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 9월 9일 토요일

2006년 9월 8일 금요일

지난 주에 휴강했던 서양근대경험주의 수업을 들으러 학교에 갔다. 신도림에서 앞 차인지 뒷 차인지의 문이 고장나는 바람에 열차가 줄줄이 밀렸다. 예전에 아우님과 함께 등교하다가 문이 고장난 지하철을 타서 신도림에서 내린 적이 있었다.(인파에 휩쓸리다가 로트링 아트펜을 잃어버렸었다.) 이번에는 내가 탄 차는 고장이 아니라, 그냥 멈춰 선 지하철 안에 가만히 앉아 있었다. 목요일에 쥐를 본 다음부터 지하철을 타며 이곳은 땅 밑이구나, 하고 자주 생각한다. 그러면 어째서인지, 지하철 타기가 예전만큼 싫지 않다.

느릿느릿 기어가 서울대입구 역에 도착할 때 까지 한참 걸렸다. 집에서 워낙 일찍 나온 터라 지각을 하지는 않았다. 지각한 사람은 휴강 사실을 알리러 온 조교였다. 이번 시간에는 출석을 불렀고, 로크와 버클리의 책을 복사해서 나누어 주었다. (다음 시간부터 로크를 들어간단다.) 혹시나 해서 교수님의 저서 [영국경험론]을 가지고 갔으나 원전 수업이었다. [영국경험론]이 매우 재미있는 책이었기 때문에, 깔끔한 주 2 시간표를 만들 수 있었음에도 굳이 등하교에 걸리는 시간과 수업 시간이 같은 이 수업을 신청했었다. 그런데 이 주가 지나도록 교수님 얼굴도 못 보아서 몹시 낙심했다. 평소에는 이런 일이 없으신데, 다른 사정이 있어서 학교에 나오지 못하셨다고 해서 짜증은 나지 않았다.

교실에서 나오니 열 시 이십 사 분이었다. 예정보다 일찍 나온 김에 농협에 가서 현금카드를 IC 카드로 전환발급 받고 (ATM 쓸 때마다 전환 대상 카드라고 나와 상당히 성가셨다.) 사회대에 가서 실습 최종과제를 제출했다. 실습생 중 두 번째였다.

집에 오자 졸렸다. 눈 비비고 원고를 했다. 너무 열심히 해서, 오후 네 시 반 경이 되자 낮보다 더 졸렸다. 그래서 잤다. 여섯 시 반에 깼다. [블레이드 러너] DVD 상영회에 못 갔으나, 한 숨 자고 나니 눈에 띄게 상태가 좋아졌다. 한 주 내내 바빴고, 제대로 쉬지 못했었다. 그래도 원고가 흐름을 타고 있어 적이 안심이 된다.

기분 전환 삼아 옷을 챙겨 입고 종로로 나갔다. 스폰지하우스에 들러 세네피안 카드를 받은 후, 인사동에 있는 찻집/술집 '좋은 씨앗'에 갔다. 번역자, 소설가, 회사원, 조금 수상한 직업에 종사하는 사람들 약간명이 모여 지구 음식 정복을 획책하는 자리였다. 해물파전, 알탕, 고구마튀김, 감자튀김, 계란말이, 두부전을 먹었다. 나는 쌍화차를 마셨고, 다른 분들은 최근 득녀하신 모 님을 축하하기 위해 다른 모 님이 가져오신 (맛있다는) 술을 비롯, 여러가지 알콜음료를 드셨다. 거의 삼 년여 만에 뵙는 분도 나오셔서 반가웠다. 이런 저런 재미있는 얘기를 하며 신나게 놀았다. 몇 주 전부터 오늘을 고대했던 터라, 늦게까지 앉아 있다가 자정이 되어서야 일어났다. 집에 열두 시 삼십 분 넘어 들어간 것이 몇 년 만인지 기억도 안 난다. (아마 01년에 세종문화회관에서 강수지씨 공연 보고 늦었던 이래 처음이 아닐까 싶다.) 어머니께 전리품을 자랑하고 새벽 두 시쯤 잠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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