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전 열 시부터 학교 세미나실에서 학부실습최종세미나를 했다. 이번 여름학기 실습생은 열네 명 정도였다. 모두들 한 달이나 현장에서 일한 만큼 할 말이 많았다. 여러 기관의 사업이나 업무 현장, 실습 내용 등에 대해 새로이 알게 되어 무척 재미있었다.
원형 탁자에 앉은 순서대로 발표를 했는데 하필이면 내 자리가 반대편 끄트머리가 되어, 내 차례가 왔을 때에는 발표에 주어진 시간이 거의 없었다. (오후 두 시 부터는 대학원실습세미나가 있었다.) 일 주일도 전부터 PPT를 만들고 최종 보고서 개요를 짜며 준비했던 내용을 "시간이 없으니까 이 부분은 생략하고..." 라고 통과하려니 속이 쓰렸다. 세미나는 두 시 십 분 쯤 끝났다.
학교에서 광화문 시네큐브로 이동, '팡테옹 뒤 시네마 프랑세' 프로그램인 르네 끌레르(Rene Clair) 감독의 1927년 작 [잠자는 파리 (Paris qui Dort/ n&b, muet, 35')]를 보았다.
파리 전체가 갑자기 멈춘다. 움직이는 사람은 하늘 높이 올라가 있던 에펠탑 관리인과 비행기에 타고 있던 다섯 명(여자, 비행사, 도둑, 경찰(?), 신사) 뿐이다. 이들은 처음에는 어리둥절해 했으나 곧 잠든(?) 사람들의 돈이며 보석을 챙기고, 마음껏 술을 마시는 등 놀기 시작한다.
그러나 '모두가 잠든 세상에서, 돈과 술이 무슨 의미가 있겠나?' 이들은 에펠탑에서 치고 박고 싸우다가 -심심해 하며 술이나 마시다 보면 싸움이 나기 마련이다- 이하 스포일러.
확성기를 통해 '이 말이 들리는 분은 손수건이 걸린 창 앞으로 와 주세요'라는 방송을 듣는다. 시내로 나간 이들은 정말 손수건이 걸린 창문을 찾고, 그곳에서 역시 깨어 있는 여자를 만난다. 알고 보니 파리를 잠들게 한 사람은 이 여자의 삼촌인 한 괴짜 과학자 할아버지였다. 그가 연구실에서 내뿜은 이상한 광선을 받아 파리가 잠이 들었고, 하늘에 있던 여섯 명만이 광선의 영향을 받지 않았던 것이다. 이들은 과학자를 협박해 다시 파리를 움직이게 하고 밖으로 나간다.(커다란 레버를 당기면 된다.)
그러나 과학자의 조카딸과 그새 사귄 애인(?)은 과학자의 주의를 다른 곳으로 돌린 사이에 레버를 거듭 돌려 파리를 멈추고, 그 사이에 돈을 훔치려는 계획을 세운다. 허나 과학자는 자신의 발명을 자랑하지 않고 못 배기는 법! 커플이 돈을 가져가려는 순간, 동료 과학자에게 자신의 실험에 대해 설명하던 과학자가 다시 레버를 돌린다. 경찰서에 잡혀 간 커플은 경찰서에 이미 와 있는 일행들을 다시 만난다. 이들은 파리가 멈췄다는 둥 떠들다가 이상한 사람 취급을 받으며 잡혀 들어가는데, 그 때 또 파리가 잠시 멈춰 재빨리 도망친다.
프로그램에는 27년 작이라고 되어 있으나 IMDB에는 25년 작이라고 나온다. 잠든 파리 시내의 모습 -사람들이 행동하던 그대로 멈추어 있다-과 에펠 탑에 매달려 체조하는 것 같은 격투 장면 등이 인상깊었다. 칠판에 ax+2b+c=0 어쩌고를 열심히 써내려가는 과학자, 남장풍 정장을 입은 여성, 장광설을 늘어놓는 도둑, 까탈스러운 신사 등 겨우 35분 안에 전형적인 캐릭터를 선명하게 묘사해 낸 점에도 감탄했다.
그 외에 80여년 전 작품임을 느끼게 하는 부분들도, (감독이 의도한 바는 아니겠지만) 재미있었다. 예를 들어, 공항이 잡초밭이고 비행기가 라이트 형제의 비행기+ 1차대전 자료사진의 비행기처럼 생겼다. (정확한 명칭은 모르겠는데, 날개가 2층으로 되어 있고 앞에는 작은 프로펠러가 달려 있는 형태.) 건물 배치나 옷과 장신구의 형태, 경찰들의 행동거지 등도 아, 저게 20년대구나, 하고 생각하게 했고.
상영 후에는 시네큐브 영화학교 여름학기 선생님이셨다는 한창호 님의 마스터클래스가 있었다.
강의 내용 정리
1920년대는 영화 미학의 기초가 형성된 때이다. 1차 대전 후 각 유럽 국가들에서는 기존의 유럽중심적 사고를 전면적으로 부정하려는 움직임이 강하게 일어난다.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이 잘못되어 있다. (그렇지 않다면 어찌 세계 대전 같이 상상도 못할 일이 일어났겠는가)' 는 인식은, 현존하는 세상은 이성과 의식의 세계이고 이 세상을 넘어 새 세계로 가기 위해서는 무의식이 필요하다는 다다와 초현실주의로 연결된다. 이런 시대 풍조는 [안달루시아의 개(1929)] 같은 작품을 통해서 잘 드러나는데, 영화예술 등에서 프로이트를 인용하기 시작한 것도 이 즈음이다. 고전적인 아방가르드, 다이나믹(dynamic)한 혼용의 시대이다.
[잠자는 파리]는 초현실주의적인 영화이다. 이 영화에서 잠, 즉 꿈은 소원성취의 상태이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소원이 성취되지 않고, 꿈에서처럼 행동하면 -예)도둑질- 광인 취급을 받는다. 이 영화에서는 또한 다다이즘적인 요소도 보인다. 다다이즘은 초현실주의보다 현실에 냉소적이었고, 퍼포먼스 중심이었으며 더 장난스러웠다. 예를 들어, 에펠탑 기계체조 장면 등은 일종의 퍼포먼스이다. 르네 끌레르는 다음 영화 [막간극]에 (*강의에서는 다음 영화라고 했으나, 찾아 보니 [막간극]은 24년 작으로 [잠자는 파리]보다 앞선 작품이다.) 낙타가 화려한 마차를 끄는 장례식 장면을 넣었는데, 이런 우습과 당혹스러운 유머가 다다이다.
새로움, 무의식, 비제도성을 추구했던 이들은 당시에는 장난꾸러기, 버릇 없는 사람들 취급을 받았고, 정치적으로도 현존 제도에 대한 반감으로 막시즘에 심취, 공산당에 가입하는 경우가 많아 고립되었다.
1930년대는 시적 리얼리즘(poetic realism)의 시대이다. 당시 프랑스는 좌파가 정권을 잡을 기회를 얻었으나 권력의 공고화에 실패하고, 이웃한 스페인, 이탈리아, 독일에는 파시스트 정권이 들어서 사회가 몹시 불안했다. 따라서 이 시대의 영화는 우울함, 쓸쓸함, 좌절, 애상 등의 분위기를 띤다. 이번 상영작 중에서는 줄리앙 뒤비비에 감독의 [망향 (Pepe le Moko/ 1937)]이 바로 이 시적 리얼리즘 시대의 작품이다.
30년대는 노동자 계급에 대한 관찰이 본격화된 시대이기도 하다. 이 시기의 영화는 변두리인(maginer man)의 일상에 카메라를 들이댔다. 특히 마르셀 까르네와 자크 프뢰베르는 시적 리얼리즘의 공식을 만들어 냈다. 이들이 만든 [안개 낀 부두(Le Quai Des Brumes / 1938)], [새벽(=동틀 무렵)] 같은 작품은 시적 리얼리즘의 걸작이다. 대개 노동자인 주인공이 치명적인 사랑(ex/마피아의 정부를 사랑)에 빠져 비극적인 결말을 맞는다는 내용이었는데, 주연을 자주 맡았던 배우 장 가방은 노동자 계급의 영웅으로 대접받기도 했다.
시적 리얼리즘 시기의 영화들은 20년대 독일 표현주의자들의 영향을 받아 훌륭한 세트를 많이 만들었다. 예를 들어, 주인공이 비극적인 죽음을 맞는 장면에서 건물을 좁고 비스듬하게 지어 불안하고 안타까운 심리를 표현([새벽]) 했다.
30년대 시적 리얼리즘을 통해 전세계로 리얼리즘이 전파되었다. 시적 리얼리즘은 프랑스 영화계에서 좌파가 주도권을 잡는 계기가 되기도 했고, 이러한 경향은 현재까지 이어져 오고 있다. 대표적인 감독은 장 르누아르로, 파시스트 체제 하 이탈리아 영화인들의 네오리얼리즘(neo-realism)은 르누아르의 영향을 받은 것이다.
1940년대는 히틀러의 점령기이다. 나치의 강한 압력 때문에 이 때에는 솜사탕 같은 사랑 영화들밖에 만들어지지 못했는데(특히 이탈리아), 장 르누아르는 점령기에 해외로 피해 영화를 만들었다.
[까마귀(1943)]는 독일 제작사에 의해 만들어졌고, 외부인 한 사람(나치/히틀러)에 의해 마을 사람 모두(프랑스인)가 집단적으로 조종당한다는 내용으로 인해 심한 비판을 받았다. 그래서 클루조 감독은 해방 후에 프랑스에서 영화를 만들지 못했으나, 40년대 이후 미국 등지에서 [까마귀]의 스타일이 주목받으며 재평가 받기 시작했다. 오토 플레밍거 감독이 [13번째 편지]로 리메이크 하기도 한 이 영화는, 필름 누아르에 큰 영향을 미쳤다.
로베르트 브레송 감독의 [볼로뉴 숲의 여인들(1944)]은 고급 창녀라는 오점이 있는 주인공을 등장시키는 방식으로 교묘하게 나치의 지침을 거슬렀다. 그러나 브레송의 영화가 인기를 끈 이유는 프랑스식 멜로드라마적 요소(창녀, 복수 등) 때문이었다고 볼 수 있다.
[인생유전(1945)]은 프랑스 영화협에서 '가장 위대한 프랑스 영화' 설문 결과 압도적으로 1위를 차지했던 영화이다. 시나리오를 맡았던 자크 프뢰베르는 오늘날까지도 프랑스에서 10대들이 모국어에 대한 사랑과 정체성을 깨닫는 게기가 되는 시인 (독일의 헤세처럼)으로 사랑받고 있는 초현실주의자이다. 그는 30년대~40년대에 영화 시나리오 작업에 많이 참여하여, 우울하고 감상적인 글로 관객을 사로잡았다.
[인생유전]은 프랑스 공연예술에 대한 오마쥬라 할 수 있는 영화이다. 마임 배우가 등장하는 이 영화에서 연극과 현실, 예술과 인생 사이의 경계는 매우 모호하다. 마임연극의 전통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보여주며 (프뢰베르가 쓴 다른 시나리오들과 마찬가지로) '비바 프랑스!"를 외치고 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점령기 시대의 영화는 '질의 영화(quality cinema)' 였다. 19세기의 아름다운 소설을 품격 있게 각색한 탐미적인 문예영화가 큰 인기를 끌었다.
그러나 50년대에 접어들면서, 프랑스에는 이탈리아의 네오리얼리즘처럼 현실을 반영하는 영화가 없다는 문제 의식을 갖는 젊은 감독들이 등장하기 시작한다. 질의 영화는 발단->전개->결말 순으로, 행위(action)가 모여서 이야기가 되는 전통적인 네러티브 구성을 띤다. 허나 우리의 실제 삶은 비인과적이고 우연적이지, 영화처럼 고상하고 설득력 있는 것이 아니다. 이런 생각으로 기존 '질의 영화'의 형식성에 반발하고, 비논리적인 현실을 반영하는 네러티브에 대한 성찰을 추구한 움직임이 곧 '누벨 바그(Nouvelle Vague)'이다.
젊은 누벨 바그 감독들은 또래인 20대의 현실적인 고민을 스크린에 반영하고 싶어했다. 누벨 바그의 시작을 알리는 신호탄이 된 소논문 [프랑스 영화의 어떤 경향]을 쓴 프랑수와 트뤼포, 에릭 로메르, 장 뤽 고다르 등이 대표적으로, 이들은 기성 세대가 가진 가치에 대해 반발하고, 영화의 폐쇄성을 탈피, 현실에 근접한 영화를 만들고자 했다. 영화에 젊은 사람들만 출연한 것도 이 때가 처음이다. 지금은 당연하게 느껴지는 자연스런 야외 촬영 등도 누벨 바그 시기에 시도된 것인데, 이런 점은 카메라의 경량화와 저렴화 같은 기술 발전이 뒷받침 된 덕분이기도 하다. ([네 멋대로 해라] 도입부의 파리 시내 촬영 장면이 대표적이다.)
고다르나 트뤼포의 영화는 '삽화의 연속'이다. 카페에서 담배 피우며 잡담하는 장면이 없으면 누벨 바그 영화가 아니라는 말이 있을 만큼, 누벨 바그 감독들은 현실 풍속과 같은 소소한 부분(trivia)에 많은 시간을 할애했다. 이는 사실적인 내용도 중요하지만 그 내용의 전달 방식(형식)도 자연에 닮아야(natural) 한다는 앙드레 바쟁의 정의에 충실한 리얼리즘이다. 이 때문에 누벨 바그 영화들은 일상 생활처럼 산만하고 소소하며, 인과 관계가 매우 느슨하다. 촬영 면에서는 카메라가 잘 움직이지 않고, 편집도 가능한 적게 하여 최대한 '원형 그대로'를 유지하고자 한다.
6.8 혁명으로 누벨 바그는 절정을 맞았다. 양복에서 청바지로의 문화 변화, 상류층의 전유물이었던 대학 입학 제도의 전면적인 개방 등 이 시기의 사회 변화는 누벨 바그와 어우러졌고, 지금도 세계의 리얼리즘을 주도하는 나라는 프랑스이다. 오늘날까지도 누벨 바그적 리얼리즘을 이어온 감독으로는 에릭 로메르가 있다. 그의 영화를 보면 현대 프랑스 리얼리즘을 알 수 있다. 누벨 바그적 미학을 가진 우리나라 영화인으로는 홍상수 감독을 들 수 있다. 그의 [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이나 [여자는 남자의 미래다] 같은 영화는 우연성, 산만함, 적은 편집 등 누벨 바그적 미감을 잘 드러낸다.
무척 유익한 강좌였다. 강좌명이 '프랑스 영화사 100년'이라서 백 년 치를 다 할 줄 알았는데, 20년대에서 60년대 까지만 다룬 것은 조금 아쉬웠다. 잘 모르는 분야에 대해 공부할 때는 (여러가지 책을 찾아 보는 일도 즐겁기는 하지만) 그 분야의 전문가로부터 말로 풀어 설명을 들을 때 훨씬 잘, 빨리 이해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특히 이번에는 영화제에서 상영하는 영화를 중심으로 한 마스터클래스라, 이미 보았거나 내용을 잘 알고 있는 영화를 예로 들어 이해하기가 쉬웠다. 예전에 멋모르고 열심히 봤던 영화들이 시대적으로 어떤 사조를 따른 것인지에 대해서도 되짚어 볼 수 있어 즐거웠다. 다음에는 60년대 이후 영화나 헐리우드 영화에 관해서 강의를 들을 기회가 있으면 좋겠다.
마스터 클래스가 끝난 뒤에는 시네큐브 옆에 있는 카페 쉐누에 가서 이른 저녁을 먹었다. 무난한 샌드위치와 중상 정도의 커피를 파는 2층 카페이다. 늦은 오후 햇살을 받으며 샌드위치와 카페라테를 먹고 책을 읽었다. 혼자 온 손님 서넛이 각자 자기 일을 하는 조용한 분위기가 마음에 들었으나, 흡연 카페라 여섯 시쯤 되자 담배를 피우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저녁에는 궁님과 장 뤽 고다르의 59년 작 [네 멋대로 해라(A Bout de Souffle)]를 보았다. 목요일에 전션과 이 영화를 함께 보고 저녁을 먹기로 했었는데, 전션이 오늘 오후에 집안에 다른 일이 생겼다며 갑자기 약속을 취소했다. 거의 매진된 영화라 표를 취소하고 한 장만 다시 예매하는 대신, 이 영화를 볼 생각이라셨던 궁님께 연락해 보았다. 금요일 저녁에 예매 사이트가 잘 안 들어가진다고 하셨던 데다, 우리 쪽 예매가 더 앞섰으니 좌석 위치도 낫지 않을까 해서였다. 그런데 들어가 보니 궁님이 예매하셨던 자리는 우리 자리 바로 뒷 줄로, 별 차이가 없었다.;
여하튼 이 일기가 너무 길어졌으니 자세한 감상은 생략. 솔직히 한 줄로 요약해서 말하자면......그렇게 찌질한 남자 주인공은 진짜 처음 봤다. --; '한심하다'나 '멍청하다'가 아니라 '찌질하다'가 너무 딱 들어맞아서, 비극도 비극 같지가 않았다.
오전부터 계속 집중했던 터라 무척 피곤했는데 궁님이 데려다 주신 덕분에 편하게 귀가했다. 궁님이랑 네비게이터 만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