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 7월 18일 일요일

2004년 7월 18일 일요일 : 토비아스 레버거 展

사진출처: 아트선재센터 웹사이트



토요일에 질리도록 잔 덕분에 비교적 일찍 일어났다. 씻고 비비적거리다(...) 가방을 챙겨 나섰다. 처음에는 지하철을 타고 곧장 아트선재센터로 가려 했으나, 도중에 비가 조금 와서 집으로 돌아와 우산을 챙기고 나니 다시 지하철 역까지 걷기가 싫어져서 가까운 버스정류장으로 방향을 틀었다. 홍대 스타벅스에서 한참 원고를 하다 문득 시계를 보니 세 시가 넘었다. 주섬주섬 가방을 싸서 지하철을 탔다.

토비아스 레버거 전시회는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2층의 첫 작품인 '커뮤니케이션 테러'는 스크린 안에 영화 '캐스트 어웨이'의 고립 장면을 편집해 넣어 관람자에게 스크린을 통과한 빛의 번쩍임을 보여주는 영상물로, 무심코 지나지 않고 한참 쳐다보면 정말 무서워지기는 한다. 어느 현대 작곡가의 현악곡 1악장이 떠올랐는데, 아무리 궁리해도 작곡가의 이름이 정확하게 기억나지 않아 괴롭다.(이거 생각하다가 잠 못 들겠다.) 그 다음 작품 '비디오비블리오테크'는 폐쇄된 케비넷 열 개 안에 영화를 집어넣어 상영하는 설치물로, '커뮤니케이션 테러'와 마찬가지로 관람자에게 정확히 보이지 않는 빛과 영상을 이용하여 폼을 잡았다. 영상과 빛과 화려한 캐비넷 사이의 어긋남을 활용한 발상은 감탄스러웠으나 일곱 상자는 어른용, 세 상자는 아이용으로 나누고 아이용이랍시고 검은 바탕에 토끼며 별, 달 무늬를 그려 넣은 것은 기가 막힐 만큼 식상했다. 차라리 하지 말지. 2층 전시장 한가운데에 있는 만들다 만 가구며 그릇들은 아트선재센터 개관 5주년을 기념하는 신작 'Some Sized Parents to a Semi Defined O-Space'이다. 실제로 사용할 수 없는 가구를 통해 공간 활용을 제안 어쩌고 하는데, 첫 인상은 '정말 조악하구나!'였다. 한쪽 벽에 제멋대로 붙여 놓은, 피를 잔뜩 빤 직후에 손바닥에 맞아 죽어버린 모기를 오십만배 확대해 놓은 것 같은 갈색+붉은색 테이프 뭉치가 그나마 제일 마음에 들었다. 나가려던 차에 도슨트 설명이 시작되어 들어보니, 레버거가 제안한 기본적인 관념을 바탕으로 아마추어들이 만든 작품이란다. 그 말을 들으니 그토록 조악한 느낌이 든 이유는 수긍이 갔다. 작가가 의도한 부분인지는 둘째 문제지만.

가장 유명한 작품이기도 한 위 사진의 '7 ends of the World'는 꽤 인상깊었다. 처음에 사진을 보고 짐작했던 인공조명과 자연광의 차이를 전복적으로 이용한 작품은 아니었지만, 한참을 바라보고 서 있을 만큼 아름다웠다.

전시 전반을 평하자면 '힘은 없으면서 쓸데없이 폼을 잡는 불친절한 작가'라는 느낌이다. 설명 없이도 관람자에게 파고들 수 있는 충격이 거의 없고, 그 설명이라는 것 자체가 복잡하고 얄팍하다. 내 취향은 아니라는 결론.

아트선재에서 나와 지하 1층 서울아트시네마의 상영표를 들여다 보았다. 다섯시나 다섯 시 반 영화를 한 편 보고 갔으면 했으나 하필이면 '종교 재판소'를 해서 부득이 그냥 발걸음을 돌렸다. 이제 아트선재에서 공간을 안 내어주면 서울아트시네마는 어디로 가려나. 몇 명이서 쪼그리고 앉아 비디오만 틀어 놓아도 할 수 있는 것이 시네마테크 운동이고, 요전 좌담회에서도 느꼈듯이 한국 시네마테크의 이데올로기나 주체의식이 붕 떠버린 상황이기는 해도 역시 이런 식으로 소중한 공간 하나가 문을 닫는다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중간에서 애쓴 사람들만 빈 손으로 허탈함을 곱씹겠지. 폐관 전 '일본 애니메이션의 원류' 상영회에나 잊지 말고 가야겠다.

인사동길을 걸으며 사람들을 구경했다. 낮에 인사동에 나온 것이 꽤 오랜만이다. 초상화 그리는 사람, 물건 구경하는 사람, 춤패들.......구경하니 재미있긴 했는데 배가 고팠다.; 종로로 나와 '카페 뎀셀브즈'에 가서 샌드위치를 한 쪽 먹고 노트북을 펼쳤다. 한참 쓰다 고개를 드니 창 밖이 어둡다. 해가 지기 전에 집에 들어가야 할 것 같아서 자리를 정리하고 버스를 탔다. 홍대에 가려다가 홍제로 가는 바람에 서울 시내를 돌고 돌다가 여덟 시쯤 간신히 무사히 귀가했다. 저녁으로는 군만두를 만들어 먹었고 후식은 녹차 아이스크림. 원고는 백 매쯤 쓴 것 같다. 알찬 주말이었다.

댓글 1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