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12월 27일 목요일

2007년 12월 27일 목요일

올해 행정고등고시에 최종 합격한 찬수가 신림역 근처 '바다공원'에서 동기들에게 저녁을 샀다. 아직은 대학원생이든 학부생이든 고시생이든 학교 주위에 있는 이들이 많은 나이다 보니 오며가며 그럭저럭 서로 만나기는 하지만(당장 어제도 한림법학원 앞에서 은영을 만났었다), 차분히 앉아서 이야기를 할 시간은 좀처럼 없다 보니 즐거웠다. 교직원 호봉이나 결혼자금 같은 새로운 화제가 등장한 점도 흥미로웠다.

현장에 나가겠다고 했던 신행이 대학원에 진학했다는 소식을 학기 초 쯤에 들었는데, 오늘 나가 보니 대학원에 진학한 것은 맞지만 현장에서 꾸준히 활동하고 있더라. 전혀 상관 없는 사람이랄 수 있는 내가, 그 소식에 괜히 안도감과 고마움을 느꼈다.

일하는 장애인 야학이 노조의 투쟁에 동참한 바람에 14년 동안 있던 건물에서 쫒겨나게 되어, 어제도 동화면세점 앞에서 시위를 했다고 한다. 이제 천막 치느냐고 누가 묻자, "그렇지, 1월 3일부터 건물 앞에 천막 치고 수업 해야지." 하고 코를 훌쩍이며 웃는다.

과내 커플인 미진과 진우오빠는 내년 5월에 결혼을 한다. 술을 마시지 않는 진우오빠가 찬수에게 먼저 다가와 술을 권하더니 자기 소주잔도 한번에 들이켜서 깜짝 놀랐는데, 소주잔에 물을 채웠다고 한다. 그런데 바로 옆에 있던 나를 비롯해, 아무도 오빠가 소주잔에 물 따르는 모습을 못 봤다. 능력자로세. 스승으로 모셔야겠다.

찬수는 라스베이거스 등지를 구경하고 어제 막 돌아왔다고 한다. 아직 여행의 여파가 가지시 않아서인지 자꾸 "미국놈들은..."이라는 얘길 꺼냈다가, 다른 동기들로부터 며칠 있다 와 놓고 미국 사람 다 된 거냐고 놀림을 받았다. 보미가 내년에는 미국 동부 쪽으로 유학 지원을 한다고 하자, 우리가 그러면 놀러 가겠다고 했다. 보미가 "그래. 정원에 재워 줄게." 했더니 신행이 대번에 받아서 "우리 야학 천막 빌려가면 되겠네. 15인용 20인용 다 있어." 란다. 그러자 찬수가 "거기서 사서 하루 쓰고 환불 받으면 돼. 미국놈들은 태그만 달려 있으면 다..."라고 말을 꺼내서 또 놀림을 받고 말았다.

역시 대학원에 진학한 충현은 봄 학기에는 휴학하고 북경에 있을 예정이란다. 충현이 내 은사님과 나날이 비슷해지고 있다. 원래 얼굴형이나 머릿결 같은 외모가 닮은데다, 신실한 종교인 특유의 아우라까지 볼 때마다 업그레이드(?) 되어서, 마주하면 좋은 모습을 보여드리고 싶은 선생님을 대할 때처럼 긴장이 된다.;

연극도 자은이 왔다. 재즈댄스 강사 학원이 마침 신림역 근처라 잠깐 짬을 내어 들렀다는데, 기대치 못했던 얼굴을 봐서 반가웠다.

이번 학기로 나는 사회복지학과 전공을 끝냈다. 미래를 비슷한 방향에서 바라보는 사람들과 함께 공부하고 성장할 수 있었던 과정 자체가 배움이었다. 무슨 얘기중이었던가, "나는 사기업에선 일할 수 없는 사람이라는 확신이 들었어. 제1섹터가 아니면 역시 제3섹터, 기관으로 가겠지." 라고 했다. 그 말에 뜻을 되묻지 않고 "우리 학번에도 그런 사람들 많이 있지. K, H 도 그렇게 말하고......"하고 자연스런 답이 돌아온다. 그것이 고마웠다.

 

2007년 12월 25일 화요일

2007년 12월 25일 화요일

아침에 강남역 앞에서 전션을 만났다. 휴일 이른 시간에 갔더니 드넓은 커피빈 금연석 전체에 손님이 나와 전션 둘 뿐이라 좋았다. 전션은 고비를 넘기고 새 직장에 안착해서 열심히 지내고 있는 모양이다. 하지만 야근이 많은 직종이라 늘 바쁜 점은 이직하고도 여전해서, 일 주일 내내 야근할 때도 있다고 한다. "그럴 때는 한밤중에 집에 가서 잠깐 자고 나와서 다시 일한다는 느낌이지. 그런데 계속 일하고 있으면 다른 하는 게 없으니까 딴 생각이 안 들어서 편해. 오히려 힘들지 않아." 라고 평화로운 표정으로 말하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친구 입장에서는 스물다섯 살에 해탈하지 말아줘....라는 기분이 든다.

집에 돌아와서는 이부자리를 햇볕에 널어 털었다. 힘에 부칠 줄 알았는데 작은 먼지들이 쉽게 떨어져서 기분이 좋았다. 이불이 겨울 바람을 맞는 사이에 바닥에 놓여 있던 책들을 정리해 책장에 꽂았다. 종이가방들을 접어 차곡차곡 겹쳐 넣고 분리수거를 했다. 걸레로 바닥을 구석구석 닦은 다음, 대야에 세제를 풀어 걸레를 담궈 두었다. 책상 앞에 실리콘 걸이를 단단히 눌러 붙이고 화이트보드를 걸었다. 설거지를 했다. 걸레를 빨았다. 한결 보송해진 이불을 가져와 토닥토닥 깔았다. 카푸치노를 한 잔 탔다. 서늘해진 이부자리 위에 앉아 창 밖을 가만히 바라보며 바크초컬릿을 곁들여 커피를 마셨다. 그리고 모르는 새 냉장고 냉각판에 두껍게 앉았던 성에를 녹여 떼냈다. 파직거리며 떨어져 내린 손바닥만한 도톰한 얼음판들을 하얀 세숫대야에 던져 넣었다.

2007년 12월 19일 수요일

2007년 12월 19일 수요일

아침 일찍 투표를 하고, 저녁에는 지정사 2008년 신년회를 했다. 지정사는 지정사이므로 07년에 08년 신년회를 하고 08년에 07년 송년회를 한다는 대장 모 님의 의견을 따른 것이다. 참석자는 랄라님, 나는그네님, as님, 서늘님, 라슈펠님, 동진님, 상준님, 상훈님, 파란날개님, 루크님, 경아님, 나. 종로에 있는 인도&네팔 음식점 '두르가'에서 커리와 탄두리 치킨을 먹으며 개표방송을 보았다.  

2007년 12월 7일 금요일

2007년 11월 30일 금요일

2007년 11월 30일 금요일 : 하지 말까보다

[사회복지발달사] 휴강이라 집에 일찍 들어왔다. 어머니가 아버지도 일찍 귀가하시는 날이라 아버지와 함께 [어거스트 러시]라는 영화를 보러 가고 싶다고 하신다. 오랜만에 영화 예매를 해 드릴까 생각하던 차에 아버지가 오셨다. 환영동작(참고링크)을 한 다음, 나는 거실에 있는 컴퓨터로 집 앞 영화관 홈페이지에 들어갔다. 부모님은 어머니가 새로 사 온 아빠 반셔츠를 들고 안방에 들어갔다.

(안방에서 들려오는 소리)
M: 어머~지지~지지~옷 좀 갈아입어요.
F: 그래서 새로 사와 달라고 한 거야.
M: 아이~지지~안아주지 말까보다~
F: 아하하, 자꾸 와 그라노~
(꺄르르~허허~하하~꺄르르~)

나: 후......예매하지 말까보다.

평일 이른 저녁이라 표가 많기에 가까운 시간 것으로 예매했다. 한두 시간 뒤, 집을 나서는 어머니의 옷이 추워 보였다. 집 바로 앞이니 괜찮겠지 싶으면서도 걱정이 되어 말했다.

나: 엄마, 좀 춥지 않으시겠어요?
M: 아빠랑 가니까 괜찮아. (즉답)

나: ......걱정하지 말까보다.

2007년 11월 29일 목요일

2007년 11월 28일 수요일

* 몇 주 만에 일기를 써볼까 해서 한창 쓰고 있는데 갑자기 창이 닫히면서 내용이 다 날아갔다. 다시 열어보니 한 문단만 남아 있더라. 그만 두기도 뭣해서 다시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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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에 홍대입구 역 근처의 중국음식점 '호고 888'에서 [잃어버린 개념을 찾아서] 출판 뒷풀이를 했다. 창작과비평사에서 담당인 지영님을 포함해 네 분이, 글쓴이 중에서는 박성환님, 배명훈님, 김보영님과 편자인 박상준님이 오셨다. [우리들의 스캔들]을 재미있게 읽었기 때문에 한 번쯤 직접 뵙고 싶었던, 이현 님([로스웰 주의보])이 불참하신 점은 아쉬웠다.

식사는 맛잇게, 배불리 먹었다. 새우튀김을 드시던 배명훈님이 튀김옷이 홀랑 벗겨지자 "어, 야해라~"라고 하셔서 한참 웃었다. 계간지 팀이라는 SY님이 철학과 졸업생이셨다. 그 말을 듣자마자 "(서양현대철학)김xx 선생님이요......저기.....원래 그러세요?" 라는 질문이 절로 나왔는데, 바로 "하하, 네. 원래 그러세요." 라고 대답하셔서 어쩐지 위안이 되었다. 지난 주까지 속이 좋지 않아 무척 고생했는데, 다행히 월요일을 기점으로 거짓말처럼 상태가 나아졌다. 요즈음은 사람 몸이 참 마음대로 움직이지 않는구나, 하는 생각을 자주 한다.

2차 자리에서는 송경아 님이 [당신도 해리 포터를 쓸 수 있다]를 들고 나타나셨다. 지난 지정사 때 주시겠다 하셨던 책인데, 이번에는 잊을까 봐 아침부터 챙겨 놓으셨다니 고마울 따름이다. 언젠가 해리 포터를 써서 보답하겠습니다.

한 동네 주민인 상준님, SY님과 함께 귀가했다. SY님에게 어떤 수업을 들으면 좋을지 여쭈어 보았더니 고대철학 김남두 선생님을 추천해 주셨다. 잊지 않게 여기 써 둔다.

2007년 11월 24일 토요일

2007년 11월 24일 토요일

서늘님, 동진님과 압구정 역 근처 스타벅스에서 만났다. 함께 데쌍에 들러 서늘님 생신 선물로 마카롱을 사고, 현대백화점 지하에서 점심식사를 했다. 나와 서늘님은 죽, 동진님은 야끼소바. 도산공원 근처의 pash에 가서 후식으로 커피를 한 잔 마셨다. 원군님도 오셔서 오랜만에 뵈었다.

2007년 11월 17일 토요일

2007년 11월 16일

 
미연 격려 차 카페 뎀셀브즈에서 테이크아웃 한 케이크. 위는 초컬릿, 아래는 단호박.

 
미연이 시험 전 선물로 받은 귀염귀염 병아리 만쥬.

2007년 11월 10일 토요일

2007년 11월 10일


 


지정사 날이었다. 압구정역 근처 '길손'에서 저녁으로 해산물을 잔뜩 먹고, 프린세스 호텔 쪽에 있는 본 누벨(Bon Nuvel)에서 맛있는 케이크를 사서 도산공원 앞 카페 Pash에서 커피와 함께 먹었다. 

2007년 11월 3일 토요일

2007년 11월 3일 토요일

정란이 일하는 빵집에서 쿠키 세 통을 보내 주었다. 마음씀이 고마웠다. 슈거파우더가 덮힌 말랑말랑한 쿠키가 제일 맛있었다.

지난 주 부터 가볍고 멋있는 것을 보고 싶었는데, 그런 것을 나서서 찾을 의욕까지는 나지 않았다. 그래서 일본의 스타라는 기무라 타쿠야를 멋있게 느껴질 때까지 보기로 했다. [히어로]는 꽤 재미있었고, [엔진]이라는 2005년 작 드라마가 내 취향에 그야말로 '직격'이었다. '달리지 못하는 나는 남자가 아니야'같은 대사를 엄청 진지한 얼굴로 하는데도 (솔직히 픽 웃긴 했지만) 우스꽝스럽지 않다니 굉장하잖아.  

[엔진]은 재기를 노리는 카레이서가 양아버지의 보육원 버스를 운전하면서 상처가 있는 아이들과 교감하며 서로에게 용기를 준다는, 나를 아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네가 좋아할 만 하군.;"이라고 말할 만한 드라마였다.

흥미로운 요소가 상당히 많았는데, 특히 보육원의 운영 방식에 관심이 갔다. 부모가 경제적 사회적인 어려움으로 인해 양육을 단념한 아동과 아예 보호자가 없는 장기요보호아동이 같은 시설에 있는 점 부터가 그랬다. 예를 들어, 부모가 부유한 의사라서 본인도 사립고등학교에 다니는 학생과 가족이 모두 죽은 학생이 같이 있다. 전자의 경우에는 부모가 양육비를 부담하고 후자의 경우에는 정부에서 보조금이 나오는 걸까? 그렇게 섞여 있으면 정부 지원금은 어떤 식으로 책정되며 기관 운영 비용은 어떻게 조달할까? 한 아동의 경우 아이가 문제를 일으키자 독신모인 어머니가 찾아와서 "애를 잘 키우라고 맡겨 놨는데 이게 무슨 일이냐"는 식으로 따지는 장면이 나온다. 도의적인 책임을 묻는 것인지, 실질적으로 애를 키우고 있지는 않지만 육아비용을 부담하는 친권자로서 법적 권리를 갖고 있기 때문에 이렇게 말하는 것인지 궁금했다.

또한 보육사 두 사람이 등장하고, 나중에 한 아동이 야간대학을 다니면서 보육사가 되고자 한다는 후일담도 나온다. 그러면 일본에서 보육사는 대졸인가? 우리나라에서는 1년의 교육과정을 거치면 자격증을 받을 수 있다. 아동복지 관련직종은 대체로 상대적으로 진입이 용이하다. 어린이집도 신고만 하면 열 수 있다. 수요는 높아져 가는데, 급여는 최저임금 수준이고 일의 강도는 높으니 공급이 적어서 자격요건을 완화한 결과다.

보육의 중요성을 생각하면 당연히 임금을 높이고 자격요건을 강화하는 것이 옳겠지만 그 임금을 높인다는 것이 보통 일이 아니다. 우선 육아를 맡기는 부모의 지불용의금액이 낮다. 육아에 들어가는 비용이 일을 해서 버는 수입보다 높다면 '차라리 내가 집에서 애를 보지'라고 생각하기 쉽다. 게다가 이 때의 '수입'은 대체로 어머니의 수입을 기준으로 하는데, 우리나라의 여성평균임금은 남성보다 낮다. 이 문제를 해결하려면 정부의 지원금이 높아져야 하나 한정된 복지예산에서 아동복지 지출 비율을 높이기란 매우 어렵다. 아동은 투표권이 없기 때문에 정치과정에서 과소대표된다. 같은 이유로 한정된 예산 중 노인복지 지출 비율은 과다대표되는 경향이 있다. (전체 복지예산규모가 작기 때문에 과다대표되었다는 노인복지 지출이 아직 실제 필요에 미치지 못하는 것은 다른 문제다)

드라마를 보다가 다시 생각난 문제인데, 일전에 픽션, 특히 과학소설에서 사회복지적인 이슈가 어떻게 다루어지는지를 조사하면 재미있겠다고 생각한 적이 있다. 그러나 과학소설에 등장하는 어린이들을 좀 찾아 보다가 그만두었다. 이슈가 너무나 극단적으로 다루어지거나/다루어지지 않기 때문이었다. 다시 말해, 사회복지적인 문제의식이 있는 작가는 아예 세계관을 그에 맞춰 구축하고, 그렇지 않은 작가는 아예 그 문제를 배제해서 보이지도 않게 만들어 버린다. 예를 들어 엘리자베스 문의 [어둠의 속도]는 자폐 이외에도 여러 장애를 가진 사람들이 어떻게 성장해서 취직을 하고 지역사회복지단체의 지원을 받는지를 간접적으로나마 분명하게 명시하고 있다. 그 반면에 캐서린 아사로의 스콜피안 엠파이어 시리즈에는 (열 몇 권이 되도록) 장애인이나 빈곤계층이 아예 등장하지 않는다. '80년대 과학소설의 아동관과 90년대 과학소설의 아동관 변화' 같은 주제로 묶을 만 한 작품들 사이의 자연스러운 중첩점이 없더라.

아아, 뭔가 상관없는 얘기로 넘어갔는데, 어쨌든 이제 나는 기무타쿠가 멋있다고 생각하고 있다.

2007년 10월 31일 수요일

2007년 10월 31일 수요일

[아동복지론] 중간고사를 보았다. 문제는 영어이지만 답은 한글로 써도 된다. 선생님이 비영어권 학생이 영어로 답안을 작성할 경우 긍정적인 요소로 감안해 주겠다고 하셨던 터라 꾸역꾸역 영어로 썼다. 그런데 중간에 갑자기 거짓말[하다]의 철자가 생각이 나지 않았다. 중학교에서 헷갈리는 어휘로 꼭 나오는 것인데, 순간적으로 막히니까 아무리 머리를 굴려 보아도 확실히 떠오르는 철자는 liar밖에 없었다. 한 5분 정도 머리를 싸매고 고민하다가 lie라고 썼는데 맞긴 했더라마는.......

수업의 조원 중 한 명이 자진입대로 군휴학을 했다. 학기 중간에 갑자기 빠져서 상당히 당황스럽다. 나이와 장래 계획을 고려해 군대를 가야 할 시기라고 결정한 경위는 납득이 되지만, 네 사람 분량의 일을 앞으로 세 사람이 해야 한다는 것은 예상치 못했던 부담이다. 레포트를 쓰는 중간에 한 사람이 줄어든 상황이라 전체 분량을 조절하기도 어렵다.

저녁에는 새미와 피자를 먹었다. 출근 이틀 째인데 벌써 금요일 저녁을 기다리고 있더라. 새미가 가까이 와서 참 힘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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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ttwoch habe ich meine letzten Zwischenprüfung gemacht. Die Prüfung war OK, aber ich habe gefunden, dass es ein Problem gab. In diesem Kurs, sollen Studenten eine Gruppe machen, und jede Gruppe muss ein Projekt machen. Das Projekt meiner Gruppe ist 'Jugendkriminalität', und wir hatten schon 1/3 des Projekts zusammen gemacht. Aber ein Student von meiner Gruppe, der verantworlich für die Pubertätsphase war, kam nicht. Ich habe gehört dass, statt das Semester fertig zu machen, wollte er zur Armee gehen.
 
Das ist eigentlich ein Problem. Jetzt gibt es nur drei Studenten in meiner Gruppe, und wir müssen seine Aufgabe zusammen machen. Ich verstehe dass Mann zur Armee gehen muss, aber warum jetzt? Ich finde ihn unverantwortlich.

Am abend habe ich Seemi eingeladen. Sie kam nach Seoul am Montag, und jetzt bliebt sie bei ihre Tante. Das Hause ihrer Tanta ist in der nähe von meinem Haus. Heute war ihrer zweite Tag bei der Arbeit, und sie wartete schon auf Freitagabend! Wir haben Pizza gegessen und uns erhaltet. Bevor hatte ich niemand zu Hause eingeladen, deshalb war sie die Erste, die ich ein lud.

2007년 10월 30일 화요일

2007년 10월 30일 화요일

오전에 [인식론] 중간고사를 쳤다. 이번 학기 전공과목 중 가장 신경이 쓰였던 수업인데, 다행히 공부한 보람이 있는 답안을 쓰고 나올 수 있었다. 지난 주 화요일 수업에 늦잠을 자서 못 들어갔던 터라 긴장했는데 다행이다. 점심 때는 학생회관 C메뉴가 알밥이라기에 일부러 게까지 갔는데, 알밥이 다 팔려서 뭔가 이상한 찌개가 대신 나와 있었다. 동물의 창자나 생선의 알집인 것 같은 수상한 건더기가 들어 있었는데, 먹어 보면 맛있을지도 모르지만 차마 손이 가지 않아서 그냥 콩나물과 김치만 떠 먹었다.

서양고대철학특강 수업을 듣고 집에 돌아가 낮잠을 잠시 자고, 밤에는 [아동복지론] 공부를 했다. 오랜만에 푹 잤다.

Dienstag habe ich die andere Prüfung gemacht. Ich bin am meinsten besorgt wegen sie, aber glücklicherweise, kannte ich alle die Fragen. Ich habe wieder nur 3 stunden geschlafen, deshalb war ich abwesent von der nächsten Vorlesung. Stattdessen habe ich zu Hause geschlafen. 

2007년 10월 29일 월요일

2007년 10월 28일 일요일

27일 토요일 저녁에는 형호아재 결혼식에 다녀왔다. 오랜만에 화장을 하고 렌즈를 꼈더니 별로 한 일도 없는데 몹시 피곤했다. 집에 밤 열한 시 반 쯤 들어갔는데, 부모님이 신분증 챙겼냐고 물으신다. 일요일에 TOEIC 시험을 보러 가기 떄문이다. 아뿔싸, 그제서야 생각해 보니 여권을 학교 쪽에 두고 왔다. 베를린에서 잃어버린 주민등록증이 아직 새로 나오지 않았는데, 민증을 대신하는 발급신청서까지 수업 프린트 파일에 꽂아 둔 채로 와 버렸다. 일단 괜찮다고 큰소리를 뻥 치고(...) 지식검색을 해 보았는데, 일전에 토익 부정 사건이 문제 된 다음부터는 의료보험증이나 주민등록등본 같은 자기증명 서류를 이것 저것 챙겨 가도 지정된 신분증이 없으면 시험을 치지 못한다고 한다.

괴로워하며 신림까지 가는 데 걸리는 시간을 계산해 본 다음 새벽 6시 10분에 알람을 맞추어 두고, 만약을 대비해 밤새워 우리나라 의료발전에 힘쓰는 용진군에게 모닝콜을 부탁했다. 지난 주부터 중간고사 준비로 생체리듬이 엉망이 되어 있었던 데다 너무 피곤해서인지 오히려 잠이 오지 않아서 새벽 4시까지 멍하니 누워 있었다. 까묵 설잠이 들었다가 용진군의 전화를 받고 일어나 동이 트지 않은 거리를 뛰었다.

여권과 주민등록증 발급신청서를 챙기고 삼각김밥을 두 개 먹고 다시 집으로 돌아와 아버지의 차를 타고 시험장에 갔다. 시간이 남아서 엎드려 30분 정도 졸다가 시험을 쳤다. 뭐야, 이거 문제가 뭐 이렇게 많아! 자그마치 300문제......게다가 엄청 추웠다.

토요일 오전부터 거의 못 잤으니 금세 잠들 줄 알았는데 열에 들뜬 것처럼 식은땀만 나고 잠은 오지 않았다. 화요일에 [인식론], 수요일에 [아동복지론] 중간고사가 있다. 피곤하고 머리가 멍해서 공부 하기가 힘들었다. 뭐든 해야 겠다는 생각에 독일어 작문 연습을 시작했는데, 써도 써도 잠이 오지 않아서 나중에는 단념하고 누워서 뒹굴었다. 새벽 세 시 반이 넘어 잠들었다.

월요일: 8시 반에 일어났다. 눈이 너무 피곤해서 실내복 소매로 눈을 덮고 귀마개를 하고 낮잠을 자 보려 했으나 실패. 사흘동안 10시간도 못 잤다.

2007년 10월 24일 수요일

2007년 10월 24일 수요일

Heute kommt meine beste Freundin nach Seoul. Jetzt bliebt sie in Masan(meine Heimatstadt) bei ihren Eltern, aber sie wohnte in London bis letzten Monat, und früher hatte sie in Tokyo gewohnt. Sie ist nach Seoul gekommen für ein Vorstellungsgespräch. Wir haben zusammen das Abentessen gegessen und Kaffee gertrunken.

Sie hat gesagt, dass Korea nicht das, was sie erwartete. Sie möchte in Seoul arbeiten, aber sie will später nach London zuruckfliegen, wenn sie ein Arbeitvisum zu bekommen. Ich habe gesagt,
 >> Obwohl du eine Koreanerin bist, hattest du nicht in Seoul gewohnt. Deshalb kannst du nicht in Seoul wohnen als ob du das Leben dieser Stadt kenntest. Seoul ist eine neue Stadt für dich, ähnlich wie Tokyo oder London. Du brauchst mehr Zeit, um gewöhnlich zu werden.<<

Und wir haben uns auch über viele Dinge erhalten. Sie ist später nach Masan gefahren, aber nächste Woche kommt sie nach Seoul zurück um zu arbeiten. Ich hoffe, dass sie in Seoul bleiben.  

2007년 10월 20일 토요일

2007년 10월 19일 금요일

1. [서양고대철학특강] 수업은 정말로 재미있다. 이미 몇 번 썼지만, 정말 말로 표현하기 힘들 만큼 재미가 있어서, 수업을 들을 때 마다 황홀해진다. 고대 희랍에 대단히 심취한 나머지 최근에는 누굴 만날 때 마다 이 수업에서 들었던 이야기를 한 번은 꼭 꺼냈는데, 나만큼 황홀경에 빠지는 사람은 없는 것 같았다. 내게는 '어쩌면 이럴 수가'라고 그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선생님을 납치 유레카춤을 추고 싶을 만큼 놀랍고 경이로운 이야기가 타인에게는 '아, 신기하네요.' 라고 듣고 넘어갈 정도의 얘깃거리이다. 내 전달 방식이 선생님만큼 노련하지 않고 내 지식이 선생님보다 훨씬 얕고 어설픈 탓도 있겠지만, 그보다는 사람에 따라 좋아하는 연예인이 다른 것과 어느정도 비슷한 일이 아닐까 싶다.

2. 오늘은 저녁 7시에 [인식론] 보강을 했다. 셔틀도 끊긴 밤 7시 수업에 몇 명이나 올까 했는데, 아침 수업과 다름없이 교실이 차서 깜짝 놀랐다. 게다가 9시가 다 되어도 어서 집에 갈 생각을 않고 질문을 자꾸 던진다. 요즈음은 다들 공부를 참 열심히 한다. 지난 주에 1차 발표를 한 아동복지론 수업의 경우, 선생님이 조당 4-5 매 정도의 보고서를 쓰라고 하셨는데 각자 맡은 부분을 합쳐 보니 제시분량의 네 배가 넘는, 스무 쪽 짜리 보고서가 나왔다. 이제 1차인데! 내심 과하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발표일이 되어 보니 옆 조도 그 정도를 써 왔더라. 프레젠테이션도 영어로 하는 부담이 겹쳐서인지 며칠 전부터 발표대본을 쓰고 몇 번이나 연습했다. 역시 내심 과하다고 생각했지만 발표일이 되어 보니 다른 조는 손가락 인형을 이용해 대본까지 있는 동영상(!)을 직접 찍어 왔다.

3. 미국의 경우 미혼(부)모의 98%가 낙태나 입양이 아닌 육아를 선택한다고 한다. 생각보다 훨씬 높은 수치라 깜짝 놀랐다. 우리나라 비정규직 노동자 중 의료보험 혜택을 받고 있는 사람은 전체의 37%에 불과하다. 생각보다 훨씬 낮은 수치라 깜짝 놀랐다.

4. 1번부터 3번까지의 내용을 종합한 결론 : 시대에 뒤떨어진 삶

5. 화요일에는 이다 님과 사당역 근처 크리스피 크림 도넛에서 만났다. 이다 님이 고맙게도 꽃다발을 전해 주셨다. 집에 돌아오자마자 꽂아 놓았더니, 대엇개 있던 연두색 나리 봉오리 중 두엇이 벌어질 듯이 부풀기 시작했다. 매일 물을 갈고 방을 오갈 때마다 한 번 더 확인하며 꽃이 피기를 기다렸다. 두 송이가 피었고 세 번째 봉오리도 필 듯이 옅은 분홍색을 띄기 시작했다. 어차피 시들어 버리게 될 줄 알면서도, 꽃이 피었으면 하는 바람을 접을 수가 없다.

6. 지난 겨울 즈음, 무언가를 처음 경험할 때의 기쁨과 놀라움에 관해 어머니와 이야기한 적이 있다. 어쩌다 보니 예로 연애경험 없이 맞선으로 결혼한 부모님을 들게 되었다. 내가 어머니에게 무엇이든 새롭고 설레었던 그 때로 돌아가고 싶거나, 순진하고 어렸던 시절이 그립지 않느냐고 물었다. 어머니는 조금도 망설이지 않고 전혀 그렇지 않다고 대답 하셨다. 지금의 관계가 바로 그런 순간들을 차곡차곡 쌓아 나가서 만들어낸, 말하자면 그 뒤에 있었던 많은 (좋고, 즐겁고, 힘들고, 고통스러운) 경험들까지 모두 포함하는 훨씬 큰 것이니, 당연히 어제보다 오늘이 좋고 오늘보다 내일이 더 좋지 않겠느냐고, 또 그렇게 생각할 수 있도록 살아야 하지 않겠느냐고 반문하셨다. 꼭 관계맺음만을 두고 하는 말이 아니다. 어느새 쇳소리를 내기 시작한 바람을 맞아 옷깃을 여미며, 나는 각오를 다지듯 새삼스레 고개를 끄덕였다.        

2007년 10월 18일 목요일

2007년 10월 18일 목요일 : 고시의 폐해

8월 초, 새미와 런던에 있을 적 일이다. 런던과 베를린 두 곳 다 유모차가 정말 많았다. 베를린이야 한산한 도시이니(면적은 서울의 1.4배인데 인구는 1/10 정도이다) 그렇다 쳐도, 상당히 북적대는 런던에서도 유모차가 많이 다니는 것을 보고 새미에게 말했다.

제이: 여기에서는 애들을 들지 않고-
새미: (풉 웃으며) 야, 애는 드는 게 아니라 안거나 업어야지. 든다고 하니까 이상하다.
제이: 아, 그렇군. 어쨌든 간에 그러질 않고 거의 유모차에 태워 다니더라. 규모가 상당한 아이들도 유모차에 타고 있어.
새미: (어이없다는 듯이) 애한테는 '덩치가 크다'고 해야지 무슨 건물도 아니고 '규모'가 뭐야. 고시 공부 몇 년 하더니 너 어휘가 영......;

듣고 보니 과연 그러했다. orz

2007년 10월 12일 금요일 : 연애담, 신문 연예면을 대신하여

오랜만에 집에서 저녁을 먹은 지난 금요일에 있었던 일이다. 동생과 아버지가 귀가하기 전이라, 나만 이른 저녁을 들었다. 내가 안방에서 주섬주섬 신문을 찾아 와 식탁에 앉자, 앞에 앉아 있던 어머니가 한 말씀 하신다.

M: 오랜만에 집에서 밥 먹는데 얼굴 보면서 얘기라도 하지, 대뜸 신문을 가져오니.

듣고 보니 과연 그러해서 고개를 끄덕이며 신문을 접어 옆으로 치웠다.

M: 엄마랑 아빠랑 저쪽 XX 성당 앞에 쌀하고 떡국 튀기러 갔거든. 그런데 뻥 하니까 아빠가 엄마 뒤에 서서 이렇게 준비하고 있다가 딱 거기 맞춰서 엄마 귀를 꼭 막아 주는 거 있지. 그래서 엄마가 자기 귀를 막지 내 귀를 막으면 당신은 어떻게 하느냐고 했더니 아빠는 저번에 뻥 튀길 때 한 번 들어서 괜찮다는 거야. 재밌지?
J: 아하하, 아빠 답네요.
M: 그리고 잠시 가만히 있더니 '음......떡국 소리는 쌀보다 좀 크긴 하네.' 하시는 거 있지. 재밌지?
J: 하하, 그렇네요.
거기 사람이 엄마 아빠 보고 사이 좋은가보다고 부럽다고 하더라? 그게 부러운 건가?
J: 그럼요. 엄마 아빠 연세에 그러기 쉽지 않죠.
M: 그런데 너 오늘 저녁에 어디 나가니?
J: 아뇨? 집에 있는데요?;
M: 엄마는 아빠랑 데이트 가기로 했다~
J: .......와, 어디 가세요?
M: 영화 보러 갈 거야. ^^v

뭐야, 자랑하려고 신문 치우라고 하셨구나
밤에는 두 분이 사오신 훈제 닭고기를 셋이 앉아 먹고, 한 덩어리를 늦게 올 동생을 위해 남겨 두었다.

2007년 10월 15일 월요일

2007년 10월 15일 월요일

오전에 신촌 빈즈 앤 베리스(Beans & Berries)에서 제시와 탄뎀을 했다. 일산-서울을 오가며 만나다 보니 둘 다 피로해지는 것 같아서, 가운데라 할 수 있는 신촌으로 아예 약속장소를 옮겼다. 채원양의 추천을 받아 가 본 빈즈 앤 베리스는 깔끔했다. 초컬릿 브라우니가 예상보다 훨씬 진하고 푸짐해서 마음에 들었다.

요즈음은 독일어 공부를 열심히 하고 있다. 제시와 나 둘 다 탄뎀이 처음이다 보니 초기에는 좀 헤맸는데, 이제 슬슬 이 시간을 어떻게 활용하면 되는지 알아가고 있는 듯 하다.

점심 때에는 연대 앞까지 온 김에 채원양을 만나 샤브샤브를 먹고, 연대 법대 전산실에서 인터넷을 했다. Y님과 전화통화를 했고 K사로부터 기다리던 연락을 받았다. 전산실에 앉아 있다 보니 시간이 금세 가서, 수업을 끝낸 채원양을 다시 만나 버스 정류장까지 같이 갔다.

2007년 10월 15일 월요일 : 농축과 희박의 코스모고니

몇 년 전, 과소동의 모 님이 '텍스트량 보존의 법칙'이라는 말씀을 하신 적이 있다. 고개를 주억였고 오랫동안 그 말이 기억에 남았었다. 그렇지만 요즈음은, 텍스트량 보존의 법칙보다 한 단계 앞에 감정 보존의 법칙이 있는 게 아닌가 싶다. 어느 정도 분량의 글을 내어 놓기 위해서는 그 글을 만들어 낼 수 있을 만큼 압축된 감정과 지식이 있어야 한다. 감정의 총량 중 상당 부분이 다른 쪽으로 새어나가는 동안은 좋은 글을 쓸 수가 없다.

나는 지난 몇 달 간 글 다운 글을 전혀 쓰지 못했다. 그나마 읽어 줄 만 한 것들은 번역 원고였지만 이는 온전히 원작자의 덕이다. 나의 글을 쓰려고 하면 머리가 텅 빈다. 모든 것이 단지 흘러들어왔다가 흘러나갈 뿐, 무엇도 충분히 고여 있지 않은 것 같은 느낌이다. 나는 지난 한 달여 간 책을 거의 읽지 않았고, 그나마 읽은 책들 중 절반 정도는 예전에 재미있게 읽은 책의 복습이었으며 (예| [엘러리 퀸의 모험]) 나머지 절반은 지난 여름 동안 밀린 장르소설 출판분이었다. 들어온 것이 적으니 고일 틈도 없이 사라질 수 밖에.  

아낙시메네스는 만물의 근원을 공기라 했다. 그는 농축-희박의 개념으로 세계를 설명했다. 딱딱한 물체는 공기가 '농축'된 상태이고 허공은 공기가 매우 '희박'한 상태이다. 압축된 것은 무겁고 희박한 것은 가볍다. 그래서 이 세계는 압축된 흙은 바닥에 있고 가벼운 하늘은 위에 있는 형태를 이룬다. 나는 희박하다. 요즈음 때때로 찾아오는 어떻게든 되겠지-라는 편안함이 단지 내가 텅 비어서 위로 떠오르고 있기 때문일 뿐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면 슬퍼진다. 나는 반드시 살아서 우주를 보고 싶지만, 이런 식으로 날아오르고 싶지는 않다. 옳은 질문을 던졌던 아낙시메네스의 답이 틀렸다는 것은, 물론 위안이 되지 않는다.  

2007년 10월 12일 금요일

우리 가족 소사전

지난 주에 보고서 작성 차 [사회복지소사전]을 보다가 떠올린 아이디어. 생각나는 대로 ㄱㄴㄷ  순으로 정리할 예정이다. 가족 여러분의 참여를 바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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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자
: 내가 가장 좋아하는 땅속줄기채소. 삶아서 국그릇 같은 보울(bowl)에 으깨어 설탕, 소금, 깨소금, 후추를 섞어 먹는다.

고구마
: 아우님이 가장 좋아하는 근채소. 본인이 사와서 쪄 먹을 때도 많고, 부모님이 장을 보러 나가서 '미연이가 좋아할 것 같아서' 한 박스씩 사 오실 때도 있다.
(유) 고구미

광합성
: 어머니의 취미

궁금쟁이
: 아버지의 별명

그냥커피 / 내린커피
: 그냥커피는 인스턴트 커피, 내린커피는 에스프레소 머신이나 드리퍼로 내린 원두커피이다.
(용례) 제이: 엄마, 그냥커피 드실래요 내린커피랑 섞어 드실래요 내린커피 드실래요?
어머니: 그냥커피에 내린커피 조금 섞어서 먹을래.

기파티 (氣party)
: 우리 가족이 생일 등 행사일 자정에 모여 하는 파티. 예전에는 꼭 자정에 맞추어 했으나 요즈음은 11시 즈음에 하기도 한다. 기파티의 가장 중요한 의식은 케이크에 불을 켠 다음 어릴 적부터 집에 있던 사각탁자에 둘러 앉아 서로 손을 꼭 잡고 눈을 감고 서로에게 기를 불어넣는 것이다.
(유) 가족파티, 생일파티, 힘내라파티, 자정파티

노동요
: 설거지 등의 집안일을 할 때 함께 부르는 노래. 기존 동요나 만화 주제가의 가사를 바꾸어 부르거나 대충 생각나는 대로 곡을 붙여 부른다.
(관) 추임새
(용례) 제이: (닭도리탕을 만드는 어머니와 아우님 옆에서) 노동을 안 하니까 추임새로라도 존재감을 나타내려고.

도치
: '고슴도치도 제 자식은 이쁘다'는 속담에서 딴 말로, '도치 엄마', '도치 아빠' , '도치 동생', '도치 언니' 등으로 쓰인다.
(용례) "아니, 그런 도치스런 멘트를!"

마당
: 부모님의 은퇴 후 거주지에 딸린 위치불명 시대불명 가상의 공간. 우리 가족의 공상에 종종 등장한다. 지금까지의 이야기를 종합하면 (!) 아우님을 위해 고구마를 잔뜩 심었고 (2) 어머니가 좋아하는 꽃이 가득하며 (3) 옥수수 (4) 감자 (5) 깻잎 (6) 콩 등이 자라고 있다. 아버지는 돼지;;를 키우려고 시도하신 적이 있다. (어머니 기절)

(저녁) 세수
: 나와 어머니가 각별히 귀찮아 하는 것.
(용례) 제이: 엄마, 피곤하실 텐데 이제 그만 들어가 주무세요.
어머니: ......아직 세수를 안 했어. ㅠ_ㅠ
제이: ......저어런. orz


: 어머니가 가꾼 화분들을 내가 통칭해 부르는 말

장충당 공원
: 아버지가 어머니에게 처음으로 끝까지 불러 준 노래라고 한다.
(용례) 어머니: 신혼에 새댁한테 노래 한 곡 부르라고 하는 데서 무슨 사랑 노래도 아닌 장충당 공원이 뭐야.
아버지: 끝까지 아는 노래가 그것밖에 없었는 걸 우짜노.
어머니: 나는 또 그걸 좋다고 듣고 있었으니......

환영동작
: 가족이 귀가했을 때 집에 있던 사람들이 현관 앞에 모여서 일제히 모션을 취하는 것. 모두가 같은 동작을 하기도 하고 함께 팔로 하트를 만들거나 환영춤을 추기도 한다.
(관) 배웅동작 

2007년 10월 11일 금요일

잡기 재시도.

1. 월요일에는 밤 열 시 까지 두레문예관에서 아동복지론 보고서를 썼다. 밤에는 괴물에 쫓기는 꿈을 꿨다. 그런데 그 괴물이 분명히 어떤 SF에 나온 것이었다. 도망 치면서도 '저걸 어디서 봤더라'라고 생각했고, 일어나서까지 계속 고민했다. 생김이 아주 구체적이었기 때문에 영화나 만화, 혹은 책 표지 등에서 그림이나 모형으로 봤던 괴물 같았는데, 도무지 기억이 나지 않았다.

2. 화요일에는 [인식론] 수업이 일찍 끝나서 점심을 제대로 먹었다. [서양고대철학특강] 수업시간에는 파르메니데스와, 그의 사상을 전수한 엘리야 학파에 대해 배웠다. 엘리야 학파에서 제일 유명한 사람인 체논이 등장했다.

3. 수요일에는 지난 주부터 내내 나를 괴롭혔던 [아동복지론] 프레젠테이션을 했다. 저녁에는 conrad님과 학생회관에서 만나 차를 한 잔 얻어 마시고 함께 저녁식사를 했다.

4. 목요일 점심에는 수현님, 상준님, 인수오빠와 교내 카페 소반에서 점심식사를 했다. 식후에 커피를 마사다가, 갑자기 월요일 밤 꿈의 괴물이 허버트의 [듄]에 나오는 모래괴물이었다는 사실을 기억해 냈다. 후련했다. 1시 수업 때문에 일찍 일어나야 해 아쉬웠다. 조만간에 상준님으로부터 자세한 이야기를 들을 기회가 생기면 좋겠다. [서양고대철학특강] 시간에 이오니아 사람 헤라클레이토스의 사상을 배웠는데, 헤라클레이토스가 '판타 레이'라는 말을 실제로 한 것이 아니라, 단지 그의 저술 중 특정 부분(이것도 배움)의 의미가 잘못 전달된 것이라는 애기를 듣고 큰 충격을 받았다. 초등학생 때부터 재밌게 읽고 책장 잘 보이는 곳에 꽂아 두었던 [판타 레이: 만물은 흐른다]라는 책은 어쩌고......orz 저녁에는 독일어 단어를 외웠고, 밤에는 F지 원고를 했다.

5. 오늘 아침에는 어째선지 자그마치 오전 8시 20분에 깼다. 전날 밤에 한 시 넘어 잠들었는데 이렇게 일찍 일어나다니, 처음에는 아직 꿈을 꾸는 중이라 시간을 잘못 본 줄 알았다. 꾸물럭거리다가 9시 쯤 일어났다. 오늘은 교내에서 승민오빠와 점심을 먹을 계획이다. 수업은 지난 주에 총엠티로 휴강했던 [사회복지발달사]. 사회복지발달사 선생님은 보기 드물게도 독일에서 공부하고 오신 분이다. 실은 그래서 유학에 관해 이것 저것 여쭈어 보았는데, 박사 끝내는 데 자그마치 9년 걸렸다는 말씀을 듣고 깜짝 놀랐다. '국내에서 석사과정을 밟으며 박사과정 연구 주제를 정하고 유학할 학교와 스승이 될 교수님을 알아보고 미리 이메일과 전화 등을 이용하여 교류하거나 방학 때 학교를 찾아가 상황을 파악하는 등 준비를 다 끝내고 즉시 유학해서 모든 일이 잘 풀릴 경우' 라면 5년 정도 걸릴 수도 있다고 하셨다.  

2007년 10월 9일 화요일

2007년 10월 9일 화요일 : 근황

1. 지난 달 말에 나는 [서양현대철학] 수업에 관한 나의 자세를 통렬히 반성했다. 수업이 내가 원하는 만큼 커리큘럼에 따라 강도높고 압축적으로 진행되지 않는다고 해서, 불평불만이 가득하여 건성으로 자리만 지키고 있는 것은 - 솔직히 고백하면 [나폴리 특급 살인]과 [마일즈의 전쟁]을 읽었다. 둘 다 매우 재미있다 - 배우는 사람으로서 기본이 부족한 자세이다. 나보다 더 많이 알고 더 오래 공부한 사람의 말을 열심히 듣는다면, 무엇이든 하나라도 배울 기회가 생길지 모르는데 그런 식이어서야 정말 아무 것도 얻지 못할 터 아닌가. 게다가 그런 불평을 말과 글로 남기기까지 하다니, 미래에 돌이켜 보면 틀림없이 얼굴이 붉어지리라. 그래서 추석 연휴 동안 열심히 반성했다. 마침 선생님이 학회 일로 추석 연휴 다음에도 수업을 두 번 쉬셔서 수업이 없었고, 그 기간에도 나는 계속 반성 모드로 있었다. 지난 주 목요일에 마침내 긴 휴강기간이 끝나고 다시 수업이 시작되었다. 나는 정말로 대범하고 전향적인 마음가짐으로 수업에 임했다.

.......아무래도 마음을 더 갈고 닦아야겠다.

2. 토요일에는 항공대에 가서 토플(TOEFL) 시험을 보았다. 현장에서 본인확인 사진을 찍는 줄 모르고 정말 초췌한 모습으로 갔는데, 안경을 벗으라고 해서 벗었더니 사진을 찍더라. 당황스러웠다.

3. 인식론 수업 다녀와서 계속.

4. 너무 바빠서 못 쓰겠다...

2007년 10월 8일 월요일

2007년 10월 7일 일요일

필름포럼은 어째서 자기네 영화관에서 상영하는 [독일 다큐멘터리 특별전]의 시간표를 '준회원 이상 읽을 수 있는 네이버 카페 게시판'에만 올려 놓은 거냐! 네이버 로그인+카페가입이 싫어서 필름포럼 홈페이지를 뒤졌지만 게시판 공지글로 특별전 홍보 문구만 덜렁 두다니, 꼭 보고 싶은 사람은 포털사이트 로그인/카페가입이나 맥스무비 로그인/영화관 날짜별 검색을 (감수)해서라도 보러 온다 이거냐......이벤트 참가나 게시물 쓰기도 아니고 시간표 보기를 준회원 이상으로 설정해 놓은 건 대체 무슨 심보?

2007년 10월 1일 월요일

2007년 10월 1일 월요일 : 말장난 승부

아침 식사를 한 후 후식으로 케이크를 꺼내고 물을 끓였다. 집에 커피가 없어서 최근에는 옥수수수염차를 마시고 있다.

제이: (찬장에서 차를 꺼내며) 영감~영감~차 취향은 영감~
어머니: 옥수수수염차는 영감이 마시는 차 아니야.
제이: 하지만 이름이 옥수수'수염'차잖아요.
어머니: 그렇게 보면 얼 그레이(Earl Grey)는?

......과연 그렇도다!

* 호기심이 동해 찾아보니 얼 그레이는 사람 이름이다. 틀림없이 수염을 길렀을 것 같은 백작이로세.

2007년 9월 30일 일요일

2007년 9월 29일 토요일

7월 즈음부터, 나는 '남편이 죽었다'는 문장을 놓고 고민하고 있었다. 이 문장에 머리 속에서 떠나질 않았는데, 그 다음 글을 어떻게 이어나가야 할지 도무지 생각이 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여름이 본격적으로 시작되고 나서는 '남편'과 '죽음'이 등장하기 어려운 글을 하나 써야 했기 때문에 이 문장을 잠시 뒤로 밀어 놓았었다.

9월이 되자 나는 다시 이 문장을 계속 생각했다. 타인이 나의 생각을 읽을 수 없다는 것은 실로 다행스런 일이다. 머리 속에 '남편이 죽었다'라는 문장이 16pt 진한 고딕체로 둥실둥실 떠다니고 있었으니 말이다. 그 아래에는 12pt 신명조체로 '①남편이 어떻게/왜 죽었는가 ②남편이 죽고 나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가'가 매달려 있다.

지난 수요일에, 나는 갑자기 이 글을 쓸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에 사로잡혔다. 그래서 쓰기 시작했다.

2007년 9월 28일 금요일

2007년 9월 28일 금요일

힘들었던 추석 연휴가 끝났다. 올해는 그래도 각자의 사정(예: 긴 연휴를 이용한 여행)으로 친척 분들이 예년만큼 많이 오시지 않았고, 차례를 비롯한 각종 행사가 평소보다 일찍 끝나서 추석 당일은 수월히 넘어갔다. 송편이나 조물락거렸던 내가 힘들었나 아니네 할 정도는 아니었다-정도로 해 두자. 오랜만에 고종사촌들을 만난 점은 아주 좋았다.

25일에는 서양현대철학이 휴강이라 서양고대철학특강 수업만 들었다. 이제 탈레스-아낙시만드로스-아낙시메네스로 이어진 밀레토스 학파가 끝나고 피타고라스[학파]로 넘어간다. 소크라테스 이전 철학은 참 재미있다. 학사논문을 쓰든 철학과에서 석사과정을 밟든 영국 경험론(흄)을 주제로 하리라던 지금까지의 생각이 바뀔 정도이다. 만약 소크라테스 이전 철학에 초점을 맞추고자 한다면 일단 희랍어를 다시 공부해야 한다. 독일어도 지금처럼 슬렁슬렁 해서는 안 된다. 어쨌든 이 수업이 100분 수업이었으면 좋겠다.

오늘 점심 때에는 아동복지론 팀과 1차 발표 준비 중간 점검을 하기로 했다. 아직 아무것도 안 썼다.......하지만 어제 저녁에는 간단한 원고를 하나 끝냈다. 솔직히, 써야 하는 글이 너무 많아서 깊이 생각하기가 싫다.




2007년 9월 24일 월요일

2007년 9월 24일 월요일



성곡미술관 앞에 있는 카페 커피스트 (Coffeest)에서 동진님, 용진군과 만나 커피를 마셨다. 커피스트 건물은 구 광화문 터로, 건물 내 바닥 일부를 유리로 처리해 예전 주춧돌을 볼 수 있게 되어 있는 곳이다. 카페 자체도 꽤 멋진데, 위치가 그래서인지 주위 테이블 사람들이 모두 성곡미술관과 신모씨 이야기를 하고 있어서 안타까웠다.(눈 앞에 성곡미술관이 보이니 그 얘기가 절로 나오긴 하더라)

 

처음에는 바깥 테이블에 앉았다가, 날이 더워서 나중에 실내 에어컨을 가동하자 실외기의 진동과 온풍이 느껴져 실내로 자리를 옮겼다. 추석을 기해 제주에서 올라온 용진군은 어느새 본과 2학년 2학기이다. 여러모로 장래에 대해 생각하고 있는 모양이던데, 앞날이 기대된다. 자격증 사업으로 부를 축적하기 위한 다양한 방법도 함께 구상해 보았다.  



오후 다섯 시 반 쯤 집에 들어와서 뒷정리를 하고(오전부터 추석 차례 준비로 집이 어수선했다) 한 숨 잤다. 그런데 악몽을 꿔서 열한 시 쯤 깜짝 놀라며 깼다.

그 그로테스크한 느낌을 글로 표현하기는 어렵지만, 요약하자면 철모르는 10대 남자아이들([짱] 같은 소년만화에 나오는 남학생들 분위기)이 기 싸움에 쓰려고 작은 폭발물인 줄 알고 터뜨린 것이 사실은 물을 오염시키는 교묘한 생체무기였다. 처음에는 폭탄인 줄 알고 도망갔는데, 나중에 그것이 물에 작용한다는 것을 깨달았던 순간의 공포감과 무력감이 너무나 생생했다. 강 상류 같은 곳에서 그 독극물이 물에 섞여들어가고, 사람들이 일상생활에서 물을 사용하는 순간의 편린들이 순식간에 쏟아지듯 눈앞을 스쳐지나가면서 그 사람들이 한 명씩 사라지고 하류로 아무리 달려도 무채색 세상만 남았다. 그 순간마다 "설마....아니겠지."라는 희망이 사그라들었다.

진정하기 위해 포도를 한 송이 씻어 먹었다. 일어나자마자 안방을 들여다봤더니 온 가족이 다 있다. 내가 불안한 얼굴로 악몽을 꿨다고 하자 가족들이 무슨 꿈이냐고 물었다. "인류 멸망이요." 라고 했더니 스케일 좀 보라며 웃는다.

2007년 9월 20일 목요일

2007년 9월 20일 목요일

심한 감기몸살로 며칠 앓았다. 화요일에는 학교는 갔지만 약과 어지럼증에 취해 멍하게 앉아 있었고, 수요일에는 이런 식으로는 증세가 장기화되겠다 싶어 학교 수업을 포기하고 그냥 집에서 하루 푹 쉬었다. 아우님은 아이스크림, 어머니는 엔젤쉬폰을 가져다 주셨다. 그 덕분인지 오늘 아침부터는 몸이 한결 가뿐하다. 여전히 훌쩍거리고 있고, 가끔 머리를 찌르는 듯한 통증이 느껴지기는 하지만 이 고비만 넘기면 괜찮을 것 같다(고 기대하고 있다).

지금은 [서양고대철학특강]과 [서양현대철학]사이 공강 시간이다. 화요일 [서양고대철학특강]시간에는 진통제 때문에 거의 한 시간 가까이 공책에 점묘화를 그리며 헤메다가, 강의 끝날 즈음에야 정신을 차렸다. 오늘 수업을 들으며, 이렇게 재미있는 수업을 아깝게 흘려보냈던 나 자신을 혼내고 싶었다.

그럼 이제 점심 먹으러.

2007년 9월 14일 금요일

2007년 9월 14일 금요일

사회복지발달사 수업

우산이 없는데 비가 옴->배고프다고 징징->인류학과 조교실에 계신 A님에게 가서 홍삼캔디와 홍차를 얻어 마시고 우산까지 하나 빌림->아스님, 상현님과 명동 한정식집 [고궁]에 감

지정사 : 고궁->다동커피집 (쿄코님이 무척 수고하심)
상훈님, 승은님, 승은님 지인 2분, 동진님, 상현님, 아스님, 파란날개님, 지은님, 상준님, 동시통역사님, 쿄코님, 루크님 ,경아님

오늘의 화제:
1. 애들 싸움의 승자는?
의견 ⓐ 먼저 코피 터지는 쪽이 패자 ⓑ 먼저 우는 쪽이 패자 ⓒ 엄마가 먼저 나오는 쪽이 이김(홈그라운드의 이점-파란날개님 의견)

2. 어른 싸움의 패자는?
먼저 손 올리는 쪽 (의견 일치)

3. 사랑과 정의의 이름으로 활동하는 지정사의 정체

4. 출판계 소문과 소식들, 07년 가을/겨울과 08년 SF 출판 전망에 관한 고무적인 소식이 있었음.

5. 독일의 인종문제와 우리나라

6. 국과수 지하에 보관되어 있는 백백교주의 목의 행방을 비롯한 재야(?) 이야기들 (승은님 지인분이 수집중이심)

오늘의 협찬도서들(신간소식):
[나폴리 특급 살인] - 김상훈님 번역서
[아내가 마법을 쓴다] - 송경아님 번역서
[퍼시잭슨과 올림푸스의 신 ③④] - 이수현님 번역서

2007년 9월 12일 수요일

2007년 9월 12일 수요일

오전에는 K사에 갔다. 줄곧 신경 쓰였던 모 원고에 관한 전후사정을 듣고, 다음 책 계약서를 쓰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사내 사정으로 계약서는 우편으로 처리하게 되었다. 대신 일면식도 없이 책 한 권을 같이 만들었던 모 편집자 님과 마침내 직접 만났다. 지난 책이 무척 깔끔하게 진행되었기 때문에, 다음 책에도 기대가 크다.

(여행 얘기에서 외출 얘기로 넘어갔을 때)
제이: 직접 차를 몰고 다니면 여기 저기 갈 텐데, 운전을 아예 안 하니까 더.....
B님: 아, 운전 면허를 안 따셨나요?
제이: 네. 환경을 보호하려고요.
B님: ('어머'하고 깜짝 놀란 표정으로 입을 가림)
제이: 허걱, 농담입니다, 농담!
B님: 아......진담인 줄......

유머감각을 더 키워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문제가 아닌가?)

출판사에서 책 욕심을 잔뜩 내서 장바구니 가득 책을 얻어 끙끙대며 들고 갔다. 장바구니가 터질까봐 아슬아슬했는데, 다행히 학교 도서관 사물함까지 무사히 도착해서 일단 사물함에 다 넣어 놨다. 틈 날 때 한두 권씩 집에 가지고 가야지.

오늘 수업은 영어 전공 수업인 아동복지론이었다. 지난 주와 마찬가지로 재미있었다. 수업 후에는 기말보고서를 함께 쓸 조를 짜기 위해 다른 학생들과 사회대 2층 라운지에 잠깐 갔다가, 사회대도서관 정보검색실로 왔다. 저녁에는 전션과 압구정에서 저녁 식사 약속이 있다.

 

2007년 9월 11일 화요일

2007년 9월 11일 화요일

피곤한 하루였다. C사 마감 이후로 계속 밤낮이 바뀐 상태였기 때문에 아침 수업에 제대로 들어가지 못할까봐 월요일 밤에 수면유도제를 먹었는데, 예전에 먹어 봤던 것과 다른 약이어서였는지 몰라도 숨이 막히고 답답한 느낌이 들었다. 그래서 무서워서; 못 자고 필사적으로 두세 시간 동안 버티다가 새벽에 잠들었다.

인식론 수업은 매우 재미있었지만 저 약효 때문에 정신을 거의 못 차렸다.

서양고대철학특강은 매우 재미있었고 제정신으로 들었다.

서양현대철학은............................................선생님께옵서 어느 학회에 초청받으시압던지 별로 관심 없으니 제발 수업을............

밤에는 적잖이 마음 상하는 일이 있었다. 불편해서 새벽까지 잠들지 못했다.

2007년 9월 10일 월요일

2007년 9월 10일 월요일

오전 10시 : 연신내역 던킨 도너츠에서 제시와 독일어-한국어 탄뎀
오후 12시 30분 : 외환은행에 가서 신용카드 도난신고 서류처리
오후 1시 : 우체국에서 지난 홈페이지 이벤트 참가자 분들께 참가상으로 유러피안 초컬릿(웃훙) 발송
오후 2시 50분 : 홍대 교문 앞에서 새미와 만나 카카오봄에서 핫초컬릿
오후 5시 : 새미와 그릭조이에서 저녁식사(조이세트)
오후 7시 20분 : 귀가, 뒹굴
오후 9시 : 분리수거, 샤워, 인터넷
오후 11시 30분 : 여전히 인터넷;;

2007년 9월 7일 금요일

2007년 9월 7일 금요일

9월 6일에는 새벽 네 시 쯤 잤고, 오늘은 새벽 여섯 시 반에 자는 강행군 끝에 원고를 하나 끝냈다. 너무 고생을 했고, 그랬는데도 제대로 끝냈다는 개운한 기분이 들지 않아 권교정님의 땡끝 마감 짤방은 넣지 않는다. 마지막으로 프린트해서 한 번 읽어 보고 이메일을 쓴 후 쓰러져 잠들었다. 오늘이 첫 수업인 [사회복지발달사]에는 들어가지 못했다.

주문한 앨범이 도착했기 때문에 오후에는 독일 여행 사진을 정리해 인화 서비스를 신청했다. 5주 치를 한꺼번에 다 보고 정리하려니 시간이 너무 많이 걸려서 일단 영국에 다녀온 다음까지만 먼저 주문을 넣었다. 백 장이 넘는다. 올 추석 전에 앨범에 어학연수 기간의 영수증, 메모, 일기, 사진 등을 제대로 정리해 놓지 않으면 내년 추석까지도 못 할 것 같은 예감이 들어 애써 힘을 내고 있다.

학교가 너무 멀어서 힘들다. [서양현대철학] 수업은 정말로 재미가 없다! 나만 그리 느끼는 게 아닌 듯, 수업을 마치고 일어서는데 뒷 자리 학생 둘이 주고받는 대화가 들린다.

"허얼, 끝장인데. 나 저번에는 늦게 와서 재밌었나보다."
"그렇다니까. 이 수업이 학생 여럿 죽이겠다."

죽을 정도로 끔찍한 수업은 아니지만 니체를 한다고 했으면 토인비의 문명서진설이나 헤겔의 모르겐 란트 얘기는 적당히 하고 그냥 니체를 했으면 좋겠다. 무엇을 배울 수 있을지 지금으로서는 전혀 짐작이 되지 않는다. 그리고 (이건 말 안 하고 참아 보려고 했지만) 문명서진설+타고르(고요한 아침의 나라)에 더해서 성경까지 술술 읊으시면......선생님의 도그마콤보에 매 시간마다 AP가 10씩 감소하는 학생이 1인.....orz 

2007년 9월 4일 화요일

2007년 9월 4일 화요일

월요일에는 수업이 없어 오늘이 개강일이었다. 첫 수업인 인식론이 10시 수업이라 일곱 시 반 즈음에 일어났다. 그다지 늦지 않게 일어났다고 생각했는데 어째서인지 바빠져 아침 식사를 하지 못하고 일찍 집을 나섰다. 출근길 2호선 지하철에서 시달리고 나니 학교에 올라가기도 전부터 기진맥진이다. 정말이지, 학교가 너무 멀어!

분석철학-인식론에서 제기하는 문제들에 관해 듣고 있자니 점점 흥분되면서 짜릿짜릿했다. 아아, 수업이 주는 긴장감이란 역시 좋다. 그런데 김기현 선생님이 추석과 학회로 휴강이 두 번이나 있다고, 개강일부터 두 시간 사십 오 분 수업을 꽉 채워 하시더라. 한 시간 반 쯤 지나니 짜릿짜릿도 찌릿찌릿도 좋지만 배가 고프고 졸려서 힘들었다. 의욕 충만해서 맨 앞 가운데 자리에 떡 앉았는데, 나중에는 에너지가 소진돼 졸지 않으려고 엄청난 속도로 눈을 깜박인다던가, 눈알을 뱅글뱅글 굴려본다던가 했다. 깬 다음에 내 모습을 상상해 보니 차라리 잠깐 조는 편이 나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시간표 상 인식론과 서양고대철학특강이 붙어 있어 점심 식사를 할 시간도 없었다. 수업이 끝나자마자 6동으로 달려 서양고대철학특강 수업에 들어갔다. 교실에 학생이 꽉 차 있어서 놀랐다. 청강생도 제법 있는 것 같다. 이 수업은 정말로 재미있었다! 미케아(영어 필기체) 문명(한자)이라고 칠판 한가운데에 커다랗게 쓴 다음 안경 끈을 만지작거리며 학생들 사이에 서서 강의하는 백발 철학과 교수님이라니 이것은 로망의 절정!

어째서 철학을 공부한다면 철학사를 공부해야 하는지에 관한 선생님 말씀이 정말 인상깊었다. 젊었을 때 선생님은 니체에 심취했었단다. '신은 죽었다'나 니힐리즘에 정말 큰 충격을 받았고, 감동을 받았다(고 생각했단다). 그런데 철학 공부를 여러 해 하고 나서 보니, 실제로 선생님은 '신의 존재를 믿어 본 적조차 없었다'. 신의 존재를 당연한 것으로 가정하는 세계관이나 그 시대적 상황에 대한 문제의식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상황에서 철학을 논하는 것은 자기반성(self-reflection)을 본령으로 하는 철학도의 자세가 아니다. 감동의 참/거짓의 문제가 아닌 다른 차원에서 요구되고 추구해야 하는 엄밀함과 치열함에 관해 뜨끔한 기분으로 생각했다.

이 강의도 개강일인데 75분 수업을 85분 동안 했다. '잃어버린 문명'인 기원전 2000년~1200년의 미케아 문명, 즉 실재했던 역사가 고대의 암흑기를 거쳐 기원전 750년 경 호머의 [일리아드]와 [오딧세이]에서 신화로 재구성되는 과정이 실로 흥미로웠다. 어서 다음 수업을 듣고 싶다.

서양고대철학특강 수업을 F지의 모 님과 같이 듣더라. 같은 과인 줄은 알고 있었지만 실제로 뵌 것은 몇 년 만이다. 수업 끝나고 제대로 인사를 해야지 싶었는데, 배가 너무 고파서 사람을 만날 에너지가 없어 일단 학생회관으로 달렸다. 6동에서 학생회관까지 가서 식권을 사서 돌솥비빔밥을 깨끗이 비운 다음 16동으로 가는 데 30분 정도밖에 안 걸렸다.

16동에서 수현님을 뵙고 같이 라운지에서 차를 한 잔 마신 다음, 다시 6동으로 돌아와 서양현대철학 강의에 들어갔다. 이 수업은 조금 불안......선생님 말씀이 너무 느려서 졸기 딱 좋겠더라. 그리고 소르본에서 공부하신 분이 어째서 하이데거와 헤겔로 수업을 시작하시는 건가요?!; 그래도 같은 시간에 있는 다른 전공 강의인 '서양중세철학'에서 토머스 아퀴나스를 배우느니 니체와 맑스를 읽는 편이 훨씬 마음이 편할 터이다. F지 모 님이 이번 수업에도 들어오시기에 수업 마치고 인사를 했다.

집에 오는 길에는 퇴근길 러시아워에 휩쓸려 엄청 고생했다. 버스-지하철-지하철로 거의 정확히 두 시간이 걸렸다.

아참, 하나 깜박했군: 귀국하는 날 선편으로 부쳤던 책이 어째서인지 오늘 도착했다! 주말을 끼워서 일 주일이 안 걸리다니! 가끔 항공편에 자리가 남으면 선편 소포를 넣어 주기도 한다던데, 운 좋게 그런 경우가 되었나 보다. 열어 보니 다른 책들은 대체로 무사한데 러셀 하드커버의 표지가 다른 책들에 치여 벌어져 나갔다. 살짝 안타깝지만 본문 괜찮으면 됐다. 밤에는 [Bildung] 씨디를 아이튠즈로 추출했다.   

2007년 9월 3일 월요일

2007년 9월 3일 월요일

오전에 일산 정발산역 근처의 웨스턴 돔이라는 쇼핑 센터에서 탄뎀 파트너인 제시를 처음으로 만났다. 탄뎀 파트너는 우리말로 하면 '언어교환 짝궁'정도 되려나. 한국에 오면 독일어로 말할 기회가 전혀 없을 것 같아 귀국 전에 베를린에서 탄뎀 파트너를 수소문했는데, 운 좋게도 제시와 연락이 닿아 함께 한국어-독일어를 각각 한 시간씩 공부하기로 했다. 제시는 독일어를 제2외국어로 공부했고 독일에서 일 년 정도 살았던 미국인이다.
 
외국인을 위한 한국어 교재를 처음으로 읽어 보았는데 무척 흥미로웠다. 독특하게 생긴 발음기호도 사용하던데, 한글을 바로 읽는 편이 더 쉽단다. 애당초 표음문자인 한글에 별도의 발음기호가 왜 필요할까 싶었는데, 생각해 보니 '필요할까 싶었는데'의 발음은 '피료할까 시펀는데'다. 필요하겠구나.;

여러모로 재미있는 이야기를 많이 했다. 정치적 성향이 일치하는 사람을 만나서 다행이다 싶었고, 무엇보다도 독일어로 말할 기회가 있어 기쁘다. 읽고 쓰기야 혼자서도 할 수 있지만, 말은 정말 상대가 없으면 어렵다. 특히 나는 사람을 만나 말할 일이 거의 없는 직업을 갖고 있다 보니, 대면 대화에서 말을 주고받는 타이밍을 잘 잡지 못한다. 베를린에서 지내는 동안 이 문제점을 절감했기 때문에 이번 학기에는 좀 더 '대화'를 많이 해 보려고 한다.

나는 한국어로 말할 때 말을 상당히 빨리 하고, 문장 끝에서 다음 문장으로 바로 넘어가는 경향이 있다. 흥분하면 할수록 이 증상이 심해져서, 가끔은 엄청난 속도로 문장을 2/3까지 말한 다음 뒤를 생략하고 다음 문장으로 넘어가기도 한다. 그런데 영어로 말할 때도 마찬가지더라. -_- 독일어로 말할 때면 원하는 만큼 문장을 빨리 만들지 못하니 특히 복문을 말하다가는 도중에 거의 무의식적으로 영어로 넘어가버린다. 초등학생 시절부터 이랬는데 -어렸을 때 내가 말을 하면 어머니가 중간에 '숨표, 숨표'하고 지적하시곤 했다. 고등학생 때 면접 준비하면서도 '문장을 잘라먹지 말라'는 지적을 많이 받았다.- 어느 나라 말을 해도 상태가 똑같다니, 어찌 생각하면 당연하긴 하지만 한국어와 영어는 이미 늦었다 치고, 독일어 만이라도 어떻게 좀.......


2007년 9월 2일 일요일

2007년 9월 1일 토요일

귀국 기념으로(?) 홍대 앞 초컬릿 전문점 카카오봄에 갔다. 어쩐지 사람이 굉장히 많아서 놀랐는데, 마침 개점 일 주년 기념일이었다. 일주년 기념으로 오늘만 특별 판매하는 초컬릿 퐁듀를 먹고, 사장님이 서비스로 주신 일주년 기념 초컬릿 케이크도 먹었다.

그리고 한양문고에 가서 [온], [CIEL]7권, [마 시리즈]12권(제목은 모르겠다-_-)을 샀다. CIEL과 마시리즈는 읽었고 온은 내일을 위해 아껴 뒀다. 오 주 동안 나가 있는 사이에 만화책이 많이 나와서 기쁘다. 매일 '내일의 신간'을 확인하며 애타게 기다리기 힘들었는데.

2007년 8월 31일 금요일

2007년 8월 31일 금요일

BBQ 매운양념치킨을 먹었다.

7월 말 신용카드 도난 및 부정사용 신고 후처리 관계로 은행에 전화했다.

[플루토] 4권을 봤다.

거실 청소를 했다.

사진을 하드디스크로 옮기고 일부를 정리해 일기에 올렸다. 그리고 팜 하드리셋을 하고 데이터를 복원했다.

2007년 8월 30일 목요일

2007년 8월 30일 목요일

귀국. 시차를 맞추기 위해 스무 시간 가까이 깨어 있었더니 정신이 몽롱했다. 저녁에 한 시간 반 정도 자고 다시 일어나 밀크티를 한 잔 마시고, [펭귄혁명] 5권, [행복카페 3번가] 7권, [스킵비트] 15권을 읽었다.

2007년 8월 29일 수요일

2007년 8월 29일 수요일

어제 밤에 다섯 시간 동안이나 가방을 싸느라 고생했는데, 아무리 해도 가방에 다 안 들어갈 뿐 아니라 무게도 너무 무겁다. 그래서 결국 포기하고 책만 거의 다 꺼내 따로 무게를 달아 보았더니 9kg정도 된다. 뭐야, 처음부터 불가능한 태스크였잖아!-_- 허탈해 하며 국제우편 비용을 인터넷으로 검색하고 우편보험을 독일어로 어떻게 신청하는지 찾아 본 다음 열두 시 조금 넘어 잠들었다.

늦게 잠들었는데도 일곱 시 반 쯤 일어났다. 다시 조금 더 자려고 했으나 왠지 잠이 오지 않았다. 어제 먹다 남은 과일을 먹고 아침 9시쯤 우체국에 갔다. 소포 상자를 샀는데, 우리나라 것과 달라서 설명을 읽어도 어떻게 해야 하는지 잘 모르겠다. 설명대로 하면 상자가 망가질 것 같아서 망설이고 있자니, 어떤 부인이 다가와 도와줄게요, 하고 상자를 척척 뜯어서 조립해 준다. 고마워용 하고 상자 두 개에 책을 나누어 넣어 선편으로 집에 부쳤다. 직원 분이 선편이면 오, 육 주는 걸릴 텐데 괜찮느냔다. 잊어버릴 때 쯤 되면 오겠지.

출국시에 시간이 부족해 고생했기 때문에 이번에는 일찍 출발했다. 주인아주머니가 1층까지 큰 가방을 들어다 내려 주셨다. 공항에 도착하니 겨우 열한 시 반이다. 세 시 프랑크푸르트 행 비행기인데, 너무 빨리 왔구나! 체크인 카운터 앞에서 기다리다가 빵집에 가서 피자와 커피를 먹고 돌아왔다.

프랑크푸르트에서 환승하는 승객들이 있어서인지 한국인들도 눈에 띄었다. 그냥 멍하니 앉아 있는데, 옆에 앉은 중년 한국인 분들의 대화가 들린다. '공항에서 우연히 만난 교회를 다니지 않는 중년 부부(대화내용 상 사회과학자로 추정)'를 '전도사님과 교회신도분들'이 성령에 충만한 마음으로 설득하고 있었다. '안타깝게도 은혜를 아직 입지 못한 분'이 상당히 짜증스러울 상황에서도 점잖게 대응하셔서 감탄했다. 인격자로세. 하지만 나는 얼른 두 자리 옆으로 옮겨가 못 알아듣는 척 하며 영국 소설책을 한 권 꺼내들어 읽었다.;
 
나중에 계속

2007년 8월 28일 화요일

Alte Nationalgalarie / Pergamonmuseum










2007년 8월 28일 화요일

2007년 8월 27일 월요일

오전에 슈퍼마켓에 가서 장을 봤다. 그새 다시 모아 뒀던 페트병 네 개를 가져가 보증금을 돌려받고, 수요일 오전까지 먹을 음식을 샀다. 오늘은 날씨가 눈에 띄게 싸늘해져서, 긴 트렌치 코트를 입은 사람들도 적잖이 눈에 띄었다. 장 보러 나갈 때는 별 생각 없이 민소매를 입었는데 추웠다. 그래서 오후에는 긴 후드로 갈아 입었다.


S-Bahn 헤커셔 마르크트역에서 프리드리히 슈트라세 역까지

다섯 시쯤 프리드리히슈트라세에 갔다. 두스만은 큰 서점이니 찾기 쉬울 것 같았지만 역시나 방향을 잘못 잡아서 한참 못 찾아 헤멨다. 원래 향했던 것과 반대 방향이더라. 두스만에서 여러 책 구경을 하다 보니 시간이 금세 갔다. 사고 싶은 책이 너무 많아서 고민에 고민을 거듭했다. 사고 싶었지만 부피와 무게 때문에 못 산 책 중에는 '세계의 오케스트라'라는 할인서적이 있다. 유명한 오케스트라들을 하나씩 소개한 두툼한 하드커버였는데, 컬러인데다 할인매대에 있어 저렴했지만 이미 다른 책을 몇 권 고른데다 너무 무거워서 못 샀다. 하지만 하드커버 칸트 위인전은 샀다.

서점에서 나오니 어느새 일곱 시가 넘었다. 한 시간이 넘게 서점을 몇 번이나 돌면서 정말 갖고 싶은 책만 추리고 추렸지만, 그래도 책값을 너무 많이 썼다 싶어서 빵집에서는 제일 싼 샌드위치를 골랐다. 수십 유로치 책을 산 다음에 수십 센트를 절약해 봤자 계산이 안 맞지만 말이다.; 그래도 [교양-사람이 알아야 할 모든 것]의 원서 오디오북과 원서를 산 건 잘 했다고 생각한다. 이것만 끝까지 제대로 들으면서 다 읽어도 독일어가 많이 늘겠지.

어제 밤에는 [Rosen unter Marias Obhut]을 읽다가 잤다. 사실 [오란고교 호스트부] 독어판도 저번에 샀는데 (있으면 사겠다고 일기에 쓴 다음 날인가에 서점에서 정말로 발견해 버렸다!) 만화는 오히려 축악어와 속어가 많아서 이해하기 어렵고 그다지 도움이 되지 않더라. 이 정도 가벼운 소설이 생활어를 익히는 데는 가장 부담 없겠다 싶었고 결과는 성공이다. 당장 나가서 쓸 수 있을 것 같은 표현이 많았고, 말로 할 줄은 알았지만 정확한 철자나 문장 내 자연스런 위치를 확실히 몰랐던 표현들도 제대로 확인해 보는 기회가 되었다. 나에게 기쁨과 희망을 준 이 소설의 원저자는 콘노 오유키 님이시다.;;;

참, 프리드리히 슈트라세에 '유다는 또다른 예수'라는 옷을 세트로 맞춰 입은 사람들이 유인물을 나눠주고 있었다. 어딜 가나......- _)

2007년 8월 27일 월요일

2007년 8월 26일 일요일

일요일이다. 며칠 전까지 귀국일이 목요일인 줄 알고 있다가 그제야 어머니와 메신저 중에 수요일임을 뒤늦게 깨달았다. 어쩐지 하루를 날로 뺏긴 기분이다. 베를린에서는 대부분의 박물관, 미술관, 성이 월요일에는 문을 닫으니, 실제로 베를린의 미술관에 갈 날은 일요일과 화요일밖에 남지 않은 셈이다. 그래서 오늘은 아침 일찍 나가 박물관섬에 가야지 생각했다.

늦잠을 잤다.

조금 남은 우유에 시리얼을 섞어 아침으로 먹고 잠시 지나니 배가 고팠다. 하지만 먹을 것이 없었다. 그래서 만들기가 번거로워 서울에 가져가서 먹으려 했던 스프를 2인분 끓여(우리나라 오뚜기 스프 같은 것인데 훨씬 묽고 10분동안 저어야 한다) 한 쪽 남아 있던 토스트 빵과 함께 먹었다. 이제 정말 먹을 게 없는데 계속 배가 고파서 초코 시리얼을 날로 먹었다. 우유에 넣어 먹으면 무척 맛있는데 그냥 먹으니까 맛이 없었다.

이러다가 오후에 잠깐 잠이 들었다. 깨어보니 네 시 반. 여섯 시 전에 나가서 뭔가 사오지 않으면 저녁-밤 내내 정말 아무 것도 못 먹는 사태에 직면할지도 모른다는 절박한 심정으로 일어나 쿠담까지 갔다. 일요일에는 슈퍼마켓이나 백화점이 모두 문을 닫고, 빵집도 열지 않거나 오전에만 영업을 하며, 카페도 오후에 문을 닫는다. 그래서 사실 며칠 전에 슈퍼마켓에서 장을 많이 봤었는데, 이상하게도 장을 많이 보면 슈퍼에 가는 빈도수가 줄어드는 것이 아니라 그냥 매 끼를 더 많이 먹게 된다. 즉 장을 많이 보나 적게 보나 한 번 장 본 음식을 소모하는 시간은 거의 같다.


동네 트램 역. 늘 여기에서 트램을 탔다.

쿠담에는 문 연 데가 있을 줄 알고 게까지 갔는데 거기 슈퍼마켓과 백화점도 모두 문을 닫았다. 꽤 멀리 나갔는데.....허탈했다. 그래서 오늘 영업 한다는 것을 미리 확인해 놨던 베를린의 유서깊은 초콜릿 전문점에 가기로 했다. Fassbender&Rausch라는 곳으로, 초컬릿 카페와 예약제 초컬릿 레스토랑까지 운영하는 곳이다.

F&R은 참으로 훌륭하였다. 커다란 초콜릿 타이타닉, 카이저 빌헬름 교회, 국회의사당 등이 있었고, 각종 수제 트뤼플, 바 초컬릿, 여행자 초컬릿, 예쁜 초컬릿, 쿠키 초컬릿, 초컬릿 쿠키, 초컬릿 스프레드, 핫초컬릿 등이 아주 많았다. 선물로 몇 가지 골랐다. 정말 맛있어 보이는 분홍색과 귤색 트뤼플 세트도 있었다. 우리나라에 비하면 수제 초컬릿 치고는 무척 저렴했지만, 그래도 나 먹으려고 사려니 아까워서 고민하다가 결국 안 샀다. 그런데 계속 먹고 싶다. ㅠㅠ 바바라가 이곳의 초컬릿 카페를 극찬했었기에 갈까 했는데, 빈 속(이라기보다는 인스턴트 스프와 마른 시리얼 등이 대충 섞여 있는 속)에 진한 핫초컬릿을 마시면 좋지 않을 것 같아 바로 알렉산더 광장으로 끼니거리를 찾아 갔다.


알렉산더 광장 에스반 역에 있는 아시안 누들 집에서 닭고기면을 사서 한 그릇 깨끗이 비우고 집에 돌아와서 민트 차를 마시고 귀국 가방을 쌌다. 여기 온 후로 짐이 꽤 늘어나서, 무게와 부피를 가늠하기 어려워 일단 가방에 넣어 보고 다 안 들어가면 어떻게 할지 미리 생각해 놓기 위해서다. 올 때 짐이 가벼웠으니(위탁수화물이 15kg이하) 웬만하면 규정을 넘지 않을 것 같긴 한데, 늘어난 짐 대부분이 부피에 비해 무거운 책이라 불안하다. 아직 베를린에서 가장 큰 서점인 쿨투어카우프트하우스 두스만(Dussmann)에는 가 보지도 않았는데. 그리고 프랑크푸르트에서 환승할 때 기내수화물을 모두 들고 다녀야 할 일도 걱정이다.    

내일 계획: (1)슈퍼마켓에 가서 물, 우유, 채소를 사고 (2)프리드리히슈트라세에 있는 두스만과 (3)월요일에도 문을 여는 미술관(예:바우하우스)에 간다.

어제 쓰려다 잊은 것: 한 짝씩 사라진 양말 세 개가 화장실 하이쭝에 걸려 있기에 걷어 왔다. 나중에 부엌에서 마주친 주인아주머니가 양말 봤느냐고, 세탁기 안에 있는 걸 못 보고 한 번 더 빨았다고 웃으신다. 그래서 엄청 엄청 깨끗해졌겠네요! 했다.

중간에 일기에 써 넣으려다가 잊은 것: 독일어에는 schon(already)과 schoen(beatiful, o 움라우트)이라는 단어가 있다. 종강 며칠 전, 수업 시간에 스페인 학생들이 이 두 단어의 발음와 의미를 잘 구분하지 못하자 내가 즉석에서 만든 바람직한 예문-
Ich bin schoen, und ich war schon schoen als ich ein Kind war.
(I'm beautiful, and I was already beautiful when I was a kid.)

이런 것도 있다.
'Schlecht Deautsch' ist schlechtes Deautsch. (내가 너무 헷갈려서 만들었다.)

2007년 8월 26일 일요일

2007년 8월 25일 토요일

 

오후-마리나와 필름뮤제움


(빌리 와일더 감독이 작업실에 걸어 두었다는 현판. 'How Would Lubitsch Do It?')

저녁-필하모니에서 베를리너 필하모니커의 본공연. 사이먼 래틀 경이 지휘하는 말러 9번을 지척에서 들었다. 너무 훌륭해서 연주가 끝나지 않고 오래오래 계속되었으면 싶었다. '공연장의 음향이 좋다'는 게 무엇인지도 확실히 이해. 베를리너 필하모니커에서는 바순이 아니라 파곳을 쓰더라. 두 악기의 느낌이 생각보다 차이가 났다.(듣다가 지금까지 들었던 바순과 달라서 오케스트라 단원명단을 확인해 보니 파곳이었다)

쉬는 시간 전에 연주된 린드버그의 곡은 그냥저냥이었다. 모르는 곡이다 보니 음악보다는 연주와 음향에 감탄하면서 들었다. 쉬는 시간에 필하모니커 잡지를 보니 꽤 상세한 린드버그 프리뷰/소개기사가 있기에 훑어보았는데, 기사 제목이 'Nur das Extreme ist interessant'이다. 역시 내 취향이 아니었구나, 하고 납득했다. 그래도 린드버그와 래틀 경이 내 눈앞에서 포옹한 건 좋았다.; 그리고 내가 '처음으로 가까이에서 본 총보'가 사이먼 래틀 경의 악보라고 생각하니 어쩐지 감동적이었다.

어쨌든 예술은 위대하다. 정말로. 피곤한데 잠이 오지 않는다.

2007년 8월 25일 토요일

2007년 8월 24일 금요일

어학원 종강. 다같이 근처 카페에서 커피 한 잔 마시며 뒷풀이. 나는 파인애플 주스를 마셨는데 벌이 내 주스에서 헤엄치는 바람에 반밖에 못 마셨다.-_-


(뒤에 보이는 노란색 자동차는 마리나가 만든 귀걸이. 실제로 굴러가는 자동차 장난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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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이틀간 무리한 것 같아 장만 보고 집에 들어왔다. 카페에 있을 때 까지만 해도 날씨가 굉장히 좋아서 어디 바람 쐬러 나가야 할 것 같았는데, 슈퍼에서 나오니 굵은 빗방울이 뚝뚝 떨어지고 천둥이 친다. 집에 와서 샐러드와 새우팩초밥을 먹고 뒹굴뒹굴 하며 [Nine Layers of Sky]를 마저 읽었다. 기대에 미치지 못해서 아쉬웠다. 좋은 책이지만 훨씬 더 훌륭한 작품이 될 수 있었는데 해결되지 못한 문제들과 너무 쉽게 해결된 고민들이 뒤섞여 평작에 그쳤다.

우주개발 프로그램에 참여하던 소련의 여류 천체물리학자가 소비에트 연방의 몰락으로 인해 직장을 잃고, 카자흐스탄에서 빌딩 청소를 하면서 가족과 모스크바로, 그리고 캐나다로 떠날 자금을 모으며 살아간다는 설정에서 이끌어 낼 수 있는 현실적이면서도 애틋한 감동은 결코 적지 않았을 터이다. 실제로 초중반 까지는 그런 절박한 아름다움이 꽤 살아 있다. 그런데 뒤로 가니 겨우 '800년을 산 전설의 영웅과 섹스를 하려는데 콘돔이 없어서 어쩌지' 따위로 이야기를 진행하냐?! 이럴 거면 엘리자베스 문이나 낸시 크레스 같은 작가한테 아이디어를 양보하지 그랬어! orz

2007년 8월 24일 금요일

2007년 8월 23일 목요일

오늘은 수업을 마치고 마리나, 바바라와 함께 학원 맞은편에 있는 팔라펠 가게에서 같이 점심을 먹었다. 수업 시간에 '국제적인 도시여야 하는' 베를린 사람들이 갖는 폐쇄성에 관한 이야기가 나왔기 때문에, 점심을 먹으며 같이 그 이야기를 좀 더 했다. 확실히 이곳에는 '유색인종'이 굉장히 드물고, 출신지역이나 문화가 다른 사람들이 섞여 살아가고 있는데도 원주민들이 이를 잘 받아들이지 못한다는 -거부한다기보다는 어색하고 낯설어 한다- 느낌이 있다. 아이러니컬하게도 그런 일종의 보수성이 런던과 같은 역동적인 대도시와 다른, 베를린 특유의 '살기 좋은 느긋한 도시'의 분위기를 만들어 낸다고 생각한다.

바를 경영하는 독일인 친구와 살고 있는 마리나가 어제 파티에 간 얘기를 했다. 마리나는 춤을 좋아해서 크나이페나 디스코에 즐겨 가는데, 그럴 때면 아무도 마리나에게 말을 걸지 않는다고 한다. 마리나는 독일어도 썩 잘 하고 영어에 능숙하며(오스트레일리아에서 어학연수를 하며 배웠다는데, 정말 영어로 깊은 이야기까지 하는 데 아무 문제가 없다) 이탈리아어도 이탈리아인인 척 할 수 있을 만큼 한다. 그런데 아무도 말을 걸려는 시도도 하지 않고, 좀 술에 취하고 나면 '남자들만' 말을 건다며 분통을 터뜨렸다. 어쨌든 어제 파티에서는 마리나를 제외하고는 모두 독일인이었는데, 한 시간 정도 아무하고도 얘기를 못 하다가, 좀 나이 든 독일인 부인 한 명이 다가와 어디에서 왔느냐고 묻더란다. 저쪽에 있는 자기 친구는 마리나가 ***(까먹음)에서 왔으리라고 했는데 자기는 남미에서 온 사람 같다고 생각했다며 정답을 가르쳐 달라고. -_- 그래서 바르셀로나에서 왔다고 했더니 알겠다고 하고 돌아가더란다. 대단히 불쾌했으리라.

마리나가 이곳 사람들은 가슴 아래의 몸을 움직일 줄 모른다고 했다. 배와 허리로 자연스럽게 리듬을 타는 라틴계와 달리, 이곳 사람들의 움직임을 자세히 관찰해 보면 하반신이 굳어 있는데, 이것은 자연스럽지 못하기 때문에 좋지 않다고 생각한단다. (바바라도 동의) 마리나는 본인이 모델 일을 해서 사람 몸이 움직이는 방식이나 사람들이 취하는 자세 같은 쪽에 관심이 많다. 한 번도 문화적인 차이를 그런 시각에서 생각해 본 적이 없어서 무척 흥미로웠다.

나중에는 영화며 예술 쪽으로 화제가 흘러갔다. 마리나가 조지 클루니와 찍은 사진도 보았다. 조지 클루니가 바르셀로나에서 영화 출연 할 때 조연으로 같이 촬영했었다는데, 조지 클루니는 실제로 키가 별로 크지 않아서 깔창을 쓴다고 한다. 바바라는 로빈 윌리엄스를 인터뷰 한 적이 있는데, 화면에서는 작고 통통해 보이지만 실제로 보면 키가 180cm가 넘는 유쾌하고 존재감이 뚜렷한 사람이란다. 조니 뎁의 훈훈함에 셋 다 동의했다.

즐겁게 식사를 하고 나서 Kulturebraurei 호프 안에 있는 카페에 촬영을 하러 들어갔다. 바바라는 '내 인생의 마법'이라는 소재로 다양한 사람들의 짧은 인터뷰를 모으고 있다. 아직 어떤 형태의 영상으로 만들지는 결정하지 않았다지만, 좋은 소재이니 흥미로운 작품이 나올 것 같다. 세 시에 일어나야 하는 마리나가 먼저 자기 이야기를 영어로 나에게 해 주고, 카메라를 보고 스페인어로 다시 했다. 나도 마리나와 바바라에게 내가 생각해 온 이야기를 영어로 들려 준 다음 한국어로 다시 말했다. 마리나가, 지금까지 만난 사람들 중에서 내가 가장 표현력이 풍부한 사람이라고 해서 기뻤다. 바바라가 동의하며, 나는 하고 싶은 말을 굉장히 선명하게 표현하는데 그게 내가 단어를 선택하는 방식과 관련이 있는 것 같다고 거든다. 후...역시.....-_-v

마리나는 먼저 일어서고, 나와 바바라는 함께 우리 집까지 걸어가며 이야기를 했다. 바바라가 내일 이탈리아로 돌아가기 때문에 집에 둔 명함을 오늘 주기로 했다.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이나 관심사가 비슷해서 바바라와 대화하면 굉장히 즐겁다. 하필이면 내가 출국하는 목요일에 베를린으로 돌아온단다. 바바라도 많이 아쉬웠는지 몇 시 비행기냐고, 혹시 쇠네펠트 공항이면 입/출국하는 길에 만날 수 있지는 않겠느냐고 물어 보았는데, 안타깝게도 나는 테겔 공항으로 나간다. 헤어지면서 포옹을 하고 뺨을 부볐다. 내가 웃으며 한국에서는 이렇게 부비면서 인사하지 않는다고 했더니, 바바라가 알아서 다행이라며, 나한테 키스하려고 했단다. 순간 말 하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뻣뻣한 사람이라, 아무래도 입맞춤까지는 부담스럽다.;;

바바라와 헤어지고 기세를 몰아 동네에 있는 영어 헌책방에 갔다. 혹시나 엘러리 퀸이 있을까 했는데 없더라. 버트런드 러셀의 책을 한 권 샀다. 

그리고 집에 갔다. 오늘은 학원 종강 파티가 있는 날이다. 파티 시간이 8시인 줄 알고 앉아서 초콜릿을 먹고 있다가, 학원 안내문을 다시 보니 8시가 아니라 18시다. 한 숨 자고 나가려고 했는데 이런, 하고 허겁지겁 바베큐 파티를 하는 공원까지 가는 길을 vbb-fahrinfo에 검색해 보고 나섰다.

중략하고 근처에서 학원 선생님에게 전화-슈퍼에서 장보느라 바빴던 선생님이 내 말을 잘못 알아듣고 학원에 가보라고 함-학원에 갔더니 그게 아니었음-다시 트램을 타고(총 5번 탐) 파티장소로 감-허겁지겁 부르스트와 빵을 먹음-스페인어로 쉴새없이 얘기하는 학생들 틈에 끼여 있다가 재미가 없어서(특히 그 자리에 없는 학생들의 이름이 대화중에 섞여 나오자 무척 불편) 독일어를 하는 쪽으로 옮겨감-고등학교 철학선생님인 이탈리아 아저씨와 고전음악 얘기를 하다 보니 재미있어짐



파티에서도 재미있는 일이 많았는데 요약만 해놓고 나중에 써야겠다. 10시에 집에 와서 샤워를 하고 잤다. 독일어와 영어로 즐거운 대화를 많이 하고 부르스트와 파스타, 빵을 많이 먹어 좋았지만 무척 피곤했다. 아무리 늦어도 12시 전에는 자는데, 어제 밤에 아사로에게 낚여서 새벽 2시까지 [The Final Key]를 읽은 탓이 크다. 너무나 뻔한 결론을 알고 있으면서도, 어서 마지막 페이지가 나오길 바라며 꾸역꾸역 읽느라 잠을 제때 못 자다니......orz 오늘 낮부터는 Liz Williams의 [Nine Layers of Sky]를 읽고 있는데, 서평을 읽었을 때 생각했던 것과 상당히 다른 내용이었다. 하지만 무척 재미있고, 물론 아사로보다 글맛도 훨씬 낫다.  

2007년 8월 23일 목요일

2007년 8월 22일 수요일

학원에는 나, 세실리아, 바바라 세 명 밖에 안 왔다! 어제는 네 명이었는데, 갈수록 줄어든다고는 해도 너무 심하잖아......늘 성실한 마리나가 어제 몸이 좋지 않다고 하더니 오늘 오지 않아서 걱정했는데, 쉬는 시간에 캄프에서 우리 셋이 차를 마시며 수다를 떠는 데 나타났다. 컨디션 난조로 고생하고 있는 것 같았다. 쉬는 시간 이후에 마리나, 알바, 이자벨, 안나가 왔다.

오늘은 날씨가 참 이상했다. 아침부터 비가 제법 내렸고, 쉬는시간에는 커피를 마시는데 비가 점점 많이 오더니 교실에 다시 들어갈 때가 되자 천둥번개까지 쳤다. 하지만 오후가 되니 해가 쨍쨍하고 덥다.

쉬는 시간에 얘기를 하던 중, 바바라가 80% 다크 초콜릿을 꺼내 먹겠냐고 하기에 한 조각 먹고, 초콜릿을 좋아하느냐고 물어 봤더니 무척 좋아한단다. 그래서 오후에 다른 계획이 없다면 DDR 박물관 옆에 초콜릿 카페가 있으니 박물관 단체관람 시각보다 같이 초콜릿 한 잔 하지 않겠느냐고 데이트 신청(?)을 했다.

그래서 오후에는 카카오 샴파카에서 바바라와 아이스 초콜릿을 마시며 얘기를 했다. 아아, 이국 땅에서 데렉 저먼의 [비트겐슈타인]의 연출에 관해 이야기 할 사람을 만나다니 이것은 기쁨을 넘어 감동이로세. ([비트겐슈타인]은 독일 감독의 영화지만 DVD 출시가 안 되었기 때문에 아는 사람이 별로 없을 줄 알았는데, 바바라는 데렉 저먼의 단편 영화까지 봤더라.) 바바라가 예전에 음악 방송국에서 일한다는 얘기를 했었는데, 들어 보니 자신도 미술을 전공하고 미디어 아트에 관심이 많고 실제로 조금씩 작업도 하고 있단다. 지금 바바라가 하고 있는 작업에 참여하게 될지도 모르겠다. 물론 제작이 아니라 촬영 대상으로. 영화 외에도 여러가지 책이나 베를린의 생활, 밀라노와 서울에 관해 이야기하다 보니 시간이 금세 갔다. 김기덕 감독 얘기를 하고 있는데 세실리아가 지나가다가 우리를 보고 약속 시간 지났다고 알려 줬다. 그래서 서둘러 넷이서 (세실리아의 어머니도 동행) DDR 박물관에 갔다.

박물관은 무척 재미있었다. 아무래도 북한과 비교하게 되기도 했고, 학원 선생님 중 구 동독 출신인 톰이 전시물을 하나하나 설명해 주시고, 실제로 자신의 생활담도 들려 주셔서 (통독 당시 19살이었단다) 더 흥미로웠다. 독일어 설명이라도 본인이 독일어를 우리에게 가르치고 있다 보니 천천히 설명해 주면서, 잘 못 알아 들으면 더 쉬운 단어로 다시 말씀해 주셔서 좋았다. 

박물관 구경을 마치고 샴파카에서 쌀이 들어간 다크 초콜릿을 하나 사서 트램을 타러 가면서 먹었다. 집에 오는 길에는 아사로의 책을 읽다가 한 정거장을 놓쳐서 도로 걸어 왔는데, 초콜릿 덕분에 힘도 나 있었고 오늘 하루가 즐거웠기 때문에 기분이 좋았다. 집에 오니 주인 아주머니가 어제 구워서 식혀 뒀던 초콜릿 케이크를 가리키며 먹고 싶을 때 잘라 먹으라신다. 사실 어제 굽는 걸 봤을 때부터 맛있어 보여서 헤-하고 있었기에 좋아요, 좋아! 하고 밀크초코 코팅과 다크초코 코팅을 한 조각씩 잘라 레몬민트차와 같이 먹었다. 본 대로 맛있더라.

오늘은 바바라 선생님과의 마지막 수업 날이기도 했다. 한국에서 준비해 간 연날리기 책갈피를 선물로 드렸다.

2007년 8월 21일 화요일

2007년 8월 20일 월요일

보통 직업이 무엇이냐는 질문을 받으면 나는 철학과 학생이라고 대답한다. 이곳에서처럼 내 신분이 일단 어학원생이고 주위 사람들도 대부분 자국의 대학생이나 갓 대학을 졸업한 유학희망자인 경우 일단 학생이라는 답만큼 무난한 것도 없다. 유럽에는 사회복지가 학부전공이 아닌 나라가 많기 때문에(사회학의 분과학문이라고 들었다) 사회복지학과라고 말했다가는 구텐탁 프로이트 미히 다음 단계부터 왠지 의사소통이 잘 안 되는 듯한 기분이 되겠다 싶어서다.

우리 반의 스페인 남학생 루이스는 몇 번을 들어도 외워지지 않는 뭔가 독특한 학문을 전공하고 있는데 -산림학 비슷한 것인 듯- 공부 얘기가 나올 때 마다 아무도 루이스가 산에서 무엇을 하는지 이해하지 못해 난감한 분위기가 된다. 만국공통 기초학문의 최절정 철학을 복수전공해서 참 다행이다.

어쨌든 실제로 어학원에는 철학 전공자가 많은데, 독일철학의 위상과 타 유럽도시(특히 영국 런던)에 비해 저렴한 학비와 생활비를 생각하면 자연스런 일이다. 한국인이 없는 어학원이라서인지 뜻밖에 음악 전공자는 지금껏 한 명도 만나지 못했다.

집에서 버스를 타고 이십 분 정도만 가면 훔볼트 대학이 있다.  훔볼트 대학은 우리로 치자면 신촌에 있는 연대처럼 시내 한가운데에 있지만 왼쪽으로는 미술관 섬(뮤젠 인젤)의 박물관과 미술관이 보이고 오른쪽으로 조금 가면 국회의사당 끝자락과 브란덴부르크 토어가 보인다.

내가 여기 오고 이 주 쯤 지났을 때였나, 메신저로 대화하던 중에 동생이 "거기서 공부하고 싶어?"라고 물었다. 나는 이곳의 대학 생활에 관해 잘 알지 못하므로 아직 그 질문에 대한 답은 모르겠다. 하지만 이 곳에서 살고 싶다고는 생각한다. 석박사 과정은 영어로 코스를 밟을 수도 있고, 그래서 실제로 한국인들이 독일에서 영어 논문으로 석박사를 받기도 한다고 들었다.

독일어로 읽기는 말하기보다 훨씬 쉽고, 쓰기도 그다지 어렵지 않다. 말을 할 때 제일 곤란한 부분이 독일어와 영어의 어순 차이와 문화 차이로 인한 타이밍의 문제인데, 타이밍은 훈련과 학습으로밖에 해결할 수 없는 것이고, 어순 쪽은 읽거나 쓸 때는 (1)작자가 원래 맞게 쓴 글을 바로 읽거나 (2)쓰면서 생각을 정리해 어순을 맞출 수 있으니 괜찮다. 지나치게 성급한 자만인지는 몰라도, 이곳에서 일 년 정도 어학과정을 제대로 밟고 나면 영어 문헌을 보조삼아 독일어로 대학 공부를 할 수 있으리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훔볼트 대학 앞을 종종 지나며 내가 느끼는 동경은, 학교 중앙도서관의 서고에서 1930년대의 사이언스 지 원본을 펼쳐 볼 때 느끼는 감정과 매우 비슷하다. '지식'이나 '시간', '통찰' 같은 추상적인 관념들이 실질적인 형태를 띠고 오감에 닿을 때면 황홀해진다. 그 형태가 꼭 거대하고 유서 깊은 독일 대학 건물일 필요는 없어서, 사실 나는 신림 2동에서 맨큐의 거시경제학 제 3판을 보다가도 황홀해 하곤 했다. (시험장에서 제2차 시험지를 보면서는 아무래도 황홀해지지 않는 것이 내 고시 공부 과정의 어려움이다) 그제는 포츠담 광장에 있는 쇼핑 센터 아르카덴(Arkaden)에 놀러 갔다가 2층 서점에 빠져서 헤어나질 못했다.

책을 많이 사 가고 싶은데 책은 무거워서 살 마음먹기가 어렵다. 책 가격은 우리나라에 비해 비싸지 않다. 특히 두툼한 사진집이나 화보집을 할인해서 8-9유로 정도에 살 수 있는 코너가 있었다. 세계 지도나 이집트 문명 사진집처럼 평소라면 엄두도 내지 못할 몇 킬로그램 짜리 책들에 절로 눈이 갔다. 커다란 여행 가방과 그 안에 딱 맞게 들어가는 괴테 전집도 있었다.

SF와 판타지 코너도 물론 꼼꼼히 살펴 보았다. 필립 케이 딕 전집이 예뻤다. 밝은 노랑, 분홍, 연두 등 색으로 각권을 입혀 전집 형태로 나와 있던데  딕을 썩 좋아하지 않는데도 탐이 나더라. SF와 판타지는 청소년 서적 코너에도 굉장히 많고, 자국 작가들의 작품도 창소년 서적 쪽에 더 많았다. 이곳은 미하엘 엔데의 나라이기도 하다.

독일 청소년 도서가 우리나라에 얼마나 소개되어 있는지 잘 모르겠다. 좋은 책을 단번에 발견해 낼 정도로 독일어를 잘 하지 못해서 안타깝다. [문자메세지와 사랑의 스트레스]라는 책은 재미있을까나.; 우리나라와 가격이 비슷하니, 좋은지 아닌지 모르겠지만 일단 턱 하고 살 만큼 싸지는 않다. 그래서 요즈음은 길 가다가 서점에서 벌려 놓은 할인 매대(대체로 재고품이나 헌 책으로, 영어/독일어/기타언어 책이 섞여 있는 경우도 적잖음)를 보면 꼭 멈춰 서서 뒤져 본다.

오늘의 일과도 간단히 쓰자면 - 아침에는 빵집 캄프에서 밀히카페와 '네모'라는 맛있어 보이는 설탕+사탕가루를 입힌 돌고래 모양 쿠키(신제품), 아몬드를 입히고 초컬릿 소스로 장식한 빵을 사서 학원에 갔다. 다들 제 시간에 안 오는 것 같아서 9시 27분에 교실에 들어갔는데 역시나 내가 제일 먼저 왔더라. 교실 발코니에 있는 탁자에 앉아서 아침 바람을 맞으며 커피를 마셨다. 선생님이 35분쯤 들어오셨고, 다음으로 성실한 마리나와 바바라가 왔다.

밀린 일기를 조만간에 쓰지 않을지도 모르니 더 늦기 전에 여기 써 놓자면, 바바라는 지난 주부터 합류한 이탈리아 직장인으로, 텔레비전 방송국에서 근무하고 있다. 극본이나 극작가에 관심이 많고 지금은 휴가를 내어 온 참이라 다음 주에 돌아가지만, 앞으로 독일 영화 산업에 뛰어들고 싶어한다. 나이는 꽤 많은 편인 것 같은데, 성실하고 독일어도 꽤 잘 한다. 예전에도 독일에 몇 번 왔었고 런던에서도 일 년 살았단다. 회화는 고만고만하지만 듣기를 잘 하고 말을 받는 타이밍이 좋아 역시 벤치마킹 대상이다. 비슷한 수준의 독일어라도 세실리아가 어린 학생 답게 통통 튄다면, 바바라는 정중하고 신중하게 말하는 느낌을 준다. 한 등급 높은 반으로 갔어도 괜찮았을 듯 한데. 여름과정 중간에 들어오다 보니 우리 반으로 온 것 같다.

수업 시간에 세실리아에게 선생님이 '소연이 무엇을 잊어버렸니?"라고 물었다. 문장 만들기 놀이 중이었다. 그러자 세실리아가 고민하다가 'Sie vergisst morgens 'Guten Tag' zu sagen(She forgot to say good afternoon in the morning)'라는 문장을 만들었다. 그래서 씩 웃으면서 즉시 'Aber morgens muss man 'Guten Morgen' sagen!(but in the morning, you should say good morning!)' 이라고 농담을 했는데, 상당히 훌륭한 리액션이었다. (스스로 만족)

학원 수업을 마치고는 곧장 카이저에 가서 장을 봤다. 또 먹을 게 없어서; 다시 나오기 귀찮을 것 같아 어제 밤에 장바구니아 장 볼 목록을 미리 가방에 넣어 놨었다. 과일, 채소샐러드, 빵, 우유, 물을 사고, 고민하다가 연어와 새우 팩초밥도 샀다. 내가 좋이하는 새우라서.......집에 와서 점심으로 먹었는데, 우리나라 슈퍼마켓 팩초밥과 비슷한 맛이었다.; 어쨌든 새우를 섭취해서 만족했다. 과일은 후식으로 먹었다.

지난 며칠 동안 방에서 무선인터넷이 잘 되지 않아 꽤 스트레스를 받았는데 - 아예 안 되는 것도 아니고, 연결되었다가 끊겼다가 하니 산만해서 더 신경이 쓰였다. - 오늘 오후에는 갑자기 굉장히 신호가 잘 잡힌다. 그래서 앉아서 웹서핑을 하다 보니 시간이 금세 갔다. 저녁으로는 우유 한 컵과 요거트꿀버터를 바른 빵을 먹었다.

어제는 빨래를 했는데, 널면서 보니 어째서인지 양말 세 켤레가 다 한 짝 밖에 없다. 세탁기에는 두 짝을 넣었는지 기억이 잘 나지 않지만, 보통 양말은 벗어서 그때그때 빨래통에 넣어 놓으니 한 짝만 있을 이유가 없는데 대체 왜 세 켤레나 짝이 사라졌는지 영문을 모르겠다. 세탁기 안에 남아 있나 들여다 봤는데 없었다. 사실 어제 밤에 주인 아주머니가 세탁기 안쪽에 붙어 있던 한 짝을 갖다 주셨다. 나머지는 어디에 간 걸까?

이제 씻고 잠깐 쉰 다음 학원 숙제를 하고 원고를 할 계획이다. 원래 원고에 관해 쓰려고 했는데, 옆길로 새서 일상 잡담이 되었네. 글의 앞과 뒤가 미묘하게 어긋난다.

2007년 8월 20일 월요일

2007년 8월 19일 일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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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심으로 먹은 태국 국수. 집 앞에 있는  MAO THAI라는 유명한  태국음식점에서 먹었다. 론리 플래닛을 비롯, 웬만한 여행 책자는 물론이고 베를린 거주자들이 보는 잡지에도 거의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곳이다. 먹어 보니 과연 유명할 만 하다. 볶음밥도 맛있는데 양이 너무 많아서 다시 주문할 엄두가 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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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 주변에 맛집이 많아서 좋다. 귀국하기 전에 여기저기 많이 가 볼 수 있을까.



 

2007년 8월 16일 목요일

2007년 8월 15일 수요일

오늘 학원 수업에는 다섯 명 밖에 오지 않았다. 30분 약간 지나서 교실에 들어갔는데 바바라, 소냐, 마리나밖에 없어서 깜짝 놀랐다. 늘 앉던 곳에 자리를 잡고 나니 나란히 앉은 이 세 명과 내가 마주보는 형태가 되었다. 수업을 시작하고 잠시 후 세실리아가 와서 총 다섯 명. 이것이 바로 새미가 말하던 '어학원 학생들이 서서히 줄어가는 모습'이로구나. 하긴 나도 어제 결석했지.

선생님이 함부르크 여행은 어땠느냐고 하셔서 쿤스트할레(시립미술관)에 가서 그림을 많이 보았다고 했더니, 어느 화가의 그림을 보았냐고 물으신다. 그런데 그림을 수백 점이나 봤으면서 순간적으로 램브란트 한 명 밖에 생각이 안 나더라. 그래서 "램브란트......(4초간 고민하다가 눈을 크게 뜨고) Ich habe shone vergessen!(그세 까먹었어요!)" 라고 하고 같이 웃었다. 세실리아를 벤치마킹 해서 다이내믹하게 표현하려고 애쓰니 대화가 즐거워진다. 참, 세실리아는 스페인 전국 대회에서 프리스타일 힙합 부문 2등상을 받았던 춤꾼이었다. 듣는 순간 역시-싶었다.

수업에는 장소전치사 활용과 복합문장 만들기를 했는데, 좋아하는 작가와 책에 관한 화제가 나왔다. 데미안을 일곱 번 읽었다고 했더니(사실 엄청 많이 읽었는데 수십 번은 너무한 것 같아서 좀 줄였다) 선생님이 왜 그렇게 많이 읽었냐신다. 그래서 헤르만 헤세를 좋아하기 때문이라고 말하려다가, 순간적으로 "Weil ich Hermann Hesse liebe."(헤르만 헤세를 사랑해서요)"라고 해 버렸다. 말이 떨어진 순간 어감의 차이를 깨닫고 "그게 아니라 책, 그 사람 책 말이에요!" 라고 말했지만 이미 폭탄은 투하된 뒤. 다같이 책상을 두드리며 엄청 웃었다. 소냐는 쥐스킨트를 좋아한다고 하더라.

파트너 인터뷰 시간에 '-을 그만두고 싶다'는 표현을 사용하기 위한 질문이 나왔는데, 그만두고 싶은 습관이나 활동이 없었다. 그래서 "Ich moechte nie aufhoeren."이라고 했더니 옆에 있던 선생님이 물었다. "그만두고 싶은 게 하나도 없어? 흡연은? (Ich rauche nicht 안 피움), 술? (Ich trinke nicht 안 마심) 잠 많이 잠?(Aber das ist gut 그건 좋은 거잖아요;).......소연, 너 지나치게 긍정적이잖니!" 그런데 정말 아무리 생각해도 내가 이미 하고 있는 활동 중에 그만두고 싶은 것이 하나도 떠오르지 않아 당황스러울 정도였다. 내가 하는 건 다 계속해도 좋을 일처럼 느껴졌다. --; 결국 '-을 시작하고 싶다'로 바꿔서 인터뷰를 계속했다. 그만두고 싶은 것이 있나 종일 고민해 보았는데, 내가 말을 너무 많이 하지 않았으면 싶기는 하다. 아, 그리고 돈도 너무 많이 쓰지 않았으면 좋겠다.

오늘 오후에는 학원에서 독일 국회의사당(Deutche Bunderstag) 견학을 갔다. 4시 30분까지 여권이나 신분증(EU국가들끼리는 ID카드만으로 신분증명이 된다)을 가지고 꼭 시간 맞춰 오라기에 4시 10분 쯤 갔더니 아무도 없다. 의사당 앞 커다란 계단 앞을 왔다갔다 하며(더웠다!) 어학원 사람들을 찾아 봤지만 20분이 넘어도 보이지 않아서 정문 예약관객 문으로 가서 스피커에 대고 어학원에서 같이 오기로 했는데 일행을 못 찾겠다고 난잡한; 독일어로 말했더니 문을 열고 들여보내 준다. 오늘 단체 견학을 예약한 국제학생단체가 있다고 하기에 보니 우리 학원이 맞다. 그런데 다섯 시 시작이란다. 애당초 학생들이 늦을 걸 생각해서 4시 30분이라고 써 놓았는데, 나는 꼭 시간 지키라는 말을 곧이곧대로 듣고 20분 일찍 갔으니 40분이나 먼저 도착한 셈이다. 어쨌든 이 팀이 맞다고 했더니 다른 직원 분이 나를 북문으로 데려다 주고, 우리 견학은 이쪽 문에서 시작하기로 되어 있으니 다른 사람들이 오면 얘기해 주겠단다. 정문에서 만난다고 쓰여 있었는데 이상하네, 생각하면서 보안검색대 뒤 계단에 앉아 기다렸다. 심심해서 어제 빵집에서 받았던 젤리 한 봉지를 다 먹었다.

4시 50분이 되도록 우리 일행이 나타나지 않자, 젤리를 먹는 내 옆을 왔다갔다 하던 견학 안내를 맡은 할아버지 박사님이 다가와 일행이 어디 있는지 아느냐고 묻는다. 그래서 밖에서 제가 안 왔다고 생각하고 기다리고 있을지도 몰라요, 했더니 나가서 같이 찾아보잔다. 그래서 나가 봤더니 저 멀리에서 바바라 선생님(학생 바바라와 구분)과 낯익은 얼굴들이 나타난다. 역시 정문 앞 집합이었다. 너무 빨리 와서 못 찾았어요-힝힝 하고 같이 들어갔다. 다행히(?) 나 외에도 나타나지 않은 학생이 서너 명 더 있었다고 한다.

지난 주말부터 찾았으나 쉬는 시간마다 어디로 가는지 좀체 보이지 않던 알렉스와 첸이 일행에 있어서 반가웠다. 예전에 알렉스가 이번 주까지만 수업을 듣고 마지막 주에는 독일 여행을 간다고 했었기 때문에, 혹시 금요일까지 못 만나지 않을까 걱정했었다. 내 연락처를 주고 대만과 한국은 가까우니 서울에 놀러오면 꼭 연락하라고 했다.

독일 국회의사당 건물에서는 유리 돔이 제일 유명한데, 하필 이번 주에는 공사중이라서 돔까지 보지는 못했다. 하지만 18일에 공사가 끝난다니 다음 주에 다시 가 보면 되겠지. 독일 국회의사당은 전세계에서 가장 많은사람들이 방문하는 국회로, 1994년에 통독 의회를 위해 지금 형태로 완공된 건물이다. 내벽에 낙서가 있어서 '여기 사람들은 국회에도 낙서를 하나봐;'하고 생각했는데, 알고 보니 2차 세계대전 말기에 국회건물을 점령했던 소련 군인들이 써 놓은 욕이나 자기 이름, 정치선전 문구들을 건물을 새로 지으면서 없애지 않고 그대로 남겨 두었단다. 역사를 반영하는 국회라는 테마를 반영해서, 벽 곳곳에는 그 공간이 오십 년 전, 이십 년 전 즈음에 어떤 형태였는지를 보여주는 사진도 같이 걸려 있었다. 히틀러, 소련, 동서독 분단으로 이어지는 정치사의 굴곡을 그렇게 남겨 놓고, 견학 온 학생들에게 "저게 독일에 대한 무척 나쁜 욕이다"고 설명하는 것이 흥미로웠다. The Story of Berlin에 갔을 때도 느꼈던 바지만, 과거에 새롭게 가치를 부여하고 그 시간을 재구성해서 의미있는 문화유산으로 만들어내는 과정과 방식에 감탄하게 된다.

국회 안에는 종교 의식을 위한 방도 있었다. 개신교나 천주교는 물론이고, 이슬람교나 힌두교처럼 다양한 종교 의식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이 자유롭게 활용할 수 있도록 여러가지를 갖추어 놓았다. 벽면에는 지상-천상-끝을 의미하는 연작이 걸려 있었다. 못을 이용하는 개성있는 작풍으로 독일에서는 무척 유명한 화가라 한다.

국회와 티어가르텐, 슈프레 강 주위를 1500:1으로 축소해 만든 모형을 보았는데, 주요 지점에 점자 표시가 되어 있었다. 안내 박사님이 베를린 장벽이 있었던 부분을 가리키고, 장벽을 넘는 과정에서 어느 지점에서 몇 명이 사망했는지도 이야기했다. 그 옆에는 국회의사당 본 건물의 100:1 모형도 있었다. 시각장애인들이 직접 만져 보고 국회의 구조를 이해할 수 있게 하기 위해 마련된 것이라 한다. 실제로 시각장애인이 만져 보면 옥상은 옥상 느낌이 나고 벽면은 벽면이 이런 느낌이구나, 하고 알 수 있도록 만들어졌다는데, 나는 만져 봐도 잘 모르겠더라. 또 체스의 폰과 같이 생긴 작은 말이 있어서, 우리가 현재 어디에 있고 어디로 가는지 등을 그 모형 위에 놓아 보며 설명할 수도 있었다.

그 다음에는 일반적인 국회의원 회의실에 갔다. 크기만 다르고 내부는 똑같이 생긴 회의실이 여럿 있다는데, 우리가 간 곳은 FDP의 회의실 같았다. 천정에 작은 유리판 같은 것을 설치해서 해가 움직이는 방향을 따라 빛을 반사, 실내를 밝게 유지하면서도 열기를 차단해 인공 냉방을 최소한으로 줄일 수 있게 구성된 환경친화적인 공간이었다. 현재 독일의 국회의원은 총 630명이고 국회에 근무하는 직원은 총 오천 여 명이다. 투표시에는 거수나 전자 투표가 일반적이지만, 특이하게도 본의회실에 '기권','찬성','반대'라는 세 개의 유리문이 있었다. 의원들이 모두 본회의실 밖으로 나갔다가 세 문 중에 하나를 골라서 도로 들어오면, 국회 직원이 각 문 앞에서 그 문으로 들어오는 사람 수를 세는 방식으로 투표할 때 쓰인단다. 양 머리수 세듯이 사람을 세기 때문에 영어로 거칠게 옮기자면 'Hammel vote'라고 불린다. 박사님이 최첨단 투표법이라고 농담을 했다.

본회의실의 위에는 유리 돔과 전망대 같은 공간이 있어서, 기자들은 그 위에서 국회를 내려다보며 사진을 찍고 취재를 할 수 있었다. 위에서 의원들의 책상이 다 보이기 때문에, 중요한 투표나 회의를 할 때는 그 유리창 위로 차단막이 내려오고, 그러면 사진 촬영을 해서는 안 된단다. 독일 국회의 구성 방식에 대한 설명도 들었는데, 정치학에서 자세히 공부했던 내용이다 보니 독일어는 숫자밖에 안 들려도 무슨 뜻인지 알 수 있어서 재미있었다.

본회의실 안에 들어가 단체 사진을 찍었다. 안내 박사님이 카메라를 모두 받아서 죽 찍어 주셨다. 그리고 돔은 닫혔지만 의사당 옥상으로 올라가 베를린 시내를 둘러보았다. 돔이 열리면 참 예쁘겠더라. 옥상에는 관광객을 위한 카페가 있었다.

내려와 보니 출구에 아까 나의 엉망 독일어를 대충 알아듣고 영어에 능통한 직원에게로 데려다 주었던 무전기 할아버지가 아직 있어서 눈을 맞춰 인사를 했다. 할아버지가 손을 흔들어 주었다.

오늘의 지출
아점 3,30
생필품 1,69
공중전화 19,50
저녁 22,00

2007년 8월 15일 수요일

2007년 8월 11일 토요일

새벽 두 시 사십 분까지 발버둥쳐서 간신히 초고를 써 놓고 조금 잔 다음 프라하로 출발했다. 중략하고 (1)공항에서 배낭 분실 - 중략- (7) 프라하에서 인터넷 호텔예약 중복오류로 인해 방이 없어, 체크인을 못하고 한 시간 가까이 카운터 앞에서 기다리는 사태 발생.....대체 내가 무엇 때문에 여행경비의 대부분을 숙소에 쏟아부었는데! 베스트웨스턴이잖아! 왜이래! 라고 생각하며 호텔 안을 세 번 오르락내리락 한 끝에(이유: (8)호텔에 작동하는 카드키 수가 방 수보다 부족해서 키 오류로 방에 못 들어감) 어쨌든 예약한 것보다 훨씬 좋아 보이는 방에 안착하는데 성공했다. 하지만 그래서 시간이 너무 늦어져 프라하의 인형극은 못 봤다. orz

학원에 가야 하므로 나중에. 아아, 일기가 밀리고 있어....  

2007년 8월 11일 토요일

2007년 8월 10일 금요일

벌써 8월 10일이다. 어제 밤 열두 시까지 분투했으나 C사 원고가 잘 풀리지 않았다. 결국 새로운 글을 쓰기로 마음 먹고 자기 전에 새 글의 시작 부분을 고심했는데, 그 영향으로 일찍 잠에서 깼다. 마치 드라마나 영화의 NG 장면 반복처럼, 새벽에 꿈 속에서 소설의 도입부가 되풀이되었다. 생각해 두었던 도입부를 한 가지 방식으로 전개했다가 중간에 아니야, 하고 대사를 바꾸거나 시점을 변경해서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는 식으로 주인공들이 식탁 앞을 떠나지 않았다. 실제로 침대에서 일어난 시각은 여덟 시가 조금 지나서다.

아침으로는 시리얼 요리를 먹었다. 수업 시간에 맞춰 학원에 갔는데, 아홉 시 반에 교실에 올라갔건만 학생이 한 명도 없다. 혹시 어제 밤에 파티에서 다들 술을 너무 많이 마셔서 수업 시작 시간이 바뀌었나 하고 순간 고민했다. 독일 식으로 생각하면 그럴 리 없지만 스페인 학생이 대부분이라 예측하기 어렵다. 참, 어제 일기에 쓰는 걸 까먹었는데, 말하기가 무섭게 일어난다고, 어제 세실리아가 교실에 커피 종이컵을 갖고 들어왔다. 금요일이라서인지 다들 슬렁슬렁이다. 아홉 시 오십 분 정도가 되어서야 대충 수업을 진행할 수 있을 정도의 학생이 모였다.

알무데나가 내일 스페인으로 돌아가기 때문에 엽서를 쓰고 싶다고 하고 연락처를 받았다. 내 연락처도 주었다. 다른 학생들은 대부분 코스 끝까지 있는 것 같다. 쉬는 시간에는 카페에 카페라떼와 애플파이를 사러 가서 세실리아와 이야기를 했다. 세실리아는 영화감독을 목표로 하여 영화이론을 공부하고 있는 스페인 대학생이다. 한국에서 독일까지 오는 것은 스페인에서 오는 것보다 훨씬 복잡하지 않느냐고 묻기에 열한 시간 걸렸다고 하니 끄엑, 한다. 세실리아는 정말 사랑스럽고 에너지가 넘치는 타입으로, 누구나 웃으면서 대할 만한 명랑하고 밝은 느낌을 갖고 있다. 특히 독일어로 말하다가 잘 생각이 안 날 때면 그 답답함을 온몸으로 격렬하게 표현하는데 굉장히 귀여워서......사실 벤치마킹 하고 있다.

집에 와서는 토스트에 허니버터를 발라 먹고 콜라를 마신 후 원고를 시작했다. 아침에 NG를 많이 낸 덕에 도입부까지는 쉽게 풀렸는데 다음부터가 문제다. 중간에 일어나 프라하 행 배낭을 싸고 6시쯤 부엌에 들어가 뭘 먹을까 고민하는데, 주인아주머니가 샐러드를 잔뜩 만들었는데 훈남아들이 안 들어왔다며 샐러드를 좋아하는지 묻는다. 아, 좋지요! 하고 얼씨구나 먹었다. 파스타, 오이, 양치즈 등이 들어간 끼니형 샐러드인데 참 맛있다. 든 재료도 모두 내가 좋아하는 것들이고. 이번에는 내일 프라하에 간다고 미리 말씀드렸다. 더 먹고 싶으면 가져다 먹으라고 하셨으니 또 갖다 먹어야지. 정말 엄청 많더라.

내일은 학원 수업이 없으니 아무리 오래 걸려도 오늘 밤에 원고를 다 하고 자야지. 부끄럽지 않은 글을 쓰지는 못하더라도, 최소한 책임질 수 있는 글을 내놓기는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고료를 받는 글인 경우 그 부담이 당연히 훨씬 크다.  

2007년 8월 10일 금요일

2007년 8월 9일 목요일

어제 밤에는 방에 있는 텔레비전을 켜서 보았는데, 'Ein Job, deine Chance'라는 프로그램을 하더라. 다른 직업을 갖고 있는 사람들에게 원하는 직업의 훈련을 받을 기회를 주고, 그 결과를 평가해 취직시켜 주는 프로그램이었다. 독일에서 최근 급성장한 저가 항공사인 에어 베를린(Air Berlin)의 스튜어드/스튜어디스를 지망하는 사람 셋이 나와서 음료 제공, 기내 문제상황 대처, 긴급시 수영, 영어 시험, 화재 진압 등의 훈련을 받았다. 스물 한 살인 화장품 가게 점원(여), 스물 여섯인 치과 보조원(여), 서른 여덟인 호텔 매니저(남) 세 사람이었는데, 마지막에 취직시켜 줄지를 결정하는 자리에서 앞 아가씨 둘이 합격하자 한 명은 떨어지리라고 생각했는지 호텔 매니저 청년이 바짝 긴장했으나 모두 합격했다. CSI나 Without A Trace의 광고도 나왔는데, 모두 더빙이더라. 사우스파크도 했다. 패션이나 스포츠, 자동차 관련 잡지 광고가 텔레비전에 많이 나오는 것이 특이했다.

오늘은 여덟 시 조금 전에 일어났다. 아침으로는 베이컨, 에그스크램블, 토스트, 체리토마토, 우유를 준비해 먹었다. 콧물이 너무 심하게 나서 한국에서 준비해 간 비염 약을 먹었다. 학원에 가려고 준비를 다 했다가, 아무래도 오늘 할 일을 생각하면 시간이 부족할 것 같아서 나가면서 방향을 바꿔 알렉산더 광장으로 갔다. 즉, 땡땡이다. 알렉산더 광장 역사 내에 있는 라이제젠트룸에 가서 저먼 레일 패스를 갖고 있는 외국인인데, 토요일에 베를린 중앙역에서 프라하로 가는 표를 사려고 한다고 했다. 마음 속으로 시뮬레이션을 해 보고 갔지만 대화란 상호작용인지라 중간에 한 번 위기가 왔다. 그래서 '슈프레헨 지 엥글리쉬?(영어 하시나요?)' 하자 즉시 '니이-'라는 답이 돌아온다.

통일된 지 여러 해가 지났지만, 구 동베를린 지역과 서베를린 지역의 차이는 적지 않다. 영어 실력은 확실히 차이가 나서, 알렉산더 광장의 라이제젠트룸에서 영어가 통하지 않자 아, 여기는 구 동베를린이지, 라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중앙역이나 동물원 역의 라이제젠트룸에서는 영어가 완전히 통했었다. 그리고 갓 왔을 때는 눈치채지 못했는데 생활 공간 자체의 분위기가 상당히 다르다. 독일어에는 키츠(Kiez)라는 말이 있는데, 작고 폐쇄적인 지역 커뮤니티를 의미한다. 베를린은 국제적인 도시이지만, 평생 자신의 키츠를 거의 벗어나지 않고 그 안에서만 생활하면서 키츠 외부인들에게는 폐쇄적인 태도를 보이는 사람들도 많이 있다고 한다. 내가 지금 머무르는 곳은 프렌쯔라우어 베르크(Prenzlauer Berg)의 구 동베를린 지역이다.

어쨌든 독일어로 해결했다. 저먼레일패스는 독일 국경 안에서만 유효하기 때문에 추가로 구입해야 했던 체코 내 왕복 표도 제대로 사고, 원하는 시간대의 열차 시간표도 받고, 24살인데 유스 할인이 될지 물어보아 확인도 했다(안 된단다). 처음에는 프라하 중앙역이 아니라 다른 역으로 가는 직행 시간표를 출력해 주시기에, 그 역이 아니라 다른 역이라고 해서 맞는 시간표를 받았다.

독일어로 대화하는 요령을 좀 알 것 같다. 한국어나 영어로 소통할 때처럼 빨리 해결하려는 마음을 앞세워 자꾸 다짜고짜 영어로 넘어가거나 먼저 답답해 하면 안 된다. 일단 웃는 얼굴로 타이밍에 맞춰 인사를 한 다음 -여기서는 슈퍼 계산대에 설 때는 물론이고, 그냥 가게에 들어설 때도 주인과 눈을 맞추고 인사를 한다.- 천천히 성의 있게 말을 하면 충분히 기분 좋게 뜻을 통할 수 있다. 어차피 외모를 보면 외국인인 게 단번에 표시가 나니까 상대편도 내 말에 주의를 기울여 준다. 라이제젠트룸에서 영어를 전혀 하지 않고 표를 사고 기분 좋게 당케 쇤-하고 나와서 무척 뿌듯했다.

그리고 쿠담에 가서 벼르고 있던 짧은 청바지와 샌들을 샀다. 이제 굉장히 더운데, 샌들이 없으니 더 더웠다. 운동화 한 켤레만 갖고 간 런던에서 공동 샤워장에서 나올 때마다 쩔쩔 맸던 걸 생각하면 정말이지......런던과 베를린에서 온갖 샌들을 다 봤기 때문에 고르기가 더 힘들었다. 한 가지 주제만 갖고 많은 물건을 보면 비싸고 좋은 것과 싼 물건의 차이가 점점 명확히 보인다. 정말 탐이 나는 편하고 예쁜 신발이 두엇 더 있었지만, 결국 무난하게 한국에 돌아가서도 신을 만 한 할인 품목으로 선택했다. 엄청 고민해서 골랐는데, 고른 신발을 카운터에 들고 가니 하필 내가 고른 신발만 맞는 사이즈가 다 팔리고 없다. 직원이 기다리라고 하고 여기저기 뛰어다니더니 전시되어 있던 것의 나머지 한 쪽을 찾아서(한 쪽 신발만 전시해 놓고 카운터에서 풀셋을 찾아 주는 시스템이다) 이거라도 괜찮겠느냐며 준다. 도저히 더 고를 힘이 남이 있지 않았고 전시품이라도 깨끗해 보여서 그냥 알겠다고 하고 가지고 나와서 갈아 신었다. 샌들을 신어 보기 위해 한국에서 콘서트 용으로 가져온 구두를 신고 나갔다 보니 발이 아파서 힘들었다. 벌써 발가락에 물집이 잡혔다. 굽 없는 샌들을 신으니 천국이로세.

참, 샌들 사려고 구두 가게를 돌아보는데 어떤 사람이 나에게 독일어로 베를린 사람이냐고 묻는다. 길을 물어보려는 것 같았다. 나 역시 지리를 잘 모르니 그냥 아니라고 했는데, 현지인으로 위장하려고 꾸준히 노력한 성과를 마침내 얻은 듯 뿌듯했다. 처음 왔을 때는 내가 생각해도 이방인 티가 너무 역력해서 엄청 튀었고 중간에는 새미의 표현을 빌리자면 '신혼여행 온 새신부(orz)' 같았다. 그제는 마리나가 내게 원피스 예쁘다며 어디서 샀나고 물어보았다. 우리나라에서 가져간 옷이었는데, 옷을 겹쳐 입는 방식을 조금 바꾸어 봤었다. 조금이라도 덜 도드라지려고 (특히 지갑을 도난당한 다음부터는 이 필요를 더욱 절실히 느꼈다) 내 나이 또래 아가씨들의 옷이나 화장, 장신구를 얼마나 열심히 관찰했는지 모른다.

그리고 지하철 역 근처의 슈퍼에 가서 청포도와 콘아이스크림을 샀다. 콘아이스크림의 윗부분이 모두 물렁해서 찌그러진 줄 알았는데, 뜯어 보니 크림을 짜 놓은 형태가 그대로 들어 있는 예쁜 아이스크림이었다. 하지만 계산서를 보니 길가의 아이스카페(Eiscafe)에서 파는 콘 아이스크림보다 비싸다. 더 쌀 줄 알고 슈퍼에서 샀는데. 더워서 지하철을 타기도 전에 다 먹었다. 알렉산더 광장까지 지하철 2호선을 타고 가서, 트램 M2번으로 갈아 탔다. 2호선으로도 집에 갈 수 있지만 지하철 역이 멀어서 트램을 타는 편이 편하다. 알렉산더 광장 지하철 역사에 있는 빵집에서 점심과 저녁으로 먹으려고 애플파이를 두 개 샀다. 여기에는 빵집이 정말 많지만 이상하게 애플파이는 없는 곳도 있어서, 보일 때 사서 들어가려는 생각이었다. 봉지 값은 우리나라처럼 받는 것이 원칙인데, 우리나라와 마찬가지로 작은 동네 슈퍼나 빵집에서는 받지 않기도 한다. 체인점에서는 확실히 받는다. 잠깐만요,하고 처리할 기회를 노려 주머니에 모두 담아 왔던 1,2,5 센트 짜리를 우루루 내고 어머나, 하는 빵집 아주머니에게 웃으면서 아마 맞을 거예요- 했다. 그런데 1센트 더 냈다고 돌려받았다.

집에 들어오니 두 시 반 즈음. 정말 더웠다. 텔레비전을 보면 밖에서 땀을 흘리고 온 주인공이 집에 들어서자마자 냉장고 문을 열고 맥주를 꺼내서 들이킨 다음 시원하게 캬-한다. 이왕 맥주를 사 놨으니 나도 한 번 그렇게 해 봐야지 결심하고 갓 사온 포도를 씻어 보울에 담고 냉장고에서 맥주를 꺼내 땄다. 포도를 보울에 담은 이유는 어제 본 프로그램에서 중간평가를 통과한 지원자 세 명이 술을 한 잔 마시면서 과일을 보울에 담아 놓고 안주 삼아 먹는 장면을 보았기 때문이다. 이래서 텔레비전이 애들 망친다는 소리가 나오는 거다.

하지만 맛이 없었다. 무알콜일 뿐이지 맥주니까 맥주 맛이 난다면 쓴 것이 당연한데, 써서 실망했다. 포도와 먹어도 애플파이와 먹어도 썼다. 나중에는 민트초컬릿과 함께 먹어서 두 잔을 마셨다. 아까워서 혹시 보관이 될까 하고 뚜껑을 다시 잘 여며 딱 소리나게 꽂은 다음 책상 구석에 눕혀 놓아 보았는데 조금 지나니 맥주가 새어 나오더라. 낙심해서 병을 도로 세워 열고 반 잔 더 마셨다.   

이른 저녁으로는 어제 산 냉동 버터야채를 물에 끓여 익히고 토스트를 구워 우유와 함께 먹었다. 냉동 야채는 브로콜리, 콩, 당근 등이었는데, 역시 냉동했다가 끓여 먹는 거라서 썩 맛은 없었다. 어차피 불을 써야 하는 것은 마찬가지이니, 차라리 재료를 사서 직접 씻어서 데치면 훨씬 맛있겠지. 하지만 그 시간을 아끼기 위해서 만들어진 식품이니까.  

먹고 나서는 머리가 아파서 한 숨 잤다. 일어났는데 덥고 여전히 쿡쿡 찌르는 듯한 두통이 있다. 설마 무알콜 맥주의 후유증인가? 

2007년 8월 9일 목요일

2007년 8월 8일 수요일

오전에는 수업을 들었다. 런던에 다녀온 이후로 기상시간이 늦어졌다. 피로가 채 풀리지 않았는지 어깨도 뻐근하고.....하지만 3주차에 접어든 때문인지 말이 통하는 영국에서 며칠 보내고 와서인지 (행복했어. ㅠㅠ)독일어로 생활하는 것 자체에 대한 부담은 많이 줄었다. 쉬는 시간에 사무실에 가서 다음 주 수요일의 국회의사당 관람에 대해 여쭈어 봤는데, 남자 직원 분이 콘서트는 재미있었냐신다. 주인 아주머니가 놀라서 "학생이 사라졌어요!"하고 학원에 전화했었다는 얘기를 하시는 걸 보니 전화를 받았던 분이신 가 보다. 아이고.;

이제 날씨가 굉장히 덥다. 하지만 기온 차 때문인지 바람이 불어서인지 계속 콧물이 났다. 휴지를 가지고 있지 않아 학원 수업을 마치고 집까지 훌쩍거리면서 걸었다. 집 바로 옆에 있는 종이가게에 편지봉투를 사러 들어갔는데, 겉으로는 귀여운 어린이 책/공책을 파는 분위기였던 가게 안에 뜻밖에 멋진 노트와 앨범, 포트폴리오가 가득했다! 여러가지 하드커버,소프트 커버 노트들과 다양한 크기와 재질의 색지와 앨범, 직접 디자인 할 수 있는 카드 만들기 재료 등 온갖 종이로 만들어진 것들이 잔뜩 있어서 보물을 발견한 기분이었다. 하지만 콧물 때문에 제대로 볼 수가 없었다. 일단 원래 목적이었던 봉투만 골랐는데, 계산대의 언니가 나에게 휴지를 내밀며 쓰겠느냔다. 고맙게 받아서 코를 휑 풀고 괜히 날씨 탓을 했다. 본격적으로 구경하고 노트를 고르러 다시 가고 싶은데(정말 바로 두 집 옆이다) 이 콧물 사건 때문에 어쩐지 쑥스러워서 내일 당장은 못 가겠다. 다음 주에 가야지. 집에 와서 찾아보니 홈페이지도 있는 가게더라.

오늘 학원에서는 내셔널 갤러리를 가지만 나는 집에 있기로 했다. 집에 와서 학원 쉬는 시간에 샀던 달디단 빵을 먹고, 인터넷을 좀 한 다음 슬슬 나가야겠다 싶어 챙기는데 -또 물도 우유도 없다. 역시 혼자 살면 식사가 가장 큰 문제다- 천둥이 치고 비가 내리기 시작한다. 뭐, 이제는 이 정도에 놀라지 않아. - _) 피곤하기도 해서 창문을 닫고 한 시간 반 정도 잤다. 잠결에 천둥 소리가 여러 번 들렸다.

자고 일어나니 다섯 시 반 쯤이다. 비도 그쳤다. 장바구니를 들고 윈스터 가의 카이저에 가서 휴지, 물, 우유, 빵, 샐러드, 스프, 삶아먹는채소, 그리고 무알콜 맥주를 샀다. 독일에 왔으니 맥주도 마셔 봐야지. 독일에서는 물보다 맥주가 싸다는 얘기도 있던데 어떤 물이고 어떤 맥주냐 따라 다르다. 맥주가 더 비싸지는 않고, 그냥 대충 비슷하다. 무알콜 맥주가 모여 있는 선반에서 한 병 골랐다. 그리고 페트병 보증금 받는 방법도 알아냈다. 지금 방 구석에 페트병이 일곱 개 있는데, 열 개 채워서 가져 갈까나.

사실 내일 밤에 단찌거 가(Danziger Str.)에서 학원 파티가 열린다. 밤 8시부터 늦게까지 할 모양인데, 나는 아직 참석 여부를 결정 하지 않았다. 집에서 무척 가깝고 나간다면 사람들과 조금 더 이야기할 수 있기는 하겠지만, 다들 독일어가 아니라 스페인어를 쓰리라는 확신(;)이 들고 8시 시작이면 해가 지고 나서 귀가해야 하는 것도 부담이다. 만약 오늘 밤-내일 낮 사이에 C사 원고를 다 한다면 그래도 한 번 가 보고, 아니면 집에서 계속 일해야지. 참석할 경우를 생각해서 이 맥주를 샀는데, 생각해 보니 병맥주는 따면 한번에 다 마셔야 하는 건가? 만약 파티에 안 가서 남으면 어떻게 보관하지?;; 원래 맥주는 한번에 일 리터 씩 마실 수 있는 종류의 음료인가?;

저녁으로는 방금 사온 샐러드를 먹은 다음 토스터에 버터식빵을 가볍게 구워 우유와 함께 먹었다. 나의 채소 섭취량을 걱정하시는 어머니를 위한 인증샷 첨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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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선하고 드레싱과 포크까지 포함된 훌륭한 샐러드. 열어보면 이렇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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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 할 일은(날씨가 좋을 경우) 1)시내에 나가서 샌들 사기 2)라이제젠트룸에 가서 베를린 중앙역-체코 프라하 구간 기차표를 독일어로 알아보고 구입하기 이다.

2007년 8월 7일 화요일

2007년 8월 7일 화요일

8:20 늦게 일어났다. 피로가 덜 풀렸는지 어깨가 뻐근하다. 8시에 알람 소리를 듣고 눈을 떴으나 너무 피곤해서 조금 더 잤다. 아침으로는 얼마 남지 않은 우유로 시리얼을 타 먹었다. 학원에 5분 정도 늦게 갔는데, 교실에 들어가니 아는 사람이 없다. 2분 전에 경쾌하가 구텐 모르겐! 하고 뛰어올라갔다가 황당한 얼굴로 내려와 반배정표를 찾아보는 나를 보고 사무실 직원이 웃으며 월요일이라 반이 바뀌었다고 가르쳐 준다. 선생님은 그대로 바바라/마티나인데 학생이 약간 바뀌었고 총 인원이 10명으로 늘었다. 여전히 나 빼고 모두 스페인인이다.

11:15 쉬는 시간에 학원 근처에 있는 배커라이인 캄페Kampe(체인 빵집인 듯) 에서 커피와 애플파이를 사먹었다. 날씨가 굉장히 아이스 커피가 없기에 그냥 커피를 주문했는데 마시다 보니 덥다. 어제도 그렇고, 지난 주의 추위가 거짓말처럼 느껴질 만큼 더워졌다. 옷을 한 겹 벗고 꿋꿋이 빵과 커피를 먹고 마셨다. 런더너 (이름 물어 볼 타이밍을 완전히 놓쳤다.)가 런던에서 재밌었냐기에 재밌었다고 했다. 그리고 교실에서 마리나, 알무데나(알데모나가 아니었다! 앗차로소이다) 와 이야기를 했다. 어제 학원 팀에서는 베를린 장벽을 보러 갔다고 한다. 알렉산더 광장 쪽 장벽이 상당히 괜찮다고 들었기 때문에 아쉬웠지만, 굉장히 오래 걸어서 피곤했단다. 참, 그런데 여기에서는 교실에 마실거리를 가지고 들어오지 않는 것 같다. 밖에서 먹고 들어온다. 지난 주부터 나만 테이크아웃 컵을 책상에 놓고 있는데, 우연인지 스페인식 습관인지 모르겠다. 선생님은 쉬는 시간에 마시던 커피를 그대로 들고 들어오시기도 한다.
 
오늘 오후 프로그램이 없을 줄 알았는데 The Story of Berlin을 보러 간단다. 어제 장벽 보고 온 사람들은 피곤하다며 빠지는 분위기였다. 대체 어제 뭘 하고 왔기에?! 선생님이 런던이 어땠냐고 물어보셨는데 어제 밤 11시까지 두 장 가득 써 놓은 말을 반도 못 해서 조금 속이 상했다. 역시 제대로 읽어 보고 나왔어야 했어. 아침에 일어나서 하려고 했는데 늦잠을 자는 바람에 눈으로만 다시 보고 나왔더니 말이 잘 안 나왔다. 수업을 마치고 사무실에 가서 탄뎀 파트너 신청을 했다. 영어로는 language exchange, 우리말로는 뭐라고 하는지 까먹었다. 마리나가 가르쳐 줬다. 나는 머무르는 기간이 짧고 스페인어나 프랑스어 원어민이 아니라 구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조금이라도 말할 기회가 늘어나면 좋겠다.

2:40 이제 슬슬 나가봐야지.

7:30 경 귀가. The Story of Berlin 을 보고 지하 벙커까지 다녀와서 시간이 생각보다 많이 걸렸다. 쿠담 카이저에서 마침내 기름과 버터, 식빵을 샀다.

9:00 저녁을 만들어 먹고 후식으로는 홍차를 한 잔 우려 민트 초컬릿 한 쪽을 곁들여 마셨다. 평화로운 저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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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8월 6일 월요일

8월 3,4,5,6일 일기는 역순으로 올라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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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0 경에 눈을 떴다. 너무 이른 시각이라 다른 사람들이 움직일 때까지 기다리느라 이십 여 분 뒤척이다가, 오른쪽 침대에 자리 잡은 일본인 관광객들이 세면대를 쓰기 시작하기에 나도 일어났다. 바깥 샤워실에서 샤워를 하고(침실 세면대를 쓰기에는 조금 이른 것 같았다.) 문제의 분홍색 수건을 쓰레기통에 버린 후 짐을 싸서 체크아웃하니 7시다. 아침식사를 하지 않아 아까웠지만 그래도 일찍 나가서 준비하는 편이 낫지. 지하철 첫차 시간이 안 되어서 유스호스텔 앞 공중전화에서 어제 차이나타운에서 마련한 전화카드로 어머니와 통화를 했다. 싼 전화카드를 덕분에 오랜만에 여유있게 통화할 수 있어서 좋았지만 차이나타운 판매상의 뻥에 당했다는 개운치 않은 기분은 남더라. 어디 한국에 전화할 때 400분이야. 20분이더구먼. 400분일 거라고 믿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95%나 차이가 나다니, 뻥의 밀도가 너무 높잖아!

7:30 서클라인 첫차를 타고 베이커 스트리트로 갔다. 이 곳의 코치 스테이션(Coatch Station 19)에서 출발하는 스탠스타드 행 8:30분 이지버스를 예매해 두었었다. 지하철 역사에서 나오니 아직 7시 50분 정도밖에 안 되었다. 여유롭게 정류장을 찾아나섰는데......아무리 걸어가도 정류장이 안 나온다! 7시 57분 쯤 옆으로 빈 이지버스 한 대가 지나갔다. 배차 시간이 30분 간격이니 방금 지나간 버스가 8시 버스일 터, 그렇다면 맞는 길로 가고 있다는 뜻인데 왜 안 나오지? 이 길이 아니다 싶어서 이번에는 반대편으로 걷기 시작했다. 그런데 또 아무리 가도 표지판이이 안 보인다. 설상가상으로 꽤 굵은 빗방울이 떨어진다. 8시 20분이 넘자 다급해져 지나가는 사람에게 묻기 시작했지만, 모른단다. 최후수단으로 한창 에딘버러행 기차를 타고 있을 새미에게 전화를 했는데, 전화를 하다 말고 휴대폰 배터리가 끊어졌다. 웨스트민스터 대학 뒤편에서 경찰을 발견, 다시 물어봤는데 다행히 설명을 해 준다. 아까 그 길이래. -_- 그래서 다시 처음에 가던 길로 갔는데, 이번에도 보이지가 않아서 그 길에 선 경찰 2에게 또 물었다. 모른단다.

이미 시간은 8시 55분. 9시 버스라도 타야 공항에 갈 수 있다는 절박한 심정으로 야성의 감각을 동원해 뛰듯이 걸어서 9시 조금 넘어 정류장을 찾아냈다. 뭐야, 경찰 2 자리에서 직진이잖아. 막상 정류장에 도착해 보니 약도의 그림이 이해가 되긴 하더라. 경찰 1은 오른쪽 왼쪽을 잘못 가르쳐 줬었다. 이럴 때 나침반과 동서남북 방향 표시가 필요하구나 싶었다. 빈속에 어제 산 책과 여행짐을 들고 땀을 뻘뻘 흘리며 비를 맞고 나니 이미 기진맥진했다. 버스 너댓 정거장 정도 거리를 한 시간 반 동안 두 번 왕복했으니. 그래도 스탠스타드 공항에 어떻게 갈지 생각해야 했다. 아, 이것 때문에 급한 마음에 베이커 스트리트 지하철 역을 네 번째 지날 때 -_- 현금인출기에서 마스터카드로 20파운드를 출금했다. 안되면 현금으로 차비를 내고라도 버스를 타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정류장에 가 보니 여행객들이 몇 명 있는데, 이지버스와 내셔널 익스프레스를 기다리는 사람들이 섞여 있는 것 같았다. 눈으로 어림셈을 해 보니 9시 버스에 자리가 있을 것 같다. 만약 9시 이지버스가 만석이면 9시 15분 도착이라는 내셔널 익스프레스에 재빨리 타야 한다) 궂은 날씨 탓인지 이지버스와 내셔널 익스프레스 둘 다 연착, 이지버스가 9시 22분 정도에나 도착했다. 예정보다 한 시간이 늦어 굉장히 초조했는데, 8시 30분 차를 놓쳤는데 지금 현매로 탈 수 있느냐고 하자 그냥 태워 준다. 

한 시간 반 정도를 달려 스탠스타드 공항에 도착했다. 저가항공/유럽내 항공의 경우 보통 이런 외곽 공항에서 타고 내리는데, 런던의 경우 공항과 시내 사이가 정말 멀고 교통편이 마땅치 않더라. 이런 코치를 이용하지 않으면 다른 일반적인 대중교통 수단으로 공항에서 시내로 진입하기가 굉장히 어렵다. 베를린의 경우 제1공항인 테겔 공항의 교통이 가장 좋긴 하지만 유럽내 항공사들이 이용하는 템펠호프나 쇠네펠트 공항도 에스반, 트램, 버스 등으로 쉽게 갈 수 있으니 훨씬 편하다.

공항에 도착하자마자 셀프 체크인을 하고 보안 검색대에 섰다. 영국에서는 손가방(hand luggage)을 일인당 무조건 하나만 가지고 나갈 수 있다. 이 규칙이 굉장히 불편한 것이, 예를 들어 나처럼 작은 배낭과 크로스백, 여권이 든 목걸이 가방을 가진 사람은 가방이 3개 있는 셈으로 이 셋을 하나의 가방에 모두 넣어서 검색대를 통과해야 한다. 안 그러면 못 나간다. 더 괴상한 것은 검색대를 통과한 다음에 다시 도로 꺼내서 따로따로 들어도 상관없다.; 짐을 다시 싸는 자리까지 마련해 놓았는데, 내 옆의 여자아이는 A4크기 정도인 작은 가방 두 개를 들고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곰돌이 인형을 넣었다 뺐다 하고 있었다. 안타까웠다.

새미가 미리 알려 줬기 때문에 어제 구해 놓은 커다란 파운드랜드(Poundland)비닐봉지에 책과 차가 든 위타드 가방, 배낭, 크로스백, 목걸이 가방을 넣어서 통과했다. (다 들어가고 크기 규격에 맞는지 어제 밤에 넣어 봤었다.) 가장 시간이 걸리는 체크인과 보안검색을 지나고도 11시라 조금 여유가 생겼다. 스타벅스에서 샌드위치와 토마토 주스를 사고 터미널로 가는 전차(?)를 탔다. 스탠스타드 공항을 포함, 런던 전반의 교통 환경을 생각하면 런던에 두 번 다시 가고 싶지 않다. 맞는 터미널에 제때 도착했는데, 탑승 수속을 하지 않는다. 뭔가 문제가 생겨 지연되고 있단다. 예정보다 십오 분 정도 늦게 탑승 수속이 시작되었다. 비행기는 11시 55분 출발이다.

12:20 사람들은 55분 전에 다 탔는데, 안전벨트 매고 기장 소개 하고 안전교육까지 했는데 비행기가 움직이지를 않는다. 설명도 없다. 12시 10분쯤 되어서 조금 움직이더니 다시 가만히 멈춘다. 그리고 또 설명 없이 기다리다가 25분쯤 되어서 마침내 비행기가 이륙했다. 이륙이 늦었으니 오늘은 모두에게 샌드위치와 차를 비롯한 각종 음료를 무상 제공하겠단다. 옆 자리의 노부부가 설명과 사과를 안 한다고 투덜거린다. 나는 삼십 분 동안 몸을 배배 꼬며 어제 산 스타더스트(Stardust) 8월호를 한 번 반 정독했다. 오랜만에 글을 읽으니 좋긴 했지만, 최근 Sci-fi 드라마를 거의 보지 않아서 내용을 잘 모르니 썩 재밌지는 않았다. 데이비드 테넌트가 10대 닥터가 된 다음부터 보다 말았던 닥터 후(Doctor Who) 의 세 번째 시즌에 흥미가 생겼다. 그리고 스타트렉 영화 캐스팅이 거의 확정되었고(스폭의 젊은 시절) 엑스 파일 영화도 내년 여름 개봉을 목표로 하고 있단다.

기상 상황 때문에 중간에 비행기가 심하게 흔들리고 계속 앉아 있으라는 둥 고도를 조정한다는 둥 방송이 나와서 불안했다. 첫 해외여행에서 1)배낭분실 2)지갑소매치기 3)자정에 납량특집 공원 가로지르기 4)런던지하철 연착 5)공항버스 놓침 6)비행기 연착 을 경험한 상황에서, 여기에 '7)기상악화로 다른공항에 내리기' 가 더해져도 이상하지 않을 것만 같았기 때문이었다. 다행히 30분 정도 늦긴 했어도 세 시 사십 분 쯤 테겔 공항에 무사히 내렸다. 공항에 내려 공중전화로 집에 전화를 했는데, 신용카드를 꽂으라기에 쓰는 만큼 나갈 줄 알고 꽂았는데 바로 15유로를 과금해서 깜짝 놀랐다. 그래서 집에 전화 하고, 무척 걱정하고 있었을 새미에게 무사히 베를린에 도착했다고 연락했다. 아아, 독일이야! 버스가 넓어! 안전운전이야! 트램도 있어! 모두 쾌적하고 깨끗해! 다들 신호등 바뀔 때까지 기다렸다가 길을 건너! 버스에서 다음 정거장 방송을 해줘! 사람들이 뭐라고 하는지 다시 모르겠어! ......라고 기뻐하며 전력을 다해 집으로 돌아갔다.

주인 아주머니가 나를 보더니, 베를린에는 비가 왔는데 내가 집에 안 들어와서, 학원에 전화해 물어보셨었단다.(학원 선생님에게는 수업시간에 주말 계획으로 말씀드렸었다.) 런던에 간다고 말을 할까 하다가 자유롭게 다니라고 했는데 개인적인 여행 얘기를 할 것 까진 없겠다 싶어서 금요일에 집을 나서며 그냥 튀스-하고 방문 잠그고 나갔었는데 역시 얘기하고 가는 게 맞았구나.; 그리고 비가 많이 와서 부득불 내 방에 들어와 창문을 잠궜다고, 원래 그렇게 나흐미터의 방에 들어가는 건 아주 나쁜 일이니 앞으로 외박할 때는 창문 잠그고 알려 주고 가라신다. 아이고 죄송해라. 그래도 선물로 아주머니가 좋아하실 것 같은 홍차를 사 와서 그나마 다행이었달까. 홍차를 드리며 할 말도 독일어로 다 생각해 놓아서 다행이었달까. (...)

본인 말씀을 이해했냐고 물으시기에 이해했다고, 학원 다니고 나서부터 독일어가 좀 는 것 같다고 씩씩하게 덧붙이려다가 또 말이 꼬였다. getting better 라고 생각하고 게팅 베써 라고 말한 것이다. orz 원래 쓰기보다 말하기가 어렵다고, 주인아주머니도 스페인어를 배웠는데 읽는 덴 문제가 없는데 말은 못 한다며 위로해 주시더라.

방에 들어와 짐을 가방에서 대충 꺼내 정리하고 옷을 넌 다음, 메신저에서 어머니와 지인들에게 인사를 하고 며칠만에 인터넷을 좀 했다. 시리얼 요리도 해서 한 그릇 먹었다. 그리고 누워서 쉬다가 씻고 세탁기를 돌리고 이제 일기를 쓴다. 지금 시각은 밤 열 시. 어학원 수업을 두 번이나 빠졌기 때문에 최소한 1)목요일까지 배웠던 내용을 확실하게 복습하고 2)영국에서 있었던 일을 독일어로 써 보고 자야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급한 C사 원고도 해야 하는데, 이건 내일 어학원 수업을 마치고, 인터넷에 추천가게로 나왔던 동네 빵집에서 빵과 커피를 사와서 먹은 다음에 쓸 생각이다. 아마 내일은 화요일이니 어학원 프로그램이 없을 터이니 할 수 있을 거다. 그리고 확정된 일정을 알리는 연락이나 독촉이 없어서 불안하지만 F지 원고도 아마 마감이 이달 중순일 텐데......자, 자. 동요하지 말고 이럴 때를 위해 영국에서 업어온 스파이더 맨 만화책이나 캐서린 아사로의 달짝지근한 로맨스 판타지를......

2007년 8월 3일 금요일

2007년 8월 2일 목요일

또 방에 모기가 들어와서 잠을 설쳤다. 꿈자리도 사나웠는데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모기 때문에 괴로워하면서 자려고 애쓰다가, 추워서 잠결에 양말을 찾아 신었다.

아침으로 어제 사온 또 다른 5분 인스턴트 스파게티를 먹었다. 어제 토마토 소스가 짰기 때문에 오늘은 크림소스에 도전했다. 어제 것 보다는 맛있었는데, 이 인스턴트 스파게티 도전을 계속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세 가지 먹어 봤으면 됐다.; 아직 아무도 안 일어난 것 같아 부엌 문을 닫고 조용히 움직이고 있었는데, 주인 아주머니가 갓 일어난 얼굴로 부엌에 들어왔다. 이미 완전히 깨 있던 내가 별 생각 없이 모르겐, 하자 사람이 있을 줄 생각을 못 하셨는지 엄청나게 놀라셨다. 그런데도 모르겐,이라고 하면서 화들짝 놀라다니 역시 생활습관이란 굉장하다.

오늘은 월화수와 다른 선생님이 들어오셨다. 원래 월화수/목금 선생님이 다른데, 한 사람이 일 주일 내내 가르치면 힘들기 때문이란다. 오늘은 동사의 과거/현재완료형을 주로 공부했다. 그런데 월화수 선생님과 달리 목금 선생님인 마티나는 스페인어를 할 줄 알아서, 내게는 상당히 곤란했다. 스페인인 학생들은 선생님의 독일어 설명을 못 알아들으면 서로 스페인어로 얘기하곤 한다. 그런데 마티나는 학생들의 말을 알아 듣고 그냥 그게 맞다고 해 버린다. 그러면 나 혼자 계속 모른다.; 점점 짜증이 나서 항의하려고 결심할 때 쯤, 마티나가 나의 짜증을 눈치챘는지 다른 학생들에게 나에게 설명해 주라고 하더라. 마리나와 알데모나가 영어로 가르쳐 줬다. 어제 숙제 하다가 영독사전을 책상 위에 놓고 나왔기 때문에 더 불편했다. 그 뒤에도 딱히 내가 스페인어를 몰라서 수업 내용을 이해하기 어려울 일은 없었지만, 스페인어와 독어를 아는 사람만 알아듣는 농담에 나머지 6명이 웃음을 터뜨리는 모습을 관조(-_-)하며 수업을 듣고 나니 수업 마칠 때 쯤에는 굉장히 피곤했다.

오늘 학원 오후 프로그램은 발리볼 또는 독일의 메가히트 영화 '발코니에서의 여름' 시청이었다. 원래는 운동 하기는 싫으니 독일 사람들이 다들 얘기하는 저 영화나 볼까 했었다. 독일어 음향에 독일어 자막이다. 참, 독일에서는 영화에 모두 더빙을 한다. 해리포터 같은 미국 영화들도 예외 없이 더빙으로, 더빙 안 한 영화를 보려면 소니센터 같은 곳을 일부러 찾아 가야 한다. 그런데 폴란드에서는 더빙을 하기는 하는데 원 음향을 없애지 않고 한 사람이 대사를 다 읽는 것을 겹쳐 틀어준단다! 즉 해리포터라면 헤르미온느의 영어대사+영어음향+다큐멘터리 성우같은 중후한 저음 번역이 동시에 들린다. 정말 헷갈릴 것 같은데 폴란드 사람들은 적응 되면 그게 이해하기에 더 편하다고 말한다니 참 신기하다.

어쨌든 오늘 오후 프로그랭이 둘 다 썩 마음에 들지 않았는데, 쉬는 시간에 마리나와 루이스(같은 반의 스페인 남학생), 알데모나가 목요일에는 베를린의 내셔널 갤러리 등 몇 군데 미술관/박물관이 밤 10시까지 하니까 자기들은 미술관에 갈 생각이라고 하더라. 같이 가면 재밌게 볼 것 같았지만, 수업이 끝나니 피곤하고 식은땀이 나서 집에 가서 자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침부터 계속 컨디션이 좋지 않았고, 지난 며칠 사이에 많은 일이 있었는데다 베를린에 온지 이제 일 주일이 넘었으니 건강에 각별히 주의해야 할 시점이다. 그래서 그냥 곧장 집으로 갔다.
 
집에 오는 길에 애플파이와 굉장히 달아 보이는 설탕 코팅된 파이를 샀다. 아침에 집 열쇠를 책상 위에 두고 나와서 벨을 눌렀다. 마인 슐뤼스 이스트 임 찜머. ㅠㅠ 우유 두 잔을 곁들여 달달한 빵을 먹고 침대에 누웠다. 낮인데도 왜 이렇게 추워! 베를린은 해가 일찍 뜨고 늦게 지는데, 우리와 달리 오후 4시 정도가 가장 따뜻한 시각인 듯 하다.

어쨌든 한두 시간 정도 설잠을 잤다가 일어나 카데베에 가서 지난 주에 새미가 못 샀던 초콜릿을 대신 샀다. 원래는 월요일에 새미가 친구들 선물로 사려던 것이다. (내 옷과 이것 때문에 쿠담에서 만났었다) 내 지갑 도난 때문에 일정이 틀어져서 새미가 카데베에 아예 가지도 못하고 공항으로 바로 나가게 되자, 내가 사서 금요일에 주겠다고 했었다. 누구나 무난하게 좋아할 만한 밀크 초컬릿이나 견과류가 든 초컬릿을 부탁하기에 카데베, 베를린, 브란덴부르크 토어 등이 쓰인 정말 관광지 기념품 같은 초컬릿을 골랐다. 그래도 맛있겠지. 그리고 어제 살까 말까 하던 민소매 옷을 샀다. 한 번에 결정을 안 해서 두 번 움직여야 했다. 이제 더웠다. 저녁으로는 집에 오는 길에 알렉산더 광장에서 아시안 누들 박스(닭고기와 면, 숙주, 파인애플 등)와 코카콜라를 사서 TV탑 근처 벤치에 앉아 먹었다. 따뜻하고 고기라서; 좋았다.

오늘의 지출
점심식사 1,90
초컬릿 12,01 (8,03 + 3,98)
옷 14,27
저녁식사 5,80

2007년 8월 1일 수요일

7:40 기상. 어제의 신용카드는 보상 처리가 가능하다는 결론이 나왔다. 악당씨는 간도 크지, 그 큰 돈을 모두 내가 지갑을 도난당한 가게인 H&M에서 썼더라. 보통 뭘 훔치면 일단 거기서 나오지 않나?; 이번 일로 서울에 있는 가족들이 신경 쓰느라 고생했다. 아버지가 은행까지 다녀 오셨다고 한다. 심신 양면으로 민폐를 끼치지 않을 때도 생각하는 점이지만, 역시 가족이 있어서 큰 힘이 된다. 어머니에게 새미가 서울에 오면 우리 집에서 재우면서 고기라도 구워 줘야겠다고 하자, "네가 구워주고 네가 재워줘라 흥" 하신다.

일찍 일어났는데 어쩌다 보니 아침을 못 먹었다. 학원 쉬는 시간에 학원 앞 빵집에 가서 우유커피와 빵을 사먹었다. 같은 반의 알데모나도 커피를 사러 와 있다. 지갑 잃어버린 게 어떻게 됐느냐기에 가져간 사람이 650유로나 썼더라고 했더니 깜짝 놀란다. 자기도 마드리드에서 지갑을 잃어 버린 적이 있었는데, 천만 다행히 모두 무사히 돌려 받았었단다. 알데모나는 마드리드 출신으로, 나와 수업 시간 파트너이다.

점심으로는 새로운 5분 인스턴트 스파게티에 도전해 보았다. 토마토소스였는데, 짰다. 오늘 오후에는 학원에서 신청자끼리 베를린 관광선을 타기로 했다. 베를린에는 슈프레 강(Spree Fluss)이 흐른다. 스물 네 명이 신청을 했다. 집합 시각이 오후 3시인데 집합 장소 찾기가 어려워서 조금 헤메다가 맞는 버스를 타고 나니 벌써 세 시다. 베를린의 필수 관광 코스를 돈다는 2층 버스인 100번을 탔더니 역에서마다 사람들이 너무 많이 타고 내려서 시간이 걸렸다. 혼잡한 버스 앞쪽에 서 있다가 뒤로 가 보니 어학원 학생들이 무더기로 있다. 다들 지각생이다. 세 시 십 분 쯤 버스정류장에 내려 선생님들과 함께 선착장으로 뛰어 세 시 반 배를 탔다.

이런 전면적인 관광선(?)은 처음 타 보았다. 마산에서 돝섬 가는 배나 제주도 배, 군함, 금강산여객선; 같은 배만  탔지 한강 유람선도 타 본 적 없기 때문이다. 사실 1) 독일어 설명을 알아들을 수 없고 2) 다들 스페인어로 얘기했고 3) 배가 느려서 처음에는 지루했다.

그런데 근처에 앉아 있던 마리나와 알모데나, 그리고 이름 까먹은 전 런더너(스페인 사람이지만 베를린에 오기 전에는 런던에서 4년간 살았다고 한다) 아가씨가 영어로 말을 걸어 줘서 나중에는 영어와 서툰 독일어로 이야기하며 즐겁게 배를 탔다. 함께 사진도 찍었다. 유럽권이라고 해도 다 영어나 이탈리아어, 프랑스어를 잘 하지는 않고, 어학 실력과 출신 지역 사이에 뭔가 상관 관계가 있다는 것 같았다. 원래 다른 스페인 여학생도 같이 있었는데 우리가 영어로 대화를 시작하니까 다른 자리로 가 버렸다.;

마리나는 스페인에서 어린이 영어 선생님이었고 알모데나는 학생인데 영어와 이탈리아어를 잘 한다. 마리나가 수업 시간에도 다들 스페인어로 얘기하면 무슨 얘기 하고 있었는지 영어로 나에게 다시 말해 주며 신경을 써 줬는데, 나중에 집에 가는 버스에서 들어보니 예전에 다니던 독일어학원에서는 마리나만 스페인 출신이고 다들 베트남/일본/한국인이라서 무척 곤란했다고 한다. 그래서 그랬구나, 싶더라.

며칠 동안 무척 날씨가 나빴는데 오늘은 웬일로 약간 덥게 느껴질 정도로 맑고 시원했다. 슈프레 강은 넓지 않았고 주위로도 계속 다른 유람선들이 다녀 번잡한 관광지 느낌이 났지만, 그래도 걸어 다닐 때와 다른 시점에서 여러 건물들을 보고 티어가르텐을 지날 수 있어서 즐거웠다. 나와 마리나, 런더너(...;) 셋은 지하철 팀에서 갈라져 나와 산책을 좀 하다가 버스를 타고 알렉산더 광장으로 갔다. 내가 수업시간에 주말에 런던에 BBC PROM을 보러 간다고 했었기 때문에 음악 얘기가 나왔는데, 마리나가 [디스 이즈 리듬]이라는 다큐멘터리를 추천해 주었다. 베를린필의 역사를 다룬 영어 다큐멘터리라고 한다.

이동 거리는 길었지만 오랜만에 햇빛을 쐬고 사람들과 얘기도 해서인지 기분이 좋았다. 여세를 몰아 슈퍼마켓에 가기로 했다. 이번에는 윈스트 가에 있는 카이저에 갔다. 우리 집에서 가장 가까운 슈퍼마켓이더라.

큰 슈퍼마켓에 가니 물이 동네 슈퍼에서보다 싸서 두 병을 사고, 따뜻한 요리를 해 먹으려고 달걀과 베이컨, 당근을 샀다. 베이컨 굽고 당근 볶고 계란 얹으면 대충 마음만은 뉴요커? 푸힛. 날씨가 추우니 밤에 꿀물을 타 마시고 자려고 꿀도 장만했다. 그리고 집에 있는 맛없는 건강 시리얼(새미한테 이 시리얼 얘길 했더니 상표를 바로 알더라. 원래 아무 맛이 안 나는 건강 시리얼이란다)을 처분하기 위해 우유와 아주 달아 보이는 켈로그 초코시리얼도 한 통 샀다.

집에 오는 길에 장바구니가 무거워서 힘들었지만 며칠 치 식량과 물이 있으니 안심이 된다. 저녁으로는 새로 산 햄을 빵에 끼우고 꿀요거트버터를 발라 먹었다. 그리고 나중에 또 배가 고파서 초코시리얼, 블루베리(아, 이것도 오늘 샀다), 건강시리얼을 우유에 타 먹었다. 승민오빠가 이런 걸 '시리얼로 요리하기'라고 했던 기억이 나서 낄낄 웃었다. 

밤에는 숙제를 하고 잤다.

오늘의 지출
아침식사 2,80
배삯 6,40
슈퍼마켓 15,78

2007년 8월 1일 수요일

2007년 7월 31일 화요일

어제는 열한 시 쯤 되어서 잠들었다. 새벽, 일어나기 직전에 무척 인상적인 꿈을 꾸었다. 중국 한 말기와 이집트 클레오파트라 시대가 섞인 듯한 고대 왕국이 배경이었다. 왕국은 융성했고 화려했으며(왕궁에 고전적인 양식의 엘리베이터가 있어서 시녀들이 음식을 왕족과 마주치지 않으며 엘리베이터로 나를 정도였다) 왕과 왕비는 드높은 황금 왕좌에 앉아 있었다. 하지만 시대가 변했고 큰 전쟁이 있었다.  적의 대군이 시시각각 다가오는 위기 상황, 왕은 눈 먼 예언자 무리를 궁으로 불러 예언을 요구했다. 허름한 옷을 입고 낡은 수레를 탄 에언자들이 화려한 궁에 들어와 왕과 왕비의 아래에 서서 예언을 했다.

그 예언의 내용이 '왕비는 재가 되고 조연출(정말 꿈속에서 조연출이라고 했다. 제 2 시종장 정도의 사람을 의미했는데, 꿈 꾸는 와중에 시종장이라는 단어가 생각이 안 났다;;)이 그 재를 폐허에 뿌린다'였다. 왕은 그 예언이 왕국이 전쟁에서 패해 멸한다는 뜻이라고 생각하고, 크게 노해 물러가는 예언자들을 모두 죽이라고 명했다. 그런데 옆에 앉아 있던 왕비가 '우리가 패했다면 2시종장이 나의 유해를 수습할 리가 없다. 멸망의 위기라면 나와 당신, 그리고 우리 아들이 가장 마지막까지 살아남을 터이지 낮은 신분인(왕족이 아닌) 2시종장이 그렇게 오래 살아있을 리가 없으므로 저 예언은 나라의 패배가 아니라 단지 나의 죽음을 말한 것이므로 예언자들을 죽이지 말라.'고 말했다.

왕이 신과 같은 지위에 있는 시대, 자신의 죽음과 나라의 멸망을 분리해서 생각하며 내가 평민들보다 먼저 죽을 리 없다고 당당하게 말하는 왕비의 절박한 오만함이 대단히 강렬하고 인상적이었다. 그 얼울이 일어나서도 잊혀지지 않았다. 왕국은 대패해 멸망했고 화려했던 왕성은 폐허와 잿더미가 되며 한 시대가 끝났다. 이 이야기는 음식 나르는 엘리베이터에 숨어서 살아남은 한 시녀에 의해 전해져 역사가 되었다.

이런 스펙터클한 꿈을 꾸고 일어나 학원에 갔다. 어제 먹을거리를 아무 것도 못 사 왔기 때문에 집에 아침으로 먹을 음식이 하나도 없었다. 그래서 학원 앞 빵집에서 커피와 초코크로와상, 초코도너츠를 테이크아웃해 학원 라운지에서 먹었다. 벽에 반 편성 배치표가 걸려 있었는데, 우리 반 학생 수가 가장 적어서 (여섯 명!) 기뻤다. 2층 교실에 올라가 보니 어제의 초미인 롱다리 아가씨, 마리나가 있었다. '어? 우리 같은 반이야? 솔직히 네가 나보다 잘 한다고 생각했는데?'(진심)라고 하자 사실 자기도 그렇게 생각했단다. 다들 비슷한 심정인가봐-했다. 우리 반도 역시나 나 빼고는 모두 스페인 출신으로, 마드리드 두 명, 바르셀로나 한 명, 마드리드 옆 도시 한 명이다. 같은 스페인이라도 생김이 참 다르다. 선생님이 수업시간에 스페인어를 쓰지 말라고 주의를 주었다.

오늘 수업에서는 두 명씩 짝을 지어 서로에 대해 묻고 답한 다음, 선생님과 다른 학생들이게 자기 파트너에 대해 설명했다. 그리고 쓰기 수업으로 평서문의 특정 단어를 묻는 문장을 만들고 각자 자기가 경험한 일/ 어제 있었던 일을 이야기했다. 디즈니랜드에서 일했던 사람이 둘이나 있었고, 다른 나라에 가 본 적 없는 사람은 나 뿐이었다. 어제 있었던 도난사고를 외운 대로 이야기해 볼 기회여서 열심히 말했는데, 몇가지 틀린 부분을 고칠 수 있어서 기뻤다.

집에 와서는 서울로 연락을 했다. 그런데 어제의 악당이 비자카드를 가져간지 30분도 지나지 않아 자그마치 650유로 이상을 결재했단다! 신용카드는 타인이 쓰기 어렵기 때문에 대체로 훔쳐 가도 버린다고 들어서 그렇게 걱정하지 않았는데, 너무 큰 액수가 나가서 어질어질했다. 털자마자 길 건너 카데베 1층에 가서 오메가라도 산거야?

어쨌든 날씨는 계속 춥고 비가 왔다. 어제 갔던 H&M에 가서 새미와 골라 놓았던 후드티와 봄가을에 어울릴 법한 깔끔한 니트를 한 벌 샀다. 어제 봤던 옷을 바로 갖고 나왔는데, 집에 와서 입어보니 약간 작은 것 같기도 했다. (하지만 수요일에 다시 입고 다녀 보니 살짝 늘어났는지 괜찮았다) 옷을 사고 쿠담 근처에 카이저가 있기에 들어가서 빵, 꿀요거트버터(라고 쓰여 있음), 체리토마토를 사서 집에 돌아왔다. 참, 낮에 주인 아주머니에게서 배낭도 받았는데, 물건들이 모두 무사히 들어 있었다.

오늘의 지출
아침식사 3,30
옷 36,70
슈퍼마켓 4,56
배낭 운송비 21,00
학원비 100,00

2007년 7월 30일 월요일

어학원 개강일이었다. 수업 시작 시간은 9시 30분. 9시 20분쯤 어학원에 도착해 번호표를 받았다. 인터넷으로 반편성 시험을 보았었지만 일고여덟명으로 나누어서 다시 시험을 본단다. 인터넷 평가는 정확한 결과가 나오기 어려워 신경이 쓰였는데, 다시 평가를 한다니 수준에 맞는 반에 편성 받을 수 있껬다 싶었다.

아홉 시 사십 분 정도부터 주관식 쓰기 시험을 한 시간 정도 보고, 답안을 낸 다음에는 30분 정도 쉰 다음 인터뷰 시험을 보았는데 준비 땅, 하지 않고 갑자기 질문을 시작해서 조금 당황스러웠다. 게다가 10여 명이나 있는데 -주관식 시험 치고 나서 지각생들이 들어왔다-  왜 내가 첫 번째? 예뻐서? (아마 정답은 '원형 탁자에서 선생님 정면 자리에 앉았기 때문'인 듯)

자유 질답을 한 다음에 칠판에 걸린 사진을 보고 5분 정도 생각한 다음 그 사진의 내용을 설명하는 시간을 가졌다. 사진 네 장 중에 하나를 고르는 방식이었는데 같은 사진을 보고도 다른 생각을 하고 모두들 그 생각을 독일어로 잘 표현하지 못해서 답답해 했다. 사진 설명만 들어도 그 사람의 성격과 관심사를 알 수 있는 점이 재미있었다.

예를 들어, 내가 고른 사진은 젊은 남자가 혼자 책상 앞에 앉아 사진을 들어 보는 장면이었다. 나는 그 남자가 젊고, 첫 번째 전시회를 앞두고 전시할 사진을 고르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 장면 이전에 에이전트가 오늘까지 사진을 골라야 한다고 압박전화를 했고, 지금 그 남자는 '이 사진이 최고야!'라고 막 결정해서 이제 에이전트에게 전화를 하려는 참이라고 했다. 그런데 스페인에서 온 배우 지망생 아가씨(초초초미인!)는 남자가 실력있는 영화감독으로, 새로 찍는 대규모 영화의 캐스팅을 위해 배우들의 사진을 놓고 고민하고 있으며, 그 장면 이전에는 인터뷰를 했다고 말했다. 역시 스페인에서 온 (사실 대부분 스페인 사람이다) 철학전공자 아마추어 작가 청년도 같은 사진을 골랐는데, 그는 사진 속 남자가 작가로 글이 잘 안 풀려서 쓰다 말고 보드카를 마시고 있었고 나중에는 계속 술을 마시다가 죽었단다.--; 내 옆에 앉았던 프랑스에서 공부하다 온 아가씨(스페인인)는 남자의 아내가 부부싸움으로 아이들을 데리고 떠나버러서; 남자가 가족사진을 보면서 자신의 잘못을 후회했는데, 나중에 아내가 돌아온다는 러브스토리를 이야기했다.

편성 시험이 끝나니 12시였다. 또 잠시 쉬었다가 생활 정보와 이번 주 쿨투어 프로그람을 안내받고 1시부터 점심을 먹었다. 학원 근처에 있는 작은 갤러리를 빌려 부페를 차려 놓았더라. 우르르 몰려가서 식사를 했다. 여름 어학 프로그램 참여학생들이 모두 다 있는 자리였는데, 한국인은 한 명도 없는 것 같았다. 한국인이 없는 어학원을 찾은 보람은 있었지만 이렇게까지 스페인 사람이 많을 줄은 예상치 못해서 난처하기도 했다. 다들 스페인어를 쓴다. 아시아 인은 다 합해서 다섯 명 정도? 그 중 둘은 나와 함께 반편성 시험을 본 타이완 의대생 동기(커플로 추정)로 올해 예과를 끝냈다고 한다. 지난 주에 와서 쾰른과 본, 하노버, 함부르크를 여행한 다음 어제 베를린에 들어왔는데, 집에서 인터넷이 안 되어서 중앙역에서 두 시간이나 걸려 무선랜을 연결해 쓰느라 고생했단다. 우리 집에서는 느리지만 인터넷이 된다고 했더니 몹시 부러워했다. 3주간 코스를 밟고 다시 독일을 일주일 여행한단다. 참, 한국에서 왔다고 하면 북한인지 남한인지 다들 물어 보는 것이 신기했다.

새미가 영국으로 돌아가기 전에 같이 옷을 사러 가기로 했기 떄문에, 식사 다음에 함께 학원 주위를 걸어다녀 보는 프로그램에는 참여하지 않고 중간에 서둘러 나왔다. 너무 추워서 옷 살 일이 급했다. 기온이 계속 최고 15도를 넘지 않는데다 바람이 세게 불고 드문드문 비도 와서, 반편성 시험을 보면서도 추워서 집중이 잘 되지 않았다. 이곳 사람들은 엉덩이를 덮을 정도 길이의 점퍼나 초겨울에 어울릴 법한 니트를 입고 다닌다. 여기 기준으로도 이상저온 상태라고 한다.

2:00 새미와 동물원 역에서 만나 쿠담에 갔다. 몇 군데 옷 가게를 돌아보다가 싸고 무난한 디자인이 많은 H&M에 들어갔다. 이 곳에서 마음에 드는 후드를 발견했는데, 사이즈를 정확히 가늠하기 어려워서 새미와 번갈아 가며 입어보았다. 그러다가......지갑을 도난당했다.-_- 크로스백에 지갑을 넣어 매고 있었다. 만약을 대비해 한 사람이 옷을 입어 볼 동안 다른 사람은 두 사람의 크로스백을 받아 매고 있는 식으로 움직였는데, 옷을 입고 거울 앞에 갔다가 돌아온 새미에게 가방을 건네면서 보니까 내 가방이 반쯤 열려 있었다. 그러니까 채 1분도 되지 않는 사이였던 것이다. 내가 새미에게 '이거 원래 열려 있었어?'라고 말하는 순간 둘다 핏기가 가셨다. 원래 열려 있었을 리가!

이럴 리가 없는데 하며 가방에 든 물건을 모두 꺼내 보았으나 지갑만 쏙 없다. 게다가 이게 바로 가는 날이 장날, 프랑크푸르트 공항에서 동네 무인 센터로 보내 준 배낭을 찾으려면 현금 카드가 필요하다고 해서 현금 카드 두 장에 비자카드까지 들고 나왔던 참이었다. 무인 센터까지 갔다가 카드가 안 먹히면 곤란하니까. 만약을 대비해서 모두 두 장씩 만들었으면서 같은 지갑 안에 넣어놓다니 지금 생각하면 허술했다. 어학원비 잔금도 들어 있었다. 이것도 원래 어학원에서 나오면서 내려고 하다가, 옷 사러 가니까  현금이 좀 있어야 할 것 같아서 집에 들르지 않고 그 돈을 그대로 갖고 시내로 나온 것이다. 바로 직원에게 도난당했다고 얘기했다. 직원이 신고를 하고 오더니 경찰이 거기까지 오지는 않으니 경찰서에 가서 신고하라고 한다.

정말 땡전 한 푼 없는 대위기였다. 혼자였다면 경찰서에서 차비를 빌려 집에 돌아가, 서울로 연락해서 '아빠가 보내준 돈으로 여름캠프에 간 지영이'처럼 웨스턴유니언을 이용해야 할 처지였던 것이다. 그런데 새미가 자기 영국은행 현금 카드 두 장으로 일일 최대 출금 한도에 육박하는 돈을 빼서 빌려 주었다. 물가 비싼 런던에서 아르바이트 하면서 생활하는 유학생의 사정이 정말 빤한데, 그래도 옆에 있으니 도와 줄 수 있어서 다행이란다. 이 은혜를 어찌 갚으리오.

그리고 물어물어 30분 정도 걸어 가장 가까운--; 경찰서에 갔다. 영어를 할 줄 아는 경찰관을 통해 신고서를 작성하고, 지하철을 타고 동물원 역으로 돌아왔다. 한국에서도 봉사활동 할 때 밖에 안 가본 경찰서에 독일에서 이런 일로 가게 되다니! 새미가 부르스트와 감자튀김을 사 주어서 같이 앉아서 먹었다. "너 경찰서에서 정말 너무 순진하고 얌전하게 앉아 있더라. 그래서 내가 (괜히 걱정돼서) 자꾸 중간에 말 했잖아."라는 새미 말에 그 와중에도 웃음이 나왔다. "사실 경찰서에서 뭐라고 했는지 기억이 잘 안 나. 네가 내가 30일에 출국한다고 했잖아? 그 때 29일이라고 말하려고 했는데 세상에, 영어로 29일이 뭔지 모르겠더라고." "그래서 내가 30일이라고 했을때 움찔 했구나." "엉.--;" (영어로 29일이 생각 안 났지만 다행히 3초 정도 후에 독일어로 29가 생각났었다.)
참, 신고접수를 끝내고 일어서는데 영어를 하는 경찰관이 난데없이 해브 어 나이스 데이! 라고 인사를 해서 새미와 내가 동시에 웃음을 터뜨렸다. 너무 안 어울리잖아!

새미는 영국으로 돌아가고, 나는 집에 들어왔다. 집에 와서 우선 신용카드 분실신고를 했다. 외환카드 신고시에는 전화 상태가 안 좋아서 신고번호는 받았는데 사용 내역까지 확인하기가 어려웠다. 이러고 나니 이미 밤 9시가 지났다. 여권과 디지털 카메라를 갖고 있지 않았던 것만도 천만 다행이다. 현금은 속이 쓰리지만(그게 원고지로 하면 몇 매야!) 여권 분실에 비하면 낫다고 생각하기로 했다. 그리고 몸 안 다쳤으니까. 아무리 생각해도 새미 말처럼 처음부터 노리고 있다가 가져간 것 같다. 여기에서 동양인(특히 여행객)은 굉장히 도드라지는데다, 계속 가방을 보고 있었는데 잠깐 안 본 사이에 지갑만 빼가는 일이 우발적인 범행일 리가 없다. 아우.

그래서 프랑크푸르트 공항에서 보내 준 배낭도 못 찾았다. 집주인 아주머니에게 (독일어와 손짓으로)에체 카르테가 없어서 소포를 찾아 올 수 없으니 도와 달라고 했는데, 흔쾌히 내일 아침이라도 괜찮다면 장 보러 가는 길에 가져다 주겠다고 해 주셔서 정말 고마웠다. 좋은 분을 만나서 다행이다. 내가 독일어를 좀 잘 하면 훨씬 친해질 수 있을 텐데; 안타깝기도 하다.

그러고 나니 대충 아홉 시 반. 내일부터 정식 어학원 수업이 시작하니까 독일어 공부도 해야지. 영독 사전을 보면서 오늘 있었던 일을 독일어로 써 본 다음, 내일 어학원에서 써먹으려고 외우고 잤다.

오늘의 지출
1회 승차권 2,10x 2= 4,20
베를린AB구간 1개월 승차권 70,00
식사 약 6,00

2007년 7월 28일 토요일

홈페이지 여름 이벤트 최종정리

홈페이지 여름 이벤트에 참여해 주신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1등상은 보덤(Bodum)사의 프레스기였습니다.
참가상으로는 [마왕], [누군가를 만났어], [벌집에 키스하기], 마술사 카터 악마를 이기다], [이중나선] 등 책을 보냈습니다. 모든 분께 1순위 희망도서를 드리지 못해 아쉬워요. 그래도 재미있게들 읽으시면 좋겠네요.

그리고 참가상 2로 여기 독일에서 초콜릿이나 귀염귀염한 기념품을 찾아서 선물하기로 했답니다.

다음 번 이벤트에도 많이 참여해 주시길 부탁드려요!

2007년 7월 28일 토요일

6:30 경에 일어났다. 버터를 꺼내 놓고 그냥 방에서 뒹굴뒹굴 하다가 7시쯤에 문득 생각나서 새미에게 스탠스타드 공항에서 런던 시내로 가는 길 팜플릿이 있으면 좀 갖다 달라고 연락했다. 벌써 비행기 안이란다.; 어제 집에서 쇠네펠드 공항까지 가는 길을 알아 놨는데, 쇠네펠드 공항 버스정류장에서 공항 터미널로 가는 길이 좀 애매하다. 알렉산더 광장에서 S9를 타고 종점까지 가면 쇠네펠드 공항 버스가 있는데, vbb에서 검색해 보니 집 앞에서 트램을 타고 알렉산더 광장에서 버스로 갈아타는 경로가 최단거리라고 나온다. 일찍 일어났으니 트램과 버스에 도전해 보아야지. 이렇게 어설픈 친구라도 공항에 마중 나가 있는 게 없는 것보단 낫지 않을까 해서 간다. 사실 새미가 영어도 나보다 더 잘 할 텐데. 베를린의 온도는 20도 밑이다.

요약
1. 딴에는 의욕에 넘쳐 새미를 마중하러 나갔으나 에스반을 반대 방향으로 타서 -_- 생전 처음 보는 동네로 가 버림
2. 비가 많이 오는데 우산이 없었음. 새미가 호스텔 가까운 역까지 알아서 옴.
3. 새미가 묵을 호스텔에 배낭을 맡기고 함께 시내로 나섬. 또 의욕에 넘친 내가 쇼핑의 거리인 쿠담에 가자고 함.
가서 쇼핑 거리와 카이저 빌헬름 교회를 본 것 까지는 좋았는데 길을 잘 몰라서 먹을 곳 찾느라 고생.임비스(노점상)에서 쿠리부르스트와 오렌지탄산을 사먹고 베를린에서 가장 크고 유명한 백화점 카데베에 감. 이곳의 6층은 천국....초콜릿 초콜릿 초콜릿 초콜릿 초콜릿 만세! 참으로 훌륭한 곳이었다.
참, 교회 앞 서점에서 마침내 론리 플레닛 독일 영문판을 발견하고 구입. 그런데 27유로나 해서 속이 쓰렸다.
4. 정보 없이 탐방은 무리다 싶어 새미가 웰컴 카드를 사고 받아온 팸플릿에 나온 우리 동네 어학원 근처에 있는 카페에 가기로 했다. 그런데 카페가 있다고 나온 주소에 새로 문을 연 로스만이 있다.---; 로스만에서 스킨과 타게스크레메를 7유로 정도 주고 샀다. 자체 상표 크림이 2유로도 안 한다! 아이고 좋아라.
5. 카페 대신에 집에 가는 길에 있는 크레페 가게에서 크레페를 먹고 집에 스킨과 책을 두고 나와 알렉산더광장으로 갔다. 이곳은 예습을 해 둔 곳이라 무사히 구경하고 역사 내에 있는 임비스에서 아시안 누들 박스(3유로)를 사먹었다. 오늘은 정말 오랜만에 따뜻한 음식을 두 끼나 먹어서 너무 행복하다. 그리고 배낭을 받는 데 생각보다 시간이 걸릴 것 같아서 파운데이션과 파우더 겸용크림 비스무레한 니베아 화장품도 하나 샀다. 한국에선 대충대충 다니던 내가 자꾸 화장에 신경을 쓰는 이유는 나중에 긴 일기에.
6. 체리토마토(라지만 우리니라 큰 토마토 크기의 반만하다)와 물도 샀따.

8:50  귀가. 여기 와서 가장 늦은 시간에 집에 들어온 날인 것 같다. 원래는 이 시간에 잘 준비 하는데. 너무 피곤하니 오늘은 일단 요약 정라만 해 두고 자야겠다. 오늘 모험지수는 독일에 온 이래 가장 높았고 지금까지 중에 식사도 가장 제대로 했으나, 그만큼 지출도 커서 이제 현금이 30유로 정도밖에 안 남았다.

2.88

2007년 7월 27일 금요일

2007년 7월 27일 금요일

6:45 에 일어났다. 일어나자마자 앗, 조금 늦게 일어났네 싶었지만, 사실 이것도 이르다. 이쪽 동네에서는 오전 8시 이전과 오후 10시 이후에는 샤워를 하거나 큰 소리를 내지 않는 것이 예의라고 들었는데, 단지 생활 리듬상의 문제인지는 몰라도 실제로 오전 8시 이전에는 '이 사람들은 새벽에 화장실도 안 가나...'싶을 만큼 건물 전체가 조용하다. 밖에서 차가 지나가는 소리도 거의 들리지 않는다. 그래서 어제도 일찍 일어났으면서 조용히 시리얼 타서 방에 앉아 먹은 다음에 씻었고 오늘도 일단 냉장고에서 버터부터 꺼내 녹이며 인터넷;을 했다. 어학원에 다니고부터는 일어난 다음에 예습을 하다가 씻고 아침 식사를 하고 수업을 받으러 나가면 (9:30) 딱 맞을 것 같다.

방에서 조용히 가방을 싼 다음 그제 사 놓은 빵과 햄, 버터, 우유로 아침식사를 하고 (시리얼은 도저히..ㅠ_ㅠ) 나갈 준비를 했다. 그런데 나가려다가 생각해 보니 아무래도 크로스백은 너무 작다. 짐이 되더라도 캔버스 백을 가지고 가야겠다. 함부르크의 오늘 최고 기온은 25도, 흐리고 비가 온단다. 우산도 챙기고 사과도 하나 넣었다.

9:18 에 베를린 중앙역에서 출발하는 고속철(ICE)을 탔다. 함부르크 중앙역 까지 직행으로 한 시간 삼십 분 정도 걸린다. 척 보기에도 배낭여행객 같은 사람을 따라서 탔는데, 타고 20분 정도 지나서 흡연석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다지 긴 거리가 아니니 그냥 있기로 했다. 사과를 먹은 다음 창 밖 경치를 적당히 구경하다가 나중에는 졸았다. 함부르크 역에 도착하니 열시 오십 분이다.
710
10:50
기차에서 내려 역내를 한 바퀴 돌아 본 다음 함부르크 인포 센터에 가서 시내 지도를 받았다. 함부르크에서는 시내 교통이 모두 무료이고 미술관 등의 입장료 할인이 되는 함부르크 카드를 8 유로에 팔고 있다. 나는 필요 없을 것 같아 사지 않았지만, 아침 일찍부터 함부르크를 꼼꼼히 돌아볼 사람에게는 꽤 좋겠더라. 여러가지 사설 투어 버스 요금 할인도 된다.

11:25 역사에서 나와 보니 역 바로 앞에 'Top Tour Bus'라는 2층 버스가 서 있었다. 11시 30분에 출발이라고 쓰여 있기에 나도 가서 탔다. 설명을 들으면서 함부르크 시내를 돌아 보는데 영어와 독일어로 똑같은 내용을 두 번 말해 주어서 준비 없이 갔는데도 무엇을 보고 있는지 알 수 있어 꽤 재미있었다. 함부르크는 강과 호수로 유명한데, 버스를 타고 중앙역에서 조금 나가자마자 호수가 보였다. 백만장자들이 모여 사는 동네와 많은 돈을 순식간에 없애고 싶으면 가 볼 만 하다는 고급 상점가도 지났는데, 그런 곳을 지나면서 가이드가 이런 곳도 있지만 함부르크의 시내에 노숙자들이 많아서 문제가 되고 있다는 얘기를 하는 것이 특이했다.

그런데 너무 추웠다.; 도중에 비가 조금 내려서 버스를 세우고 2층에 차양을 덮었는데, 그러고 나자 또 금세 비가 그쳐서 또 서서 차양을 걷었다. 긴 팔 웃옷을 여며도 추웠다. 12시 쯤에 1897년에 세워진 시청사에서 잠깐 내렸다. 이 투어 버스는 중간에 내렸다가 나중에 오는 차를 타도 되는 시스템인데, 오늘 돌면서 관찰한 바에 따르면 내가 탄 버스 말고 비슷한 다른 버스들도 모두 같은 식으로 운영되는 것 같았다. 어제 본 빨간 베를린 시청사가 진지한 느낌이라면, 이쪽은 왕국! 이라고 소리치는 듯 화려한 건물이었다. 영국의 버킹엄 궁보다 방이 6개가 더 많다고 자랑하는 것이 재미있었다. 그 전에 백만장자 동네의 공원을 지나면서도 영국의 하이드 파크를 언급했었거든.

12:20 시청사 앞에서 두리번거리다가 사람이 좀 모여 있는 Kumpir라는 노상 감자가게에 가서 커다란 감자와 커피를 주문했다. 대개 맥주나 주스를 곁들여 마시고 커피는 마시지 않던데, 감자를 먹어 보니 단연 차가운 음료가 어울려서 역시나....싶었다. 내 주먹 두 개 보다 큰 찐감자를 반으로 갈라 치즈를 끼우고 소스(선택가능)를 뿌려 준다. 따뜻한 음식을 먹고 나니 좀 덜 추워진 기분이었다. 때맞춰 온 다음 버스를 탔다. 그런데 이번 버스의 가이드 아저씨는 설명을 (알아듣기 어려운) 독일어로만 한다! 에이, 하며 다음 하차지점인 St. Michaelis Church에서 내렸다. 함부르크의 랜드마크로, 1751년에서 1762년에 걸쳐 지어진 '독일 북부에서 가장 중요한 바로크 양식 교회'라고 한다.

12:55 너무 추워서 교회 안에 들어갔다. 교회의 높은 탑에는 입장료를 내면 들어갈 수 있고, 예배당 입장은 무료다. 신앙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그 규모와 분위기에서 뭔가 느낄 수도 있겠지만 나에게는 오래 전에 지어진 고풍스런 건물 이상의 의미가 없다. 게다가 교회는 대체로 사람을 '내려다보는' 느낌으로 지어져 있다 보니 안에 있으면 묘하게 불편해진다. 그에 비하자면 성도 노동력 착취의 결과로 만들어진 권력의 상징이라는 점에서는 마찬가지지만, 최소한 성에 사는 '사람'을 중심으로 하는 건물이라는 점에서 그런 불편함은 없다. 교회 건물에 들어갈 때 마다, 엄청 진지한 얼굴로 나에게 '믿지 않으면서 교회에 가거나 성경을 읽으면 지옥의 불길에' 어쩌고 했던 중학생 시절 짝궁이 떠올라서 웃음이 난다. 그 때는 황당했는데 지금 생각하면 안스럽다. 그 애 덕분에 교회의 불편함이 불쾌함이 되지 않고 연민으로 대충 상쇄되니 다행인가. 어쨌든 진심으로 존중하며, 매우 경건한 표정으로 한 바퀴 돌아보고 나왔다. 실내라도 넓고 천정이 높다 보니 추워서 별로 있을 필요가 없었다.

다음 버스를 타고 섹스숍 거리를 지났다. 가게들의 간판이나 전시물, 카바레의 포스터는 섹스숍 분위기였지만 낮시간이다 보니 그 밑으로는 커다란 배낭을 맨 여행객들이 걸어가고 있어서 언밸런스한 느낌이었다. 이어서 선착장, 피쉬마르크트, 함부르크 던전 등을 죽 돌았다. 버스 프로그램과 배표 할인이 연게되어 있었는데, 다음에 와서 타 보기로 마음 먹었다. 강과 호수가 어디서나 보이니 기분이 좋았다. 이번 버스도 독일어로만 설명을 했지만 훨씬 알아듣기 쉬웠다. 관광객 중에 외국인이 거의 없어서, 영어 설명을 들으려면 탈 때 언급을 해야 할 것 같다. 첫 버스에서는 내 앞에 중국인 부부가 있었고, 나도 타면서 영어로 코스와 설명에 관해 물었기 떄문에 영어로도 설명을 해 준 듯. 이후 두 대에서는 외국인이 나 혼자였고 내 또래의 학생으로 보이는 독일인 아가씨 무리 뒤에 은근슬쩍 끼어 탔었다. 원칙적으로는 영어와 독일어 가이딩이다.

2:00 경에 함부르크 중앙역으로 돌아왔다. 시간표를 뽑아 보니 세 시 육 분에 베를린으로 가는 ICE가 있다. 바로 출발하는 기차도 있지만 시간이 빠듯할 것 같아 역 주위를 돌아보다가 함부르크의 쇼핑가인 Sptalerstrasse에 한 번 가 보았다. 사람들이 굉장히 많았다. 두 시 사십 분 쯤 역사로 돌아와 바디샵에서 갔다. 잃어버린 배낭에 젤/액체 화장품이 모두 들어 있었기 떄문에(보안검색....-_-) 계속 곤란한 상황이었다. 파운데이션이 없는 정도야 맨 얼굴로 다니면 되니 괜찮은데 립밤, 핸드크림, 바디로션이 없다 보니 입술과 손이 터 버렸다. 배낭이 돌아올 때 까지 참아 보려고 했으나 입만 열면 입술이 아플 지경이라 항복하고 새 걸로 샀다. 바디샵 점원이 계산대에 낸 신용카드를 보더니 한국인이냐고 묻는다. 여기 와서 지금까지 본 바에 따르면, '나 같은' 동양인은 정말로 드물다. 터키 같은 서아시아 계통은 흔한데 - 히잡을 쓴 사람도 매일 서너 명은 꼭 보았다 - 동아시아 계로 보이는 사람은 거의 없다. 알렉산더 광장 같은 관광명소에서도 두 명 볼까말까다. 그래서 깜짝 놀라 어떻게 알았냐고 하자 카드의 이름 부분을 가리키며 가장 친한 친구가 한국인이라서 알아 봤다며 웃는다. 덤으로 바디크림 샘플도 받았다.

3:06 기차를 타고 베를린에 돌아왔다. 기차 안에서는 사전을 보며 또 문장 만들기 시뮬레이션 놀이를 했다.
4:39 베를린 중앙역 도착. 알렉산더 광장에서 지하철로 환승해서 집에 돌아오니 다섯 시 사십 분이다. 오늘도 적당한 수준의 모험을 해서 흐뭇하다. 고속철도와 S-Bahn을 새로이 타 보았고, 2층 버스도 처음 타 봤다. 돈 내고 들어가는 공중화장실에도 두 번 갔다. 그런데 오늘 하루 종일 한 독일어는 'Kumpir Origianal und eine kleine Milchkaffee, bitte'와 할로, 당케, 튀스밖에 없네. 힝.

내일은 새미가 온다. 내일의 목표는 '식당에서 독일어로 음식 주문하기'와  'Rossmann이나 DM같은 저렴한 화장품 가게에 가서 스킨(Gesichtwasser)과 크림(Tagescreme) 사기'이다. (<-처음부터 와서 살 생각이었기 떄문에 배낭에도 없었는데, 깜박 하고 사흘동안 조그만 샘플을 아껴 쓰고 있었다.;) 그리고 이번에는 리들에 가서 '물과 식료품을 사고 페트병 보증금에 관해 알아오기'도 해야 하는데 이건 아직 시뮬레이션을 안 해 봐서......

9:00 샤워를 하고 늦은 저녁으로 들어온 첫날 집주인이 주었던 과일 (배와 오렌지)을 까먹었다. 배를 깎고 있는데 - 그런데 서양배도 우리 것처럼 깎아 먹는 게 맞나? 껍질을 먹어 봤더니 너무 맛이 없어서 칼로 깎긴 했는데 칼을 잘못 고른 건지 잘 안 깎인다 - 주인 아주머니가 주방에 들어오신다. 세탁기를 써도 되나요? 하고 묻는데 달프 이히 이어레 바쉬마시네-까지 말했는데 문제 없어요, 하고 답해 버린다. 세탁기에 use라는 뜻의 동사로 benutzen을 쓰면 되는지 확인해 보려고 했는데 기회를 놓쳤다. 아주머니가 다친 손가락을 보여주며 'I have a problem' 이라고 하며 웃었다. 그런데 방에 와서 생각해 보니 오 디어니 쏘리니 할 게 아니라 투트 미어 라이드(Sorry)-라는 왕기초 회화를 할 절호의 기회였잖아! 아우. 어쨌든 오늘 한 독일어에 구테 아페티트(맛있게 드세요)도 추가. 참, 생각해 보니까 에스반에서 슐디궁(실례합니다)도 했다.
아차차, 과일 고맙다고 하는 걸 깜박했다. 첫날 방에 놓인 과일을 보고 장식인 줄 알아서 미처 인사를 못 했었다. 마지막 남은 걸 먹는 참이었으니 타이밍이 좋았는데.

벌써 아홉 시 반이 넘었으니 오늘은 일단 자야겠다. 하지만 내일과 모레에 반드시 C사 원고를 해야 한다. 오기 전에 이 글이 잘 안 풀려서 굉장히 괴로웠는데, 이제 끝낼 수 있을 것 같다. 쓴 만큼 열심히 벌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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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지출

화장실 (WC) 1,20
일회 승차권x2 4,20
점심(감자+커피) 5,00
함부르크 투어 버스 14,00
바디샵(바디로션/립밤) 16,00

2007년 7월 26일 목요일

2007년 7월 26일 목요일

1:55 모기가 귓가에서 앵앵가려 깼다.왼손에 두 방 물렸다. 참고 자려고 했으나 너무 시끄러웠다. 일어나서 불을 켜고 좀 기다렸더니 모기가 나타났는데, 아뿔싸, 천정이 너무 높아서 보이지만 잡을 수가 없다. 게다가 두 마리! 한 마리라도 잡아야 자겠는데 싶어 계속 노려보고 있다가 제풀에 지쳐, 그냥 귀마개를 하고 자기로 했다. 물어도 되지만 잠은 깨우지 마라-가 나의 모기와의 공생법칙이라서, 집에서도 종종 그냥 귀 막고 잤었다.  귀마개를 꺼내고 께림찍한 마음에 좀 앉아 있었는데, 마침내 한 마리가 조금 낮게 내려왔다. 그런데......너무 크다! 이런 모기 두 마리라면 바퀴벌레 반 마리와 같은 급이잖아! 나의 수용한도를 넘는다고! 그래서 모기가 다가올만한 열기와 빛을 내뿜는 노트북을 켰다. 모기가 가끔 다가오긴 하는데 너무 빨리 날다가 사라진다. 그리고 갑자기 귓가에서 앵앵거린다. 내 머리 위에 앉는 거야? 새벽 두 시 사십 분에(그새 한 시간이 지났다) 이게 뭐하는 짓이람. 어휴.

7:10 기상. 새벽에는 결국 세 시 쯤 귀마개 하고 모로 누워 잤다. 햇볕이 들어오니 왠지 늦잠 자는 기분이라 일어났는데, 동네나 집이나 조용하다. 맞은편 건물의 창들도 거의 닫혀 있다. 조금 더 기다렸다가 세수를 하고 아침을 먹어야겠다. 아침은 어제 사온 곡물시리얼과 저지방 우유다. 끓는 물 넣고 5분 있다가 먹으면 된다고 쓰인 수상한 인스턴트 컵스파게티도 사놨는데, 이건 내일이나 모레 도전해야지.

참, 그리고 왜 여기 사람들은 자꾸 나를 '미시즈 정'이라고 부르는 걸까? 나는 여기 오면 내가 나이보다 어려 보일 줄 알았는데 자꾸 유부녀 대접(?)을 받아서 황당하다. 내가 생각한 가설은 다음과 같다: '프라우'와 '프로일라인'이 영어의 '미시즈'와 '미스'에 대응하는 독일어인데, 최근 독일에서는 '프라우'로 통칭하는 경우가 늘고 있다. (영어에서 미스를 잘 쓰지 않는 것과 비슷한 이유에서다) 그런데 영어는 '미즈'라는 새로운 호칭을 만든 반면 독일어에서는 있던 말을 그대로 쓰다 보니 번역상에 혼선이 발생, 독일인이 '미즈'라고 쓰인 걸 보고 '프라우'라고 생각하고 나에게 영어로 말할 떄는 '미시즈'라고 하게 되는 것이다. 이 가설은 나를 본 적 없는 사람들(예: 프랑크푸르트 공항의 분실물 센터 직원)이 나에게 미시즈를 붙이는 것도 설명할 수 있다.

9:20 이제 가방에 민트 초콜릿을 담고 오늘의 모험을 위해 출발! 만약 쾰른으로 바로 간다면 내일 저녁까지 업데이트가 없을 수도 있다. 곡물 시리얼은 정말 맛이 없었다. 용량도 큰데 저걸 어쩐다냐.....

9:50 집에서 가장 가까운 지하철 역으로 가서 시내로 나가는 버스를 탔다. 독일 지하철 역에는 우리와 달리 앞뒤 역명이 쓰여 있지 않는 말을 들어 긴장했는데 (나는 서울에서도 지하철을 반대 방향으로 탈 때가 많다) 과연 그러하긴 했지만 LCD 전광판에 다음 지하철의 최종목적지와 도착에정 시간이 나와서 거꾸로 탈 가능성은 거의 없었다. 1회권을 사고 지하철에 탔다. 독일 지하철은 문에 있는 버튼을 눌러야 문이 열린다. (안에서 내릴 때도 마찬가지) 원래 목적지는 쇼핑의 거리이자 가장 번화가라고들 하는 쿠담가에 가까운 동물원역(Zoologischer Garten)이었으나, 포츠담 광장(Potsdamer Platz)에서 다른 관광객들과 같이 내려 보았다. 지상에 올라 보니 이곳은 오오, 내가 바라던 관광지! 남은 베를린 장벽과 안내판이 세워져 있고, 이른 시간인데도 벌써 관광객들이 모여 사진을 찍고 있었다. [베를린 천사의 시]에 나오던 포츠덤 광장과 비교되묘 묘한 기분이 들었다. 이곳에는 커다란 소니 센터도 있는데, 아이맥스 영화를 상영하는 등 역시 관광 코스라고 한다. 시티 투어 버스와 관광객 무리를 따라 주섬주섬 가다 보니 체크포인트 찰리(Checkpoint Charlie)와 구 게슈타포와 SFF의 본부였던 토포그래피 오브 테러(Topography of Terror)로 가는 길이 나왔다. ToT까지만 가 보고 지하철 역으로 돌아왔다. 아직 기념관 건물을 완성하지 않아 열린 공간에 전시하고 있었다. 베를린 내는 한 달 동안 충분히 돌아볼 수 있으리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이번에는 아까의 선택을 후회하며 아예 하루권 표를 끊었다. 동물원 역에서 내려 보니 역시나 서점이 있었다. 작은 독영-영독 사전과 펼치는 베를린 지도를 샀다. 만화 코너에 우리나라 작가들의 독일 만화도 제법 있었다. [오란고교호스트부]나 [CIEL]의 독일판이 있었으면 샀을 터인데, 내가 그만큼 좋아하는 만화는 없어서 그냥 나왔다. 일본 야오이와 원피스 같은 명랑만화가 나란히 전시되어 있는 점이 흥미로웠다.

Nordsee라는 패스트푸드 체인점에서 연어 샌드위치와 콜라를 사고, 기차 문의 코너에 저먼 레일 패스를 사려면 어디 가야 하느냐고 물어 보았다. 바로 옆의 Reisezentrum으로 가란다. 여기서도 한 번 줄을 잘못 섰다가 제대로 매표소로 가서 한 달간 유효한 저먼 레일 패스를 사서 바로 개시했다. 쾰른과 본으로 갈 생각이라고 했더니 어느 기차를 탈지 정했는지 묻는다. 11시 35분 쯤에 출발하는 편이 있던데요, 하니까 그건 이 역에서 출발하지 않는 건 알고 있는지 묻는다. 사실 나는 이 질문을 받을 때 까지 동물원 역과 중앙역을 착각하고 있었다! 어째 중앙역 분위기가 아니더라! 아뿔싸로소이다. 내가 허걱 하니 여기서 두어 정거장만 가면 된다며 노선도를 한 장 준다. 쾰른에서 본으로 오가는 기차의 정보도 받았다. 매표소 안의 간이의자에 앉아 샌드위치를 얼른 먹은 다음, 도로 집으로 가기로 결정했다. 곧장 국철을 타고 중앙역으로 가면 5시에 쾰른에 도착할 수 있었지만, 오늘 모험은 충분히 한 기분이 들기 시작했고 각종 팸플릿과 물통으로 작은 크로스백이 꽉 차서 그대로는 멀리 가기 어렵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배낭이 없으니 확실히 불편하긴 하다. 참, 모레 올 새미와 함께 타 보면 좋을 것 같아서 베를린 시내 버스 /도보관광 코스 안내도도 가져왔다.

어제는 추웠는데 오늘은 굉장히 덥다. 어제 날씨를 생각하고 긴 분홍색 니트를 가지고 나갔다가 오전 내내 들고 다니기만 했다. 게다가 긴 가을 청바지를 입었으니.....집에 돌아오니 한 시 쯤 되었다. 오는 길에는 사전에서 궁금하던 단어를 찾아 보며 머리 속으로 문장을 만들었다. Es gibt die Stechmuecken in meinem Zimmer. Haben Sie einen Insektspray? (방에 모기가 있어요. 살충제 있나요?) 음, 좋아!  이제 숨 돌리고 시원한 옷으로 갈아입고 중앙역에 가 봐야지. 사실 네 시간이나 걸리는 쾰른 말고 좀 더 가까운 곳에 가고 싶은데, 여행안내책자를 잃어버린 지금 빈손으로도 찾아갈 수 있을 만큼 미리 준비해 놓은 도시가 쾰른과 본밖에 없다.

5:00 아까는 나가려다가 귀찮아서 그만두고 누워서 사전과 베를린 지도를 보다가 잤다. 아무래도 일고여덟시에 쾰른에 도착하는 일정은 무리다 싶었기 떄문이다. 차라리 내일 아침 일찍 철도로 두 시간이 안 걸리는 거리에 있는 몽블랑의 도시, 함부르크에 갈까 생각 중이다. 함부르크는 숙박비가 비싸다는 얘기가 많으니 당일치기로 가볍게 다녀올 만 할 듯.

잠깐 졸고 깨어 보니 네 시가 조금 넘었다. 어제 사 놓은 컵스파게티에 물을 부어 먹어 보았다. 라면도 스파게티도 아닌 미묘한 느낌이지만 일단 며칠만에 따뜻한 음식을 먹었다는 점에서 만족했다. 토마토 소스 등 여러 가지 맛이 있던데 몇 개 더 사서 쟁여 놓아도 될 것 같다. 아까 일일권을 샀는데 결국 동물원 왕복 밖에 안 했다니 아까운 생각이 들어, 이제 알렉산더 광장(Alexander Platz)에 나가 볼 생각이다. 집에서 알렉산더 광장 역까지는 정확히 25분 걸린다. (아까 돌아오는 길에 스톰워치로 재어 보았다.) 지금 나가면 광장 구경하고 TV탑 보고 돌아올 수 있겠다.

7:00 알렉산더 광장에 다녀왔다. TV탑(Fernsehturm)과 Rotes Rathaus, 성 마리엔 교회(St. Marien Kirche)를 보고 사진도 찍었다. 교회는 입장가능했지만 들어가지 않았다. 베를린 돔(Berliner Dom)도 바로 건너편에 보였다. 여기도 관광 온 사람들이 꽤 많아서 여기저기서 사진을 찍고 있었다. 알렉산더 광장에서는 분수대 주위에 편하게 앉아서 쉬는 사람들이 많았다. 지하철 역사에서 나오자마자 정말 특이한 옷차림을 한 사람들이 돗자리를 깔고 음악을 크게 틀고 무어라고 소리치는 모습이 보여서 조금 놀랐다. 형광녹색으로 '그곳'만 가리고 배낭을 멘 아저씨나 형광핑크 웃옷에 체크무늬 치마를 입은 남자를 보고 놀라지 않기란 어렵지. 하하. 그 앞에는 경찰차가 서 있었는데, 나중에 집에 돌아갈 때 보니 경찰차는 가고 없고 그 사람들만 있었다. 자세히 보니 커다란 개도 한 마리 있었다.

알렉산더 광장 역사 내에 있는 아이스크림 집에서 요구르트(Jogurt)와 레몬(Zitrone)맛 콘 아이스크림을 사서 분수대 에 앉아 먹었다. 사람들이 많이 몰려 있기에 가서 도전해 봤는데 맛있어서 흐뭇했다. 바람이 불면 등 뒤로 분수의 물방울이 잘게 튀었다. 여섯 시 이십 분 쯤 일어나 다시 지하철을 탔다.

집에 오는 길에 물을 샀다. 점원이 새로 일을 시작했거나 잠시 맡아주고 있는 사람인지 내가 고른 물을 보고 '이거 85센트 짜리에요?' 하고 묻는다. 바로 알아듣고 '네, 85센트에요' 라고 대답했다. 처음으로 동전도 제대로 내고 (우리나라와 동전/지폐 체계가 다르고 우리와 반대로 소수점으로 ','를 쓰고 천 단위에 '.'를 찍기 때문에 화요일부터 계속 이걸로 헷갈리고 있었다) 나오면서는 타이밍 맞춰서 튀스-하고 인사도 했다. 여전히 왕기초 회화라도 조금씩 나아지고 있다. 아이스크림 살때는 요구르트랑 지트로네 주세요-까지는 독일어로 제대로 했는데 그 다음에 동전 내면서 헷갈려서 결국 다 꺼내서 보여주고 이중에 뭔가요? 하고 영어로 물었거든.

집에 와서 세수를 하고 물을 두 잔 마셨다. 오늘도 적당한 수준의 모험을 해서 흐뭇하다. 이제 내일 계획은 (1) 일찍 일어나 함부르크에 다녀온다 (2) 6시 전에 귀가해 C사 원고를 한다 (3) 가능하다면 버스나 전차(Tram)을 타 본다-
이다.


오늘의 지출
1회 승차권 (Einzelfahrausweise) 2,10
하루권 (Tageskarten) 6,10
물 (Mineralwasser) 1,40
사전과 지도 12,00
점심 2,40 + 1,70? (깜박하고 영수증을 안 받았다)
2등석 학생할인 저먼레일패스(German Rail Pass) 149,00
아이스크림(Eis) 1,20 ?
물(Mineralwasser) 0,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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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6,75

2007년 7월 25일 수요일

2007년 7월 24일 화요일 - 25일 수요일 : 독일 베를린 (Berlin, Germany)

 
(Dorint Hotel Airport Tegel)

밤 아홉 시 삼십 분에도 해가 다 기울지 않아 창밖이 어스름한 이곳은, 베를린이다.

긴 하루였다. 오전 여덟 시 반 쯤 일어나 허겁지겁 씻고, 아침도 들지 못한 채 집을 나섰다. 공항버스까지 아버지가 짐을 들어다 주셨고, 아우님이 공항에서 배웅해 주었다. 열 시 십 분 쯤 공항에 도착해 조금 기다렸다가 체크인부터 한 다음, 김치 볶음밥을 먹고 글로리아 진스에서 카페라떼를 마시며 아우님과 잠깐 이야기를 하다가 탑승 수속을 밟고 인터넷 면세점에서 산 물건들을 찾았다.



출국 절차에 익숙치 않아, 굉장히 일찍부터 준비했는데도 시간이 빠듯해져 나중에는 뛰어야 했다.



(기내식 메뉴)

(점심)

(저녁)

(간식)

인천공항에서 꼬박 열 시 간을 걸려 프랑크푸르트 국제공항(Frankfurt Airport)에 내려 베를린 행으로 환승하기 위해 잠시 기다렸다. 이 곳에서 폴란드로 출장을 간다는 어떤 아저씨와 잠깐 이야기를 했다.

새로운 보안검색규정 때문에 검색대 통과에 시간이 굉장히 많이 걸렸다. 이륙 시각 10분 전에야 검색대에 섰다. 어서 비행기를 타러 가야 한다며 내가 하도 서두르자 직원들이 "langsam, langsam." 하고 웃으면서 가방을 따로 풀지 않고 건네 주었다. 너무 서두르다 보니 자질구레한 물건을 자꾸 떨어뜨렸다. 검색대를 통과하자마자, 이번에도 눈썹을 휘날리며 게이트로 뛰었는데, 지나가던 남자분이 가방을 들어 주면서 "비행기가 기다릴 테니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고 말해 주었다.

베를린 행에 거의 마지막으로 탑승, 제대로 탔다고 안도했으나 이륙하자마자 배낭이 없어졌음을 깨달았다. 보안 검색대를 통과할 떄까지는 분명히 있었으니 그 다음에 떨어뜨리거나 놓쳤을 터이고, 그렇다면 공항 한가운데에서 잃어버린 것보다 찾을 가능성이 훨씬 높았다. 가만히 앉아서 숨을 고르며 배낭에 무엇이 들었나 생각해 보았는데, 값으로 따지면 적지 않은 액수였고 반 년 넘게 매일 써온 다이어리나 만년필처럼 개인적으로 소중한 물건들이 들어 있긴 했지만 여권이나 신용카드처럼 당장 조치를 취해야 할 물건은 없다 싶어서 그냥 앉아서 물을 마시며 다음 경로를 생각했다. 오늘 밤에 묵을 호텔의 주소와 약도가 없어졌지만, 호텔로 가는 길을 정확히 외우고 있었기 때문에 괜찮았다. 몇 달 동안 준비한 보람이 있구나 싶었다. (가방을 놓치고 이런 말을 해 봤자......)

비행기에서 내리며 가방을 보안검색대에 두고 온 것 같다고 했더니 테겔 공항(Tegel Airport)의 분실물 센터에 이야기를 해 보란다. 분실물 센터로 큰 옷가방까지 들고 끙끙대며 걸어갔는데, 이 곳의 직원이 너무 불친절해서 기분이 확 상했다. 배낭 안에 내 전화번호나 주소는 없지만 테겔 공항의 약도와 내가 묵을 호텔의 예약서가 들어 있기 때문에 테겔 공항에 연락처를 남기면 찾기가 쉬우리라고 생각했는데, 내 연락처라도 남기겠다고 해도 "우리는 그런 일 안 한다."고 (틀린) 프랑크푸르트 공항 분실물 센터의 번호를 주고 내보내는 게 아닌가. 그 틀린 번호도 우리로 치자면 '02-123-345"같이, 아예 숫자 개수가 안 맞는 성의 없는 번호였는데, 독일 전화번호 체계에 익숙치 않아 받을 때는 몰랐다. 테겔 공항에 항의해야지.

공항에서 더 헤메고 있어봤자 해결할 방법이 없을 터이니 해가 저물기 전에 호텔에 들어가서 짐을 풀고 쉬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버스를 탔다. 독일 사람들이 영어를 잘 한다는 말을 줄곧 들었기 때문에 의사 소통에 아무 문제가 없을 줄 알았는 데 착각이었다. 영어로 말하면 누군가 알아듣기는 하는데, 시간이 좀 걸린다. 예를 들어, 공항에서 버스를 타고 "Where can I buy the tickets?" 라고 운전기사에게 말했더니 뭔 소린지 모르겠다고 독일어로 말하고, 옆에 있던 다른 승객이 나에게 "here- you can just pay him." 이라고 알려 준 다음 기사에게 내가 사야 할 표의 가격을 가르쳐 주는 식이다. 프랑크푸르트-베를린 국내선에서도 내가 말을 하면 영어를 더 잘 하는 승무원이 옆의 승무원에게 독일어로 다시 옮겨 주어 의사소통을 했 다.즉 '영어로 크게 말하면 누군가는 알아 들어 주지만 그게 꼭 대화의 상대방은 아니다', '어떤 독일인들의 영어 실력은 나의 독일어 실력과 비슷하다' 쯤이랄까. 호텔에 들어와 생각해 보니 내가 바로 "Wo kann ich die Karte kaufen?" 나 "Wieviel kostet es?"라고 물었으면 되었을 텐데 어떻게 그 정도 왕기초 회화를 못 떠올렸나 싶더라.

버스에서 메모지를 꺼내 외우고 있던 호텔 정류장의 이름을 써서 기사에게 보여주고 맞춰 내렸다. 아홉 시가 넘었는데도 우리나라로 치면 여름 저녁 일곱 시 정도로 밝아서 적잖이 안심이 되었다. 일단 호텔(Dorint Hotel Airport Tegel)에 들어와 개운하게 샤워를 하고, 테겔 공항의 직원이 가르쳐 준 분실물 센터에 전화를 했으나 없는 번호라고 나왔다. 영국에 있는 새미에게 전화를 했으나 받지 않아 메세지를 남기고, 일단 푹 자고 내일 아침부터 정신을 차려 움직이기로 마음 먹고 아예 수면유도제를 한 알 삼켰다. 시차 문제로 고생할까봐 준비했는데 조금 다른 목적에 복용하게 되었달까나.
 
조금 후에 새미에게서 전화가 왔다. 내가 배낭을 잃어버렸다고 징징대자 프랑크푸르트 공항의 분실물 센터 전화번호를 지금 찾아 볼 테니 일단은 푹 쉬란다. 친숙한 목소리를 들으니 훨씬 마음이 놓였다. 잠시 후 새미가 알려 주는 분실물 센터 번호를 쪽지에 적어 놓고 잠들었다. 약까지 먹었는데도 피곤하고 힘든 탓인지 설잠을 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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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 다섯 시 반 쯤 일어났다. 창을 열어 보니 벌써 아침이다. 부슬비가 내리고 바람이 꽤 불었다. 어머니에게 전화를 했는데, 밖이시라기에 그냥 배낭을 잃어버렸지만 다른 일은 괜찮다고 하고 끊었다. 샤워를 하고 이른 아침을 먹으러 내려갔다. 별로 상관없을지 모르지만 기합을 넣기 위해 오랜만에 화장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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빵에 햄을 적당히 끼워서 먹고 커피와 오렌지 주스를 마셨다. 긴 하루를 위해 미리 잘 먹어 두자는 생각으로 열심히 빵을 씹고 있는데 집에서 전화가 왔다. 내 이야기에 놀란 어머니가 급히 귀가해서 전화를 하신 것이다. 아이고 죄송해라. 괜찮다고, 지금은 너무 이른 것 같아서 일단 밥 먹고 공항에 전화해 볼 생각이라고 말씀드렸다. 프랑크푸르트면 국내 전화이니 공중전화를 찾아 전화하려고 호텔을 나섰는데, 조금 가다 보니 긴팔 점퍼를 입었는데도 너무 추워서 그 차림으로 역까지 걸어가기 어렵겠다 싶었다. 그래서 그냥 도로 방에 들어와서 공항에 전화를 했다. 내 가방으로 보이는 물건이 분실물 센터에 있으니, 이메일로 잃어버린 가방에 대한 설명과 분실물 번호, 연락처를 알려 주면 절차를 거쳐 베를린으로 가방을 보내 준단다. 훗. 모든 것은 나의 뜻대로.

9:50 이제 슬슬 짐을 챙겨 나가보아야 겠다. 어학원에 등록하고 숙소에 짐을 풀어야지. 해가 일찍 뜨고 늦게 져서 좋다.

10:00 체크아웃하고 택시를 타고 집으로 향했다. 택시 운전사가 주소를 보더니 자기 동네라며 웃는다. 나는 예전부터 어디에 가든지 마이페이스로 살 것만 같다는 생각을 했는데, 와서 보니 실로 그렇다. 첫 해외여행인데 아무런 감흥이 없다. 어제는 차마 쓰지 못했지만, 솔직히 프랑크푸르트 공항에 착륙하면서 창 밖을 내다보고 '김포공항에서 내릴 때 경기도 농경지 보는 기분'이 었다. 이왕 낯선 곳에 왔으니 이질적이거나 새롭게 느껴지는 부분을 찾으려고 노력하고 있는데, 지금까지 찾은 것은 (1)건물들이 서울보다 낮다 (2)서울보다 서늘하다(현재 기온 19도 정도) 두 가지이다. 물론 가장 낯선 것은 독일어이지만, 사람들이 내가 비행기 안에서 열심히 들었던 올 오디오 저먼 랭귀지 오디오북처럼 발음해 주지 않는다고 해서 불평할 순 없잖아.

10:55 집에 도착했다. 집 주인은 마흔 정도 되어보이는 독일인 아주머니인데, 역시 영어를 거의 하지 못한다. 학생인 듯한 아들이 영어를 좀 해서 반쯤 통역 역할을 하고 있다 - 나에게 말을 하다 말고 갑자기 방에 뛰어가서 독영 자동변환 사이트에 두드려 보고 다시 나오기도 한다. (귀엽다) 같이 살면서 의사소통이 안 되면 여러 모로 불편하니 독일어를 정말 열심히 공부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12:40 집에 무선인터넷이 있어서 인터넷에는 꾸준히 접속할 수 있을 것 같다. 속도가 느리고 연결이 상당히 불안하지만 인터넷 할 곳을 찾아 돌아다니지 않아도 되는 것만도 크게 다행이다. 서울에 계신 C모사나 W모사의 편집자님들도 기뻐하실 만한 소식이로세.--; 배낭을 잃어버리지 않았다면 본래 내일과 모레 1박 2일 일정으로 쾰른(Cologne)과 본(Bonn)에 다녀올 생각이었는데, 지금은 귀찮아지고 있다. 배낭에 내가 몇 달 동안 정리한 필승 독일어 단어장과 올 오디오 저먼 랭귀지 오디오북 전권을 수록한 아이포드가 들어 있었던 것도 의욕을 꺾는 요인이다.

사실 지금 가장 절박한 것은 물이다. 어제 저녁에 비행기에서 내린 이후로 오늘까지 '물'을 한 모금 도 못 마셨다. 별로 상관없는 얘기지만 덧붙이자면 여기서는 'warrrrer" 라고 말하면 잘 못 알아 듣고, "wattter" 라고 하거 나 아니면 아예 "wasser"라고 말해야 정확히 알아 듣는다.

1:00 인터넷 연결도 확인했고 짐도 대충 다 풀었으니 이제 슬슬 먹을거리를 사고 어학원에 등록하러 모험을 떠나야지. 집주인에게 가장 가까운 슈퍼마켓이 어딘지 물어보고 싶은데, 보 이스트 암 클로지스템 주퍼마르크트? 맞나? 영어가 섞여 있는 듯 한 기분인데.....

씩씩하게 집을 나섰다. 지도와 위성사진을 하도 오래 들여다보아서 마치 이미 살고 있던 동네 같은 기분이었다. 어학원에 잠깐 가 본 다음 (평범한 학원이었다.) 시간을 재면서 집으로 돌아왔다. 열심히 걸어서 십오 분이 안 걸린다. 집으로 오는 길에 마침내 물과 시리얼을 샀다. 작은 슈퍼였는데 우유가 없었다. 우유를 어디에서 사느냐고 물어 보니까 설명을 해 주는데 잘 모르겠다. 카운터의 청년은 터키계인 듯, 아시아에서 왔다고 했더니 터키의 이스탄불을 아느냐고 얘기를 한다. 대충 안다고, 예쁘다고들 하더라고 했다.

2:30 두 시 반 쯤 집에 들어와 마침내 물부터 두 잔 마시고 인터넷을 했다. MSN이 되니까 여기에서도 채팅이다. 하하. 여전히 쾰른에 갈까 말까 고민하면서 MSN으로 함께 독일문화원에 다녔던 미엽과 수다를 떨다가, 네 시 사십 분 쯤 저녁을 먹어야겠다 싶어서 길을 나섰다. 참, 프랑크푸르트 공항에서 가방을 국내 주소라면 착불로 부쳐주겠다는 메일이 왔다. 그러마고 하고 이왕 쓰는 김에 집주인에게 "잃어버렸던 가방이 착불로 올 거고 이건 그 우편료입니다."라고 말하려면 독일어로 뭐라고 해야 하는지도 물어봤다. 모르면 물어야지 어쩌겠어.

4:40 주인집에서 준 지도를 보니 큰 슈퍼마켓 등은 오른쪽 대로에 있더라. 아까는 왼쪽으로 갔던 터라 이번에는 오른쪽으로 형했다. 꽤 걸어서야 슈퍼마켓이 나왔는데. 가는 길에 일본만화와 판타지 도서 등을 파는 서점이 있었다. 스타워즈 카드 등을 전시해 놓았더라. 햇볕이 쨍쨍해서인지, 이제 상식게이지가 회복되어서인지 대체 그 흔한 일본도 안 가 보았던 내가 무슨 배짱으로 이런 독일어 실력을 갖고 혼자서 아는 사람도 없는 베를린에 5주나 있을 생각을 하고 준비한 걸까 하는 생각이 들면서 덜컥 겁이 나기 시작했다. 한국에서 독일어 학원 다닐 때야 잘 했지만, 실제로 독일인들의 말하는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겠다.

점점 겁을 내면서 독일의 슈퍼 체인인 카이저에 갔다. 여러 체인 중에서 중상급에 속하는 곳이다. 상대적으로 리들, 알디 같은 저렴한 곳도 있는데, 이런 체인들이 흩어져 있지 않고 멀지 않은 곳에 몰려 있었다. 각 체인이 대상으로 하는 경제적 계층이 너무 명확히 보여서 이상한 기분이었다. 카이저에 들어가니 오오오오, 린트! 린트! 린트! 맞아, 내가 이래서 독일에 왔지(아니다)라는 생각이 들면서 부쩍 힘이 났다. 어서 집에 가서 저녁을 먹어야겠다 싶었고. 잡곡빵, 햄, 허브마늘버터, 우유, 인스턴트 스파게티(호기심에), 린트 민트초컬릿, 린트 고추초컬릿을 사서 계산했다. 그런데 할아버지 계산원이 네팔 사람한테는 여기 물건이 비싼 거 아니냐고 그런다. 내가 바로 대답을 못 하자 내 뒤에 있던 청년과 네팔 사람들은 독일말을 잘 못 한다는 둥 하고 떠든다. 특별히 악의가 있지는 않은 분위기였지만 기분 좋게 들으넘길 얘기도 못 된다. 그런데 한 마디도 못 하고 나왔다. 바로바로 번역이 안 되니까 타이밍을 놓친다. 계산하고 나오면서 어? 뭐야?라는 기분이 되었으니 이미 늦었지. 차라리 영어로 또박또박 나는 네팔에서 오지 않았고 나한테는 비싸지 않으니까 신경 끄라고 말했어도 되었을 텐데 - 게다가 나는 독일어로도 저 정도 문장은 말할 수 있다! - 도대체 왜 못 했는지 모르겠다.

아까 왼쪽 골목을 다녀오면서 나는 내 독일어의 문제가 '독일어로 질문은 할 수 있는데 대답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오른쪽 골목을 갔다 오니 '이해를 해도 말을 하지 못하는 것'이 더 쿤 문제라는 생각이 들었다. 슈퍼에서 막 돌아왔을 때는 나 자신에게 화가 좀 났는데, 저녁을 먹고 이 글을 쓰면서 생각해 보니 이것은 왼쪽 골목과 오른쪽 골목 사이에 독일어가 조금 늘었다는 뜻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역시 사람은 일단 잘 먹어야 한다.

호밀빵, 햄, 버터로 간단샌드위치를 만들어 저지방 우유 두 잔과 함께 먹었다. 오늘은 충분히 걷고 동네 분위기도 제법 보았다. 가는 길에는 못 보았던 가게를 오는 길에는 발견하기도 해서 재미있었다. 그런데 티벳-네팔-타이 음식점까지늰 알겠는데 네팔-스시 음식점은 대체 뭐지?;
 
그냥 관광지에 가서 관광객처럼 돌아다니며 영어 쓰고 싶다. 백 편이 넘는 스타트렉, 수백 권의 과학소설 십여 년 간의 체계적인 공교육과 지속적인 원어민 수업을 거쳐 영어를 이만큼 하게 되었는데, 띄엄띄엄 독일어 학원을 몇 달 다녔을 뿐, 독일어로 쓰인 판타지 소설 한 권 제대로 읽어 보지 않았으면서 독일인의 말을 척척 알아듣고 독일어로 능통하게 말하고 싶다는 것 자체가 대단히 무리한 욕심이다. 따라서 나의 내일 계획은
(1)관광객이 많은 시내로 간다. (2) 큰 서점에 가서 독-영 phrase book을 사고, 가능하다면 독영 전자사전을 산다. (3) 내키면 쾰른에 간다. (4) 내키지 않으면 집으로 돌아와 phrase book을 맹렬히 외운다-
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