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 6월 28일 수요일

2006년 6월 28일 수요일 : 원격조종

1. 2006년 6월 26일

나는 '염장질' 이라는 말을 잘 이해하지 못한다. 부러워하지 않는 게 아니라, 뭐가 부러운 건지 아예 파악을 못 하는, 말하자면 불완전정보보다는 불비정보에 가까운 상태다. 나이가 들자 다른 사람의 말에 맞장구를 쳐 줘야 할 때도 생기는데 (ex) 와ㅡ 멋진 애인 둬서 좋겠네.) 타이밍을 못 맞춰서 좀 피곤하다. 남이야 사적으로 뭘 하든 별로 신경을 쓰지 않는 성격이긴 하지만, 특히 남의 애인 얘기나 연애 자랑이나 스킨쉽에 대해서는 좀 지나치게 눈치가 없어 스스로도 이상하게 생각하곤 했는데, 오늘 점심 때 군만두를 먹다가 내가 이런 무감각인간이 된 이유를 깨닫고야 말았다.

통찰의 순간 보기



2. 2006년 6월 27일

어머니(굽기 담당)와 나(먹기 담당) 둘이서 저녁으로 삼겹살을 조금 구워 먹고 있었다. 어머니가 삼겹살에는 포도주가 어울리는데 꺼내기가 귀찮다고 하셨다.

아버지: 어디 있는데? 내가 갖다 줄게.
어머니: (의자에 앉은 채) 저기 안쪽 깊이 있어서, 커다란 솥 들어내야 해서 번거로워요.
아버지: 여기?
(우당탕쿵탕 끙차끙차 부스럭부스럭 끝에 와인 등장)
아, 마개 따는 게 있어야 하네. 집에 있나?
어머니: (아까 자세 그대로) 있는데, 어디 뒀더라.
......귀찮아라. 안 먹고 말래.

제이: (귀찮아 하는 사람이 미묘하게 틀린 것 같은데...)

아버지: (딸각딸각 챙강챙강 끝에 오프너를 꺼내서 마개를 따며) 끙, 끙.
어머니: (여전히 앉은 채) 하이고, 힘들어라~

제이: (아니, 그러니까 대체 왜 어머니가?!)

2006년 6월 15일 목요일

2006년 6월 15일 목요일 : 인생 경험치 문답

as님 댁에서 보고 해 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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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6월 14일 수요일 : 선택과 합리화

사람은 보고 싶은 것만 보고, 기억하고 싶은 것만 기억한다.

몇 년 전, 일리노이대의 다니엘 시몬스 박사는 간단한 실험을 통해 이 현상을 명백히 보인 바 있다. 실험 내용은 매우 간단했다. 피실험자들에게 농구 경기 비디오 테이프를 보여 주고, 패스 수를 세라고 했다. 그 경기 비디오 중간 즈음에 고릴라 분장을 한 사람이 천천히 등장해서 9초 동안 경기 중인 선수들 사이를 누비고 카메라를 보고 가슴을 쿵쿵 두드렸다. 비디오가 끝난 후, 중간에 나왔던 생뚱맞은 고릴라를 봤느냐는 질문에 피실험자의 절반 정도가 '그런 것 본 적 없다'고 답했고, 일부는 비디오를 처음부터 다시 보여주자 아까 내가 본 테이프와 다른 것 아니냐며 끝까지 믿지 않았다.

이 현상을 '변화맹(Change Blindness)'라고 한다. 시몬스 박사는 이와 유사한 실험을 하나 더 했었다. 피실험자에게 낯선 사람에게 길을 물어보게 시킨 후, 길을 설명하는 사람과 피실험자 사이에 문짝을 든 일꾼이 지나가게 하고, 그 사이에 설명자를 전혀 다르게 생긴 사람으로 바꿨다. 생김새도 다르고 옷차림도 달랐다. 그러나 자신에게 길을 가르쳐 주는 사람이 그새 바뀌었다는 사실을 눈치 챈 사람도 절반 정도에 불과했다.

작년 가을, Science 지에 변화맹 현상에서 출발한 흥미로운 실험 결과가 실렸다. 스웨덴에서 인지과학을 연구하는 요한슨과 홀 박사의 공동 연구였다. 피실험자들에게 인물 사진을 두 장씩 보여 주며 둘 중 마음에 드는 사진을 고르라고 한 후, 골랐던 사진을 다시 보여 주며 그 사진을 왜 골랐는지 물었다. 그러나 사실 열 장 중 세 장 정도는 피실험자가 고르지 않은 사진이었다. (사진을 덮었다가 다시 보이는 사이에 손장난으로 자리를 바꾸었다.) 피실험자 중 80%이상이 그 사진이 자기가 선택하지 않았던 사진임을 눈치채지 못하며 그 사진의 어디가 마음에 드는지 설명했다. 골랐던 사진과 아닌 사진의 인물이 전혀 다르게 생긴 경우에도 확률은 거의 달라지지 않았다. 사진을 보여 준 다음 아까 고른 사진이 이 사람 맞는지 충분히 생각해 보라고 해도, 2/3 정도가 자기 마음에 드는 얼굴은 확실히 이 쪽이라고 했다. 연구자들은 이 현상을 '선택맹(Choice Blindness)'이라고 이름 붙였다.

변화맹 현상은 우리가 일상 생활에서, 그리고 기억에서 원하는 정보를 어떻게 취사 선택하는지를 보여주는 단초가 된다는 점에서 무척 흥미롭다. 사고 장면을 동시에 목격한 사람들의 진술이 엇갈리는 경우, 같은 경험에 대해 전혀 다르게 기억하는 경우, 한 사람에게는 더없이 중요했던 사건이 다른 사람에게는 기억도 나지 않는 사소한 일이 되는 경우 등을 인지의 본래적 특성으로 해석할 수 있다. 신경과학, 화학, 뇌의학, 현상학 등 유관 분야의 연구와 통합된다면 우리 자신에 대해 여러가지를 설명할 수 있을 것이다. 극단적으로 말해, 왜 나와 너의 생각이 다른지를 아세틸콜린(....너무 거슬러갔나) 에서부터 설명해 낼 수 있을지도 모른다.

요한슨과 홀 박사의 연구 논문은 사이언스 지에 실려 있고(작년 10월호인가?), 구글링을 하면 실험에 사용된 사진과 자세한 결과 수치가 담긴 PDF 파일 버전도 나온다.

후속 연구를 계속 기다렸는데, 반 년이 지나도록 이쪽 팀에서나 다른 팀에서나 별달리 발표되는 것이 없는 듯 해 잊기 전에 써 둔다. (사실 내 요즈음 관심사는 선택맹이 아니라 쿠퍼카이퍼 벨트(Kuiper Belt)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