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 1월 28일 토요일

2006년 1월 28일 토요일

1. 어머니의 낚시
지난 달에 어머니와 안경을 새로 하러 갔다. 내친 김에 테도 새로 맞추어 돌아왔는데......

아우님: 어, 언니, 언니 안경 내 꺼랑 진짜 비슷하다.
"정말? 이리 줘봐. 와, 색깔까지 거의 같네. 같은 거 아냐?"
아우님: 아니, 내 껀 테가 플라스틱이니까 완전 같은 건 아닌데, 그래도 정말 비슷하네.
"......미연아."
아우님: 응.
"혹시 너도 어머니랑 같이 가서 샀니?"
아우님: 응. (- _) 이거 엄마 취향이지?
"어째 딴 안경 보려고 했는데 자꾸 아까 그거 - 지금 사 온 테 - 다시 써보라고 하시더라니까."
아우님: ......낚였다.
"
뽈록~뽈록~

2006년 1월 26일 목요일

2006년 1월 26일 목요일 : 에고그램 테스트 2

해 보는 곳: http://pds.aawoo.com/cp/ego/index.html

나의 결과

2003년 결과

독사에서 귀신으로.....인가. 별로 상관없는 얘기지만, 요즈음 점점 더 옹졸해지고 있다. 예전이라면 흥 하고 넘겼을 일에 대해 흥!흥!흥! 한다. 이러다가 B사감화 되는 게 아닐까 싶을 정도다. 나 같이 귀여운 사람이 B사감화 되는 건 우주적 손실인데. 으음. 걱정이네.

2006년 1월 25일 수요일

2006년 1월 25일 수요일 : 잡기

1. 벌써 열흘 쯤 전 이야기인데, 이창호 9단이 삼성화재배에서 졌다. 국제기전에서 십 년 만에 패한 것이다. 아침 밥상에서 신문을 읽다가 이 뉴스를 발견한 내가 경악하여 신음을 흘렸다.

"허어억. 이창호가 졌어요."
어머니: ('뭐 어쩌라고' 표정으로 나를 응시)
"이창호 9단이 졌다고요."
어머니: 사람이 이길 때도 있고 질 때도 있는 거지.
"지금까지 국제기전에선 안 졌는데!" (<-과장입니다.)
어머니: 그게 더 신기하네.

물론 이길 때도 있고 질 때도 있는 줄이야 알지만, 90년대 초중반에 바둑을 두었던 사람들에게 이창호 9단은 80년대의 조치훈 9단과 조훈현 9단과 서봉수 9단을 모두 더해서 반으로 나눈 것 만큼의 의미가 있는 기사라(정리하자면 데미갓쯤 된달까나), 대단히 이상한 기분이었다.

2. 십단전에서는 이겼다.

3. 2번 뉴스를 본 직후에 식당에서 실수로 [갓 배식한] 식판을 엎었다.

4. 내가 마지막 장까지 꼼꼼히 읽었던 책 중 가장 지겨웠던 작품은 단연 염상섭의 장편소설 '삼대'다. 이 책에서 가장 괴로웠던 점은 주인공이 아무 일도 하지 않고 있다(과장이지만)는 것이었다. 주인공 꼴을 보고 있자니 마음이 너무 답답해 몸이 아플 지경이었다.

5. 어제 밤, 머리를 그 때 감을까 오늘 아침에 일어나서 감을까로 한참을 고민하고 있었다. 내가 자꾸 밖에서 왔다갔다 하며 중얼거리자 아버지께서 나오셨다.
아버지: 뭐라고 하[고있]냐?
"머리 지금 감을지 내일 아침에 감을지 고민하고 있어요."
아버지: 아......소연이 너는 만-날 그거 고민하는 것 같더라.

6. 아우님이 친구에게 부탁해 차를 몇 가지 구해 왔다. 그 덕분에 집에 있는 잎차가 대충 열 가지나 된다.

어머니: 와, 차 많네. 찻집 해도 되겠다.
나: 네. 이 정도면 메뉴 되겠네요. (마음속으로 메뉴판 완성)
아우님: 그럼 엄마아빠네 밭에서 고구마 캐서 파이도 만들어서 팔면 되겠다. (밭-_-과 고구마 등장)
그리고 유기농이라고 파는 거야. 한 조각에 오천원 씩. (메뉴판 개선)
나: 비싸서 남으면 어떡해. (손익계산)
아우님, 어머니: 저녁에 우리끼리 먹으면 되지.(망상일과 완성)

2006년 1월 18일 수요일

2006년 1월 18일 수요일 : [잡기] 룸펜형 인간

무료하다.

마산 살 적에, 나는 늘 서울서 살고 싶었다. 서울 가서 공부 하고 싶다고 운 적도 있을 정도다. 하도 서울 타령을 해 대니 부모님께서 정 그러면 할아버지 댁에 혼자 가서 살래, 하고 진지하게 말씀하시기도 했었다. (당시 나는 처음에는 그러마고 했다가, 일 주일 정도 고민한 다음에 아직은 부모님과 함께 사는 게 낫겠다는 식으로 답했단다.)

국가 경제난과 그와 관련된 가정환경의 변화에 따라 일산에 살게 되자 얼마나 좋았는지 모른다. 다시 생각하고 싶지도 않을 만큼 힘든 일도 있긴 했지만, 더 큰 도시에서 공부하게 된 것이 정말 좋았다. 차라리 서울로 전학을 할지언정 마산에 도로 내려가지는 않겠다고 각오를 다지며 버텼다. 이렇게 한 이 년 행복하게 살았다.

고등학교 3학년이 되니 또 더 큰 도시에 살고 싶었다. 이번에는 유학이 가고 싶었다. 속이 상해서 울기도 했다. -_- 더 많이 배우고 싶었다. 더 많이 보고 싶었다. 쾨니히스베르크같은 구석에서 육십 년을 살아도 할 수 있는 게 공부라지만, 소화되지 못한 열망이 식도까지 차 있는 게걸스런 아이의 머리에 그런 말이 제대로 들어갈 리 없다. 하지만 유학만은, 욕심을 낸다고 될 일이 아닌 줄도 알았다.

대학 입학과 동시에 독일어 공부를 시작했다. 대학 생활은 행복하고 즐거웠다. 새로운 것이 잔뜩 있었다. 배울 것도 읽을 것도 볼 것도 먹을 것도 정말 많았다. 게다가 내 손으로 돈도 벌 수 있었다! 한 이 년은 배가 고프지 않았다. (유학 생각도 안 했다.)

또 울 때 쯤 되어서 고시공부와 번역을 거의 동시에 시작했다. 행복하고 즐거웠다. 새로운 것이 잔뜩 있었다. 새로운 사고의 틀이 있고 새로운 시험이 있고 새로운 지식이 있었다.

그런데 요즘은 또 울고 싶다. 이제 또 다른 걸 배우고 싶다.

돌이켜 생각하면 나는 항상 이런 식으로 살았다. 더 알고 싶다고 징징대고 더 갖고 싶다고 떼를 썼다. 더 이해하고 싶다고 억지를 부리고 더 보고 싶다고 눈을 치떴다. 현실적인 문제에 눈을 감고 지난 생활에는 미련을 두지 않았다. 어이없을 만치 강렬한 허기를 느끼며 얄팍한 책장이나 뒤적였다. (그래. 두꺼운 책장을 넘길 재주도 없다.) 대체 내가 뭘 이렇게 알고 싶어하는지 나도 모르겠다.

나는 놀라울 만큼 지난 일을 기억하지 못하는데, 이것도 근원이 같은 병통이 아닐까 싶다. 지난 여름에는 칠 년이나 살았던 마산에 갔었다. 중요한 유년 시절을 보낸 고향이나 다름없는 곳이라, 아무리 성정이 건조해도 실제로 가서 그 땅을 밟으면 뭔가 다른 감상이 생기지 않을까 은근히 기대했었다. 그러나 아무렇지도 않았다. 버스 노선을 대강 짐작할 수 있어서 편했지만, 그 뿐이었다. 다른 중소도시를 갔을 때와 하등 다를 것이 없었다. 사오천 번 오갔던 길을 지나며 감상적이 되어 보려 애를 썼지만 소용없었다. 허탈했다.

며칠 전에는 아침식사를 하다가 결혼 얘기를 꺼냈다. "결혼은 하고 싶은데, 결혼한 다음에 빨래 하고 공과금 챙기고 이런 일상잡일 할 생각 하니까 엄두가 안 나요." 내 말에 아우님이 직격타를 날렸다. "그렇겠다. 언니 지금은 아무 일도 안 하잖아." 너무 맞는 말이라 헛웃음이 나왔다. 나는 지식인은 어림없고 딜레당트라기에도 민망한 그냥 룸펜이다. 생존능력도 없고 생활력도 없다. 영어사전을 뒤지며 타이핑 몇 줄 쳐 놓고 이걸로 어떻게든 되겠지, 하고 생각한다. (어떻게 안 되고 있다.)

일전에 친구 모양이 스폰서 두고 공부 하는 사람이 제일 부럽다고 했다. 이 친구 모양은 직장인이기라도 하다. 모양의 말에 공감하는 나는, 아아, 그냥 룸펜형 인간이다.

2006년 1월 13일 금요일

2006년 1월 13일 금요일

미국에서 일시 귀국해 있던 친구 지혜가 출국을 앞두고 서울에 올라와서, 오늘 미엽이네 집에서 함께 아침식사를 했다. (아침식사라고는 해도 지하철 고장으로 내가 무척 늦는 바람에 사실상 아점이었다.)

부지런한 미엽이는 오늘도 청국장이라든지 잡곡밥이라든지 생선구이라든지 하는, 보통 자취생으로선 엄두도 내기 힘들 반찬을 마련해 두었더라. 새벽 네 시 반부터 일어나 준비했다는 얘길 들으니 고맙기도 하고, 지각한 것이 미안해서 고개를 들 수가 없었다.

거의 이 년여만에 만난 지혜는 정말 얼굴이나 행동이나 예전과 똑같았다. 허나 지혜는 날 보더니 못 알아볼 만큼 달라졌단다. 어쨌든 지혜가 3학년이라니 놀랍다. (지혜가 자기도 놀랍단다. 하하.) 반갑고 기뻤다. 특히 일부러 연락 준 것이 고마웠다.

따뜻한 방에서 내가 가져간 녹차롤을 곁들여 국화차를 마시며 잠깐 수다를 떨다가, 오후 한 시 쯤 일어났다. 나가는 길에 골목에서 미엽이 어머님을 처음 뵈었는데, 미엽이와 느낌이 굉장히 비슷해서 신기했다.

오후에는 신촌 파스쿠치로 이동 아스님과 진아님을 만났다. 진아님으로부터 '네 멋대로 해라'를 고맙게 받고 - 학창시절 정말 좋아했던 만화다 - 같이 커피를 마시고 [미엽이가 싸준] 쿠키와 귤을 먹으며 번역과 창작과 출판과 작가들과 연애와 이성 취향과 티브이 드라마에 대해 수다를 떨었다. 아스님이 'Firefly'라는 드라마를 적극 추천하셔서나도 한 번 보고 싶어졌다. 생각해 보니 일전에 루크님도 괜찮다고 하셨었지.

집에 와서 쿨쿨 잤는데, 밤 열한 시 반에 그만 깨 버렸다. OTL 내일은 치과에 가야 한다.

2006년 1월 9일 월요일

2006년 1월 9일 월요일 : 잡기 + 화실 이야기

1. 이달 초, 한 실원이 독서실 휴게실 신발장에 벗어 놓은 신발에 누가 몰래 물을 부었다. 범인은 불명. 불만이 있으면 말로 하지......;

2. 이런 사건은 유별난 경우지만, 시험이 다가오다 보니 다들 신경이 눈에 띄게 날카로워졌다. 독서실 문 앞에는 "세월과 함께 빠지는 머리카락보다 머리카락 떨어지는 소리에 더 신경이 쓰이는 요즈음" 어쩌고 하는 안내문이 붙어 있다.

3.

이제 졸업에 대해 고민할 때가 되었다.


4. 이러쿵 저러쿵 해도 스케치도 꾸준히 하고 공부도 열심히 하고 번역도 그렁저렁 하고 우리말 단어도 조금씩 외우고 있다.

5. 화실에서 함께 그림을 배웠던 JH님이, 알고 보니 일 년 반 동안 독일에서 공부하고 오셨다 한다. 미리 알았으면 이것저것 많이 여쭈어 봤을 텐데, 마지막 수업 날에야 들었다. 아쉬워라.

6. 지난 금요일에는 선생님의 친구이자 서양미술사학을 공부하시는 JW님과 나, 선생님 셋이서 있었다. JW님이 어머니를 모시고 영화를 보러 갈 생각이라며 킹콩 얘길 꺼내셨다. 킹콩이 괜찮을 것 같은데 어른이랑 보기에 어떨지 고민이시란다.
선생님: 킹콩, 어머니랑 보기에 괜찮아.
제이: 괜찮을 거예요. 우리 어머니 아버지도 보고 오셨는데, 재밌게 봤다고 하시더라고요.
JW님: 그런데 엄마가 무서울까봐, 무서운 거 싫다고-
선생님: 전~혀. 하나도 안 무서워. 킹콩 코가 하트라니까.

2006년 1월 6일 금요일

2006년 1월 6일 금요일

오전- 오후에는 화실에 있었다. 골이 파인 종이로 된 작은 판넬에 압구정 커피집 그림을 그렸는데, 종이의 질감에 익숙치 않아 어려웠다. 그 다음에는 8절에 하늘과 바다가 있는 시원스런 그림을 후딱 그리고, 여세를 몰아 수증기가 퐁퐁 솟아오르는 산에 도전했다. 그런데 이 산은 너무 어려워서 수업 마칠 때까지 다 못 그려, 결국 다음에 잠깐 들러 완성하기로 했다. 아쉽지만 화실 수업을 잠시 쉬었다가, 9월에 다시 시작할 생각이다. 손이 굳지 않도록 낙서라도 많이 해야지.

다섯 시 반 쯤에 홍대 별다방에서 [해부학 개론을 보고 있던] 용진군을 만났다. 사람 머리 뼈는 스물두 개이고, 뼈 갯수를 셀 때 무릎뼈는 넣지 않는다고 한다. 본 뼈(?)가 아니라 일종의 부속품 같은 것이기 때문이다.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퇴근한 동진님과 일곱 시쯤 만나 함께 삼청동 아따블르로 저녁을 먹으러 갔다. 아따블르의 식사는 여전히 맛있었다. 삼청동 안쪽으로 들어가는 길에 테이블이 두 개(세 개?) 정도인 작은 프렌치 레스토랑이 새로 생겼다. 뭘 하는 곳인가 궁금했는데 아따블르에 명함이 있기에 읽어 보니, 프랑스 해산물 전문점이란다.


달팽이 크림라구와 구제르

토마토를 곁들인 새우 샐러드

수프

생선

과일 그라니테

양갈비스테이크

안심스테이크

디저트

나(권력자), 동진님(재력가), 용진군(피지배층, 일명 심부름꾼) 셋이서 각자의 역할에 충실하며 즐겁게 놀았다. 특히 동진님은 재력가 역할에 완전히 심취, 심부름꾼을 열심히 놀렸다. 나는 비록 권력자이긴 하나 성정이 온화하므로 그런 짖궃은 짓은 하지 않았다.(뻥)

식후에는 클럽 에스프레소에 갔다. 에스프레소 마끼아또를 주문했는데, 원두 수급에 약간 문제가 있어 신선한 원두를 못 쓰고 있으니 에스프레소 베리에이션 쪽 주문을 피해 달라더라. 마끼아또가 먹고 싶기도 하고, 별다방 커피도 마시는데 설마 그 정도겠지, 싶어 그냥 달라고 했다. 하지만 마시면서 조금 후회했다. (...)





용진군은 이 곳에서도 피지배층의 설움을 느꼈다. 내 수첩에 적힌 우리말 단어를 다함께 공부하고, 새 오천원 권을 처음 구경(?) 했다. 동진님의 마인드맵 독서 노트도 보았다. 일전에 동진님이 '마인드맵 독서술'이라는 책을 읽은 뒤부터 책이나 영화에 대한 감상을 마인드맵으로 정리하고 있다고 하셨었는데, 근래 홈페이지에 올리시는 책/영화 감상이 예전보다 좋아진 것 같아, 한 번 보여 주십사 부탁드렸었다. ('마인드맵 독서술'이란 책은 일본어로 쓰여 있어 직접 읽어 볼 수가 없었다.) 전통적인 마인드맵보다 자유기술에 가까운 방법이더라.

열한 시 십 분쯤 귀가했다. 종일 하도 열심히 놀아서 몹시 피곤했지만, 즐거웠다. 역시 권력이란 좋은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