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 7월 25일 일요일

2004년 7월 25일 일요일 : 지휘자 함신익과 대전시향의 말러 사이클, '죽음 그리고 부활'


프로그램
모차르트 중성자의 장엄한 저녁기도 K.339
말러 교향곡 제2번 다단조 '부활'
(소프라노 전소은/ 메조소프라노 장현주/ 테너 이완준/ 바리톤 최현수
대전시립합창단/ 안산시립합창단/ 윤학원 코랄)

탁월했다. 대단했다. 훌륭했다. 이런 교향악단의 연주를 자기 동네에서 매달 영화 한 편 값으로 볼 수 있다는 대전 시민들이 부러웠다.

내가 대전시향을 눈여겨 보기 시작한 것은 2003년 교향악 축제에서 말러 5번을 들은 이후부터였다. 지방 교향악단에 대해 혹시라도 있을 선입견을 완전히 날려버리기에 충분한 인상깊은 연주는 함신익과 대전시향 둘 다를 단단히 각인시켰고, 이후 나는 혹시 대전시향이 서울에서 한 번 더 공연을 하지는 않을까, 어디 나오지는 않을까 하고 관심을 가지고 지켜보았다. (오죽하면 교향악 축제 직후에는 대전에 내려가 볼 생각까지 했으랴.) 이후 KBS 유선방송 같은 곳에서 대전시향의 연주를 우연히 몇 번 보기는 했으나, 2004년 교향악 축제에 대전시향이 불참하면서 대전시향의 실황을 다시 볼 기회는 점점 멀어져 가는 것 같았다.

그러다 이번 미국 순회 공연 이후의 전국 순회 공연으로 예술의 전당에서 대전시향이 공연을, 그것도 말러 2번을 한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의 반가움과 기대야 굳이 자세히 말할 필요도 없으리라. 아우님과 예술의 전당에 허겁지겁 들어가자마자 모차르트의 저녁기도가 시작되었다. 사실 나는 '부활'을 들을 생각에 너무 긴장하고 있었기 때문에, 저녁 기도에는 그다지 관심을 기울이지 못했다. 합창단이 합창단석이 아니라 무대에 선 것이 이상하다고 생각했을 뿐이다. 제대로 듣기 시작한 것은 두 번째 곡 부터로, 합창단이 안심할 만한 실력을 갖추었다는 생각이 들자 마음이 놓였다. 아무래도 기도곡은 종교가 없는 내게는 크게 와닿지 않는다. (아참, 아직 솔리스트들이 박수를 받고 있는데 굳이 늦은 관객들을 들여보내는 예당의 행동에 대해 한 마디 하지 않을 수 없다. 연이어 다음 곡이 있는 것도 아니고, 바로 인터미션인데 그 일이 분을 못 맞춰서 들어가는 사람들, 나간 사람들, 박수치는 사람들이 뒤섞이게 만드나.)

그리고 말러 2번. 이 곡의 무게야 말해 무엇하리. 이번 사이클의 부제 '죽음 그리고 부활'을 두고 나는 '죽음(1) 그(2)리(3)고(4) 부활(5악장)'이라고 혼자 농을 쳤다는 점이나 적어 두자. 대전시향의 연주는 흠잡을 곳이 거의 없었다. 관악 파트, 특히 금관 쪽은 '히야'하는 감탄사를 절로 뱉을 정도로 뛰어났고 타악 파트의 힘과 타이밍도 절묘했다. 현악은 두드러지지 않았으나 이는 현악 파트가 조금만 처져도 확 표시가 나는 곡임을 감안하면 별 실수 없이 잘 했다는 뜻도 된다. 지휘자나 단원들이나 자신감을 가지고 공연에 임하고 있다는 것이 뚜렷이 보였다. 머뭇거림 없이 쭉 내뻗는 음색이라니! 이만하면 세계 어디에 내어 놓아도 부끄럽지 않다.

"Mit Flugeln, die ich errungen/ Werde ich entschweben!/ Sterben wed' ich, um zu leben!'
(나는 쟁취한 날개를 달고 날으리/ 나는 살기 위해 죽으리라!/ 부활하리라!)

곡이 끝나자마자 일어나지 않을 수가 없었다. 박수를 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오버하지 않으려고 했는데도 눈물이 절로 고였다. 내가 앉은 C열의 관객들 중 4/5는 기립했던 것 같다. 한참 박수를 치고 소리를 지르다 혼이 빠진 기분으로 자리에 앉아 앵콜을 듣고 - 당연히 앵콜을 안 할 줄 알았는데 해서 조금 뜻밖이었다- 집에 왔다. 지금 막 고클에 들어가 보니 벌써 '대한민국에서 부천[시향]의 말러 시대는 갔다'는 제목의 감상이 올라와 있다. 말러 실황이 제대로 있지조차 않던 시기와 말러 실황이 있기는 한데 들어주기 힘든 경우가 많던 때를 넘어, 이제 제대로 된 공연의 시대가 열렸는지도 모른다. 탁월한 지휘자와 지방정부의 전폭적인 지원이 지방 교향악단의 수준을 여기까지 끌어올릴 수 있다는 점이 놀랍다. 다음 달 말일에는 서울시향이 같은 곡을 들고 요한 레비를 초청하여 특별 연주회를 한다. 서울시향의 부담이 상당하겠다.(게다가 서울시향의 공연은 티켓값도 대전시향의 두 배가 넘는다.) 아무쪼록 서울시향도 이번 대전시향의 공연을 참고삼아, 서울시향 나름의 실력을 보여주길. 서울시향도 금관악은 믿을 만 하니, 현악 쪽만 어떻게 좀 수습하면......(먼 산)

댓글 2개:

  1. 대전시향의 말러 연주. 정말.정말.정말. 훌륭하였지요^_^)!! 저같은 초보도 굉장하다 굉장하다 느꼈으니까요. 늦게 도착하는 바람에 저녁기도는 로비에서 들었지만요-_- 저도 C열이었는데 그렇게나 많이 일어섰던가요? 박수치느라 몰랐네요^_^) 그렇게 많은 분들이 그렇게 오랫동안 박수치는건 제겐 처음이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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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네. 이만큼 열광적인 공연을 만나기란 쉽지 않지요. 좋은 공연 보셨네요. :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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