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 2월 29일 일요일

2004년 2월 29일 일요일

승민오빠발리에서 점심식사를 했다. 아침을 안 먹고 갔는데, 요리사 한 명이 병가를 내어 주문이 안 되는 요리도 많고 나오는 데 시간도 걸려 기다리느라 괴로웠다. 스프링롤은 뜨거웠다는 것 밖에 기억나지 않을 정도. 요전에 무척 맛있게 먹었던 훈제닭요리를 시킬까 하다, 그냥 새로운 닭요리에 도전해 보았다. 무난하지만 맛있었다. 소꼬리스프도 괜찮았는데, 먹을 때는 허기 때문에 아무 생각이 없었으나 배가 차고 나니 꼬리를 흔들며 '음메~'하는 황소 생각이 났다. 히히히.


스프링롤

소꼬리스프

치킨

식사 후에는 종로 3가 씨네코아 옆에 있는 커피집 카페 뎀셀브즈에 가 보았다. 대형 테이크아웃 커피집같은 외관에 속지 말자. 맛있다. 요전에 커피브레이크에서 들은 적이 있는 곳이라 추출할 때 유심히 보았는데, 원두의 신선도는 가늠하기 어렵지만(영화관 옆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일단 회전은 빠를 듯) 원두 분쇄-추출 사이에 걸리는 시간이 짧고 템핑이 정확하여 마음에 들었다. 다크생초컬릿도 이름에 비해 달기는 하나 개운하니 괜찮았다. 달지 않은 다크초컬릿 만나기가 참 어렵군.


바닐라스트로베리케익

다크생초컬릿

에스프레소더블

승민오빠가 생일선물로 북스탬프를 주셨다. 스템프 측면에 Happy Birthday to Jay라고도 쓰여 있다! 우와우와! 찍어보라고 요전에 빌려드렸던 '링크'까지 챙겨와 주셔서 맨 뒷장에 꾸욱.



그리고 영풍문고에 만화책을 보러 들렀다. 궁5권과 권교정씨의 신작 '매지션'을 사러 갔는데, 매지션은 아직 안 들어왔으나 '천재 유교수의 생활'22권이 있었다. 하지만 22권을 이미 샀는지 안 샀는지 도통 기억이 나질 않아 일단 궁5권만 가져왔다. 집에 와서 확인해 보니 아직 안 샀던 책이네. 다음에 한양문고에 가서 매지션이랑 같이 사야지. 만화책 서가와 지하2층 디자인샵을 둘러보고 종각역에서 헤어졌다.

밤에는 오빠가 오늘 '첼로 빅4 콘서트'를 하더라고 알려준 덕분에 EBS 예술의 광장을 챙겨 보았다. 2월 1일 예술의 전당, 서울바로크협주단. 프란스 헬머슨, 미클로스 페레니, 아르토 노라스, 다비드 게링가스. 실제로 네 명이 함께 무대에 선 것은 아니고, 페레니가 슈만 첼로협주곡 가단조(op.129)를, 나머지 세 명이 펜데레츠키의 '3대의 첼로를 위한 협주곡'을 연주한 공연이다. 슈만의 협주곡처럼 '흐름'이 있는 음악이 좋다. 딱히 특정한 줄거리를 생각하고 쓰여지지 않았더라도, 분명한 길이 보여 그 선만 따라가면 쉽게 감정을 탈 수 있는 곡 말이다. 그 '쉽다', '어렵다'가 작곡가보다 내 쪽에 달린 문제이긴 하지만. 혼자 벌러덩 누워 내키는 대로 손을 휘저으며 나름 흥겹게 들었다. 흥겨운 곡이 아닌데도 워낙 오랜만에 음악을 들었기 때문인지 금새 감정이 북받치며 손이 취한 마냥 춤을 추는 것이.......; 몇 달 동안 서울시향 정기연주회에도 못 가고 씨디도 못 듣고 지냈더니 스트레스가 쌓였나 보다. 3월에는 한숨 돌릴 수 있을 줄 알았는데, 공부도 만만치 않을뿐더러 겨우 시간이 나는 주말에는 마음에 드는 공연이 없다. 신상준 악장님 보고싶어요. 그나저나 펜데레츠키 좋더라. 이번 처음 들은 것 같은데. 본래 현대음악이 가지는 '현대적인' 긴장감을 즐기는 편이라 그런지.

자러 가야지. 내일은 명진이고모 결혼 & 01학번 모임. 모레부터는 다시 독서실.

2004년 2월 28일 토요일

2004년 2월 28일 토요일 : 그녀를 믿지 마세요

학교와 독서실에 잠시 들렀다가, 인수오빠우동촌에서 점심식사를 했다. 준비 시간 문제로 불판을 사용하는 메뉴가 없어진 대신 돈까스 메뉴가 새로 생겼다. 아아, 야끼우동이 없어졌어! 낙심. 나는 돈까스 정식, 오빠는 치즈돈까스에 도전해 보았다. 신림동에서 맛있는 돈까스를 먹을 수 있다니 감개무량이로소이다.; 다음에는 치즈돈까스를 먹어야지.

그리고 그녀를 믿지 마세요를 보러 연흥시네마에 갔다. 일찍 가서 옆의 커피빈에 앉아 오랜만에 체스를 두었다. 이기고도 남을 유리한 형세를 스테일로 끝내버려 몹시 아쉬웠다. 늘 하는 말이지만, 마무리가 부족한 점이 나의 문제다. 체스를 두며 오빠가 가져온 한라봉을 까먹었다.
영화는 가볍고 즐겁고 깔끔한 로맨틱 코미디로, 기대한 만큼 재미있었다. 웃었다 울었다 하며 영화를 보고 나니 시험 후의 답답했던 마음이 많이 풀렸다. 김하늘씨 멋져요.

집에 와서 인수오빠가 생일선물로 준 캐리비안의 해적 디비디를 봤다. 죠니뎁씨도 멋져요. ♡

2004년 2월 7일 토요일

2004년 2월 7일 토요일

SF팬덤 산하 지구정복 비밀결사 모임(뻥)이었다. 이번에는 까리용박사님도 멀리서 오셨다. (박사 축하합니다.) 야롤님, 아스님, 나는그네님, 인수오빠, 에라오빠, 제이드님, 상준님이 압구정에 있는 일식집 에 모였다. 루크님 커플(!)을 볼 기대에 부풀었으나 아쉽게도 두 분 다 안 오셔서 몹시 낙심했다. 하지만 3월에 신접살림 구경 가기로 했으니 그때까지 기다려야지. 최근 지인이나 친척이 여럿 결혼했고, 본래 결혼이 새삼스레 호들갑 떨 소식은 아니지만, 루크님의 결혼이란 눈 앞에서 보기 전에는 도무지 실감이 나지 않는 사건이라서 말이야.

경수사는 몇 번이고 다시 찾을 만큼 탁월하지는 않아도 기본에 충실하고 제값을 하는 집이었다. 어패류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 편인데 오랜만에 맛있게 잘 먹었다. 특히 초밥이 괜찮았고 메로구이도 이만하면 훌륭하다. 다만, 맨 마지막에 나온 우동(?)은 정식의 분위기로 보나 맛으로 보나 양으로 보나 왜 나왔는지 모르겠더라. 식사 나오는 속도가 너무 빨랐던 점도 아쉽고.

오늘의 하이라이트는 얼마 전 '서연이 아빠'가 되신 상준님의 "확산 그만하고, 이제 그만 수축해"였다. 처음에는 한약에 들어간 스테로이드에 대해 말씀하시던 야롤님이 고구마인지 감자인지 덩쿨까지 새어나가 버리시자 던진 저 멘트! 상준님의 감각에 감동하여 박수까지 쳤다. 음....대단...... (물론 이 유머의 핵심은 야롤님이 쿼런틴을 번역한 당사자란 점이다.)

참, 인수오빠가 시험 잘 치라고 초컬릿을 주셨다. 잇힝.



























식사 후엔 플라스틱에 가서 차를 마셨다. 아홉 명이나 되니 테이블마다 화제가 달라져 정신이 없었다. 인수오빠는 SF관련 웹사이트를 새로 만들기로 했다. 웹진과 커뮤니티의 중간 정도를 생각하고 있는 듯. 상준님께서 동물 발자국이 그려진 손수건을 보여주셨다. 희한하게도 동물 전체 사진을 보는 것보다 현실감이 느껴졌다. 재조립해 놓은 공룡 뼈 전시물보다 공룡 발자국 화석이 더 강렬하게 다가올 때처럼, 어쩐지 묘한 기분.







압구정역에서 팬덤 분들과 헤어지고 승민오빠를 만났다. 프린세스 호텔 1층의 제과점 본 누벨에 가서 초컬릿을 몇 개 골랐다. 전시해 놓은 초컬릿을 보니 무척 행복해졌다. 맛있는 초컬릿! 사랑해요!
티뮤지엄에 초컬릿을 가져가서 홍차와 함께 시식해 보았다. 음......너무 달아! 달고 부드러운 초컬릿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틀림없이 칭찬할 만한 깔끔한 맛이었으나, 나는 진한 초컬릿을 좋아하는 편이라 조금 미련이 남았다. 그래도 누가 초컬릿 살 곳을 찾는다면 기꺼이 추천. 승민오빠께 이벤트 당첨 선물을 드리고 함께 다기 구경을 하거나 이야기를 하며 어슬렁 어슬렁 쉬었다. 전시해 놓은 홍차/우롱차/허브차도 다 열어보았다. 하하. 내가 마신 차는 '파이브오클락Five o' clock'.



그리고 동진님께 연락해 보니 근처에 계셔서, 매드포갈릭에서 저녁식사를 했다. 마늘을 좋아하여 예전부터 가 보고 싶었는데 이제야.....마늘을 재료로 쓴다는 장점을 빼고 보면 그냥 어수선한 패밀리 레스토랑이었다. 볶음밥은 지극히 평범한데다 밥알이 너무 단단했다. 맛있게 꼬들꼬들한 밥이 아니라 심이 서서 단단한 밥맛이 났다. 하지만 피자는 맛있어! 꿀을 함께 내놓은 것도 좋은 아이디어네. 다음에 집에서도 이렇게 먹어봐야겠다.









여기까지 왔으니 다음 코스는 물론 압구정 커피집. 포토넷의 참꼴님(동진님 친구분)과 우연히 만났다. 바에 앉아 열심히 작업중이셨다. 동진님이 가져오신 고양이 사진집을 보며 참꼴님과 커피집 선생님의 말씀을 들었다. 사실 나는 요즈음 음식 사진에 자신이 붙어 마음 속으로 잘난 척을 하고 있었는데, 참꼴님과 동진님 이야기를 듣고 있자니 사진 공부를 많이 하지도, 사진을 많이 찍지도 않았으면서 너무 쉽게 우쭐거렸다는 생각이 들어 얼굴이 화끈거렸다. 무슨 일이든 충분히 진지하게 노력하지 않으면 안 된다. '취미니까', '그냥 해 보는 거니까', '아르바이트니까', '내년에 또 있으니까' 같은 이유로 부족함이 아닌 불성실함까지 덮을 수는 없다. 사진을 잘 찍지 못하는 것은 부끄럽지 않다. 하지만 아직 배울 것, 공부할 것이 훨씬 더 많다는 점을 잊어버린 것은 반성해야지.

바쁘고 즐거운 하루였다. 너무 신나게 놀아버렸기 때문인지 8일,9일에는 가벼운 몸살기로 고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