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5월 3일 월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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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4월 30일 금요일

2010년 4월 30일 금요일

오전에 시험기간 동안 밀린 [일다] 기사를 훑다가, 이주노동자의 재정착에 관한 꼭지를 읽었다. 그리고 센터에 갔는데, 책장에 가로 누워 있는 이주노동자 재사회화에 대한 프로그램 북이 눈에 들어오더라. 한 권 얻어 와서 펼쳐 보니2005년 책이었다. 설마 이 책이 며칠 사이에 센터에 들어왔을 리는 없을 테고, 지금까지 내 눈에 들어오지 않았던 거겠지. 아는 만큼 보인다는 얘기다.

센터에서는 지난 주까지 했던 동요 부르기 대회 동영상을 다함께 보고, 피자와 태국 과자를 먹었다. S씨가 인도 사모사와 비슷한 느낌의 태국 과자를 만들어 왔는데 아주 맛이 있었다. 그래서 어떻게 만드냐고 여쭈어 보았는데, 과자피(?) 같은 재료를 태국에서 구해 와야 한단다. 얼마 전에 아버지 병구완 때문에 태국에 다녀왔던 C씨에게서 받은 모양이었다. 귀한 고향 재료로 만든 귀한 과자였다.

아내를 집에서 잘 내보내지 않고 의심이 많아 문제라고 들었던 W씨의 남편이 오늘 센터에 왔다. 달리 따지러 온 것은 아니고, 그냥 마중을 온 것 같았다. 소파에 잠든 어린 아들을 쓱 들어올려 익숙하게 품에 안고 나가는 배 나온 평범한 한국 남자였다. 얼굴에 뭐라고 쓰여 있거나 덩치가 산만한 사람이리라고 상상한 적은 없지만, 조금 당황했고, 슬펐다.

오후에는 홍대입구역 근처의 KT플라자에 가서 아이폰을 교환 받았다. 리퍼 받으러 가기가 귀찮아 차일피일 미루고 있던 일을 해결해서 기분이 상쾌했다. 그리고 한양문고에 가서 [순애보] 4권과 [신풍괴도 잔느 완전판] 6권(완결)을 샀다.


2010년 4월 29일 목요일

2010년 4월 29일 목요일

형사증거법 중간고사를 쳤다. 시험 문제가 40점 짜리인데 시험 시간은 왠지 2시간이나 주어서, 후딱 쓰고 제일 먼저 나왔다.

그리고 사물함 앞에서 3월에 함께 공익인권법학회 발제를 준비했던 현주언니를 만나 [라 셀틱(La Celtic)]에서 저녁을 먹고, 옆 커피빈에서 차를 마셨다.

이 답답하고 속물적인 공간에서 고민하고 힘들어하는 사람이 나만은 아니라는 사실에 안도했고 위로 받았다. 현주언니에게 했던 말의 절반 정도는, 나 자신에 대한 다짐이었다.

2010년 4월 27일 화요일

2010년 4월 27일 화요일 : 부부의 일상 모음

2010년 4월 22일

뒹굴뒹굴 하는데 남편이 와서, 물어보았다.
"치카치카 했어요?"
"응."
"좋겠다~나도 하고 싶다~"
그러자 남편이 "나하고 뽀뽀하면 양치질 한 걸로 돼." 란다. 혹했지만 잠깐 생각해 보고 말했다.
"......우소(거짓말)." 그러자 즉답
"응."

2010년 4월 24일

침실에서 한 숨 자고 깨어나 남편한테 전화해서 일으켜 달라고 했다. 이제 커피 마셔야지!

2010년 4월 24일, 밤

세수하고 나와 안경 벗은 채 면봉을 찾으니 남편이 "바로 면봉 쓰면 안 좋아요."란다.
"그래요?"
"응. 저번에도 얘기 했는데."
"그랬어요? 왜 안 좋은데요?"
"귀에 면봉을 쓰면 안에 상처가 나기 쉬운데, 샤워 직후에는 젖어 있으니까 상처에 물이 닿아
염증이 생기거나 할 수 있어요."
"그렇군요. 저번에 얘기했을 때도 이유도 말 했었어요?"
"아뇨."
"글쿠나. 제이는 머리가 나빠서 이유 안 들으면 다 까먹어요."
"그건 머리가 나빠서가 아니라 논리적이고 합리적이라서 그런 거예요. 그러니까 제이님
은 역시 대단해.(꼬옥)"
"그렇구나! 난 역시 좀 대단해!(마주 꼬옥꼬옥)"


2010년 4월 25일

아침 먹었다. 어제 아침부터 목이 부어 앓아누울 둣한 느낌이라 긴장 중. 남편이 아침을 차리고 깨워 줘서 흐느적거리며 식탁 앞에 앉아 "생강차는 좋은데 끓이기가 번거로워요."라고 했다. 그러자 남편이 "응. 그래서 제가 끓였어요."

남편이 낮에 시댁 갔다왔다고 종일 투정에 짜증에 드러누워 시위하다가 밤이 되어 좀 반성.그래서 발을 주물러 주는 남편한테 "왠지 미안해요."라고 했더니 "아녜요~"란다. 그래도 미안해서 물었다.
"동진님은 왜 저랑 결혼했어요?"
".....M이라서?"
그러쿠낰!


2010년 4월 26일

침실에 들어가니 남편이
"제이님 짱 대단해!" 라고 한다. 기분이 좋아서 "자, 좀 더 나를 찬양하라!"라고 외쳤다.
"제이님 짜아앙 대단해!"
"...음, 동진님. 단지 한 음절이 된소리가 된 것 뿐인 듯 한데요..."
"들켰당!"


2010년 4월 27일

며칠 전에는 남편이 반쯤 잠에 취해서 나를 품에 안더니 "제이님은 천재야."라고 했다. 맥락을 전혀 알 수 없었지만 그럴싸한 말이라 "응. 맞아요." 라고 했다...

2010년 4월 23일 금요일

2010년 4월 23일 금요일

2주 내내 연습했던 태국 노래 '러이끄라통'을 제대로 부르는 데 성공했다. 완펜~드언씹썽~남 넝 땜딸링~ 유후~

2010년 4월 22일 목요일

2010년 4월 22일 목요일

국제법 시험을 치고, 마사미를 집에 초대해서 수다를 떨고 놀았다.

2010년 4월 21일 수요일

2010년 4월 21일 수요일

집에 마땅한 끼니가 없어 버버리찰떡으로 연명하기를 며칠, 드디어 한계에 도달해 어머니께 SOS를 쳤다. 그 덕분에 점심으로는 애호박전과 치킨샐러드를 먹을 수 있었다. 딸기도 먹고 정신없이 잤다.

저녁에는 아우님과 산울림소극장 1층 수카라에서 샐러드와 오믈렛을 먹고, 사이 강좌에 갔다.

2010년 4월 17일 토요일

2010년 4월 17일 토요일 : 부부의 일상 모음

그동안 그때그때 짧게 남겼던 기록 정리.

2010년 2월 28일

남편이 차려 준 파스타를 맛있게 먹고 소파에 드러누웠다. 남편이 옆에 다가와 앉더니 다리를 주물러 주며
"제이님은 대단해." 란다.
'훗, 새삼 나에게 반했군.'하고 생각하며 "으응~뭐가요?" 하고 귀엽게 물었더니,
"눕고 눕고 또 누워 있어."


2010년 3월 1일

밤. 남편이 "후우, 오늘 안에 해야 할 일이 있는데 하기 싫어요."란다. 집에서 해야 할 회사일이 있나 싶어 안쓰런 마음에 "제가 할 수 있는 일이면 할게요." 라고 했다.
"정말? 분리수거 할래요?"
나는 두 눈을 크게 떴다.
"그건 제가 못 하는 거잖아요!"


2010년 3월 6일

치킨과 스튜를 먹고 쇼파에 앉아 괴상한 표정을 지어보다가 "아이스크림 먹을까?"라고 하자, 내 무릎을 베고 누워 있던 남편이 풉 웃는다. 나의 표정이 귀여웠구나 싶어 왜 웃냐고 물었더니,
"아니, 제이님은 정말 먹을 거 생각 많이 하는구나 싶어서."


2010년 3월 15일

"제이님 뭐해?"
"트위터."
"트위터가 좋아 내가 좋아?"
"음......동진님 하는 거 봐서."
"조건부의 호감따위 필요없엇!"
"...정말? 왜 반항하고 그래~우쮸쮸쮸"
"절대적인 호감을 원햇!"
-_- 그래서 걍 그냥 뒀더니 혼자 동영상 보면서 잘 논다.

2010년 4월 16일

샤워 해야 하는데-하고 축 늘어져 있으니 남편이 "샤워하기 싫어?"하고 묻는다.
"샤워는 하고 싶은데 일어나서 욕실까지 가기가 귀찮아."
"응,알았어."
"이럴수가!날 일으켜서 욕실까지 데려다 주지 않는 거야?"
남편이 단호히 말한다.
"안 돼. 버릇 돼."


그리고 내 "히이잉"의 "잉"이 끝나기도 전에 비척비척 일어나 나를 일으켜 준다. 그래서 샤워하고, 도로 드러누워 말했다.
"아, 탄산수 마시고 싶다. 샤워하고 탄산수 마시고 기분이 좋아지면 얼마나 좋을까?"
.....지금 침대 옆 협탁엔 탄산수가... 몰입교육으로 생활습관이 점점 더 나빠지고 있는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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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고 보니 요전에는 남편에게 "동진님, 샤워하고 치카치카 안 해요?"라고 물은 적이 있다. 그러자 남편이 나를 꼭 안아주며 말했다.
"제이님, 제가 씻는다고 제이님이 씻은 걸로 되지는 않아요. 안타깝지만 아직 그런 시대는 오지 않았어요."



2010년 4월 15일 목요일

2010년 4월 15일 목요일

낮에는 마사미와 학교 정문 앞에서 만나 프렌치 크레이프 / 갈렛 전문점 [라 셀틱]에 갔다. 번잡한 신촌에서 조용하고 깔끔한, 제대로 하는 음식점을 찾아 기뻤다.

저녁에는 동진님과 데이트를 했다.


2010년 4월 13일 화요일

2010년 4월 13일 화요일


오늘은 고구마사과파이를 구웠다. 내일 사이 강좌에 가져가서 함께 먹으려고 잘라서 파이 상자에 넣었다.

2010년 4월 12일 월요일

2010년 4월 12일 월요일


오늘은 브라우니를 구웠다. 평소에는 간단한 레서피대로 만들지만 오늘은 날씨도 흐리고 오랜만에 브라우니가 먹고 싶기도 해서, 귀가길에 브레드가든에 들러 없는 재료를 사 와 존경하는 김영모 데미갓...아니 선생님의 레서피대로 거품을 풍성하게 올리고 피스타치오, 호두, 헤이즐넛을 듬뿍 넣은 다음 코코넛채를 뿌려 만들었다.

완성품은 아주 맛있었다. 열심히 거품을 올린 보람이 있어, 식감이 아주 부드러웠다. 그러나 원래 수요일 사이 강좌에 가져가서 나누어 먹을 요량으로 만들었는데, 너무 부드럽고 가루가 많이 떨어져서 강의실에서는 도저히 못 먹을 것 같다. 밖에서 먹기에는 역시 미니파이 같은 것이 좋을 듯.

2010년 4월 11일 일요일

2010년 4월 11일 일요일

오전에는 시부모님이 오셔서 함께 점심을 먹었다.

오후에는 동진님이 교회 가는 길에 따라나가, 교회 근처에 있는 le four라는 카페에서 초컬릿 타르트를 곁들여 카페라테를 마시며 원고를 했다. 오후 세 시 좀 넘어서 예배를 끝내고 온 동진님과 마주앉아 조금 더 일을 했다. 동진님이 주문한 치즈롤도 맛있었다. 작은 카페라 시끄러운 손님이 들어오면 금세 분위기가 흐트러진다는 단점은 있지만, 한적한 곳이라서인지 대체로 조용했고 베이커리 류가 맛있었다. 베이커리의 수준에 크게 못 미치는 커피가 아쉽다.

다섯 시 쯤 일어나서 홍대입구역까지 천천히 걸었다. 요즈음 푹 빠져 있는 멘야요시에 가서 미소차슈멘과 새우고로께를 주문했다. 우산이 없는데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해 걱정했으나, 다행히 비가 거의 오지 않았다. 고로께와 라멘을 배불리 먹고 집에 돌아왔다. 일찍 일어나서 하려던 일을 다 하고 동진님과도 실컷 논, 행복하고 알찬 하루였다. 

2010년 4월 9일 금요일

2010년 4월 8일 목요일

2010년 4월 8일 목요일

무서워서 학교에 가지 않았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아 다행이었다.

저녁에는 학교 앞에 있는 인도네팔음식점 [머노까머나] 에서 동진님과 식사를 하고, 유니클로에 잠시 들러 옷 구경을 했다. 다스베이더 티셔츠가 나왔다는 말에 궁금해서 가 보았는데, 생각보다 무난해서 조금 실망스러웠다.

2010년 4월 7일 수요일

2010년 4월 7일 수요일

한밤중에 브로콜리 키쉬를 만들어, 한 조각 먹었다.

2010년 4월 4일 일요일

2010년 4월 4일 일요일

어제에 이어 편안한 주말이었다. 동진님이 출근하지 않으니 나도 함께 느긋해진다. 얼마만에 둘이서 여유롭게 보낸 주말인지! 아점으로 어머님께서 어제 동진님 편으로 보내 주신 쭈꾸미삼겹살볶음을 해 먹고, 후식으로 커피와 바나나파이를 먹었다. 월요일에 어머니가 오시기로 한 터라, 어머니 편으로 친정에 보내려고 커다란 바나나파이를 하나 더 구웠다.

늦게 일어났더니 금세 저녁이 되었다. 주말 내내 집안에 있다 보니 답답한 기분이 들어 바람 쐴 겸 집을 나서 멘야요시에서 저녁을 먹었다. 이번에는 요시라멘과 야키소바를 골랐는데, 수요일에 먹었던 미소차슈멘이 요시라멘보다 맛있었지만, 오늘 저녁도 만족스러웠다. 다음에는 신미소라멘과 새우고로케에 도전해 봐야지.

밤에 우리집에 놀러오기로 한 용진군에게 홍대 앞에 있다고 연락해서, 용진군 차를 함께 타고 카카오봄에 갔다. 입장료인 초컬릿을 강탈......아니 선물로 받아, 우리집에서 커피(용진군)와 홍차(나와 동진님)를 곁들여 함께 먹었다. 오랜만에 용진군을 만나서 반갑고 즐거웠다.

2010년 4월 3일 토요일

2010년 4월 3일 토요일

느긋한 주말이었다. 낮에 동진님과 청소를 했다. 미루었던 욕실 청소를 해서 상쾌했다. 장도 보았다. 그리고 바나나 파이를 만들었다. 그렇게 달지 않으면서도 바나나의 부드러운 식감이 잘 살아 있어서 뿌듯했다.

2010년 4월 2일 금요일

2010년 4월 2일 금요일

학교에서 정규수업시간인 [법조윤리] 2교시에 채플을 넣어 놓은 날이다. 이것 때문에 지난주부터 계속 짜증이 나 있었다. 담당자에 대해서도 비교인에 대해서도 아무런 언급이 없는 공지도 짜증스럽고, 한 시간 수업을 듣기 위해 아침 1교시에 학교에 가야 하는 것도 싫었다.

[법조윤리]시간에는 미드 [저스티스]를 보았는데, 처음에는 건성으로 앉아 있었으나 재미있어서 결국 노트북을 닫고 몰입해서 보았다. 그리고 채플을 한다기에 집에 와서, 있는 재료로 간단한 파스타를 만들어 먹고 센터에 갔다.

센터 일이 끝나니 오후 네 시가 넘었다. 센터 앞에 뻥튀기 차가 와 있어서 한 봉지 충동구매했다. 원래는 공부하러 가려고 했었으나 너무 피곤해서 일단 집에 와 잠시 누웠는데, 정신이 들고 보니 이미 한밤중이더라. 동진님과 길 건너편 고깃집에 가서 목살을 먹었다.

2010년 4월 1일 목요일

2010년 4월 1일 목요일

마사미와 학교 동문 근처 LORD SANDWICH에서 점심을 먹었다. 즐거웠다.

2010년 3월 31일 수요일

2010년 3월 31일 수요일

공익변호사그룹 공감의 황필규 변호사님을 뵈었다. 공감 사무실에 처음 가 보았다. 꽤 횡설수설했지만, 나 자신이 명확하게 정리하지 못한 문제들에 대해서 조언을 구하러 갔으니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좋은 말씀을 많이 들었고 앞으로 무엇을 해야 하는지 구체적으로 생각해 볼 수 있었다. 무엇보다도, 여러가지 의미에서 각오를 다질 수 있었던 점이 좋았다.


저녁에는 문지문화원 강의를 하고 나서 동진님과 데이트를 했다. 사이 1층에 내려갔는데 와 있어서 깜짝 놀랐다. 함께 홍대 앞 [멘야요시]라는 라멘집에 갔는데, 아주 맛있었다! 지금까지 서울에서 먹어 본 일본라멘 베스트 2에 들어갈 정도로 훌륭했다. 자주 갈 것 같다. 학교 바로 앞에도 있다고 하니 꼭 가 볼 생각이다.

2010년 3월 29일 월요일

2010년 3월 29일 월요일

어머니께서 집에 오셔서 맛있는 오무라이스를 해 주셨다. 그 덕분에 점심과 저녁을 제대로 먹었더니 한결 힘이 났다.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미역국도, "너에겐 요오드와 칼륨이 필요해!"라는 말씀을 듣고 음, 그렇군, 하고 생각해서 열심히 먹었다.

2010년 3월 28일 일요일

2010년 3월 28일 일요일

귀찮은 파이 반죽을 아무리 길어도 180초 이내에 완성해 준다는 필립스 푸드 프로세서를 사 놓고, 어서 테스트해 보고 싶어서 안절부절못하고 있었다. 어제 저녁 먹으러 나가기 전에 잠깐 한 번 돌려 봤는데, 마치 마법처럼 파이반죽이 완성되어서 감동했었다.

그리하여, 오늘은 아버지의 결혼기념 선물인 귀여운 미니 타르트와 각종 키쉬 재료를 바리바리 싸들고 아우님이 놀러 왔다. 내가 어제 밤에 만든 길다란 애플파이를 먹고 반죽 만들기에 돌입. 홈쇼핑 광고 영상 그대로인 그 성능에 감탄하면서 반죽을 마구 만들었다. 피망, 햄, 브로콜리, 토마토 등을 넣은 키쉬를 하나 만들고, 판 벌린 김에 반죽을 잔뜩 만들자 하여, 아우님이 수퍼에 가서 버터를 세 통 더 사 왔다. 집에 있던 박력분을 다 썼다. 그 다음에는 사과를 졸여서 꼬마 애플파이를 만들었다. 반죽을 주물럭거리며 수다를 떨다 보니 어느새 한밤중이 되었다.

굉장히 즐거웠다. 시들어가던 사과를 두 알 처리(?)한 점도 뿌듯했다.

2010년 3월 27일 토요일

2010년 3월 27일 토요일

결혼기념일이었다. 멋진 결혼기념일 선물을 받았다. 저녁은 압구정에 있는 이탈리안 레스토랑 [트라토리아 몰토]에서 먹었다. 아주 맛있었고, 파스타 코스도 먹어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날씨가 너무 추웠다.

2010년 3월 26일 금요일

2010년 3월 26일 금요일

매우 바쁜 하루였다.

학교에서 법조윤리 강의를 듣고 센터에 갔다가 집에 잠시 들러 그새 올라온 세미나 자료를 출력해 손보다가 학교에 가서 공익인권법학회 발제를 했다. 시간이 없어서 택시 안에서 노트북으로 작업을 계속했다. 차 안에서 자판을 두드리기는 처음이다.

세미나 발제를 준비하고 오랜만에 학회 모임에 참여하면서 법학도들이 말하는 법적으로 엄밀한 사고란 어떤 것인지 조금 더 가까이에서 경험할 수 있었다. 그 건조함이 인상 깊었다. 나에게 별로 맞지 않는 길이라는 사실을 새삼 깨달아 조금 슬펐지만, 어쩔 수 없는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새로운 인연이 닿은 것만으로도 이번 세미나는 의미가 있었다. 내키지 않을 때에도 한 걸음 더 나아가서 내가 어떤 사람인지 말할 필요가 있음을 느꼈다. 내가 나를 드러내야 가능한 만남과 관계가 있다. 또한 내가 추구하는 가치를 '제가 낸 책을 보시면 돼요.'라는 말로 설명할 수 있어 기뻤다. 그렇게 일해 와서 다행이다.

밤에는 홍대 앞에서 동진님을 만나 [심스 타파스]에서 늦은 저녁을 먹었다. 즐거웠다. 겨울 내내 잘 하고 다니던 토끼털 목도리를 잃어버린 줄 알고 무척 속상해 했으나, 자기 전에 씻으러 들어간 욕실에서 발견했다. 수건 걸이에 끼워 놨더라. 센터에서 돌아와 잠시 양치질 하는 사이에 빼 놓고 깜박 했던 모양이다.

 

2010년 3월 25일 목요일

2010년 3월 25일 목요일

점심 때 연세 한국어학당 학생인 마사미 씨를 처음 만났다. 학교에서 구한 언어교환 파트너로 재일교포 3세이다. 함께 [라 본느 타르트]라는 타르트집에 갔는데, 차도 맛있고 타르트도 맛있어서 만족스러웠다. 시간대가 어중간했던 덕분인지, 시끄럽지 않아서 좋았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 보니 시간이 금세 갔다.

저녁에는 내일 공익인권법학회 발제를 위해 현주언니, 수진과 만난다.


2010년 3월 23일 화요일

2010년 3월 24일 수요일

이명현 님과 교내에서 만나 LORD SANDWICH에서 점심을 먹었다. 독특한 천문학회 가방을 선물로 받았고, 재미있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 학교의 종교적 보수화에 대한 이야기도 많이 들었는데, 아주 충격적인 내용도 있었다.

문지문화원 봄 학기가 개강했다. 이번에는 수강생이 많지 않아서, 세미나 형식으로 진행해 보려고 한다. 이 강좌를 통해 과학소설에 관심이 있는 분들을 많이 만나서 참 즐거웠다. 마지막 학기일 가능성이 높은 만큼, 내가 즐거운 만큼 오시는 분들도 즐거우시면 좋겠다.

2010년 3월 22일 월요일

2010년 3월 22일 월요일

오전에 수유너머의 유선님, 하지메님과 영등포 교도소로 현민 면회를 다녀왔다.

밤에는 너무 힘들어서 기진맥진했다. 지금의 삶에 대해서 이대로 좋을지 고민하고 있다. 실천하지 못할 일을 두고 허언을 하는 것이 꼴불견인 줄은 알지만, 학교를 그만두고 싶다.

2010년 3월 20일 토요일

2010년 3월 20일 토요일

아침에 철학과에서 강진호 선생님의 언어철학 수업을 듣는 꿈을 꾸었다. 교실에 앉아서 이렇게 재미있는 공부를 계속할 수 있다니 하고 행복해하면서 강의를 듣다가 깼다. 촘스키와 비트겐슈타인이 나왔는데, 물론 내 꿈이니 수업 내용은 기억이 나지 않는다. 어째서 강진호 선생님이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아침 꿈이다 보니 마치 정말 수업을 들은 것 같아서 그 충만감이 오전 내내 남아 있었다.

저녁에는 신촌 아웃백스테이크하우스에서 서울대 백신고 동문회를 했다. 09, 10학번들을 만났고, 오랜만에 형기오빠도 뵈었다. 아이가 벌써 네 살이라고 한다. 

2010년 3월 19일 금요일

2010년 3월 19일 금요일

법조윤리 시간에 눈물 콧물 흘리면서 [인물 현대사] 조영래 변호사 편을 보고, 센터에 갔다. 남편이 과일 장사를 하는 J씨가 맛있는 바나나를 가져와서 냠냠 먹었다. 수업 후에도 바나나를 하나 더 먹었는데, 그 뒤에 컵라면을 먹어서 속이 좀 거북해졌다. S씨가 내 귀걸이를 보고 예쁘다고 하자 G씨도 그 생각 했는데 말을 못 했다며 맞장구를 쳤다. 그러다가 아니, 안 예쁘니까 여기 버리고 가시라는 농담으로 넘어가서 한참 웃었다.

타 센터에서 진행한 프로젝트 북이 나와서 한 권 받아 왔다. 우리 센터에 오시는 분들이 참여하신 프로젝트라 낯익은 얼굴이 많아 재미있게 보았다. 다만 한국어를 이미 꽤 잘 하시는 분들이 참여한 것이 한눈에 보여 안타까웠다. 한국어를 못 하는 분들은 애당초 정보에 접근할 수가 없다. 한국의 결혼중개업체를 통한 국제결혼은 대체로 저소득층에서 이루어진다. 이리저리 얽힌 주택가에 사는 경우 길을 잃을까봐 못 나와 저절로 갇히는 경우도 있다. 예전에 다른 센터에 있을 때도 영어권이나 한자권에서 오지 않은 어머니와 아이들을 데리고 오고 가는 일이 큰 문제였다. 수술할 때가 지난 듯한 익상편으로 고생 중인 E씨는 남편이 무직인데, 오늘 안과에 가려고 했으나 보험증을 가져 간 남편이 제때 오지 않아 결국 못 갔다고 했다. G씨도 아직 병원에 가지 못했다. 아파서 병원에 간다고 해도, 의사의 설명을 이해할 만큼 한국어를 할 수 있어야 한다. 거기까지 가려면 대체 어떻게 해야 할까. 경제적으로 무능한 남편과 함께 생존하기 위해 몸 쓰는 허드렛일이라도 구하려면 어디서부터 출발해야 할까. 하루하루의 생존을 위해 얼마나 큰 벽을 마주해야 할까. 그런 상황에서도 센터에 오고, 더 나쁜 상황에 있던 친구를 찾아내 데려오기도 한다. 대체 그것은 얼마나 큰 용기이고 도전일까. 가족이 화목하고 아이들이 건강하며 먹고 살 만 한 분들도 물론 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하더라도 낯선 곳에서 이방인으로 살기란 여전히 얼마나 어려울 것인가. 돈을 벌고 아이를 키우고 시부모를 봉양하고 병원에 가는 사이에 공부를 한다. 농담을 한다. 짬을 내어 운동을 한다. 나는 나로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그 삶에 대한 용기를 진심으로 존경한다.

그러니 내가 가진 것이 많다는 말을 하려는 것이 결코 아니다. 타인의 결핍은 내 풍요로움의 가늠자가 아니다. 한 사람의 인생은 타인의 생에 잣대로 쓸 수 있을 만큼 가볍지 않다.

나는 그저, 조금 체한 듯한 배를 문지르며 내가 하고 있는 공부가 얼마나 무거운 것인지, 제대로 공부하고 제대로 고개를 들어 세상을 마주하지 않으면 안 될 책임이 얼마나 무거운지를 생각했다.

2010년 3월 18일 목요일

2010년 3월 18일 목요일

상준님, 명현님, 창규님, 맹성렬님, 고드 셀라와 홍대 앞 막걸리집 [검정고무신]에서 만나 저녁을 먹었다. 술집에서 만난다고 해서 어떨까 싶었으나, 우리나라에서 UFO에 관해 가장 전문가라는 맹성렬 님이 나오신다는 말에 재미있는 이야기를 들을 수 있을 것 같아 혹해서 갔다.

전을 먹으며 이런 저런 이야기를 들었는데, UFO에 관해서는 누가 어디에서 무엇을 보았다더라-정도 이상의 이야기는 없었다. 과학자이시기도 한 만큼, 좀 더 물증이 있는 이야기가 있을까 했지만 공군이 팀 스피리트 훈련을 하다가 목포 해상 위에서 빛나는 물체를 보았다고 증언했다는 말은, 글쎄, 그 증인이 그렇게 믿어 의심치 않았다는 것과 그 시간에 다른 사람들도 그것을 목격했다(고 생각한다)는 사실은 믿을 수 있지만 그렇다고 그것이 외계 생명체가 보낸 어떤 비행물체라고는 도저히 믿을 수 없다. 오히려 특정한 스트레스 환경에서의 집단 환각이나, 아직 우리가 설명할 수 없는 자연현상이라고 생각하는 편이 논리적이라고 생각한다. 외계생명체 UFO의 존재를 가정하는 것은 지나치게 '지구중심적'이라는 SETI의 견해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그런데 외계 생명체가 보낸 UFO는 있다고 생각하는 맹성렬 님이, 외계인에게 납치되었다는 사람들의 주장은 믿지 않는 것이 재미있었다. 그런 증언은 중세나 그 이전부터 있는 마리아님을 만났다든가 하는 이야기와 구조가 동일하다고 보고 계셨다. 또한 UFO나 외계인에 관한 담론의 종교화를 경계하고 계신 점은 인상적이었다.

오히려 흥미로웠던 것은 요즈음 막걸리 붐을 타고, 전북도가 막걸리의 맛을 감각 표준화 하려는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는 맹성렬 님의 본 전공 이야기였다. 센서 연구를 통한 맛의 표준화라니! 또한 SETI 과학자이신 명현님의 최근 외계 생명체 연구에 관한 새소식은 아주 재미있었다. 최근 외계 생명체 연구자들은 상당히 고양되어 있고, 한동안 저조했던 NASA에서도 예산을 증액하고 있다고 한다. SETI쪽에서 잡고 있는 D-Day는 2018년이다. 가장 외계 생명체의 발견 가능성이 높은 곳은 물론 화성으로, 화성에 박테리아가 있을 것이라고 추측하고 있다. 화산활동이 없는 화성의 대기에 그만한 메탄 가스가 존재하는 이유를 달리 설명할 수 없다는 것이 그 강력한 근거이다. 2018년인 이유는 2016년에 발사될 예정인 새 화성탐사선과 관계가 있다. 지금까지 인류는 화성의 흙을 20cm정도까지 파내려갔는데, 2016년의 화성탐사선은 22m까지 팔 수 있는 것이라고 한다. 이 탐사선이 화성에 도착해 작업 결과가 나오는 것이 2018년이라니, 이제 10년도 남지 않았다. 듣고만 있어도 두근두근했다.

그 다음의 중요한 해는 2025년으로 전파망원경 탐사와 관계가 있다고 한다. 지금까지 관측된 미확인 전파 신호는 5,000여개이다. 전파 신호들 중에서 유의미한 것을 골라내기 위해서는 전파 신호의 규칙성이 중요한데, 인류의 전파망원경 역사가 오래지 않아서 아직까지 규칙성을 밝힐 정도의 DB가 쌓이지 않았다고 한다. 그런데 지금 건설중인 SETI전용 전파망원경들이 건설되어 계속해서 신호를 분석하기 시작하면, 2025년에는 신호의 유의미성을 판단할 수 있을 정도에 이를 수 있으리라고 기대하고 있단다.

자카르타에 여행을 다녀온 고드 셀라에게서도 이 자리에서 들을 줄 몰랐던 소식을 들었다. 포스코 건설이 지금 인도네시아에 새 공장을 건설하는데, 그 계획이 지역 주민들의 거주지와 농토를 빼앗을 뿐 아니라 천연림까지 밀어버리는 것이라서 반대가 매우 거세다고 한다. 대규모 시위가 벌어지고 해외 언론에도 보도되고 있지만 한국에서는 아마 전혀 알려지지 않은 것 같다고 했는데, 검색해 보니 역시나, 한국어 검색으로는 외화를 잔뜩 벌어 올 예정이라는 식의 경제신문 기사나 포스코의 녹색경영 어쩌고밖에 뜨지 않는다. 영어로 검색하니 바로 나온다. 

2010년 3월 16일 화요일

2010년 3월 16일 화요일

수업이 있는 평일에는 별다른 일이 일어나지 않는다. 학교에 있으면 무기력해지기 쉽기 때문에, 활력을 줄 만한 일을 일정에 넣으려고 애쓰고 있지만 쉽지 않다. 그냥 멍하니 앉아서 교과서 보고 필기 하고 딴 생각 좀 하다 보면 낮 시간이 다 간다. 학교는 젖은 종이처럼 우울하고 쓸쓸하다. 그나마 올해는 수강신청을 한 덕분에 오전 수업이 없고, 그럭저럭 재미도 있다. 월요일 오후 5시~7시 수업이 국제인권법이 아니었다면 내가 과연 그 시간까지 학교에 붙어 있었을까.

수업 후에 현주언니, 수진과 세미나 발제 준비 토론을 했다. 시민적 결합을 주제로 잡기로 했다. 토요일에 출장을 갔던 동진님이 돌아왔다. BBQ치킨의 신작 바삭칸 치킨을 먹어 보았다. 동진님과 놀았을 뿐인데 금세 잘 시간이 되었다. 하루 잘 간다.

목이 아프고 답답했는데 황사였던 모양이다.

2010년 3월 14일 일요일

2010년 3월 14일 일요일 : 화이트데이

지난 주 내내 골골 앓는 나를 걱정한 어머니께서 저녁으로 카레를 만들어 주셨다. 맛있는 카레와 맛있는 딸기, 샐러드를 배불리 먹었다. 잠시 후에 아버지께서 어머니를 태우러 오셨다. 생수와 아우님에게 부탁했던 초등교과서, 결혼기념일 선물 등을 이것저것 가져 오셨다. 짐이 많으니 잠깐 나오라는 전화를 받고 1층으로 내려가 쇼핑백을 들고 엘리베이터에 탔다. 생수 열두 병을 발치에 놓고 허리를 편 아버지와 눈이 마주쳤다.
"아빠, 그새 더 미남되셨네요."
내가 씩 웃자, 아버지도 씩 웃으시더니 주머니에서 동그란 과일사탕 캔을 꺼내신다. 우왕, 고맙습니다- 하고 받자마자 엘리베이터 문이 열렸다. 현관을 열고 기다리고 있던 어머니가 내가 자랑스레 치켜든 사탕 캔을 보더니 "당신은 나만 챙기면 돼요. 얜 동진이가 챙기겠지." 하고 장난스레 눈을 흘기며 짐을 받아드신다.

아버지도 오신 김에 카레를 드시고 가셨다. 어머니가 구두를 신으며 "어휴, 그냥 확 납치해 가고 싶다. 데리고 가 버릴까~" 하신다. 나는 허리에 손을 얹고 "음핫핫핫, 점점 더 인기짱인 나!" 하고 기분 좋게 웃으며 문앞에서 부모님을 배웅했지만, 사실 조금은 납치당하고 싶은 기분이었다.

2010년 3월 13일 토요일

2010년 3월 13일 토요일

컨디션은 여전히 좋지 않았으나, 잘 먹어서 정신을 차려야겠다는 생각에 지정사에 나갔다. 앞 모임에 두 번 못 나갔었기 때문에 상훈님을 비롯한 다른 분들을 뵙고 싶기도 했다. 서울대입구역 봉천중앙시장 근처에 있는 [경성양육관]에서 양꼬치를 먹었다. 참석자는 까리용님, 상훈님, 아스님, 상현님, scifi님, 인수오빠, 나. 양꼬치를 실컷 먹었다. 꼬치로 기록이 남아 세어 봤더니 나 혼자 1.7인분 먹었더라!

서울대입구역 2번 출구 근처에 있는 술집에 가서 룸을 차지하고 무슨 700ml? 세트를 시켰다. 나는 오렌지 어쩌고 하는 무알콜 칵테일에 도전해 보았는데 내가 생각했던 것과 아주 다른, 평범한 음료가 나와 낙담했다. 여기에서 근처에 사시는 sabbath님이 합류했다. 재미있는 이야기가 이것저것 나왔으나 불편하기도 했다. 어떤 주제에 관해서든, 한 사람만 입장이 달라 자신이 속한 집단을 변호/변명/비판/대변해야 하는 상황은 즐겁지 않다. 근본적인 정체감, 세계관과 직결되는 '신앙'이 그 주제일 경우에는 더 불편하다. 그렇다고 모임에서 누구 한 사람만 다른 종교 또는 다른 정당의 지지자인 경우 무조건 그 주제에 관해 침묵해야 하는 것은 아니지만......본인이 먼저 말을 꺼내지 않는다면 피하는 것이 좋지 않을까 생각한다.

기력이 다해 일찍 일어났다. 왕복 택시를 타는 호사를 부리며 일용할 양식이 없는 집에서 나갔다 왔는데, 좋은 분들과 맛있게 잘 먹었으니 그만한 보람이 있었다.


2010년 3월 12일 금요일

2010년 3월 12일 금요일

현민의 구속일이었다.

수강신청변경기간에 법조윤리를 넣었기 때문에, 1교시에 맞추어 학교에 갔다. 버스를 탈까(시간이 오래 걸리지만 환승할 필요가 없고 앉아 갈 수 있다) 지하철을 탈까(두 번 환승해야 하지만 출퇴근 시간에는 버스보다 빠르다) 고민하다가 아직은 괜찮을 것 같아 버스를 탔는데, 정말 아슬아슬하게 들어갔다. 지정좌석제인데 내 자리는 맨 앞이다. 올해의 운은 어제로 다한 모양이다.

그래도 가나다 순으로 앉아서, 지난 학기에 가까이 앉았던 앞번호 기봉오빠, 뒷번호 어연씨와 이번 학기 들어 처음으로 얼굴을 보고 인사할 수 있었던 것은 좋았다. 기봉오빠는 참 멋진 분이다. 성실하고 겸손하고, 상대방을 공격하지 않는 말하기를 할 줄 아신다고 할까. 가까이서 자세히 보고 배우고 싶은 부분이다.

법조윤리 시간에는 [뉴스 후] 비디오를 보고 변호사의 윤리에 관한 설명을 들었다. 2시간 연강인데 쉬지 않고 이어져서 나중에는 무척 힘들었다.

수업이 끝난 후에는 버스를 타고 센터로 갔다. 다행히 현대백화점 앞에서 센터 근처까지 한 번에 가는 버스가 있더라. 바람이 많이 불어 몹시 추웠는데, 센터 문을 열고 들어가보니 평소보다 더 복작복작해서 사람 열기로 따뜻했다. 어제 선물로 들어왔다는 롤케이크를 나누어 먹고 있기에, 얼른 끼어들어서 허겁지겁 먹었다. 필리핀에서 오신 두 분이 새로 오전 수업에 참여하신다고 한다.

오늘의 읽기 수업은 잘 되지 못한 것 같다. 예문을 하나 잘못 들었던 것 같아서 계속 신경이 쓰인다. E씨와 한국어능력시험 3급 공부를 시작했는데, 이 시험 너무 어렵다! 한국인에게 풀라고 해도 만점을 받지 못하는 사람이 있을 것 같은 수준이다. E씨가 J씨의 아들을 보며 "저도 아기 있고 싶어요."라고 했다. E씨는 아침에는 빵집 청소를 하고 저녁에는 식당 설거지를 한다. 설거지 시급은 5,000원이다. 오전에 새로 온 필리핀 출신 W씨는 한국에 온지 삼 년이고 아이도 둘 있지만, 남편이 집에서 내보내주지 않아 한국에 대해서 거의 모르고 한국어도 텔레비전을 통해서밖에 배우지 못했다고 한다. 그래서 한글 자모 쓰기도 잘 안 되는 상태. 게다가 집에서 잠시만 나가도 남편이 전화를 해서 어디에서 뭐 하느냐고 화를 낸단다. 남편이 센터에도 여기 뭐냐고 불쑥 찾아왔다가, 대표님을 보고 돌아갔던 모양이다. 국적과 영주권에 관한 이야기가 나왔는데, 아이가 둘 있고 센터에도 자주 오시는 G씨가 아직 국적도 영주권도 없는 외국인 상태라는 사실을 알고 조금 놀랐다. 아이 나이를 생각하면 결혼한지 오 년이 넘었을 텐데, 왜 영주권조차 없는지는 묻지 못했다. 그보다도 당장은 G씨의 허리 통증이 걱정이다. 몇 년 동안 계속 아이를 업고 다녀서 이제는 조금만 허리를 써도 누워서 쉬어야 할 정도로 상태가 나빠졌지만 아직 정형외과에 가지 못했다. 병원에 가서 디스크인지, 어느 정도인지 검사를 받아 보았으면 좋겠는데......활동 외 시간에 근처 병원에 함께 가고 싶은데 그렇게까지 개입해도 되는지 잘 모르겠어서 망설이고 있다.  

수업을 한 다음에는 집으로 급히 가서 옷을 갈아입고 노트북을 놓아 둔 다음, 저녁을 먹을 시간이 없을 것 같아 인스턴트 떡국을 먹었다. 그리고 서부지검으로 갔다. 오늘은 동기 신행, 02학번 수영 씨, 날맹 씨, 나, 다큐멘터리 촬영을 하고 계신 분(성함을 미처 여쭙지 못했다) 다섯이 현민을 배웅했다. 5시 40분까지 출두라 근처 뚜레주르에서 커피와 빵을 먹고 (먹이고?) 45분쯤 지검으로 갔다. 함께 간 사람은 올라가지 못하니 엘리베이터 앞에서 인사. 지난 주에 그냥 돌아왔을 때는 얼떨떨했는데, 막상 이렇게 가는 것을 보니 정리할 시간이 있어서 다행이었다 싶었다. 웃으면서 갔고, 웃으면서 보냈다. 호송차가 나가는 것을 보려고 지검 앞에서 벌벌 떨면서 기다렸는데, 여섯 시 좀 넘어서 커다란 버스가 한 대 나갔다. 문제는 완전히 새까매서 안에 있는지 없는지 알 수가 없었다는 점. 9층까지 갔다가 이렇게 빨리 나오지는 못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 앞에서 밍기적거리면서 더 기다렸다. 호송차로 가는 경우도 있지만, 이런 도주우려가 없는 양심범의 경우에는 퇴근하는 검사 승용차를 타고 감옥에 가는 경우까지도 있어서 가늠하기 어렵다고 한다. 마냥 기다릴 수 없어 결국 수영 씨가 이미 갔는지 알아보겠다며 검찰청 1층으로 들어갔다. 한참 있다 나와 "신분을 쓰고 싶지 않았지만......"하고 머리를 절래절래 흔들며 아까 그 호송차로 간 것이 맞다고 한다.

나는 신촌 쪽으로 갈 일이 있다는 날맹 씨와 택시를 타고 학교로 갔다. 날맹 씨도 병역거부자로, 현민이 나오기 전에 들어갈 예정이기 때문에 현민과는 오늘을 마지막으로 면회를 제외하면 몇 년을 보지 못하리라고 한다. 신촌에 있는 비폭력 대화 센터에서 열리는 비폭력 대화 연습모임에 가는 길이란다. 비폭력 대화를 배우는 곳이 있다니 이번에 처음 알았다. 상대방에게 상처를 주거나 상대를 공격하지 않고 공감하는 말하기를 하는 법을 배우는 곳으로 상담가나 아이들을 많이 대하는 교사 같은 분들이 찾아오신다고 한다. 입문 반은 한번에 세 시간씩 해서 6주 코스. 날맹 씨는 코스를 다 들은 사람들끼리 만나서 연습하는 단계에 있단다.

추운데 너무 오래 떨었기 때문에 택시를 타고 학교까지 들어갔다. 그러나 공익인권법 학회 모임 장소인 강의실에 가 보니 문이 굳게 닫혀 있었다. 준성에게 전화하니 조금 전에 나와서 밥 먹으러 가는 길이란다. 춥고 힘들었으나 고기 먹겠다고 다시 학교 밖까지 꾸역꾸역 걸어갔다.

고기집에 도착해 보니 딱 고기를 받아서 굽기 시작하는 참이었다. 좋은 타이밍이다. 개강하고 처음으로 만난 동기 분들도 꽤 있었다. 2기 분들을 본 것도 물론 처음. 뒤늦게 끼어든 터라 누가 누구인지, 어떤 이야기가 오갔는지 잘 알 수 없었지만 조금 들뜬 분위기가 즐거웠다. 일 년 버텼다는 실감도 났다. 고기를 잔뜩 먹었고, 고기 먹은 기세로 27일 세미나 발제에 참여하겠다고 했다. 현주언니와 수진이 한다고 해서 좋은 팀이다 싶었기 때문이었다. 공감에서 인턴하며 성소수자 인권 사건을 맡았던 수진에게, 원래 정한 주제인 '난민' 말고 '성소수자'로 발제를 하는 것은 어떻겠냐고 해 보았다. 

2차를 갈까 집으로 갈까 망설이던 차에 퇴근길인 동진님에게서 시부모님이 잠깐 들르신다는 문자가 와서 집으로 왔다. 고기 냄새가 잔뜩 밴 옷을 벗고 샤워부터 했다. 시부모님은 동진님 몸보신 약만 주고 차에서 내리지도 않고 바로 돌아가셨다. 모처럼 오셨는데.

아슬아슬한 컨디션으로 이렇게 무리를 한 끝에, 밤에는 다시 목이 아파 끙끙 앓기 시작했다.

2010년 3월 11일 목요일

2010년 3월 11일 목요일

공강 시간에 보라님과 만났다. 이대 후문 쪽으로 갔다. 내가 길을 잘못 들어 정장구두를 신은 보라님이 한참을 둘러 가느라 고생하셨다. 바로 어제 왕복했던 길이라 자신이 있었는데 우쭐했다가 길을 잃어버리고 말았다. 20세기에 학교를 떠나 21세기에 돌아온 보라님의 인도를 받아 간신히 LORD Sandwich라는 맛있는 샌드위치/피자 카페에 들어갈 수 있었다.

거의 백인들만 전공하는 폴란드, 러시아 문학을 오랫동안 해외에서 공부하신 보라님의 이야기는 무척 흥미로웠다. 미국에서 조교 시절을 포함해 10년 동안 강의를 했는데, 그 10년 내내 유색인종인 학생이 단 두 명 밖에 없었단다. 그나마도 한 명은 도중에 그만두어서, 결국 한 수업을 끝까지 함께한 사람은 한 명 뿐이었다. 요전에 보미가 집에 놀러 왔을 때, 맡고 있는 학부생들의 사진을 보여주며 우리 과(사회복지)는 흑인이나 아시아계가 많다고 했던 것과 비교되었다. 또 폴란드에 있을 때는 10개월 동안 수도 없이 전차를 탔는데 언제나 전차에 동양인이 보라님 한 명 밖에 없었다. 그러다가 어느날 같은 칸에 베트남 아주머니가 탄 것을 처음으로 보았는데, 그 때, 나는 일단 유학중이고 돌아갈 집이 있지만 저 분은 평생 이렇게 이방인으로 이 사회에서 살아가겠구나 하는 생각을 했단다. (같은 사회주의 국가였기 때문에, 폴란드에는 베트남에서 이주해 온 사람들이 있다고 한다.) 그런 길고 오랜 이방인으로서의 경험이란 어떤 것일까?

그 외에도 - 여기에서 전공 관련 서적을 구입하기가 너무 힘들어 책을 사러 블라디보스토크에 갈까 생각중인데, 한국에서 블라디보스토크까지는 배로 9시간이 걸리고 비용은 1등석은 80만원 정도, 2등석은 4,50만원 정도가 든다고 한다. 예상보다 시간이 적게 걸리고 비용도 저렴해서 놀랐다. 다만 러시아는 봄에 대체로 치안이 좋지 않은데, 4월 20일 히틀러 생일 때문이란다. 스킨헤드의 경우 외국인 혐오 범죄를 저지르기는 해도 나름대로 내부 규율 같은 것이 있어서 그 행동 패턴을 알면 어느 정도 대비가 가능하지만(예를 들어 모이는 장소가 있고, 여자보다 남자 유색인종을 공격한다고 한다) 최근 문제가 되고 있는 훌리건들의 범죄는 전혀 예측할 수 없기 때문에 무척 위험하다고 한다. 또 폴란드는 남한보다 북한과 오랫동안 친밀하게 수교해 왔기 때문에, 양측 대사관이 모두 있는 바르샤바에서는 괜찮지만 보라님이 계셨던 도시처럼 북한은 대사관이 있고 남한은 문화관(?) 같은 것만 있는 곳에서 교통사고가 나거나 하면, 남한 사람의 신병을 북한 대사관으로 잘못 인도하는 경우가 생긴다. 여권을 갖고 있어도 영문 국명까지 비슷하기 때문에 의식이 있어서 남쪽 사람이라고 주장하지 않는 경우 실종되기도 한다니 (북측에서는 일단 남한 사람이 손에 들어오면 절대로 놓아주지 않으려고 한단다) 무서운 현실이다. SF 팬으로 유명한 주한체코대사님의 이야기에는 구체제에 대한 보헤미안적 로망이 듬뿍 담겨 있어서, 다음에 꼭 대사님을 직접 만나서 들어 보고 싶다고 생각했다.

출판사나 편집자, 이주, 수업 등에 관해 이야기하다가 세 시 반 쯤 헤어졌다. 나는 국제법과 국제인권법 수업을 듣고 집에 왔다. 보라님 덕분에 알찬 하루였다.

2010년 3월 10일 수요일

2010년 3월 10일 수요일

배명훈님, 이명현 박사님과 만났다. 한시 반 약속이라 수업 끝나고 바로 갔는데, 점심을 들지 않은 사람이 나 뿐이었다. 이명현 박사님은 조경철 박사님의 장지에 갔다가 검은 리본을 단 채 바로 오셨다. 파주 쪽인가? 이북이 보이는 곳이 장지였다고 한다. 조경철 박사님이 이북 출신인 줄 이제 알았다. 그 묘지에는 평안도, 함경도 등 도별로 장지가 마련되어 있고 북녘이 보이게 묘를 만들어 장사를 지낸다고 한다. 장지는 북에도 내린 눈이 소복이 쌓인 산이 보이는 자리였단다.

두 분과의 대화는 무척 즐거웠다. 꽤 신도 나서, 역시 좋아하는 일을 하며 살아야겠다 싶었다. 그래서 지난 2주 동안 병이 나도록 고민했던 UW 건에는 지원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오후의 국제법 시간에는 내셔널 지오그래픽 채널에서 만든 (국내 미방영) 북한 주민 취재 프로그램을 10분 정도 보았다. 위대하신 장군님과 수령님을 찬양하며 만세를 부르고 부르는 모습을 보며 누군가 헛 하고 웃었다. 황당해서였겠지만 복잡한 기분이 들었다. 내 눈에는 다른 자리에서 보았던 개신교회의 찬양(?) 장면과 똑같았다. 북한 안에서 일어나고 있는 가뭄, 홍수, 빈곤, 죽음 같은 것들을 생각하면 아찔하다. 생존이 워낙 절박하니 독재는 상대적으로 작은 문제처럼 느껴질 정도다. 북한의 붕괴가 두렵다. "북한이 몇 년 안에 붕괴할텐데, 그러면 땅 찾는 부동산 소송부터 해서 얼마나 일이 많아지겠냐. 여러분에게는 블루오션이 기다리고 있으니 아무 걱정 안 해도 된다"는, 농담이라도 듣기 괴로운 말을 하는 교수님(국제법 아님)의 수업을 들으면서 변호사를 하겠다고 학교를 다니고 있는 나는 대체 어떻게 해야 할까? 

몇 년 전 일이니 이제 열린 자리에 써도 될 것 같은데, 2006년에 나는 모 사회복지기관에서 일하며 새터민 가정을 방문한 적이 있다. 차상위 계층 가정을 방문조사해서 이야기를 나누고 어떤 상황인지 정기적으로 확인하는 작업이었다. 새터민 가정인줄 모르고 갔다가 실수를 저질러서 이후 몇 년 동안 반성하고 반성했으나 그 일은 아직 글로 쓸 수 있는 것이 아니니 생략하고, 어쨌든 그때 눈앞에 앉은 만삭의 아주머니가 "지가 두만강을 건널 적에......"라고 자연스럽게 말했을 때의 당혹감은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그러나 나의 체험을 압도하는 타인의 경험이 어디 그것뿐이랴.

병원에서 항생제를 과다처방해줬으나 (약국에서 병원에 정말 이렇게 주냐고 확인전화를 했을 정도였다) 나 역시 당장 낫는 것이 급한 처지라 준 대로 먹었더니 이두의 염증은 한결 가라앉았다. 그런데 빨리 나아 보겠다고 따뜻한 물을 하도 많이 마셔서 배탈이 났다. 그래서 이 시각까지 못 자고 있다(지금 새벽 2:40). 베를린에 가고 싶다.

2010년 3월 9일 화요일

2010년 3월 8일 월요일

아침에 '아파서' 깼다. 너무 괴로워서 오전에 병원에 다녀왔다. 오후에 학교에 갔다. 6시간 연강인 날이었으나 결국 끝까지 버티지 못하고 국제인권법 시간에 귀가했다. 어머니가 집에 와서 이런저런 먹거리를 만들어 주셔서 배불리 먹었다. 기운이 좀 났다.

2010년 3월 7일 일요일

2010년 3월 7일 일요일

큰일났다. 목이 팅팅 부어서 아프다. 생강차에 꿀을 넣어 마셨는데 별로 차도가 없다. 새벽에 조찬회의에 다녀온 남편은 해가 저물도록 잔다.

먹어야 기운이 날 것 같아 저녁에는 남편과 동네 삼겹살집에 다녀왔다. 그런데 목은 계속 아파서, 밤새 앓았다.

2010년 3월 6일 토요일

2010년 3월 6일 토요일

저녁에 동진님과 데이트를 하기로 했었는데, 동진님이 출근하고 시댁에 가서 계획이 틀어졌다. 심술이 났다.

미용실에 가야 한다는 아우님을 나의 넘치는 매력으로 유혹해서, 우리 집에서 교촌소이살살 치킨을 함께 먹었다. 아우님이 입장료로 맛있는 푸딩을 두 개 가져 왔다.

뒹굴뒹굴 하면서 후쿠오카 관광 책자를 보고 수다를 떨었다. 올해 초등학교 4학년 담임을 맡은 아우님의 이야기 속 초등학생들은 요정처럼 귀엽고 깜찍하고 사랑스럽고, 선생님의 모이를 기다리는 연약한 아기새 같다.

그런데 지금 아파트 놀이터에서 짐승 소리를 내고 있는 저 아이들은 그냥 시끄럽단 말이지.......

보고 싶던 아우님을 만나고, 밤에 아우님을 태우러 오신 아버지도 잠깐 뵈어서 좋았다. 야식으로는 시어머니표 해물채소 수프를 먹었다.

수강신청과 학사진로 계획때문에 형언하기 힘들 정도의 스트레스를 받은 끝에, 16학점을 신청했다. 금요일 1교시를 결국 넣었다. 공공거버넌스특성화에 대해서 궁시렁거리고 싶지만 관두련다.

2010년 3월 5일 금요일

2010년 3월 5일 금요일

오늘 센터에서는 '은혜 갚은 꿩' 읽기 수업을 했다. 내가 좀 이상하게 생각하는 이야기 중 하나이다. 지나가던 나그네가 꿩을 잡아먹으려던 구렁이를 활로 쏘아 죽인다. 그날 밤, 헛간에서 잠자던 나그네에게 죽은 구렁이의 누이가 와서, 동트기 전에 빈 절에서 종이 세 번 울리면 살려주겠다고 한다. 꿩이 머리로 큰 종을 세 번 들이받아 울린다. 구렁이는 약속대로 사라지고, 꿩은 머리가 깨져 죽는다.

 

오라버니를 잃은 구렁이는 자기가 한 말을 지키는 정직한 구렁이라서 복수를 하지 못했고, 나그네가 구해 준 꿩은 딱 한나절 더 살았을 뿐, 결국 죽었다. 나그네가 꿩과 구렁이 사이에 끼어들지 않았다면 꿩 한 마리만 죽었을 텐데, 나그네가 선의로 개입한 바람에 결국 꿩도 죽고 오라버니 구렁이도 죽고 나그네의 여정은 지체되었다. 뭐 이래. -_- 누이 구렁이가 불쌍해서 마음이 아팠다.

 

학기 초라 새로 온 분들이 있어서 애국가를 배웠다. 알아 두어 나쁠 것 없기도 하고, 국적심사 때 필요할 수도 있기 때문에 가르친다. 읽기 수업에 하얼빈에서 온 J씨가 합류해서 학생이 늘었고, 다음 주부터 E씨와 한국어능력시험 3급 준비를 하기로 했다. 센터에 오는 분들 중에 서글프고 안타까운 사연 없는 사람이 없지만, 오늘부터 공부하면 안 되냐고 의욕을 보이는 E씨를 마주하며 순간 목이 메었다. 그렇지만 그와 나 모두를 위해, 유약한 감상에 침잠하기보다는 그에 발을 단단히 딛고 서서 눈앞의 삶을 보아야 한다고 믿는다. 나는 침을 삼키고 "E씨 책으로 해요. 공부해 오세요. 열심히 해요." 하고 두주먹을 꽉 쥐어 들며 활짝 웃었다.

2010년 3월 4일 목요일

2010년 3월 4일 목요일

수강신청변경기간을 핑계로 학교에 가지 않았다. 그러나 시간표를 변경해 목요일을 빼 보려던 계획은 결국 실패했다. 결국 단지 잉여잉여하며 하루를 보냈다.

2010년 3월 3일 수요일

2010년 3월 3일 수요일 : 현민의 선고 공판

정치적 병역거부를 선언한 동기 현민의 선고공판일이었다. 서부지방법원에서 오전 10시. 밤낮이 조금 바뀐 상태라 전날 새벽 4시 즈음에야 잠들어서 못 일어날까봐 걱정했는데, 날이 날이니만큼 긴장해서 잘 일어났다. 법원에 제일 먼저 도착해서 기다리고 있으니, 동기 신행과 도호, 이어서 후원회 일을 맡고 있는 후배들이 들어왔다. 좀 더 앉아서 기다리자 [전쟁 없는 세상]의 여옥 님, 다음주에 선고를 받는 다른 병역거부자 분 등이 오셨다. 현민은 기다리는 쪽이 초조해질 때 쯤 되어 나타났다. 현민의 어머니는 오시지 않았다.

공판장 앞에서 현민은 휴대폰을 넘기며 해지를 부탁하고, 속옷과 책 몇 권이 들었다는 종이가방을 들었다. 후원회장을 맡고 있는 후배 중희가 지갑에 얼마 있는지 묻더니 혹시 모르니까, 하고 칠만원을 건넸다. 가볍게 포옹하며 인사를 했다. 나는 남자 동기라 손 한번 잡아본 적 없던 현민을 안고, 나도 모르게 등을 두드렸다.

법정에 들어갔다. 형사이다 보니 앞의 분들은 사기죄, 폭력죄.....병역법 위반으로 현민의 이름이 불렸고, 판사는 '주장하는 내용을 다 이해할 수는 없지만 현행 헌법상 국방의 의무가 주장되는 양심의 자유에 우선하므로' 징역 1년 6월을 선고했다. 그런데 법정구속이 되리라고 생각하고 바로 감옥에 갈 준비를 다 하고 있었는데, 신변을 정리할 시간이 필요할테니 오늘은 귀가해도 좋고 7일 후에 출두하란다. 우리는 우르르 들어갔다가 우르르 나와, 손을 벌벌 떨며 벤치에 주저앉은 현민을 둘러싸고 망연히 서 있었다.

현민은 아무 것도 먹을 생각이 없다며 일단 돌아가자고 했다. 법원 앞에 서서, 아침에 어머니가 갈비며 한라봉을 차려 준 이야기, 끝내지 못한 번역일정을 조정해 놓았는데 시간이 더 생겨서 감옥 간 척 잠수해 있어야겠다는 얘기, 감옥에 가져가려고 골라 놓은 책이 너무 마음에 들지 않아 아침 일찍 택시를 타고 교보문고까지 갔다가 막상 가고 보니 재판에 늦을 것 같아서 다시 돌아온 얘기를 조금 두서없이 늘어놓으며 추운데 세워 놓아서 미안하지만 내 인생에 이런 일이 언제 또 있겠냐고 했다. 두 번 없길 진심으로 바랐다. 신념을 위해 극단적인 선택을 해야 하는 순간은 한 번이면 족하다.

서부지법까지 온 김에 바로 옆 서부지검에 있는 CW양에게 잠시 들렀다. CW양은 법정구속이 안 되었다는 얘길 듣더니 판사가 예외적으로 무척 배려해 준 것이리라고 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양보할 수 없는 신념의 무게가 실감나 마음이 무척 무거웠다. 오랜만에 친정에 들르기로 했던 터라 집 근처 전철역에서 어머니와 만나 간단히 쇼핑을 했다. 딸에게 좋은 밥 챙겨주겠다고 분주히 만두를 빚던 어머니는, 현민의 이야기를 듣더니 거실 쇼파에 늘어져 있는 내 쪽을 보며 "어휴, 부모한테 어쩜 그런 불효를 하니. 하여튼 부모 마음보다 지들 신념이 중하다고......먹물이 너무들 들었어. 모르고 좀 편하게 살면 좋을텐데 알아서 그 고생을 하지."라며 한숨을 쉬셨다. 나는 어머니의 시선을 과장스레 외면하며 "그러게~말이에요~"하고 능청맞게 웃었다.

맛있는 만두국을 먹고 어머니와 수다를 잠시 떤 다음 동생의 침대에서 한숨 잤다. 생일 선물로 받은 가방에 생일 선물로 받은 옷, 모자, 내가 잠든 새 어머니가 만들어 주신 따뜻한 귀리빵 샌드위치를 두 개 받아 넣고 학교에 갔다.

집에 와서는 홍차를 우려 샌드위치를 먹었다. 두 개 다 먹었더니 무척 배가 불렀다. 나는 내 삶을 지배하는 포만감에 대해 생각하는 대신, 누워서 배를 두드리며 남편의 귀가를 기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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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군이 평생 친구로 여기고 있는 도호에게 전화 이야기를 했다. 전화를 받았을 때부터 상담하고 싶었는데 도호가 지난 토요일에 사법시험 1차를 쳤던 터라, 직접 만날 수 있는 오늘까지 기다렸었다. 몹시 걱정하며 주말에 바로 KTX를 타고 내려가야겠다고 했다. 그런데 나중에 공판장 앞에서 전화 연결이 된 B군은 멀쩡한 목소리로 나한테 전화한 적도 없다고 했단다. 내가 B군의 이야기를 하자마자, B군 일을 훨씬 더 잘 알고 있을 도호가 바짝 긴장하며 휴대폰을 꺼내들어 무척 불안했었는데, 차라리 기억하지 못할 만큼 취했었다면 되려 (아주 조금이지만) 안심이다.

2010년 3월 2일 화요일

2010년 3월 2일 화요일

개강일이었다. 지도교수님의 수업시간에 지적을 받는 꿈을 꾸고 깼다. 실제로 오늘 첫 수업이 지도교수님 시간이다. ;

어슬렁어슬렁 학교에 갔다. 첫날인데도 수업을 제대로 했다. 수강편람 변경 때문에 꼬인 시간표를 아직 해결하지 못한 상태라 걱정이다. 그러나 수업의 내용이나 교과과정과는 별개로 '공부하는 공간' 자체를 내가 무척 좋아한다는 사실은 새삼 느꼈다. 학교가 주는 긴장감은 역시 좋다.

2010년 3월 1일 월요일

2010년 3월 1일 월요일

흐리고 부슬비가 내렸다.

오전 내내 뒹굴뒹굴 하다가, 내일이 개강일인데 모처럼의 휴일을 이렇게 축 늘어져 보내면 후회하겠다 싶었다. 그래서 저녁에 동진님과 홍대 앞으로 놀러갔다. [행복카페 3번가] 제15권(완결)과 [파티] 4월호를 샀다. [판타스틱] 3월호가 나와 있어 들춰 보다가, 김상현 님의 인터뷰를 보고 한참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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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양문고 근처에 있는 일본라멘집에 가서 라멘을 먹었다. 원래 심스타파스에 갈 생각이었으나 따뜻한 국물이 어울리는 날씨다 싶어 무작정 들어가 보았는데, 무난하게 괜찮았다.



그리고 카카오봄에 갔으나 자리가 없어 바로 옆에 있는 가또 에 마미에 가서 초콜릿을 마셨다. 큰 탁자 앞에 나란히 앉아 책을 읽었다. [행복카페 3번가]는 무난하게 끝났고, 권교정의 신작 [셜록]이 실려 있어서 오랜만에 집어든 [파티]는 미묘한 느낌이었다. 어디서 본 듯한 학원물들이 많아서 그다지 볼거리가 없었다. 권교정의 신작은 기대되지만, 다른 연재작들과 대상 독자의 연령대가 좀 다른 것 같아서 걱정이다.

아홉 시쯤 귀가했다. 그새 다시 배가 고파져, 카카오봄에서 골라 온 '아프리카'와 다크 초콜릿 바크를 곁들여 홍차를 마셨다.

평화롭고 행복한 휴일이었다.


2010년 2월 28일 일요일

2010년 2월 28일 일요일

예전에 일했던 영어학원의 제자들이 집에 놀러 왔다. 며칠전이 내 생일이었다고 아이스크림케이크도 가지고 왔다. 피자를 시켜 먹고 후식으로 아이스크림 케이크를 먹었다. 사실 베스킨라빈스 한 달 불매에 동참하고 있지만 아이들이 일부러 챙겨온 선물이 기뻐 내색 않고 고맙게 받았다. 천사 모양 케이크였는데, 아이들은 열심히 먹어 가운데 굴을 파더라. 땅굴 완성에 성공하고 좋아하는 모습에, 어디서나 재미있게 놀거리를 찾을 수 있는 나이구나 싶어 귀여웠다.

다 먹고 나서는 내 노트북 앞에 둘러앉아 10대들 사이에 유행인 각종 카페에서 2PM 사태에 관한 정보며 소문을 찾아다녔다. 간담회 녹취록 mp3파일도 많이 듣고, 가수들의 클럽 놀이 사진 등도 잔뜩 보았다.

2010년 2월 27일 토요일

2010년 2월 27일 토요일

외할아버지 생신잔치 날이었다. 오전에 축하전화를 드렸다. 타이밍을 잘 맞추고 싶었는데 잘 안 된 것 같다.

2010년 2월 27일 토요일 : 뇌구조 테스트



'하교'가 있어서 웃었다. 테스트 주소는 위에 있음. 영문이 안 된다고 쓰여 있었지만 일단 Jay를 넣어 보았는데, 아예 아무 그림도 뜨지 않더라.

2010년 2월 26일 금요일

2010년 2월 26일 금요일

전날 늦게 잠들어 몹시 피곤했다. 억지로 억지로 일어났다.

학교의 국제교류 설명회 날이었는데, 센터 일이 늦게 끝나서 가지 못했다. 달리 자료를 배포해 주지 않았다고 한다. 혹시나 해서 어제 수진에게 못 가면 나중에 좀 물어보겠다고 부탁해 놓아 다행이었다.

센터에서는 캄보디아에서 오신 N씨와 처음 인사를 했다. 손솜보씨 돌잔치에서 뵌 적이 있는데, N씨는 나를 기억하지 못하는 것 같았다. 중학생 때 성악 개인레슨까지 받은 보람도 없이, 나는 노래를 정말 못 한다. 오늘 새삼 느꼈다. 그리고 1월에 들은 한국어교사양성과정이 확실히 도움이 되어 기뻤다.

밤에는 시어머니표 생일축하 스테이크와 빈대떡을 맛있게 먹었다.

2010년 2월 25일 목요일

2010년 2월 25일 목요일

부슬비가 왔다.

대학원 동기 수진을 티타임에 초대했는데, 집에 커피가 없는 것을 뒤늦게 깨달았다. 여의도역으로 가서 커피를 한 봉지 사며, 겸사겸사 조각케이크도 두 개 골랐다. 낮에는 이번에 공감에서 인턴을 한 수진과 커피+케이크로 티타임. 인턴 중에 혼자 로스쿨생이었다니 부담스러웠을 것 같다. 성소수자 쪽을 맡고 있는 장서연 변호사님과 함께 일했다고 한다. 사건에 관한 이야기도 들었는데, 실무에서 부딪히는 상황들은 역시 참 어렵겠구나 싶었다. 공익변호를 필요로 한다고 해서 모두 피해자는 아니다. 스스로 납득할 수 있는 선을 알아가는 과정도 참 힘들겠다는 생각을 했다. 내가 공감에 보냈던 밤양갱을 수진도 하나 먹었다고 해서 웃었다.

수다를 떨다 보니 시간이 금세 갔다. 생각치 않았던 속 깊은 이야기까지 해버렸(?)지만 편안하고 즐거웠다. 함께 집을 나서서 나는 홍대입구역으로 갔다. 문지문화원 겨울강의 마지막 날이었다. 배명훈 님이 오셔서 [타워]와 작품에 관한 이야기를 해 주셨다. 강좌가 끝난 후에는 다함께 카페 히비로 갔다. 커다란 테이블을 예약해 두었는데, 열한 명이 둘러 앉으니 꽉 차더라. 동진님도 퇴근길에 튤립을 한 송이 들고 왔다.

이번 강좌에는 내가 K사에서 번역하고 F지에도 실은 적이 있는, 공감각을 소재로 한 소설(만화)을 읽으셨다는 공감각인이 오셨다. 첫 강의 때, 수업이 끝난 후 와서 그 책을 읽은 공감각인이라고 말씀해 주셨었는데, 따로 여쭤볼 시간이 없어서 종강일인 오늘에야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공감각인들 한 명 한 명의 경험이 무척 다르다는데, 이 분은 마침 내가 번역한 책의 주인공과 같이 글자에 색이 보이는 공감각인이셔서 굉장히 신기했다. 이상하지 않았냐고 물었더니, "계속 다른 사람들도 다 그런 줄 알았어요."라고 하셨다. 어렸을 때 어머니께 "엄마, 나 친구 누구누구 이름 생각하면 이런이런 색이 떠오른다?"라고 한 적이 있는데, 어머니가 쏘쿨하게 "그래? 난 안 그런데." 라고 대답하고 넘기셨단다. 그래서 "아, 나 같은 사람들이 더 많지만 엄마는 안 그렇구나." 하고 납득하고(?) 살다가, 몇 년 전에야 공감각인이라는 사실을 확실히 알게 되어서 지금은 모 연구의 피실험자이기도 하단다. 한글 자모와 영문, 숫자 모두 색깔이 보이는데 숫자가 가장 선명하고,  컬러인 글자를 보면 그 색이 공감각의 색과 맞지 않는 경우에는 기분이 나빠진달까, 우울해진달까 하는 느낌이 들기도 한단다.

또 모 도서관 관장님도 "도서관 홍보하러" 오셔서 도서관에 관해 생각해 볼 거리를 많이 주셨다. 자신의 일을 확실히 알고, 애정과 책임감을 갖고 말할 수 있는 프로란 멋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정말 안 읽은 책이 없으신 듯.; 초 레어템인 [HAPPY SF]에 실렸던 [앨리스와의 티타임]까지 보셨다고 하셔서 깜짝 놀랐었다. 수강생 분들에게 종강 선물로 책갈피도 나누어 주셨다. 첫 번역서인 [노래하던 새들도 지금은 사라지고]를 감명 깊게 읽어 주신 분으로부터 종강 선물로 호두파이도 받았다. 그 외에도 이런저런 이야기를 많이 들어 즐겁고 뿌듯했다. 언제까지 사이에서 강의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봄 강좌도 개설되어 또다른 독자 분들과 만날 수 있다면 좋겠다.

집에 와서는 시어머니께서 생일이라고 보내 주신 스테이크 고기를 한 점 구워 먹었다. 굉장히 맛있었다! 후식으로는 남편이 생일 케이크 대신 준비한 PAUL의 레몬타르트를 나누어 먹었다.

멋진 생일이었다.

2010년 2월 25일 목요일 : 생일

스물일곱 살이 되었다.

스물여섯살에 나는 대학을 졸업하고, 대학원에 입학하고, 결혼을 했다. 좋아하는 것에 대해 다른 사람들 앞에서 말하기 시작했다. 여기저기에서 선생님이라는 말을 들었다. 신혼여행을 했다. 처음으로 1박 2일로 봉사활동을 갔고, 꽤 목돈을 저금하는 데 성공했다. 일본어를 할 수 있게 되었다. 생전 처음으로 아이돌 가수의 콘서트에 갔다. 생전 처음으로 절에 조문을 갔다. 지금까지 경험해 본 적 없는 지독한 슬럼프를 겪었다. 영원히 말로 표현할 수 없을 것 같은 행복을 느끼고, 존재를 압도하는 그 기쁨이 생활 구석구석으로 따뜻하게 퍼져나갈 때의 충만감을 경험했다. 십여년 만에 남이 짠 시간표대로 남이 정해준 자리에 앉아 남이 결정한 교수에게 배웠다. 그것만으로도 숨이 막혀 견딜 수가 없어서, 내가 지금까지 참 마음 내키는 것만 하고 살았음을 확실하게 깨달았다. 앞으로도 하고 싶은 일만 하고 살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진지하게 고민했다. 열두 번째 책을 냈다. 무심한 젊음이 어르신들에게 얼마나 잔인한 흉기가 될 수 있는지 막연하게나마 깨닫기 시작했다. 노화와 죽음과 쓸쓸함에 대해 많이 생각했다. 생각할 때마다 가슴이 아팠다. 시대정신과 무력함과 좌절감에 대해 생각했다. 이것도 생각할 때마다 가슴이 아팠다. 스물하나, 스물둘, 스물셋, 스물넷, 스물다섯살 때와 마찬가지로 아무래도 떨쳐낼 수 없는 허영과 오만을 인지했지만, 매년 그랬듯이 그런 나의 모습까지 긍정해도 괜찮다 싶었다. 할 수 있는 일을 할 수 있는 만큼씩 해나가면 된다고 믿었다. 그러나 할 수 있는데 하지 않은 일도 분명히 있었다. 여느 해보다 괴로운 일도 반성할 것도 많은 일 년 이었다. 그래도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은 여전히 마음에 들었다.

스물일곱살이 되기 삼십 분 정도 전에 귀가했다. 나는 지하철 역 에스컬레이터에 서서 2010년에는 제대로 살고 싶다고 절실히 생각했다. 썩 다정한 성격이 아닌 것이야 어쩔 수 없다 하더라도, 스물일곱 살에는 더 상냥한 젊은이라도 되고 싶다고 생각했다. 한 살 나이를 먹는 만큼 받은 것과 가진 것이 늘어만 간다. 나를 둘러싼 넓고 깊은 너그러움에, 목이 메었다.


 

2010년 2월 24일 수요일

2010년 2월 24일 수요일

새미가 생일 축하 저녁을 샀다. 서울대입구역 근처의 외래향에서 탕수육과 자장면을 먹었다. 식후에는 조용한 카페를 찾다가 2층에 있는 WILL이라는 곳에 들어갔는데, 옛날 다방 분위기인데다 흡연이라서 미묘했지만, 비교적 조용하긴 했다.

2010년 2월 22일 월요일

2010년 2월 22일 월요일

새벽에 [천장전대 고세이져] 제2화를 보았다. 대충 잘라붙인 듯 개연성 없는 줄거리와 듣는 사람이 민망한 대사는 여전했지만, 고세이 머신들의 전투 CG는 좋았다.

낮에 홍대입구 근처에서 아스님을 뵙고 신간을 드렸다. 한양문고에서 [어제 뭐 먹었어?] 3권을 산 다음 [Sandpark]라는 카페에서 커피와 토스트를 먹었다. 오래 전부터 읽고 싶었던 [규장각 각신들의 나날]을 빌렸는데, 무척 재미있어서 오며가며 지하철에서 다 읽었다. 

2010년 2월 21일 일요일

낮에 보영과 아우님을 초대해 파스타를 만들어 먹었다. 후식으로 대접하려고 크림치즈 파이를 미리 장만해 두었는데, 다들 맛있게 먹어서 기뻤다.

저녁은 승민오빠, 아우님과 [야오 램(Yao Lamb)]이라는 양고기 전문점에서 먹었다. 깔끔하고 친절하고 맛있는 곳이었다. 승민오빠에게서 생일선물로 다스베이더 레고 시계를 선물 받았다. 실로 오덕스런 아이템이라 마음에 쏙 들었다. 오랜만에 제대로 외식을 했더니 사진 정리가 귀찮다.

이렇게 일기를 쓰고 자려던 참에 군에 있는 동기 B군으로부터 갑작스런 전화를 받았다. 새벽 두 시였다. 마음이 진정되지 않는다. 별 일 아니라 나중에 제대하면 너 나한테 (아마 취해서) 그런 전화도 했었노라고 웃으면서 말할 수 있다면 좋겠는데, 그렇게 가볍게 넘길 수 있는 상황이 아닌 것 같아 슬프고 불안하다. 나는 제대로 답한 것일까. "어떻게 하지?"하고 허둥거리는 대신, "그런 건 우편으로 못 보내.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뭐야?"하고 되묻는 대신, "맛있는 밥 사주고 얘기 들어줄 수는 있지."하고 솔직하게 답하는 대신 알겠다고, 신선한 피든 뭐든 보내겠다고, 버티고 있다가 올라오기만 하면 (뭔지 몰라도) 다 해결해 주겠다고 자신만만하게 말하는 편이 나았을까. 곁에 있는 사람에게조차도, 나는 이렇게 무력하다. 제발, 오늘의 전화 한 통을 후회하는 날이 오지 않기를. '나는 도저히 여기에서 더 버틸 수가 없어, 어떻게 해야 할지 여러가지로 생각해 보고 있다'는 B군의 제대는 아직 20개월이나 남았다. 나는 정말 아무 것도 할 수 없을까?

2010년 2월 19일 금요일

2010년 2월 19일 금요일

컨디션 악화로 오전에 센터에 가지 못했다. 어머니께서 오셔서 순두부찌개를 끓여 주셨다. 월남쌈 재료도 장만해 주시고 냉장고에서 키우던 수상한 생물체들도 처리해 주셨다. 한 끼 제대로 먹고 나니 한결 살 것 같았다. K사 증정본이 왔다.

저녁에는 작년 공감 인권법 캠프 같은 조 사람들과 함께 삼계탕을 먹었다. 정범오빠, 규연, 선희언니, 준연씨가 왔고, 공감에서 인턴을 하고 있다는 명희는 일이 늦게 끝나 2차에 합류했다. 명희가 인턴을 하고 있는 줄도 몰랐는데, 수요일의 토론회 자리에 있었다고 해서 깜짝 놀랐다. 미리 알았으면 인사라도 했을 텐데, 아쉬웠다.

피로가 다 풀리지 않은 탓인지, 2차로 간 주점이 너무 시끄러워서였는지 머리가 멍해져서 먼저 일어났다. 남편이 데리러 와 주었다.

나에 관한 헛소문을 다시 들었다. 누군가 중간에서 단단히 착각한 모양이다.

2010년 2월 18일 목요일

2010년 2월 11일 목요일

피곤하다. (철푸덕)

낮에 냉동실 문을 열다가 블루베리를 쏟아서 어쩔 수 없이 씻었다. 다시 얼리기도 뭣해서 블루베리 식빵을 만들었다. 그런데 딱 다 되자마자 나가야 할 시간이 되어서 한 입만 뜯어먹고 문지문화원에 갔다.

아주 맛있게 잘 구워졌었는데, 집에 돌아와 보니 제때 틀에서 꺼내지 않고 나가서 폭삭 주저앉아 있었다. 그래도 배고파서 녹차와 함께 먹었다.

2010년 2월 17일 수요일

2010년 2월 17일 수요일 : [토론회] 문제는 다시 국제결혼 중개업이다

인권위 배움터에서 열린 국제결혼중개업법 관련 토론회에 다녀왔다. 대표님도 참석하셨지만, 따로 가서 현장에서 뵈었다. 대표님은 요전에 4대강사업 반대 기도회에 갔다가 발목을 다치셨는데, 날이 춥고 연세가 있으신 탓에 잘 낫지 않아 몇 달이 지난 지금까지도 거동이 불편하시다. 그래서 함께 다니면 일행에게 민폐라고 일부러 따로 다니신다.


매우 도움이 되는 자리였다. 캄보디아의 국제결혼중개업에 관한 김정선•김재원의 보고서를 중심으로 우리나라 결혼중개업법의 문제점을 진단하고, 국제결혼중개업 자체가 갖는 인신매매성을 비판적으로 논의했다.


주권국가들 사이에서 초국적 문제인 국제결혼중개가 갖는, 어떻게 규정하더라도 피할 수 없는 한계에 대해서 구체적인 사례를 통해 다시 고민해 볼 수 있었던 점이 좋았다. 국제결혼중개 자체가 인신매매로 금지되는 것이 바람직할지도 모른다는 지적은 처음 접한 관점이었다. 경청하고 고민해 볼 만한 부분이라고 생각했다.


다양한 기관의 활동가들이 참석했는데, 들으면서 현장에서 일하는 사람들 중에서 법적 관점을 가진 사람이 정말 적다는 것을 거듭 느꼈다. 실제로 입법을 위해 노력한 유경선 보좌관이 참 답답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양현아 교수는 법을 어떻게 제정하든 그것이 집행되는 순간은 결국 개별구체적인 사건이 발생했을 때이므로 개별피해자들의 소송제기를 통한 해결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내용상으로는 옳은 말이지만 Roe v. Wade 판례가 떠올라서 입맛이 썼다.


(Roe v. Wade 사건은 낙태금지법으로 인한 자기결정권과 생명권 충돌이 문제된 사안이었다. 이 판결로 임신 6개월까지는 여성이 낙태를 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성폭행으로 임신해서 낙태를 원해 소송을 제기했던 Roe는 재판이 계속되는 동안 원고적격을 유지하기 위해 낙태를 할 수 없었다. 판례법국가인 미국에서 이 대법원 판결은 여성의 자기결정권과 생명권에 관한 폭넓은 토론의 기회였고 자기결정권의 의미를 새롭게 규정한 계기였으며 이후 여성의 권익 전반에까지 영향을 미쳤다.


그러나 Roe는 소송 때문에 낙태 가능 시점을 넘겨 결국 강간범의 아이를 출산해야 했다. Roe는 미국 재판에서 관행적으로 사용되는 가명이다. 원래 무신론자였던 이 소송의 Roe는 이후 독실한 종교인이자 낙태반대운동가가 되었다. 공익소송의 이면에 결국 가장 원한 것을 얻지 못한 Roe들이 살고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면, 몹시 슬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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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론회] 문제는 다시 국제결혼 중개업이다!
인권의 관점에서 본 <결혼중개업의 관리에 관한 법률>

 

본 토론회는 캄보디아 국제결혼 중개실태를 통해 <결혼중개업의 관리에 관한 법률>의 시행 이후에도 여전히 발생하고 있는 심각한 인권침해 사례와 중개업의 문제점을 검토하고자 합니다.


나아가 불법적인 결혼중개에 의한 피해를 예방, 보호하고 결혼당사자들의 권리를 보장하기 위한 <결혼 중개업의 관리에 관한 법률> 개정 및 <인신매매 방지법> 제정 방향에 대한 다각적인 논의를 통해, 결혼 당사자들의 인권을 증진시킬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하고자 합니다.

 

◎ 일시: 2010년 2월 17일 수요일 늦은 3시~6시
◎ 장소: 국가인권위원회 배움터
◎ 주최: 이주여성인권포럼, 유엔인권정책센터, 국가인권위원회

 

◎ 사회: 김영옥(이주여성인권포럼 대표)

 

제1부 발표 및 토론
[발표]
1. "결혼 중개업의 관리에 관한 법률, 의미 없지만 유효한 법: 캄보디아 국제결혼 중개실태를 중심으로"
  -김정선(이화여대 여성학과)


2. "결혼중개업의 관리에 관한 법률과 인신매매방지법"
  -유경선(민주당 김춘진 의원실)

 

[토론]
김현미(연세대학교 문화인류학과), 양현아(서울대학교 법대), 소라미(공익변호사그룹 공감), 이성훈(국가인권위원회 정책교육국), 김민정(이주민센터 아시아의 창)

 

휴식(16:50~17:00)

 

제2부 질의 및 전체토론(17:00~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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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2월 15일 월요일

2010년 2월 14일 일요일 : 천장전대 고세이져 제1화



2010년 수퍼전대, [천장전대 고세이져(天装戦隊 ゴセイジヤー)]가 일요일에 드디어 시작되었다. 첫화의 제목은 [Epic 1. 천장전대 강림] 이었다.

별 기대 없이 틀었는데도 아이캣치 장면까지 겨우 보고 나니 절로 한숨이 나왔다.

1. 배우들의 연기력이 형편없다.

이는 [신켄쟈] 초기에도 문제로 지적됐던 부분이고, 특촬물이 대체로 신인 배우를 기용하다보니 어쩔 수 없는 면이기도 하다. 그러나 신켄쟈에는 히코마 영감과 같은 경험이 풍부한 배우들이 함께 출연했고, 신켄블루(이케나미 류노스케)역을 맡았던 아이바 히로키 등 멤버들도 어느 정도 연기 경력이 있는 사람들이었다. 제일 경험이 없었던 신켄 레드(시바 타케루) 역의 마츠자카 토오리는 역할 자체가 '딱딱하게 말하는 주군'이라는 설정이었기 때문에 봐 줄 만 했다.

그런데 [고세이쟈]는 보는 사람이 부끄러워질 정도이다. 고세이레드는 심지어 소속사에 들어간지도 몇 달 안 된 초짜로, [고세이쟈] 리허설이 처음 나가 본 자리였다고 한다. [가면라이더 디케이드], [사무라이전대 신켄쟈]처럼 중장년 배우와 함께하면 연기가 좀 자연스러워질텐데, 제1화에 등장하는 주요 조연은 대사 줄줄 읽기에 있어서 주인공들에 비해 하나도 나을 바가 없는 초딩(유딩?)꼬꼬마다. 설마 앞으로도 중장년 서브캐릭터 없이 죽 가는 걸까? 사실 이 부분은 딱히 배우들의 문제라기보다는, 연기를 커버해 줄 만한 설정이나 조연이 없는 구성상의 문제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2. 식상한 무기, 식상한 수트

그나마 호의적으로 봐서 '전대의 정도'라고 평하는 글도 봤지만, 그냥 식상할 뿐이다. 쇼와 시대로 돌아간 것 같은 느낌이다. 어떻게 나오는 모든 것이 이렇게까지 '어디서 본 듯한 느낌'일 수 있담.
자그마치 120장 이상의 변신 카드에 대응하는 무기 또한 판매 포인트가 지나치게 노골적으로 보여서 재미 없다.

3. 평범한 설정과 심심한 액션
 
기본적으로 카드변신 전대는 액션의 긴장감이 떨어질 수 밖에 없기 때문에 (카드를 한 번 바꿔 쓸 때마다 카드 클로즈업/설명이 필요한데, 멤버가 5인 이상이기 때문에 여기에 시간이 꽤 소모된다) 어지간히 잘 만들지 않으면 싸움이 축 늘어진다. 그런데 별로 잘 만들지도 않았다. 액션 장면들을 정말 안이하게 찍은 느낌이다. 창작자라면 조금 더 긴장감을 가지고 제대로 상상력을 발휘해 보란 말이닷!


 [신켄져]의 설정이나 액션이 너무나 훌륭했다 보니 후속작이라 깎이는 점수도 있겠지만, 1999년 [구급전대 고고파이브]이후 지난 10년 동안의 전대물을 죽 되짚어 보아도 역시 실망스런 제1화였다. 정~말로 기대치를 낮게 잡고 보기 시작했는데도 이렇다니, 특촬덕은 그저 슬퍼서 눈물이.......

그저 골든위크 개봉설이 돌고 있는 [가면라이더 덴오] 신작 영화나 기다려야겠다.


[고세이져]에서 가장 나은 부분은 엔딩곡. 오프닝도 나쁘지 않은데, 본편 자체에 너무 실망해서 오프닝이 좋다는 생각이 안 든다.


훌륭한 엔딩곡을 듣고 있자니 지금까지 본 수백편의 특촬물이 떠오르며 올해의 내 신세에 눙물이....ㅠㅠ

덤으로 내가 지금까지 본 특촬 엔딩 중에 가장 좋아하는 [특수전대 데카렌져]. 본편도 잘 만든 좋은 전대였지만, 특히 힘을 준 엔딩이 정말 좋았다. 스킵하지 않고 늘 끝까지 보았다. 이걸 보면 [고세이져]의 캐릭터 설정이 얼마나 안이한지도 느낄 수 있다.

데카렌쟈 엔딩(자막있음)



2010년 2월 14일 일요일

2010년 2월 13일 토요일 - 14일 일요일 : 설날

설이었다. 토요일에 시댁에서 저녁을 먹고 하루 묵었다. 일요일 점심 즈음에 친정에 들러 세배를 했다. 조부모님 댁에도 가서 세배를 드린 후 귀가길에 카카오봄에 들러 핫초콜릿을 한 잔 마셨다.

경인년,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2010년 2월 9일 화요일

2010년 2월 8일 월요일

OK교까지 확인하고 싶다고 말했었기 때문에 일요일에는 원고를 보았다. 낮에 시작했는데 생각보다 속도가 더뎌서 월요일 새벽 네 시 즈음에야 잠자리에 들었다. 더 무서운 점은 담당 편집자도 그 시간까지 깨어서 OK교를 보고 있었다는 것......[작은책]에서 보았던 '출판노동자'라는 표현이 실감나는 새벽이었다.

오전 9시 즈음에 편집부에서 연락이 와서 몇 가지 확인한 다음, K사 원고를 완전히 마감했다.

오후에는 엉망진창으로 일이 꼬였다. 얼마 전에 산 귀여운 귀마개도 잃어버렸다. 따지고 보면 내 탓인데도 왠지 학교에 갔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몹쓸 정신머리다.

그렇지만 밤에는 마음 먹었던 일을 해서 기분이 조금 나아졌다. 늦은 저녁식사로는 동진님이 인도에서 가져온 팔락 파니르를 먹었는데, 요전에 먹었던 달 부카라에 비해 짠맛이 강했다.

2010년 2월 7일 일요일

2010년 2월 7일 일요일 : 어머니 생신

어머니 생신이었다. 토요일 밤에 아버지 차를 타고 친정에 가서, 딸기를 맛있게 먹고 부모님, 동생과 앉아 수다를 떨었다. 너른 거실을 놓아 두고 동생 방에 옹기종기 모여서 이야기하다보니 자정이 금세 지났다. 자야지 자야지 하면서도 이야기는 끊기지 않아, 결국 어머니와 나는 새벽 세 시가 넘어서 잠들었다.

일요일에는 느지막이 일어났다. 동생이 [맨 오브 라만차] 씨디를 듣겠다고 앉았는데 어머니가 딸기우유 마시겠냐고 물어보신다. 좋다고 하자 아우님에게 "아까 딸기우유 언니한테도 만들어 줘~"라고 하셔서 깜짝 놀라, 일부러 일어나서 만들 필요 없다고 얼른 말했다. 그러자 아우님이 아주 다정한 목소리로 "아냐. 해 줄거야. 언니 왔으니까 잘해줄 거야."라고 말하며 일어서다가, 아우님 침대와 알레르망 이불(촉감 짱좋다)을 차지하고 뒹굴고 있는 나를 보며 "수면양말 줄까?" 란다. 오전 열 시 반인데......이런 언니라서 미안해. Orz 양말은 수줍게 사양하고 딸기 우유는 맛있게 마셨다.

열한 시에 동진님이 어머니 생신 케이크를 들고 왔다. 주인공인 어머니표 생일상에 둘러앉아 점심을 배불리 먹고 케이크도 잘랐다.

집에 돌아와서는 원고를 보다가, 저녁을 먹으러 나갔다. 전션과 합정역 근처에서 만나, 요전에 동진님과 갔던 프렌치 레스토랑 [쉐 프룬]에서 스튜와 돼지고기 안심 스테이크를 먹었다.


2010년 2월 7일 일요일 : 사무라이전대 신켄져 종영

2009년의 수퍼전대, 사무라이전대 신켄쟈가 끝났다.

훌륭한 일 년 이었다.........ㅠ_ㅠ

신켄쟈가 끝나자마자 바로 고세이쟈 예고가 시작했다. 아니, 일 년 내내 사람들을 지키기 위해 만신창이가 되어 가며 싸웠는데, 이렇게 순식간에 잊어버리고 '별을 지키는 것은 천사의 사명' 운운할 수 있는 거냐!


처음 만들어 본 조각영상!

2010년 2월 5일 금요일

2010년 2월 5일 금요일

낮에는 오랜만에 센터에 갔다. 다음주부터 다시 수업에 들어간다. 양성과정을 끝냈기 때문인지 몰라도 국어 수업을 한다. 긴장된다. 늦은 점심으로는 동진님이 인도에서 사 온 커리와 또띠아를 먹었다. 그런 다음 피곤해져 잠시 누웠는데, 곤히 잠들어 버려 지정사에 나가지 못했다. 이상한 시각에 잠들어서 머리가 몹시 아팠다. 밤에 시어머니에게서 공부 하라는 전화가 와서-_- 깼으나, 두통약은 없고 통증은 더 심해져서 울면서 괴로워했다. 지정사에 평소에 자주 오지 않던 분들도 참석하셨다는 소식을 들으니 서럽기도 했다.

신켄져 첫 변신

이쯤에서 다시 보는 신켄쟈 1화의 첫 변신 신. 이 장면을 보고 감동했던 것이 엊그제 같은데 이제 모레면 2009년 수퍼전대, 사무라이전대 신켄져가 끝난다. ㅠㅠ

보우켄쟈 스타트업 장면만 모은 동영상이 틀림없이 있으리라고 생각해서 유튜브를 계속 뒤졌는데 안 나온다. 모든 멤버가 있는 기본 변신 장면은 금세 찾았는데, 개성 있는 스타트업 편집 영상이 있으리라고 생각했건만.....총알에 대고 변신하는 제34화의 블랙 변신이나, 땅에 대고 변신하는 제31화 핑크의 변신, 액션 중에 칼에 대고 변신하는 제15화 레드 변신 등등을 모은 영상이 없다니......보고 싶을 때마다 보려면 직접 만들어야 하는 건가?

http://www.youtube.com/watch?v=Vc83v-bRhSc

아아, 일본에서는 지금 [신켄쟈 vs 고온쟈] 영화 상영이 한창이겠지. 주군에게 상당히 무게가 실린 작품인데다 신켄쟈 멤버들이 고온쟈 노래에 맞추어 춤도 춘다고 한다.

2010년 2월 4일 목요일

2010년 2월 4일 목요일 : 외국인한국어교사양성과정 수료


즐거웠다.

 

덤으로 개인모의수업 키노트. 서울대학교 한국어 2 (초급)에 나오는 문법 'V~(으)려면 S' 이다. (클릭하면 다음 장으로 넘어감)

2010년 2월 2일 화요일

2010년 2월 2일 화요일

한국어교사양성과정 종합시험일이었다. 오전 수업이 없는 날이라 수미언니와 점심을 먹기로 했는데, 알람을 세 개나 맞춰 놓았는데도 늦잠을 자고 말았다. 눈 떠 보니 이미 열 시 반, 허겁지겁 언니에게 문자부터 보냈다. 약속이 몇 시간 전에 갑자기 취소되면 정말 싫은데......폐를 끼쳐서 죄송했다.

종합시험은 무난하게 쳤다. 이제 목요일이면 양성과정도 끝이다. 배우기도 많이 배웠고, 오랜만에 경쟁은 없고 열정과 사명감이 가득한 공간에서 배움의 즐거움을 만끽한 것이 무엇보다도 기분전환이 되었다. 한 달 내내 바빴지만 오히려 푹 쉰 기분이다. 내가 무엇에 스트레스를 받고 있었는지,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도 조금 더 알 수 있었다.   

금요일에는 다시 센터에 나가고, 저녁에 차선생님 병문안을 갈지도 모른다. 원래 오늘 갈 예정이었으나, 아직 중환자실에 계셔서 면회가 안 된다는 소식에 금요일로 일단 일정이 밀렸다.   

2010년 2월 1일 월요일

2010년 2월 1일 월요일

종일 징징거리고 밤 다 되어서 반성하는 의미에서 애송시 한 편.



황인숙

당신이 얼마나 외로운지, 얼마나 괴로운지
미쳐버리고 싶은지 미쳐지지 않는지
나한테 토로하지 말라
심장의 벌레에 대해 옷장의 나방에 대해
찬장의 거미줄에 대해 터지는 복장에 대해
나한테 침도 피도 튀기지 말라
인생의 어깃장에 대해 저미는 애간장에 대해
빠개질 것 같은 머리에 대해 치사함에 대해
웃겼고, 웃기고, 웃길 몰골에 대해
차라리 강에 가서 말하라
당신이 직접
강에 가서 말하란 말이다

강가에서는 우리
눈도 마주치지 말자

2010년 1월 31일 일요일

2010년 1월 31일 일요일

길었던 학부과정을 마치고 서울로 귀향한 용진군이 오후에 놀러 왔다. 딱 내 한국어교사양성과정이 끝나는 2월 4일부터 출근한다고 해서 주말에 만났다. 멀리 와 준 것도 고마운데 착실하게 딸기쨈 롤케익도 가져 왔더라. 동진님 표 커피와 함께 먹었다. 저녁은 도미노피자. 전단지에 혹해 하나당 428kcal을 자랑하는 도미노피자 베이크 롤을 주문해 봤다. 고칼로리의 기운이 마구마구 느껴졌다. 피자에 베이크롤까지 먹었더니 배가 너무 불러서 나중에는 머리가 아팠다.

밤에는 동진님과 [사무라이 전대 신켄져]를 보았다. 다음주면 신켄져 완결, 발렌타인 데이부터 [천장전대 고세이쟈]가 시작된다. 2010년의 [가면라이더 더블]을 안 보고 있기 때문에, 수퍼전대라도 열린 마음으로 볼 작정이었다. 그런데 전대미문에 올라온 1~3화 다이제스트를 봤더니, 글쎄, 제1화에서 레드가 변신 카드를 잃어버려 변신조차 못 한다고 한다!! 나는 레드는 역시 카리스마!라고 생각하고 있다. 그렇잖아도 이번 [고세이쟈]는 블랙과 옐로가 남매지간이라는 설정 때문에 심심한데 (남매지간이면 러브라인이 하나 줄어든단 말이닷) 덜렁덜렁 레드라니, 후.......[사무라이 전대 신켄져] 같은 걸작 다음 전대이니 어떤 것이라도 아쉽게 느껴지긴 하겠지만, 그렇다 해도 역시 시청자의 의욕을 한 풀 꺾는 설정이다. 그래도 일단은 열린 마음, 열린 마음으로, 올해도 러브라인에 주목해 보려고 한다.

어제 [신켄쟈 vs 고온쟈] 영화가 일본에서 개봉했다. 보러 가고 싶다.


2010년 1월 30일 토요일

2010년 1월 30일 토요일

오랜만에 한가한 하루였다. 다음날까지 급히 해야 할 일도, 마감도, 다음날 아침 일찍부터 해야 할 일도 없으니 기분이 이상했다. 전날 피곤해서 귀가하자마자 쓰러져 잤던 터라 오전 7시 30분에 일어났다. 하루가 꽤 길었다.

2010년 1월 26일 화요일

2010년 1월 26일 화요일

오늘은 국립국악원에서 사물놀이와 민요를 배우는 날이었다. 오전에 국립국악원에 갔다가, 오후에 언어교육원으로 가서 한국어교육과정론과 한국어 문법교육론 수업을 하는 일정이었다.

숨 쉴 자리도 없어 힘들었던 9호선인데, 오늘은 어째 금세 앉을 수 있었다. 멀리 가야 해서 걱정이었는데 운이 좋았다. 국립국악원 국악연수관의 커다란 방 같은 강의실에 같은 조 임선생님, 차선생님과 자리를 잡고 앉았다. 북, 장구 등이 많이 쌓여 있었다. 10시 50분까지 사물놀이 장단을 익히고, 외국인 학생들에게 한국 전통 음악을 어떻게 설명하는지를 강사님에게 배운 다음 북과 장구 중 쳐 보고 싶은 악기를 직접 골라 장단을 맞추어 보았다. 차선생님은 장구를 집어들어 죄며 동사무소 문화센터에서 좀 배웠다고 하셨다. 수업에 활용할 생각으로 비디오카메라나 사진기를 가지고 온 선생님들도 계셨다. 덜렁덜렁 빈 손으로 왔던 나는 쉬는 시간에 임선생님과 사진을 찍고, 임선생님, 차선생님, 마침 내 앞에 앉았던 다른 조 선생님 세 분의 사진을 두 장 찍어 드렸다.

민요 시간에는 선생님의 소리를 들으며 각 장단의 흐름을 익히고 '진도 아리랑'을 직접 끝까지 불렀다. 내 앞에 앉아 계시던 차선생님이 안 보여서 뒤를 보니 맨 뒤에 앉아 계셨다. '피곤하신가?'생각하며 수업을 마저 듣고, 끝나자마자 화장실에 가려고 서둘러 교실을 나섰다. 임선생님 차를 얻어 타고 언어교육원에 가기로 했는데, 밖에서 기다려도 임선생님이 나오시지 않아서 전화를 했다. 임선생님이 차선생님이 조금 편찮으셔서 병원에 모시고 가야 할 것 같으니 함께 못 가겠다고 하셨다. 나는 어쩐 일일까, 생각하며 역시 임선생님 차를 타기로 했던 최선생님과 다른 분 차를 얻어타고 학교에 왔다.

식사를 끝내고 교실에 들어가니 분위기가 이상했다. 편찮으시다던 차선생님이 뇌출혈로 구급차에 실려 가셨다는 것이다. 뇌출혈은 당사자도 바로 눈치 채지 못할 수도 있다고 한다. 맨 뒤에 가만히 앉아 계시니 다들 피곤하신줄로만 생각했다가, 수업이 끝나고 이제 일어나 가시자고 흔드니 이미 몸에 마비가 와서 말씀을 못 하시는 상태였다. 사모님께 연락이 가고, 양성과정 선생님 두 분이 구급차를 타고 병원까지 함께 가셨다.

같은 조인 차선생님은 이순의 연세로 이번 양성과정의 최연장자이시다. 젊어서는 종합상사에서 해외파견 관련 일을 하셨던 분이다. 뉴욕에서 여러 해를 살았으나 IMF로 한국 회사들이 해외사업 규모를 줄이면서 직장을 그만두게 되었다. 그 뒤로 점점 더 작은 회사로 옮기면서 직장생활을 계속하셨지만, 이제는 퇴직해서 돈보다는 주재원 경험을 살린 보람 있는 일을 하고 싶어서 양성과정에 왔다고 말씀하셨었다. 해외 파견 근무로 인해 직장 안에서는 손해를 보기도 했지만 외국에 살면서 한국을 알리고, 귀국해서는 한국인들이 해외에서 활동하는 일을 후방에서 지원하며 자부심을 느꼈기 때문이라셨다. 해외 거주 경험이 아이들에게는 도움이 되어, 자제분들이 좋은 대학을 졸업하고 번듯한 사회인으로 자란 것을 자랑스러워 하셨다. 

병원에 가신 분들에게서 간간히 연락이 왔다. 병원에는 갔으나, 수술을 끝내자마자 중환자실로 옮겨야 하는 상황인데 중환자실에 자리가 나지 않아 오후 세 시가 넘었는데도 아직 수술실에 들어가지도 못하고 있다고 했다. 교회를 다니는 분들은 쉬는 시간에 기도를 했다.

수업은 조금 지연되었지만 정상적으로 진행되었다. 97년부터 한국어 강사를 해 온 교수님은 귀한 경험을 자세히 말씀해 주셨다. 나는 간담회에서 다른 사람들보다 긴, 그러나 육십 평생의 시간에 비하면 짧은 소개를 하셨던 차선생님, 익숙하지 않은 파워포인트로 모의수업 준비를 열심히 해 왔지만 지적을 많이 받고 "뉴욕까지 갔다 왔는데도 사투리는 안 고쳐지네요." 하고 머쓱하게 웃던 차선생님, 식당으로 걸어가며 "내가 잘 못해서......답답했죠?"하고 말을 건네던 차선생님, 쓰러지시기 한 시간 전까지 함께 이야기하던 차선생님을 생각하며, 떠올리지 않으려고 하며, 혹은 최대한 구체적으로 기억하려고 하며 앉아 있었다.

귀가길에는 지하철을 반대로 탔다. 정신을 차리니 방배역이었다. 나는 20대이다. 20대라는 나이는 얼마나 가벼운가. 젊음은 그 자체만으로도 얼마나 자연스럽게 오만한 것인가. 나는 반성도 괴로움도 답답함도 안타까움도 아닌, 그 한가운데의 어디쯤에서 허덕이며, 그저 무척 슬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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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일 추가: 26일 저녁에 수술을 하셨는데 다행히 경과는 좋은 편이란다. 더 지켜보아야하지만, 일단 사람을 알아 보시고, 조금씩 말도 하려고 하신다고 한다.

2010년 1월 24일 일요일

2010년 1월 24일 일요일

오전에는 걸레질을 하고 유리를 닦았다. 교정지를 보아야 했으나 의욕을 계속 상실한 상태라 청소만 열심히 했다. 내일 아침까지 먹을 생각으로 머핀을 구웠는데, 새로운 간단 레서피를 보고 했더니 맛이 별로 없어서 낙담했다.

낮에 개인지도를 하는 장영 씨가 집에 왔다. 원래 주중에 학교에서 만날 계획이었지만 장영 씨가 친구와 여행을 갈 기회가 생겨 이번 주 평일은 어렵다고 해서, 주말로 시간을 옮겼었다. 정정훈 변호사님의 인종주의에 관한 칼럼을 텍스트로 골랐던 터라 국적법 등에 관해 이야기했다. 중국은 속인주의이지만, 양친 중 한쪽이 중국인일 뿐만 아니라 중국에서 태어나야 중국 국적을 받을 수 있다고 한다. 또한 이중국적을 원천적으로 허용하지 않는다. 예를 들어 중국 남자와 한국 여자가 결혼해서 한국에서 아이를 낳으면 한국 국적법에 의해 한국인이 되는데, 그러면 이 아이는 아버지가 중국인이어도 중국 국적을 가질 수 없고, 중국국적을 취득하고 싶다면 귀화신청을 해야 한다. 과잉인구 문제로 국적을 잘 주지 않아 귀화 신청이 인정되는 경우도 거의 없다고 들었단다. 또 중국은 인구가 많다 보니 국외로부터의 결혼이민의 문제는 거의 없고, 도시에 결혼적령기 여성이 부족해 도시의 남성과 농촌 지역의 여성이 결혼하는 경우는 있다고 한다.

대학원에서 쓰이는 한국식 법률용어나 표현을 어려워하는 것 같아 다음 시간에는 내 지난학기 법문장론 교재를 함께 보고, 한국의 판례와 평석을 읽어 보기로 했다. 조금 변칙적인 어휘 수업이 된 것 같지만 지금 수준으로 의사를 표현할 수 있는 사람에게 한국어 문법을 다시 설명할 필요는 없을 터고, 발음은 내가 어설프게 건드릴 부분이 아니다. (개인지도 시간에는 발음 교정은 자제하도록 되어 있다.)

한국에 유학을 왔는데 수업 시간에 막상 한국법에 관해서는 거의 배우지 않아서 한국의 교과서도 본 적이 없다는 이야기는 좀 놀라웠다. 또 현재 한국의 법학전문대학원에 외국인의 입학이 금지되어 있는 줄도 이제야 알았다. 특히 장영 씨처럼 어린 나이에 이미 중국에서 사법고시를 합격했고 변호사로 일할 생각이 확고한 사람에게는 한국의 일반대학원보다 전문대학원 과정이 유학 온 학생에게나, 유학생을 받아들여 전문가를 양성하려는 학교에게나 훨씬 도움이 될 것 같은데.

저녁에는 밥을 지어 먹었다.

밤: 내일 문법 시험 예습은 다 했다. 수업참관 보고서와 개인지도 보고서를 썼다. [미래경] 원고는 잘 풀리지 않아서 진전이 거의 없다. 이것도 이제 정말 걱정이네. 교정지는 내일 밤에 보아야겠다. [입적]때문에 속상한 마음이 아직도 가시지 않는다. 책을 볼 때마다 생각이 나서 괴롭다. -_ㅠ

2010년 1월 23일 토요일

2010년 1월 23일 토요일

아우님의 생일이지만 만나지 못했다.

저녁에 화장실 청소를 했다. 저녁으로는 훈제오리고기와 각종 채소를 넣은 파스타를 만들어 먹었다. 밤에 교정지를 꼭 보아야 했으나, 의욕을 상실해서 보지 못했다.

2010년 1월 22일 금요일

2010년 1월 22일 금요일

너무 피곤해서 정신이 없었다. 귀가길에 이대로는 큰일나겠다는 생각이 들어 빵굼터에서 빵을 사서 집에 도착하자마자 와구와구 먹고, 빵힘으로 세탁기를 돌려 놓고 쓰러져 잠들었다. 그런데 어중간한 시각에 깨서 밤낮이 조금 바뀌고 말았다.

2010년 1월 21일 목요일

2010년 1월 21일 목요일

가장 긴장되는, 개인 1차 모의수업일이었다. 계속 바빴던 터라 몹시 피곤했기 때문에 수요일에는 귀가하자마자 일단 한 숨 잤다. 그리고 일어나서 교안을 다시 만들었다. 톡 튀는 부분이 있었으면 싶은데 좋은 아이디어는 떠오르지 않아 문법 제시와 연습 부분의 키노트만 일단 열심히 만들며 괴로워하다가, 자정 쯤에 메신저에 들어온 초천재 아우님에게 SOS를 쳤다. 내가 가르쳐야 하는 내용과 한국어 교재에 있는 예문 몇 가지를 설명하자 놀랍게도 멋진 제안을 쏟아낸다! 아우님의 얘기를 들으니 수업 후반부를 어떻게 진행해야 할지 알 수 있었다. 관련된 교구제작 링크와 파일도 바로 보내 주어서 한국어에 맞게 편집해서 완성했다. 아우님은 굉장하다. 현명하고 너그러우며, 열의와 재능이 있는 선생님이다. 직업인으로서 존경하고 있다. 아우님이 가진 장점은 소박해 보이기도 하는 것이어서, 예전에는 내 눈에는 저렇게 환히 빛나는 아우님의 장점을 사람들이 한 눈에 알아보지 못해 속상할 때도 있었다. 그러나 20대 중반에 접어들자 주위에서도 깨닫기 시작하는 것 같다. 아우님처럼 겸손한 성격이 못 되는 나는 속으로 거 보라며 우쭐거리고 있다.

그리하여 다 만들고 나니 새벽 6시. 화요일에 수업참관을 했던 덕분에 오전에는 수업이 없었다. 한 숨 자고 학교에 가서 정규수업을 들은 후 모의수업 발표를 했다. 프로젝터와 노트북을 연결하지 못해서 생각했던 대로 진행하지는 못했지만, 좋은 조언을 많이 들었고 다음 모의수업 시간에 어떻게 해야할 지 알 수 있었다. 담당 선생님이 아우님이 권한 대로 만든 교구를 보고 수업 시간에 쓰고 싶으니 나중에 파일을 보내 달라고 하셔서 뿌듯했다.

저녁에는 문지문화원에 갔다. 내가 특히 좋아하는 [젠더] 시간이었다. 날씨가 추운데도 많이들 출석해 주셔서 놀랍기도 하고 고맙기도 하다.

밤에는 너무 피곤해서 기절하듯 잠들었다.

2010년 1월 19일 화요일

2010년 1월 19일 화요일

수업참관일이었다. 정장을 입고 머리를 넘겨 올린 다음, 어그부츠를 신고 구두는 따로 넣어 갔다. 이번에 참관한 수업은 총 6급 중 중급 정도에 해당하는 3급 반이었다. 학생 열두 명 교실에 참관교사 두 명이 들어갔다. 자신의 수업을 다른 사람이 와서 몇 시간 동안 지켜보고 있다면 꽤 부담스러울텐데도 교실을 공개해 주셔서 감사했다. 개인발표 지도안에 수업을 어떻게 진행하려고 하는지가 보이지 않는다는 지적을 두 번이나 받았었다. 실제 수업을 보니 그 말씀을 잘 이해할 수 있었다. 내가 맡은 부분은 초급에 나오는 한국어의 'V (으)려면' 표현이다. 지도 선생님이 이 표현을 이용해서 학생들이 참여할 수 있는 게임(!)을 만들어 보라는 조언을 해 주셨지만 아직 아이디어가 전혀 떠오르지 않는다.

어제 투명인간처럼 있으라는 얘기를 들었으나, 내가 들어간 수업의 선생님은 수업 중간 중간에 우리에게도 질문을 하셨고, 학생들이 둘씩 짝을 지어 연습하는 부분에서는 학생과 짝을 지어 주셨다. 나는 김연아, 아사다 마오와도 친구사이라는 방콕에서 온 태국 학생과 짝이 되었다. 스케이팅 선수로, 세 살 때부터 스케이팅을 했고 안무도 짠다고 한다. 태국에서는 스케이트가 그다지 잘 알려진 스포츠가 아닌데 한국에 왔더니 다들 김연아를 알고 있어서 깜짝 놀랐단다. 9시에 시작하는 한국어 수업에 스케이트 연습을 하고 왔다니 대체 몇 시부터 훈련하는 걸까?; 한국에서는 스케이트 연습을 어디서 하는지 물어 봤더니 목동 아이스링크에도 가고, 안양에도 연습할 수 있는 곳이 있다고 한다.

의욕적인 학생과 의욕이 없는 학생, 자만하고 있는 학생과 그렇지 않은 학생들이 한눈에 보였다. 나도 교실에서 선생님들께 이렇게 맨얼굴을 드러내고 있으리라고 생각하니 무서웠다.

정장 입고 머리를 묶었을 뿐인데(원래 올렸는데 지하철에서 사람들에 치이면서 망과 핀이 뒤에서 당겨 떨어졌다) 사람들이 놀랄 만큼 못 알아봐서 조금 재미있었다. 같은 팀 분들도 한 박자 쉬고 "......아!" 하는 반응. 함께 참관수업에 들어간 분은 4시간 동안 둘이 나란히 앉아 수업을 들은 후 함께 점심을 먹을 때까지도 내가 누구인지 몰랐던 모양이다. 휴게실에서 샌드위치를 먹던 중에 우리 팀 분을 보고 내가 인사를 하자(그 분도 한 박자 쉬고 "어어, 아? 아, 선생님!") 그제서야 "아, 선생님이 그 선생님이었어요?" 하고 깜짝 놀랐다. 그 뒤에도 "이런 사람이 있었나?"하는 표정으로 보는 분들께 두 손을 주먹쥐어 귀 밑에 갖다 대며 양갈래 시늉을 하면 "아!"하는 반응이 돌아왔다. 따지자면 3주 째라고는 해도 다들 종일 수업을 듣는 것만으로도 벅차 서로의 얼굴을 자세히 관찰할 기회는 그다지 없었던 탓이 크겠지만, 이거 무슨 변신물도 아니고......

오후에는 한국어 이해교육론 수업을 들었다. 기억에 남는 이야기를 하나 써 둔다. 학생들 중에는 언어를 배우면서 규칙화, 조직화를 하려고 하는 경향이 강한 이들이 있다. 이런 학생들의 경우 종이는 한 '장' 인데 책은 왜 한 '권' 이라고 하는지를 묻거나 한다. 가르치다 보면 이런 식의 질문을 하는 학생을 분명 만나게 될 텐데, 이럴 때에 교사는 모든 것의 이유를 설명해 주어야 한다고 생각해서 무리해서 답을 찾으면 안 된다. 언어는 조직화된 것이기 때문에 사용되는 것이 아니라, 언어가 먼저 있고, 그 언어를 더 쉽게 사용하고 익히기 위해서 문법이나 각종 규칙들로 조직화된 것이다. 따라서 이와 같은 질문을 받았을 때에는 옛부터 그렇게 쓰여 왔던 것이라고 답하면서 가능하다면 질문한 학생이 이해할 수 있는 다른 언어나 모어의 예를 들어 주면 좋다. 선생님이 드신 예는 영어에서 cabbage를 head로 세는 것. 보통 이런 예를 들어주면, 지금까지는 눈치채지 못했지만 자신의 모어에도 조직적인 근거를 댈 수 없지만 계속 사용되어 온 표현들이 있음을 깨닫고 납득한다고 한다.

아참, 그리고 오전에 참관한 수업에서 어느 학생이 질문해서 알게 된 것인데, '천만에요'의 '천만'의 뜻은 '천 번 만 번 아니에요(괜찮아요)'라는 의미였다. 나는 당연히 한자가 다르리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한자는 똑같이 千萬이다.

저녁에는 무척 피곤했지만, '오늘의 메뉴' 사이트에 학생회관 저녁이 순두부 찌개라고 나와 있었기 때문에 학생회관까지 열심히 갔다. 그런데 가서 보니 '두부김치'였다. 아아, 자정에 메뉴를 확인한 다음부터 저녁에 학관 순두부찌개 먹을 생각으로 버텼건만 두부김치라니! 슬퍼하며 인삼곰탕을 먹었다.

집에 와서는 피곤해서 한 숨 잤다. 한 시간 알람을 맞춰 놓고 누웠는데 어찌나 곤히 잤는지 눈 감자마자 알람이 울린 것 같았다. 내일 문법시험을 보기 때문에 책을 한 번 훑어본 다음 일기를 쓰고 있다. 피곤해서 못 버틸 줄 알았는데 무사히 지나간 듯 하다.

내일은 정치적 병역거부를 선언한 동기 현민의 구형공판일이기도 하다.

2010년 1월 18일 월요일

2010년 1월 18일 월요일

어제 잘 자지 못해서 피곤한 하루였다. 내일 수업참관이라 8시 50분까지 가야 한다. 아무래도 정장을 입어야 할 것 같은데 엄두가 나지 않는다. 구두를 넣어가서 언어교육원 앞에서 갈아신을까, 그냥 구두를 신고 갈까, 아니면 편하게 입고 갈까 고민 중이다.

오늘은 사회언어학 수업과 한국어 발음교육에 관한 수업을 들었다. 공부를 할수록 한국어에 자신이 없어진다. 잘 하고 싶은데!

2010년 1월 17일 일요일

2010년 1월 17일 일요일

어제가 동진님 생일이었기 때문에 아점을 먹으러 시부모님과 형님, 시조카들이 왔다. 콩나물북어국을 끓였는데 어머니가 해 주시는 것처럼 맛있지 않아서 낙담했다. 마지막에는 결국 좌절해서 국선생을 투입했다.

어머님께서 내게 하고 싶은 잔소리를 식사 기도문에 넣으시는 것을 들으며 속으로 웃었다. 점잖고 너그러운 분이다. 내가 생각하기에 우리 집의 고부관계는 평균 50점으로, 내가 10점에 어머님이 90점이다.

신이 기도를 듣고 있다고 믿지 않는 나는, 다른 사람이 소리내어 하는 기도를 들을 때마다 그 사람의 지극히 개인적인 욕망과 치부를 억지로 마주하는 것 같아서 당혹스럽고 불편하다.

이 생각을 하다 보니 양성과정에서 들은 흥미로운 이야기가 생각났다. 주기도문을 보면 주격 조사로 '이'만 쓰고 있는데, 이것은 한국어의 주격 조사 중 '가'가 훨씬 뒤에 나온 것과 관련이 있다고 한다. 한국어에서는 받침이 없는 주어에는 조사로 '가'를, 받침이 있는 주어에는 '이'를 붙이는데, 이중 '가'는 중세 국어에 이르러서야 나온 것으로 그전에는 '이'만을 사용했다. 개신교는 근대에 이르러서야 한국에 들어왔으니, 개신교 기도문이 번역된 시점에는 이미 주격 조사 '가'가 널리 쓰이고 있었다. 그런데도 주기도문에 비문법적인 '이'를 쓴 것은 종교 기도문의 특수성 때문이다. 한국어 주기도문 뿐 아니라 많은 종교에서 기도문은 언어의 원형에 가깝게 만들어지거나 번역되어 있다. 신은 (인간 식으로 따지자면) 아주 나이가 많을 테니, 고어에 가까운 기도일수록 신에게 잘 들리리라는 인간의 소박한 바람에 기인한 것으로 보고 있다고 한다.

시조카들은 한창 아지트 만들기에 재미를 붙인 나이라 들어오자마자 소파와 탁자 사이에 담요를 걸고 아지트부터 만들었다. 나도 식탁과 의자 사이에 보자기나 이불을 걸고 아지트를 열심히 만들던 때가 있었는데 싶어 어릴 적 생각이 많이 났다.

함께 점심을 먹고, 형님이 가져 오신 딸기와 시부모님이 가져 오신 케이크를 먹었다. 동진님은 출근하고, 나는 소소한 집안일을 하고 한국어 개인지도 시간에 쓸 텍스트를 골라 학생에게 이메일로 보냈다. 밤 12시 마감인 문법교수 수업지도안 수정본을 간신히 마감에 맞춰 보낸 다음, [사무라이전대 신켄쟈] 제46화를 보았다. 자신에게 아무 것도 없다고 느낀 시바 타케루는 쥬조와의 일전에 몸을 던지고, 시타리는 도코쿠의 부활을 위해 자신의 목숨을 반 나누어 초 힘센 아야카시를 인간 세상에 내보낸다. 죽는 것보다는 반쪽 짜리 목숨으로라도 사는 것이 낫다는 시타리의 절규가 귀에 남는다. 중간중간 미묘하게 힘을 준 특수효과들이 등장했다.

어쩐지 길고 피곤한 하루였다. 내일이 월요일이고 화요일에는 수업참관, 수요일에는 문법시험, 목요일에는 개인발표가 있다니 아득하다.

그러고 보니 어젯밤에도 학교가 나오는 악몽을 꾸었다.

2010년 1월 16일 토요일

2010년 1월 16일 토요일

동진님 생일이었다. 저녁에 합정역 근처의 프렌치 레스토랑 chez prune(쉐 프룬)에서 저녁을 먹었다. 돼지 안심 스테이크라는 메뉴가 아주 특이하고 맛있었다. 돼지고기에 고르곤졸라 치즈 등을 소스로 삼고, 토마토처럼 생긴 당근을 곁들인 메뉴이다. 오랜만에 크림브륄레를 먹어서 행복했다. 돼지고기 안심 스테이크가 맛있었을 뿐 아니라, 집에서 멀지 않고 근처에 재미있어 보이는 카페도 많으니 앞으로 종종 갈 것 같다.

귀가해서는 어제 아우님으로부터 선물 받은 케이크로 생일 파티를 했다.

2010년 1월 15일 금요일

뭐 했는지 기억이 안 난다. 저녁에는 아버지와 동생이 와서 동진님 생일 선물과 케이크를 전해 주었다. 반가웠다.

아, 그러고 보니 동기 신행에게서 다음 주 수요일이 현민 재판일이고, 당장 후원이 필요하다고 연락이 왔다. 수요일은 양성과정 문법시험을 보는 날이라 재판에 가지 못해(가도 괜찮은지 안 되는지도 모르긴 하지만;) 유감이었다. 그리고 나에 관한 터무니없는 소문을 하나 듣고 웃었다.

2010년 1월 14일 목요일

2010년 1월 14일 목요일

점심 때 개인지도 할 학생 분을 만났는데 법학대학원생이었다. 한국어교사양성과정에 지원할 때 로스쿨 재학중임을 쓰지 않았으니 정말 우연한 배정이다. 한국어로 이미 석사공부를 하고 있는 만큼, 한국어도 거의 능통하고 자신도 있어 보였다. 연세대에 다니고 있다고 했더니 얼마 전에 신년하례식에서 연대 법대 교수님을 만났다며 "김, 김....."하고 기억을 더듬더라. 불안감이 엄습했다. 아니나다를까, 학생이 보여 준 명함에는 김마X 교수님의 성함이......서울대 신년하례식에 가서 우리 학교에도 서울대 출신들이 있지만, 서울대 출신이라고 해서 꼭 잘 잘 하지는 않더라는 드립을 치고 갔다고 하셨단다.

내 얘기닼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어쨌든 마침 둘 다 법 공부를 하고 있으니 전공에 관한 텍스트로 개인지도를 해 보기로 했다. 서로에게 도움이 되면 좋겠다.

발표수업은 임선생님의 훌륭한 발표 덕분에 잘 끝났다. 말씀하시면서도 계속 수업에 관한 새로운 아이디어를 떠올리시는 모습에 감탄했다. 오늘은 발표 수업일이라 평소보다 한 시간 일찍 끝났다. 동원관 1층의 '오 키친'에 처음 가 보았다. 브로콜리 수프와 마늘치킨 리조또를 먹었는데, 양을 잘 몰라 과하게 주문해버려 리조또를 조금 남겼다. 문지문화원에 여유있게 도착해 안심했다.

밤에는 낮에 있었던 일 때문인지 또 학교가 나오는 꿈을 꾸었다. 종강한지 이제 한 달이 되었는데 아직도 학교가 나오는 꿈을 계속 꾼다. 패턴은 거의 같다. 질문에 답하지 못하거나, 교실에 들어갔더니 더 무서운 교수님으로 바뀌어 있거나, 뒷문이 없는 교실인데 지각을 해서 앞문으로 들어가지 못해 망설이거나 들어가서 혼나거나, 성적경쟁이 생사를 건 경쟁으로 발전하거나 한다.


2010년 1월 13일 수요일

2010년 1월 13일 수요일

몹시 추웠다.

그렇지만 동원관의 메뉴가 영 마음에 들지 않아서 학생회관까지 가서 학관 C로 안동닭찜을 먹었다. 나는 서울대 학생회관의 C메뉴를 정말로 좋아한다! 녹두에 살 때도 지칠 때면 셔틀을 타고 학교에 올라가 C메뉴를 먹고 돌아오곤 했다. 지금에서야 고백하자면 작년에 너무 힘들어 참을 수가 없어졌을 때, 연대 앞에서 무작정 버스를 타고 서울대까지 가서 학관C를 먹은 적도 있다. 그런데 막상 가 보니 하필이면 그날따라 학관C메뉴는 동나고, 원래 메뉴가 다 팔렸을 때면 나오는 돌솥불고기밖에 없었다......돌솥불고기를 보는 순간 꽤 진심으로 내 인생 뭐 이래, 하고 생각했었다. (학관 C 돌솥불고기를 싫어하지는 않는다)

언어교육원에서 학생회관은 꽤 멀어, 열심히 걸었는데도 먹고 바로 돌아오니 점심시간이 끝나 있었다. 아참, 학관 식당 안에 들어와 있던 비둘기가 갑자기 날아올라 꽤 소란이었다.

팀 발표 키노트 담당이라 다른 분들의 자료로 임선생님이 수업안을 완성해 밤10시까지 보내주시면 그때부터 키노트를 만들기로 했는데, 10시가 되어도 메일이 오지 않았다. 빠듯한 일정에 일부러 늦게 보내려고 하신 것도 아닐 터인데다 너무 피곤해서 알람을 맞춰 놓고 잠들었다. 깨어 보니 새벽 한 시가 가까운 시각이었는데, 다행히 자정쯤 메일이 와 있었다. 새벽 두 시 반까지 키노트를 만들고 다시 잠들었다.

2010년 1월 12일 화요일

2010년 1월 12일 화요일

팀 과제에 열중하느라 오늘 자정까지 개인 발표를 위한 문법수업 지도안을 제출해야 하는 것을 깜박하고 있었다. 낮에 임선생님에게서 듣고 뒤늦게 생각나, 저녁에 집에 와서 허겁지겁 만들었다.

2010년 1월 11일 월요일

2010년 1월 11일 월요일

다행히 눈이 오지 않았다. 어제 늦게 잠든 탓인지 일어나기가 무척 힘들었다. 아슬아슬한 시각까지 베개를 붙들고 있다가 간신히 일어나, 빵과 커피로 아침식사를 한 후 급히 집을 나섰다. 지하철에 제 시각에 타기는 했지만 사람이 너무 많았다. 이번에도 당산역에서 못 내릴까봐 걱정했으나 엉망진창이 되긴 했어도 내리긴 내렸다.

오늘 수업은 한국어어문규정과 외국어교수법이었다. 한국어어문규정 수업은 매우 유익했다. 한글맞춤법의 원리에 관해서도 새로운 사실을 많이 알 수 있었다. 어휘어법 관련 수업들이 내게는 가장 즐겁다. 선생님이 정말 좋은 사전이니 가르쳐 주기도 싫다며 한참 뜸을 들이다가 추천한 책([서울대 임홍빈 교수의 한국어 사전])이 이미 갖고 있는 것이어서 실망했지만;; 다른 추천도서들도 많이 알게 되었다. 외국어교수법 관련 수업은 교수이론에 관한 수업이었는데 상황과 대상에 맞는 수업을 어떻게 할 것인지 고민해 볼 수 있었다는 점은 좋았지만 각 교수법 이론의 특징과 장단점을 죽 나열한 구성은 조금 지루했다. 내용 자체가 한국어교사자격시험의 객관식 문제에 대비한 부분 같은 느낌이다보니 어쩔 수 없었다고 생각한다. 선생님이 한국어 교사로 일하면서 겪은 실제 교실 상황에 관한 이야기나 학생들이 공부한 자료들은 참 흥미로웠다.

길에 차들이 많이 늘어났다. 귀가길에 교통체증으로 꽤 고생했다. 내일 오전부터 다시 더 추워진다고 한다.

2010년 1월 10일 일요일

2010년 1월 10일 일요일

시부모님과 점심을 먹고 동진님표 커피를 함께 마셨다. 두 분이 가신 후에는 시부모님이 오신다고 급하게 치운 거실에서 아이폰을 가지고 놀았다. 어떤 블로깅이라도 진지하지 않아 보이게 할 만한 훌륭한 짤방을 찍고 오후 2시에 이미 알찬 하루를 보낸 듯 뿌듯한 기분이 되었다. 프로필 사진에 올렸다. [폭룡전대 아바렌져]의 엔딩곡에 맞추어 꿈틀거리는 모습이다. [폭룡전대 아바렌져]의 엔딩곡은 언제 들어도 웃을 수 있는 좋은 노래다. 멋으로야 2004년의 데카렌져가 한수 위지만, 아바렌져 엔딩곡의 후렴구가 갖는 엄청난 중독성이란! 예전에 만화 [감독 부적격]에서 이 노래를 흥얼거리며 운전하는 장면을 보고 그 기분을 알겠어서 한참 웃었다.


(50초 정도부터는 꼭 보시길!)

동진님은 교회에 가고 나는 집에서 맥북에어를 만지작거리며 놀았다. 어제 좀 쉰 덕분에 한결 기운이 났다. 동진님이 저녁으로 빵과 슈크림을 가지고 돌아와 함께 맛있게 먹고 [판타스틱] 기획기사 관련 인터뷰에 답을 써 보냈다. 문지문화원 강의 내용도 정리해서 올렸다.

그 뒤에는 동진님과 함께 [사무라이전대 신켄져] 제45화를 보았다. 타케루가 그림자 무사라는 사실이 밝혀지고 시바 카오루가 당주의 자리에 올랐다. 시바 카오루 꽤 박력있다. 내가 사무라이라면 정말 괴로울 것 같다. 세상을 지켜야 한다는 사명(짐)을 안고 있는 10대 청소년들에게 저렇게 큰 스트레스를 주는 것은 매우 비효율적이고 반인권적이라는 생각도 했다. 어쨌든 코바야시답게 이야기를 잘 뽑아내서 '으흑흑, 타케루우우우우우우!체에엣, 멋지잖아아아아!'라고 외치면서 몰입해서 보았다.

당주의 핏줄이니 정당성을 가진다는 설정 자체에는 역시 거부감이 든다. 물론 모든 것을 알고 계신 코바야시 님은 시바 카오루가 모지카라에의 통제력이나 싸움 실력에서도 뒤지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주었지만, 결국 시바 카오루를 당주로 만든 것은 그 핏줄이니.......으흑, 타케루우우우우우우!

밤 9시까지 임선생님께서 교안을 만들어 보내주기로 하셨는데, 9시 좀 넘어서 시간에 못 맞추겠으니 일단 이걸로 보라고 파일이 왔다. 꽤 시간이 걸렸을 번거로운 결과를 보고 송구했다. 받은 대로 스물 몇 장을 출력하긴 했지만 비전문가이다보니 이건 왜 여기 있고 저건 왜 저기 있는지 잘 알 수가 없어서 키노트를 만드는 데 생각보다 시간이 훨씬 오래 걸렸다.(월요일에 학교에 가서 여쭤보니, 조금 예상했던 대로; 교안 만드는 과정 파일들을 일단 보라고 모두 함께 보내셨던 것이라 한다) 길어질 것 같아 토요일 밤에 동진님이 장을 봐 온 채소들을 다듬어 화이트와인 소스 파스타를 만들어 먹었다.

새벽 두 시 반 쯤 대충 마무리했다. 결과물은 그럭저럭 마음에 든다. 바쁘지만 평화로운 일요일이었다.

2010년 1월 8일 금요일

2010년 1월 8일 금요일

 어제는 이런저런 밀린 일들을 하고 보니 새벽 세 시가 넘어 있었다. 네 시 즈음에야 잠든 것 같다. 오전 7시에는 일어나야 했으니, 거의 못 잔 셈이다.

제시간에 나오긴 했으나, 8시를 적당히 넘긴 시각에도 지하철에 사람이 너무 많아서 결국 당산역에서 못 내리고 여의도역까지 휩쓸려 갔다가 반대 방향으로 돌아왔다. 아침부터 진을 뺴는구나.

오늘은 한국어 어휘론과 문법론 수업이었다. 둘 다 매우 재미있고 한국어교수법 학습 뿐 아니라 내 글쓰기에도 도움이 되는 수업인데, 너무 피곤해서 정신을 차리기가 힘들었다. 점심은 행정대학원에 있는 동기 은영과 동원관에서 먹었다. 은영이 이름을 '선용'으로 개명했다. 이런 경우에는 새 이름으로 불러주는 것이 좋다고 하니, 앞으로는 새 이름에 익숙해지기 위해 자주 써야겠다. 식후에는 언어교육원 Fanco에서 커피를 마셨다.

당장 다음 주 목요일에 기능교수 발표를 한다. 수업이 모두 끝난 후에는 간담회가 있었다. 함께 저녁을 먹으며 안면을 트는 시간이었다. 이 과정에 참여한 동기도 이유도 다양하고, 나이대도 다양해서 (05학번 졸업예정자부터 48년생 어르신까지!) 아주 흥미로웠다. 우리 팀에는 영어선생님 두 분, 일본어 동시통역을 하셨고 지금은 비교사회학을 공부하시는 분, 해외주재원이셨다가 이제 자녀들을 모두 키우고 퇴직하신 분이 계신다. 나는 교안 작성이나 교육이론에 대해 거의 아는 것이 없기 때문에 팀에 누가 될까봐 애당초 프레젠테이션 제작을 맡았는데, 22년 4개월 교직경력의 베테랑 임선생님께서 교안 작성은 그렇게 시간이 오래 걸리지 않으니 모두 해 올 수 있다고 나서 주셔서 다들 마음의 짐을 한결 덜었다. 임선생님은 어렸을 때부터 선생님이 꿈이었기 때문에, 아이들에게 늘 나는 꿈을 이룬 사람이라고 한다고 하셨다. 아우님 생각이 났다.

피곤해서 헬레벨레한 상태로 귀가하니.......이 분이 기다리고 있었다.





동진님이 결혼 전에 약속했던 결혼선물, 맥북 에어! 마땅히 쓸 노트북이 없어서 작업할 때 불편했는데 이번에 동진님이 선물해 주셨다.

동진님, 그동안 고마웠어요. 이 노트북을 볼 때마다 우리의 아름다웠던 지난날을 추억하며 행복하게 살게요. (으응?)

크기 때문인지 실제 무게보다 가볍게 느껴진다. iwork도 깔고, 동진님을 인간 도움말로 활용하면서 이것저것 만져 보고 있다. 신난다.

2010년 1월 7일 목요일

2010년 1월 7일 목요일

오늘도 추웠다. 문지문화원 개강일이기 때문에 정장을 입어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도저히 스타킹만 신고 집을 나설 엄두가 나지 않아 그냥 겹겹으로 껴입고 어그까지 신고 출동했다. 역시나, 그래도 춥더라.

한국어교사양성과정에서는 모의수업 실습을 위한 설명을 들었다. 팀별 모의수업(기능교수) 실습은 읽기 고급과정 팀이고 개인 모의수업(문법교수)은 한국어 2 과정이다. 우리 팀은 다섯 명이서 한 조로, 당장 다음 주 목요일까지 강의안을 작성해서 발표를 해야 한다. 기능교수 실습은 강의안 발표 한 번, 실제 모의수업 한 번이고, 문법교수 실습은 모의수업 두 번인데 두 번째에는 한국어교실을 다니는 외국인 학생들을 대상으로 강의한다. 그 외에 한국어 교실 학생들을 대상으로 하는 1:1 개인교습 실습도 해야 하는데, 이것은 실습을 중시하는 서울대 과정에만 있다고 한다.

개강일인데 문지문화원까지 제 시간에 못 닿았다. 일단 산에서 내려오는 데 시간이 너무 많이 걸린다. 걸어 갈 수는 없고 어떻게든 차를 타기는 해야 하는데, 학교 도로 사정이 엉망인데다 기사님들이 식사하시는 시간대라 예상보다 차가 너무 안 왔다. 늦을까봐 저녁도 안 먹고 수업 끝나자마자 쌩 하고 갔는데 지각하다니......또 눈이 온다는 예보에 걱정이 태산이다.

강좌에 참 많은 분들이 오셔서 깜짝 놀랐다. 번역한 책을 감명 깊게 읽어주신 분들도 있어서, 감동했다.

집에 와 보니 어머니가 준비해 주신 카레와 딸기, 빵이 있었다. 딸기와 빵을 허겁지겁 먹고 모의수업 우리팀 주소록을 만들었다. 일정이 빠듯하니 서둘러 시작하는 편이 좋을 것 같아서 맡아 왔다. 작업하는 김에 다른 분들도 함께 쓸 일정표도 만들었다.

내일은 한국어 어휘와 문법 수업일이다. 아흑, 좋아라.

2010년 1월 6일 수요일

2010년 1월 6일 수요일

오늘 수업도 매우 재미있었다. 한국어문법을 본격적으로 배우기 시작했다. 내용도 흥미롭지만, 선생님들이 모두 수업을 정말 잘 하셔서 수업을 보는 것 자체만으로도 좋은 자극이 된다. 어떻게 하면 내가 아는 것을 잘 설명하고 전달할 수 있을지를 많이 고민하고 있다.

점심과 저녁 모두 동원관에서 먹었는데, 점심 때 뭘 잘못 먹었는지 너무 추워서인지 배탈이 나서 저녁에 몹시 고생했다. 아스님 댁에서 보고 마음에 꼭 들어 샀던 보덤 티포트와 [백만 광년의 고독] 저자증정본이 왔다. 사진보다 실물이 예쁘게 잘 나왔다.

[백만 광년의 고독]에 [입적]을 실었는데, 방금 다시 읽다가 바뀐 문장을 발견하고 매우 당황헀다. 글 전체에서 가장 힘을 실어 쓴 문장이기 때문에 교정지에서 놓쳤을 리가 없다고 생각했는데, 교정지를 확인해 보니 거기서부터 달라져 있다. 내가 못 본 것이다. 문법적 오류가 없는 단어를 편집 단계에서 굳이 의미가 다른 말로 바꾼 이유는 모르겠지만, 내가 교정지에서 보고 원래대로 되돌리기만 했으면 아무 문제도 없었을 것이다. 작가가 미처 생각하지 못했을지 모르는 대안을 제안하는 것이 편집부의 일이고, 채택할지 여부를 고민하고 결정하는 것이 내 일이니 이것은 온전히 내 책임이다. 대체 어째서 이걸 못 봤는지 스스로 납득이 안 된다. 아마 달라진 부분을 알아보는 사람도 나 정도밖에 없겠지만, 그렇다고 해도 위로는 되지 않는다. 너무 속상해서 조금 울었다.

2010년 1월 5일 화요일

2010년 1월 5일 화요일

한국어교사양성과정 둘째날. 오늘도 정말 재미있었다! 하지만 피곤하니 내용은 생략. 아무래도 한 달 내내 블로그에서는 이럴 것 같아서 짬이 날 때 트위팅으로 조금이라도 기록을 남기려고 하고는 있으나, 140자보다는 길게 설명해야 하는 내용이다보니 잘 안 된다.

오후에 일시귀국한 보미에게서 전화가 왔다. 내 전화번호가 바뀐 탓에 못 볼까봐 전전긍긍하고 있었는데, 다행스럽게도 연락이 닿았다. 기뻐서 추운 복도에서 방방 뛰었다.

우리집에서 동진님과 셋이 피자를 먹고, 커피를 마시며 이야기를 했다. 사랑하는 많은 사람들과 떨어져 낯선 곳에서 공부한다는 것만으로도 대단한데, 보미답게 씩씩하게 지내고 있는 것 같아서 기뻤다. 그 성실함, 안정감, 자신의 일에 제대로 열중할 뿐 아니라 잘 할 줄 아는 능력. 존경할만한 동기가 있다는 것은 멋진 일이다. 2010년이니, 동기들과 알고 지낸지도 벌써 10년이다.

2010년 1월 4일 월요일

2010년 1월 4일 월요일 : 한국어교사양성과정 개강

서울대학교 언어교육원의 [외국인 한국어교사양성과정] 개강일이었다. 첫날 먼 길을 가야 하는 터라 전날 밤부터 기합을 넣고 준비헀으나, 폭설로 비명이 울리는 지옥이 된 9호선을 타고 당산역에서 머리를 쥐어뜯기며 내린 후 정신이 혼란해져 습관적으로 신촌행 2호선을 탄 다음(그새 이쪽 방향을 습관적으로 찾는 자신에게 조금 놀랐다) 홍대입구역에서 반대로 돌아 도보 속도의 2호선을 타고 서울대입구역까지 간 다음 눈길을 헤치고 행정대학원 강의실에 도착하자 10시 58분이었다. 모자에 눈이 아니라 얼음덩어리가 얼어붙어 있더라. 9시 30분에 개강할 예정이었으나 강사님도 제때 도착을 못 하셔서 11시를 한참 지나서야 수업이 시작되었다.

강의는 매우 재미있었다. 흥미진진한 이야기를 잔뜩 들어서 잊기 전에 정리해 두고 싶은데 지금은 피곤하니 나중에. 특히 언어학 개론 수업을 들으면서 철학을 계속 공부했다면, 하는 생각을 많이 했다. 꼭 철학이 아니라도 괜찮았을지도 모른다. 순수학문에 가까운 지식에서만 느껴지는 고양감과 인문학적 자극에만 선명하게 반응하는, 머리 끝이 저릿해지는 것 같은 황홀한 쾌감이 분명히 있다. 무언가를 배우고 있다, 알아가고 있다는 행복에 가까운 만족감도 오랜만에 느꼈다. 그러나 철학과 석사를 갔다면 (내게 학자로서의 창조적 재능이나 끈기가 그다지 없다는 점은 차치하더라도) 행복하게 살지 못했으리라고 생각한다. 언젠가 돌아보며 가지 않은 길 운운하는 날이 올지도 모르지만, 역시 아직은 후회도 미련도 없다. 나는 행복하기 위해 더 많은 것을 필요로 하는 사람이다. 이 사실을 죄책감 없이 긍정하며 살고 싶다.

학생 중에 대단히 난감한 분이 계셔서 앞으로의 수업이 걱정스럽다. 틀림없이 가르치는 일을 이미 하고 계신 분이리라고 생각한다. 강사의 말을 자르고 뜬금없이 자신의 주장을 펴거나(예: 언어는 변하는 것이므로 '선릉'을 [설릉]으로 발음할 필요가 없다./ 나는 '자장면'표기에 반대하고 [짜장면]이라고 써야 한다고 생각한다. etc.), 강사에게 반 농으로라도 면박을 주는 모습이 당황스러웠다. 심지어 저녁 오리엔테이션 시간에는 오늘 배운 것 중에 별로 도움이 안 되는 것도 있는 것 같은데(!), 그냥 종합시험을 위한 키워드를 먼저 가르쳐 주면 안 되느나고까지 해서 들으면서 기겁했다. 아, 영어 할 줄 아는데 영어를 써서 실습 수업 준비하면 안 되느냐고도 하시더라. 다른 것은 차치하더라도, 조별로 실습 과제를 준비해야 하기 때문에 제발 같은 조에 배정되지 않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다. 내게는 양성과정을 재수강할 시간적 여유도, 이런 분과 융통성 있게 맞춰 나갈 만한 성격적 여유도 없으니 운이 좀 따라 주길 바라고 바랄 뿐이다.

학생의 자세에 대해서 많이 반성했다. 타인이 자신의 말을 경청하리라는/해야 한다는 확신, 자신의 지식과 지위에 대한 자신감, 자신의 질문이 다른 학생들에게도 시간을 할애해 들어야 할 만큼 중요하리라는 의심 없는 태도......결국은 자신이 학생인 자리와 선생인 자리를 구분하지 못해서 생기는 문제라고 생각한다. 나는 속으로 짜증을 내는 한편, 나도 십수년 뒤에는 저런 사람이 될지도 모른다는 불편하면서도 무섭도록 현실적인 두려움을 느꼈다. 오늘 보고 생각한 것들을 잘 새겨 반면교사로 삼아야겠다.

귀가길에는 김포공항 행 리무진버스를 탔다. 도로교통 상황에 비해서는 수월하게 들어온 것 같다. 하루가 정신없이 지나가서인지 오랜만에 모교에 들어가서인지 몰라도 이제야 피로감이 몰려온다.

2010년 1월 2일 토요일

2010년 1월 2일 토요일 : 특촬 잡담


[사무라이전대 신켄쟈] 제44화 '시바가 제18대 당주'가 내일 오전 7시 30분에 방영된다. 제45화의 제목은 '그림자 무사'다. Orz 수많은 스포일러로 단단히 무장했기 때문에 견딜 수 있다! 타케루, 내 마음 속의 신켄 렛또는 너 하나뿐이야! 자, 모두 함께 힘을 합쳐 악을 무찌르자! 세상을 지키기 위해서라면 총 48화인 극의 제44화-_-에서 갑자기 진정한 당주가 등장하더라도 참을 수 있어! 지구는 소중하니까! (이미 정신이 혼미한 상태)

2010년 수퍼전대 [천장전대 고세이져] 캐스팅이 확정되었다. 루머대로였고, 올해 레드는 귀엽다. [굉굉전대 보우켄쟈]를 복습할 때가 된 것 같다.

관련링크: 2009년 12월 8일 http://captjayway.textcube.com/979

23시 23분에 덧붙임

제44화 봤다. 이럴수가! 멋있잖아! ㅠ_ㅠ 좀 더 배신감을 느껴보려고 했는데 눈물과 감동이 있는 클라이막스로 깔끔하게 나아가고 있다. 시바 카오루도 멋있고.....으흑흑. ㅠ_ㅠ

2010년 1월 1일 금요일

2010년 1월 1일 금요일

어제는 말일이니 뭐든 써야 할 것 같은 생각에 일기를 썼지만 사실 한 해를 마감한다는 기분은 그다지 들지 않았다. 오늘도 딱히 새해가 시작되었다는 느낌은 없고, 오랜만에 나와 동진님 둘 다 여유가 생겼으니 데이트를 할 수 있겠다는 생각만 들었다. 집에 와서 일기를 뒤져 보았더니, 역시나, 딱히 12월 31일이라고 뭘 쓴 적이 없다. 2003년 1월 1일에는 종일 잤는데 또 졸린다고 써놨어.orz

어째서일까 생각해 보았는데, 아무래도 나의 한 해는 2월 25일에 시작하기 때문이다 싶다. 매년 2월 25일이 되어서야 아, 나의 새 일 년이 시작하는구나, 내 삶에 또 일 년이 지나갔구나 하는 실감이 든다. 아아, 나는 어디까지 자기중심적인 사람인 걸까! 새삼 놀랍다.

어쨌든 오늘은 오랜만에 아침부터 밤까지 아무 일정도 없는 휴일이었다. 11시 쯤 동진님표 파스타로 아점을 먹고 롯데시네마 홍대입구점에 가서 [셜록 홈즈]를 보았다. 예상보다 조금 더 전형적인 헐리우드 블록버스터였지만 즐겁게 보았다. 중간의 주술이니 마법이니 하는 부분은 볼거리는 많았으나 이야기로서는 영 지루했고, 본격적으로 스팀펑크 분위기가 된 후반부의 후반부에 가서야 줄거리 자체에도 흥미가 좀 생겼다. 나는 역시 SF 팬이구나 싶었다.

영화를 본 다음에는 카카오봄에 가서 초컬릿을 마셨다. 궁금했던 신작, 소금을 뿌린 다크초컬릿도 먹었는데 정말 맛있어서 감탄했다. 광화문 파이낸스센터에 있는 난시앙에서 소룡포와 새우로 저녁을 먹은 다음, 친정에 가서 식탁에 둘러앉아 간단하게 기 파티를 했다.

종일 마음 편히 쉬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