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5월 6일 화요일

2008년 5월 6일 화요일

1.
현상학적 판단중지 역시 일종의 의식작용인 한에서 우리는 어떤 정립에 대해 현상학적 판단중지를 수행할 경우 그러한 정립에 대해 모종의 태도를 취하는 것이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해 그 어떤 정립에 대해 현상학적 판단중지를 수행한다 함은 우리가 그것이 참이라거나 거짓이라거나 의심스럽다거나 그럴듯해 보인다거나 하는 식의 일체의 주장을 하지 않으면서 그에 대해 중립적인 태도를 취하는 것을 위미한다. 이 경우 판단중지된 정립작용은 계속하여 그의 대상을 정립하고 있으나 다만 현상학적 판단중지를 수행하는 반성적 의식은 저 정립작용을 함께 수행하지 앟고 바로 그에 대해 중립적인 태도를 취하면서 판단중지를 수행하는 것이다.

'저 정립작용이 세계 및 세계내 대상이 어떠한 상태에 있다고 주장하고 있지만 나는 저 정립작용과 거리를 취하면서 그것을 따라 동일한 정립작용을 수행하지 않고 다만 그에 대해 중립적인 태도를 취하면서 판단중지한다.' (...)

이남인 저, [현상학과 해석학]
지난 학기에 이태수 선생님(서양고대철학) 철학이 어째서 난해할 수 밖에 없는가에 관해, 결국 그 난해함과 엄밀함이 철학의 필연적 본질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하신 적이 있다. 이 책도 선생님에 대한 존경심이 절로 우러날 만큼 쉽게 쓰인 책(!)이다. 아무리 쉽게 풀어 쓰여 있어도 여전히 헷갈리지만, '잘 모르던 것을 정확히 알게 될 때'의 경이감은 정말 포기하고 싶지 않다. 지와 무지 사이의 경계는 때로 대단히 선명하게 보이고, 그 선을 발견한 순간에는 '실존적 경험의 주체로서의 몸이' 절로 들썩인다. 세상에 이만큼이나 지속적으로 경이롭고 재미있고 즐겁고 또렷하게 반짝이는 학적 영역이 존재한다는 것이 믿어지지 않는다. 특히 훗설의 현상학은, 지금까지 영국경험론(과 그 연장선상에서의 근현대 인식론)을 열렬히 추종했던 나에게 새로운 세상을 열어 주었다.

2. 그렇지만 요즘은 어른이 되어야겠다는 생각을 많이 한다. 스물다섯, 지금까지 나는 참으로 하고 싶은 일만 하면서 살고 싶은 대로 살았다. (전생에 나라를 151번은 구한 것 같다.) 그러니 이제는 하고 싶은 일을 포기하거나 하기 싫지만 해야 하는 일을 선택해야 하는 시기가 왔음을 순순히 받아들여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그렇지 않으면 언제까지나 어리광쟁이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