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8월 3일 금요일

2007년 8월 1일 수요일

7:40 기상. 어제의 신용카드는 보상 처리가 가능하다는 결론이 나왔다. 악당씨는 간도 크지, 그 큰 돈을 모두 내가 지갑을 도난당한 가게인 H&M에서 썼더라. 보통 뭘 훔치면 일단 거기서 나오지 않나?; 이번 일로 서울에 있는 가족들이 신경 쓰느라 고생했다. 아버지가 은행까지 다녀 오셨다고 한다. 심신 양면으로 민폐를 끼치지 않을 때도 생각하는 점이지만, 역시 가족이 있어서 큰 힘이 된다. 어머니에게 새미가 서울에 오면 우리 집에서 재우면서 고기라도 구워 줘야겠다고 하자, "네가 구워주고 네가 재워줘라 흥" 하신다.

일찍 일어났는데 어쩌다 보니 아침을 못 먹었다. 학원 쉬는 시간에 학원 앞 빵집에 가서 우유커피와 빵을 사먹었다. 같은 반의 알데모나도 커피를 사러 와 있다. 지갑 잃어버린 게 어떻게 됐느냐기에 가져간 사람이 650유로나 썼더라고 했더니 깜짝 놀란다. 자기도 마드리드에서 지갑을 잃어 버린 적이 있었는데, 천만 다행히 모두 무사히 돌려 받았었단다. 알데모나는 마드리드 출신으로, 나와 수업 시간 파트너이다.

점심으로는 새로운 5분 인스턴트 스파게티에 도전해 보았다. 토마토소스였는데, 짰다. 오늘 오후에는 학원에서 신청자끼리 베를린 관광선을 타기로 했다. 베를린에는 슈프레 강(Spree Fluss)이 흐른다. 스물 네 명이 신청을 했다. 집합 시각이 오후 3시인데 집합 장소 찾기가 어려워서 조금 헤메다가 맞는 버스를 타고 나니 벌써 세 시다. 베를린의 필수 관광 코스를 돈다는 2층 버스인 100번을 탔더니 역에서마다 사람들이 너무 많이 타고 내려서 시간이 걸렸다. 혼잡한 버스 앞쪽에 서 있다가 뒤로 가 보니 어학원 학생들이 무더기로 있다. 다들 지각생이다. 세 시 십 분 쯤 버스정류장에 내려 선생님들과 함께 선착장으로 뛰어 세 시 반 배를 탔다.

이런 전면적인 관광선(?)은 처음 타 보았다. 마산에서 돝섬 가는 배나 제주도 배, 군함, 금강산여객선; 같은 배만  탔지 한강 유람선도 타 본 적 없기 때문이다. 사실 1) 독일어 설명을 알아들을 수 없고 2) 다들 스페인어로 얘기했고 3) 배가 느려서 처음에는 지루했다.

그런데 근처에 앉아 있던 마리나와 알모데나, 그리고 이름 까먹은 전 런더너(스페인 사람이지만 베를린에 오기 전에는 런던에서 4년간 살았다고 한다) 아가씨가 영어로 말을 걸어 줘서 나중에는 영어와 서툰 독일어로 이야기하며 즐겁게 배를 탔다. 함께 사진도 찍었다. 유럽권이라고 해도 다 영어나 이탈리아어, 프랑스어를 잘 하지는 않고, 어학 실력과 출신 지역 사이에 뭔가 상관 관계가 있다는 것 같았다. 원래 다른 스페인 여학생도 같이 있었는데 우리가 영어로 대화를 시작하니까 다른 자리로 가 버렸다.;

마리나는 스페인에서 어린이 영어 선생님이었고 알모데나는 학생인데 영어와 이탈리아어를 잘 한다. 마리나가 수업 시간에도 다들 스페인어로 얘기하면 무슨 얘기 하고 있었는지 영어로 나에게 다시 말해 주며 신경을 써 줬는데, 나중에 집에 가는 버스에서 들어보니 예전에 다니던 독일어학원에서는 마리나만 스페인 출신이고 다들 베트남/일본/한국인이라서 무척 곤란했다고 한다. 그래서 그랬구나, 싶더라.

며칠 동안 무척 날씨가 나빴는데 오늘은 웬일로 약간 덥게 느껴질 정도로 맑고 시원했다. 슈프레 강은 넓지 않았고 주위로도 계속 다른 유람선들이 다녀 번잡한 관광지 느낌이 났지만, 그래도 걸어 다닐 때와 다른 시점에서 여러 건물들을 보고 티어가르텐을 지날 수 있어서 즐거웠다. 나와 마리나, 런더너(...;) 셋은 지하철 팀에서 갈라져 나와 산책을 좀 하다가 버스를 타고 알렉산더 광장으로 갔다. 내가 수업시간에 주말에 런던에 BBC PROM을 보러 간다고 했었기 때문에 음악 얘기가 나왔는데, 마리나가 [디스 이즈 리듬]이라는 다큐멘터리를 추천해 주었다. 베를린필의 역사를 다룬 영어 다큐멘터리라고 한다.

이동 거리는 길었지만 오랜만에 햇빛을 쐬고 사람들과 얘기도 해서인지 기분이 좋았다. 여세를 몰아 슈퍼마켓에 가기로 했다. 이번에는 윈스트 가에 있는 카이저에 갔다. 우리 집에서 가장 가까운 슈퍼마켓이더라.

큰 슈퍼마켓에 가니 물이 동네 슈퍼에서보다 싸서 두 병을 사고, 따뜻한 요리를 해 먹으려고 달걀과 베이컨, 당근을 샀다. 베이컨 굽고 당근 볶고 계란 얹으면 대충 마음만은 뉴요커? 푸힛. 날씨가 추우니 밤에 꿀물을 타 마시고 자려고 꿀도 장만했다. 그리고 집에 있는 맛없는 건강 시리얼(새미한테 이 시리얼 얘길 했더니 상표를 바로 알더라. 원래 아무 맛이 안 나는 건강 시리얼이란다)을 처분하기 위해 우유와 아주 달아 보이는 켈로그 초코시리얼도 한 통 샀다.

집에 오는 길에 장바구니가 무거워서 힘들었지만 며칠 치 식량과 물이 있으니 안심이 된다. 저녁으로는 새로 산 햄을 빵에 끼우고 꿀요거트버터를 발라 먹었다. 그리고 나중에 또 배가 고파서 초코시리얼, 블루베리(아, 이것도 오늘 샀다), 건강시리얼을 우유에 타 먹었다. 승민오빠가 이런 걸 '시리얼로 요리하기'라고 했던 기억이 나서 낄낄 웃었다. 

밤에는 숙제를 하고 잤다.

오늘의 지출
아침식사 2,80
배삯 6,40
슈퍼마켓 15,78

댓글 2개:

  1. 신용카드 건은 정말 다행이네요. 배낭에 지갑에 신용카드까지, 처음 나가서 몇 년치 '해외 난감' 경험은 다 하시는 듯 ^^;

    답글삭제
  2. 가족의 단합된 힘을 확인하신겁니까 ;)

    안해도 좋을 경험이지만 액땜인가, 다행이네요.

    답글삭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