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8월 16일 목요일

2007년 8월 15일 수요일

오늘 학원 수업에는 다섯 명 밖에 오지 않았다. 30분 약간 지나서 교실에 들어갔는데 바바라, 소냐, 마리나밖에 없어서 깜짝 놀랐다. 늘 앉던 곳에 자리를 잡고 나니 나란히 앉은 이 세 명과 내가 마주보는 형태가 되었다. 수업을 시작하고 잠시 후 세실리아가 와서 총 다섯 명. 이것이 바로 새미가 말하던 '어학원 학생들이 서서히 줄어가는 모습'이로구나. 하긴 나도 어제 결석했지.

선생님이 함부르크 여행은 어땠느냐고 하셔서 쿤스트할레(시립미술관)에 가서 그림을 많이 보았다고 했더니, 어느 화가의 그림을 보았냐고 물으신다. 그런데 그림을 수백 점이나 봤으면서 순간적으로 램브란트 한 명 밖에 생각이 안 나더라. 그래서 "램브란트......(4초간 고민하다가 눈을 크게 뜨고) Ich habe shone vergessen!(그세 까먹었어요!)" 라고 하고 같이 웃었다. 세실리아를 벤치마킹 해서 다이내믹하게 표현하려고 애쓰니 대화가 즐거워진다. 참, 세실리아는 스페인 전국 대회에서 프리스타일 힙합 부문 2등상을 받았던 춤꾼이었다. 듣는 순간 역시-싶었다.

수업에는 장소전치사 활용과 복합문장 만들기를 했는데, 좋아하는 작가와 책에 관한 화제가 나왔다. 데미안을 일곱 번 읽었다고 했더니(사실 엄청 많이 읽었는데 수십 번은 너무한 것 같아서 좀 줄였다) 선생님이 왜 그렇게 많이 읽었냐신다. 그래서 헤르만 헤세를 좋아하기 때문이라고 말하려다가, 순간적으로 "Weil ich Hermann Hesse liebe."(헤르만 헤세를 사랑해서요)"라고 해 버렸다. 말이 떨어진 순간 어감의 차이를 깨닫고 "그게 아니라 책, 그 사람 책 말이에요!" 라고 말했지만 이미 폭탄은 투하된 뒤. 다같이 책상을 두드리며 엄청 웃었다. 소냐는 쥐스킨트를 좋아한다고 하더라.

파트너 인터뷰 시간에 '-을 그만두고 싶다'는 표현을 사용하기 위한 질문이 나왔는데, 그만두고 싶은 습관이나 활동이 없었다. 그래서 "Ich moechte nie aufhoeren."이라고 했더니 옆에 있던 선생님이 물었다. "그만두고 싶은 게 하나도 없어? 흡연은? (Ich rauche nicht 안 피움), 술? (Ich trinke nicht 안 마심) 잠 많이 잠?(Aber das ist gut 그건 좋은 거잖아요;).......소연, 너 지나치게 긍정적이잖니!" 그런데 정말 아무리 생각해도 내가 이미 하고 있는 활동 중에 그만두고 싶은 것이 하나도 떠오르지 않아 당황스러울 정도였다. 내가 하는 건 다 계속해도 좋을 일처럼 느껴졌다. --; 결국 '-을 시작하고 싶다'로 바꿔서 인터뷰를 계속했다. 그만두고 싶은 것이 있나 종일 고민해 보았는데, 내가 말을 너무 많이 하지 않았으면 싶기는 하다. 아, 그리고 돈도 너무 많이 쓰지 않았으면 좋겠다.

오늘 오후에는 학원에서 독일 국회의사당(Deutche Bunderstag) 견학을 갔다. 4시 30분까지 여권이나 신분증(EU국가들끼리는 ID카드만으로 신분증명이 된다)을 가지고 꼭 시간 맞춰 오라기에 4시 10분 쯤 갔더니 아무도 없다. 의사당 앞 커다란 계단 앞을 왔다갔다 하며(더웠다!) 어학원 사람들을 찾아 봤지만 20분이 넘어도 보이지 않아서 정문 예약관객 문으로 가서 스피커에 대고 어학원에서 같이 오기로 했는데 일행을 못 찾겠다고 난잡한; 독일어로 말했더니 문을 열고 들여보내 준다. 오늘 단체 견학을 예약한 국제학생단체가 있다고 하기에 보니 우리 학원이 맞다. 그런데 다섯 시 시작이란다. 애당초 학생들이 늦을 걸 생각해서 4시 30분이라고 써 놓았는데, 나는 꼭 시간 지키라는 말을 곧이곧대로 듣고 20분 일찍 갔으니 40분이나 먼저 도착한 셈이다. 어쨌든 이 팀이 맞다고 했더니 다른 직원 분이 나를 북문으로 데려다 주고, 우리 견학은 이쪽 문에서 시작하기로 되어 있으니 다른 사람들이 오면 얘기해 주겠단다. 정문에서 만난다고 쓰여 있었는데 이상하네, 생각하면서 보안검색대 뒤 계단에 앉아 기다렸다. 심심해서 어제 빵집에서 받았던 젤리 한 봉지를 다 먹었다.

4시 50분이 되도록 우리 일행이 나타나지 않자, 젤리를 먹는 내 옆을 왔다갔다 하던 견학 안내를 맡은 할아버지 박사님이 다가와 일행이 어디 있는지 아느냐고 묻는다. 그래서 밖에서 제가 안 왔다고 생각하고 기다리고 있을지도 몰라요, 했더니 나가서 같이 찾아보잔다. 그래서 나가 봤더니 저 멀리에서 바바라 선생님(학생 바바라와 구분)과 낯익은 얼굴들이 나타난다. 역시 정문 앞 집합이었다. 너무 빨리 와서 못 찾았어요-힝힝 하고 같이 들어갔다. 다행히(?) 나 외에도 나타나지 않은 학생이 서너 명 더 있었다고 한다.

지난 주말부터 찾았으나 쉬는 시간마다 어디로 가는지 좀체 보이지 않던 알렉스와 첸이 일행에 있어서 반가웠다. 예전에 알렉스가 이번 주까지만 수업을 듣고 마지막 주에는 독일 여행을 간다고 했었기 때문에, 혹시 금요일까지 못 만나지 않을까 걱정했었다. 내 연락처를 주고 대만과 한국은 가까우니 서울에 놀러오면 꼭 연락하라고 했다.

독일 국회의사당 건물에서는 유리 돔이 제일 유명한데, 하필 이번 주에는 공사중이라서 돔까지 보지는 못했다. 하지만 18일에 공사가 끝난다니 다음 주에 다시 가 보면 되겠지. 독일 국회의사당은 전세계에서 가장 많은사람들이 방문하는 국회로, 1994년에 통독 의회를 위해 지금 형태로 완공된 건물이다. 내벽에 낙서가 있어서 '여기 사람들은 국회에도 낙서를 하나봐;'하고 생각했는데, 알고 보니 2차 세계대전 말기에 국회건물을 점령했던 소련 군인들이 써 놓은 욕이나 자기 이름, 정치선전 문구들을 건물을 새로 지으면서 없애지 않고 그대로 남겨 두었단다. 역사를 반영하는 국회라는 테마를 반영해서, 벽 곳곳에는 그 공간이 오십 년 전, 이십 년 전 즈음에 어떤 형태였는지를 보여주는 사진도 같이 걸려 있었다. 히틀러, 소련, 동서독 분단으로 이어지는 정치사의 굴곡을 그렇게 남겨 놓고, 견학 온 학생들에게 "저게 독일에 대한 무척 나쁜 욕이다"고 설명하는 것이 흥미로웠다. The Story of Berlin에 갔을 때도 느꼈던 바지만, 과거에 새롭게 가치를 부여하고 그 시간을 재구성해서 의미있는 문화유산으로 만들어내는 과정과 방식에 감탄하게 된다.

국회 안에는 종교 의식을 위한 방도 있었다. 개신교나 천주교는 물론이고, 이슬람교나 힌두교처럼 다양한 종교 의식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이 자유롭게 활용할 수 있도록 여러가지를 갖추어 놓았다. 벽면에는 지상-천상-끝을 의미하는 연작이 걸려 있었다. 못을 이용하는 개성있는 작풍으로 독일에서는 무척 유명한 화가라 한다.

국회와 티어가르텐, 슈프레 강 주위를 1500:1으로 축소해 만든 모형을 보았는데, 주요 지점에 점자 표시가 되어 있었다. 안내 박사님이 베를린 장벽이 있었던 부분을 가리키고, 장벽을 넘는 과정에서 어느 지점에서 몇 명이 사망했는지도 이야기했다. 그 옆에는 국회의사당 본 건물의 100:1 모형도 있었다. 시각장애인들이 직접 만져 보고 국회의 구조를 이해할 수 있게 하기 위해 마련된 것이라 한다. 실제로 시각장애인이 만져 보면 옥상은 옥상 느낌이 나고 벽면은 벽면이 이런 느낌이구나, 하고 알 수 있도록 만들어졌다는데, 나는 만져 봐도 잘 모르겠더라. 또 체스의 폰과 같이 생긴 작은 말이 있어서, 우리가 현재 어디에 있고 어디로 가는지 등을 그 모형 위에 놓아 보며 설명할 수도 있었다.

그 다음에는 일반적인 국회의원 회의실에 갔다. 크기만 다르고 내부는 똑같이 생긴 회의실이 여럿 있다는데, 우리가 간 곳은 FDP의 회의실 같았다. 천정에 작은 유리판 같은 것을 설치해서 해가 움직이는 방향을 따라 빛을 반사, 실내를 밝게 유지하면서도 열기를 차단해 인공 냉방을 최소한으로 줄일 수 있게 구성된 환경친화적인 공간이었다. 현재 독일의 국회의원은 총 630명이고 국회에 근무하는 직원은 총 오천 여 명이다. 투표시에는 거수나 전자 투표가 일반적이지만, 특이하게도 본의회실에 '기권','찬성','반대'라는 세 개의 유리문이 있었다. 의원들이 모두 본회의실 밖으로 나갔다가 세 문 중에 하나를 골라서 도로 들어오면, 국회 직원이 각 문 앞에서 그 문으로 들어오는 사람 수를 세는 방식으로 투표할 때 쓰인단다. 양 머리수 세듯이 사람을 세기 때문에 영어로 거칠게 옮기자면 'Hammel vote'라고 불린다. 박사님이 최첨단 투표법이라고 농담을 했다.

본회의실의 위에는 유리 돔과 전망대 같은 공간이 있어서, 기자들은 그 위에서 국회를 내려다보며 사진을 찍고 취재를 할 수 있었다. 위에서 의원들의 책상이 다 보이기 때문에, 중요한 투표나 회의를 할 때는 그 유리창 위로 차단막이 내려오고, 그러면 사진 촬영을 해서는 안 된단다. 독일 국회의 구성 방식에 대한 설명도 들었는데, 정치학에서 자세히 공부했던 내용이다 보니 독일어는 숫자밖에 안 들려도 무슨 뜻인지 알 수 있어서 재미있었다.

본회의실 안에 들어가 단체 사진을 찍었다. 안내 박사님이 카메라를 모두 받아서 죽 찍어 주셨다. 그리고 돔은 닫혔지만 의사당 옥상으로 올라가 베를린 시내를 둘러보았다. 돔이 열리면 참 예쁘겠더라. 옥상에는 관광객을 위한 카페가 있었다.

내려와 보니 출구에 아까 나의 엉망 독일어를 대충 알아듣고 영어에 능통한 직원에게로 데려다 주었던 무전기 할아버지가 아직 있어서 눈을 맞춰 인사를 했다. 할아버지가 손을 흔들어 주었다.

오늘의 지출
아점 3,30
생필품 1,69
공중전화 19,50
저녁 2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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