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4월 29일 수요일

2009년 4월 29일 수요일 : 번역과 편집

1. 번역자가 최종 책임을 져야 하는 부분 (즉, '오역')

 1) 문장의 의미를 틀림
 2) 문장의 문법을 틀림
 3) 본문의 일부를 누락
 4) 틀린 역주를 담
 5) 번역어나 전문용어가 있는 단어를 음역하거나 잘못 옮김

2. 번역자의 실수를 편집자가 발견하지 못한 경우

 1) 같은 고유명사를 다르게 음역
 2) 문단바꿈을 틀림
 3) 위 1.의 문제를 발견하지 못함

3. 편집자가 최종 책임을 져야 하는 부분

 1) 괄호, 따옴표, 줄표 등과 같은 문장부호를 틀림 (대체로 한쪽이 사라지고 없다)
 2) 단순 오타와 띄어쓰기 등 맞춤법 전반
 3) 강조 표현(원문에서의 이탤릭체), 글꼴이 달라지는 부분 등을 잘못 표시하거나 통채로 날림
 4) 고유명사 표기나 도량형 변환에 일관성이 없음
 5) 글에 남아 있는 오역은 아닌 군더더기들
 6) 본문의 일부를 인쇄 직전 단계에서 누락하거나 수정하고 그대로 출판

4. 누구의 책임도 아닌 경우

 1) 원작자가 글을 못 써서 번역자가 글을 못 쓴 느낌을 줌
 2) 원작이 원래 재미가 없어서 읽는이에게 번역만 좋으면 재밌을 것 같은 느낌을 줌
 3) 원작이 개연성이 없어 번역하다 중간을 날려먹은 듯한 느낌을 줌
 4) 환율은 높고(->저작권료와 인쇄출판비는 높고) 고료는 낮은데 번역자가 이상적인 장인정신이 아니라 받은 돈만큼 하겠다는 자본주의 노동자의 정신으로 일함
 5) 일은 힘들고 근무환경은 열악한데 편집자가 숭고한 희생정신이 아니라 받은 돈만큼 하겠다는 자본주의 노동자의 정신으로 일함

5. 책임소재가 갈리지만 대체로 출판사의 책임인 경우

 1) 책의 하드웨어가 허접함
 2) 책이 예정보다 늦게 나옴
 3) 시리즈물에서 도중에 번역자가 바뀜


내 책임이 아닌 일로 싫은 소리를 들으면 억울해 지는 것이 사람 마음이다. 하지만 출판사가 잘못했는데 번역자가 싫은 소리를 듣는 경우는 (자주) 있어도, 유능한 편집자가 책을 읽은 독자에게서 칭찬을 받는 경우는 전무하다시피 하니 결국 그려러니 해야 하나 싶다. 많은 번역자들이 함께 일할 편집자의 성향과 역량을 생각해 보고 일을 맡는 현실에도 불구하고, 독자들은 편집부의 공과를 거의 의식하지 않는다. (편집자의 이름은 책의 서지정보 페이지에 실린다.)

더 써 봐야 마감을 앞둔 푸념이고, 어쨌든 훌륭한 편집자는 존경받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역자가 역자 후기에서 출판사나 편집자에게 감사 인사를 하면 최종 교정 때 빠지는 경우가 종종 있는데, 편집자는 출판사 직원이고 출판사는 어차피 그 책을 내는 회사이니 자기가 자기 이름을 슬그머니 빼는 마음도 이해는 가지만, 역시 훌륭한 편집자에게는 제대로 감사하고 싶기도 하니까.

제대로 감사하는 법=마감을 잘 지켜서 좋은 원고를 주는 것........................................ㅜ_ㅠ

2009년 4월 29일 수요일

다른 용건으로 홍대 앞을 지나며 한양문고에 들러 볼까 생각했다가, 당장 사야겠다고 생각한 책도 없는데 괜히 들어가면 살 책이 생기기나 하겠지, 싶어 집에 들어왔다.

어제 하루, 다른 일에 정신을 쏟느라 오랜만에 '내일의 신간' 체크를 빼먹었는데 지금 들어가 보니 오늘 [오늘부터 마왕!] 시리즈 16권이 나왔단다. -_-

남편한테 사다 달라고 하고 싶다.......하지만 좋은 아내가 되어야겠다고 반성한지 아직 12시간도 안 지났어......


(반성의 순간)

2009년 4월 26일 일요일

2009년 4월 26일 일요일



소백산 천문대에서 이틀 동안 같은 방을 썼던 윤이형 님은 결혼한 지 일 년 쯤 된 신혼이었다. 동종업계 종사자 커플인 윤이형 님은 나란히 앉아서 글 쓰느냐는 질문에 실소하며, 아뇨, 글 쓸 때는 서로 집 반대편 끝과 끝으로 가요, 하고 말했다. 그리고 결혼 하고 처음 십 개월 동안은 글을 전혀 쓸 수가 없었다고 덧붙였다.

혼인하고 한 달, 나도 글을 전혀 쓸 수가 없었다. 대학원 공부가 바쁜 탓도 어느 정도는 있겠으나, 팔 년이나 학부에 적을 두고 야금야금 학교를 다녀버릇한 내가 댈 핑계는 아니다. 지난 주에는 날은 궃고 마감은 다가오거나 지나가고 있고 아무 것도 창조해 내지 못하고 있다는 감각은 괴롭고 다른 분들의 좋은 글을 읽어서 감을 살려 보자 싶어 배명훈님이나 김보영 님 등 좋아하는 작가분들의 글을 손에 닿는 대로 읽다가 역시 나도 이런 게 쓰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서 일단 창을 열고 새벽까지 닥치는 대로 써 보았으나 쓰면서 보아도 이것은 '이야기'가 아니라는 생각에 더욱 비참해지고 차라리 번역을 했으면 마감이라도 하나 메꾸었을 텐데 하는 자괴감에 허우적거리다가 짜증을 내면서 침실에 들어가 남편을 옆으로 슬슬 밀어내고 이불을 홱 뒤집어썼다.

그리고 아침이 되니 남편이 일어나서 밥은 먹고 마저 자라고 깨운다.

삶이 이야기를 압도하는 순간들이 있다. 그 순간을 지날 때마다 나는 그것에 대해 말할 수 없었다. 단지 그 안에서 살았을 뿐이다. 오랜 시간이 지나서야 그런 경험들을 바깥 세상에 뱉어낼 수 있었다. 술자리에서의 푸념으로, 분위기를 탄 티타임에서의 농담거리로, 잠이 오지 않는 밤에 동생과 나란히 누워 화제삼는 추억거리로. 그리고 그것들로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데는 훨씬 더 오랜 시간이 걸렸다. [화성 아이, 지구 입양기]를 번역할 때 나는 스물한 살이었다. 나는 원고를 할 적마다 그 책을 다시 읽고 다시 울고 역자후기에 뱉어내고 싶은 말들을 수첩에 적었다. 마침내 교정지를 받아들고 역자 후기를 썼을 때 나는 약혼자가 있는 스물다섯 살이었고, 담담하게 '이 책은 나의 손으로 옮겨졌으나 나의 이야기는 아니'라고 쓸 수 있었다.  

나는 지금까지 행복하게 살아왔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내 삶은 행복한 작은 이야기들을 주워모아온 시간이었다. 그렇기에 역으로, 내가 여기에서 방향을 틀고 있다고 느껴지게 만들었던 모든 경험들은 그 사이를 단번에 베는 칼날처럼 고통스러웠다. 그러나 이번 경험, 이야기가 될 수 있기까지 얼마나 시간이 걸릴지 알 수 없을 뿐 아니라 내 안에 흩어져 있던 다른 모든 이야기를 압도하고 있는 이 새로운 삶의 감각은 샛맑게 반짝이며 일상을 따뜻하게 데운다. 안도감, 즐거움, 기대감, 평화로움, 충만감. 고마움.

결혼 전에 나는 다른 사람과 함께 살아나가는 경험을 통해 더 너그러워지고 더 나은 사람이 되어 더 좋은 글을 쓸 수 있게 된다면 좋겠다고 생각했었다. 그렇게 곁에 있을 수 있는 타인을 만났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막상 부딪혀 보니 이야기가 글로 다듬어지기 전에, 아니, 이야기가 만들어지기에 앞서서 삶을 사로잡는 무언가를 발견하는 순간과 그 순간을 출발점으로 하여 앞뒤로 생생하게 뻗어나가는 경험의 향연이 있었다. 결혼에만 이런 순간이 있는 것은 아니겠지만, 이 삶을 덮는, 혹은 들어올리는 감각을 사랑이라고 하는 것 만은 분명하리라고 생각하며 나는 결국 펜을 놓고 일단 지금을 크게 숨쉬어 본다.

2009년 4월 20일 월요일

2009년 4월 19일 일요일: 결혼 23일 째

지정사 모임에서, 결혼하면 좋으냐는 질문을 받고 결혼 10년 차이신 scifi님이 "결혼하기 전에 서로 속인 것만 없으면 괜찮아요." 라고 하신 적이 있다.

결혼 3주 차에 접어들며 왠지 속은 기분이 드는 점이 하나 있으니, 그것은 바로 남편이 오덕이 아니다 는 사실이다.

남편은 스타트렉 보이저는 아예 보지도 않았고, 스타트랙 TNG는 앞만 보다 말았으며, 기타등등 이것도 저것도 요것도 안 봤다. 일주일 내내 일요일 저녁만 기다리고 있는(일요일 오전 7시 30분 방송하는 신켄쟈, 8시 방송하는 가면라이더 디케이드의 영상과 자막이 일요일 늦은 오후께에 올라오기 떄문이다) 내가 상대적으로 엄청난 오덕처럼 느껴지기 시작했다.

퇴근하면 건프라 만드는 남자하고 결혼한 줄 알고 좋아했는데, [불친절한 전대미문]에서 신켄쟈 다음편 예고나 적황이 진리 가상시나리오를 읽거나, 구매대행 사이트에서 신켄쟈 휴대폰 스트랩, 가면라이더 디케이드 열쇠고리 따위에 열심히 입찰하고 있는 내 옆에서 중얼중얼 영어공부를 한다.

아무리 기다려도 건프라도 안 만들고 애니메이션도 안 보고 온갖 가면라이더 오프닝과 라이더 킥과 수퍼전대 오프닝/엔딩 동영상을 보여줘도 그다지 반응을 보이지 않으며 기껏해야 내가 들고 온 책 정도만 읽고 있는 남편이 수상하게 느껴져서 어제는 결국 물어 봤다.

"동진님, 건프라는 안 만들어요?"

"전 사회인이에요."

"오덕이 아니었어요?"

"아니라고 계속 말했었잖아요."

.....................................이 실망감을 어찌하면 좋으냐.............................

그나마 남편이 건담 극장판 대사는 거의 다 외운다고 하니 위로가 된다.

 

2009년 4월 17일 금요일

2009년 4월 17일 금요일

어디서 나를 인터뷰했다는 소문을 듣고 인터뷰를 받은 적이 없기에 뭔 소린가 하고 찾아보았다. 소백산천문대 식당에서 밤늦게 열렸던 술자리에서 수육을 집어 먹으며, 낮은 기압 때문에 나빠진 머리로 마음대로 떠들었던 얘기가 실렸다. (http://shineanthology.wordpress.com/2009/04/09/optimism-in-literature-around-the-world-and-sf-in-particular-part-3-sf-in-south-korea-today/ )

미리 말이라도 해주지 그랬냐고 할까 하다가, 어차피 생각하던 대로 말했고 말한대로 옮겨진 글을 놓고 왠 쓸데없는 생색, 싶어서 재미있게 잘 읽었다. 기억력 엄청 좋으시구나.

2009년 4월 14일 화요일

2009년 4월 13일 월요일 2

마감을 아직도 못 쳐냈다. DEADLINE IS OVER 티는 빨아야 할 것 같은데.

백지 앞에 앉아, 나는 내가 누구를 위로할 수 있을 것인지 생각한다. 이런 나의 오만함이 너무나 두렵다. 결국 아무 것도 생산해내지 못하는 이 오만이 두려워 미칠 것 같다.

2009년 4월 13일 월요일

2009년 4월 13일 월요일

월요일이 오고 말았다.

 나는 아직도 DEADLINE IS OVER 라고 쓰인 옷을 입고 있다.......

2009년 4월 12일 일요일

2009년 4월 12일 일요일

금요일 낮에 학교 근처 유니클로에서 "DEADLINE IS OVER"라고 쓰인 화려한 형광색 반팔옷을 사서, 금, 토 이틀 동안 입고 있었다.

그리고 어떻게든 원고를 끝내야겠다는 생각으로 밤을 샜는데 (지금은 일요일 오전 6시 40분이다) 아직도 못 썼다.

괴롭다.

2009년 4월 10일 금요일

2009년 4월 10일 금요일

사회복지학과 01학번 모임, 서울대입구역 근처 아웃백스테이크하우스. 신행, 은영, 지홍, 도호, 보미, 영민이 왔고, 나중에 늦게 퇴근한 찬수가 케이크와 함께 등장했다. 일이 바빠 오지 못한 미진은 전화를 했다.

공식적으로는 내 결혼 피로연 및 어제가 생일이었던 신행의 생일축하 파티였는데, 나한테도 오후 세 시 반 쯤에야 연락이 왔다. 만약 내가 오늘 못 오면 서로 민망해서 어떻게 하려고 그랬냐고 할까 하다가 어차피 갈 수 있었던 처지에 왠 쓸데없는 생색, 싶어서 신경 써 만들어준 자리에서 고맙게 잘 먹었다. 요즈음 컨디션이 좋지 않았는데 동기들을 만나 편하게 웃고 떠들고 먹고 나니 훨씬 좋아졌다.

보미가 위스콘신대 박사과정에 합격했다. 학부 때부터 꾸준히 열심히 하더니 좋은 결과를 얻어 무척 기뻤다. 보미 입장에서는 이제부터 공부 시작이겠지만, 틀림없이 지금까지처럼 성실하게 연구에 임해 훌륭한 학자가 되리라고 생각한다. 나도 모르게 보미에게 계속 부럽다, 좋겠다 하고 말했는지, 모임 중간 쯤에 도호가 옆에서 "너 보미한테 부럽다고 열 번도 넘게 말하네. 이제 그만 좀 해라." 고 핀잔을 주었다. 그 다음에도 부럽다는 말이 열 번쯤 더 올라왔으나 꾹꾹 눌러 삼켰다. 위스콘신대는 사회복지의 명문인 동시에 좋은 로스쿨로 유명한 학교라 사실 나도 2012, 3년 쯤에 지원하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데 보미만큼 해야 들어갈 수 있다면, 보통 일이 아니네......

저녁 식사 후에 다른 사람들은 2차를 가고, 나는 귀가했다. 동기들이 전철역까지 배웅해 주었다. 집에 오는 길에 다이소에 들러 옷걸이와 서랍 정리함을 샀다. 버스에는 사람이 많았다.

2009년 4월 9일 목요일 : 재회

어제 저녁에는 정말 반가운 분을 만났다.

[법정보조사와 법문장론]수업에는 매주 각계 법조인 또는 관련직역 분들을 초청하여 이런 저런 말씀을 듣는 특강이 원 플러스 원으로 딸려 있다. 평소에는 매주 화요일과 목요일인데 이번에는 어찌저찌한 사정으로 수요일에 특강이 하나 더 생겼다. 지난 주에 역시 법정보조사와 법문장론에 사은품으로 딸린 실습 강의에서 들었던 로앤비 사용법이다. 이미 한 번 배운 내용인데다 생각해 두었던 다음 일정이 있었던 터라 썩 내키지 않았지만, 그래도 듣긴 해야겠지, 하는 심정으로 어슬렁 어슬렁 강의실에 들어갔다.
 
그런데 특강을 하러 오신 분이 안 모 님이셨다.

나는 고등학생 때 평일 저녁에 동네 영어회화 학원에 다녔다. 수험과는 무관한 원어민 프리토킹 반이었는데, 시간이 시간인 만큼 나 외에는 대부분 직장인들이었다. 안 모 님은 그곳에서 만났던 분으로 당시에는 파주에서 근무하는 군법무관이셨다. 우리는 평일 저녁 프리토킹 반에서 으레 그렇듯, 수업 시간에 디스커션 토픽 어쩌고 하는 책을 놓고 이야기했고 수업 후에 학생들끼리 모여 한두 번 차를 마셨다. 강사는 이름을 칼(Karl)이라 하는 이십 대 후반 입양인이었다. 그의 친부는 두집살림을 했던 남자였다. 나는 평소에는 가본 적 없는 층수가 있는 카페 겸 바에서 평소에는 카페는 커녕 학교에도 머무르지 않았을 법한 시간에 한 유부남이 한 미혼모와 한 입양인을 만들어낸 과정에 대해 들었다. 그 남자는 칼 외에도 몇 명의 생명을 만들었고, 아마 그보다 더 많은 계급을 만들었을 것이다. 칼은 캐나다에서 말이 통하지 않는 친모와 재회했다. 그는 불행하지 않다고 했었다. 대학에 들어간 후 광화문 근처에 있었던 크림치즈 베이글이 맛있는 카페, 위치스 테이블에서 한국에 다시 찾아온 그를 만난 적이 있다. 그는 한국인 여자친구와 있었는데, 크게 싸웠는지 둘 사이가 매우 불편해 보였다. 지금 기억을 되짚어 보면 한미간의 거리차이와 결혼이라는 대단히 민감한 주제로 인한 신경전이었다. 이성간에 때로 일어나는 짜증과 애정의 스파크를 감지하지 못했던 당시의 나는 대수롭지 않게 칼과 대학생활과 사회문제에 대해 이야기했다. 여자친구의 이름은 기억나지 않는다.

어쨌든 탁자에 가계도를 그리던 칼의 손가락이 기억에 선명한 그 카페에서 나는 안 모 님의 이야기도 들었다. 그 때는 파주나 미국이나 별 차이 없이 먼 곳처럼 느껴졌는데, 어째서인지 칼과 안 모 님의 나이 차이는 꽤 크게 생각되었다. 칼을 다시 만났던 때 쯤에 안 변호사님과도 안부 메일을 주고 받았었다. 그 분이 법무관 생활을 끝내고 로앤비 일을 시작했던 때였다. 재미있으면 연락하지 말고 힘들 때면 연락하라는 어른의 호의를 감사히 생각했던 기억이 난다.

팔 년이 지났다. 나는 이걸 만드신 분을 만났었지- 하고 생각하며 로앤비에서 판례를 출력하는 공부를 시작했고, 개당 70만원이라는 의자가 놓여 있으나 볕이 들지 않아 발목이 시린 대형강의실에서 그 분을 다시 만났다. 프레젠테이션 첫 화면에 뜬 안 모 님의 성함을 보고 강단에 선 얼굴을 확인했을 때는 더없이 반가웠다. 로앤비를 사용하며 그 때를 떠올리곤 했던 터라 이렇게 재회한 사실 자체에는 그렇게까지 놀라지 않았으나, 예전에 호감을 갖고 알았던 사람을 다시 만나는 우연이 그토록 기쁘게 느껴질 수 있다는 것은 놀라웠다. 나는 나를 기억하지 못하더라도 인사는 하고 싶다는 생각으로 차가워진 발가락을 꼬물거리고 박자를 맞춰 어깨도 두드리며 강연이 끝나기를 기다렸다.

그리고 다짜고짜 비어져 나오는 반가움과 그리움을 어색하게 눌러 씹고 "기억하실지 모르겠지만," 하고 천천히 말을 꺼내자마자 "아, 정소연씨."라고 답하는 안 모 님을 마주하고, 어깨를 두드리고 목도 몇 번 좌우로 꺾고 솔직히 고백하자면 마감이 지난 에세이도 끄집어내 몇 줄 썼던 것을 후회했다. (사실 사각지대가 없는 강의실에서 뻐근한 어깨를 두드리면서도, 이거 금방 반성할 것 같다고 생각 했었다.)  

안 모 님은 내게 얼굴이 거의 변하지 않았네요, 지금도 SF 쓴다든가 하는 일 하고 있어요? 홈페이지도 해요?하고 물었다. 나는 명함을 꺼내며 네, 그 때 하던 건 거의 지금도 하고 있어요, 하고 대답했다. 돌아오는 길에 십여년 전의 내가 그에게 무슨 말을 했을지 생각해 보았다. 어리고 풋내나던 시절을 생각하니 부끄러워 얼굴이 붉어지......지는 않았다. 그 사이에 변해버린 자신을 씁쓸하게 돌아보게 되지도 않았다. 그러나 이는 아마 내가 지난 시간을 부정하지 못할 만큼 스스로에게 너그러운 사람인데다, 아직 변했네 마네 할 만큼 거창한 일을 아무 것도 하지 않았기 때문이리라. 게다가 나는 내가 저지른 일을 잘 까먹는다. 아, 그렇구나, 그 사이에 나는 부끄러워 할 것조차 없음을 부끄러워 해야 하는 나이가 된 것이다!

2009년 4월 5일 일요일

2009년 4월 5일 일요일 : 특촬 잡담

[가면라이더 카부토] 주연으로 최근 착실히 인기를 얻어가고 있던 일본배우 미즈시마 히로군이 결혼했다. 나는 가면라이더 카부토에 열광한 이래로 미즈시마 히로군의 팬카페에 가입해, 등급을 유지하여 사진 기사를 보기 위해 '와~~짱 멋저요!' 라든가 '드라마 넘넘 기대되어요 >_<' 등의 댓글을 꾸준히 남겨 왔다. 열애설이 있긴 했지만 결혼이라니, 듣는 순간 대단히 충격을 받았다. [가면라이더 아기토]의 가면라이더 길스와 [미래전대 타임렌쟈]의 타임핑크의 결혼은 둘다 특촬 출신 배우이므로 어쩐지 그런가보다 하고 생각했는데 (지금은 이혼했다) 나와 동갑인 미즈시마 히로군은 핑크도 옐로도 가면라이더 히로인도 기타특촬 배우도 아닌 가수와 결혼했다.
 
이럴수가이럴수가이럴수가이럴수가이럴수가를 연발하다가, 아, 이것이 바로 나의 결혼 소식을 들은 팬 여러분의 마음이겠구나 하는 깨달음을 얻었다.

[사무라이 전대 신켄쟈] 는 정말 훌륭하다. 인물 설정이 선명하고 신켄레드의 카리스마가 아직 전혀 망가지지 않고 있다. 오늘 8화까지 방송했는데, 벌써 1~7화를 모두 세 번 이상 복습했다. 전형적이지만 나는 대단히 좋아하는
(1) 그린 또는 블루와 리더의 충돌 (신켄쟈에서는 그린 vs 레드)
(2) 위장결혼, 연예계 데뷔 등 코스프레 에피소드 (8화; 레드와 핑크의 위장결혼)

에 이어 9화에서는
(3) 적에게 조종당하여 자기편을 공격하는 전사(신켄블루)가 나온다는 예고가 떴다.

이제
(4) 서로에 대한 믿음으로 크나큰 위기를 극복하는 에피소드
(5) 전사 중 1인의 어두운 과거와 그 극복담 (예: 보우켄쟈에서 보우켄블루의 전 동료 스파이 등장 에피소드 <-정말 좋아해서 다섯 번 넘게 봤음)
(6) 지극히 일상적인 소품 (여름축제, 크리스마스, 생일 등)
(7) 전사들간의 러브라인 형성 (적황이 진리)
 만 나오면 올해는 더없이 알찬 한 해였다고 망설임 없이 말할 수 있겠다.

다만 신전사가 벌써부터 등장할 낌새가 보인다는 점이 조금 불안하다. 신전사가 등장하면 전력 균형이 흐트러지는 수퍼전대의 고질적인 문제가 해결될 것 같지 않고, 신전사가 신켄레드보다 카리스마가 있으면 싫다.

평이 갈리는 [가면라이더 디케이드] 역시 나는 좋아한다. 특히 요 앞 [가면라이더 블레이드]의 세계는 디케이드의 인물설정을 잘 드러내면서 원판 [블레이드]를 깔끔하게 비틀어서 아주 좋았다. [가면라이더 파이즈]에 [꽃보다 남자]와 [테니스의 왕자]를 양념으로 넣어 본 듯한 이번 10~11화도 괜찮았다.

[가면라이더 디케이드]는 기본적으로 기존 밀레니엄 가면라이더들의 자기패러디인데, 상당히 어른의 유머감각을 바탕으로 만든 기획이라는 느낌이 들어 제작자의 팬픽을 보는 기분으로 낄낄거리며 보고 있다. 다만 가면라이더들의 세계를 모두 돈 다음에 어떻게 될 것인지, 즉 디케이드가 끝나고 다른 가면라이더 시리즈가 시작되는지 아니면 디케이드 오리지널 스토리로 진행되는지에 대해 신선한 떡밥에 없어서 새로운 정보가 없어서 좀 심심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