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년 12월 28일 일요일

2003년 12월 28일 일요일

토요일 저녁, 승민오빠와 msn하다 커리 얘기가 나와서 일요일 점심 때 먹으러 갔다. 요전에 갔던 마하라자.레스토랑 코너에 소개할 때 쓰려고 가는 길 사진도 찍어 두었다. 주인 아저씨가 안 계셔서 메뉴 설명을 못 들었다-한 쪽은 열심히 설명하고 한 쪽은 열심히 듣긴 했는데, 영어도 한국어도 제대로 통하지 않으니.....긁적. 어쨌든 요전에 안 먹었던 커리로 대충 골라 맛있게 냠냠 먹었다.


양고기커리


닭고기커리


망고라씨

식사 후에는 승민오빠가 인터넷에서 알아 둔 스무디집을 찾아나섰으나, 이미 없어졌는지 보이지 않아서 포기하고 내가 들어둔 헌책방 Abby's Book Nook에 갔다. 타지마할 골목, 이슬람 사원 근처라는 두 단서만으로 한 번에 찾아내어 무척 뿌듯했다. 뒹굴뒹굴 하기엔 괜찮을 법한 서점이었으나, 살 만한 책을 찾지는 못했다. 사실 스타트렉이랑 엑스파일 소설들이 사고 싶었지만 꾸욱 참았다. 사 놓으면 읽게 되더란 말이지. - _-

승민오빠는 이태원에서 저녁식사 약속이 있어 남고, 나는 지하철을 타고 독서실에 갔다. 도중에 스타벅스에 들렀다가 엉겁결에 '스타벅스 2004년 다이어리'를 샀다. 봉지는 내가 갖고 다이어리는 동생에게 주었다.

2003년 12월 27일 토요일

2003년 12월 27일 토요일

승혜고모 결혼식에 갔다. 교회 결혼식에 간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생각해 보니 교회에 간 것도 이번이 처음이다. 찬송가를 부르는 시간도 있었다. 불러 보려고 했으나 그것도 하던 사람이 한다고, 어려웠다.

주례 없는 결혼을 해도 괜찮을 것 같다. 깔끔한 집안 잔치가 어렵다면 차라리 정말 가까운 사람들과 함께하는 작고 특별한 이벤트로 만들고 싶다.
한 번 뒤돌아 설 때마다 옆에서 다듬어 줘야 하는 치렁한 웨딩드레스를 입고, 주례와 카메라멘을 마주보고 뻣뻣하게 서서 덕담(-_-)을 들은 뒤, 밥 먹으러 가는 하객들 뒤에서 사진을 찍어야 하는 결혼은 하고 싶지 않다.

승혜고모는 예뻤고, 처음 본 신랑도 견실하고 좋은 사람 같아 좋았고, 몇 년 만에 뵙고 인사 나눈 수많은 친지분들도 무척 반가웠다. 행복한 자리가 주는 풍성한 즐거움도 한껏 느꼈다. 그러니까, 윗 글은 고모 결혼식과 상관없는 그냥 내 결혼 이야기.

2003년 12월 26일 금요일

2003년 12월 24일 수요일

2003년 12월 24일 수요일



그 동안 있었던 일 간단히 메모. 월요일부터 목이 아프더니 화요일이 되자 아침부터 목소리가 제대로 나오지 않았다. 더 나빠지기 전에 챙기자 싶어 병원에 갔더니 편도선이 부었단다. 어렸을 때 수술해야 된다는 말을 들었으나 무서워서 그만뒀는데, 피곤하거나 다른 병치레를 할 때면 꼭 붓는다. 약을 챙겨 먹고 하루종일 집에서 빈둥빈둥 했더니 다행히 금방 가라앉았다.

수요일에는 독서실에 다녀와서 가져온 크리스마스 케익을 나누어 먹었다. 돔형 케익으로, 예쁘고 맛있었다.

크리스마스에는 평소처럼 독서실에 갔다.

2003년 12월 22일 월요일

2003년 12월 22일 월요일

원군님과 서울대입구 쏘렌토에서 점심식사를 했다. 태블릿 PC를 돌려 드렸다. 아쉬워라. 태블릿이라도 갖고 싶어 잠시 검색해 보았으나, 노트북이 아니라면 썩 자주 쓸 것 같지 않다. 컴퓨터 할 시간도 없고.

얼마 전 루크님이 블로그에 올린 인상적이기 그지없는 사진을 보고, 인터넷에 얼굴을 알린들 어떠랴 하는 생각이 들었다. 글 잘 쓰는 사람들의 설득력은 무섭다. 정직한님 블로그를 읽을 때면 빨리 결혼하고 아이를 낳아 사랑하며 키우고 싶어지고, 김주영님의 홈페이지에 가면 나도 카리스마 넘치는 사람이 되고 싶어진다. 홍인기님의 리뷰를 읽으면 장르소설계는 '불후의 명작'과 '희대의 걸작'으로 가득하다. (몇 번을 당했는지.) 부럽다. 글 잘 쓰는 사람들이 제일 부럽다. 말 잘 하는 사람은 별로 부럽지 않은데-살기 편하겠다는 생각은 해도- 글 잘 쓰는 사람은 부럽고 샘이 난다.얼마나 더 읽고, 더 자라야 나도 내 글을 쓸 수 있을까. 그게 가능하기는 할까. 연습도 문제지만, 그보다도 생각이 부족하고 앎에 깊이가 없으니. 허영심만 어떻게 좀 걷어내도 훨씬 낫겠거늘. 아직 멀었다.

2003년 12월 20일 토요일

2003년 12월 20일 토요일 : 반지의 제왕 3 '왕의 귀환'

동진님과 메가박스 3관에서 반지의 제왕 3편을 보았다. 아침 7시 40분에 하는 조조로. 새벽 6시에 일어났다. 헉헉. 영화에는 꽤 만족했다. 많이 잘라낸 것 같으니 확장판도 기대되고......파라미르와 아버지의 갈등은 원작을 보았거나 2편 확장판을 보지 않았다면 갑작스러웠을지도. 아라곤이 정말 멋있다. 너무 멋져서 울고 싶었다. 영화가 끝날 즈음에는 배가 고프고 졸려서 머리가 멍했지만, 제작진의 노력에 감사하는 뜻으로 스텝롤을 끝까지 보았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노력과 시간을 쏟아부었는지. 외전도 무한정 만들 수 있겠지만-파라미르와 에오윈의 사랑 이야기라든가, 완전히 잘려나가 버린 사루만 부분이라든가, 시장이 된 샘 이야기도 좋겠고- 배우들이나 제작진이나 이제 또 다른 영화를 만들며 앞으로 나아가야겠지.





압구정에 가서 샤브샤브를 먹고 커피집에 갔다. 커피를 두 잔째 마실 즈음에야 정신이 들었다. 배가 부르고 따뜻하니까 슬슬 기분이 좋아졌다. 한참을 빈둥빈둥 하다 오랜만에 커피를 100그램 사 들고 집에 왔다.

저녁에는 학림에서 종훈오빠 책모임. 야니님도 두 달 만에 뵈었다. 너무 늦게 가는 바람에 한 시간도 채 못 있다 헤어져서 아쉬웠다. 긁적. 주말이니 저녁식사라도 가족과 함께 하고 싶어 서둘러 집에 갔는데, 막상 도착하니 아버지는 송년회, 동생은 모임에 가 버리고 없어서 좀 서운했다. 주말마다 돌아다니는 내가 할 말은 아니겠지만. 아하하.

2003년 12월 17일 수요일

2003년 12월 17일 수요일 : 그림일기

오늘의 그림일기

위 그림을 그린 후 동생에게 자랑을 했다.
제이: 이것 봐! 언니 독서실 책상 그렸다!
동생: 그렇네. 그런데 진짜....깬다.;
제이: 응?
동생: 언니는 정말로 참 멋진 사람인데 말야, (시선을 돌리며) 글씨가 너무 인간적.....인 면을 보여줘서.....
제이: 우웅, 하지만 모니터에 바로 쓰니까 손이 미끄러져서 작은 글씨는 잘 못 쓰겠단 말야.
동생: 그럼 '그림일기' 제목만이라도 새로 쓰는 건 어때?
제이: 왜? 그건 예쁘게 썼잖아.
동생: - _-

손으로 그림을 그리니 마치 혼잣말하듯, 평소와는 조금 다른 일기를 쓰게 된다. 이 참에 이것 저것 잡기를 써 보기로 했다.

제이의 그림일기: msn등장인물시리즈

2003년 12월 14일 일요일

2003년 12월 14일 일요일 : 서울대 백신고 동문회









원군님의 태블릿 pc로 쓰는 중. 생각보다 쉽게 인터넷 연결에 성공했다. 너무 좋아서 정신을 잃을 것 같다. 으아아아아아아

2003년 12월 13일 토요일

2003년 12월 13일 토요일 : 반지의 제왕 2 '두 개의 탑' / 러브 액츄얼리

인수오빠가 세 시간만에 매진되었다던 반지의 제왕2 확장판 표를 구해, 함께 상암 CGV에 보러 갔다. 제니스 카페테리아에서 점심식사를 했다. 내가 조금 늦게 도착한데다 점심 시간이라 카페가 붐비는 바람에 시간이 빠듯해져, 샌드위치는 반만 먹고 나머지는 포장해서 영화관에 가져갔다. 언제 먹어도 맛있는 제니스 샌드위치.♡


카메라

아이스티

크림스프

샌드위치 내부

간신히 제 시간에 도착하여 표를 받고 기다렸다. 상암 CGV는 처음 가 보았는데, 7,8,9관이 정말 작다. '크기가 이만하니까 세 시간만에 매진되었지' 싶었다.-_-; 시설 괜찮은 DVD방에 단체로 간 기분.

TTT확장판은 아직 DVD를 사지 않았기 때문에 이번에 처음 보았다. 역시 피터 잭슨은 대단하다. 원 개봉판에서 아쉬웠던 부분을 많이 보강했다. 특히 개봉판에서 '어설픈 변덕쟁이'처럼 보였던 파라미르에 대한 설명이 추가되어 좋았다. 보로미르-파라미르-아버지의 갈등도 넣어 캐릭터를 살렸다. 소소한 유머에도 대만족. LotR같은 원작을 둔 영화는 어떻게 만들든 아쉬운 부분이 남기 마련이다. 피터 잭슨의 작품 정도면 나무랄 데 없이 훌륭하다고 생각한다.

영화를 다 보고 나니 동진님러브 액츄얼리를 보기로 한 여덟 시 까지 어정쩡하게 시간이 남았다. 상암 CGV에서 영화를 보거든 식사 시간은 피하는 편이 좋겠다. 먹을 곳이 없다. 주위도 황량하고. 인수오빠와 어정쩡하게 왔다 갔다 하다가, 동전을 던져 숫자가 나오면 롯데리아에, 그림이 나오면 씨젠에 가기로 했다. 그림이 나와서 더 씨젠이라는 건강면/음료/샐러드 체인점에서 저녁식사를 했다. 그냥저냥 먹을 만 했고, 발상은 괜찮았지만 두 번은 가고 싶지 않은 곳이다. '다이어트 식'이라는 샐러드+면에 얹어 놓은 드레싱이라니! 이게 대체 뭐야! 레서피가 뭐 이따위야! *분노*






호박면 볶음

당근면샐러드

식사 후엔 체스를 두었다. 완벽한 패배였다. 정중앙을 차지한 인수오빠의 나이트에 묶여 허덕거리다 제대로 싸워 보지도 못하고 체크메이트. 원군을 이끌고 헬름 협곡으로 달려온 갠달프 같은 나이트였다.

체스가 끝날 즈음에 동진님이 오셨다. 인도 출장에서 돌아오시는 길에 를 선물로 가져오셨다. 포장 주머니가 예뻐 아직 안 뜯고 보고만 있다. 헤헤, 좋아라.



러브 액츄얼리도 상당히 괜찮았다. 연애 중인 사람이라면 필히 애인과 함께 보아야 할가볍고 따뜻하고 밝은 영화랄까나. 참, 등장 인물 중 미국에 가서 연애에 성공하겠다는 남자가 잠깐 나온다. 이 사람은 결국 미국에 가서 꿈꿔오던 미인을 세 명 만나는데, 나중에 크레딧 올라갈 때 보면 이 세 명을 'American Godness', 'American Dreamgirl', 'American Angel'이라고 써 놓았다. 푸하하.

영화를 여섯 시간 가까이 보아 무척 피곤했다. 두 영화 다 좋았지만, 앞으로는 하루에 한 편만 보아야지. 그냥 영화만 본 것도 아니고 신나게 놀았으니......일기를 쓰고 있는 지금(월요일)까지도 피로가 덜 풀렸다. 공부하는 사람 답잖은 실수다. 반성.

2003년 12월 11일 목요일

2003년 12월 11일 : 서울시향 제 634회 정기연주회

프로그램
모차르트, 디베르티멘토 D장조, K.136
모차르트, 바이올린 협주곡 제5번 A장조, K.219
슈트라우스,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Op.30

원군님라리에또에서 저녁식사를 한 후 함께 서울시향 정기연주회를 보러 갔다. 이번 정기연주회는 시향 동호회에서 초대권이 나왔다. 라리에또에서는 스파이시 치킨 페투치니를 먹었는데, 엄청나게 매웠다. 라리에또는 아라비아따 펜네도 아주 매운 편이다.

날씨 탓인지 정기연주회에 관객이 많지 않아 안타까웠다. 특히 연세 드신 분들이 많이 오셨다. 연세가 많은 분들은 대개 박수를 안 치고 멀뚱멀뚱 보신다. 한 시간이 넘게 팔짱을 끼고 있으면 힘들 것 같은데. 박수를 치면 건강에도 좋다더만. 어쨌든 그래서 관객 구성이 오늘 같은 날에는 흥이 잘 나지 않는다.

공연은 즐거웠다. 프로그램에 모짜르트가 두 곡이나 있어 그다지 기대하지 않았는데, 오히려 슈트라우스보다 모짜르트가 더 훌륭했다. 언제 어디서나 편하게 들을 수 있는 디베르티멘토도 괜찮았지만, 무엇보다 만족스러웠던 것은 바로 일리야 그린골츠의 바이올린 협연이었다. 훌륭했다! 정확히 표현할 형용사가 떠오르지 않아 답답하다. 애써 현란하지 않으면서도 확실한 무게가 있는 독특한 연주. 모짜르트 바이올린 협주곡을 이렇게 열중하여 들은 것이 대체 얼마만인가. 그리고 그 앵콜이란.....! 나중에 씨디 재킷을 읽다 나와 겨우 한 살 차이라는 사실을 알고 또 한 번 놀랐다. 어린 나이에 데뷔한 연주자들은 기교에 치중하기 쉽다. 물론 그 화려함에 해석의 깊이를 더해 진정한 대가의 반열에 오르는 이도 있지만, 음악이 아니라 재주넘기를 하는 듯한 연주로 주목을 받다 서서히 잊혀지는 '영재'들도 수없이 많다. 일리야 그린골츠는 앞으로 확실한 자기 세계를 구축해 나갈 사람 같았다. 좋은 바이올리니스트를 알게 되어 무척 기쁘다. 씨디도 샀다. (심지어 평소에는 절대 사지 않는 바흐로.) 이제 씨디 두 장을 내놓은 신진 연주자. 앞으로 어떤 음악을 들려줄지 기대가 크다.

협연을 들으며 너무 힘을 빼서(?) 짜라투스트라는 헬레벨레 들어넘겼다.

마을버스를 타고 강남역에 갔다. 버스를 타고 가는 동안 원군님의 태블릿 PC를 구경했다. 신기하고 재미있었다.(아래 낙서) 포터블에서 '유용성'보다 '오락성'을 높이 치는 내 취향에 딱 맞는 멋진 장난감, 아니 노트북이었다.

식사도, 공연도, 대화도 모두모두 즐겁고 만족스러운, 기분좋은 날이었다.



2003년 12월 7일 일요일

2003년 12월 7일 일요일 : 사토라레

완전 한겨울 날씨였다. 집에서 밀린 책표지를 싸고, 인터넷을 하고, 홍차를 끓여 마시는 등 빈둥거리다가, 이러다간 이번 주도 지난 주 일요일처럼 축 늘어져 보낼 것 같아 신촌에 있는 아트레온에 사토라레를 보러 갔다. 개봉 했을 때 부터 보고 싶었으나 묘하게 일정이 어긋나서 (마음먹고 영화관에 갔더니 이미 끝났다든지) 이제야 보았다. 새로 문을 연 아트레온에는 처음 갔는데, 사람들을 기다리고 만날 공간이 많은 점은 마음에 들었으나 전체적으로 동선이 나빴다. 엘리베이터에 우르르 몰려 타고 상영관까지 올라가야 하는 점은......어쩔 수 없는 건가. 하지만 화장실은 좀 더 크게 만들어도 좋았겠다. 여하튼 여러 사람들이 우르르 모여 단체로 가기에는 괜찮을 것 같다.

'사토라레'는.......무난했다. 좀 더 재미있게 만들 수도 있을 텐데 싶긴 했지만 이대로도 딱히 불만은 없는 정도. 후반부에 가족애 감정 과잉으로 나간 점은 아쉽다. 하지만 남자 주인공이 대단히 귀여웠으니까 만족!

2003년 12월 6일 토요일

2003년 12월 6일 토요일

오랜만에 민광오빠와 만났다. 동생이 강력 추천했던 강남역 근처의 이탈리안 레스토랑 라베니스에 가 보았다. 동생은 이 곳 파스타가 라리에또보다 '가벼워서 좋다'고 했다. 파스타는 그런대로 괜찮고-일단 주위의 노리타 강남점 같은 곳 보다는 확연히 낫다- 피자는 가격을 생각하면 괜찮지만 맛만 따지자면 치뽈리나보다 상당히 아래, 노리타 이대점과 비슷, 가격 감안해서 연대후문 데미타스와 경쟁 가능 정도. 한 번 더 가 본 후 레스토랑에 올려야지. 강남역 근처에는 제대로 먹을 곳이 참 없었는데, 이제 그 근처에서 만나면 가볍게 들어갈 곳이 생겨 다행이다. 참, 투썸플레이스도 강남점을 여는지, 공사를 하고 있었다.


마늘스파게티

피자

피클

식사 후엔 교보문고 강남점에 갔다. 날씨가 추워서인지 차도에나 인도에나 사람이 거의 없었다. 다들 실내에 들어가 있었던 것이다. =_=; 차 한 잔 하며 몸을 녹이려고 보니 웬만한 카페는 모두 꽉 들어차서 자리가 없었다. 잠시 헤메다가 라메르라는 처음 보는 카페에 가 보았다. 괜찮았고, 지하에 있는 덕분인지 조용하여 이야기 나누기도 편했다.

도중에 원군님이 잠깐 오셔서 바람일기 책을 선물로 주고 가셨다. 싸인도 해 주셨다. 히히.


아메리카노

고구마케익

바람일기

저녁에는 승민오빠와 이태원에 있는 인도네시안 음식점 발리에 갔다. 승민오빠 회사에서 병특이 나온 기념이었다. 오빠의 군 문제가 드디어 잘 해결되어 정말 기뻤다. 축하해요. 발리 음식도 맛있었고! 그런데 차양이 있는 자리에 앉는 바람에 조명이 너무 어두워져 사진을 제대로 못 찍었다. 특히 그릴에 구운 닭다리 요리가 딱 내 취향이었는데, 찍어 온 사진을 보니 너무 어두워서 쓸 수가 없다. 낙심낙심. 마지막 사진의 람부탄을 찍을 때는 '카메라 그림자'를 집어넣는 어처구니없는 실수까지 했네.(집에 와서 보고 기가 막혔다)

배부른 토요일이었다. 좋은 사람들을 만나니까 행복해서 날씨가 추운 줄도 모르겠더라.


해물스프

양고기

람부탄

2003년 12월 5일 금요일

2003년 12월 5일 금요일 : 스페이스 어드벤처

옛날 옛적에 작위의 신이 살았어요. 작위의 신은 온 우주를 누비며 부지런히 일했어요. 작위의 신은 원래 부지런히 일 하는 존재였기 때문에 잠시도 쉬지 않았어요. 그러던 어느 날, 작위의 신은 할 일이 없어 고민하던 중에 어떤 항성계를 지나치게 되었어요. 사실 무엇이든 하기만 하면 되니 계속 고민을 해도 상관은 없었지만, 앞에서 말했듯이 작위의 신은 엄청나게 부지런해서 그것만으로는 만족하지 못했거든요. 여하튼 그래서 작위의 신은 이 항성계의 다섯 번째 행성에 마을을 하나 만들기로 결심했어요. 작위의 신은 헌법이라는 땅을 다지고, 그 넓은 땅을 둘러 형법이라는 벽을 높게 쌓았어요. 그 위에는 형사소송법이라는 그물까지 쳤죠. 그리고 그 안에 직접 만든 민법족이라는 생명체를 풀어넣었답니다.

만약 민법족이 형법벽을 오를 끈적한 빨판이나 형소법그물을 끊을 튼튼한 이빨이 있었다면, 이 이야기는 초대형 스페이스 어드벤쳐 로망이 되었을 거에요. 하지만 작위의 신은 부지런하기만 했지 상상력은 별로 없었고, 자기가 만든 게 아닌 스페이스 오페라에는 아무 관심도 없었어요. 그래서 민법족은 둥글둥글한 몸에 솜털같은 다리겸 눈이 잔뜩 달린 작고 수상한 모양이 되고 말았어요. 모험은 커녕 버둥거리기 바빠서 앞으로도 뒤로도 갈 수 없는 곤란한 처지였죠. 뒤늦게 실수를 깨달은 작위의 신은, 동글동글한 몸 한 쪽에 X자를 그려 넣고 앞면으로 정했어요.

그리고 앞으로 민법족들이 편하게 살 수 있도록 신전을 짓고 다섯 신을 세웠어요. 작위의 신은 어디 갔냐고요? 에이, 진짜 신이 달 세 개가 뜨고 지는 동안 내내 신전을 지키고 있을 순 없잖아요. 신전에는 존재, 부존재, 유효, 무효, 실효 의 다섯 신이 있어, 민법족들이 어려운 일을 당해 찾아오면 도와주었어요. 민법족들이 아무 때나 신전에 몰려오면 곤란하니까 작위의 신은 신전 반대편 끝에 기본권의 숲도 만들었어요. 민법족이 숲 앞에 가서 사정을 말하고(물론 우리처럼 말하는 건 아니에요) 앞면을 바닥에 대고 다섯 번 구르면 울창한 숲에서 숫자가 쓰인 나뭇잎이 하나 떨어졌어요. 그러면 민법족은 그 잎을 신전에 바치고, 다섯 신 중 그 잎에 맞는 신이 강림하시는 거죠.

민법족은 이 헌법땅 위에서 평화롭게 살았어요. 그러던 어느 날, 앞면에 X가 있는 대산 뒷면에 O무늬가 있는 민법족이 태어났어요! 대 혼란이 일어났죠. 다른 민법족들은 이 민법족(편의상 O라고 하죠)을 볼 때 마다 방향이 헷갈려서 자기 자리에서 버둥거려야 했어요. O의 어려움은 말할 필요도 없었고요. 그래서 O는 기본권의 숲에 갔어요. 하지만 다른 민법족들과 달리 앞면의 X를 바닥에 댈 수 없었기 때문에, 아무리 열심히 굴러도 나뭇잎이 떨어지지 않았어요. 좌절한 O를 가엾게 여긴 기본권의 숲지기 681(얜 사실 작위의 신이 처음에 잘못 만들었던 버둥버둥 민법족이었어요. 계속 같은 자리에만 있어야 하니 숲지기로 딱이라서 하나 남겨뒀죠)이 말했어요.
"기본권의 숲 안 아득한 곳에는 헌법소원칼이라는 신비한 물건이 있대. 그걸 가지고 신전에 가면 무언가 엄청난 일이 일어난다는 전설을 들었어."
이 전설은 엄밀히 말하자면 정말 681이 들은 것이 아니라 681의 유전자 안에 작위의 신이 서명해 놓은 흔적이었지만, 어디에서 나온 이야기이든 O에게는 희망을 주는 소식이었죠. 그래서 O는 울창한 숲을 헤치고 헌법소원칼을 꺼내오기로 결심했어요.

2003년 11월 26일 수요일

2003년 11월 26일 수요일 : 서울시향 호암아트홀 초청연주회

프로그램

이베르 / 디베르티스망
모차르트 / 교향곡 29번

브람스 / 더블콘체르토 (Vn. 신상준 / Vc. 신상원


악장 신상준님과, 남매지간인 첼리스트 신상원님이 협연하신다는 소식에 예매 시작 전부터 두근두근 기다렸던 공연이었다. 예매가 열렸나 하루에도 두어 번씩 클럽발코니 사이트까지 들어가 볼 정도였으니. 사실 공연 전에 일기 멘트까지 정해놓았다. '유부남이라도 사랑해요'라고.......-_-;

그러나 아쉽게도, 신상준 악장님과 신상원님의 브람스는 나의 높은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특히 1악장은 '어어, 악장님, 왜 그러세요? ' 싶었다. 평소 오케스트라를 이끌며 보여준 절제감 있고 안정적인 연주와 너무 달랐다. 솔리스트 신상준의 연주와 악장 신상준의 연주에서 오는 차이가 아니라, 제 컨디션을 완전히 찾지 못한 때문으로 보였다. 2악장 중반 정도부터는 괜찮아졌고 앵콜곡(헨델)도 아주 즐겁게 들었지만 전체적으로는 첼리스트 신상원씨가 더 돋보였다. 보는[듣는] 사람을 편하게 하는 스타일이더라. 기대가 너무 높기는 했지만, 여하튼 그래서 '유부남이라도 사랑해요'는 다음 기회에.

이베르 '디베르티스망'은 듣기만 해도 20세기 프랑스 작곡가 티가 풀풀 나는 유쾌하고 씩씩하고 발랄한 곡으로, 아주 재미있었다. 모짜르트는 너무 익숙해서 좋다 싫다도 없고......게다가 이번에는 다음에 나올 악장님 생각에 정신을 빼앗기는 바람에 별로 귀 기울여 듣지도 않았다.

공연만 놓고 보면 나쁘지 않았다. 앞으로도 정기공연과 다른, 이런 공연을 볼 기회가 자주 있었으면 좋겠다. 악장님 외에도 첼로 이정근 수석님을 비롯한 서울시향 단원분들이 솔리스트로 나서는 경우가 드문 점을 평소에도 늘 아쉽게 생각하고 있다.

2003년 11월 22일 토요일

2003년 11월 22일 토요일

지난 목요일부터 딤섬먹고싶음병에 시달리다, 점심으로 동진님과 딤섬을 먹으러 가기로 했다. 그러나 오래 된 자료를 보고 갔더니, 설명에 나온 딤섬집은 이미 없어져 있었다. 배는 고프고 날씨는 춥고, 딤섬집이 무작정 걷는다고 나오는 것도 아니고 하여 잠시 헤메다가 청호에 가서 떡만두국을 먹었다. 추운 데 있다가 따뜻한 국물을 먹으니까 훈훈하니 좋았다. 엄청 빨리 먹었다.



식사 후에는 Caffera di Italia에 가서 커피를 한 잔 마셨다. 지나가며 두어 번 보았으나 들어가 보기는 처음. 과감하게(?) 에스프레소를 주문했다. 다행히 와~ 싶을 만큼 대단하지는 않아도 그런대로 기본은 되더라. 하지만 두 번 가서 굳이 찾아 마실 정도는 아니었다. 아래 카푸치노는 토끼토끼.




토끼카푸치노

에스프레소

그리고 플라스틱에 가서 에라오빠, 상훈님과 함께 케익을 먹었다. 동진님도 함께 갔다. 지난 2일이 에라오빠 생일이라 모였는데, 마침 상훈님 생일도 11월이라 어렸을 때 유치원에서 하던 '11월이 생일인 친구들입니다' 파티에 간 기분이었다. 플라스틱은 케익으로 유명하다는 말을 들었던 곳으로, 실제로 먹어 보니 맛있긴 해도 탁월하진 않고 그저 돈 값 하는 정도란 느낌이었다. 초코쉬폰은 확실히 맛있었고, 치즈케익도 조금 단 듯 해도 깔끔하니 괜찮았고, 녹차쉬폰은 그냥저냥이었다. 차를 세 주전자나 마셔서 배가 불렀다. 5시쯤 송경아님이 '달팽이군'이라는 정체불명의 미소년(!)과 함께 오셨다. 생일 선물도 가져오셨다. 명색이 생일이라고 모이는 자리인데 나도 빈 손으로 덜렁덜렁 오지 말고 선물을 챙겨 갈 걸 싶었다. 거꾸로 케익 먹고 책 받아 왔으니......(뭐 지나간 일 ~_~/) 오랜만에 만나서 반갑고 즐거웠다. 경아님(+달팽이군)이랑 너무 빨리 헤어져서 아쉬웠고.


치즈케익

초코쉬폰

녹차쉬폰

허니치즈케익

저녁에는 승민오빠와 이태원에 새로 생긴 인도음식점 마하라자에 갔다. 주인이 귀화한 인도인으로, 우리나라로 치면 백반집 같은 인도음식점을 지향한다는 곳이다. 화려한 장식이나 군더더기를 뺀 실내와 저렴하면서도 맛있는 음식이 아주 마음에 들었다. 아저씨가 메뉴도 하나하나 설명해 주셨다. 드디어 우리나라의 인도음식점도 가격 거품이 빠지는구나 싶어 감격했다. 별 상관 없는 얘기지만, 서울서 가격 대비로 가장 떨어지는 인도 음식점은 역시 강가. 두 사람이 커리 둘과 난 둘을 시켜 먹으니 엄청 배가 불렀다. 승민오빠가 메뉴판 회원이라 인도차도 무료로 받았는데, 너무 배가 불러서 도저히 마실 수가 없었다. 다음에 한 번 더 가 보고 레스토랑에 올려야지. 추천.


양고기커리

닭고기커리

난(플레인, 버터)

인도차

라씨

2003년 11월 15일 토요일

2003년 11월 15일 토요일 : 씨비스킷

수능과 기말고사를 끝낸 용진군이 우리학교 수의대 구경을 하고 싶다기에 함께 학교에 갔다. 동원관에서 점심식사를 하고, 문화관 대강당에서 씨비스킷시사회를 보았다. 1930년대 미국을 배경으로 실패해도 열심히 노력하면 된다는 주제를 드러내려 애쓴 영화였다. 토비 맥과이어를 비롯한 출연자들의 연기가 괜찮았고, 특별한 흠 없이 무난하게 잘 만들었으나 선전만큼 대단한 감동은 없었다. 150분 정도의 상영 시간이 꽤 길게 느껴졌다. 소감은 한 마디로 하면 '마알~달리자아아~'. 용진군은 휴머니즘 영화의 탈을 쓴 동물 영화라고 평했다.

영화를 본 후 걸어서 수의대로 갔다. 포스코와 수의대가 있는 쪽은 입학 후 처음 가 봤다. 올해 새로 지은 수의대 건물은 꽤 멋있고 깔끔했다. 인문대와 비교되는구려. 열린 강의실 두어 곳을 슬쩍 들여다본 뒤 다시 걸어서 인문대와 중앙도서관에도 갔다. 서고를 둘러본 후 용진군은 집에 가고 나는 독서실에서 책을 챙겨 집에 왔다.

오랜만에 학교 여기 저기를 다녔더니 꽤 피곤했다. 앞으로는 매일 식사 후에 중앙도서관-인문대 정도까지 운동 삼아 걸어야겠다.

2003년 11월 14일 금요일

2003년 11월 14일 금요일

인수오빠우동촌에서 저녁식사를 하고 체스를 두었다. 이겼다. 울레울레~

2003년 11월 12일 수요일

2003년 11월 12일 수요일 : 데릭저먼 회고전 '단편모음 2'


사모사


야채 커리

수현님과 아트선재센터에 가서 데릭 저먼의 단편 모음을 보았다. 10월의 상상, 드림 머신, 해적판 세 편을 묶어 상영했다. 며칠 전 보았던 '비트겐슈타인'이 워낙 인상깊어 무척 기대하고 보았으나.......아아, 아스트랄.......
'10월의 상상'은 대처 시대의 암울함을 강렬하게 담아낸, 메세지가 분명하고 관객의 공감을 이끌어낼 만 한 영화였다. 그러나 '드림 머신'은 너무 충격적이어서 보고 있는 것 만으로도 진이 빠졌고 다 본 후에도 도저히 그냥 쉽게 잊고 넘어갈 수가 없었다. 노골적인 은유, 적나라한 표현. '이 영화가 15세 이상 관람가면 나는 열 네 살이다!' 싶었다. 대체 어떻게 심의를 통과한 거지? 영화를 보기 전만 해도 꽤 배가 고팠는데, '해적판'까지 보고 나니 식욕이 싹 사라졌다. 좋고 나쁘고로 나누어 문제가 있다기 보다는, 그저 보는 사람을 상당히 힘들게 하는 영화였다. 데릭 저먼도 참 살기 힘들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80년대 영국에서 저런 영화를 계속 찍었으니. 세상이 얼마나 괴롭혔겠어.

에 가서 저녁식사를 했다. 맛있고 따끈따끈한 사모사. 커다란 난. 야채 커리도 맛있었다. 그래도 배가 고프긴 했는지 막상 음식을 앞에 두니 시장기가 돌아오며 마구 행복해졌다. 이야기를 나누며 냠냠 먹었더니 은근히 많이 먹게 되어 나중에는 배가 엄청 불렀다. 버스를 타고 집에 왔다.

2003년 11월 11일 화요일

2003년 11월 11일 화요일 : 제인 구달 강연회 '침팬치와 나의 삶'



문화관 대강당에서 동물행동학자 제인 구달 초청 강연회를 했다. 지난 주 내내 공부 시간이 부족했고 수요일에도 약속이 있었기 때문에 갈까 말까 조금 망설였으나, 놓치기에는 너무 아까운 기회였다. 살아 생전 제인 구달 박사님을 실제로 만날 기회가 올 줄은 정말이지 상상도 못 했으니.

어린 아이들이나 교외 사람들도 많이 와 있었다. 주최측 사회자 말로는 몇 년 전 스티븐 호킹 초청 강연회 이후 처음으로 대강당이 가득 찼단다.

강연은 제인 구달의 책을 읽은 사람이라면 특별히 새로운 것은 없을 내용이었다. 무모해 보였던 꿈을 지지하고 북돋아 준 어머니 이야기, 처음 바나나를 받아갔던 침팬지 그레이비어드, (유명한) F가족을 비롯한 침팬지의 생태에 대한 간단한 설명에 환경 파괴에 따른 침팬지 수 격감에 대한 경고, 주변 지역 사회와 함께 일어서고자 시작한 운동인 '뿌리와 줄기' 소개가 이어졌다. 우리나라에서도 한국 영장류 연구소 최재천 교수님의 주도 하에 이 프로그램을 시작한단다. 희망을 가지고 보다 나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자는 메세지가 분명하게 담긴 강연이었다. 새삼스런 주장은 아니지만, 평생을 그런 마음으로 살았고 지금까지도 일 년에 삼백 일 이상 전 세계를 돌아다니는 노학자에게서 직접 들으니 책과는 비교할 수 없는 절박함과 설득력이 느껴졌다.

강연 뒤의 질문 시간은......참으로 난감했다.-_-; 어린 아이들은 정확하고 중요한 질문을 쉽게 하는데, 대학생이나 대학원생을 비롯한 어른들은 공개 강연의 간단한 문답 시간에 어쩜 그렇게 주구창창 말을 늘어놓는지, 듣는 내가 민망할 지경이었다. 대체 자기가 가이아 이론을 믿고 인간을 암적 존재로 생각하는 거랑 침팬지가 무슨 상관이람? 자기가 생명 관련 세미나를 했는데 학우 A는 생명이 *라고 하고 학우 B는 생명이 &라고 하고 어쩌고저쩌고....그래서 뭐 어쩌라고! (엄청난 서론을 붙여가며) 최초의 인간 루씨의 식사 중 곡물 비율은 왜 물어봐! 그 들뜬 마음이야 모르는 바 아니지만,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을 뿐 아니라 초점이 어긋난 식자(識者)의 장광설은 피곤했다. 그리고 혹시 나도 말을 떠드는 데 열중하며 모르는 사이에 저렇게 되어가고 있는 것이 아닐까 생각하니 암담해졌다.

강연 후에는 싸인회를 했다. 줄 선 사람이 엄청 많았고 선생님도 피곤해 보이셔서 깔끔하게 싸인만 받고 사라지려 했는데, 막상 눈 앞에 제인 구달 선생님이 있으니까 정신이 혼미해지면서 정말 영광이라고 한 마디 안 할 수 없었다.; 자신이 말하는 것을 믿고 실천한 사람의 존재감이란, 대단하다.

기다리던 중에 법대 선배 성렬오빠를 우연히 만나 함께 저녁을 먹었다. 이제 휴학하고 사시 준비를 시작하셨단다. 언제나 멋진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오랫만에 만났는데도 자신감 있고 분명하신 모습이 여전하여 기뻤다. 역시, 멋져.

2003년 11월 9일 일요일

2003년 11월 9일 일요일 : 매트릭스 레볼루션



동진님과 메가박스에서 '매트릭스3:레볼루션'을 보러 갔다. 영화는 2편의 감당 못할 철학(--?)보다 액션에 집중하여 무난하게 재미있었다. 제작비만큼 박력있는 영상을 만들지는 못한 것 같지만. 대체 그 돈이 다 어디 갔을까 궁금했는데, 저녁에 인수오빠가 '무한증식 스미스요원들 표정을 다 다르게 만드는 데 쓰지 않았을까'라고 해서 한참 웃었다.
특별히 흠을 잡으려는 것은 아니지만, 역시 3부작 전체보다는 1편만 따로 떼어 볼 때 깔끔하고 잘 만든 영화.

점심은 라리에또에 가서 먹었다.

저녁에는 가족파티를 했다. 각자 생활 시간과 반경이 다르다 보니 꽤 오랫만이다. 미연이가 케익도 준비하고 조용조용 챙긴 덕분이다.(기특하여라) 함께 초를 휙 불고 맛있는 케익을 나누어 먹으며 이야기도 했다. 무슨 날은 아니었지만, 힘들어도 노력하고 감싸주며 살다 가끔 이렇게 진지하게 마주앉아 서로를 칭찬하고 다독이는데 어찌 따로 특별한 날이 필요할까.
행복한 하루였다. (<- 낮에 화장실 청소랑 밥 안 한다고 야단맞고 독서실로 도망간 건 벌써 잊었음)

2003년 11월 8일 토요일

2003년 11월 8일 토요일 : 데릭 저먼 회고전 '비트겐슈타인'



서울아트시네마에서 11월 1일부터 14일 까지 데릭 저먼 회고전이 열린다. 지금까지의 모든 장편 작품과 단편, 뮤직비디오까지 상영한다는 소식을 듣고 작품 목록 중 비트겐슈타인을 보러 갔다. 가든이나 카라바조같은 작품도 보고 싶었지만, 영화의 감성에는 취약한 터라 지나치게 강렬한 작품은 견뎌내기 힘들 것 같아 전기 영화로 골랐다.

그리하여 저녁 6시에 일어나 홍차와 애플파이로 대충 배를 채우고 어슬렁 어슬렁 보러 간 데릭 저먼의 영화는, 엄청나게 웃겼다. 어떤 영화일까 이리 저리 생각해 보긴 했어도 이렇게 독특하게 재미있고 즐거운 영화이리라고는 전혀 짐작치 못했다. 와, 대단한 센스. 대단한 감독. 연극적이고 절묘한 비유, 군더더기를 쳐내어 간결하면서도 관객을 단숨에 빨아들이는 화면. 비트겐슈타인이 경험한 감정적 혼란에 대한 시각에서는 퀴어 감독만이 보일 수 있는 직관이 느껴졌다.

좋은 영화를 보고 나니 마음이 들떠, 광화문까지 천천히 걸어 가서 지하철을 타기로 마음먹고 인사동길을 가로질러 종로 쪽으로 갔다. 그런데......내가 방향치라는 것이 새삼스런 사실도 아니고, 몇 년을 드나든 종로에서 길을 잃은 것도 놀랍지 않지만, 30분이나 걸어서 정확히 원래 자리로 돌아오는 건 너무하잖아!

여하튼 덕분에 가을 밤바람 잘 쐬었다. -_-; 데릭 저먼의 영화를 조금만 더 일찍 보았다면 이번 회고전의 다른 영화에도 도전해 볼 텐데, 이미 좀 늦었네. 하지만 수요일에 수현님과 단편모음2를 보러 가기로 했으니 괜찮아. 벌써부터 기대 대폭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