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1월 26일 화요일

2010년 1월 26일 화요일

오늘은 국립국악원에서 사물놀이와 민요를 배우는 날이었다. 오전에 국립국악원에 갔다가, 오후에 언어교육원으로 가서 한국어교육과정론과 한국어 문법교육론 수업을 하는 일정이었다.

숨 쉴 자리도 없어 힘들었던 9호선인데, 오늘은 어째 금세 앉을 수 있었다. 멀리 가야 해서 걱정이었는데 운이 좋았다. 국립국악원 국악연수관의 커다란 방 같은 강의실에 같은 조 임선생님, 차선생님과 자리를 잡고 앉았다. 북, 장구 등이 많이 쌓여 있었다. 10시 50분까지 사물놀이 장단을 익히고, 외국인 학생들에게 한국 전통 음악을 어떻게 설명하는지를 강사님에게 배운 다음 북과 장구 중 쳐 보고 싶은 악기를 직접 골라 장단을 맞추어 보았다. 차선생님은 장구를 집어들어 죄며 동사무소 문화센터에서 좀 배웠다고 하셨다. 수업에 활용할 생각으로 비디오카메라나 사진기를 가지고 온 선생님들도 계셨다. 덜렁덜렁 빈 손으로 왔던 나는 쉬는 시간에 임선생님과 사진을 찍고, 임선생님, 차선생님, 마침 내 앞에 앉았던 다른 조 선생님 세 분의 사진을 두 장 찍어 드렸다.

민요 시간에는 선생님의 소리를 들으며 각 장단의 흐름을 익히고 '진도 아리랑'을 직접 끝까지 불렀다. 내 앞에 앉아 계시던 차선생님이 안 보여서 뒤를 보니 맨 뒤에 앉아 계셨다. '피곤하신가?'생각하며 수업을 마저 듣고, 끝나자마자 화장실에 가려고 서둘러 교실을 나섰다. 임선생님 차를 얻어 타고 언어교육원에 가기로 했는데, 밖에서 기다려도 임선생님이 나오시지 않아서 전화를 했다. 임선생님이 차선생님이 조금 편찮으셔서 병원에 모시고 가야 할 것 같으니 함께 못 가겠다고 하셨다. 나는 어쩐 일일까, 생각하며 역시 임선생님 차를 타기로 했던 최선생님과 다른 분 차를 얻어타고 학교에 왔다.

식사를 끝내고 교실에 들어가니 분위기가 이상했다. 편찮으시다던 차선생님이 뇌출혈로 구급차에 실려 가셨다는 것이다. 뇌출혈은 당사자도 바로 눈치 채지 못할 수도 있다고 한다. 맨 뒤에 가만히 앉아 계시니 다들 피곤하신줄로만 생각했다가, 수업이 끝나고 이제 일어나 가시자고 흔드니 이미 몸에 마비가 와서 말씀을 못 하시는 상태였다. 사모님께 연락이 가고, 양성과정 선생님 두 분이 구급차를 타고 병원까지 함께 가셨다.

같은 조인 차선생님은 이순의 연세로 이번 양성과정의 최연장자이시다. 젊어서는 종합상사에서 해외파견 관련 일을 하셨던 분이다. 뉴욕에서 여러 해를 살았으나 IMF로 한국 회사들이 해외사업 규모를 줄이면서 직장을 그만두게 되었다. 그 뒤로 점점 더 작은 회사로 옮기면서 직장생활을 계속하셨지만, 이제는 퇴직해서 돈보다는 주재원 경험을 살린 보람 있는 일을 하고 싶어서 양성과정에 왔다고 말씀하셨었다. 해외 파견 근무로 인해 직장 안에서는 손해를 보기도 했지만 외국에 살면서 한국을 알리고, 귀국해서는 한국인들이 해외에서 활동하는 일을 후방에서 지원하며 자부심을 느꼈기 때문이라셨다. 해외 거주 경험이 아이들에게는 도움이 되어, 자제분들이 좋은 대학을 졸업하고 번듯한 사회인으로 자란 것을 자랑스러워 하셨다. 

병원에 가신 분들에게서 간간히 연락이 왔다. 병원에는 갔으나, 수술을 끝내자마자 중환자실로 옮겨야 하는 상황인데 중환자실에 자리가 나지 않아 오후 세 시가 넘었는데도 아직 수술실에 들어가지도 못하고 있다고 했다. 교회를 다니는 분들은 쉬는 시간에 기도를 했다.

수업은 조금 지연되었지만 정상적으로 진행되었다. 97년부터 한국어 강사를 해 온 교수님은 귀한 경험을 자세히 말씀해 주셨다. 나는 간담회에서 다른 사람들보다 긴, 그러나 육십 평생의 시간에 비하면 짧은 소개를 하셨던 차선생님, 익숙하지 않은 파워포인트로 모의수업 준비를 열심히 해 왔지만 지적을 많이 받고 "뉴욕까지 갔다 왔는데도 사투리는 안 고쳐지네요." 하고 머쓱하게 웃던 차선생님, 식당으로 걸어가며 "내가 잘 못해서......답답했죠?"하고 말을 건네던 차선생님, 쓰러지시기 한 시간 전까지 함께 이야기하던 차선생님을 생각하며, 떠올리지 않으려고 하며, 혹은 최대한 구체적으로 기억하려고 하며 앉아 있었다.

귀가길에는 지하철을 반대로 탔다. 정신을 차리니 방배역이었다. 나는 20대이다. 20대라는 나이는 얼마나 가벼운가. 젊음은 그 자체만으로도 얼마나 자연스럽게 오만한 것인가. 나는 반성도 괴로움도 답답함도 안타까움도 아닌, 그 한가운데의 어디쯤에서 허덕이며, 그저 무척 슬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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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일 추가: 26일 저녁에 수술을 하셨는데 다행히 경과는 좋은 편이란다. 더 지켜보아야하지만, 일단 사람을 알아 보시고, 조금씩 말도 하려고 하신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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