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8월 7일 화요일

2007년 8월 6일 월요일

8월 3,4,5,6일 일기는 역순으로 올라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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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0 경에 눈을 떴다. 너무 이른 시각이라 다른 사람들이 움직일 때까지 기다리느라 이십 여 분 뒤척이다가, 오른쪽 침대에 자리 잡은 일본인 관광객들이 세면대를 쓰기 시작하기에 나도 일어났다. 바깥 샤워실에서 샤워를 하고(침실 세면대를 쓰기에는 조금 이른 것 같았다.) 문제의 분홍색 수건을 쓰레기통에 버린 후 짐을 싸서 체크아웃하니 7시다. 아침식사를 하지 않아 아까웠지만 그래도 일찍 나가서 준비하는 편이 낫지. 지하철 첫차 시간이 안 되어서 유스호스텔 앞 공중전화에서 어제 차이나타운에서 마련한 전화카드로 어머니와 통화를 했다. 싼 전화카드를 덕분에 오랜만에 여유있게 통화할 수 있어서 좋았지만 차이나타운 판매상의 뻥에 당했다는 개운치 않은 기분은 남더라. 어디 한국에 전화할 때 400분이야. 20분이더구먼. 400분일 거라고 믿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95%나 차이가 나다니, 뻥의 밀도가 너무 높잖아!

7:30 서클라인 첫차를 타고 베이커 스트리트로 갔다. 이 곳의 코치 스테이션(Coatch Station 19)에서 출발하는 스탠스타드 행 8:30분 이지버스를 예매해 두었었다. 지하철 역사에서 나오니 아직 7시 50분 정도밖에 안 되었다. 여유롭게 정류장을 찾아나섰는데......아무리 걸어가도 정류장이 안 나온다! 7시 57분 쯤 옆으로 빈 이지버스 한 대가 지나갔다. 배차 시간이 30분 간격이니 방금 지나간 버스가 8시 버스일 터, 그렇다면 맞는 길로 가고 있다는 뜻인데 왜 안 나오지? 이 길이 아니다 싶어서 이번에는 반대편으로 걷기 시작했다. 그런데 또 아무리 가도 표지판이이 안 보인다. 설상가상으로 꽤 굵은 빗방울이 떨어진다. 8시 20분이 넘자 다급해져 지나가는 사람에게 묻기 시작했지만, 모른단다. 최후수단으로 한창 에딘버러행 기차를 타고 있을 새미에게 전화를 했는데, 전화를 하다 말고 휴대폰 배터리가 끊어졌다. 웨스트민스터 대학 뒤편에서 경찰을 발견, 다시 물어봤는데 다행히 설명을 해 준다. 아까 그 길이래. -_- 그래서 다시 처음에 가던 길로 갔는데, 이번에도 보이지가 않아서 그 길에 선 경찰 2에게 또 물었다. 모른단다.

이미 시간은 8시 55분. 9시 버스라도 타야 공항에 갈 수 있다는 절박한 심정으로 야성의 감각을 동원해 뛰듯이 걸어서 9시 조금 넘어 정류장을 찾아냈다. 뭐야, 경찰 2 자리에서 직진이잖아. 막상 정류장에 도착해 보니 약도의 그림이 이해가 되긴 하더라. 경찰 1은 오른쪽 왼쪽을 잘못 가르쳐 줬었다. 이럴 때 나침반과 동서남북 방향 표시가 필요하구나 싶었다. 빈속에 어제 산 책과 여행짐을 들고 땀을 뻘뻘 흘리며 비를 맞고 나니 이미 기진맥진했다. 버스 너댓 정거장 정도 거리를 한 시간 반 동안 두 번 왕복했으니. 그래도 스탠스타드 공항에 어떻게 갈지 생각해야 했다. 아, 이것 때문에 급한 마음에 베이커 스트리트 지하철 역을 네 번째 지날 때 -_- 현금인출기에서 마스터카드로 20파운드를 출금했다. 안되면 현금으로 차비를 내고라도 버스를 타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정류장에 가 보니 여행객들이 몇 명 있는데, 이지버스와 내셔널 익스프레스를 기다리는 사람들이 섞여 있는 것 같았다. 눈으로 어림셈을 해 보니 9시 버스에 자리가 있을 것 같다. 만약 9시 이지버스가 만석이면 9시 15분 도착이라는 내셔널 익스프레스에 재빨리 타야 한다) 궂은 날씨 탓인지 이지버스와 내셔널 익스프레스 둘 다 연착, 이지버스가 9시 22분 정도에나 도착했다. 예정보다 한 시간이 늦어 굉장히 초조했는데, 8시 30분 차를 놓쳤는데 지금 현매로 탈 수 있느냐고 하자 그냥 태워 준다. 

한 시간 반 정도를 달려 스탠스타드 공항에 도착했다. 저가항공/유럽내 항공의 경우 보통 이런 외곽 공항에서 타고 내리는데, 런던의 경우 공항과 시내 사이가 정말 멀고 교통편이 마땅치 않더라. 이런 코치를 이용하지 않으면 다른 일반적인 대중교통 수단으로 공항에서 시내로 진입하기가 굉장히 어렵다. 베를린의 경우 제1공항인 테겔 공항의 교통이 가장 좋긴 하지만 유럽내 항공사들이 이용하는 템펠호프나 쇠네펠트 공항도 에스반, 트램, 버스 등으로 쉽게 갈 수 있으니 훨씬 편하다.

공항에 도착하자마자 셀프 체크인을 하고 보안 검색대에 섰다. 영국에서는 손가방(hand luggage)을 일인당 무조건 하나만 가지고 나갈 수 있다. 이 규칙이 굉장히 불편한 것이, 예를 들어 나처럼 작은 배낭과 크로스백, 여권이 든 목걸이 가방을 가진 사람은 가방이 3개 있는 셈으로 이 셋을 하나의 가방에 모두 넣어서 검색대를 통과해야 한다. 안 그러면 못 나간다. 더 괴상한 것은 검색대를 통과한 다음에 다시 도로 꺼내서 따로따로 들어도 상관없다.; 짐을 다시 싸는 자리까지 마련해 놓았는데, 내 옆의 여자아이는 A4크기 정도인 작은 가방 두 개를 들고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곰돌이 인형을 넣었다 뺐다 하고 있었다. 안타까웠다.

새미가 미리 알려 줬기 때문에 어제 구해 놓은 커다란 파운드랜드(Poundland)비닐봉지에 책과 차가 든 위타드 가방, 배낭, 크로스백, 목걸이 가방을 넣어서 통과했다. (다 들어가고 크기 규격에 맞는지 어제 밤에 넣어 봤었다.) 가장 시간이 걸리는 체크인과 보안검색을 지나고도 11시라 조금 여유가 생겼다. 스타벅스에서 샌드위치와 토마토 주스를 사고 터미널로 가는 전차(?)를 탔다. 스탠스타드 공항을 포함, 런던 전반의 교통 환경을 생각하면 런던에 두 번 다시 가고 싶지 않다. 맞는 터미널에 제때 도착했는데, 탑승 수속을 하지 않는다. 뭔가 문제가 생겨 지연되고 있단다. 예정보다 십오 분 정도 늦게 탑승 수속이 시작되었다. 비행기는 11시 55분 출발이다.

12:20 사람들은 55분 전에 다 탔는데, 안전벨트 매고 기장 소개 하고 안전교육까지 했는데 비행기가 움직이지를 않는다. 설명도 없다. 12시 10분쯤 되어서 조금 움직이더니 다시 가만히 멈춘다. 그리고 또 설명 없이 기다리다가 25분쯤 되어서 마침내 비행기가 이륙했다. 이륙이 늦었으니 오늘은 모두에게 샌드위치와 차를 비롯한 각종 음료를 무상 제공하겠단다. 옆 자리의 노부부가 설명과 사과를 안 한다고 투덜거린다. 나는 삼십 분 동안 몸을 배배 꼬며 어제 산 스타더스트(Stardust) 8월호를 한 번 반 정독했다. 오랜만에 글을 읽으니 좋긴 했지만, 최근 Sci-fi 드라마를 거의 보지 않아서 내용을 잘 모르니 썩 재밌지는 않았다. 데이비드 테넌트가 10대 닥터가 된 다음부터 보다 말았던 닥터 후(Doctor Who) 의 세 번째 시즌에 흥미가 생겼다. 그리고 스타트렉 영화 캐스팅이 거의 확정되었고(스폭의 젊은 시절) 엑스 파일 영화도 내년 여름 개봉을 목표로 하고 있단다.

기상 상황 때문에 중간에 비행기가 심하게 흔들리고 계속 앉아 있으라는 둥 고도를 조정한다는 둥 방송이 나와서 불안했다. 첫 해외여행에서 1)배낭분실 2)지갑소매치기 3)자정에 납량특집 공원 가로지르기 4)런던지하철 연착 5)공항버스 놓침 6)비행기 연착 을 경험한 상황에서, 여기에 '7)기상악화로 다른공항에 내리기' 가 더해져도 이상하지 않을 것만 같았기 때문이었다. 다행히 30분 정도 늦긴 했어도 세 시 사십 분 쯤 테겔 공항에 무사히 내렸다. 공항에 내려 공중전화로 집에 전화를 했는데, 신용카드를 꽂으라기에 쓰는 만큼 나갈 줄 알고 꽂았는데 바로 15유로를 과금해서 깜짝 놀랐다. 그래서 집에 전화 하고, 무척 걱정하고 있었을 새미에게 무사히 베를린에 도착했다고 연락했다. 아아, 독일이야! 버스가 넓어! 안전운전이야! 트램도 있어! 모두 쾌적하고 깨끗해! 다들 신호등 바뀔 때까지 기다렸다가 길을 건너! 버스에서 다음 정거장 방송을 해줘! 사람들이 뭐라고 하는지 다시 모르겠어! ......라고 기뻐하며 전력을 다해 집으로 돌아갔다.

주인 아주머니가 나를 보더니, 베를린에는 비가 왔는데 내가 집에 안 들어와서, 학원에 전화해 물어보셨었단다.(학원 선생님에게는 수업시간에 주말 계획으로 말씀드렸었다.) 런던에 간다고 말을 할까 하다가 자유롭게 다니라고 했는데 개인적인 여행 얘기를 할 것 까진 없겠다 싶어서 금요일에 집을 나서며 그냥 튀스-하고 방문 잠그고 나갔었는데 역시 얘기하고 가는 게 맞았구나.; 그리고 비가 많이 와서 부득불 내 방에 들어와 창문을 잠궜다고, 원래 그렇게 나흐미터의 방에 들어가는 건 아주 나쁜 일이니 앞으로 외박할 때는 창문 잠그고 알려 주고 가라신다. 아이고 죄송해라. 그래도 선물로 아주머니가 좋아하실 것 같은 홍차를 사 와서 그나마 다행이었달까. 홍차를 드리며 할 말도 독일어로 다 생각해 놓아서 다행이었달까. (...)

본인 말씀을 이해했냐고 물으시기에 이해했다고, 학원 다니고 나서부터 독일어가 좀 는 것 같다고 씩씩하게 덧붙이려다가 또 말이 꼬였다. getting better 라고 생각하고 게팅 베써 라고 말한 것이다. orz 원래 쓰기보다 말하기가 어렵다고, 주인아주머니도 스페인어를 배웠는데 읽는 덴 문제가 없는데 말은 못 한다며 위로해 주시더라.

방에 들어와 짐을 가방에서 대충 꺼내 정리하고 옷을 넌 다음, 메신저에서 어머니와 지인들에게 인사를 하고 며칠만에 인터넷을 좀 했다. 시리얼 요리도 해서 한 그릇 먹었다. 그리고 누워서 쉬다가 씻고 세탁기를 돌리고 이제 일기를 쓴다. 지금 시각은 밤 열 시. 어학원 수업을 두 번이나 빠졌기 때문에 최소한 1)목요일까지 배웠던 내용을 확실하게 복습하고 2)영국에서 있었던 일을 독일어로 써 보고 자야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급한 C사 원고도 해야 하는데, 이건 내일 어학원 수업을 마치고, 인터넷에 추천가게로 나왔던 동네 빵집에서 빵과 커피를 사와서 먹은 다음에 쓸 생각이다. 아마 내일은 화요일이니 어학원 프로그램이 없을 터이니 할 수 있을 거다. 그리고 확정된 일정을 알리는 연락이나 독촉이 없어서 불안하지만 F지 원고도 아마 마감이 이달 중순일 텐데......자, 자. 동요하지 말고 이럴 때를 위해 영국에서 업어온 스파이더 맨 만화책이나 캐서린 아사로의 달짝지근한 로맨스 판타지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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