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 8월 31일 목요일

2006년 8월 31일 목요일 : 세상의 모든 아침

전션과 위치스테이블에서 샌드위치를 먹고, '팡테옹 뒤 시네마 프랑세' 프로그램 중 하나인 알랭 코르노 감독의 1991년 작, [세상의 모든 아침 (Tous les matins du monde)](114')을 보았다.

(중략)

영화를 본 후에는 전션이 함께 일할 통역 분과 만나야 한다고 해서, 그 분이 오실 때까지 광화문 오봉뻉에서 차를 마시며 이야기를 나누었다. 밤 아홉 시가 넘어서까지 일 관계로 사람을 만나야 하다니.....끄윽. 토요일에 장 뤽 고다르 감독의 [네 멋대로 해라]를 함께 보기로 했다. 오늘 관객이 굉장히 많아 깜짝 놀랐는데, 네멋도 벌써 30석 정도밖에 안 남아 있다고 한다. 볼 영화는 미리미리 예매하고, 영화 보면서 수다 떨거나 음식 먹지 맙시다. (b열 86번, 당신 말이오! 부탁을 하면 좀 들어요!)

내일 개강이다.

2006년 8월 28일 월요일

2006년 8월 28일 월요일

0. 어느새 월요일이다.

1. 기관 제출 실습 과제를 했다.

2. 검색 중에 우연히 '탯줄도장'이라는 걸 봤다. 정말로 탯줄을 안에 넣어 만드는 도장이다. '제대도장'이라는 것도 있다. 제대혈 할 때 그 제대다.
" ......조각하여 아기의 배꼽을 저장 할 수 있도록 제작되었으며 하단에는 아기의 이름을 새긴다. 3면의 창을 통하여 아기의 배꼽을 볼 수 있으며 평생의 신표로 사용되는 인감도장에 아기의 처음 생명을......"

3. 입양을 희망하는 양부모의 케이스는 국제 입양이든 국내 입양이든 비슷한 경우가 많다. 몇 번의 임신 시도, 실패, 가정을 이루고 육아를 경험하고 싶은 소망, (국제 입양의 경우) 자국 내 입양의 불확실성 등의 이야기가 이어진다. 친부모의 케이스는 각양각색이란다. 예전에는 강간이나 돌발 임신에 대처하지 못한 저학력 10대 미혼모가 많았으나, 최근에는 미혼모 연령대가 매우 높은 경우도 드물지 않다.

입양 절차는 아동을 중심으로 진행된다. 보호를 필요로 하는 아동이 기관에 들어오면, 이 아동의 파일이 만들어진다. 친부모 상담 기록, 친부모의 입양동의서, 출생증명서, 양부모의 가정조사 자료며 세금계산서 등이 모두 이 파일에 쌓인다.

열 대여섯 살에 불과한 소녀와 역시 그만한 나이인 소년이 출산 당일 입양동의서에 지장을 찍는다. 사귀다가 임신을 했으나 둘 다 계속 사귈 생각이 없고, 이미 몇 번의 중절 수술을 경험한 터라 더 이상 수술하기가 두려워 낳기는 하지만, 키울 수는 없으니 입양시키고 싶단다. 혹은 직장에서 2차 갔다가 호프집에 만난 상대와 한 번 했는데 임신해 버려, 어영부영 하다 보니 중절 시기를 놓쳤기에 그냥 낳긴 한다. 하지만 아이 아버지도 모르고, 출산 다음 날에도 출근 해야 하니까 아이를 기관이 바로 인수했으면 좋겠다. 마을 축제에서 술 마시고 동네 사람이랑 했는데, 이쪽이나 저쪽이나 배우자가 있는 고로 비밀로 입양시키련다. (이런 경우에는 국내 입양만 가능하다.)

'피임을 제대로 하던가, 낳지를 말던가.' 하고 문득 생각했다가, 내가 내 속에 놀라 섬뜩해진다. 아이는 이미 태어났다. 파일의 주인은 지금 이 순간 나와 같은 세계에 존재하는 생명이다. 눈도 제대로 못 뜬 이 증명 사진의 주인공을 기준으로 보면, 차라리 낳지를 말지-란 얼마나 끔찍한 말인지.
편견은 얼마나 쉽게 사람을 잔인하게 하는가. 그리고 그 편협한 냉정함은 얼마나 쉽게 당당해지는가. 서류 한 묶음을 앞에 놓고 부모와 사회의 책임을 말하기란 얼마나 쉬운가. 심지어 나의 책임을 말하기도 얼마나 어렵잖은가.

그러나 진심으로 부끄러워하기란 늘 얼마나 어려운가.



(위 사례들은 특정 사례 그대로가 아니라, 불특정 다수 사례에 해당되도록 요약, 변형, 가공한 것입니다.)

2006년 8월 26일 토요일

2006년 8월 26일 토요일 : 거북이는 의외로 빨리 헤엄친다

시네큐브의 일본인디영화제 서울앵콜상영작 중 미키 사토시 감독의 2005년 작, [거북이는 의외로 빨리 헤엄친다]를 보았다.

무료하게 살아가던 평범한 주부가 우연히 스파이 모집 공고를 보고 스파이가 되는(!) 이야기였다. 단순하고 꼬인 곳 없는 전개에, 소소한 에피소드가 즐거운 영화였다. 사실 배나온 스파이 아저씨라든지, 주위를 살피는 모습이 더 수상한 스파이 아줌마라든지, 어중간한 맛 라면을 만들며 눈에 띄지 않게 살아가는 라면가게 아저씨(멋졌음) 등을 보고 있자니 이건 지정사잖아!; 라는 생각이 들었다. 지정사 분들과 함께 보았더라도 좋았겠다.

2006년 8월 23일 수요일

2006년 8월 23일 수요일

인수오빠가 모 처에서 입수한 그라파이어 4를 넘겨 주셨다. 달(DAL)에 가서 같이 점심을 먹고, EGG에서 차를 마셨다. 오빠가 이번에 장만한 D200과 외장 플래쉬를 구경하고, 수상한 훌륭한 사진도 많이 찍었다.

오빠와 헤어져서는 압구정에 가서 원군님을 잠깐 뵈었다. 며칠 전, 타블렛을 마련하게 된 김에 원군님께 참고도서를 추천해 주십사 부탁드렸었다. 있는 책을 빌려주신다기에 갔는데, 인물화 책부터 만화 작법책까지 여러 권 챙겨 주셔서 고마웠다.

압구정까지 간 김에 커피도 200g 사 왔다. 너무 더워서 종일 몹시 힘들었지만, 집에 와서 맛있는 커피를 마시며 타블렛을 써 보니 신이 났다.

우리 가족 첫 작품

2006년 8월 22일 화요일

2006년 8월 22일 화요일 : 아파트 열쇠를 빌려드립니다 / 피아니스트를 쏴라

1:00 서울아트시네마 시네-바캉스 [아파트 열쇠를 빌려드립니다(The Apartment, 빌리 와일더, 1960, b&w, 125m)]

H사

맥도널드 (궁님)
7:00 하이퍼덱 나다 시네-프랑스 [피아니스트를 쏴라(Tirez sur le pianiste, 프랑수와 트뤼포, 1960, b&w, 80m)]


볼 때는 몰랐는데, 집에 오면서 확인해 보니 두 편이 같은 해에 개봉했더라. 너무 더워서 자세한 일기는 다음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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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영화제(9/9~17) 프로그램이 보기 너무 불편하게 되어 있도다.

[현대무용사 2] 11일 12:00, 15일 9:00 -> 다큐(인 듯)
[진 켈리, 춤을 해부하다] 12일 9:30, 16일 5:00 -> 처음에는 '진 켈리를 해부하다'로 잘못 읽고 깜짝 놀랐다.
[지젝의 기묘한 영화강의] 10일 8:30, 13일 4:00 -> 그 지젝이다.
[프로듀서스] 9일 7:00, 17일 1:30 -> 뮤지컬
[코미디 오브 파워] 9일 4:30 -> 영화.
[사운드 오브 발리우드] 10일 7:00 -> 다큐
[화성식민지] 12일 1:00, 14일 1:00 -> 다큐

2006년 8월 20일 일요일

2006년 8월 20일 일요일

포베이 신림역점에서 W사의 BK님, 경아님, (오랜만에 서울 오신) 동현님과 함께 점심 식사를 했다. BK님은 일전에 W사에서 뵌 후 처음이었는데, 이번에는 회사 밖에서 만나서 그런지 그 때 기억보다 더 상쾌한 미인이시더라.

식후에는 바로 옆에 있는 카페 아일랜드라는 찻집에 가서 차와 케이크를 먹었다. BK님과 동현님이 가져오신 여러가지 책들을 보며 일 이야기(즉 책 이야기)를 했다. 동현님이 Song of Kali 슬립케이스 한정판 사인본을 가지고 와서 자랑하셨는데, 새로 만든 하드커버도 깔끔했고 Dan Simmons의 서명도 멋있는, 탐나는 책이었다.

저녁에는 친구 재영과 이대 앞에서 만나 저녁으로 알밥을 먹고, 정문 앞 던킨도넛에 가서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다 집에 왔다.

2006년 8월 19일 토요일

2006년 8월 19일 토요일

저녁에 귀가하던 아우님에게서 전화가 왔다. 무지개가 떴단다. 얼른 나가 보니 정말 커다란 무지개가 북한산 자락에서 둥그렇게 뻗어 있었다. 빨주노초파남보 색이 다 보이는, 그림 같이 깔끔한 반원 무지개였다. 급히 사진을 찍긴 했으나 실물에 비하면 초라하도다.

그냥 집에서 쉬고 있었는데, 저녁에 일요일 낮까지 제출해야 하는 실습프로그램 평가서가 생각났다. 다 하고 잤다.

2006년 8월 18일 금요일

2006년 8월 16일 수요일 ~ 18일 금요일

16일 수요일 저녁 7:00 실습세미나

를 마치고 집에 오니 우재오빠로부터 요시토모 나라가 디자인한 장난감(으로 추정되는 물건)이 와 있었다. 여러 디자이너들의 작품을 제작 판매하는 Cereal Art 라는 회사에서 낸 PopCup이다. AA전지 두 개 를 넣고 전원을 켜면 컵이 천천히 돌면서 굴러간다. 장애물이 나타나면 뱅글 돌아 옆으로 방향을 전환, 다시 슬금슬금 움직이는데, 그 속도가 '약간 느림' 정도라 보고 있으면 왠지 힘이 빠진다. 그래서 일단 '탈력강아지'라는 이름을 붙여 주고, 심심할 때마다 켜서 거실에 풀어(?) 놓고 어디로 가나 구경하고 있다.


(실제로는 머리보다 컵이 더 크다. 컵 크기는 베어스터바하의 점보머그보다 조금 작은 정도.)

17일 목요일 오후 2:00 교수님 기관방문

18일 금요일 오후 12:00 실습 끝

2006년 8월 14일 월요일

2006년 8월 14일 월요일

이집트 연수를 다녀오신 동진님과 오랜만에 만나 달(dal)에서 저녁을 먹었다. 내가 좋아하는 달콤한 커리 파니트 마크니와, 탄도리 니샤라는 대하구이를 주문했다. 탄도리 니샤는 이번에 처음 먹어봤는데 굉장히 맛있었다.

식후에는 성곡도서관 앞에 있는 커피스트(Coffeest)라는 카페에 갔다. 커피가 맛있고 분위기도 좋았는데 -홍대 앞 비하인드(b-hind), 클럽 에스프레소, 이대 앞 티앙팡을 섞은 느낌이랄까나- , 이미 꽤 유명해져 주말에는 무척 시끄럽다고 한다. 소리가 빠져나가지 못하는 구조라 손님이 대엇 명 뿐인데도 제법 시끄럽게 느껴졌다. 손님들이 글을 남기는 수첩에 아주 어린 아이들이 그린 그림도 여럿 있는 것을 보니, 아이를 동반한 부모들도 적잖게 찾는 모양이다. 어쨌든 일단 커피가 맛있으니 추천.

카메라를 가져가지 않아 탄도리 니샤와 커피스트의 사진을 못 찍어 아쉬웠다. 결식아동 방학 프로그램이 끝나 일반 후원개발 업무에 들어갔는데, 이미 실습이 끝날 때가 되어 관심 있는 분야에 대해 다 못 배울 것 같아 안타깝다. 게다가 15일은 휴일이니......쉬는 것은 싫지 않지만, 차라리 기관에 나가서 뭐라도 하나 더 보고 싶은 것이 솔직한 심정이다.

2006년 8월 13일 일요일

2006년 8월 13일 일요일 : 기이한 밤

서울아트시네마에서 마르셀 레르비에의 1942년 작, [기이한 밤(La nuit fantastique, 104m, B&W)]을 보았다. 얼굴도 못 본 꿈 속의 여인을 사랑하게 된 주인공 드니는, 시도 때도 없이 졸다가 아르바이트하는 꽃집에서 잠이 들었다. 그리고 마법 대학 교수의 딸인 꿈 속 여인을 만나 단두대가 있는 교수의 집, 교수의 마술 쇼가 열린 루브르 미술관, 정신병원, 교수가 경영하는(!) 마네킹들이 있는 나이트클럽 등에 가는 모험을 한다.

몽환적인 연출 덕분에 무척 흥미진진하게 보았다. 특히 교수의 집, 눈 먼 지인이 등장하는 장면, 나이트클럽에 들어가는 장면, 정신병원 옥상 장면의 빛처리가 특히 인상적이었다. 원래 8시 30분의 [까마귀]도 보려고 상영 시간 사이에 할 일을 가져갔는데, 한밤의 모험(?) 을 다룬 흑백 영화를 보고 나오니 내가 밤을 샌 것 같았다. 아직 해도 지지 않은 일곱 시인데, 어서 집에 들어가야겠다는 기분이라 그냥 귀가했다.

화요일부터는 공포영화 상영이라, 22일 상영되는 빌리 와일더의 1960년 작 [아파트 열쇠를 빌려드립니다]를 마지막으로 나의 시네-바캉스는 끝. 하지만 하이퍼덱 나다의 브레송 전, 서울 영화제, 시네큐브 팡테옹 뒤 시네마가 기다리고 있다!

2006년 8월 13일 일요일 : 부모님 어록 모음

남은 이삿짐을 정리하면서 (아직도 하고 있다!) 일기에 쓰려고 메모해 두었으나 따로 쓰지 않았던 메모 쪽지를 몇 개 발견했다.

1. 2005년 11월 15~20일께로 추정

(늦은 밤, 어머니가 부엌에서 요리를 하다 말고 갑자기 자지러지게 웃으며 거실로 뛰어나오셨다. 깜짝 놀라 "엄마? 무슨 일이에요?"라고 하자 어머니가 웃음을 참으며 하시는 말씀.

"지금 청국장 재료를 다듬어서 한 통에 넣고 있었는데, (한참 웃다가) 밤새 파가 청국장 냄새에 기절하겠다! 아하하하하하"

2. 2006년 4월 28일

어머니: (전략) 그런 점은 엄마 참 소녀같지? 그래서 싫어?
제이: 하하, 좋아요.
어머니: 이렇게 물어보면 좋다고 해야지 어쩌겠어~
제이: 우웃, 그런 소녀답지 않은 권모술수를!
어머니: (웃으면서 안방 문을 닫고 들어갔다가 고개를 쏙 내밀며)
나는 소녀가 아니거든. ^-^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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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이 메모의 (전략)부분이 더 궁금하다. 대체 무슨 얘기를 하다가 이런 대화를 했는지 기억이 안 난다.

3. 이사 하기 전 주 월요일

(이사 때문에 물건을 정리하다 보니 분리수거 할 것이 많이 나왔다. 더운 날씨에 쓰레기를 들고 몇 번이나 오르내린데다, 아직 정리할 것이 많이 남아 있어 어머니와 나 둘 다 슬슬 짜증이 나고 있었다. 그런데 귀가해서 아버지 몫으로 우리 두 사람이 들지 못했던 가장 무거운 종이 상자가 잔뜩 쌓여 있는 것을 본 아버지는......)

아버지: (진심으로 감탄하며) 하이고야! 이거 왕건이가 남았네!
어머니, 제이: (저도 모르게) 풉.

우리 집에서는 이런 아버지 말씀을 "탈력 멘트"라고 부른다.

2006년 8월 11일 금요일

2006년 8월 11일 금요일

글을 쓰기 귀찮을 때가 있는가 하면, 글이 쓰고 싶어 견디기 힘들 때도 있다. 전자를 손발의 게으름이라고 하고 후자를 정신적인 설사라고 한다. (후자는 안정효 씨의 말이다.) 쓰고 싶은 글이 있는가 하면, 써야 하는데 쓰기 싫은 글이 있기도 하다. 쓰고 싶으면 즐거이 쓰면 된다. 쓰기 싫으면 마음껏 투덜거리고 왜 싫은지 생각해 본 다음에, 마음이 동할 때 쯤 주섬주섬 컴퓨터 전원을 켜면 된다. 가장 부담스러운 글은 좋지도 싫지도 않은데, 아니 그렇기 때문에, 어느새 '해야 할 일'목록에 들어와 완성되기를 기다리고 있는 항목들이다.

일기로 돌아와서.

수요일에 다른 행정일로 학교에 갔다가, 우리 과 바로 옆 사무실에 계신 아스님을 잠깐 뵈었다. 맛있는 차(계수나무 잎이 들어간 우롱차였던가?)를 마시고, 마침 들어온 아스님의 석사논문도 한 권 받았다. 날이 너무 더워 말도 못하게 고생했다. 마른 하늘에 천둥번개도 쳤다.

목요일에 새 컴퓨터 책상이 들어왔다. 수납 공간이 많고 책 등을 올려 둘 자리도 많은 좋은 책상이다. 좋은 도구의 힘에 새삼스레 감탄하고 있다. 예전에는 컴퓨터 책상에 책을 둘 자리가 없어서, 숙제를 하거나 여러 자료를 살펴야 하는 글을 쓸 때 무척 힘들었다.

목요일에 피곤해서 너무 깊이 잠드는 바람에, 금요일에 오전 8시에 일어났다. 지하철을 타면 5분 정도 지각할 것이 확실해서 부득불 택시를 잡았다. 그런데 택시님이 지하철 노선도를 따라 꾸물꾸물 돌아가 15분 지각을 하고 말았다. 택시비가 얼마나 나왔는지는 말하기도 싫다. 이러니까 내가 택시를 안 타지, 하는 말이 절로 나왔다. 설상가상으로 하필 오늘 오전에 총괄수퍼바이저가 우리 팀을 찾다가 내 지각 사실을 알았다.

오늘로 여름방학 결식아동 프로그램이 끝났다. 실습은 아직 한 주 남았지만, 어쩐지 이미 다 한 기분이라 같은 팀 실습생 두 명과 함께 홍대 앞 그리스음식점 그릭조이에 가서 저녁을 먹었다. 실습 하는 동안 계속 함께였지만 거의 애들 얘기만 계속 했던 터라, 한 숨 돌리며 편하게 이야기할 기회가 생겨 즐거웠다. 귀가길에는 한양문고에 가서 책을 한 권 샀다.

+ 이번 결식아동 프로그램에서 내가 얻은 가장 큰 성과는 아이들을 조금 쉽게 대하는 법을 익혔다는 점이다. 일 자체는 시작할 때부터 말썽이 많았고 진행되는 내내 덜컹거렸다. 사회복지전공자로서 배운 점이 있느냐는 질문을 받으면 먼 산을 바라보며 웃을 수 밖에 없을 상황도 많이 겪었다. 그러나 그냥 개인으로서는 이 정도로 만족한다. 나는 초등학교 1학년~중학교 2학년 연령대를 대하는 일을 무척 불편해했다. 아니, 무서워했다. 오죽하면 사촌 동생들에게도 (애들이 좀 자라기 전까지는) 인사 정도밖에 안 했다. 같이 놀아주기는 커녕 최대한 피해다녀서 그 나이대일 때 사촌 동생들에 대한 기억이 희미할 정도이다. 사실 아우님에게도 썩 잘 해주지 않았던 것 같다. 그런데 일이랍시고 어린이들과 부비적대고 나니 자신감이 조금 생겼다. 내 아이 키울 자신도 없었던 데 비하면 굉장한 진보다.

2006년 8월 7일 월요일

2006년 8월 7일 월요일: 질 수 없닷!

아이들과 한강시민공원 야외수영장에 갔다.

영혜(가명): 김가X 선생님, 선생님 몇 살이에요?
김선생님: 스물한 살.
영혜: 그럼 정소연 선생님이 선생님들 중에 제일 나이 많아요?
제이: 응.
영혜: 와, 정소연 선생님 할머니다 할머니.
제이: 뭣이! 그럼 영혜 넌.....할아버지닷!

이상 언제나 어린이 여러분을 진심으로 대하는 정소연 선생님 (23세, 서울시 은평구) 이었습니다.

2006년 8월 6일 일요일

2006년 8월 6일 일요일 : 카사블랑카 / 한나와 그의 자매들

서울아트시네마 '씨네-바캉스(Cine-Vacances)' 상영분 중 [카사블랑카(Casablanca)](마이클 커티즈, 1942, B&W, 102m)를 보러 갔다. 시간에 댈 수 있을까 걱정했는데, 열심히 달려 비상구 안내 중에 들어가는 데 성공했다. 이사한 후로 서울아트시네마가 가까워져서 좋다.

비시 정부 시절 프랑스령 모로코의 항구 카사블랑카를 배경으로 한 이 영화의 내용은 매우 유명하니 생략. 어쨌든 참으로 로맨틱한 영화다. 엔딩을 모르고 있었던 터라, 마지막까지 새드엔딩이 아니길 전심전력으로 기원하며 흥미진진하게 볼 수 있었다. 덕분에 엔딩의 감동도 두 배. 험프리 보가트의 대사 처리가 훌륭했다. 험프리 보가트는 트렌치 코트를 입으면 얼굴이 길어보여서 내가 유심히 보는 배우는 아니지만, 그 대사 읆는 방식이랄까, '목소리'가 아니라 '말하는 모습'이 매혹적이라는 생각은 볼 때마다 한다.

영화를 본 후에는 sabbath님과 잠깐 인사를 나누었다. DVD 건도 있고 해서 차라도 한 잔 살까 했는데 일행이 있으시기에 그만두었다.

카페 뎀셀브즈에 가서 2주 만에 원고를 참새 눈물만큼 하고, 내일 제주도로 내려가는 용진군을 만났다. 커피를 마시고 쿠키와 케이크를 먹으며 이런 저런 이야기를 했다. 어째서인지 몰라도 나중에는 결혼이 화제에 오르기도 했다.

여섯 시 십오 분에 일어나 나는 서울아트시네마로, 용진군은 지하철역으로 갔다. 우디 앨런의 [한나와 그의 자매들(Hannah and Her Sisters)](1986,103m)은 21일 상영분을 보려고 예매 해 둔 영화였는데, 여섯 시가 되자 나온 김에 보고 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서 현매해 들어갔다. 이번에도 관객이 평소보다 훨씬 많았다. 우디 앨런이 나오면 일단 웃고 보는 분위기여서 대체 왜 웃지 싶을 때도 있었으나, 관객이 적어서 심심한 것보다는 나았다. 특히 우디 앨런 특유의 장광설이 이어질 때는 같이 낄낄거리는 재미가 쏠쏠했다. 완소 우디 앨런!
(그렇지만 제발 음식물 반입은 하지 말자. 너무 들고 들어오는 사람이 많아서 내가 규정을 잘못 알고 있는 건가 싶기까지 했다.)

집에 들어오니 아홉 시쯤 되었다. [한나와 그의 자매들] 예매를 취소하고 다음 주말의 [기이한 밤(La nuit fantastique)]을 예매했다. 이제 실습일지와 개인일지를 써야지. 주말 동안 영화를 세 편 보고, 글도 쓰고, 어른인 지인들도 만났더니 좀 살아난 기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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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22 7:00 하이퍼덱 나다 [피아니스트를 쏴라](트뤼포, 1960)

2006년 8월 5일 토요일

2006년 8월 5일 토요일 : 사랑은 비를 타고


멜란쟈네

피자 꾸아뜨로 포르마쥐


아우님과 홍대 앞 치뽈리나에서 저녁식사를 했다. 전채로는 올리브오일에 가지를 절인 멜란자네를 골랐다. 가지라 반신반의하며 시켰는데 - 나는 가지, 버섯, 알로에, 호박 등 물컹물컹한 음식의 식감을 좋아하지 않는다 - 뜻밖에 개운하고 상큼한 게 무척 맛있었다.

피자는 꾸아뜨로 포르마쥐. 고르곤졸라, 모짜렐라(♡), 리코타, 브리에 치즈를 얹은 깔끔한 피자다. 그리고 내가 서울에서 두 번째로 좋아하는 새우와 샐러리 파스타! (첫 번째는 역시 라리에또의 토마토치즈 스파게티이지.) 계란을 넣어 반죽한 면에 새우와 샐러리, 크림소스.

피자와 파스타 모두 즐겨 먹는 맛있는 메뉴였고, 새로 도전한 가지 전채도 성공이라 기뻤다. 아우님과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며 하나도 남기지 않고 깨끗이 먹었다.

식후에는 버스를 타고 종로로 갔다. 원래는 카페 뎀셀브즈에서 커피와 케이크를 든 후 영화를 보기로 했었는데, 저녁 시간에 둘 다 늦어 종로에 도착해 보니 카페에 들어갈 시간이 없었다. 그래서 케이크만 두 가지 골라, 서울아트시네마 로비로 올라갔다. 서울아트시네마 내에 있는 커피집에서 커피를 시켜 케이크와 함께 먹을 생각이었다. 그런데 도착해 보니 이게 웬 걸, 로비에 빈 자리가 없는 게 아닌가! 서울아트시네마에 그렇게 관객이 많은 모습은 예전 안국동 시절 멜빌전 이후 처음 보았다. 그래서 로비 밖 벽 위에 베리베리스트로베리 케이크를 꺼내어 놓고, 둘이서 인사동을 내려다보며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나누어 마셨다. 냉방은 되지 않았지만 이미 해가 거의 저문데다 4층이라 그리 덥지 않았다.

그리고 드디어 [사랑은 비를 타고(Singin' in the Rain)](스텐리 도넌 & 진 켈리, Color, 1952, 103m) 상영 시작! 스크린에서 보는 건 이번이 처음이었는데, 역시나, 정말 재미있었다. 사실 ([베를린 천사의 시]같이 스크린으로 보니 훨씬 강렬했던 영화와 달리) TV나 뮤지컬로 볼 때와 크게 다르다는 느낌은 받지 못했지만, 여러 관객들과 함께 웃으면서 볼 수 있었던 점이 좋았다. [Make 'em Laugh]나 [Singin' in the Rain] 같은 유명한 넘버가 끝난 다음에는 관객들이 박수를 치기도 했다. 상영이 끝난 다음에도 박수를 꽤 많이들 쳤다. 극장에서 나오는데, 내 뒤로 나오던 관객이 일행에게, "정말 기분이 업 된다."고 하더라. 암, 그렇고말고. 나는 2주 전부터 [Make 'em Laugh],[Singin' in the Rain], [Good Morning] 등을 부르며 다녔었다. 아, [Beautiful Girl]도 좋아. 아우님도 웃으면서 재미있게 보아서 기뻤다.

밤에는 깼다 잠들었다, 에어컨과 선풍기를 켰다 껐다, 찬물을 뒤집어썼다 하면서 새벽 네 시 정도까지 잠을 설쳤다. 너무 더웠다.

2006년 8월 5일 토요일


놀랍게도, 아직도 이삿짐 정리중이다. 내가 무슨 부귀 영화를 누리겠다고 (이하동문)

7월 31일부터 여름방학 결식아동 프로그램을 시작했다.
"전 콜라 안 먹어요. 콜레스테롤 때문에요. 사이다 주세요." , "선생님 스물아홉살! 목 주름 보니까 스물아홉이다.", "다크써클을 없애려면 브로콜리를 먹어야 해요."

8월 1일에는 어린이 여러분들과 비누방울 그림그리기를 했다.
"싫어요.", "나가서 놀면 안돼요?", "고맙습니다.", "언니 진짜 미워요.", "아 이게 뭐야.", "저는 1학년 3반 3번이에요. 우리 가족도 세 명 이에요."

8월 2일에는 새 모니터, 키보드, 마우스가 도착했다. 한강시민공원 야외수영장에서 어린이 여러분들과 튜브 칙칙폭폭을 했다.
"하루 종일 놀았으면 좋겠어요.", "벌써 가요?", "꽃단장 하는데 무슨 시간이 그렇게 많이 걸린대." , "더워 죽겠어요." , "예약 왜 안 했어요?", "우리 이제 친하게 지내자.", "선생님 또 칙칙폭폭 해주세요.", "미끄럼틀 탈래요.", "짜장면 사줘요.", "선생님 몇 살 연상까지 사귀어 봤어요? 전 세 살 연상이랑 사귀었었어요.", "이수만은 돈수만이에요.", "아 나한테도 좀 줘!"

8월 3일에는 어린이 여러분들과 [괴물]을 보았다. 극장 간다는 데 대체 손전등을 왜 갖고 왔니......orz
"선생님~ 괴물이요~ 있어요." , "xxx가 죽어서 슬펐어요." , "괴물은 어떻게 됐어요?", "저는 진짜로 하나도 안 무서웠어요.", "xx가 잡았던 손이라서 싫어요.", "에스에스라니, 선생님 뭐에요? 안티에요? 안티들이나 에스에스 오공일이라고 한다고요."

8월 4일에는 실습 중간평가 발표를 하고, 어린이 여러분들과 풍선아트를 했다.

8월 5일에는 인터넷이 연결되었다. 그리고 어른인 아우님과 저녁식사를 하고 영화를 보았다. (별도정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