생님: (제이의 직선연습 도장 찍은 것을 보고) 으음. 소연씨는 손에 힘이 없어요. 여기, 긁힌 자국 같은 거 보이시죠. 돌이 깨지는 건 괜찮아요. 자연스러워 보이도록 일부러 모서리를 날리기도 하거든요. 그런데 이렇게 손이 잘못 나가거나 힘을 제대로 못 줘서 긁힌 부분은 미숙해 보여요.
제이: 크흑
선생님: (위로하며) 울퉁불퉁한게 마치......유적지에서 파낸 몇백 년 된 유물 같은 독특한 느낌은 있어요.

2005년 10월 20일 목요일 : 세일러문과 제일러문

제이: (부엌에서 물을 따르며) 그럼 위대하신 제이님은 밀크티~를 드시겠어요.
어머니: (한숨을 쉬며) 가끔은, 정말 대책이 필요한 상태인 딸을 방치해 두고 있는 게 아닌가 싶어.
제이: 지금의 저 정도는 괜찮아요. 제가 어제 세일러문을 봤거든요. 세일러문이 자기 입으로 "귀여운 세일러문~"어쩌고 하는데, 소름이 쫙 돋더라고요. 그에 비하면 저야 뭐.
어머니: 너랑 별 차이 없잖아.
제이: 저, 저는, (당당 포즈를 취하며) 저는 코스프레를 안 하잖아요!
어머니: 아무래도 이대로 둬선......

2005년 10월 13일 목요일

2005년 10월 9일 일요일

2005년 10월 9일 일요일 : 베개

어머니로부터 전해 들은 얘기.

조금 전, 어머니께서 안방에 들어가시니, 아버지께서 문제의 뒷통수 베개를 목에 끼우고(...) 앉아서 티브이를 보고 있으시더란다.

어머니: (베개에 주목하며) 어머, 당신 뭐해요?
아버지: 이렇게 쓰는 거 아이가? 소연이가 이러고 다니던데......
(베개 때문에 불편한 목을 갸웃거리시며) 그런데 이게 대체 뭐에 좋다는 건데?
어머니: 아하하하하 ㅠ_ㅠ 소연아아아 너어어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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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교훈: 너무 그럴듯한 장난은 치지 말자.

2005년 10월 7일 금요일

2005년 10월 7일 금요일

0. 일기를 쓰다가 날렸다.

1. 졸린데 못 자고 있다.

2. 스캐너가 고장났다. '호에로 펜' 10권에서 일기에 올리고픈 부분이 있어, 스캐너 전원을 켰다가 알았다.

3. 다양한 유사 직업군에 적용 가능한, 문제의 대사는 다음과 같다.

"하.....하나 끝났다......
......(하아 하아)
......(하아 하아)
하지만......스케줄 상으로는 두 개를 끝냈어야 하는데.......

그만.....연재 때려 칠까?!
그만.....만화가 때려 칠까?!
지금 만화가를 때려 치면......
......자도 되는데!!"

4. 때려 치다(x) 때려치우다(o)

5. 맞춤법 하니 생각나는데, 우리말 중에 '고드름장아찌'라는 단어가 있다. 언행이 싱거운 사람을 농으로 일컫는 말이라 한다.

6. 고드름 하니 생각나는데, 우리말 중에는 '불땔꾼' 이라는 단어도 있다. 이는 심사가 비뚤어져 남의 일에 시비를 걸거나 훼방을 놓는 사람을 뜻한다. 간단히 말하면 악플러 남을 화나게 하는 사람이다. 두 단어 다 떠오르는 이미지가 굉장히 강렬하다. 고드름으로 담근 장아찌라든가; 남의 가슴에 장작을 쑤셔넣고 불씨를 후후 부는 사람;;이라든가......

5. 7일~8일에는 학과 총엠티를 간다. 8일 화실 수업은 선생님의 사정으로 14일로 연기.

6. 화실 수업 하니 생각나는데, 최근에는 집에서 그림을 열심히 그렸다. 파스텔을 써 보고 있다. 오늘 낮에는 학교 도서관에서 파스텔 스케칭에 대한 책을 읽어 보았는데, 혼자 그릴 때는 놓치기 쉬운 부분을 알 수 있었다.

7. 오늘 낮 하니 생각나는데, 전공 수업 들어가기 전에 음악감상실에 들어가 멘델스존 현악 8중주 (op.20)을 신청했더니 틀어 주었다. 이 곡은 정말로 아름답다. 멘델스존의 곡 대부분이 그렇지만, 특히 이 곡에는 '살아있는 음악'이라는 말을 절로 떠올리게 하는 데가 있다.

8. 멘델스존 하니 생각나는데, 지난 주 토요일에 멋진 오디오가 들어왔다. 막내외삼촌 댁에 있던 물건이다. 그렇잖아도 늘 괜찮은 오디오가 있었으면 싶었던 차라 기쁨의 춤을 추며 받았다.

9. (하아 하아)

2005년 10월 3일 월요일

2005년 10월 3일 월요일 : 와우 북 페스티벌

친구 전션과 함께 와우북페스티벌 구경을 갔다. 찾고 보니 화실 바로 윗 골목이었는데, 정확한 위치를 가늠하지 못해 약도를 들고서도 한참을 헤멨다. 홍대 근처에 자주 오는 나도 이럴진대 싶어 전션에게 도착하는 대로 전화하라고 했으나, 결국 전션도 홍대 캠퍼스 앞까지 가서 헤메다 오고 말았다.

북페스티벌은 아주 재미있었다. 먼저 다녀 온 아우님이 꼭 한번 가 보라며 추천할 만 하더라. 구판 서적을 대폭 할인 판매하거나 엽서며 포스터를 나누어 주는 이벤트를 하는 출판사가 많았다. 구판이 아니지만 정가보다 꽤 낮은 가격에 나온 책도 꽤 있었다. 슬슬 황홀경에 빠지려는 찰나, 전션이 불쑥 내 팔을 잡았다.

전션: (팔을 잡으며) 정션, 잠깐만.
나: 으응?
전션: 세 번 생각해.
나: (움찔)
전션: 알겠지, 진정하고, 세 번 생각하는 거야.

책은 몇 권 사지 않았다. 영화 서적 몇 권과 한길사 아트&아이디어 시리즈는 이번 기회에 마련해 두는 편이 좋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없지 않지만, 사실 사 놓는다 해서 당장 읽지도 않았을 터이다.

나: (책을 훑어보다가) 으~하하, 이것 좀 봐.
전션: 뭔데?
나: (구연동화투로) '이름이 멋있다고요? 그런 이야기를 많이 들었어요. 하지만 나를 직접 만나 본 사람들은 나더러 잘생겼다고 칭찬하기에 바빠서 이름이 멋있다는 이야기는 할 사이가 없어요. 나를 잘 아는 친구들은 잘생겼다는 칭찬도 안 해요. 인간성 좋고 마음씨 곱다는 칭찬하느라고 바쁘기 때문이지요.'
전션: 아하하, 이 사람 [말 하는 게] 정션이랑 비슷하네.

......샀다. (곽영직, 보어가 들려주는 원자모형 이야기, 자음과 모음)

부스를 모두 둘러 본 다음에는 WAPPS에 가서 스프와 샌드위치, 크레페를 먹었다. 가볍게 끼니를 때우고 싶을 때 갈 만 한 곳이다. 크레페나 샌드위치(소스 과다)보다는 스프+와플을 추천.

최근 며칠간 계속 가슴이 돌에 눌린 듯 답답했는데, 마음 맞는 친구와 만나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고 나니 숨 쉬기가 좀 편해졌다. 앉아서 "배불러~행복해~"하며 흐느적거리다가 여섯 시쯤 귀가했다.

2005년 10월 2일 일요일

2005년 10월 2일 일요일 : '당신이 연애에 실패하는 이유는?'

야후 심리웹진 구냥
(조프위키에서 보고 해 봄.)

내 결과

2005년 10월 1일 토요일

2005년 10월 1일 토요일

금요일 저녁에는 우이동으로 학번 엠티를 갔다. 비가 많이 왔는데, 신행이가 차를 가져온 덕분에 편하게 갔다. 특히 나는 제일 먼저 탄 덕분에 송구하게도 조수석에 앉았다. 보미, 도호, 은영, 영민이와 내가 신행이의 차를 타고 가다가, 아르바이트를 마치고 나온 경훈이를 동부이촌동에서 태워 일곱 명이 함께 비 오는 금요일 오후 도로를 달렸다. 교통 상황이 무척 나빠서 우이동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열 시 쯤이었다. (그 이후였을지도 모른다.) 가던 중에 까르푸에 들러 간단히 장을 봤다. 과제 때문에 학교에서 고생하던 자은이와 미진이가 열한 시쯤 되어서 왔고, 호정이도 자정 다 되어서 택시를 타고 도착했다. 즉, 도합 열 명이나 왔다!

고기 구워 먹기 귀찮다며 사 간 안주거리나 통닭 등을 적당히 먹으며 적당히(?) 놀다 보니 시간이 금세 갔다. 자은이와 미진이가 피곤한 와중에도 9~10월에 생일이 있는 동기들을 위해 파티를 하자며 초코파이를 사 왔는데, 이 초코파이들은 군에 다녀 온 동기들에게 비참한 군 시절을 되새기게 하는 매개체가 되고 말았다. 안타까웠다. (...) 새벽 두 시쯤 자려고 누웠으나, 방이 더워 제대로 잠들지 못하고 서너시까지 뒤척였다. 그 다음부터는 자다 깨다 하며 앉아 있었다. 안타까운 일이 몇 가지 더 있었으나 따로 써 남기지 않아도 좋을 듯 하여 생략한다. 일곱 시에 버스를 타고 먼저 귀가, 집에 도착하자마자 씻고 쓰러져 정신없이 잤다. 동기들고 몇 년 만에 함께 간 여행이었는데, 멀뚱멀뚱 앉았다가 주섬주섬 먹다가 꾸벅꾸벅 졸다가 어영부영 귀가해 버리다니 싶어 조금 속상했다. (게다가 그렇게까지 조심했는데 또 머리가 아프고 열이 난다!) 그래도 반가웠다. 나서서 사람을 모을 만한 도량이 없는 사람이다 보니, 이런 자리를 마련해 준 것이 무척 고마웠다.

오후와 저녁에는 화실에서 그림을 그렸다. 선생님과 화방에서 만나 소묘 재료를 몇 가지 골랐다. 오늘은 파스텔을 써 보았는데, 생각보다 훨씬 표현이 다양해서 놀랐다. 학창시절에는 종이에 깎아 턴 다음 티슈로 문지르는 것만 했었는데. 목탄과 파스텔을 붙들고 씨름하다 보니 손가락 끝이 까맣게 되었다.

아우님이 친구 아란양과 와우 북 페스티벌 구경 + 연극 관람을 하러 홍대 쪽에 왔다. 함께 저녁을 먹으려 했으나 서로 시간이 잘 맞지 않아, 아우님은 다른 일정을 위해 귀가하고 아란양과 나는 '왑스'라는 카페테리아에서 잠깐 만났다. 나는 스프와 와플을 먹었고, 아란양은 시장하지 않다기에 커피 한 잔. 후식으로는 아래 층 하겐다즈의 아이스크림을 먹었다. 새로 등장한 메뉴 '멜론'은 느끼하지 않고 꽤 맛있다. 아란양의 '설탕에 푹 절여 달게 만든 참외 맛'이라는 설명이 묘하게 납득되는 맛이랄까나. 오랜만에 만났으니 좀 더 이야기 나눌 수 있었다면 좋았을 텐데 화실에 돌아가야 했던 터라 금방 헤어졌다.

2005년 9월 30일 금요일

2005년 9월 30일 금요일 : Which Alcoholic Drink Are Yo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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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9월 26일 월요일

2005년 9월 25일 일요일, 26일 월요일

24일 일요일에는 사회대 도서관 3층, 노트북실에 있었다. 오래 앉아 있은 데 비해 속도는 그리 나지 않았다. 이 때부터 슬슬 임계점에 도달하고 있었던 듯 하다. 자리에서 일어나며 보니 맞은 편 자리에 자은이가 앉아 있었더라. 간단히 인사를 하고 버스를 타고 집에 왔다. 아무래도 몸이 피곤한데 어떻게든 해야 할 일은 잔뜩 남아 있어, 궁여지책으로 녹두거리에서 만화책을 한 권 빌렸다. 월요일에 나를 학교까지 가게 할 미끼였다. 사소한 일을 미적지근하게 미루어 놓기 싫어하는 성격이라 은근히 효과가 있다. 나이가 들면 자아와 주체에 대한 심오한 깨달음을 얻을 줄 알았는데, 천만에, 이런 요령만 는다.

대충 손에 닿는 책을 집어 온 탓인지, 만화는 영 시시했다.

밤에는 조금 불쾌한 일이 있었다. 차곡차곡 쌓인 피로가 벼랑 끝에서 휘청휘청하다가, 아무래도 좋을 타인의 별 것 아닌 무례한 언동에 떠밀려 휙 하고 낭떠러지 아래로 떨어져 버렸다. 계속 컴퓨터 앞에 앉아 있었다면 경솔한 실수를 했을 지도 모르는데, 때맞춰(!) 인터넷 연결이 끊어졌다. 모뎀이 고장 난 것 같았다. 그림 좀 그리고, 책 좀 읽다가 잤다. 열이 조금 나는 것 같았으나 재어 보지 않았다.

25일 월요일에는 눈을 딱 뜨자마자, "아, 큰일났다." 는 생각이 뇌리를 스쳤다. 코와 목이 아프고 얼굴에서 열이 났다. 일어나서 약을 한 병 마시고 다시 침대에 들어가 이불을 덮어썼다. 다행히 감기 같은 게 아니라 가벼운 몸살 기운 정도였는지 오후가 되자 서서히 상태가 좋아졌다. 통신사에 전화하고, 빨래를 널고 진공청소기를 돌리고 새로 산 딜마 브랙퍼스트로 밀크티를 만들어 치즈케익과 함께 먹었다. 크리스토퍼 에클스턴이 나오는 닥터 후(Doctor Who) 에피소드를 한 편 반 보고, 누워서 노다메 칸타빌레를 복습하고, 일요일 오전에 사 둔 목탄으로 내 방을 한 번 더 그렸다. 밤에는 참으로 오랜만에 분리수거도 했다. 만화책은 연체했다. 하루가 조용히 지나갔다.

2005년 9월 24일 토요일

2005년 9월 24일 토요일

승민오빠와 홍대 앞 소노(sogno)에서 점심식사를 했다. 열한 시 반 개점인 줄 알고 갔으나 열두 시 개점이라 앞에서 좀 기다렸다.

[사진 추후 정리]
나는 뇨끼, 오빠는 버섯리조또를 먹었다. 아무래도 뇨끼는 소노보다는 치뽈리나 쪽이 한 수 위다. [제니스와 같은] 이 곳의 티라미수는 참 맛있지만.
준비한지 반 년쯤 된 오빠 생일 선물을 드디어(!) 드렸고, 내가 좋아하는 린트 다크씬을 몇 통 받았다. 비상식량이 바닥나던 참이었는데 다시 초콜릿이 생겨서 기뻤다.

화실 수업이 있어 식사만 간단히 하고 헤어졌다. 학교 일정이 예상보다 훨씬 빠듯하다 보니 따로 시간을 내기가 어려워, 이번 주 부터 화실 수업을 토요일 점심/저녁으로 바꾸었다. 개강 이후 피로가 누적되고 있던 터라 몸은 꽤 힘들었지만, 그림 그리기는 무척 재미있었다. 수업 말미에 처음으로 목탄을 써 보았는데, 연필과 느낌이 전혀 달랐다. 다음 주에는 선생님과 함께 화방에 가서 콩테, 파스텔, 색연필 등 다양한 소묘 재료를 마련하기로 했다. 세상에 그림으로 표현 못할 것이 없다는 선생님 말씀에 마음이 몹시 설렜다. 아, 그리고, 투시나 구도가 맞게 그리는 것도 중요하지만 풍경의 '인상'을 생각해야 한다는 말씀도 잊지 않게 적어 둔다. 보통 인물화에서는 당연히 사람의 '인상'이 전제되는 데 비해, 풍경에도 인상이 있다는 점은 간과되는 경우가 많단다.

화실에서 나와 보니, 비가 조금씩 내리고 있었다.

2005년 9월 23일 금요일

2005년 9월 23일 금요일

졸업앨범 사진촬영을 했다. 흐리다기에 걱정을 많이 했는데, 오후가 되니 햇빛이 쨍쨍했다. 다행이었다. 01학번 중에서는 자은이, 은영이, 현민이, 경훈이가 이번에 같이 사진을 찍었다. 다른 동기들도 많이 놀러왔다. 삼사 년 만에 다시 만난 98학번, 99학번 선배들도 제법 많아, 오랜만에 과 사람들을 실컷 만났다. 학부생으로 입학해, 내가 휴학하던 사이에 전공을 선택하고 들어왔다는 02학번 후배들도 여럿 있었는데, 대부분 얼굴도 모르겠더라.

실 촬영은 몇 시간 걸리지 않았는데, 은근히 더운 날씨에 이리저리 몰려다니다 보니 쉬 지쳤다. 동기들과 학생회관 매점에서 음료수와 빵을 먹으며 잠깐 숨을 돌렸다. 나 역시 타과 대학원 진학을 진지하게 고려하고 있는 상황이다 보니, 사회학과 대학원 입학을 준비중이라는 현민이의 이야기가 특히 참고가 되었다. (공부를 열심히 해야 한단다.) 졸업사진은 [아직 학사과정이 몇 학기 남았지만] 더 미루지 않는 편이 좋겠다는 생각에 올해 찍었는데, 재미있었고, 할 일을 하나 끝낸 것 같아 후련하기도 했다.

다섯 시 반 쯤 귀가해 잠시 쉬었다가, KBS에 'TV 책을 말하다' 방청을 하러 갔다. KBS홀이 보여서 벨을 눌렀는데, 버스는 한참 더 가서 국회의사당 앞에 가서야 섰다. 방송국을 걸어서 찾느라 꽤 고생했다. 저녁 일곱 시 반의 여의도는 놀랄 만큼 황량하고 컴컴했다. 동진님과 상훈님이야 오시는 줄 알았는데, 뜻밖에 f님과 s님도 뵈어 무척 반가웠다. 들어가는 길에, 난데없이 질문자로 간택(?)되어 녹화하는 내내 질문 거리를 생각해야 했다. 그 덕분에 실제 녹화 내용이 어땠는지는 거의 기억이 나지 않는다. -_-; 옆 자리에 올슨 스콧 카드를 좋아한다는 여자분이 앉으셨는데, 좀 더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으면 재밌었겠다. endecorb님과도 인사 나눌 기회가 있었다.

방청 기념 선물로 '스타쉽 트루퍼스'와 '뉴로맨서'를 받았다.

돌아오는 길에는 상훈님과 함께 동진님의 차를 타고 왔다. 본인도 종일 회사에서 근무하셨으면서, "아이스 카페 라떼에에에에~커피 마시고 싶어라아. 목말라요오오."라고 외치는 나와, "아~배고파. 한 끼도 못 먹었네. 배고파라."를 연발하시는 상훈님을 태워다 주기까지 하시느라 고생하셨다.

2005년 9월 22일 목요일

2005년 9월 22일 목요일 : 근황

화요일에는 새 책장이 왔다. 이 집에 온 다음부터, 책장이 거실에 있다 보니 햇살에 표지가 많이 바랬고, 수용한도를 진작에 넘은 자리에 억지로 집어 넣은 책들이 가로 세로 대각선으로 비죽이 나와 집 전체가 지저분해 보였었다. 상황을 안타깝게 여기신 어머니께옵서 꿈에 그리던 유리문 달린 책장을 하나 마련해 주셨다. 그래서 화요일 저녁에는 새로 책 정리를 했다. 샀다는 사실마저 잊고 있던 책이 여러 권 나왔다. 책이란 역시 난감하기 그지없는 물건이다. 서랍에 있던 책을 책장에 넣고 나니 여기 저기 늘어서 있던 자질구레한 물건들을 서랍에 넣을 수 있게 되어, 방도 꽤 깔끔해졌다.

수요일에는 원고를 했던......것 같다. 밤에 아우님이 마트에 가니 필요한 물건이 있거든 말하라기에, 슬라이스 치즈를 한 팩 부탁 했더니 기꺼이 사다 주었다.
아우님은 진정한 강자다.

목요일에는 학교에서 수업을 듣고 사회대 도서관에서 일하다 왔다.

2005년 9월 20일 화요일

2005년 9월 20일 화요일 : [잡기] 꿈

호그와트 마법 스쿨을 배경으로 하는 해리 포터 꿈을 꾸었다. 이 꿈에서 해리 포터의 나이는 대략 16세 쯤? 내가 읽다 말았던 5권 정도거나, 그보다 한두 살 많아 보였다. - 그러니까, 나름대로 진지하고, 애들도 좀 끌고 다니는 나이.

한국인 남녀학생 두 명이 어찌저찌해서(그 매커니즘은 나오지 않음) 호그와트에 전학생인 척 하고 들어갔다. 이건 공간상 뿐 아니라 시간상으로도 과거로의 이동이라, 얘들은 호그와트에서 앞으로 일어날 큰 사건들은 대충 알고 있었다. 그래서 볼드모트를 아무렇지도 않게 이름으로 불러 다른 학생들을 놀라게 하기도 했다. 그런데 별 의심 없이 낯선 곳에서 온 동료 학생들로 받아들이는 다른 아이들과 달리, 해리 포터는 이 학생들을 스파이나 적이 아닐까 수상히 생각했다. (그러게, 그럴 나이라니까.) 그래서 수상해보이는 여학생에게 질문했다.
"너 악센트가 있는 것 같다?"

그러자 학생의 반응:

"종로학원 다니다 왔으니까 그렇지.(중얼)"

2005년 9월 19일 월요일

2005년 9월 18일 일요일

2005년 9월 18일 일요일 : [잡기] Wasmannia auropunctata

Wasmannia auropunctata애집개미, 혹은 작은 불개미라고 불리는, 밝은 붉은색을 띄는 아주 작은 개미다. 아메리카 대륙이 본거지였으나 세계화의 물결을 잘 타서 지금은 우리나라를 포함, 전 세계에 널리 퍼져 있다. 이 불개미는 공격성이 강해 다른 곤충들을 몰아내는 편이라 - 소위 invasive ants라 불리는 계열이다 - , 일단 불개미가 동네를 한 바퀴 휩쓸고 나면 웬만한 개미나 작은 곤충들은 싹 사라져 버린다. 보통 하는 얘기로, '개미 있는 집에는 바퀴벌레가 없다'고 할 때의 개미가 이 애집개미이다. 인간도 닥치는 대로 물어뜯기 때문에 아파트 같은 곳에 일단 생기면 상당히 곤란해진다. 수입목재나 침대 같은 것에 실려 들어오고, 도시에서는 보통 음식을 가져다가 먹고 산다.

작은 불개미의 생태에서 가장 흥미로운 부분은, 이 불개미가 자연 클론이라는 것, 다시 말해, 자신을 복제하는 방식으로 번식한다는 점이다.

일반적인 개미는 발생 과정에 따라 세 가지로 나뉜다. - 여왕개미(2n), 수캐미(n), 일개미(2n). 여왕개미는 혼인비행 여부와 상관없이 평생 무정란을 계속해서 낳는데, 이 중 수정을 거치지 않은 본래 상태의 무정란에서 일배체(n)의 유전자를 가진 수캐미가 나온다. 혼인비행 후 낳은 알, 즉 유성생식된 알이 곧 이배체(2n)인 일개미이다. 일개미는 모두 암컷이지만 생식력이 없다. 생식력이 있는 여왕개미는 특정 시기에만 생성된다.

그런데 작은 불개미의 경우에는 특이하게도 여왕개미가 처음부터 두 가지의 알을 낳는다. 첫째는 보통 개미와 같은 무정란(n)이고, 둘째는 수정을 거치지 않은 이배체(2n)이다. 이 이배체 알들은 모두 본래 여왕개미의 유전자를 그대로 이어 받은 여왕개미의 클론들로, 자라서 여왕개미가 된다. 첫 번째 종류 - 일반적인 일배체의 알 -이 수정되면 일개미(2n) 혹은 수캐미(n)가 된다. 그런데 문제는, 알이 수정되면 당연히 그 유전자는 두 배(2n)가 되어야 하는데, 수캐미는 앞서 말했듯이 일배체이다. 그렇다면 나머지 절반의 유전자는 어디로 갔을까?

그냥 사라진다. -_-; 수정 과정에서의 아직 밝혀지지 않은 현상에 의해, 수캐미가 만들어질 경우 이 수정란에서 본래 여왕개미의 유전자가 모조리 제거되어 나간다. 달리 말하면, 모든 수캐미들 역시 클론이다.

작은 불개미의 여왕개미와 수캐미는 유전자적인 공통점이 전혀 없다. DNA 풀(pool) 자체가 다르다. 여왕개미와 수캐미 둘 다의 유전자를 가지는 일개미(2n)가 만들어지기는 하지만, 일개미는 그 유전자를 다음 세대로 전달할 능력이 없으므로 그 유전자 바스켓은 보존되지 않는다.

여기에 대해서는 아직 한창 연구가 진행중인데, 작은 불개미의 여왕개미와 수캐미는 사실 다른 종으로, 수캐미가 여왕개미의 무정란(n)을 숙주로 활용한다는 견해도 있고, 여왕개미는 일개미를 만들기 위해, 수캐미는 자신의 유전자를 보전하기 위해 서로를 활용한다는 견해도 있다. 작은 불개미는 지금까지 알려진 곤충들 중 암컷과 수컷이 모두 무성생식하는 유일한 케이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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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ew Scientist, July 2005
The Scientist, June 2005
Nature, June 2005
www.issg.org
Bert Hölldobler, Edward O. Wilson, [The Ants], Harvard University Press, 19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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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S에서 간단한 기사를 보고 흥미를 느껴, 더 알아보고 싶어 이것 저것 뒤져 보았으나 - 꿈에 개미 나올까 무서워서 이쯤에서 그만 두고 정리만 해 둔다. 특히 개미 해부도며 골격까지 잔뜩 실린 'The Ants'는 베고 잤다간 큰일 날 책이더라. 그냥 개미도 아니고, 바퀴벌레보다 오래 살아남을지도 모르겠다 싶을 만큼 질긴 데가 있는 작은 불개미쯤 되니, 무서워서 불개미만한 소름이 자꾸 돋는다.

2005년 9월 17일 토요일

2005년 9월 17일 토요일

사회대 도서관에 가려 했는데, 호우주의보란다. 며칠 전에 갑작스레 내린 폭우로 학교가 물에 잠기는 바람에 신발은 물론이고 무릎 아래가 몽땅 다 젖은 채로 여섯 시간이나 버텨야 했었다. 그 뒤로 비가 온다고 하면 학교에 갈 엄두가 안 난다. 산이라 해도 포장된 곳이 많이 배수가 용이치 않은지, 비가 조금 많이 온다 싶으면 물이 발등까지 차오른다.

추석 연휴 첫날인데 비가 많이 와서 귀성하는 사람들 고생이 심하겠다.

2005년 9월 16일 금요일

2005년 9월 15일 목요일, 16일 금요일

목요일에는 학교에서 늦게 귀가했다. 사회대 사물함을 쓸 수 있게 된 덕분에 등하교 부담이 많이 줄었다. 일 년여 만에 후생관에 저녁식사를 하러 갔는데, 학생회관과 달리 배식 시간이 이미 끝나 있었다. 낙담하여 식판을 들고 서 있는데, 텅 빈 식당 한 켠에서 식사를 하던 학생이 부른다. 가 보니 동기 미진이와 진우오빠였다. 미리 배식을 받아 놓고 뒤늦게 식사를 시작하는 바람에 지금껏 먹고 있단다. 흔쾌히 끼워 주기에, 젓가락만 들고 옆자리를 차지하고 앉았다. 밥도 밥이지만, 마음 씀씀이가 고마웠다.

개강하고 반 달이 지나니 실감나는 것이 두 가지 있는데, 첫째는 내가 두 달 동안 놀면서 바보가 되어 버렸단 점이고, 둘째는 세상에는 똑똑한 사람이 대단히 많다는 점이다. 물론 아는 것 많은 사람이 세상에 얼마나 많은지는 인터넷을 한 시간만 해도 대충 알 수 있다. 하지만 학교에서 받는 느낌은 '물리적' 충격이라고 해도 좋을 만큼 강렬하다. 선생님들이야 두 말 할 것도 없고, 동기들이나 선후배들을 보아도, 어쩌면 저렇게 많은 것을 알고 있을까, 어떻게 저렇게 총명하고 지혜로울까, 싶을 때가 적지 않다. 어떤 지적인 재능이나 폭, 깊이는 정말이지 '보인다'고 밖에 표현할 수 없을 만큼 또렷하고 분명하다.

금요일에는 화실에 갔다. 오후 수업이었는데, 추석 연휴에 일을 좀 해야 할 것 같아(사실은 '좀' 같은 부사를 붙일 만큼 한가한 처지가 못 된다.) 토요일 수업까지 당겨 하기로 했다. 꼬박 일곱 시간 동안 화실에 앉아 그림을 그리고 나니, 무척 예술적인 하루를 보낸 것 같아 뿌듯해졌다. 뿌듯한 하루를 더욱 예술적으로 마감하기 위해 한양문고에 가서 만화책을 몇 권 샀다.

2005년 9월 14일 수요일

2005년 9월 14일 수요일 : 아버지의 배신

싫을 때나 좋을 때나 나와 일 년 350일 이상을 함께 보내야 하는 만큼, 가족들은 내 화법에 대한 나름의 대응책을 가지고 있다.

1. 어머니 : 정론(正論)형
ex) 몇 주 전, 식사 후, 내가 휘리릭 차 끓이러 가 버리자.

어머니: 소연아, 먹고 나면 좀 치워야지.
제이: 아앗, 깜박했어요! 하지만 저의 무한한 매력은 이 정도 일로는 감소하지 않죠!
어머니: 그건 당연한데, 그거랑 식탁 치우는 건 상관이 없잖아.
제이: (......네, 상관 없어요. orz)

2. 아우님 : 요령형
ex) 지난 주말, 아우님 방에 사전을 빌리러 갔다가 디자인 수업 숙제를 구상하고 있는 아우님 발견.

아우님: (교재에 있는 색상표를 들여다보며) 언니, '시원한' 이미지가 좋을 것 같아, '순수한 소녀'이미지가 좋을 것 같아?
제이: 거기 있는 것 중에 골라야 하는 거야?
아우님: 응. 이걸 메인으로 해야 해.
제이: 그럼 '순수한 소녀'로 해. 언니가 여기 가만히 서 있어 줄게.
아우님: 헐. 그래. 그런데 언니, 나 남이섬 갔다 왔는데 괜찮더라. (후략)

십 분쯤 후, 나는 색상표 얘긴 까맣게 잊고, 내 방에 돌아와서 남이섬의 관광명소에 대해 약간의 지식을 얻었다는 것에 기뻐하며 사전을 찾아 보고 있었다.

3. 아버지: 허허형 -> 솔직형(?)
본래 아버지는 허허형이셨는데, 오늘 저녁에 배신하셨다.; 어머니가 뒤통수 부분이 뚫려 있는 폭신한 쿠션을 하나 사 오신 것을 보고,

제이: 이거 아기들 뒤통수 예쁘게 하는 베개네! (쿠션을 베고 누우며) 소연이는 한 살 이에요. 그래서 뒤통수 이쁘게 하는 베개를 써요.
아버지: 허허, 하이고, 간지러워라.
제이: 어, (배신감에 휩싸여) 아빠!
아우님: 언니, 아빠도 이번엔 너털웃음으로 넘어가지 않으시는데?
어머니: 아빠께서 뭐라셨는데?
제이: 간지러워라~하셨어요.
어머니: 어머, 웬일이시래. 솔직하시네.
제이: 흑, 아빠 배신자! (좌절하여, 베개를 목에 끼우고 부엌으로 달려간다.)

2005년 9월 12일 월요일

2005년 9월 12일 월요일

열 시가 넘어서야 어슬렁 어슬렁 일어났다. 볕 잘 드는 아우님 방에 가서 잠시 원고를 보고, 오후에는 어머니와 함께 나가 준 정장을 한 벌 샀다.

저녁에는 여의도 토니로마스에서 궁님과 식사를 했다. 건강 상태가 좋지 않으시다더니, 식사도 거의 안 하시고 안색도 나빠 걱정스러웠다. 이벤트 선물을 드디어(!) 드렸다. 즐거웠고, 식사도 맛있었는데 궁님이 하도 안 드시니 내가 잔뜩 먹어 버려서 나중에는 과하게 배가 불렀다. 집까지 데려다 주신 덕분에 편하게 왔다.

새벽에 비가 쏟아졌다. 깜깜한 밤, 바람에 창이 덜컹거리고 빗소리가 요란하게 울리자, 갑자기 너무 무서워서 침대에 무기력하게 누워 있을 수가 없었다. 네 시 정도까지 방문을 여닫고 베개를 들고 거실을 오가며 잠을 설쳤다. 두어 시간쯤 잤을까. 이럴 때면 악몽을 꿀 법도 한데, 희한하게도 베트남에 단체 여행을 가서 쌀국수를 먹는 꿈을 꾸었다. (-_-) 화요일 오전에는, 아우님이 깨워 준 덕분에 간신히 제 시간에 등교했다.

2005년 9월 10일 토요일

2005년 9월 10일 토요일




오리바베큐

지구정복비밀결사 모임이었다. '사월에 보리밥' 압구정점에서 모였다. 참석자는 아스님, 동진님, 종인님, 상훈님, 파란날개님, 경아님, 명비님, 라슈펠님, / 상현님, 루크님, 나 이렇게 열 한 명. 나는 약속 시각이 여섯 시인 줄 알고 먼저 도착해서, 마침 일찍 오신 아스님께서 굿판에서 받아오셨다는 떡을 먹었다.

식후에는 The Blue라는 술집에서 2차. 사월에 보리밥에서 200미터 남짓한 거리에 있는 곳인데, 어찌저찌 하다 보니 소망교회 블록을 한 바퀴 돌아서 갔다. 다른 분들은 먼저 들어가시고, 나와 동진님, 종인님은 비음주자를 위한 케익과 커피를 사러 도산공원 근처 케익집 가루(Garu)에 갔다. 인원 수가 많다 보니 일곱 가지 케익 중 여섯 가지나 살 수 있어서 기뻤다. 돌아가는 길에 커피빈에서 커피를 샀다.



가루 케익은 맛있기로 유명하다던데, 술판(...)에서 이것 저것 번갈아 먹다 보니 어느 케익이 무슨 맛인지 정확히 모르겠더라. 일단 초코 케익은 확실히, 무난하게 맛있었고, 위 사진에 나온 피라미드형 케익은 다른 케익에 묻혔다. 모카 케익도 추천할 만 했고, 아쉽게도 함께 사 간 커피와는 어울리지 않았던 홍차 케익도 함께 마실 차를 잘 고른다면 대단히 맛있겠더라. 특히 홍차 케익은 다음에 다시 먹어보고 싶었다.

종인님께서 오셔서 놀랍고 기뻤다. 오랜만에 뵌 루크님도 여전히 멋있었고. (히) 상훈님 왈, "여기(블루) 사람들이 우리보고 무슨 모임이냐고 자꾸 묻길래 정치모임이라고 했어요. 동호회 아니냐고 하는데, 우리가 무슨 동호회야. 정치 모임이지."
참석자 중 일부는

이런 모습으로

정치모임임을 주장하다가는 신고 당할 지도 모른다는 데 뜻을 같이했다.

오늘의 화제를 정치적으로 요약하자면: 디스크월드라는 행성 세력균형과 테리 프랫챗 시리즈간의 판도, 몇몇 불온서적의 내용과 열람 가능 장소, 불온서적 출판인들의 인터뷰, 자전거는업힐 당, 친일파, 히틀러식 인종구분, 육아, 스타벅스 시가(cigar), 그 외 밝힐 수 없는 중요한 화제들.

대단히 즐겁고 유쾌한 하루였다.

2005년 9월 8일 목요일

2005년 9월 8일 목요일 : 수원시립교향악단 제 157회 정기연주회

리하르트 슈트라우스 / 교향시 “영웅의 생애” 작품 40.
Symphonic Poem "Ein Heldenleben" op.40
안톤 드보르작 / 첼로 협주곡 나단조 작품 104
Cello Concerto in b minor op.104
지 휘 : 박은성
협 연 : 율리우스 베르거 (첼로)

'슈트라우스의 밤'을 주제로 슈트라우스의 '돈 키호테'를 연주한다기에 일찌감치 예매하고 손꼽아 기다렸던 수원시향 공연이었다. '돈 키호테'의 전곡 실연은 지금껏 들은 적이 없었을 뿐 아니라, 근래 다른 교향악단에서 기획한 것을 본 적도 없었기 때문이었다. 내 목적은 오로지 이 곡 하나였다. '돈 키호테'에 거의 홀린 나머지, 다른 교향시 '영웅의 생애'도 프로그램에 있다는 것에는 아무 관심도 없었다. 당일, 터질까봐 걱정 될 만큼 뚱뚱한 가방을 짊어지고 아픈 발을 끌고, 오로지 '돈 키호테'를 한 번 듣고야 말겠다는 일념으로 관악산과 우면산을 넘어 예당에 갔다.

프로그램이 변경되어 있었다.

발권대에 가서야 그 소식을 듣고 - 공연장 로비에 곡목 변경 안내가 붙어 있긴 했으나 유심히 보지 않고 발권대로 직행했었다 - 순간 눈 앞이 핑 돌았다. 너무 속상해서, 환불 받고 집에 가고 싶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그래도 산을 두 개나 넘어 왔는데 (미묘하게 왜곡된 표현) 어찌 그냥 가랴, 싶어 표를 받고 기다렸다. 갑작스런 곡목 변경에 대한 사과로 수원시향의 '환상교향곡' 녹음 CD를 주더라.

실 공연은 '영웅의 생애' -> 첼로 협주곡 순으로 진행되었다. 프로그램에는 반대로 나와 있다. 영웅의 생애가 뒤에 연주되는 편이 프로그램 구성상으론 자연스러울 터인데, 협주곡이 두 번째 곡으로 들어간 것이 시간상의 이유 때문 아닐까 - 갑자기 엉뚱한 곡을 연주하게 된 협연자의 입장을 생각하면 - 하는 생각을 잠깐 했다.

영웅의 생애는 여섯 부분으로 이루어진 교향시로, 순서대로 보자면 1)영웅, 2) 영웅의 적, 3) 영웅의 반려, 4) 영웅의 싸움, 5) 영웅의 업적, 6) 영웅의 은퇴 이다. 주제가 분명하고 흐름을 읽기 쉬우며, 그 덕분에 감정적으로 동조하기 쉽다는 것은 주제음악임을 고려할 때 분명 미덕이지만, 솔직히 말해서 나는 이 곡이 지나치게 자아도취적이고, [웅장하기보다는] 과장스럽다고 생각한다. 말 그대로 '취향이 아니야'란 느낌.

어쨌든 이번 공연을 통해 '영웅의 생애'의 진정한 깊이를 깨달아 음악적 경험의 폭을 넓혔다......면 좋았겠지만, 안타깝게도 나는 그런 일이 일어나기 전에 잠들어 버렸다. '돈 키호테'를 듣지 못하여 낙담한 마음에 며칠 분의 피로가 한꺼번에 몰아닥쳤다. 파트 2까지는 깨어 있었고, 3의 솔로 부분에서 잠깐 정신을 차렸으나, 파트 4와 5의 앞 부분은 아예 기억조차 나지 않는다. 깨어 보니 피날레를 시작하고 있었다. 덕분에 수원시향의 슈트라우스 연주에 대해서는 별다른 감상이 없다. c열 10번째 줄에 앉았는데, 음량이 좀 크고 불분명하게 들린 점이 불만이었다. 좀 더 뒷자리로 가서 앉을까 싶다가, 귀찮은데다 본래 정해진 자리를 뜨지 않는 성격이라 그냥 끝까지 같은 자리에서 들었다.

조금 다른 얘기로, 바이올린 솔로를 듣고 있자니 갑자기 서울시향의 전 악장, 신상준 님이 무척 그리워졌다. (수원시향 악장의 연주 때문은 아니다.) 요즈음은 뭐 하고 계실까. 시향이 단원을 새로 뽑고 지휘자를 바꾸어 대혁신했다는 소식이 들려도, 신상준 악장님이 안 계신다고 생각하니 어쩐지 공연을 보러 갈 마음이 들지 않는다.

휴식 시간 후, 드보르작의 첼로 협주곡이 시작되었다. 갑작스럽게 끼워 넣는 것 치곤 꽤 무게 있는 곡을 골랐다 싶었는데, 연주가 기대 이상으로 훌륭했다. 특히 묘하게 익숙한 3악장에선 즐거웠다. 연습할 시간이 충분치 못했을 터인데 지휘자와 단원들, 협연자 모두 눈에 띄는 동요 없이 곡을 탄탄히 이끌어가, 듣고 있자니 안심이 되었다. '돈 키호테'를 못 들어 속상했던 마음도 다 풀리고 기분이 그냥 좋아졌다. 좋은 음악이 가진 힘은 참으로 대단하다. 나는 버섯을 싫어하지만 버섯이 첨가된 '맛있는' 요리가 나올 경우 깨끗이 먹기도 하는데, 음악도 이와 비슷한 데가 있는 듯 하다.

첼로 협주곡이 끝난 후, 앵콜 전에 박은성 지휘자가 입을 열었다. 본래 돈 키호테를 하기로 하고 계속 연습해 왔는데 며칠 전에 첼로 독주자만큼이나 중요한 비올라 파트 연주자가 갑작스럽게 입원하는 바람에 부득불 프로그램을 변경하게 되었다며, 대신 '돈 키호테'의 피날레 부분만이라도 듣고 가시란다. 교향악단에 대한 '운명공동체' 비유가 실감 나는 사정이었다. '돈 키호테' 같은 곡 하나 준비하기가 여간 일이 아닌데......아깝구나, 아까워. 비올리스트도 다른 사람들에게 얼마나 미안하고 송구할까. 물론 이번에 연습한 것이 있으니 언젠가는 프로그램에 넣겠지만, 매번 조금씩 다른, '바로 이 순간'의 감정선이야말로 공연의 맛이거늘.

돈 키호테 피날레까지 듣느라 귀가가 늦었다. 너무 피곤해서 집에 오는 길에 컵라면을 하나 샀으나, 먹지는 않았다. 육체적으로 대단히 무리한 하루였고 - 그 때문에 금요일에는 오전 10시 반까지 정신없이 잤다 - 이런 저런 일이 있었지만, 좋은 공연, 노력한 연주였기에 만족했다.

2005년 9월 6일 화요일

2005년 9월 1일 목요일 ~ 6일 화요일

2005년 9월 1일 목요일강일이었다. 새벽 7시에 일어나서 1교시 수업에 들어갔다. 수업 시간에는 깨어 있는 데 성공했으나, 계속 멍한 상태였다. 아침 등교가 익숙치 않아 버스를 잘못 타거나 3분이면 갈 수 있는 건물을 10분 걸려 뱅글뱅글 돌아간 것도 한 몫 했다. 정치학 수업에 학생이 다섯 명 밖에 들어오지 않아, 폐강될까 걱정했다. 전공 수업에 동기들이 많이 들어와서 무척 반갑고 행복했다. 갓 제대한 친구들도 있고, 먼저 제대해서 복학해 있었으나 내가 학교에 나가지 않아 일 년이 넘도롯 못 보고 지냈던 친구들도 있었다.

2005년 9월 2일 금요일 동양철학개설 수업을 들으러 인문대에 가다가, 이번에는 버스를 바로 타기는 했는데 잘못 내려서 공대 연구실 근처부터 사범대 있는 곳까지 걸었다. 걷다 보니 잔디밭이나 산비탈이 나왔다. -_- 그렇게 고생해서 들어갔건만, 걸으며 계산해 보니 다음 수업인 경제원론 교실까지 제 시간에 갈 수 없겠어서 수강신청을 취소했다. 부담이 적어 인기강좌인 모양이던데- 학생들이 대단히 시끄러웠다. -전공도 아닌 교양 과목이니, 굳이 무리할 필요가 없겠다 싶었다.

경제원론 수업은 무척 마음에 들었다. 이틀 동안 걷고 걷고 걸어서 고달펐다.

2005년 9월 3일 토요일 낮에는 화실에 갔다. 저녁에는 EBS 다큐멘터리를 보았다. '다빈치 코드의 허와 실'이라는 디스커버리채널의 프로그램이었다. 구성이 난잡하고, 내용 정리가 잘 안 되어 있어 보면서 '그래서 대체 무슨 말이 하고 싶은 건데!'라는 생각이 들었다. 전체적으로 두서없고 주제없는 다큐였다.

2005년 9월 4일 일요일 집에서 쉬었다.

2005년 9월 5일 월요일 시내 카페(카페 뎀셀브즈/나무사이로)에 나가 원고를 하며 괴로워했다. 저녁은 동진님과 여의도 토니로마스에서 먹었다. 식후에는 직접 로스팅을 한다는 커피집 '주빈(Ju Bean)' 에 갔다. Bean과 賓을 연결한 상호는 영리했으나, 이 커피집이 입점한 건물명이 자그마치 '롯데캐슬 엠파이어'였다. 아니, 캐슬이나 팰리스에 간신히 적응했는데, 그에 더해 엠파이어란 말이냐! 그만해! '主賓 / 롯데케슬 엠파이어 2층'이라고 쓰인 명함이 참으로 무시무시했다.

2005년 9월 6일 화요일 남부지방엔 태풍 피해가 크다던데, 서울은 더웠다. 정치학 수업은 폐강 되지 않는 것이 확실하다던데 - 20명 이상 신청했단다 - 희한하게도 수업에 들어온 학생은 넷 뿐이었다. 수업은 모두 재미있었다. 일이 걱정되어 다른 것들이 손에 잡히지 않는다. 아니, 솔직히 말하면 일에도 손 댈 엄두가 안 난다. 저녁에는 일전에 찍어온 '나무사이로' 실내 사진을 보며 집에서 그림을 그렸다.

2005년 9월 1일 목요일

2005년 8월 31일 수요일

홈페이지 8월 이벤트 마감


2005년 8월 5일에 시작하여 15일 밤 11시에 마감한 8월 이벤트의 정답과 참여해 주신 분들의 답안입니다. 지금껏 이벤트를 할 때마다 '문제가 어려워서 풀기 싫다'는 말을 들었던 터라, 이번에는 난이도 조절에 신경을 쓴 결과 만점자가 네 분이나 나왔군요. 만세상이 아니라 만세운동상이 되었습니다그려.

귀한 시간을 내어 이벤트에 참여해 주신 열한 분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관심을 가져 주신 덕분에 무척 즐거웠고, 열흘 내내 두근두근 했답니다. 다음 이벤트에도 많이 참여해 주세요.

이벤트 상품으로는 캐모마일과 레몬 버베나 허브 티백을 보내 드렸습니다.

8월 이벤트 문제와 답


땅콩샌드 님의 답

tanus 님의 답 1(^^)1

야니 님의 답

바바라의 파마머리 님의 답

보영이 님의 답

용진 님의 답 1(^^)1

한재수 님의 답 1(^^)1

오빠 햄버거 님의 답 1(^^)1

mooniyun 님의 답

lemonade 님의 답

비밀 님의 답

(이 포스트의 댓글 금지는 이벤트 마감과 동시에 풀렸습니다.)

2005년 8월 30일 화요일

2005년 8월 30일 화요일

00학번 형기오빠와 압구정에 있는 롤집 야모야모(YamoYamo)에서 점심식사를 했다. 본래 약속은 한 시 반이었으나 양쪽 다 이런 저런 사정이 생기는 바람에 실제로는 오후 세 시가 되어서야 식사를 시작했다. 저녁에 라리에또에서 약속이 있어, 아우님에게 회원 카드를 갖고 있다면 학교에서 멀지 않으니 좀 가져다 달라고 부탁했다. 그런데 압구정에 있다는 얘길 제대로 하지 않는 바람에 지친 아우님의 일정을 꼬아 버렸다. 게다가 말 했다고 우기기까지 했다! (추후 확인해 보니 말 안 했더라.) 오후 내내 전전긍긍하며 반성했다.

식후에는 커피집에 가서 커피를 마시며 이야기를 했다. 혼자 움직이는 편이 익숙한 사람으로서, 영화는 이성과 보는 것이라는 형기 오빠의 생각이 독특하게 느껴졌다. 그러나 내가 혼자서 자유롭게 움직이기 좋아하는 것, 달리 말해 타인과 함께 영화를 보거나 시간을 보낼 '필요'를 그다지 느끼지 않는 것은 기본적으로 가족들과 함께 살며 아침 식사를 함께 할 수 있기 때문이라는 지적은 상당히 날카로웠고, 수긍할 만한 것이었다.

저녁에는 자하님, 진아님, 아스님과 식사를 했다. 점심이 늦었던 탓에, 맛있는 토마토치즈스파게티를 주문했는데도 제법 남겼다. 연예인과 티브이 드라마/영화, 한국/동양문화를 보는 시선의 문제, 요리 등에 대해 재미있는 얘기를 많이 들었다. 식후에는 펄베리에 가서 아이스크림. 대화는 즐거웠으나, 몹시 피곤하여 부득불 먼저 일어났다. 대화 중에 셰익스피어 이야기가 나왔는데, 말을 하다가 내가 '고전'을 글이 아니라 음악으로 생각하기 시작했다는 것을 깨닫고 내심 놀랐다. 세르반테스의 '돈 키호테'가 화제에 오르자 슈트라우스의 교향시를 생각했을 때까지만 해도 다음 주에 열리는 바로 그 곡 공연을 예매한 탓이라 여겼으나, '한 여름밤의 꿈' 에서는 멘델스존, '템페스트'에서는 베토벤을 먼저 떠올렸을 뿐 아니라, '템페스트'의 경우 그 내용을 생각하는 데도 상당히 시간이 걸렸다.

점심 식사와 저녁 식사 사이에 원고를 좀 하려고 했는데 화요일 일정이 계획대로 진행되지 않아 시간을 전혀 내지 못한 바람에, 수요일에 고생했다.

2005년 8월 30일 화요일 : 당신의 창의성 지수는?

당신의 창의성 지수는?(야후 심리웹진)

제 결과는

2005년 8월 29일 월요일

2005년 8월 29일 월요일 : EDIF 2005

[네 개 뿐인] TV 채널을 돌리다, 우연히 EBS에서 필리핀의 독재자 영부인 이멜다 마르코스에 대한 다큐멘터리를 하는 것을 발견하고 보았다. 운 좋게도 프로그램 앞 부분부터 거의 다 보았다. 이멜다 마르코스가 자신의 철학을 설파하고, 화사한 옷을 입고 사랑과 평화를 말할 때 까지는 좋았다. 야당 지도자 암살 장면이 나오고 화면에 시체가 보이기 시작하자 '이거 추해지겠는데.' 싶었다. 계속 보다 보니 망명길에 손주 기저귀 가방에 넣어 밀반출하려 한 수억 달러 어치의 보석, 밀랍을 입혀 잘 보존한 마르코스 전 대통령의 시신, 하원의원과 주지사인지 도지사인지 당선으로 정치계 입문에 성공한 딸과 아들이 나왔다. 척 봐도 미남 미녀인 그들은 지지자들이 내미는 사진에 사인을 하고, 티브이 인터뷰 프로그램에 나와 자신들의 어머니의 지혜로운 조언에 감사를 표했다. 남의 일 같지 않았다. 끝날 때 보니 '삼천 켤레의 구두로 남다: 이멜다 마르코스'라는 제목의 다큐멘터리였다. 내용도 대단히 흥미로웠고, '사실'을 조합해 '의견'을 만들어내는 다큐멘터리즘의 힘에 대해 새삼 감명받았다. 그 힘 때문에 다큐멘터리를 부담스럽게 - 정확히 말하면 무섭게 - 여기기도 하지만. 영상의 영향력은 때로, 너무나 명백하게 활자를 능가한다.

EBS에서 개최하는 국제 다큐멘터리 축제 EDIF 2005가 시작되었더라. 올해의 주제는 '생명과 평화의 아시아'로, 8월 29일부터 9월 4일까지 다큐멘터리 90여 편이 방송되고, 상영회 등 부대 행사도 열린다. 내친 김에 앉아서 빨래를 개며 '거장이 만난 채플린 : 베르나르도 베르톨루치의 <라임라이트>'라는 삼십 분 짜리 짤막한 프로그램도 보았다. 채플린이 마녀 사냥식 공산주의자 색출 정치적 문제에 휘말려 스위스로 망명하기 전, 미국에서 촬영한 마지막 영화인 '라임라이트'가 채플린의 작품 세계에서 갖는 의미를 간명하게 정리했다.

EIDF 2005 홈페이지
TV 편성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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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문화회관에서 '음악은 국력이며 미래의 희망이다'라는 제목의 청소년 음악회가 열린다. 공연명을 보는 순간 뒷덜미에 소름이 쭈삣 돋았다. 공연 소개를 읽고 나니 진심으로 무서워졌다. 우리는 '생명과 평화의 아시아'[에서/의/ 아닌] 어디로 가고 있는 것일까.

2005년 8월 28일 일요일

2005년 8월 28일 일요일 : 위대한 앰버슨 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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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출처: 필름 포럼 웹사이트


필름포럼에서 상연 중인 '여름 밤의 클래식' 프로그램, 오손 웰스(Orson Wells) 감독의 '위대한 앰버슨 가 (The Magnificient Ambersons, 1942)'를 보았다.

대략 19세기 후반-20세기 초반을 배경으로, 위세를 떨치던 상류 가문 앰머슨 사람들이 시대의 변화에 따라 몰락하는 모습을, Major Amberson의 손자인 '조지'를 중심으로 담담하게 그렸다. 보기 어렵지 않으면서 은근히 관객을 몰입하게 하는 영화였다. 영화 끝에, 캐스팅을 말로 소개하는 부분이 좋았다. 요새 만드는 영화도 이렇게 하면 재미있을 텐데.

영화 상영 전 로비에서 c님과 우연히 만났고, 집에 오는 길에는 [이번에도] 데이트 중이신 a님과 마주쳤다.

2005년 8월 27일 토요일

2005년 8월 27일 토요일


전채 (가리비)

스프

그린 샐러드

메인-양고기

후식

용진군과 삼청동에 있는 프렌치 레스토랑 아따블르에서 식사를 했다. 몇 달 전부터 계획해 두었던 점심이었다. 일전에 상훈님이 이 곳 양고기도 괜찮았다고 말씀하셨던 게 생각나서 메인으로는 양고기 갈비를 골랐다. 맛있는 음식을 먹으니 행복하구나. 전채부터 후식까지 야채 한 조각 남기지 않고 깨끗하게 비웠다.


인디언 차이

치즈케익

레몬쿠키

식후에는 나무사이로 광화문점으로 이동, 베르가못 차를 마시며 졸았다. 일전에 용진군과 신림점에서 먹어 보려다 실패했던 - 하필이면 사정상 케익을 굽지 못한 날이었다 - 치즈 케익도 먹었다. 동진님이 저녁에 아프리카 커피 시음회를 한다시기에, 나무사이로에 들렀다 가시라 청해서 셋이 함께 레몬 쿠키를 먹으며 놀았다.

다섯 시 쯤 일어나, 동진님(운전기사), 나(보스), 용진군(협박 당하는 사업가) 셋이 동진님의 차를 타고 시내 드라이브.(?) 나는 먼저 귀가하고, 용진군과 동진님은 압구정으로 갔다. 커피 시음회도 귀한 기회라 가고 싶었으나, 부산에 다녀온 후 여독이 풀리지 않았는지 줄곧 가벼운 몸살 기운이 있어 부득이 귀가했다.

2005년 8월 26일 금요일

2005년 8월 26일 금요일

수요일 저녁에 서울에 돌아와, 목요일에는 화실에 다녀온 후 집에서 쉬며, 일상 감각을 회복하기 위해 '달의 요정 세일러 문'을 몇 편 보았다. 세일러 문은 역시 S와 SuperS시리즈가 최고다.

금요일인 오늘은 부전공 신청 마감일이라 학교에 갔다. 가는 김에 교내 우체국에서 우편물을 몇 통 부치고, 중앙도서관에 도서 반납도 할 생각이었다. 오래 걸릴 일 같지 않아, 화실에 가기 전에 동진님을 잠깐 뵙기로 했었다.

하지만 마음 먹은 대로 잘 되지 않았다. 우체국과 중앙도서관 까지는 무사 통과했으나, 사회대에 가 보니 점심시간이란다. 점심 시간이 12:30 까지인 줄 알고 기다렸으나 그건 조교실 점심 시간으로, 과 사무실은 1시까지 쉬어서 한참 기다렸다. 한 시에 과사에 가니 과에서 맡은 부분을 처리해 주신 후, 사회대 사무실에서 학장인을 받으라신다. 사회대 사무실에 가서 도장을 하나 더 받고 나니 철학과에 제출해야 한단다. 1동부터 6동까지가 인문대이다. 철학과는 1동에 있을 줄 알고 열심히 걸었는데 - 농협 앞이 공사중이라 뱅글뱅글 돌아 갔다. - 가 보니 1동에는 국어국문학과, 영어영문학과 등이 있다. 2동에는 종교학과 등이 있다. 물어 봐도, 타과의 사무실 위치를 아는 경우는 드물어 별 도움을 받을 수 없었다. (나만 해도, 사회대 안에서 옆집인 인류학과와 아랫집인 심리학과의 위치밖에 모른다.) 결국 건물 여섯 채를 차례대로 돌았다. 철학과는 6동 4층에 있었다. -_-

부전공 신청서를 사회대에서 취합해 각 단대로 보내리라 생각해 허술히 준비한 때문에 제법 고생했다. 3동 쯤 가니 갑자기 사회복지의 한 길에 대한 열정이 불타올랐다.; 아니, 따져보면 세일러 문으로 현실 감각을 찾으려고 한 것 부터가 조금 문제였던 것 같기도 하지만......

동진님과는 저녁에 만나, 치뽈리나에서 식사를 했다. 후식으로는 하겐다즈에서 아이스크림. 금요일 저녁이라 홍대 주변이 몹시 붐볐다.

2005년 8월 24일 수요일

2005년 8월 24일 수요일 : 외주

[jay.pe.kr] Back in Seoul 님의 말:
제가 사실 바빠서
[jay.pe.kr] Back in Seoul 님의 말:
남부권까지 지킬 수가 없어서
[jay.pe.kr] Back in Seoul 님의 말:
지구지킴이 외주를 줬었거든요
[jay.pe.kr] Back in Seoul 님의 말:
근데 가서 봤더니
onesound groovy 님의 말:
호ㅑㄴ랸얄ㄴㄹㄹㄹㅇㄴㄹ
[jay.pe.kr] Back in Seoul 님의 말:
'다이나믹' 부산 '썬앤펀' 해운대 '드림배이' 마산이 되어 있더라고요
[jay.pe.kr] Back in Seoul 님의 말:
역시 외주수비의 한계랄까나 (한숨)
onesound groovy 님의 말: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onesound groovy 님의 말:
젇래젇ㄹ패젇래젇ㄹ

2005년 8월 21일 일요일

2005년 8월 21일 일요일

오전 8:44 기차로 부산에. 집에서 쉼.

22일 월요일 점심 동현님(송정해수욕장), 저녁 적어님(일마레)
23일 화요일 마산 정란, 김병선선생님
24일 수요일 오전 화성, 동현님 잠깐. 7시 경 귀가.

2005년 8월 18일 목요일

2005년 8월 17일 수요일 - 18일 목요일

(15일 밤에는 서울대입구에서 종우오빠, 형기오빠와 돈까스를 먹었다.)

수요일에는 학교 중앙도서관에 갔다. 새로 생긴 노트북 자리에 앉았는데, 도저히 일에 집중이 되지 않아 느린 노트북으로 딱히 하는 일 없이 놀았다. 오후 네 시쯤 되자 이렇게 시간을 보내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어 MSN 온라인이시던 진아님께 연락, 홍대 앞 상파울로에서 만나 두어 시간 수다를 떨었다.

목요일인 오늘은 낮 열두 시 쯤 KBS에서 하는 역사스페셜을 보았다. 박혁거세의 알이 발견되었다고 전해지는 나정(羅井)을 발굴했다는 내용으로, 대단히 흥미로웠다. 화실 갈 시간이 되어 마지막 부분은 보지 못했다.

한 달여 전, 태터툴즈의 '통계보기'를 보면 어떤 검색어로 이 블로그에 들어왔는지 알 수 있다는 것을 뒤늦게 알게 되었다. 그 뒤로 무료할 때면 어떤 검색어에 이 블로그가 잡혔는지 보곤 했는데, 최근 말러 교향곡이니, 슈만 연습곡이니, 강남심포니니 하는 음악 관련 검색어가 꽤 늘어나서, 내심 '개학할 때가 되어서 숙제들 하는 모양인가'라는 비뚤어진 의심을 품고 있었다.

그런데 드디어 비뚤어진 의심을 확고히 하는 검색어가 등장했다. : " 베토벤 합창 교향곡 방학숙제"

(...)

2005년 8월 16일 화요일

2005년 8월 16일 화요일 : (영화)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

더글라스 아담스 원작,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 영화 시사회에 갔다. 상준님께서 초대해 주신 덕분이다. 늦을까봐 차를 타고 갔는데 종로에서 길이 몹시 막혀, 영화관까지 혼신의 힘을 다해 뛰었음에도......조금 늦었다. OTL

'은하수~'는 26일부터 필름포럼에서 단관 개봉한다. 도대체 영화가 어떻기에 이렇게 조용히 나오나 싶었는데, 실제로 보니 아무 문제도 없었다. 아니, 사실은 정말 심각한 문제가 있었다. - 원작의 정서에 충실했다. 보는 내내 '아니, 이렇게 바보스러울 데가!' 하고 낄낄 웃었다. 원작의 허무개그와 바보스러움(silliness ; stupidity가 아니다.)을 최대한 살려 만든 괴작 작품이었다.

영화는 히치하이커 전권에서 조금씩 따서 만들어졌다. 1권의 '집 철거'에서 시작하여, XXXXX까지 이어지는 줄거리는 원작을 읽지 않은 사람에게는 좀 어이없이 보일 수도 있겠다. 전체적인 영상화 정도는 꽤 만족스러웠다. - 우울한 로봇 마빈의 생김새와 목소리가 일품이고, 물렁물렁한 바벨피쉬, '순수한 마음'호의 엔진 가동시 변신 모습, 행성 공장 등도 재미있다. 대통령 역시 진짜 얼간이다.

특히 영화 초반 나오는 픽토그램들이 무척 재미있다. 끝까지 넣었으면 좋았을 텐데, 중반부턴 그냥 영화로 진행되어 아쉬웠다. 또한 진행이 난삽하여 중반에는 조금 지루한 느낌이 들기도 한다. 잘 못 만들어서라기보단, 책이나 영화나 '원래 그렇다 보니. '란 느낌. 원작을 본 사람이라면 틀림없이 재미있게 볼 텐데, 그렇지 않은 경우에는 유머 취향에 따라 평이 갈릴 듯. 장르 팬으로서 평하자면, 단관으로 잠깐 개봉하기에는 무척 아까운 영화다.

시작할 때와 끝날 때 'So long, and thanks for all the fish'라는 경쾌한 노래가 나오는데, 무척 마음에 들었다. OST를 구할 수 있다면 사고 싶다. 크레딧 올라갈 때 쿠키가 있으니 영화가 끝났다고 일어서지 말고 끝까지 기다려 보시길.

영화를 본 후에는 fool님과 은림 님을 뵙고 잠깐 인사한 후 동진님과 압구정에 갔다. 원래는 커피집에 가려고 했는데, 차가 몹시 밀려 압구정에 도착하니 이미 저녁 시간이라 중국음식점 '봉주루'에서 저녁식사부터 했다.


꿔바로우

사천짜장

하도 상호가 희한해 가 본 봉주루는 실내 분위기가 무척 좋았으나, 음식은 애매했다. 꿔바로우와 사천짜장을 먹었는데, 꿔바로우는......케첩......orz 사천짜장은 맛있었다.


카페 뎀셀브즈의 초코무스 & 치즈케익

식후에는 커피집에 가서 종로에서 사 간 케익을 곁들여 아이스커피를 마셨다. Coffee&Tea 이달 호에서 부산의 추천 커피집을 두 군데 메모해 왔다. 이런 저런 얘기를 하며 놀다 보니 시간이 금새 갔다. 여덟 시부터 커피 스쿨이 시작된다 하여, 일곱 시 오십 분쯤 일어서 집에 왔다. 너무 더워서 피곤한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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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카메라를 깜박 두고 나가서, 음식 사진은 동진님의 D-70으로 찍었다.

2005년 8월 15일 월요일

2005년 8월 14일 일요일 : [잡기]

오늘은 일요일이었다.

나는 지난 주 내내 놀았다. 8월 6일 밤에는 소소하지만 양보할 수 없는 일 관련 문제로 벌컥 화를 냈다. 7일, 일요일에는 종로 3가의 카페 뎀셀브즈에 앉아 일을 했다. 콘센트 때문에 에어컨 바로 밑 자리에 앉았더니 몹시 추웠다. 따뜻한 카푸치노를 주문하며, 너무 추워요, 라고 했더니, 직원이 그 자리가 에어컨 밑이라서 그래요, 하고 미안한 듯이 웃었다. 나는 이제 어른이므로 비효율적인 냉방 설계 하에서 가능한 최대한의 고객을 만족시켜야 하는 카페의 입장을 알아야 한다. 따라서 이해한다는 듯이 마주 웃어주고 자리로 돌아가 잎새 모양의 거품이 얹힌 카푸치노 잔을 손으로 꼭 감쌌다. 안타깝게도 이해는 물리적인 열로 전환되지 못한다. 나는 부모님께 늘 고마워하고 미안해하는데, 이런 감정 역시 물리적인 행동으로 쉬 전환되지 않는다. 안타깝기 그지없는 일이지만 그렇게 생각하기 시작한다고 인생이 덜 안타까워지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대체로 더 안타까운 꼴이 되는 경향이 있다. 어쨌든 번역을 백 매 이상 했고, 나는 조금 덜 안타까운 인생이 되어 귀가, 냉방병이나 여름감기를 두려워하며 가글가글을 했다.

생각해 보니 화를 낸 것은 6일이 아니라 7일 밤이었던 것 같다. 그리고 솔직히 말해, 나는 일요일에 번역을 잔뜩 한 다음 결과물을 보며 스스로를 자랑스럽게 생각했다. 그것은 '안타까움'이란 단어로 말장난을 할 만큼 시시한 일이 아니었다.

월요일 아침에는 기분이 좋아졌지만, 몸이 마음을 따라오지 못해 그냥 뒹굴었다.

그리고 오늘은 일요일이었다. 나는 종로 3가의 카페 뎀셀브즈에 앉아 일을 했다. 에어컨 바로 밑 자리에 앉았지만, 바깥 날씨가 더워서인지, 지난 주보다 옷을 좀 따뜻하게 입은 덕분인지 좀 덜 추웠다. 덜 추워서인지 원고는 영 진도가 나가지 않았다. 나는 주인공을, 혹은 주인공의 아들을 꽤 사랑하게 되었는데, 그것이 이유였는지도 모른다. 덜 추운 것과는 상관없었다. 젊었을 때 고생 해 봐야 한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고생을 해 본 적이 없는 사람이 그런 말을 하면, 같은 중국집에서 나와 달리 짬뽕을 주문해 먹는 사람을 보듯 불완전한 동지감을 느끼며 웃었고, 고생한 사람이 그런 말을 하면 웃지 않았다. 한창 고생을 하고 있으면서 저런 말을 하는 경우는 아직 본 적이 없다. 나는 누구도 선택이 아닌 고생을 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이 말에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동의한다. 견해가 갈리는 곳은 바로 '어디까지가 선택이냐' 부분이다. 무엇이 고생이냐에 대해서도 꽤 의견이 갈린다. 지하철 문에는 당신을 사랑하는 가족들이 있으니 자살을 하지 말자는 하트 모양 스티커가 붙어 있었다. 자신을 사랑해 주는 가족이 없어서, 혹은 자신을 미워하는 가족 때문에 죽고 싶은 심정인 사람들에게 전혀 도움이 안 되겠다는 생각을 진지하게 했다. 이 스티커는 과연 없는 것보다 나을까, 못할까. 자신을 사랑하는 가족을 떠올리고 플랫폼 안전선에서 반 보 물러나는 사람의 수와, 자신을 사랑해 주지 않는 가족을 떠올리고 반대로 앞으로 걸어 나가는 사람의 수 중 어느 쪽이 더 많을까. 어쩌면 둘 다 0인지도 모른다. 이런 스티커라도 붙이는 사람과 그 앞에 무표정하게 서 있기만 한 나 중 어느 쪽이 더 나을까. 이것 역시, 둘 다 있으나 없으나 그만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역시 솔직히 말하자면, 나는 [아직] 남들이 있으나 없으나 그만이라고 생각해도 되는 사람 같은 것은 없다고 믿고 있고, 있다면 없는 사회를 만들 책임이, 내게, 육십오억분의 일이라도 있다고 생각한다. 또한 비록 그 내용에 대해서는 재검토할 필요가 있을지 모르나, 자살을 개인적인 문제가 아니라 사회적인 현상으로 접근하는 시각이 확산되는 것은 긍정적인 변화라고 본다.

따져보면 겨우 육십오억분의 일이다. 무시할 수 없을 정도로 크고, 감당할 수 없다는 핑계로 외면하기에는 부끄럽도록 작다.

그러나 나는 핑크색 스티커나 짬뽕에 대해 쓰려던 것이 아니었다.

바다에 가고 싶다고 하려 했다. 어쨌든 나는 바닷가에서 자랐고, 그 때문에 바다라는 말을 들었을 때 해수욕장이나 비키니가 아니라 방파제와 섬을 떠올린다. 바다를 면해 선 아파트의 최고층이던 친구의 집, 방파제가 내려다보이던 고등학교 음악실과 등나무 벤치, 은근히 짠 바람과 큰 배의 고동 소리 같은 것을 생각한다. 그것은, 그리움과는 다른 종류의 친숙함이다. 하지만 바다를 보지 않은 채 몇 해를 보내다 보면, 언젠가는 그리워하게 될지도 모른다. 추억은 그런 식으로 미화되고 기억은 그렇게 환상이 되기 때문에. 그렇게 되기 전에, 바다를 다시 보아야겠다.

2005년 8월 13일 토요일

2005년 8월 13일 토요일

밤새 잠시도 졸지 않았더니, 각성 상태여서인지 갑자기 졸음이 쏟아지거나 하지는 않고 그저 몹시 피곤했다. 움직임이 둔해진 내가 걱정되었는지 원군님이 피곤하신 와중에도 을지로까지 함께 가 주셨다. 명동에 있는 신선설농탕에서 아침 식사를 한 다음, 반지의 제왕 상영 장소인 서울 청소년 수련관을 찾아갔다. 평소엔 아침을 가볍게 드는 편이면서, 피곤한 상태로 한 공기를 깨끗이 비웠더니(그야말로 '아무 생각 없이' 먹었다.) 배가 아팠다. 수련관에서 진아님을 만난 후 원군님은 댁으로 들어가시고, 나는 잠깐 쉰 다음 진아님을 도와 좌석 번호표를 잘랐다. 권님을 처음 뵈었는데 헬렐레한 상태였기 때문에 다시 만나도 알 수 있을지 모르겠다. (...) 여러 분들 찾아오시면 즐거울 것 같았으나, 슬슬 한계에 도달했다는 느낌이 들어 여덟 시 반 쯤 2005 거울 중단편선과 fool님의 단편집을 받아 들고 귀가했다. 이번 중단편선은 작년보다 훨씬 두껍다. 집에 와서 읽어 보니 좋은 글이 많아 기쁘다. 아, 그런데 내 글은 한 줄 띄움이 한 군데 안 되어 있다. orz

집에 와선 씻자마자 쓰러져 잠들었다가 오후 네 시쯤 다시 일어났다.

2005년 8월 12일 금요일 : SICAF 2005 - 심야상영 1

저녁에 SICAF 심야상영을 보기로 해서, 레슨 시간을 오전 11시로 옮겼다. 12시에 제니스 카페테리아로 가서 며칠 전 휴가에서 돌아오신 동진님과 점심식사를 했다. 선물로 린트 85% 초콜릿을 가져오셨다. 이히히.

날이 흐려서인지, 밤샘 할 생각에 긴장해서인지 오후 내내 마치 이미 심야상영을 보고 돌아온 것처럼 졸렸다.

원군님과 오랜만에 만나 SICAF 심야상영을 함께 보았다. 일단 여덟 시에 강남역 근처에 있는 롤집 니코니코 (Niko Niko)에서 저녁을 먹었다. 금요일 저녁이라서인지 꽤 오래 기다렸으나, 다행히 기다린 보람이 있는 맛이었다.

식후에는 코엑스로 이동, 애플센터와 반디앤루니스에 가서 이것 저것 구경한 다음 별다방에 잠깐 들러 커피를 마시고 초콜릿 무스 케익을 먹으면서 이야기를 했다. 원군님 회사 일 얘기를 좀 듣고, 전공과 관련이 있는 부분이라 내 생각을 얘기했는데 뜻밖에(으응?) 도움이 된 것 같아 기뻤다.

심야 상영 프로그램은 다음과 같았다.

머시네마 특별전 1- 아나크로녹스
제이크 휴즈 (Jake Hughes), 2002

도대체 이 영화를 시카프 상영작으로 선정한 자가 누구냐! 게다가 심야 상영 첫 작품으로 틀다니! 처음 시카프 사이트에 올라왔던 영화 소개에는 러닝타임이 2분 27초라고 되어 있어 RPG 게임의 오프닝 화면 같은 것이 아닐까 생각했는데, 실제로 보니 장장 두 시간에 달하는 보기 괴로운 게임 장면 모음이었다. 나름대로 줄거리란 것이 있기는 하나 용서하기 힘들 만큼 서투른 클리셰 덩어리였고, 전개 자체가 영화라고 보기 민망할 만큼 뒤죽박죽이었다. 어떻게 진행되는 게임인지는 알겠지만, '애니메이션'으로서는 도저히 좋은 평가를 내릴 수 없었다. 한 시간 동안 끙끙거리다가 간신히 '게임 하는 심정'에 몰입하나 했더니 마지막에 반전 아닌 반전까지 등장. 게다가 남자 주인공(?)의 건달 말투는 또 어찌나 거슬리는지, 이런 거 하다 보면 게임이 애 망친단 소리가 나오겠단 생각이 들 지경이었다. 원군님이 이 게임을 만든 회사가 재작년 즈음에 문을 닫았다고 알려 주셨다. 전혀 놀랍지 않았다. 보면서 90년대 후반 작일 줄 알았는데, 02년 작이라니......21세기에 뭘 하고 있었던 것이냐! (버럭버럭)

원군님께 송구스러웠다. --;

애니메이션의 신물결

단편 모음은 기대했던 대로 무척 좋았다. 짧은 시간에 말하고자 하는 것을 다양하게 표현해낸 흥미로운 영상물은 즐겁기도 하고 자극이 되어 좋다.

1. 러시아의 미국인 (The Offshore Reserves)
제이미 브래드쇼 (Jamy Bradshaw), 알렉산더 듈레인 (Alexander Doulerain), Russia/USA , 2004
2. 말벌들 (Wasps, Gees, Peer-Tree)
스카키 라즐로 (Csaki Laszlo), Hungary, 2004
3. 뷰 (A Vue)
죠수아 모슬리 (Joshua Mosley), USA, 2004
4. 시티 파라다이스 (City Paradise)
가엘리 데니스 (Gaelle Denis), UK, 2004
5. 기억 속의 어제 (Yesterday...I think)
베킬레리스 브로드스키 (Becalelis Brodskis), UK, 2004
6. 피스타치오 (Pistache)
발레리 피르송 (Valerie Pirson), France, 2004
7. 벤트 (Vent)
에릭 반 샤이크 (Erik Van Shaaik), Netherlands, 2004
8. 호신술 배우기 (Learn Self Defence)
크리스 하딩 (Chris Harding), USA, 2004
9. 통지 (Notice)
로엘로프 반 덴 베르그 (Roelof Van den Bergh), Netherlands, 2004
10. 생일잔치 (Pinata)
마이크 홀랜즈 (Mike Hollands), Austrailia, 2005
11. 둘 사이의 대화 (Dialogue Between Two)
세이케 미카 (Seike Mika), Japan, 2004

모두 기억할 만한 작품이었지만, 매주 교회에 나가는 평범한 남자 조지를 내세워 미국의 최근 행태를 비꼰 크리스 하딩의 '호신술 배우기'와, 사랑하는 마음이 변하는 것을 지상에 앉은 남자와 물 속에 앉은 여자의 모습을 통해 잔잔하게 그린 '둘 사이의 대화' (특히 남자가 여자에게 내려 보낸 알에서, 여자가 예전에 올려 보냈던 물고기의 뼈가 나오는 장면이 인상깊고 가슴아팠다.), 그림판 미국인을 러시아 복판에 등장시켜 '변화'의 이면을 개성있게 표현한 '러시아의 미국인', 한 여성의 혼돈된 생각을 표현한 '피스타치오'(여기선 특히 주기율표로 표현한 생각의 단편이) 등이 특히 인상깊었다. 바람에 맞서는 한 남자의 모습을 흑백으로 표현한 '벤트'는 꽤 씁쓸했는데, 웃는 관객들이 많아서 좀 의아했다.

애니테크

애니테크는 3D 애니 등 컴퓨터를 이용한 다양한 기법에 중점을 둔 단편 묶음이었다.

1. 사랑스런 엠마 (Dear, Sweet Emma)
존 세르낙 (John Cernak), USA, 2003
2. 비행 (Fly Away)
존 세르낙 (John Cernak), USA, 2003
3. 햇살 좋은 날 (On the Suuny Side of the Street)
조 럽 (Job Rub), 윌리 랜트(Willy Landt), Germany, 2003
4. 특별한 비누 (Curdsoap)
알렉산더 카에셀 (Alexander Kiesel), Germany, 2004
5. 레이싱 비트 (Racing Beats)
알렉산더 카에셀 (Alenxander Kiesel), 스테펜 학케르 (Steffle Hacker), Germany, 2004
6. 소우주 (Microcosm)
조 타카야마 (Jo Takayama), Japan, 2003
7. 나의 할아버지
페트르 마렉 (Petr Marek), Czech, 2003
8. 골초 (Chainsmoker)
울프 룬드그렌 (Ulf Lundgren), Sweden, 2002
9. 다락방 (The Roof)
호세 코렐 (Jose Corral), Spain, 2003
10. 락피시 (Rockfish)
팀 밀러 (Tim Miller), USA, 2004

마지막 '락피시'는 정말 취향에 안 맞았으나, 그 외 작품들은 즐겁게 보았다. 무서운 할머니(아마도 러시아)와 넋나간 할아버지(아마도 체코)의 관계를 다룬 '나의 할아버지', 마케팅의 무서움(으응?)을 소재로 한 '특별한 비누' 등이 좋았다. 최고는 '다락방'. 깜짝 상자의 삐에로가 예쁜 바비인형을 사랑하게 된다. 힘들게 상자를 끌고 다니며 낡은 다락에서 꽃이며 구슬을 찾아 가져다 주지만 바비인형은 본 척도 않는다. 절망하여 다락 구석에 있던 삐에로 인형은 아기 인형을 발견하고, 이번에는 아기 인형을 아끼게 된다. 바비인형은 삐에로가 더 이상 자기에게 관심을 보이지 않자 아기 인형의 머리에 가위를 꽂고 삐에로가 튼 전축에서 음반을 빼내는 등 훼방을 놓다가, 끝내는 불을 지르려다 실수해 자기 얼굴을 다 태우고 만다. 인형들의 건조한 무표정과 지저분한 다락의 모습 때문에 더 인상적이었다.

심야상영이 끝나니 새벽 다섯 시 반. 인적없는 코엑스를 걷자니 기분이 묘했다. 지하철을 타고 '거울' 반지의 제왕 확장판 상영회를 하는 을지로 3가로 이동했다.

2005년 8월 10일 수요일

2005년 8월 10일 수요일 : 밑바닥에서

포스터출처: 자세레퍼토리 웹사이트

미엽이와 대학로에서 소극장 뮤지컬 '밑바닥에서'를 보았다. 막심 고리끼의 원작을 재해석해 만든 창작 뮤지컬이다.

내용이 무척 우울/비참했다. 그나마 실없는 농담을 끼워넣어 힘을 빼려 애쓴 흔적이 역력했고, 그 덕분에 마지막까지 비교적 부담 없이 볼 수 있었다 (그렇다고 가벼운 발걸음으로 룰루랄라 돌아왔다는 말은 아니다.)

학교 숙제 때문인지 고등학생들이 많이 왔는데, 처음에는 소란스러웠으나 곧 몰입하여 열심히 보더라. 우는 학생들도 몇 있었다.
눈앞에서 연기하는 사람을 직접 보는 것은 (a)일부러 찾지 않으면 갖기 어려운 기회고 (b)상당히 충격적인 경험이 될 수 있기 때문에 -나만 해도, 중학교 1학년 때 처음 보았던 소극장 연극 '프라이, 프라이데이'를 지금까지 선명하게 기억하고 있다- 학교 숙제 등을 통해 계기를 의도적으로 부여해 주는 것이 좋다고 생각한다. 한 번도 경험하지 않은 것과, 한 번이라도 경험해 보는 것은 꽤 다르니까.

극장에 들어가기 전에 샤브샤브로 점심을 먹었고, 보고 나와서는 하겐다즈에 잠깐 들러 연극 얘기를 하며 미엽이와 아이스크림을 먹은 후 버스를 타고 집에 왔다. 지하철을 갈아타기 귀찮아서 버스를 탔는데, 교통체증 때문에 집까지 한 시간 반 쯤 걸렸다. 그래도 퇴근길 지하철을 타는 것 보단 나았다.

2005년 8월 9일 화요일

2005년 8월 9일 화요일




고구마크림스프

샐러드

안심스테이크

등심스테이크

아이스크림

홍차

y님과 남산 하얏트 호텔 근처에 있는 스테이크 전문점 Casa J.J. 에 갔다. 시청 역에서 내려 버스를 타고 올라갔다. 독일문화원 다닐 적에 가던 길이다. 하얏트 쪽도 자주 지났던 터라 쉬 찾아갈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코앞까지 가서 좀 헤멨다. 여하튼 오랜만에 남산길을 지나니 기분이 묘하더라. 납작한 독일문화원은 여전하고-

까사 제이제이는 무난했다. 점심 메뉴 정도라면 가서 먹어보아도 괜찮을 만한 곳이다. 식사 시간을 살짝 피해 갔기 때문인지는 몰라도 한산해서 식사하기 편했다. 빵이 따뜻하고 폭신폭신해서 마음에 들었고, 스프도 맛있었다. 단, 스테이크 옆에 샐러드가 같이 나온 것은 전체 구성상 어색했다. 어차피 이런 세팅이라면 굳이 (거의 비슷한 재료를 쓴) 샐러드를 추가한 세트 메뉴를 둘 필요가 없지 않나 싶었다. 스테이크는 맛있었다. y님은 '중'이라시지만 내가 보기에는 가격을 감안하면 '중상'정도에는 넣을 수 있을 듯. 서울 시내에서 제일 맛있는 스테이크 집 중 하나란 평은 아무리 봐도 과장이지만, 점심 추천 목록에 넣기에는 부족함이 없다. 홍차가 립톤 티백;인 것도 좀 당혹스러웠지만, 세트 메뉴의 가격을 생각하면 어쩔 수 없는 부분일지도(라고는 해도 딜마나 아크바 티백도 상당히 저렴하단 말이다!)

한 가지, 서버가 나를 무시;했던 것은 불만이었다. 서버들은 '실제로 식사비를 지불할 것 같은 쪽'에 일차적인 주의를 기울이는 편이다. 노골적인 예를 들자면, 남자와 여자가 가면 남자 쪽에 계산서를 갖다준다든가, 연상자와 연하자가 앉아 있으면 어린 쪽이 주문한 다음에 나이 많은 쪽에게 확인을 청하는 듯한 제스추어를 한다든가 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테이블 반대편에 놓인 계산서를 집어들 때면 불쾌할 때가 없지 않지만, 필요에 의해 불가피하게 생긴 습관일지 모른다는 생각에 -한두 명이 식사하는 것도 아니고, 수많은 사람을 대하다 보면 가장 용이한 루트대로 움직일 수 밖에 없지 않을까 싶어서- 평소엔 아무 말 않고 넘어가는 편이다. 하지만 오늘은 좀 심했다고. 왜 내 코스를 내올지 여부를 y님한테 묻는 거야! -_-; 구운 새우를 먹어보러 한 번쯤 더 갈 생각인데, 그 때도 이러면 대략 낭패.

식사는 즐거웠다. y님은 위대한 번역자이시다. (...) 꼭 맛있는 스테이크를 먹었기 때문에 하는 말은 아니다.


카푸치노

레몬 셔벳

티라미수

치즈케익

식사를 마치고 하얏트 호텔 1층에 있는 찻집 The Terrace에 가서 차를 마셨다. 원래 y님은 종각역에서 임지호님을 만나기로 되어 있었는데, 찻집에 들어가고 나니 몸이 무거워져서 전망이 좋아 일어나기 아까워 지호님께 하얏트로 와 주십사 청했다. (그 덕분에 지호님과 오프라인에서 처음 인사를 나누었다.) 그리하여 세 사람이 앉아 차를 마시고 케익을 들며 y님의 이야기를 열심히 들었다. 하얏트에서는 서울 시내가 한 눈에 내려다보였다. 남산 아래에서 그 건물이 어찌 보일지 역으로 상상해 보면, [y님의] 남산 풍경을 크게 해치니 폭파시켜야 하는 건물이라는 말씀에 수긍이 가기도 한다. 고도 제한이 없는 걸까?


해물 샐러드

쌀국수

저녁에는 오랜만에 서울에 올라오신 동현님과 이태원 파타야에서 저녁식사를 했다. 몇 달 만에 다시 만나 무척 반가웠다! 룰루랄라 식사를 하며 장르소설 이야기를 많이, 시험(...)이야기도 조금 했다. 여덟 시 반 쯤 되어 별다방으로 옮겨가서 차와 케익을 먹으며 또 수다(?). 동현님은 얘기를 편히 들어주시는 분이라, 마주보고 있으면 나도 모르게 말을 많이 하게 된다. 동현님은 밤 늦게 서울역으로 가시고, 나는 집으로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