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12월 27일 목요일

2007년 12월 27일 목요일

올해 행정고등고시에 최종 합격한 찬수가 신림역 근처 '바다공원'에서 동기들에게 저녁을 샀다. 아직은 대학원생이든 학부생이든 고시생이든 학교 주위에 있는 이들이 많은 나이다 보니 오며가며 그럭저럭 서로 만나기는 하지만(당장 어제도 한림법학원 앞에서 은영을 만났었다), 차분히 앉아서 이야기를 할 시간은 좀처럼 없다 보니 즐거웠다. 교직원 호봉이나 결혼자금 같은 새로운 화제가 등장한 점도 흥미로웠다.

현장에 나가겠다고 했던 신행이 대학원에 진학했다는 소식을 학기 초 쯤에 들었는데, 오늘 나가 보니 대학원에 진학한 것은 맞지만 현장에서 꾸준히 활동하고 있더라. 전혀 상관 없는 사람이랄 수 있는 내가, 그 소식에 괜히 안도감과 고마움을 느꼈다.

일하는 장애인 야학이 노조의 투쟁에 동참한 바람에 14년 동안 있던 건물에서 쫒겨나게 되어, 어제도 동화면세점 앞에서 시위를 했다고 한다. 이제 천막 치느냐고 누가 묻자, "그렇지, 1월 3일부터 건물 앞에 천막 치고 수업 해야지." 하고 코를 훌쩍이며 웃는다.

과내 커플인 미진과 진우오빠는 내년 5월에 결혼을 한다. 술을 마시지 않는 진우오빠가 찬수에게 먼저 다가와 술을 권하더니 자기 소주잔도 한번에 들이켜서 깜짝 놀랐는데, 소주잔에 물을 채웠다고 한다. 그런데 바로 옆에 있던 나를 비롯해, 아무도 오빠가 소주잔에 물 따르는 모습을 못 봤다. 능력자로세. 스승으로 모셔야겠다.

찬수는 라스베이거스 등지를 구경하고 어제 막 돌아왔다고 한다. 아직 여행의 여파가 가지시 않아서인지 자꾸 "미국놈들은..."이라는 얘길 꺼냈다가, 다른 동기들로부터 며칠 있다 와 놓고 미국 사람 다 된 거냐고 놀림을 받았다. 보미가 내년에는 미국 동부 쪽으로 유학 지원을 한다고 하자, 우리가 그러면 놀러 가겠다고 했다. 보미가 "그래. 정원에 재워 줄게." 했더니 신행이 대번에 받아서 "우리 야학 천막 빌려가면 되겠네. 15인용 20인용 다 있어." 란다. 그러자 찬수가 "거기서 사서 하루 쓰고 환불 받으면 돼. 미국놈들은 태그만 달려 있으면 다..."라고 말을 꺼내서 또 놀림을 받고 말았다.

역시 대학원에 진학한 충현은 봄 학기에는 휴학하고 북경에 있을 예정이란다. 충현이 내 은사님과 나날이 비슷해지고 있다. 원래 얼굴형이나 머릿결 같은 외모가 닮은데다, 신실한 종교인 특유의 아우라까지 볼 때마다 업그레이드(?) 되어서, 마주하면 좋은 모습을 보여드리고 싶은 선생님을 대할 때처럼 긴장이 된다.;

연극도 자은이 왔다. 재즈댄스 강사 학원이 마침 신림역 근처라 잠깐 짬을 내어 들렀다는데, 기대치 못했던 얼굴을 봐서 반가웠다.

이번 학기로 나는 사회복지학과 전공을 끝냈다. 미래를 비슷한 방향에서 바라보는 사람들과 함께 공부하고 성장할 수 있었던 과정 자체가 배움이었다. 무슨 얘기중이었던가, "나는 사기업에선 일할 수 없는 사람이라는 확신이 들었어. 제1섹터가 아니면 역시 제3섹터, 기관으로 가겠지." 라고 했다. 그 말에 뜻을 되묻지 않고 "우리 학번에도 그런 사람들 많이 있지. K, H 도 그렇게 말하고......"하고 자연스런 답이 돌아온다. 그것이 고마웠다.

 

2007년 12월 25일 화요일

2007년 12월 25일 화요일

아침에 강남역 앞에서 전션을 만났다. 휴일 이른 시간에 갔더니 드넓은 커피빈 금연석 전체에 손님이 나와 전션 둘 뿐이라 좋았다. 전션은 고비를 넘기고 새 직장에 안착해서 열심히 지내고 있는 모양이다. 하지만 야근이 많은 직종이라 늘 바쁜 점은 이직하고도 여전해서, 일 주일 내내 야근할 때도 있다고 한다. "그럴 때는 한밤중에 집에 가서 잠깐 자고 나와서 다시 일한다는 느낌이지. 그런데 계속 일하고 있으면 다른 하는 게 없으니까 딴 생각이 안 들어서 편해. 오히려 힘들지 않아." 라고 평화로운 표정으로 말하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친구 입장에서는 스물다섯 살에 해탈하지 말아줘....라는 기분이 든다.

집에 돌아와서는 이부자리를 햇볕에 널어 털었다. 힘에 부칠 줄 알았는데 작은 먼지들이 쉽게 떨어져서 기분이 좋았다. 이불이 겨울 바람을 맞는 사이에 바닥에 놓여 있던 책들을 정리해 책장에 꽂았다. 종이가방들을 접어 차곡차곡 겹쳐 넣고 분리수거를 했다. 걸레로 바닥을 구석구석 닦은 다음, 대야에 세제를 풀어 걸레를 담궈 두었다. 책상 앞에 실리콘 걸이를 단단히 눌러 붙이고 화이트보드를 걸었다. 설거지를 했다. 걸레를 빨았다. 한결 보송해진 이불을 가져와 토닥토닥 깔았다. 카푸치노를 한 잔 탔다. 서늘해진 이부자리 위에 앉아 창 밖을 가만히 바라보며 바크초컬릿을 곁들여 커피를 마셨다. 그리고 모르는 새 냉장고 냉각판에 두껍게 앉았던 성에를 녹여 떼냈다. 파직거리며 떨어져 내린 손바닥만한 도톰한 얼음판들을 하얀 세숫대야에 던져 넣었다.

2007년 12월 19일 수요일

2007년 12월 19일 수요일

아침 일찍 투표를 하고, 저녁에는 지정사 2008년 신년회를 했다. 지정사는 지정사이므로 07년에 08년 신년회를 하고 08년에 07년 송년회를 한다는 대장 모 님의 의견을 따른 것이다. 참석자는 랄라님, 나는그네님, as님, 서늘님, 라슈펠님, 동진님, 상준님, 상훈님, 파란날개님, 루크님, 경아님, 나. 종로에 있는 인도&네팔 음식점 '두르가'에서 커리와 탄두리 치킨을 먹으며 개표방송을 보았다.  

2007년 12월 7일 금요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