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 7월 31일 토요일

2004년 7월 31일 토요일 : 아이, 로봇


커피빙수

밀크빙수

딸기파르페

서늘님, 라슈펠님, 동진님과 압구정 씨네플러스에서 영화 아이, 로봇을 보았다. 거의 일 년여 만에 서늘님을 뵈어 무척 반가웠다. 기대치가 낮았던 덕분인지 영화는 그럭저럭 볼 만 했다. 20세기 초와 21세기 초가 뒤섞인 분위기가 좀 우스꽝스러웠지만, 그야 어쩔 수 없지. 기대도 안 했으다니까. ( - _-) 캘빈 박사 역을 맡은 배우가 내 취향에 딱 맞는 미인이라 즐거웠다. 영화 내용은 아시모프의 원작과 아무런 상관이 없다. 크레딧에 based on도 아니고 suggested by issac asimov라고 쓰여 있기까지 하니, 원작 소설과 다르네 어쩌네 말할 영화는 아니었다. 라슈펠님의 '아이, 로봇 시리즈는 사실 '터미네이터'시리즈의 전편(prelude)인 거죠.'란 말씀에 한참 웃었다. 사실 아시모프의 취향대로 만들면 엄청 재미 없는 영화가 나올 것 같다고 생각했다.

영화를 본 후 너무 더워 땀을 뻘뻘 흘리며 현대백화점의 빙수전문점 밀탑에 갔다. 더운 토요일 오후라 사람들이 바글바글했다. 밀크빙수가 맛있다는 말을 들었으면서 굳이 커피빙수를 선택한 동진님은 후회하셨다. 빙수를 먹고 영화관 주차장으로 걸어갔다. 10분도 채 되지 않아 다시 땀이 뻘뻘 흐르기 시작했다. 정말 괴로운 날씨였다.







동진님 차와 펠님 차를 나누어 타고 힐튼호텔로 갔다. 야외 바베큐(+생맥주)! 지구정복 비밀결사(a.k.a. SF얼짱클럽) 열한 명-상훈님, 제이드님, 동진님, 서늘님, 라슈펠님, 경아님, 상준님, 루크님, 수현님, 상현님, 나-이 모여서 저녁식사를 했다. 참석 예정이셨던 까리용님께서는 더위에 탈진하시는 바람에 못 오셨다. 엄청난 더위를 이기며 꿋꿋이 야외에서 식사를 끝냈다. (지구 정복이란 쉬운 일이 아니다.) 언제나처럼 범죄의 원인부터 우리나라 장르판(?) 사정까지 온갖 얘기가 오갔다. 이번에 나온 상훈님의 '바디 스내처'도 받았다. 식사 후엔 먼저 자리를 뜨신 서늘님과 라슈펠님을 제외한 나머지 아홉 명은 명동 코인으로 장소를 옮겨 차를 마시며 이야기를 나누었다. 재미있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 생각해 볼 거리도 많았다. 열심히 배우고 고민하며 살아, 나이가 들수록 현명한 사람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거듭 했다. 어려서 부족한 점, 생각해 보지 못한 점, 아직 알지 못하는 것들에 대해 알게 모르게 가르쳐 주는 분들과 만날 수 있다는 것은 대단한 행운이다.

열 시쯤 헤어져서 각자 자기 집으로. 나는 루크님과 함께 동진님의 차를 타고 지하철 역까지 왔다. 구름 사이로 커다란 보름달이 보였다.

2004년 7월 29일 목요일

2004년 7월 29일 목요일

심심 수요일 - 말풍선 놀이


심심 목요일 - 사례설정놀이

D시가 소유하고 있는 공원의 설치물인 파라솔이 장마철 200mm/日에 달하는 폭우로 쓰러져 하루 동안 방치되어 있었다. 옆에 있던 얼룩말이 파라솔에 걸려 날뛰다 공원에서 휴식을 취하던 국민 甲과 乙에게 상해를 입혔다. 이 때 국민 甲의 권리구제수단은?" tt_link="" tt_w="500px" tt_h="380px" tt_alt="" />
(클릭하면 커짐/2003 이미지 코리아 展 기념엽서, '달성공원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2004년 7월 26일 월요일

2004년 7월 26일 월요일



이수현님과 제니스에서 점심식사를 했다. 메뉴에 등장했을 때부터 먹어보고 싶었던 초코케익에 드디어 도전해 보았다. 완전히 초컬릿 덩어리다!(옆은 크림) 네 사람쯤 가서 한 입씩 먹거나, 달지 않은 커피를 곁들인다면 괜찮겠지만 그냥 먹기에는 좀 부담스럽다. SF동네 이야기를 하며 식사를 한 다음에는 한양문고에 가서 만화책을 구경했다. 유교수 24권과, 수현님이 사면 후회하지 않으리라고 하신 요시나가 후미의 단행본을 골랐다. 정말 후회하지 않을 책이어서 기뻤다.

2004년 7월 25일 일요일

2004년 7월 25일 일요일 : 지휘자 함신익과 대전시향의 말러 사이클, '죽음 그리고 부활'


프로그램
모차르트 중성자의 장엄한 저녁기도 K.339
말러 교향곡 제2번 다단조 '부활'
(소프라노 전소은/ 메조소프라노 장현주/ 테너 이완준/ 바리톤 최현수
대전시립합창단/ 안산시립합창단/ 윤학원 코랄)

탁월했다. 대단했다. 훌륭했다. 이런 교향악단의 연주를 자기 동네에서 매달 영화 한 편 값으로 볼 수 있다는 대전 시민들이 부러웠다.

내가 대전시향을 눈여겨 보기 시작한 것은 2003년 교향악 축제에서 말러 5번을 들은 이후부터였다. 지방 교향악단에 대해 혹시라도 있을 선입견을 완전히 날려버리기에 충분한 인상깊은 연주는 함신익과 대전시향 둘 다를 단단히 각인시켰고, 이후 나는 혹시 대전시향이 서울에서 한 번 더 공연을 하지는 않을까, 어디 나오지는 않을까 하고 관심을 가지고 지켜보았다. (오죽하면 교향악 축제 직후에는 대전에 내려가 볼 생각까지 했으랴.) 이후 KBS 유선방송 같은 곳에서 대전시향의 연주를 우연히 몇 번 보기는 했으나, 2004년 교향악 축제에 대전시향이 불참하면서 대전시향의 실황을 다시 볼 기회는 점점 멀어져 가는 것 같았다.

그러다 이번 미국 순회 공연 이후의 전국 순회 공연으로 예술의 전당에서 대전시향이 공연을, 그것도 말러 2번을 한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의 반가움과 기대야 굳이 자세히 말할 필요도 없으리라. 아우님과 예술의 전당에 허겁지겁 들어가자마자 모차르트의 저녁기도가 시작되었다. 사실 나는 '부활'을 들을 생각에 너무 긴장하고 있었기 때문에, 저녁 기도에는 그다지 관심을 기울이지 못했다. 합창단이 합창단석이 아니라 무대에 선 것이 이상하다고 생각했을 뿐이다. 제대로 듣기 시작한 것은 두 번째 곡 부터로, 합창단이 안심할 만한 실력을 갖추었다는 생각이 들자 마음이 놓였다. 아무래도 기도곡은 종교가 없는 내게는 크게 와닿지 않는다. (아참, 아직 솔리스트들이 박수를 받고 있는데 굳이 늦은 관객들을 들여보내는 예당의 행동에 대해 한 마디 하지 않을 수 없다. 연이어 다음 곡이 있는 것도 아니고, 바로 인터미션인데 그 일이 분을 못 맞춰서 들어가는 사람들, 나간 사람들, 박수치는 사람들이 뒤섞이게 만드나.)

그리고 말러 2번. 이 곡의 무게야 말해 무엇하리. 이번 사이클의 부제 '죽음 그리고 부활'을 두고 나는 '죽음(1) 그(2)리(3)고(4) 부활(5악장)'이라고 혼자 농을 쳤다는 점이나 적어 두자. 대전시향의 연주는 흠잡을 곳이 거의 없었다. 관악 파트, 특히 금관 쪽은 '히야'하는 감탄사를 절로 뱉을 정도로 뛰어났고 타악 파트의 힘과 타이밍도 절묘했다. 현악은 두드러지지 않았으나 이는 현악 파트가 조금만 처져도 확 표시가 나는 곡임을 감안하면 별 실수 없이 잘 했다는 뜻도 된다. 지휘자나 단원들이나 자신감을 가지고 공연에 임하고 있다는 것이 뚜렷이 보였다. 머뭇거림 없이 쭉 내뻗는 음색이라니! 이만하면 세계 어디에 내어 놓아도 부끄럽지 않다.

"Mit Flugeln, die ich errungen/ Werde ich entschweben!/ Sterben wed' ich, um zu leben!'
(나는 쟁취한 날개를 달고 날으리/ 나는 살기 위해 죽으리라!/ 부활하리라!)

곡이 끝나자마자 일어나지 않을 수가 없었다. 박수를 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오버하지 않으려고 했는데도 눈물이 절로 고였다. 내가 앉은 C열의 관객들 중 4/5는 기립했던 것 같다. 한참 박수를 치고 소리를 지르다 혼이 빠진 기분으로 자리에 앉아 앵콜을 듣고 - 당연히 앵콜을 안 할 줄 알았는데 해서 조금 뜻밖이었다- 집에 왔다. 지금 막 고클에 들어가 보니 벌써 '대한민국에서 부천[시향]의 말러 시대는 갔다'는 제목의 감상이 올라와 있다. 말러 실황이 제대로 있지조차 않던 시기와 말러 실황이 있기는 한데 들어주기 힘든 경우가 많던 때를 넘어, 이제 제대로 된 공연의 시대가 열렸는지도 모른다. 탁월한 지휘자와 지방정부의 전폭적인 지원이 지방 교향악단의 수준을 여기까지 끌어올릴 수 있다는 점이 놀랍다. 다음 달 말일에는 서울시향이 같은 곡을 들고 요한 레비를 초청하여 특별 연주회를 한다. 서울시향의 부담이 상당하겠다.(게다가 서울시향의 공연은 티켓값도 대전시향의 두 배가 넘는다.) 아무쪼록 서울시향도 이번 대전시향의 공연을 참고삼아, 서울시향 나름의 실력을 보여주길. 서울시향도 금관악은 믿을 만 하니, 현악 쪽만 어떻게 좀 수습하면......(먼 산)

2004년 7월 24일 토요일

2004년 7월 24일 토요일 : '일본 애니메이션의 원류:테코보에서 모모타로까지 (section 5)'

로고출처:서울아트시네마 웹사이트


서울아트시네마에서 피판 순회상영의 일환으로 열린 '일본 애니메이션의 원류' 다섯 번째 세션을 보고 왔다. 이번 세션에 포함된 작품은 1940년대부터 50년대 중반 사이에 만들어진 단편 애니메이션 여덟 편이지만, 입장이 늦어 아라이 카즈로고의 첫 편은 놓쳤다.

숲 속의 소동/ 마에다 하지메 1947 병아리 세 마리를 납치하여 끼니를 해결하려던 늑대가 어미닭과 그 동지인 물개, 오리, 쥐, 토끼, 돼지 등에게 뒤를 밟혀 10:1로 당한다. 늑대는 꽁지에 불까지 붙이고 도망가는 불쌍한 처지가 되고, 다수로 소수를 이긴 어미닭 무리는 벽난로 앞에 모여 다정히 행복의 노래를 부른다. 디즈니풍. 역동적인 장면에 들어간 운동선(종이만화에 있는)이 눈에 띄었다. 흔한 표현법인가? (다른 상영작에는 없었던 부분임.)
눈 내리는 밤의 꿈/ 오후지 노부로 1947 그림자 애니메이션. 성냥팔이 소녀를 양초팔이 소녀로 각색했다. 크리스마스 이브에 앙초를 다 팔지 않으면 돌아오지 말라는 말을 듣고 쫒겨난 소녀가 추위에 떨며 양초에 불을 켜자,그러자 하얀 그림자 어머니가 나타나서 소녀의 유체 이탈을 돕는다. 녹음 상태가 열악하여 소녀와 어머니의 목소리에 귀기가 서린 느낌이었다. 인상적인 애니메이션.
큰 도끼 짊어지고/ 후루사와 히데오 1948 환경 보호 메세지를 담은 애니메이션. 나무꾼이 나무를 멋대로 벤 숲에 홍수가 난다. 비구름을 손에 번개를 쥔 익살스런 지휘자로 표현한 것이 돋보였다. 구르다가 항아리를 머리에 뒤집어 쓰는 장면처럼 최근에도 흔히 쓰이는 표현법이 많았다. 이런 '전형적인 만화적 표현'이 언제 만들어져서 널리 쓰이기 시작했는지가 궁금해졌다. 공부를 더 해 보아도 재미있을 것 같다.
동물 대야구전/ 야부시타 타이지 1949 난폭한 고릴라 팀과 기타 동물 팀이 야구 시합을 한다. 29:0으로 지던 동물연합팀이 고릴라 팀의 손에 붙은 엿 덕분에 역전한다. 줄지어 볼넷으로 나가는 타자들의 모습이 압권. 낄낄 웃었다.
숲의 음악회/ 아시다 이와오 1953 예의범절을 모르는 늑대가 다른 동물들로부터 지탄을 받는다. 커다란 실수가 아니라 작은 배려없음-쓰레기를 길에 쌓아 둔다든지, 꽃을 꺾는다든지-을 크게 꾸짖는 내용인 점이 특이했다.
꽃과 나비/ 오후지 노부로 1954 나비 세 마리가 비를 만난다. 꽃들에게 비 피할 자리를 마련해 주기를 청하지만, 각 꽃들은 자기와 같은 색인 나비만 지켜 주겠다고 한다. 컬러 애니메이션이고 세 나비의 합창이 들어가 있다.
단고 베에의 사건일지 열려라 참깨 편/ 오후지 노부로 1955 '알리바바와 40인의 도둑'을 일본 풍으로 풀어낸 애니메이션. 내용도 '40인의 도둑'과 비슷하다.

극장 앞에서 사십 오 분 뒤에 시작하는 세션 3까지 볼까 말까 망설이며 음성 사서함을 확인했다. 재영이가 중국에서 돌아왔다며 휴대폰 대신 학사관 연락처를 남겨 두었기에 전화해 보았다. 학사관이 종로 쪽이라고 했던 것이 기억나 물었더니 걸어서 십여 분 남짓한 곳이라기에 인사동 스타벅스에서 만나기로 약속을 잡았다. 고생도 했지만 많이 배우고 좋은 경험을 하고 왔다고 생각한다기에 마음이 놓였다. 중국어도 많이 늘었겠지. 여행 이야기가 무척 재미있었다. 예전보다 말하면서 몸을 많이 쓰더라. 언어가 반쯤 통하는 곳에 있다 온 흔적일까나. 너무 열심히 웃다가 의자 등받침에 머리를 박고 말았다. 새벽에 포스코 센터 다녀오는 길에도 조느라 버스 창문에 머리를 세 번이나 박았는데. 하하. 이런 저런 수다를 떨다가 10시쯤 헤어져 집에 왔다. 아트시네마에서 이렇게 가까운 곳에 사는 줄 좀 더 일찍 알았으면 혼자 영화보러 갔을 때 연락해 볼 수 있었을 텐데 싶었다. 말 나온 김에 쓰자면, 오늘 영화를 보고 나오며 아트시네마 폐관전은 역시 고다르가 좋지 않을까 생각했다.

2004년 7월 23일 금요일

2004년 7월 22일 목요일


수프

샌드위치 (찬조출연: 아우님 손가락)

티라미수

어머니, 아우님제니스 카페테리아에서 점심식사를 했다. 어머니와의 데이트는 꽤 오랜만이다. 원고가 끝난 것을 축하한다며 어머니께서 데이트를 신청해 주셨다.(으응?) 오늘도 우리 아우님은 정말 너무너무 귀엽고 예쁘고 중략해서 어쨌든 최고라는 점을 새삼 느꼈다. 어머니께서는 도치(고슴도치) 언니라고 하시지만, 객관적으로 봐도(;) 나의 아우님은 매력적이다.
시원한 아이스티를 곁들여 샌드위치를 먹은 다음 앉아서 놀았다. 사진도 찍었다. 아우님과 어머니가 나란히 앉아 웃는 사진이 무척 마음에 든다. 사실 의도보다 한 박자 늦게 셔터를 누르는 바람에 엉겁결에 찍었는데, 너무 잘 나와서 기뻤다.
티라미수를 나누어 먹은 다음 햇볕이 가실 때쯤-세 시 십오 분- 일어나서, 어머니와 아우님은 집으로, 나는 독서실로 갔다.

2004년 7월 22일 목요일

2004년 7월 21일 수요일

아침에는 빈둥빈둥 밥잘먹고 길나서서
오후두시 복사하러 학교갔다 더워기절
어찌저찌 원고백장 겨우출력 제본맡겨
그사이에 학관가서 저녁메뉴 회덮밥을
좋아라고 냠냠먹고 맡긴제본 찾아가서
독서실서 세수하고 앉아있다 홍대입구
아스님께 신세지고 이런저런 수다떨다
영화속편 만화얘기 나도몰래 너무흥분
밤이되니 시원하네 기분좋게 열시귀가

2004년 7월 20일 화요일

2004년 7월 18일 일요일

2004년 7월 18일 일요일 : 토비아스 레버거 展

사진출처: 아트선재센터 웹사이트



토요일에 질리도록 잔 덕분에 비교적 일찍 일어났다. 씻고 비비적거리다(...) 가방을 챙겨 나섰다. 처음에는 지하철을 타고 곧장 아트선재센터로 가려 했으나, 도중에 비가 조금 와서 집으로 돌아와 우산을 챙기고 나니 다시 지하철 역까지 걷기가 싫어져서 가까운 버스정류장으로 방향을 틀었다. 홍대 스타벅스에서 한참 원고를 하다 문득 시계를 보니 세 시가 넘었다. 주섬주섬 가방을 싸서 지하철을 탔다.

토비아스 레버거 전시회는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2층의 첫 작품인 '커뮤니케이션 테러'는 스크린 안에 영화 '캐스트 어웨이'의 고립 장면을 편집해 넣어 관람자에게 스크린을 통과한 빛의 번쩍임을 보여주는 영상물로, 무심코 지나지 않고 한참 쳐다보면 정말 무서워지기는 한다. 어느 현대 작곡가의 현악곡 1악장이 떠올랐는데, 아무리 궁리해도 작곡가의 이름이 정확하게 기억나지 않아 괴롭다.(이거 생각하다가 잠 못 들겠다.) 그 다음 작품 '비디오비블리오테크'는 폐쇄된 케비넷 열 개 안에 영화를 집어넣어 상영하는 설치물로, '커뮤니케이션 테러'와 마찬가지로 관람자에게 정확히 보이지 않는 빛과 영상을 이용하여 폼을 잡았다. 영상과 빛과 화려한 캐비넷 사이의 어긋남을 활용한 발상은 감탄스러웠으나 일곱 상자는 어른용, 세 상자는 아이용으로 나누고 아이용이랍시고 검은 바탕에 토끼며 별, 달 무늬를 그려 넣은 것은 기가 막힐 만큼 식상했다. 차라리 하지 말지. 2층 전시장 한가운데에 있는 만들다 만 가구며 그릇들은 아트선재센터 개관 5주년을 기념하는 신작 'Some Sized Parents to a Semi Defined O-Space'이다. 실제로 사용할 수 없는 가구를 통해 공간 활용을 제안 어쩌고 하는데, 첫 인상은 '정말 조악하구나!'였다. 한쪽 벽에 제멋대로 붙여 놓은, 피를 잔뜩 빤 직후에 손바닥에 맞아 죽어버린 모기를 오십만배 확대해 놓은 것 같은 갈색+붉은색 테이프 뭉치가 그나마 제일 마음에 들었다. 나가려던 차에 도슨트 설명이 시작되어 들어보니, 레버거가 제안한 기본적인 관념을 바탕으로 아마추어들이 만든 작품이란다. 그 말을 들으니 그토록 조악한 느낌이 든 이유는 수긍이 갔다. 작가가 의도한 부분인지는 둘째 문제지만.

가장 유명한 작품이기도 한 위 사진의 '7 ends of the World'는 꽤 인상깊었다. 처음에 사진을 보고 짐작했던 인공조명과 자연광의 차이를 전복적으로 이용한 작품은 아니었지만, 한참을 바라보고 서 있을 만큼 아름다웠다.

전시 전반을 평하자면 '힘은 없으면서 쓸데없이 폼을 잡는 불친절한 작가'라는 느낌이다. 설명 없이도 관람자에게 파고들 수 있는 충격이 거의 없고, 그 설명이라는 것 자체가 복잡하고 얄팍하다. 내 취향은 아니라는 결론.

아트선재에서 나와 지하 1층 서울아트시네마의 상영표를 들여다 보았다. 다섯시나 다섯 시 반 영화를 한 편 보고 갔으면 했으나 하필이면 '종교 재판소'를 해서 부득이 그냥 발걸음을 돌렸다. 이제 아트선재에서 공간을 안 내어주면 서울아트시네마는 어디로 가려나. 몇 명이서 쪼그리고 앉아 비디오만 틀어 놓아도 할 수 있는 것이 시네마테크 운동이고, 요전 좌담회에서도 느꼈듯이 한국 시네마테크의 이데올로기나 주체의식이 붕 떠버린 상황이기는 해도 역시 이런 식으로 소중한 공간 하나가 문을 닫는다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중간에서 애쓴 사람들만 빈 손으로 허탈함을 곱씹겠지. 폐관 전 '일본 애니메이션의 원류' 상영회에나 잊지 말고 가야겠다.

인사동길을 걸으며 사람들을 구경했다. 낮에 인사동에 나온 것이 꽤 오랜만이다. 초상화 그리는 사람, 물건 구경하는 사람, 춤패들.......구경하니 재미있긴 했는데 배가 고팠다.; 종로로 나와 '카페 뎀셀브즈'에 가서 샌드위치를 한 쪽 먹고 노트북을 펼쳤다. 한참 쓰다 고개를 드니 창 밖이 어둡다. 해가 지기 전에 집에 들어가야 할 것 같아서 자리를 정리하고 버스를 탔다. 홍대에 가려다가 홍제로 가는 바람에 서울 시내를 돌고 돌다가 여덟 시쯤 간신히 무사히 귀가했다. 저녁으로는 군만두를 만들어 먹었고 후식은 녹차 아이스크림. 원고는 백 매쯤 쓴 것 같다. 알찬 주말이었다.

2004년 7월 16일 금요일

2004년 7월 16일 금요일

1. 서울문화사에서 새로 시작하는 '윙크노블(wink novel)'시리즈로 마리아님이 보고 계셔 소설판 발매! 진짜로 나오다니.......;;;;
2. 25일 대전시향 (예매완료)
3. 아트선재센터 토비아스 레베르기 전 (일요일?)
4. 서울아트시네마 멕시코 영화제 '부의 제국' (토요일 8:00) / '남자들의 파멸' (토요일 3:00 ?)
5. 서울시립미술관 샤갈전 (중고딩 방학 전에)

2004년 7월 14일 수요일

2004년 7월 14일 수요일 : 잡기

용진군이 제주에서 아침 일곱 시 비행기로 올라왔다. 하루방 오렌지 초컬릿도 가져왔다. 용진군과 초컬릿 둘 다 반갑다. 홍대 제니스에서 점심식사를 하고 비하인드에서 이야기를 나누었다. 용진군이 보고 싶다기에 1300k 홍대점과 리브로 아티누스에도 잠깐 구경을 갔다. 노트북이 묵직하게 어깨를 눌렀다.

지난 주부터 하루에 50매씩 정신없이 달렸다. 돈을 벌기 위해 하는 일과 돈을 쓰며 하는 일에 대한 기대치가 다른 것을 너무나 당연하게 생각해 왔기 때문에, 홍모님의 질문에 몇 줄 짜리 댓글로 어떻게 답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축구 시합을 한단다. 경기장에 들어선 상대팀 선수들을 보며 식당 아저씨가 '뭔 깜둥이들이 저래 많나.' 한다. 농담이라고 하는 것 같았다. 나는 아무 말 없이 고개를 숙이고 자칭 삼겹 두루치기를 젓가락으로 몇 번 휘저었다. 고추장물이 파란 티셔츠에 튀었다. 애국가가 들렸다. 이 옷은 손세탁을 해야 한다. 기분이 나빠지려 했다. 하지만 바나나를 큰 것으로 가져왔으니 괜찮다.

재등록을 하려고 독서실 사무실의 창을 두드렸다. 며칠 전에 새로 들어온 총무는 노트를 넘겨보더니 "이번 달로 육 개월이 지나서 등록이 일주일 연장되었는데요?"란다. 엉겁결에 "앗차, 깜박했네요. 고맙습니다."라고 말하며 방긋 웃고 돌아섰다. 사실은 그런 제도가 있는 줄도 몰랐다. 나는 가끔 모르면서 아는 척을 했다. 알면서 모르는 척을 할 때도 곧잘 있었다. 보고도 못 본 척을 하기도 하고, 못 보고서 본 척을 하기도 했다. 덕분에 세상과 상큼하게 어울릴 수 있었다.

어렸을 때 나는 동생이 다른 아이들과 시비가 붙으면 동생 편을 들지 않고 자초지종을 들어본 다음에 동생이 잘못한 것 같으면 동생을 야단쳤다. 어머니는 그런 나를 서운하게 생각했다. 동생은 나와 약속한 비밀 이야기를 어머니에게 했다. 베리따스 룩스 메아로 살았더니 왕따가 되었다. 베리따스의 베리(ver-i)는 라틴어로 참, 진실을 뜻한다. 여기에서 영어 단어 very가 나왔다. 참말만 하고 살면 참말로 곤란해진다는 뜻이다. 역시 옛날 사람들은 아는 것이 많았다.

독서실이 일 주일 연장된 덕분에 당장 다급한 일을 피할 수 있게 되었다. 여전히 비가 온다. 상큼한 세상이다.

2004년 7월 13일 화요일

2004년 7월 13일 화요일 : 잡기

비가 주룩주룩 온다. 머리가 아팠다. 며칠 전에는 다리가 아팠고, 어제는 배와 어깨가 아팠고, 오늘은 머리가 아프다. 이제 머리카락이 아픈 다음에 아무 곳도 아프지 않는 단계가 올 것이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아픈 것보다는 발끝부터 머리까지 훨씬 낫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통증이 위로 빠져나간다니, 득도하는 기분이라 나쁘지 않다. 이 통증은 비구름을 뚫고 가속을 받아 탈출속도를 넘어서서 우주로 날아갈 것이다. 독서실 사물함을 뒤져 보았지만 소화제만 있고 두통약은 없었다. 사실 독서실 맞은편에 십 년도 넘게 고시촌을 지켜온 우리의 친구 아림약국이 있지만, 겨우 두통때문에 약을 사먹기는 귀찮다.

글을 잘 쓰고 싶다. 나이가 어려 부족한 것이야 어쩔 수 없다지만, 나이도 어리고 부족하기까지 하다는 것은 어쩐지 비참하다. 주어와 동사가 편두(偏頭)에서 줄을 돌리자 형용사와 부사가 뛰어와 줄넘기를 한다. 머리를 몇 번 흔들어 본다. 귀가 울린다. 나는 방향감각이 형편없다. 이 사실을 아는 데 몇 년이 걸렸다. 중학교 신체검사에서 나는 청력 검사를 통과하지 못했다. 오른쪽에서 소리가 들리면 오른손을 들고, 왼쪽에서 소리가 들리면 왼손을 들어야 했는데, 이 방향을 계속 틀렸다. 처음에는 장난스럽게 낄낄대던 아이들은 내가 정말로 모른다는 것을 깨닫고 차츰 당황하기 시작했다. 그러자 선생님은 얼굴을 찌푸리고 기록부에 '정상'이라고 적어넣은 다음 나를 제 자리로 들여보냈다. 지나는 말로 병원에 가 보라고 했던 것 같기도 하다. 나는 사실 귀찮을만큼 소리를 잘 들었다. 방 안에 가만히 앉아서 안방의 TV소리를 들었고, 방 안에 누가 손목시계라도 두고 간 날이면 끝내 찾아내어 문 밖으로 치워야 잠이 들었으며, 4분단 끄트머리에서 1분단에서 수다를 떠는 아이들의 말소리를 분간해 낼 만큼 예민했다. 그래서 병원에 가지 않았다.

대신 나는 길을 쉽게 잃어버렸다. 오른쪽 왼쪽을 제대로 구분하지 못한다. 지하철 방송에서 내리실 문이 왼쪽이라고 하면, 나는 일단 몸에 힘을 빼고 지하철이 가속하는 방향을 잡은 다음 그쪽으로 고개를 돌리고 양 손가락으로 '가'자를 그려 본다. 잘 그려지는 쪽이 오른쪽이다. 다른 사람들은 글자를 써 보지 않아도 오른쪽과 왼쪽을 구분한다는 것은 최근에야 알았다. 나는 누가 길을 물어보기라도 하면 손가락으로 글씨를 써서 방향부터 확실히 해 본 다음에 설명해 준다. 그러지 않으면 손짓과 말과 시선이 제멋대로 논다. 이런 내가 길안내 활동을 한 적이 있다는 것은 기적이다. 2인 1조였기 때문이었으리라. 돌이켜 생각하면 그 곳에서도 나는 민폐거리였다. 지금까지 남을 돕겠다고 나서서 제대로 한 일은 별로 없었다. 그나마 공부는 하는 것 같았는데 시험에 떨어져 버렸다. 제대로 한 일이 없다는 말을 하니 생각나는데, 오늘 아침에 이불을 개어 놓지 않고 나온 것 같다. 아니, 개었던가? 머리가 멍하다. 흔들, 흔들. 어쨌든 나는 의욕만 넘칠 뿐 실제로 도움이 되는 인간은 아니다. 집에서도 그렇고 밖에서는 더 심하다. 내가 아이를 낳아 보고 싶다고 하자, 오래된 친구 모양은 진심으로 그 아이의 미래를 걱정했다. 나도 걱정스러웠기 때문에 기분이 나쁘지 않았다. 나는 많은 것을 당연하게 받아들였고 손에 쥔 것을 놓을 줄 몰랐다. 앞에 등장한 모양은 내가 사회복지를 전공으로 택했을 때에도 진심으로 당황했다. 걱정이 많은 친구였다. 하지만 구구절절 옳은 말이라 조금도 기분이 나쁘지 않았다.

목이 뻣뻣하다. 오전에는 책상에 엎드려 푸우 쿠션을 끌어안고 잠시 졸았다. 정장을 하고 마이크를 든 푸우 선생이 나타나서 하자의 치유와 전환에 대해 설명했다. 정장과 노란 얼굴이 영 어울리지 않았다. 행정수도 이전 헌법소원이 제기되었다. 2004년 하반기 주요 판례가 하나 늘었다. 여기는 독서실. 옆 책상에서 행정법 동영상 강의를 듣던 사람은 책을 펼쳐놓은 채 나갔다. 그 옆의 남자는 아까부터 싸이질을 하고 있다. 내 뒷자리 사람은 주식 시세를 들여다본다. 이천사년칠월십삼일비오는중부지방어느독서실지하일층. 어둠은 눈앞에 있지만 밤은 아득히 멀다.

2004년 7월 11일 일요일

2004년 7월 11일 일요일 : 아는 여자

승민오빠와 신촌 아트레온에서 조조로 장진감독의 영화 '아는 여자'를 보았다. 아주 괜찮은 영화였다. 추천. 이나영, 정재영도 실로 적역이고, 장진감독의 유머감각도 적당한 순간에 알맞게 빛을 발한다. 소소한 내용을 알고 보면 재미가 없을 영화이니 여기까지.

영화를 본 다음에는 홍대쪽 치뽈리나에 갔다. 네 가지 치즈를 넣어 만든 7월의 피자를 먹어보기로 했다. 전채로 예전에는 따로 구운 빵을 주었는데 이번에는 피자 도우를 그대로 준다. ; 어쨌든 7월의 피자는 7월이 가기 전에 한번 더 가서 먹기로 결심했다. 치즈를 좋아한다면 괜찮을 듯. 토마토 소스 뇨끼도 그럭저럭 만족-이만하면 서울 시내에서 뇨끼를 잘 만드는 축에 넣을 만 하다.




7월의 피자

토마토 소스 뇨끼

식사가 끝날 즈음부터 오빠의 PDA로 로켓마스터 게임을 했다. 순위에 올라 보려 '리브로'로 옮겨간 다음까지 한참 동안 게임에 몰두했는데, 막상 끝내고 보니 순위에 오르긴 했지만 easy레벨로 했기 때문에 medium 레벨로 게임을 한 오빠와 순위표가 달라 소용이 없어져 버렸다. 훌쩍. 리브로에서는 나는 카푸치노, 오빠는 카페라떼. 게임을 하고 나니 몹시 졸렸다. 어리버리 졸면서 오빠의 PDA를 좀 더 가지고 놀다가 아티누스에 잠깐 구경을 간 다음, 한양문고에서 만화책 구경을 하고 집에 들어왔다. 이상하게 계속 졸렸다. 돌아오는 길에 비가 조금 왔다.

2004년 7월 10일 토요일

2004년 7월 10일 토요일


제이표 인수오빠 초상

인수오빠의 감상



토마토 바질 샐러드

12일에 입대하는 인수오빠와 저녁식사를 했다. 점심을 늦게 먹고 오셔서 압구정 스타벅스에서 체스를 한 판(졌다), 백가몬을 한 판 둔 다음 여섯 시 반쯤 되어 라리에또로 자리를 옮겼다. 식후에는 배가 불러 어슬렁거리며 고속터미널로. 일단 차표부터 산 다음 영풍문고를 둘러보았다. 어린이용 학습 키트가 있어 주물럭 주물럭 작품을 하나 만들어 보았다.


우주선 발사대

여덟시 반 버스로 대전에 내려가는 오빠를 벌컨식 인사로 배웅하고 집에 왔다. 대림역이 굉장히 넓다는 것을 그새 잊어버리고 7호선에서 2호선으로 갈아타는 길을 택하는 바람에 몹시 고생했다.

2004년 7월 9일 금요일

2004년 7월 9일

자리가 파할 때쯤, 누군가 마감 이야기를 꺼냈다. 머리를 감싸 쥐고 괴로워하는 이들과 달리 느긋하게 앉아 있던 상현님.

상현님: 아아, 내 마감도 벌써 며칠이나 지났더라.
제이: 저런. 상현님은 참석자 명단에서 뺄까요?
상현님: 우리 편집자는 그 홈페이지 모르니까 괜찮아요. 게다가 나는 (씨익 웃으시며) 바로 어제 편집자에게 이번에는 정말 좋은 작품이 나올 것 같다고 메일을 보냈거든.
제이: (엄지손가락을 치켜들며) 오오옷! 프로페셔널! 그것이 바로 프로의 세계군요!
상현님: 그런데 편집자가 나보다 더 프로야.
제이: ?
상현님: 답장을 안 하더라고.

2004년 7월 8일 목요일

2004년 7월 8일 목요일

모님의 표현을 빌리자면 너무 놀기 좋아하는 우리들 심각하고 테크니컬한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장르의 미래를 걱정하는 사람들이 얼마 전에 신림동민이 되신 송경아님 댁에 집들이 겸 모였다. 박상준님, 안진수님, 이수현님, 김상현님, 나, 익명을 요구한 모님, 집주인인 송경아님 이렇게 일곱 명이 모여 왁자지껄 바글바글 재미있게 놀았다. 수현님과 상현님, 익명의 모님께선 하필이면 2호선이 멈춰섰을 때 지하철을 타신 바람에 한참 고생하셨다.

바닐라 코크



확산하는 케이크


(라슈펠님의 클리에로 찍은 사진 두 장)

도저히 배달 중국집의 음식이라고 믿어지지 않는 훌륭한 해물 전문 중국 요리를 시켜서 ㅡ같은 지역 주민인 상준님께서는 메뉴판을 챙겨가셨다ㅡ배불리 먹은 다음 각자 준비해 온 술, 바닐라 코카콜라(엽기), 홍차, 브리치즈 등을 하나씩 제 12 차원으로 보내 버리며 신나게 놀았다. 마무리로는 '밝은 미래를 향해 확산하는 초'를 꽂은 초컬릿 케익. 카메라가 없어서 무척 아쉬웠다. 어찌나 재미있었는지 모두들 열한 시가 되어서야 '벌써 시간이 이렇게......!'라고 깜짝 놀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나는 '마치 이런 날을 위해 별도로 준비한 것 같은 텅 빈 지갑'을 들고 덜렁덜렁 가서 재미있게 놀고 수현님으로부터 책까지 받아왔다. 아유, 쑥스러워라.

2004년 7월 7일 수요일

2004년 7월 7일 수요일

내 홈페이지 카운터는 들어오는 경로를 추적해 준다. 검색 엔진에서 어떤 검색어를 사용해서 내 홈페이지로 들어오게 되었는지, 직접 주소창에 주소를 쳐서 들어온 사람이 몇 명인지 등을 알 수 있어 꽤 유용하다. 그런데 가끔은 목록에 전혀 엉뚱한 링크가 등장하기도 한다.

예시 링크

대체 뭐냐.....!

2004년 7월 3일 토요일

2004년 7월 3일 토요일 : 스파이더맨 2

동진님과 신촌 아트레온에서 스파이더맨 2를 보았다. 아홉 시 조조. 나는 늦을까봐 너무 걱정한 나머지 영화 시간을 여덟 시로 착각, 아침 여섯 시 반이라는 경이적인 시각에 일어나서 일곱 시 반에 신촌에 도착해 버렸다. 문이 꽁꽁 닫혀 아무도 없는 영화관 매표대를 보며 '천하의 제이님이 영화를 보아 주시기 위해 친히 왕림하셨는데 어째서 문을 열고 환영하지 않느냐!'라고 외쳐 보았으나 소용없었다. 예매 확인서를 꺼내 보고서야 착각했다는 것을 깨닫고, 근처 스타벅스로 가서 여덟 시 반까지 베이글을 뜯어먹으며 번역을 했다.(노트북이라도 있어 다행이었다.)

스파이더맨 2는 정말 훌륭한 속편이었다. 진짜 재미있었다.

스포일러 가능성 있음(계속 보려면 열기)


이태원에 있는 프렌치 비스트로 '르 생떽스'에 가서 브런치를 먹었다. 아스파라거스 스프가 맛잇었고, 브런치 플레이트는 보기보다 양이 많았다. 사진은 찍지 않았지만 요전에 먹었던 와인사과절임도 먹었다. 식사 시간 내내 동진님과 스파이더맨 2를 찬양했다.


바게트

아스파라거스 스프

전채

브런치 플레이트


에스프레소

너무 배가 불러 비틀거리며 지하철을 타고 압구정 커피집으로 이동. 나는 번역, 동진님은 독서. 간 김에 커피도 100그램 사 왔다.집에 들어가 보아야 할 것 같아 다섯 시쯤 일어섰다.

귀가길에 지하철이 너무 붐벼 홍대입구역에서 버스를 타기 위해 내렸다. 환승이 무료이니 다리를 바로 건너 집 앞에서 서는 버스가 나을 것 같아 그랬는데, 굉장히 고생하고 말았다. 어째서 일 년이 넘도록 숱하게 타고 다니며 십 분 이상 기다려 본 적이 없는 버스가 삼십 분이 지나도 안 오냐고! 설마 설마 하며 기다리다 삼십 분이 넘어서야 온 만원버스에 승차, 집에 도착하니 여섯 시 반이었다. 홍대에서 집까지 한 시간이라.....심시티 즐.

2004년 7월 2일 금요일

2004년 7월 2일 금요일

인수오빠 송별회를 했다. 원래는 인도음식점 타지마할에서 하기로 했으나, 하필 오늘 저녁에 40명 예약 손님이 들었다기에 너무 시끄러울 것 같아서 모글로 장소를 옮겼다. 참석자는 에라오빠(유창석님), 박상준님, 김상훈님, 인수오빠, 나.


스타트렉 보이저 시즌 2 DVD 세트


소니 T1

소니 T1 (커버 열었을 때)

T1 크기비교

이제 대전으로 짐을 옮긴 인수오빠는 일요일까지 서울에 있기 위해 짐을 안쓰러울 만큼 한가득 싸 왔다. 그 중에 있던 재미있는 물건 두 가지. 보이저 DVD는 정말 포장이 허술하다. 플라스틱 뚜껑 하나만 달랑 열면 끝이라니. 절약형 포장이라고 가격이 크게 저렴한 것도 아니면서. 소니 디카 T1은 꽤 작고 귀여웠다. 렌즈 커버가 옆이 아니라 위아래로 열리는 것이 특이했다. 인수오빠 말로는 노이즈가 심하고 화이트 밸런스도 엉망이라지만 생김새만은 감탄할 만 하다.




탄두리치킨

양갈비

저녁식사는 즐거웠다. 모글의 탄두리 치킨이 꽤 맛있다는 것을 알게 된 것도 뜻밖의 수확. 곧 점심 식사 가격을 50% 할인하고 세트 메뉴도 만든단다. 식사가 끝나자 에라오빠는 다른 약속이 있어 먼저 자리를 뜨시고, 남은 얼짱클럽 멤버들은 애비(Abby's Book Nook)로 몰려가 여덟 시까지 책 구경을 했다. 상준님께선 책장 한켠에 있던 비디오 테입을 공짜로 얻으셨다. 나는 함장병에 걸린 셔트너의 스타트렉 TOS 하드커버 뒷면 사진을 들이대며 인수오빠를 공격했다. 지난 달에 제값을 다 주고 샀던 하트코트 TBP판 'Towing Jehova'가 깔끔한 책으로 한 권 있어 아까웠다. 요전에 눈여겨 보았으나 사전 정보가 없어 그냥 두고 왔던 실버버그 편집 단편선(제목미상)에 대해 상훈님께 여쭈어 보았더니, "그저 그래요."라는 답이 돌아왔다. 바로 옆에 꽂혀 있던 고든 R. 딕슨의 책을 대신 추천하지만 않으셨다면 믿었을 거다.

애비를 나와 차 마실 곳을 찾아 방황했다. 이태원에는 찻집이 없으니 미리 계획을 세워 두었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해 길에서 왔다 갔다 하며 시간을 좀 흘려보냈다. 도중에 정크에서 공지를 본 아저씨들께서 인수오빠에게 전화를 몇 통 주셨다. 나, 인수오빠, 상준님은 신림동(녹두)로 가자고 했으나 집에 가는 길을 몰라서 안 된다는 상훈님의 격렬한(?) 반대에 져서 결국 택시를 타고 종로 국세청 건물에 있는 '탑클라우드'로 갔다.

기사아저씨: 종로 어디로 갈까요?
상훈님: 그 건물 이름이 뭐죠? '종로타워'?
나: 그...왜, 저기, 이상하게 생겨서 가운데에 구멍이 뻥 뚫린......세금 거두는 데요.
상훈님: 맞아 세금.
나: 세무서, 세무서.
인수오빠:아아, 국세청 건물 말이구나.
나: 응. 비슷하네요!
인수오빠:......규모가 너무 다르쟝.-_-;

전망'만' 좋다는 말을 들었던 탑클라우드. 전망은 정말 좋았다. 엘리베이터의 속도가 유달리 빨라, 33층에 도착하니 귀가 멍-했다. 운좋게도 들어가자 마자 창가 자리가 하나 비어 아래가 잘 내려다보이는 곳에 앉을 수 있었다. 상훈님과 상준님은 생맥주, 나는 레몬 어쩌고 하는 무알콜 칵테일, 인수오빠는 (홍차가 메뉴에 없어 좌절한 다음) 블랙 러시안.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고 각자 꺼내 놓은 물건을 구경하며 놀았다.

상훈님:(창 밖을 보시다가) 이거 이렇게 보니 완전 쿼런틴이네.
상준님: 그러게, 별이 안 보이네.
인수오빠: (두 팔을 들며) 별들이 사라졌다아아!
나: (덩달아 팔을 들며) 우어어엇!


심시티의 밤

인수오빠의 PDA폰으로 엠에스엔에 들어갔다가 동진님과 연락이 닿았다. 상훈님께서 같이 술 마실 사람을 모집한다는 포스팅을 올리셨던 김상현님에게 연락해 보자고 하셨으나 아쉽게도 연락처를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열 시쯤 동진님께서 오셨고ㅡ동진님께서 메뉴에 없는 홍차를 주문하시자 두 번째 잔으로 무알콜 칵테일을 마시고 있던 인수오빠가 몹시 좌절했다.ㅡ , 잠시 후에 상준님께서 먼저 일어나셨다. 넷이 남자 초등학교 동창인 동진님과 상훈님께선 '아는 만화영화 주제가 부르기 배틀'을 시작하셨다. 세대도 다르고 일어도 모르는 나와 인수오빠는 우리끼리 아는 노래를 짚어보며 놀았다.

열한 시가 다 되어 일어났다. 분위기에 들뜬 탓인지 다음날까지 계속 흥분 상태였다. 인수오빠의 입대는 아직까지도 별로 실감나지 않는다.

2004년 7월 1일 목요일

2004년 7월 1일 목요일



명박이 심시티 버전 2.0 (1.0은 서울광장) 베타테스트 날. 버그에 먹혀 고생할까봐 나가지 않고 집에 있었는데, 역시나 렉이 심하다는 소식이 들려오누마.

아우님이 머핀을 만들어 커피를 곁들여 먹었다. 호두머핀, 초코칩 머핀, 녹차머핀. 건포도도 넣었다. 처음 만들었는데 따뜻하고 말랑말랑하고 무척 맛있었다. 아우님 만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