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5월 14일 월요일

2007년 5월 14일 월요일 : QnA 547번 - 소수자의 입양에 대해

예, 신중해야 하는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이것이 특히 우리나라에서 문제되는 데에는 입양 자체에 대해 (한국인이 갖는) 약간의 오해에서 비롯한 부분이 있다는 생각이 들어, 제가 아는 한도 내에서 좀 길게 써 보겠습니다.

오해 1)입양의 동기는 희생적이다.
오해 2)독신자/성적소수자/노인/장애인에게 입양되는 아이는, '정상' 가정에 입양될 기회를 박탈당한다.


우선 첫 번째 문제를 봅시다. 입양은 '부모가 되고 싶은 사람의 욕구(need)- 수요측면'와, '가정에서 자라나야 한다는 아이의 필요(need)- 공급측면'가 만나는 자리에서 이루어집니다. 입양가정에 있는 것보다 공동생활시설(소위 고아원)에서 자라는 것이 아이에게 더 낫다고 생각하는 경우에는 입양이라는 제도 자체가 성립하지 않지요. 따라서 일단 입양을 받아들이는 한, 아이 쪽의 필요는 명확합니다.

그렇다면 어른은 왜 굳이 아이를 입양하고자 할까요? 물론 예외적인 경우도 존재하지만, 대부분의 경우 입양의 동기는 '부모가 되고 싶다는 본능적/사회적 욕구'입니다. 따라서 입양부모가 될 자격이란 결국 '부모가 될 자격과 의지의 정도'라는 기준에 따라 결정되지요.

이건 해외도 마찬가지입니다. 많은 국내 아동이 해외에 입양되는 이유는, 국내 입양 수요가 공급보다 적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해외에서 우리나라 아동을 원하는 수요가 많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왜냐하면, 예를 들어 미국인이 미국 국적인 아동을 입양하고자 할 경우 최소한 1년 이상 기다려야 하고, 입양하여 함께 살고 나서도 수년 이상 사회복지사나 정부의 관리를 받은 후에야 정식으로 친부모와 같은 자격을 인정받을 수 있습니다. 게다가 미국은 친부모의 권리를 더 높이 치기 때문에, 예를 들어 친부모가 아동학대로 친권을 박탈당하고 그 아동이 다른 사람에게 입양되고 나서도 친부모가 일정 정도의 치료/상담을 받고 법원에서 이 사람이 안전하다는 결정을 내리면 친자를 도로 데려올 수 있습니다.(미국내에서도 계속 논란이 되는 부분입니다.) 이것은 '확실한 내 아이'를 원하는 양부모의 욕구에 상당히 위협이 되지요.

그러나 해외 입양을 한다면? 어차피 아이가 '많이 남는' 나라에서 입양하는 것은 상대적으로 단기간에 가능합니다. 또한 그 아동이 바다를 건너 일단 자국으로 넘어가고 나면, 그 아이에게 신분이 부여되어야 하기 때문에 처음부터 미국내 아동을 입양할 경우보다 훨씬 확고한 법적 지위가 양부모에게 인정됩니다. 직설적으로 말하자면, 도로 내놓지 않아도 된다는 거지요.

논점이 조금 산만해졌는데, 핵심은 입양이란 훌륭한 선택이지만, 박애주의에 근간한 희생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많은 국가에서(제가 본 자료가 모든 국가를 대상으로 하지 않았기 때문에 이렇게 표현합니다) 아동의 연령이 높아질수록 입양될 가능성이 급감하는 것에서도 알 수 있습니다. 양부모는 자신이 입양한 아동의 '부모'가 되고 싶어합니다. 마치 자기가 낳은 것처럼, 가능한 한 아동 발달 단계에 따른 모든 경험을 해보고 싶어합니다. 중국이나 베트남 아동보다 한국 아동이 '인기가 높은' 이유도, 한국은 한국전쟁 후 반세기동안 입양 시스템이 잘 구축되어 있어 아동의 출생부터 입양전까지의 기록관리가 상대적으로 철저해 양부모에게 이런 측면에서 더 큰 만족을 주기 때문이고요. (물론 박애주의적인 의도에서 일부러 장애아동이나 입양 될 가능성이 낮아진 나이 많은 아이들(2세 이상)을 다수 입양하는 분도 있고, 저 역시 그런 케이스를 접한 적이 있습니다. 하지만 그런 '티브이에 나오는' 경우는 어쨌든 전체 중에서 그렇게 비중이 높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앞에서 말했듯이, 어떤 사람이든지 그 사람이 '입양을 하고 싶다'는 욕구를 갖는다면, 그것은 ('출산을 하고 싶다'는 욕구와 마찬가지로) 권리의 일종으로서 받아들여져야 할 부분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따라서 입양권을 인정하는 것은 소수자의 권리를 보호하는 문제와 결국 연결됩니다. '육아에 어려움을 겪을지 모르는 중증 장애인에게 입양을 인정해야 할까요?' 라는 문제는 '육아에 어려움을 겪을지 모르는 중증 장애인이 시험관 수정으로 임신을 해도 되는가?'라는 문제와 같은 선상에 있습니다.

히틀러나 과거 미국사회는 강제 불임 수술이라는 답을 제시했지만, 오늘날 인권의 개념 하에서 그러한 답은 받아들여지지 않고 있습니다. 미국에서 동성애자의 입양이 허용되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렸습니다. 그러나 이제 매년 수많은 동성애자들이 입양을 합니다. 부모의  성정체성은 자녀에게 영향을 미치는 수많은 변수 중 하나입니다. 입양의 성공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은 그보다는 인종(우리나라에는 해당사항이 없지만, 미국에서는 이 문제로 인해 인종간 입양을 금지한 주도 있습니다), 경제력(친부모가 친자녀를 성공적으로 키우는 데도 중요한 변수가 되지요), 확대가족의 지지 등입니다. 물론 핵심은 양부모의 자질이지요. 우리나라도 이러한 요인들에 대해 기준을 갖고 있습니다.

성적 소수자가 입양하여 아이를 사랑하며 키우겠다는 의지가 명확하고 그러한 행동을 실천할 경제력이 있으며, 확대가족의 지지를 받고 있다면 (말씀하신 하리수씨의 경우 경제력과 가족의 지지 면에서 별 문제가 없다고 알고 있습니다.) 부모 될 권리를 주장하는 데 아무 문제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남는 질문은 이것입니다. 부모가 자기 권리를 주장하는 것은 좋다 치자, 하지만 입양 삼자 (친부모-양부모-아동) 중에서 아동의 입장은? 자신의 운명을 결정하지 못하는 갓난아기가 트렌스젠더에게 입양되는 것은 부당하지 않을까?

이 질문에 대한 답이 바로 오해 2입니다.

단도직입적으로 말해, 소수자나 독신자에게 입양된 아이는, 그 양부/모가 입양할 자격을 허락받지 못했다면 '어머니와 아버지'를 가지게 되었을 텐데 운이 나빴던 아이가 아닙니다. 우리나라에서 입양하고자 하는 어른의 수가 기관에 인수되는 친권포기 아동의 수보다 적은 한, 그 아이는  양부/모가 입양할 자격을 허락받지 못했다면 시설에서 성년까지 자라야 했을 사람입니다. 여기에 대한 찬성/반대는 따라서 '한 아이가 동성애자 아버지/어머니를 갖는 것'과 '고아원에서 자라나는 것' 중에 무엇이 더 아이에게 바람직한가 - 라는 문제로 압축됩니다.

이것은 독신자 입양도 마찬가지입니다. 한 아이가 '한부모만 갖느냐' 와 '시설에서 자라느냐' 중의 선택입니다. 우리나라는 아직 독신자 입양도 논의 중이지요? 저는 수많은 친생자들이 어려서부터 한부모 가정에서 자라나고, 누구나 그런 상황에 놓일 가능성이 있는 상황에서 입양에만 그토록 엄격한 기준을 적용하여 결국 아동을 '고아원 출신'으로 만드는 반대 논리에 전혀 동의하지 않습니다. 주위를 돌아봤을 때, 입양자격을 인정받기 위해 필요로 하는 경제력/정신건강/확대가족의 지지/부모됨의 의지를 모두 가진 (+기관 등의 지속적인 관리) 한부모 가정이 과연 현실의 수많은 친생자 가정보다 더 열악할까요?

반면 동성애자나 성적 소수자 입양은 '어려서부터 동성애자/성적소수자 부모 가정에서 자라는 수많은 친생자'가 (거의) 없으니 더 어려운 문제지요. 더 다양한 견해가 있고요. 일단 저는 공동 생활 시설에 소속되어 자라는 것보다는 동성애자거나 성전환자라 할지라도 자신만을 사랑하며 키우는 부/모를 갖는 것이 아이에게 더 좋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유아/유년기에 부모의 관심을 독점할 필요는 매우 큽니다. (발달이론에서 이런 저런 얘기가 많지만 생략하겠습니다.) 부모에 대한 사회의 편견과 부모의 '다름' 때문에 아이가 혼란을 겪을 가능성은 높지요. 양부모가 유명인이라면 더할 겁니다. 하지만 그것이 (예를 들어) 장애인이나 전세계적으로 유명한 부모를 가진 친생자가 겪는 어려움 이상이 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같은 상황에서도 아동이 받는 영향은 부모가 어떤 '사람'이고 어떤 태도를 취하느냐에 따라 다릅니다. 말씀하신 대로 저는 청소년 문제에 관심이 많고, 청소년에게 영향을 미치는 요소가 부모와의 혈연이나 부모의 성정체성만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식상한 예를 들자면, 다리를 절면서 폐품을 모아 자신을 중학교에 보낸 아버지를 자랑스러워하는 친생자도, 눈 먼 어머니가 부끄러워 학부모 모임 소식을 일부러 전하지 않는 친생자도 있습니다.

결국 소수자에게 입양된 자녀가 경험할지 모르는 어려움은 소수자의 입양을 금지해서가 아니라, 사회가 장애인/한부모/성적소수자/혼혈인 등에 대해 보다 열린 마음을 가져야 해결되는 문제입니다. 그럼에도 아동이 고아원에서 자라는 게 어쨌든 나으리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훨씬 많다면, 단계적인 기준을 설정해 둘 수 있겠지요. 예를 들어, 소수자 입양시에는 입양가능아동의 연령 하한선을 설정해, 의사소통이 가능해진 고연령 시설 아동들만 대상으로 하여 아동이 직접 선택하게 한다든가요. 하지만 이런 어중간한 양보책은 부모됨의 욕구 충족 측면에서 문제가 있겠지요.

어딘가에서는 시작점이 필요합니다. 입양은 부모에게도 그 사람의 인생을 좌우하는 대단히 어려운 결정이고, 입양을 원하는 사람에게는 친부모가 될 자격보다 훨씬 엄격한 기준이 사회적으로 이미 요구되고 있습니다. '실수로' 임신은 해도 '실수로' 입양은 못 합니다. 성적 소수자의 입양은 다행히 이미 다른 나라에서 수십년 간 시행되어 왔고, 그 결과 수많은 아동들이 고아원이 아니라 자기 부모와 자기 가족과 친척을 갖고 자라날 수 있었습니다. 그 아이들이 고아원에서 자랐다면 더 잘 살았으리란 확신이 들지 않는 한, 또는 입양하고자 하는 '정상' 가정의 수가 가정을 필요로 하는 아동의 수보다 많아지지 않는 한, 저는 입양을 결정하고 다른 조건을 만족한 모든 개인에게 부모됨의 권리가 인정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2007년 5월 9일 수요일

2007년 5월 9일 수요일 : 근황 겸 공지

들러주시는 분들께 죄송스럽게도, 홈페이지가 제대로 관리되지 않고 있습니다. 이유는 1)집에 인터넷이 없고 2) 바빠서입니다. 일단 시험 준비중인데다, 평소라면 인터넷을 했을 시간에는 간간히 흘러들어오는 일들을 처리하고 있습니다. 일 미루는 것을 싫어하는 성격이라 간신히 무리없이 넘어가고 있기는 합니다.

지난 주: K사 - "아무래도 A 부분까지 번역을 해야 할 것 같아요. 다음 주까지 보내주시겠어요?"
제이: "예, 그렇다면 화요일까지 보내겠습니다."

화요일 오전: A를 끝내고 잠깐 느긋한 기분이 됨.

화요일 점심: B사 5/15 1차 교정 예정 소식을 들음.  
('좋아, 받는 즉시 시작해서 13일에 끝내면 할 만 하겠군.')

수요일 오전: K사 2 - "C 해서 16일까지 보내주시겠어요?"
제이: "예, 알겠습니다."
('앗, 이건 조금 부담스러운데.....얼른 해서 12일에 보내야겠군.')

수요일 오전: K사 1 - "D도 중순까지는 보내 주셔야겠어요."
제이: "예,  주말에 확인해 두겠습니다."
('어, 이것도 시간이 좀 필요한 일인데! 일정이 위험해지고 있다......')

사실 4월부터 이랬는데, 5월 말까지는 계속 이런 상태이겠네요. 따라서

1) 6월 말까지 홈페이지 업데이트가 거의 없겠습니다. 들러 주시는 분들께 제대로 인사하지 못해 송구합니다.
2) [어둠의 속도]가 나오면 이벤트를 하겠다고 했는데, 요러해서 6월 안에 책 세 권이 한꺼번에 나올 예정입니다. 그러면 시험을 끝낸 7월 초에 네 권을 묶어서 뭔가 해 보지요. 홈페이지 이벤트 선물로 먹을거리를 사놓지 않아 다행입니다그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