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8월 27일 월요일

2007년 8월 26일 일요일

일요일이다. 며칠 전까지 귀국일이 목요일인 줄 알고 있다가 그제야 어머니와 메신저 중에 수요일임을 뒤늦게 깨달았다. 어쩐지 하루를 날로 뺏긴 기분이다. 베를린에서는 대부분의 박물관, 미술관, 성이 월요일에는 문을 닫으니, 실제로 베를린의 미술관에 갈 날은 일요일과 화요일밖에 남지 않은 셈이다. 그래서 오늘은 아침 일찍 나가 박물관섬에 가야지 생각했다.

늦잠을 잤다.

조금 남은 우유에 시리얼을 섞어 아침으로 먹고 잠시 지나니 배가 고팠다. 하지만 먹을 것이 없었다. 그래서 만들기가 번거로워 서울에 가져가서 먹으려 했던 스프를 2인분 끓여(우리나라 오뚜기 스프 같은 것인데 훨씬 묽고 10분동안 저어야 한다) 한 쪽 남아 있던 토스트 빵과 함께 먹었다. 이제 정말 먹을 게 없는데 계속 배가 고파서 초코 시리얼을 날로 먹었다. 우유에 넣어 먹으면 무척 맛있는데 그냥 먹으니까 맛이 없었다.

이러다가 오후에 잠깐 잠이 들었다. 깨어보니 네 시 반. 여섯 시 전에 나가서 뭔가 사오지 않으면 저녁-밤 내내 정말 아무 것도 못 먹는 사태에 직면할지도 모른다는 절박한 심정으로 일어나 쿠담까지 갔다. 일요일에는 슈퍼마켓이나 백화점이 모두 문을 닫고, 빵집도 열지 않거나 오전에만 영업을 하며, 카페도 오후에 문을 닫는다. 그래서 사실 며칠 전에 슈퍼마켓에서 장을 많이 봤었는데, 이상하게도 장을 많이 보면 슈퍼에 가는 빈도수가 줄어드는 것이 아니라 그냥 매 끼를 더 많이 먹게 된다. 즉 장을 많이 보나 적게 보나 한 번 장 본 음식을 소모하는 시간은 거의 같다.


동네 트램 역. 늘 여기에서 트램을 탔다.

쿠담에는 문 연 데가 있을 줄 알고 게까지 갔는데 거기 슈퍼마켓과 백화점도 모두 문을 닫았다. 꽤 멀리 나갔는데.....허탈했다. 그래서 오늘 영업 한다는 것을 미리 확인해 놨던 베를린의 유서깊은 초콜릿 전문점에 가기로 했다. Fassbender&Rausch라는 곳으로, 초컬릿 카페와 예약제 초컬릿 레스토랑까지 운영하는 곳이다.

F&R은 참으로 훌륭하였다. 커다란 초콜릿 타이타닉, 카이저 빌헬름 교회, 국회의사당 등이 있었고, 각종 수제 트뤼플, 바 초컬릿, 여행자 초컬릿, 예쁜 초컬릿, 쿠키 초컬릿, 초컬릿 쿠키, 초컬릿 스프레드, 핫초컬릿 등이 아주 많았다. 선물로 몇 가지 골랐다. 정말 맛있어 보이는 분홍색과 귤색 트뤼플 세트도 있었다. 우리나라에 비하면 수제 초컬릿 치고는 무척 저렴했지만, 그래도 나 먹으려고 사려니 아까워서 고민하다가 결국 안 샀다. 그런데 계속 먹고 싶다. ㅠㅠ 바바라가 이곳의 초컬릿 카페를 극찬했었기에 갈까 했는데, 빈 속(이라기보다는 인스턴트 스프와 마른 시리얼 등이 대충 섞여 있는 속)에 진한 핫초컬릿을 마시면 좋지 않을 것 같아 바로 알렉산더 광장으로 끼니거리를 찾아 갔다.


알렉산더 광장 에스반 역에 있는 아시안 누들 집에서 닭고기면을 사서 한 그릇 깨끗이 비우고 집에 돌아와서 민트 차를 마시고 귀국 가방을 쌌다. 여기 온 후로 짐이 꽤 늘어나서, 무게와 부피를 가늠하기 어려워 일단 가방에 넣어 보고 다 안 들어가면 어떻게 할지 미리 생각해 놓기 위해서다. 올 때 짐이 가벼웠으니(위탁수화물이 15kg이하) 웬만하면 규정을 넘지 않을 것 같긴 한데, 늘어난 짐 대부분이 부피에 비해 무거운 책이라 불안하다. 아직 베를린에서 가장 큰 서점인 쿨투어카우프트하우스 두스만(Dussmann)에는 가 보지도 않았는데. 그리고 프랑크푸르트에서 환승할 때 기내수화물을 모두 들고 다녀야 할 일도 걱정이다.    

내일 계획: (1)슈퍼마켓에 가서 물, 우유, 채소를 사고 (2)프리드리히슈트라세에 있는 두스만과 (3)월요일에도 문을 여는 미술관(예:바우하우스)에 간다.

어제 쓰려다 잊은 것: 한 짝씩 사라진 양말 세 개가 화장실 하이쭝에 걸려 있기에 걷어 왔다. 나중에 부엌에서 마주친 주인아주머니가 양말 봤느냐고, 세탁기 안에 있는 걸 못 보고 한 번 더 빨았다고 웃으신다. 그래서 엄청 엄청 깨끗해졌겠네요! 했다.

중간에 일기에 써 넣으려다가 잊은 것: 독일어에는 schon(already)과 schoen(beatiful, o 움라우트)이라는 단어가 있다. 종강 며칠 전, 수업 시간에 스페인 학생들이 이 두 단어의 발음와 의미를 잘 구분하지 못하자 내가 즉석에서 만든 바람직한 예문-
Ich bin schoen, und ich war schon schoen als ich ein Kind war.
(I'm beautiful, and I was already beautiful when I was a kid.)

이런 것도 있다.
'Schlecht Deautsch' ist schlechtes Deautsch. (내가 너무 헷갈려서 만들었다.)

댓글 4개:

  1. 우송료가 얼마나 될 지 잘 모르겠지만, 책 짐은 우편으로 부쳐 버리는 것도 한 방법인 것 같아요. 인쇄물 우편은 약간 할인해 주기도 하니까 한 번 알아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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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이제 얼마 안남았군요. 남은 시간 즐겁게 보내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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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뎡만 - 2007/08/27 13:58
    네, 내일 우체국 문 여는대로 가서 책은 우편으로 부치기로 결심했답니다. 처음에는 다 들어가는 것 같았는데;;; 잘 안 되서 몇 번이나 가방을 다시 싸다가 결국 책을 다 빼냈어요. 으윽. 다행히 우체국이 집에서 굉장히 가까워요! 사실 책만 빼서 무게를 달아보니 대체 이걸 어떻게 러기지에 넣어 갈 생각을 했는지 스스로가 참...orz 여행 경험이 없다 보니 짐의 무게나 부피를 가늠하는 일이 무척 어렵네요. 이사라도 한 것 처럼 허리가 아파요. 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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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scifi - 2007/08/27 14:22
    마지막까지 재미있게 있다가 갑니다. 남은 시간을 즐겁게 보내고자 오늘은 미술관에 가고 핫초컬릿과 애플파이를 먹었어요. 한국에 돌아가서 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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