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 8월 31일 화요일

2004년 8월 31일 수요일 : 요엘 레비 초청 서울시교향악단 특별연주회

프로그램: 말러 교향곡 2번
지휘: 요엘 레비
소프라노: 헤롤린 블렉웰 / 메조소프라노: 페트라 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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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향의 말러 2번 공연에 다녀왔다. 원래 예매가 시작되자마자 악장님이 잘 보이는 자리를 마련해 두었으나, 8월 중순에 접어들고 보니 공부를 하느라 지구를 지키느라 평일 저녁에는 시간을 내기 힘들 것 같아 예매를 취소했었다. 그런데 며칠 전에 시향카페에서 초대권을 준다기에 이렇게까지 기회가 있었는데도 안 가면 나중에 후회할 것 같아 결국 일찍 독서실을 나섰다.

세종문화회관이 재개관한 이후 처음으로 2층에서 공연을 들었다.(사실 2층일 줄 알았으면 원래 표 취소하지 말 걸, 하고 조금 후회했다. 악장님이 안 보였어! 이게 뭐야! ㅠ_ㅠ)

각설하고, 서울시향의 말러 2번에 대해 말해보자. 우선 1악장, 시시했다. 정말로 시시했어. 세상에 말러 2번이 시시할 수도 있다! 너무 당혹스러워서 멍하니 앉아 있다 보니 악장이 끝났다. 해석이나 연주만 문제가 아니라, 총체적 감성이 부족한 실망스런 악장이었다. 2악장의 시작은 괜찮았다. 말러 2번의 2악장 도입부를 들으면 말러가 정말 괴상망측한 감성의 소유자라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2악장 후반으로 갈수록 실수가 잦아지고 결정적인 '삑사리'까지 나서 당혹스러웠다. 관객들이 2악장 끝나고 박수를 쳤다. -_- 그 다음부터 지휘자는 지휘봉을 한 번도 쉬지 않고 계속 흔들어 악장 사이에 박수칠 틈을 주지 않았다. 실망스러웠던 1, 2악장에 비해 3악장부터는 아주 괜찮았다. 호흡을 고르는 데 시간이 걸렸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역시 교향악단을 상시에 살필 상임지휘자가 없기 때문에 이렇게 자꾸 흔들리는 걸까. 하반기 정기공연 프로그램을 살펴보니 여전히 매번 지휘자가 다르다.

악장님의 연주야 두말할 나위 없이 좋았고, 메조소프라노 페트라 랑의 노래가 매우 감동적이었다. 곡의 감동을 그대로 실은 목소리가 듣는 이의 가슴을 울렸다. 소프라노 헤롤린 블랙웰도 합창단과 함께 시작하는 부분에서 강약 조절을 잘 했고 특별히 흠 잡을 데 없는 소리를 들려주었지만, 노래만 놓고 본다면 랑이 압도적으로 인상깊었다. 이 사람의 음반을 구해 보고 싶을 정도. 따로 알토나 바리톤을 세우지 않았으나 힘이 제대로 실린 남성 합창단의 노래 역시 뛰어나서 4악장과 5악장을 살려냈다. 클라이막스 부분에서 연주가 흐트러질까 걱정했는데, 한두 번 민망한 실수가 있긴 했어도 이만하면 만족스러운 연주라고 할 만 했다. 옆자리에 앉았던 시향카페 운궁님은 눈시울이 붉어져서 나오시더라.

로비에서 아란양을 만나 잠깐 인사를 나누고 집으로 돌아왔다.

2004년 8월 29일 일요일

2004년 8월 29일 일요일

오랜만에 온가족이 일산에 가서 점심식사를 했다. 각자 생활이 바쁜 터라 이렇게 시간을 내어 함께 외식을 하기가 여간 어렵지 않다. 오리고기를 냠냠 먹고, 돌아오는 길에 요전에 송경아씨 댁에서 먹은 닭요리(를 비롯한 이런 저런 요리)를 하는데 쓰려고 로즈마리 화분을 하나 샀다. 키워서 잡아먹어야지.

밤늦게 노량진에서 지난 7월에 마산에서 올라온 은지와, 며칠 전에 온 정란이를 만났다. 은지는 고등학교 때 친구, 정란이는 중학교 동창이다. 정란이와는 줄곧 연락을 주고받았으나 은지와는 6년여만이다. 둘 다 법원직을 준비하고 있다. 가포고 시절에 알았던 사람을 다시 만나니 기분이 묘했다. 게다가 아침에는 오랜만에 일산까지 다녀왔으니. 며칠 전에는 실로 오랜만에 고등학교 시절 악몽을 다시 꾸기도 했다. 어머니께서는 건강 상태가 좋지 않을 때면 나쁜 기억이 꿈에 파고드는 것 같다고 하셨지만, 글쎄. 뭐, 좋고 나쁘고를 떠나서 그냥 생각하지 말자 싶다. 어쨌든 은지와 다시 만나 기뻤다. 꽤 고달픈 모양이다. 서울에 온지 두 달이 되었는데 노량진 밖으로 딱 한 번 나가 보았고, 그나마도 신림동-_-에 일이 있었던 날이란다. 신림동이나 노량진이나! 본래 수험이 공부는 무겁고 일상은 외로운 것이기 마련인데 그에 더해 예까지 와서 객지 생활까지 하려니 심신이 편할 리 없다. 시간이 나거든 셋이 함께 파스타라도 먹으러 가기로 했다. 정란이가 '잃어버린 아이들의 도시'와 '왕과 나' DVD를 선물로 주었다. 역시, 내 취향을 간파하고 있군. 껄껄.

2004년 8월 28일 토요일

2004년 8월 28일 토요일 : 포스코 심포니 페스티벌 IV

거의 다 썼던 일기를 날려서 다시 썼다.



승민오빠와 이태원에 있는 파키스탄/인도 음식점 우스마니아(Usmania)에 갔다. 지하철역 1번 출구 모글 바로 앞에 있는 음식점으로, 예전부터 한 번쯤 가 보아야겠다고 생각하던 곳이다. 주말이라 뷔페도 하지만 처음 갔으니 단품으로 주문해 보았다. 위 사진의 음식은 요거트+큐캠버+몇 가지 야채+'오리엔탈 소스'(마살라/커리맛 향료들인 듯)가 들어간 스프로, 요거트라기에 가벼운 전채 삼아 먹으려 주문했는데 향이 매우 강해 조금 놀랐다. 도톰하고 따뜻한 빵이 무척 맛있었고, 메인디쉬도 확실히 기본은 하는 수준, 그러니까 만족스럽게 먹을 만한 정도는 되지만 일부러 찾아가서 먹어 볼 만한 곳인지에 대한 판단은 일단 보류하기로 한다. 대충 이태원 평균인 것 같기는 한데.......다른 메뉴, 특히 야채류를 한 번쯤 더 먹어 보아야 보다 정확한 결론을 내릴 수 있을 것 같다. 맛과 향이 매우 강하고, 재료 하나하나가 미감을 압도할 만큼 강렬해서 이쪽 음식에 익숙치 않은 사람에게 입문처로 권할 음식점은 아니다.


양고기

닭고기

도톰한 빵


어쨌든 배부르게 냠냠 먹고 지난 달에 문을 연 이태원 스타벅스로 향했다. 이태원에 차를 마시거나 후식을 들 곳이 없다 보니 식사 약속을 잡을 때마다 곤란했는데, 이번에 드디어 스타벅스나마 문을 열어 한 시름 덜었다. 사실 지금까지 없었던 게 더 이상했다고. 차를 마시며 소소한 이야기를 나누다 헤어져 오빠는 칵테일 재료를 사러 남대문으로, 나는 아우님과 데이트를 하러 선릉으로 향했다. 가는 길에 압구정에 잠시 들러 커피를 200그램 샀다.



프로그램
그리그 피아노 협주곡 a 단조 (op.16)
시벨리우스 교향곡 2번 (op.43)
협연: 안수진 / 지휘 금난새

아우님과 유러시안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포스코 음악회를 보러 포스코 센터에 갔다. 우선 표를 바꾼 다음 근처 스타벅스에서 커피와 파이를 먹었다. 오늘 프로그램은 그리그와 시벨리우스. 포스코 센터 공연의 가장 큰 장점은 하늘이 바로 내다보이는 유리 천정 아래에서 음악을 들을 수 있다는 점이다. 그러나 아쉽게도 시벨리우스 2번은 이렇게 음향시설이 불안한 곳에서 시도할 만한 곡이 아니었다. 특히 정확히 맺고 끊어줘야 하는 2악장과 3악장에서 음향이 울리니 곡에 몰입을 하기가 몹시 힘들었다. 신경 쓰지 않으려 애를 써 보았지만, 깔끔하게 끊기는 부분에서 통통타아아ㅇ런앟런얼나엏ㄴ;ㅇ한;ㅣ라;ㅇㄹ 하는 것을 들으니 절로 한숨이 나왔다. 공연장 여건에 비해 너무 큰 곡을 골랐다는 생각이 들었다. 편성을 조금 줄였다면 괜찮았으려나. 연주자들도 꽤나 답답했을 것 같다. 아우님은 첼로 수석이 단연 돋보였다며 무척 감탄했다. 중간에 살짝 귀띔해 줬다면 나도 유심히 봤을 텐데. 으음. 참, 앵콜은 슬픈 왈츠.

그리고 아우님과 지하철을 타고 집에 왔다. 지쳐서 일찍 자리에 누웠지만, 새벽 두어 시가 되어서야 잠이 들었다. 환타스틱 평행우주 모험꿈을 꾸었는데 일어나서 몇 시간 지나니 내용이 머리 속에서 다 사라져 버렸다. 아깝게.......

2004년 8월 27일 금요일

2004년 8월 27일 금요일



송경아님 댁에 가서 달팽이님, 초코님, 진아님, Covenant님과 즐겁게 놀았다. 경아님께서 커다란 닭을 구워 주셨다.('통닭 다이어트') 로즈마리와 올리브유, 마늘로 만든 소스를 발랐다는데, 담백하면서도 고소해서 매우 맛있게 먹었다. 자세한 레서피를 여쭤본 다음에 집에서도 한 번 만들어 봐야지. 식사를 끝낸 다음에는 이런 저런 수다를 떨며 홍차를 곁들여 진아님이 가져오신 커다란 초코 케익을 먹었다. 여섯 명 몫으로 보기에는 부담스럴만큼 큰 케익이었지만, 다이어트 삼아 조금씩 거들다 보니 순식간에 종이상자만 남았다.



그리고 초코님이 가져오신 카드게임 달무티! 각 참여자가 다양한 사회 신분을 갖고 게임을 시작하여, 빈익빈 부익부로 돌아가게 되어 있는 사회구조를 극복하고 신분 상승을 꾀해 보는 게임이다. 신분이 높은 자에게 대단히 유리한 게임이다. 특히 '세금'으로 가진 것 중 가장 좋은 카드 두 장을 바쳐야 하는 하층민 세 명과 가진 카드 중 아무 것이나 두 장을 주기만 하면 되는 상층민 세 명 사이의 선을 넘기가 무척 어렵다. 가장 아래인 거지는 카드를 섞고, 나누고, 매 라운드마다 정리하여 치우는 잡일까지 해야 한다. 하지만 경아님은 거지에서 출발하여 왕에 이르는 엄청난 신분 상승에 성공하셨다! 나도 왕과 거지 둘 다 해봤지만, 사실 중간에서 계속 아래 신분으로 하락하여 거지가 되었다. 기사에서 출발하신 동현님(Covenant)은 이길 카드를 쥐고도 제때 못 내서 거지로 전락하셔서 나중에는 진아님(영원한 상류층)의 특훈을 받았다. "요새 아랫 것들은 무얼 한다더냐? 짐으로선 알 수가 없구나.", "어서 치우지 않고 무엇을 하느냐!" 같은 역할놀이를 하며 한참 동안 정신없이 놀았다. 왕이 좋긴 좋더라. (...)

한참 먹다 보니 또 다이어트를 할 시간이 되어 이번에는 피자 다이어트를 했다. 부른 배를 쓰다듬으며 다시 달무티를 몇 판 하고 나왔다. 어찌나 즐거웠는지 하늘에 아직 해가 떠 있는 것이 신기했다. 배부르게 먹고 재미있게 논, 알찬 하루였다.

2004년 8월 25일 수요일

2004년 8월 25일 수요일 : MSN 20문 20답

1. MSN 처음사용 시기
2002년 중하순 정도였던 것 같군요. 그 전까지는 ICQ를 썼는데, 갑자기 사람들이 너도나도 MSN을 쓰기 시작하여 함께 바꾸었지요.

2. 지금 MSN상의 자신의 대화명
[jay.pe.kr] 제이님의 귀여움이 햇님을 달구어서 미안
(참고로 밤에는 '제이님의 귀여움이 달빛을 가려서 미안'으로 바뀝니다. 비가 오면 '제이님의 귀여움이 하늘을 찔러 폭우가 내림', 더우면 '제이님 지구를 지키다 더워기절'......;)

3. MSN에 등록되어있는 사람 수
146명

4. 지금 사용하고 있는 MSN 버전
6.1

5. 평균적인 MSN 사용시간/일
컴퓨터를 쓸 때면 항상 켜 놓습니다. 최소 2시간-최대 12시간 정도?

6. 자신의 상태를 항상 표시해놓는 편입니까?
네.

7. 당신의 MSN 주소를 적어주세요.
jaysj83 @ hotmail . com

8. 요즘들어 주로 대화하는 사람 3명
승민오빠, 동진님, 진아님

9. 사람들의 대화명 중 마음에 드는 것은?
'ㅁ'

10. 가장 좋아하는 이모티콘은?
선글라스를 쓴 노란얼굴

11. MSN의 가장 큰 장점은?
많은 사람들이 사용하여 연락이 쉽습니다.

12. 지금 차단해놓은 사람의 수는?
3명? 4명?

13. MSN외에 사용하고 있는 메신저는?
없음.

14. 그룹을 나누어놓습니까?
과소동/백신고/학교/cdpkorea/mpmania/기타

15. 가장 늦게까지 꼭 남아있는 사람 중에서 기억남는 사람은?
없음. 시차 때문에 미주지역에 있는 지인들이 남기 마련이라......

16. 지금 당신의 공개사진은 무엇?
며칠 전에 빨간 두건을 쓰고 찍은 사진.

17. 노매너라고 생각하는 행동은?
아무 용건이 없으면서 귀찮게 하는 경우.

18. 다른사람이 로그온 할 때 알림창이 뜨도록 설정해 놓았습니까?
네.

19. 앞으로 MSN에 바라는 점이 있다면
좀 가벼워졌으면.

20. 자신을 등록해놓은 유저들에게
팬 여러분의 한결같은 성원에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2004년 8월 24일 화요일

2004년 8월 24일 화요일

무료하고 덥다. 모니터 앞에 앉아 건성으로 경제학 동영상 강의를 들었다. 밤이면 꽤 서늘한데, 실내에 갇혀 있기 때문인지 지금은 자꾸 손이며 얼굴이 끈적거린다. 집중을 못 하니 자꾸 이런 저런 딴짓을 하게 된다. 홈페이지 카운터가 7만을 넘겼다. 내가 하려던 7만번을 방심하는 사이에 용진군에게 뺏겼다. 업댓을 하거나 메뉴를 줄이거나 둘 중 하나는 해야 할 것 같은데......

차라리 어디서 일감이라도 떨어졌으면 좋겠다.

2004년 8월 22일 일요일

2004년 8월 22일 : 마비노기

(클릭하면 크게 보임)

오전에 아스님이 로긴하셔서 마비에서 만났다. 계란후라이와 딸기우유를 만들어 주셨다! 불을 피우고 후라이팬도 쓰시다니 대단하다. *_*


요리를 받아 먹고 나서 몇 가지 여쭤 보다, 바로 옆 숲에서 곰이 나온다는 얘길 들었다. 지금껏 곰을 본 적이 없어 궁금하다고 했더니 아스님께서 나를 숲으로 데리고 가 주셨다. 간 것까지는 좋았는데 그만 이런 결과가......엉겁결에 곰사냥에 나서야 했던 아스님은 사망하여 도시인 던버튼으로 사라지시고, 홀로 남은 나는 세상의 잔인함을 곱씹으며 시골로. Orz


괜히 탐험을 나섰다가 폐만 끼치는 결과를 낳아 버린 촌사람 그레이트 제이, 촌으로 돌아와서 여우잡이를 하다가 그만 죽어버렸다. 처음으로 타이틀이라는 것을 가지게 되었다. '17살에 여우에게 진 그레이트 제이'. 이 타이틀을 쓰면 지력과 힘이 10 감소한다. 좋아지는 점은......없다. -_- 타이틀 설명에는 '10살에 곰을 잡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17살이 되어서도 여우에게 지는 사람이 있다 어쩌고 저쩌고'라고 쓰여 있다.

2004년 8월 22일 일요일 : 위대한 사진이 들려주는 116년의 지구 여행기

부산에서 올라온 사촌동생 화성이와 대림미술관에 가서 내셔널 지오그래픽: 위대한 사진이 들려주는 116년의 지구 여행기를 보았다. 사실 오늘로 폐전하는 헬무트 뉴튼의 패션 누드 사진전이 무척 보고 싶었으나, 열 다섯 살 난 아이를 데리고는 입장할 수가 없어 대신 전시명에서 건전무쌍함이 느껴지는 대림미술관으로 갔다.

전시는 참으로 건전했다.(끝)






마을버스를 타고 삼청동 아루에 가서 케익을 먹었다. 아루 케익, 특히 몽블랑을 오랜만에 먹어 기뻤다. 보통 카페나 빵집에서는 내가 좋아하는 몽블랑을 잘 팔지 않기 때문에, 오늘처럼 일부러 케익집을 찾아 나서지 않으면 평소에는 먹을 기회가 거의 없다.

이렁저렁 8월도 마지막 주.

2004년 8월 21일 토요일

2004년 8월 21일 토요일 : 헬보이

동진님과 신촌 녹색극장에서 헬보이를 보았다. 이 영화에 대한 감상은 딱 두 가지다.

1. 주인공의 목소리가 멋있다.
2. B급 정서로 만들어진 영화에 이렇게 엄청난 돈을 쏟아붓다니! 어울리지 않아! 어째서 이런 세상이 된 거지? 합판으로 만든 세트를 돌려줘!



영화를 본 후엔 스타벅스에 가서 이야기를 나누었다. 동진님이 러시아에서 가져온 러시안 인형과 초컬릿(맛있다). 겔만 위인전인 '스트레인지 뷰티'도 빌렸다.



그 다음에는 홍대로 가서 거울 진아님과 점심식사를 했다. 치뽈리나 새우/샐러리 파스타를 먹었다. 예쁘게 나온 거울 단편선을 받고-스캔 표지 색이 조금 뜬다고 생각했는데 직접 보니 펄이 들어간 종이였다- 단편선 출간담부터 일상 연애사(으응?)까지 이런 저런 화제로 수다를 떨었다. 나중에는 카페 라리로 자리를 옮겼다. 이야기가 워낙 재미있어 한참 흥분하다 보니 어느새 오후 여섯 시가 되었다. 단편선 출간에 별달리 힘을 보태지도 못했으면서 직접 나온 책을 보니 마음이 설레고 들뜬다. 이런 작업에 참여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 진행 과정 하나하나가 신기하고 새롭다.

집에 와서는 여우를 몇 마리 잡고(마비) 일찍 잠들었다.

2004년 8월 16일 월요일

2004년 8월 15일 : 마비노기

친절하신 분을 만나서 새로운 스킬 습득법을 배웠다. 와아! 옷도 주시고 상처까지 고쳐 주셨다.


그리고 여전히 먹고 살기 위해 분투.


나갈 때쯤 정훈님이 오셔서 밥 등을 주셨다. 고기다 고기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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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8월 15일 일요일

2004년 8월 15일 일요일 : 늑대의 유혹


서울극장에서 조조로 '늑대의 유혹'을 보았다. 개봉 당시만 해도 전혀 볼 생각이 없었는데, 모님(환상문학웹진 거X의......)께서 강동원이 너무너무 예쁘다며 몇 번이나 보시기에 호기심이 생겨 상영이 끝나기 전에 한 번 가 보았다.

결론: 왜 몇 번이나 보셨는지 이해했음. -_- '강동원의 유혹'이라던 말에 고개를 끄덕이게 되었다. 조한선은 돋보일 법한 역이었는데 안타까울 만큼 완전히 묻혀 버렸다.

이하 감상-스포일러



영화를 본 후 카페 뎀셀브즈에서 재영이와 베이글을 먹으며 이야기를 나누었다. 재영이는 한 시쯤 예배를 보러 먼저 자리를 떴고, 나는 창가로 자리를 옮겨 커피를 마시며 인터넷을 하고 있다. 날씨가 좋기 때문인지, 재영이 말처럼 다들 교회에 갔는지 msn에 사람이 몇 명 없다. 한가하고 여유로운 일요일 오후, 원고나 고치자.

덧붙임: 나에게 있는 원고가 최종고가 아니다! 아니 이게 대체......내 원고 어디 갔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

2004년 8월 14일 토요일

2004년 8월 14일 토요일 : 존 포드 걸작전 - 역마차 & 수색자

로고출처: 서울아트시네마 웹사이트


역마차(Stagecoach) 1939
존 포드의 초기작이다. 대위인 남편을 만나기 위해 버지니아에서 여기까지 온 숙녀 멜로리 부인, '숙녀'를 알아본다며 멜로리 부인을 따라나선 도박꾼 핫필드, 창녀라서 마을에서 쫒겨난 달라스, 가족을 살해한 삼형제에게 복수하려 탈옥한 링고키드, 예금을 횡령하고 도망치는 은행원, 소심한 위스키 판매원, 알콜중독에 집세를 못 내어 갈 곳이 없어진 의사 분, 링고 키드를 감옥에 도로 집어넣어 결투를 막으려는 경찰과 역마차꾼이 인디언이 나타날 수 있다는 말을 듣고서도 역마차를 타고 뉴멕시코로 향한다. 사회적 지위와 성격에 따라 형성되고 변화하는 미묘한 관계가 흥미롭다. 역마차 추격장면이야 워낙 유명하니 굳이 무어라 보태지 않아도 될 것 같고.....상당히 전형적이면서도 유쾌하고 흑백이어서-이 말을 보태는 이유는 아래 '수색자'에서- 즐겁게 보았다. 존 웨인---------!

수색자(The Searchers) 1956

1950년대작. 컬러인데 예상보다 훨씬 색이며 화면이 선명해서 첫 장면에서 깜짝 놀랐다. 테크니컬러, 어디인지 대단하구먼. 칠하다 만 것 같은 화면을 예상했는데. 가족을 코만치 인디언들에게 잃고 분노에 차서 납치된 어린 조카 데비를 찾아 나서는 이든 역을 존 웨인이 맡아, 역마차와 이어서 보니 링고 키드가 이십여년 동안 인디언에게 쌓인 분노를 폭발시키는 것처럽 보였다.; 이든은 자신이 주워와 동생 가족과 함께 살던 청년 마틴과 데비를 찾아나선다. 정신의 고삐가 반쯤 풀린 하드보일드 서부극 주인공 존 웨인 아저씨를 보는 재미가 쏠쏠했다. 내용은 좀 부담스러웠는데, 존 포드가 인디언을 단순한 '적'이상의 다층적인 존재로 표현한 탓도 있고, 얼굴이 뭉개져 잘 보이지 않는 만화영화 악당이 아니라 선명히 눈을 뜨고 살아가는 컬러 인간들이 등장했기 때문이기도 했다. 색의 등장이 현실을 보는 영화의 눈을 꽤 변화시켰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역시 추가 학습이 필요한 부분이다.

2004년 8월 12일 목요일

2004년 8월 12일 목요일

아파서 독서실까지 갔다가 집으로 돌아왔다. 계속 자다 밤 열 시쯤 일어나서 마비노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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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고 살기 위해 분투중.(정녕 게임에서까지 이래야 한단 말인가.;)

2004년 8월 10일 화요일

2004년 8월 10일 화요일 : 서울대 백신고 동문회



낮에 시험 준비차 서울에 올라오신 Covenant님과 차를 마셨다. 온라인에서만 알던 사람을 오프라인에서 만나는 일은 언제나 신기하고 즐겁다. 사실 녹두 밖으로 나가 맛있는 식사라도 하자고 청하고 싶었으나, 서울까지 와서 공부하느라 다급하고 바쁘신 분께 괜히 곤란한 초대가 될 듯 싶어 그만두었다. (.....그러나 사실 Covenant님과 나는 같은 시험을 준비하고 있다.) SF이야기 반쯤, 시험 이야기 반쯤.

저녁에는 명동 한식집 고궁에서 서울대 백신고 동문회를 했다. 밀리오레 앞에서 만나기로 하는 바람에 서로 못 찾아서 한참을 헤맸다. 약속 시각은 다섯 시, 실제로 사람들이 모인 시각은 여섯 시 반. 이래저래 사람 많은 길을 계속 헤치고 다니느라 내 식사는 하는둥 마는둥 했다. 제각기 다른 비빔밥을 시켜서 사진을 많이 찍을 수 있으리라 잔뜩 기대했는데, 하필 식사가 나올 때 명동역에 나가게 되는 바람에 다양한 비빔밥을 못 찍은 것이 몹시 아쉽다.


청포묵채

해물파전

전주비빔밥

이번 동문회에는 반가운 선배님이 오셨다. 99학번 세진언니! 재작년에 졸업하고 출국하신 뒤로 도통 연락이 되질 않아 어떻게 지내시나 늘 궁금하던 차에, 예고 없이 등장하셔서 정말 기뻤다. 2년동안 연구소에서 일하시다 이번학기부터 하버드에서 석박사 통합과정에 들어가신단다. 아마 이삼 년 후에나 다시 뵐 수 있겠지. 병원에서 바쁜 종우오빠와 방학 마지막 주인 혜진언니도 나오셨다. 00 형기오빠, 02 지현이와 03 두현이, 04 태준, 연수, 남수, 대영이와 나 이렇게 총 열한 명. 식사를 마친 뒤에는 근처 호프집에 가서 칠월에 유럽을 여행하고 돌아온 태준이가 선물로 가져온 초컬릿을 나눠먹으며 맥주를 들었다. 나는 딸기맛 웰치스. 열 시가 조금 넘어 일어나서 다함께 사진을 찍었다.

더운 날씨에 - 집에 돌아와 신문을 보니 36도가 넘었다더라 - 번잡한 명동에서 돌아다니느라 좀 지쳤지만, 재미있었다.

2004년 8월 8일 일요일

2004년 8월 8일 일요일

존 포드 회고전 '리버티 발란스를 쏜 사나이'를 예매해 두었으나, 너무 더워 도저히 나갈 자신이 없어 취소 가능 시간 막바지에 취소했다.

류트섭, '그레이트제이'


나뭇가지를 주워모으다 붉은여우와 싸웠는데 못 움직이게 되어 버렸다. 첫날부터 너무 무리했나. (...)

온라인 게임은 생전 처음이라 어리버리 열심히 뛰어다니고만 있다. 왜 수탉은 못 잡는 거지? 잡으면 닭고기도 구워 먹을 수 있을 텐데. 그나저나 3D 정말 대단하다. 요즘 게임은 다 이렇게 훌륭한가? 시점 변환도 놀랍고, 밝기나 그림자의 미묘한 변화도 멋지다.

원군님 따라 류트섭에 들어왔는데 아무도 없다. (...) 하프섭으로 갈까.

2004년 8월 7일 토요일

2004년 8월 7일 토요일 : Sicaf 2004 Animasia 'TV & 커미션드 2' & '애니메이션의 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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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 & 커미션드 2
1. 이민자(The Immigrants), 안드레이 사슬로츠키(2003-2004)
미국에 온 러시아 이민자 두 사람의 취직담(?). 블라드가 대형 슈퍼마켓 글루스코에 취직하자, '모두가 파이를 나누어 갖는 것'이 옳다고 믿는 요스카는 그 앞에서 필요량만 파는 노점 요스카코를 연다. 네 편 중에서 제일 볼 만 했다. 하려는 말이 선명히 보이고, 진행도 자연스럽다.

2. 헤어리 스케어리(Hairy Scary), 얀 반 리젤스베르그(2003)
시작한 줄 알았는데 끝나버렸다. 일부분만 잘라내어 보여준 예고편같다.

3. 제이커스! 피글리 윙크스의 모험: 랄루의 전설, 존 오버(2003)
3-D 티비 만화 시리즈 중 한 편. 내용보다 주제가가 더 재미있었다.(...) 다민족 국가의 아이들이 각자 자신과 다른 사람들의 뿌리를 소중히 여겨야 한다는 것을 깨닫는 교훈적인 이야기이다. 어린아이들이 보면 깨닫는 바가 있겠지만 어른이 보기에는 좀 지겹다.

4. 네티비, 박상욱(2003)
티켓 카탈로그의 줄거리와 아무 상관이 없어 보이는 내용이다. 러닝타임을 맞추기 위해서인지, 전체 필름을 팔기 위한 일종의 쇼케이스 버전인지 모르겠지만 앞뒤가 전혀 안 맞고 유머는 심심하기 그지없다. 특히 주요 등장인물 남자아이가 상영한 이십삼 분 내내 아무 역할도 하지 않아 짜증스러웠다. 이야기를 앞으로 끌어가는 데 필요가 없는 등장 인물은 보는 이를 헷갈리게 한다(distracting). 그리고 굳이 '악=추함=질투하는 나이많은 여자'라는 식상하고 불쾌한 공식을 써서 얼음마녀의 정체성을 확립해야 하는 이유라도 있나. 창작자로서는 안이하고, 어린이를 대상으로 한 모험 애니메이션을 만드는 어른으로서는 위험한 자세다. 감독이 나와 같은 회에 보러 와서 만드느라 고생했다는 무대인사를 했다. 다 보고 나니 묻고 싶은 것이 많았는데 순식간에 사라져서 아쉬웠다.

애니메이션의 시대(The Animated Century)아담 스나이더, 이리나 마르골리나(2003)

대단히 유익한 애니메이션이었다. 기대를 많이 했는데, 전혀 실망하지 않았을 뿐 아니라 기대 이상이라 집에 돌아와서 비디오나 DVD가 있는지 찾아 보았다.(없더라) 애니메이션의 역사를 설명하는 다큐멘터리 애니메이션으로, 19세기 애니메이션의 태동부터 최근의 전세계 애니메이션 경향까지 폭넓게 살핀다. 다양한 자료 화면, 즉 예전의 애니메이션을 직접 보여 주며 설명하는 방식이라 애니메이션의 발전사가 한 눈에 들어오고, 국적이 아니라 발전사적인 중요도를 중심으로 설명하기 때문에 이해의 폭을 넓히는 데에도 큰 도움이 되었다. 영화관에서 보지 않았다면 필기를 하며 보았을 법한 영화. 기억나는 내용을 간단히 정리하면-

최초의 애니메이션은 다리가 실제보다 많이 그려진 선사시대의 벽화이다. 벽에 그린 그림이 불빛에 흔들리며 움직이는 것처럼 보이는 효과를 이용했다. 초기 애니메이션은 눈의 착각을 이용해 이 움직이는 효과를 내기 위해 다양한 기법과 기구를 활용했는데, 대표적인 것이 그림을 꽂아넣어 뱅뱅 돌리는 '소마트로프', '페나키스티스코프'이다. 이를 영사 가능하게 발전시킨 기계가 바로 '프락시노코프'다. 19세기 말 영화의 탄생은 애니메이션의 발달에도 혁신적인 영향을 미친 사건이었다. 그림자를 이용한 그림자 애니메이션, 조금씩 다르게 그린 그림을 일일이 사진으로 찍어 영사한 애니메이션 등이 나타났다. 그리고 셀 애니메이션이 등장한다.

미국과 유럽의 애니메이션 발달 과정에는 상당한 차이가 있다. 영화에서 드러나는 양 대륙의 차이와 비슷하달까. 미국의 애니메이션 제작소는 신문 카툰의 인기 캐릭터를 움직이게 만들고 싶어한 신문사나 잡지사에 의해 설립되었다. 그 때문에 이들 애니메이션은 대중들을 위한 재미에 중점을 두었고 캐릭터가 중요한 역할을 했다. 섹스심벌 베티붑이 등장한 것이 20세기 초반일 정도이니! 반면 유럽에서는 다양한 기법이 시도된다. 음악에 따라 빙글빙글 도는 그림 등이 나오는 추상 애니메이션, 각 프레임마다 등장하는 인물들을 나무조각으로 일일이 만든 애니메이션(그 일을 어찌 다 했을까!) 등이 주목을 받는다. 1920년대에 등장한 월트 디즈니의 스튜디오는 역동적이고 자연스러운 표현과 탁월한 표정묘사, 토키 애니메이션 등으로 애니사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 이 때 디즈니와 함께 있던 어브 아이웍스는 독립하여 - 나는 지금까지 미키마우스를 만든 사람이 어브 아이웍스라고 알고 있었는데, 이 다큐에서는 디즈니가 유니버셜 스튜디오에서 나오며 미키마우스를 가져갔다고 표현하여 좀 이상했다. 토끼 오스왈드랑 다르지 않나- 개인 스튜디오를 설립했고, 역시 디즈니에 있던 플라이셔도 플라이셔 스튜디오를 설립, 애니메이션 최초의 섹스 심벌인 자신의 캐릭터 베티 붑으로 이름을 알린다. 디즈니 파업 후 해고된(;) 애니메이터들이 설립한 UPA도 리미티드 기법 등 자신들만의 감각적인 애니메이션을 발전시켜 나간다.

그러는 사이 유럽에서는 실험이 계속된다(;) 절지 애니메이션, 인형 애니메이션-생물학자 출신인 애니메이터가 정교한 곤충 인형을 이용하여 만든 곤충 애니메이션까지 있다-, 필름에 직접 그림을 그린 애니메이션 등이 등장한다. 유럽 애니메이션 중에 흥미롭고 참신한 시도가 참 많았는데 익숙치 않고 나라가 많기 때문인지 이름이 도통 생각이 나질 않는다. 실제로 이 다큐는 미국보다 유럽 쪽의 여러가지 움직임을 중요하게 다루었다. 내가 유럽의 애니메이션 작가들을 잘 몰라서 기억을 못 하는 바람에 자세히 못 쓰는 것이다.;;

2차대전과 전쟁을 거치며 서유럽/동유럽/ 미국의 애니메이션 방향도 달라진다. 미국에서는 벅스바니나 도널드 덕이 채권을 모으고 히틀러와 싸운다. 동유럽의 억압적인 분위기는 애니메이터들에게 양날의 칼이 되었다. 정치적인 내용을 만들 수 없어 소재가 제한되었지만-춤치였던 스탈린은 춤 못 추는 뚱뚱한 주인공이 나온다는 이유만으로 애니메이션의 상영을 금지키도 했다- 대신 경제적인 성공을 거두어야 한다는 부담감이 없어, 다양하고 새로운 기법을 통해 원하는 것을 (정치만 아니라면) 바라는 그대로 표현할 수 있었다. 색으로 인물을 표현하여 투우 장면을 묘사한 애니메이션과, 역시 이름을 잊은 어느 성공한 애니메이터가 말년에 만든 억압받는 상황에 대한 고통을 거대한 손으로 묘사한 작품이 특히 기억에 남는다. 짤막한 개그물도 많이 나왔다. 우리나라가 짱이라는 내용의 애니도 나라를 가리지 않고 등장했다. 서유럽에서는 동유럽의 상황을 이해해 보려는 듯한 애니메이션이 등장했고-네살짜리가 군에 징집되는 이야기라든지- 미국에서도 인디애니가 등장하며 재미만을 찾지 않고 철학적인 소재를 깊이있게 탐구하려는 시도를 했다.(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를 놓고 닭과 달결이 토크쇼에서 싸우는 아주 재밌는 애니가 있다.) 스페인에서는 애니메이션 기법을 이용한 CF가 활발히 만들어졌고, 캐나다는 애니메이션 사업을 국가적으로 지원했으며, 이탈리아 애니메이션의 주제는 흔히 짐작하는 대로 섹스와 스포츠이다.

그 다음 컴퓨터의 등장이나 클래이 에니메이션의 재발견 같은 부분은 최근이니 생략. 우리나라 애니가 너무 무국적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백 년 전이나 지금이나 여전한 사람들의 상상력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1900년대의 흑백 애니메이션을 보면서, 창작의 근본은 역시 기술이 아니라 사람의 생각 그 자체라는 것을 새삼 느꼈다.

애니메이션에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반드시 보아야 할 다큐다. 동영상 파일 버전이라도 구할 수 있다면 꼭 구해서 두고두고 보고 싶다. 유럽 애니메이션의 역사에 대해 좀 더 공부해 보자.

2004년 8월 6일 금요일

2004년 8월 6일 금요일

이사를 하고 나니 남는 것은 폭 몇 미터짜리 책장, 책상에 달린 책장, 책상에 안 달린 책장, 뒷면에 금이 간 책장, 만화책이 숨듯이 차곡차곡 쌓인 서랍과 제 자리를 찾아 들어가려 버둥거리는 책 한 무더기였다. 전화콘센트 앞 밖에 책장이 들어갈 자리가 없어, 이사하기에 앞서 인터넷부터 연결해야 했다. 인터폰 때문에 들어가지 못한 한 칸의 책장은 덩그러니 거실 복판에 서서 왜 나한테 이러냐고 울부짖었다. 얘야, 넌 세번째랑 네번째 칸처럼 흠집이 생기지는 않았잖니.

저녁 내내 책을 꽂았다. 몇 권 되지도 않는 주제에 무겁기는 엄청 무거웠다. 내가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겠다고 덜 먹고 덜 놀고 덜 입은 돈으로 이걸 사모았나 생각하니 절로 한숨이 나왔다. 이건 아무리 봐도 마음의 양식이 아니었다. 몸의 양식을 떼어다가 마음의 군것질에 썼을 뿐이다. 깨달음을 얻은 것을 기념하여 이달에는 책 따위 내버려 두고 두건과 여름옷을 사기로 마음먹었다. 동대문에 가면 이천오백원에 가로세로 오십삼 센티미터짜리 두건을 살 수 있다. 들어갈 곳이 없어 아우님의 책꽃이에 모로 누운 책 한 권이면 머리 위로 빨주노초파남보 화사한 무지개를 두르고 꽃이며 잔디까지 심을 수 있었다. 나도 이제 환경 친화적인 사람이 될 거다.

가끔 소녀의 감성이 대체 뭐냐고 묻는 사람들이 있다. 백문이 불여일견이다.

격월간 순정만화잡지 윙크, 7월 15일자 '궁'

2004년 8월 5일 목요일

2004년 8월 5일 목요일 :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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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를 했다. 정리가 끝나려면 아직 멀었다.

6일 새벽 1시에 덧붙임: 책 따위 아무리 봐도 인생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이제 책이 아니라 원수로 보이기 시작. -_-

2004년 8월 2일 월요일

2004년 8월 2일 월요일 : 상트 페테르부르크 국립 아이스발레단 ‘호두까기 인형’

출처: 클럽발코니


동진님과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에서 '호두까기 인형'을 보았다. 예쁘고 경쾌했다. 앞으로 한동안 호두까기 인형을 들을 때마다 눈 앞에 떠오를 만큼 의상이나 무대도 인상깊었다. 동화로 널리 알려진 1막도 좋고, 2막의 저 유명한 장미꽃 왈츠도 아름답지만, 내가 호두까기 인형 발레에서 가장 좋아하는 부분은 뭐니뭐니해도 바로 2막 초반의 디베르티스망, 그 중에서도 아라비아의 춤이다. 아이고 좋아라. (으응?) 피리춤의 발레리나 한 명이 그만 엉덩방아를 찧고 말아 보면서 몹시 안타까웠다. 여기까지 와서 그렇게 치명적인 실수를 하다니, 많이 혼났을 거야. 그 발레리나는 나중에 커튼콜에도 안(못?) 나왔다.

방학이라서인지 어린애들이 굉장히 많았다. 몰입하기 쉬운 화려하고 볼거리 많은 공연이라서인지 공연 중에는 생각보다 시끄럽게 떠들지 않아서 다행이었다. 쉬는 시간에 로비에 나가 보니 어린 아이들이 굉장히 많아, 이렇게 많은 것 치곤 정말 조용했구나 싶었다.

공연이 끝난 다음에는 초원죽집에서 뒤늦게 저녁을 먹었다. 다 먹고 일어나는 순간, 물품보관소에 맡긴 가방을 찾아오지 않았다는 것이 생각나서 몹시 당황했다. 결국 퇴근하는 사람들을 붙잡고 물어 당직실(;)에 넘어가 있던 가방을 찾았다.

연락을 늦게 받는 바람에 정신없이 뛰어가서 보았는데, 시원하고 즐겁고 만족스러운 공연이어서 기뻤다.

2004년 8월 1일 일요일

2004년 8월 1일 일요일





멋진 새 옷을 입고 온 승민오빠와 에베레스트에서 점심식사를 했다. 맛있는 양고기, 맛있는 커리, 맛있는 난. 후식으로 특이한 설탕시럽 후식도 먹었다. 오빠는 무늬에 따라 반짝반짝 불꽃 모양의 불이 들어오는 새 손목시계를 샀다. 걸어다니는 파산친구 인정. ( - _-)



식후에는 버스를 타고 카페 뎀셀브즈에 가서 커피와 차를 마셨다. 타르트가 먹고 싶었으나 배도 부르고 해서 참았다. 요새는 내 몸을 보면 기분이 나빠진다. 돌아오는 길에는 한양문고에 잠깐 들렀다. 윙크 선물 당첨.;

승민오빠의 PDA로 그린 걸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