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8월 24일 금요일

2007년 8월 23일 목요일

오늘은 수업을 마치고 마리나, 바바라와 함께 학원 맞은편에 있는 팔라펠 가게에서 같이 점심을 먹었다. 수업 시간에 '국제적인 도시여야 하는' 베를린 사람들이 갖는 폐쇄성에 관한 이야기가 나왔기 때문에, 점심을 먹으며 같이 그 이야기를 좀 더 했다. 확실히 이곳에는 '유색인종'이 굉장히 드물고, 출신지역이나 문화가 다른 사람들이 섞여 살아가고 있는데도 원주민들이 이를 잘 받아들이지 못한다는 -거부한다기보다는 어색하고 낯설어 한다- 느낌이 있다. 아이러니컬하게도 그런 일종의 보수성이 런던과 같은 역동적인 대도시와 다른, 베를린 특유의 '살기 좋은 느긋한 도시'의 분위기를 만들어 낸다고 생각한다.

바를 경영하는 독일인 친구와 살고 있는 마리나가 어제 파티에 간 얘기를 했다. 마리나는 춤을 좋아해서 크나이페나 디스코에 즐겨 가는데, 그럴 때면 아무도 마리나에게 말을 걸지 않는다고 한다. 마리나는 독일어도 썩 잘 하고 영어에 능숙하며(오스트레일리아에서 어학연수를 하며 배웠다는데, 정말 영어로 깊은 이야기까지 하는 데 아무 문제가 없다) 이탈리아어도 이탈리아인인 척 할 수 있을 만큼 한다. 그런데 아무도 말을 걸려는 시도도 하지 않고, 좀 술에 취하고 나면 '남자들만' 말을 건다며 분통을 터뜨렸다. 어쨌든 어제 파티에서는 마리나를 제외하고는 모두 독일인이었는데, 한 시간 정도 아무하고도 얘기를 못 하다가, 좀 나이 든 독일인 부인 한 명이 다가와 어디에서 왔느냐고 묻더란다. 저쪽에 있는 자기 친구는 마리나가 ***(까먹음)에서 왔으리라고 했는데 자기는 남미에서 온 사람 같다고 생각했다며 정답을 가르쳐 달라고. -_- 그래서 바르셀로나에서 왔다고 했더니 알겠다고 하고 돌아가더란다. 대단히 불쾌했으리라.

마리나가 이곳 사람들은 가슴 아래의 몸을 움직일 줄 모른다고 했다. 배와 허리로 자연스럽게 리듬을 타는 라틴계와 달리, 이곳 사람들의 움직임을 자세히 관찰해 보면 하반신이 굳어 있는데, 이것은 자연스럽지 못하기 때문에 좋지 않다고 생각한단다. (바바라도 동의) 마리나는 본인이 모델 일을 해서 사람 몸이 움직이는 방식이나 사람들이 취하는 자세 같은 쪽에 관심이 많다. 한 번도 문화적인 차이를 그런 시각에서 생각해 본 적이 없어서 무척 흥미로웠다.

나중에는 영화며 예술 쪽으로 화제가 흘러갔다. 마리나가 조지 클루니와 찍은 사진도 보았다. 조지 클루니가 바르셀로나에서 영화 출연 할 때 조연으로 같이 촬영했었다는데, 조지 클루니는 실제로 키가 별로 크지 않아서 깔창을 쓴다고 한다. 바바라는 로빈 윌리엄스를 인터뷰 한 적이 있는데, 화면에서는 작고 통통해 보이지만 실제로 보면 키가 180cm가 넘는 유쾌하고 존재감이 뚜렷한 사람이란다. 조니 뎁의 훈훈함에 셋 다 동의했다.

즐겁게 식사를 하고 나서 Kulturebraurei 호프 안에 있는 카페에 촬영을 하러 들어갔다. 바바라는 '내 인생의 마법'이라는 소재로 다양한 사람들의 짧은 인터뷰를 모으고 있다. 아직 어떤 형태의 영상으로 만들지는 결정하지 않았다지만, 좋은 소재이니 흥미로운 작품이 나올 것 같다. 세 시에 일어나야 하는 마리나가 먼저 자기 이야기를 영어로 나에게 해 주고, 카메라를 보고 스페인어로 다시 했다. 나도 마리나와 바바라에게 내가 생각해 온 이야기를 영어로 들려 준 다음 한국어로 다시 말했다. 마리나가, 지금까지 만난 사람들 중에서 내가 가장 표현력이 풍부한 사람이라고 해서 기뻤다. 바바라가 동의하며, 나는 하고 싶은 말을 굉장히 선명하게 표현하는데 그게 내가 단어를 선택하는 방식과 관련이 있는 것 같다고 거든다. 후...역시.....-_-v

마리나는 먼저 일어서고, 나와 바바라는 함께 우리 집까지 걸어가며 이야기를 했다. 바바라가 내일 이탈리아로 돌아가기 때문에 집에 둔 명함을 오늘 주기로 했다.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이나 관심사가 비슷해서 바바라와 대화하면 굉장히 즐겁다. 하필이면 내가 출국하는 목요일에 베를린으로 돌아온단다. 바바라도 많이 아쉬웠는지 몇 시 비행기냐고, 혹시 쇠네펠트 공항이면 입/출국하는 길에 만날 수 있지는 않겠느냐고 물어 보았는데, 안타깝게도 나는 테겔 공항으로 나간다. 헤어지면서 포옹을 하고 뺨을 부볐다. 내가 웃으며 한국에서는 이렇게 부비면서 인사하지 않는다고 했더니, 바바라가 알아서 다행이라며, 나한테 키스하려고 했단다. 순간 말 하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뻣뻣한 사람이라, 아무래도 입맞춤까지는 부담스럽다.;;

바바라와 헤어지고 기세를 몰아 동네에 있는 영어 헌책방에 갔다. 혹시나 엘러리 퀸이 있을까 했는데 없더라. 버트런드 러셀의 책을 한 권 샀다. 

그리고 집에 갔다. 오늘은 학원 종강 파티가 있는 날이다. 파티 시간이 8시인 줄 알고 앉아서 초콜릿을 먹고 있다가, 학원 안내문을 다시 보니 8시가 아니라 18시다. 한 숨 자고 나가려고 했는데 이런, 하고 허겁지겁 바베큐 파티를 하는 공원까지 가는 길을 vbb-fahrinfo에 검색해 보고 나섰다.

중략하고 근처에서 학원 선생님에게 전화-슈퍼에서 장보느라 바빴던 선생님이 내 말을 잘못 알아듣고 학원에 가보라고 함-학원에 갔더니 그게 아니었음-다시 트램을 타고(총 5번 탐) 파티장소로 감-허겁지겁 부르스트와 빵을 먹음-스페인어로 쉴새없이 얘기하는 학생들 틈에 끼여 있다가 재미가 없어서(특히 그 자리에 없는 학생들의 이름이 대화중에 섞여 나오자 무척 불편) 독일어를 하는 쪽으로 옮겨감-고등학교 철학선생님인 이탈리아 아저씨와 고전음악 얘기를 하다 보니 재미있어짐



파티에서도 재미있는 일이 많았는데 요약만 해놓고 나중에 써야겠다. 10시에 집에 와서 샤워를 하고 잤다. 독일어와 영어로 즐거운 대화를 많이 하고 부르스트와 파스타, 빵을 많이 먹어 좋았지만 무척 피곤했다. 아무리 늦어도 12시 전에는 자는데, 어제 밤에 아사로에게 낚여서 새벽 2시까지 [The Final Key]를 읽은 탓이 크다. 너무나 뻔한 결론을 알고 있으면서도, 어서 마지막 페이지가 나오길 바라며 꾸역꾸역 읽느라 잠을 제때 못 자다니......orz 오늘 낮부터는 Liz Williams의 [Nine Layers of Sky]를 읽고 있는데, 서평을 읽었을 때 생각했던 것과 상당히 다른 내용이었다. 하지만 무척 재미있고, 물론 아사로보다 글맛도 훨씬 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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