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 7월 14일 수요일

2004년 7월 14일 수요일 : 잡기

용진군이 제주에서 아침 일곱 시 비행기로 올라왔다. 하루방 오렌지 초컬릿도 가져왔다. 용진군과 초컬릿 둘 다 반갑다. 홍대 제니스에서 점심식사를 하고 비하인드에서 이야기를 나누었다. 용진군이 보고 싶다기에 1300k 홍대점과 리브로 아티누스에도 잠깐 구경을 갔다. 노트북이 묵직하게 어깨를 눌렀다.

지난 주부터 하루에 50매씩 정신없이 달렸다. 돈을 벌기 위해 하는 일과 돈을 쓰며 하는 일에 대한 기대치가 다른 것을 너무나 당연하게 생각해 왔기 때문에, 홍모님의 질문에 몇 줄 짜리 댓글로 어떻게 답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축구 시합을 한단다. 경기장에 들어선 상대팀 선수들을 보며 식당 아저씨가 '뭔 깜둥이들이 저래 많나.' 한다. 농담이라고 하는 것 같았다. 나는 아무 말 없이 고개를 숙이고 자칭 삼겹 두루치기를 젓가락으로 몇 번 휘저었다. 고추장물이 파란 티셔츠에 튀었다. 애국가가 들렸다. 이 옷은 손세탁을 해야 한다. 기분이 나빠지려 했다. 하지만 바나나를 큰 것으로 가져왔으니 괜찮다.

재등록을 하려고 독서실 사무실의 창을 두드렸다. 며칠 전에 새로 들어온 총무는 노트를 넘겨보더니 "이번 달로 육 개월이 지나서 등록이 일주일 연장되었는데요?"란다. 엉겁결에 "앗차, 깜박했네요. 고맙습니다."라고 말하며 방긋 웃고 돌아섰다. 사실은 그런 제도가 있는 줄도 몰랐다. 나는 가끔 모르면서 아는 척을 했다. 알면서 모르는 척을 할 때도 곧잘 있었다. 보고도 못 본 척을 하기도 하고, 못 보고서 본 척을 하기도 했다. 덕분에 세상과 상큼하게 어울릴 수 있었다.

어렸을 때 나는 동생이 다른 아이들과 시비가 붙으면 동생 편을 들지 않고 자초지종을 들어본 다음에 동생이 잘못한 것 같으면 동생을 야단쳤다. 어머니는 그런 나를 서운하게 생각했다. 동생은 나와 약속한 비밀 이야기를 어머니에게 했다. 베리따스 룩스 메아로 살았더니 왕따가 되었다. 베리따스의 베리(ver-i)는 라틴어로 참, 진실을 뜻한다. 여기에서 영어 단어 very가 나왔다. 참말만 하고 살면 참말로 곤란해진다는 뜻이다. 역시 옛날 사람들은 아는 것이 많았다.

독서실이 일 주일 연장된 덕분에 당장 다급한 일을 피할 수 있게 되었다. 여전히 비가 온다. 상큼한 세상이다.

댓글 7개:

  1. 헉 냥날에게 veri 는 virtue 라고 해버렸는데-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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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오홋. 이틀 연속으로 루크님 스타일인가요 0_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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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정훈님/ virtue의 어원은 힘이라는 뜻의 virtus.;;

    as님/ 흐흐. 그런데 루크님께서 쓰시는 글은 재미있는데 제 글은 조악해 보여서 이제 그만하기로 했어요. 쓰는 재미도 별로고요.(어쩐지 기분이 나빠짐) 이번 변화는 이쯤에서 끝내고 다음 일기부터는 원래 쓰던 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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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음, 그래서 글을... 창작하고 달라서 그리 염려하지 않으셔도 될 것 같은데요. 시중에 널린 저 경악할만한 번역본들을 보시압. 최소한 "돈을 받고 하는 일"이라고 의식하지 않는 이들도 많답니다. 또는 의식은 하지만 몸과 마음이 뒤따라주지 못하는 사람들? 두 가지 부류 모두 번역을 해서는 안될 사람들이 되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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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 읽고 있노라면 어느새 기분이 좋아지는 호주 시인 Steven Herrick의 책을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기분전환하셔야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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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 호오~그런데 그 비밀 이야기가 도대체 뭐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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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 옛날옛적 상큼하지 못하던 시절의 이야기요, 어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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