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 10월 27일 금요일

2006년 10월 27일 금요일

오전에 학교 수업을 듣고 (흄-이제는 숭배하고 있다.) 신림사거리로 내려가 지구정복비밀결사 신림분회 모임을 했다. 참석자는 신림지역 활동원 n명.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며, 활동원 c님이 최근 계획하시는 여러가지 일에 대해 심도 있게 논의했다. 저녁에 퇴근하신 a님이 오셔서, 만화할인매장에 들러 만화책을 잠시 구경한 다음, a님이 추천하신 태국음식점 '파타야'에 갔다. 관악구청 근처에 새로 문을 연 곳으로 이태원/압구정의 파타야와는 무관한 듯 하다. 음식인류학을 전공하고 지금 강의를 하고 있는 분이 공동 운영자시란다.

너무 배가 고팠기 때문에 묵묵히 밥부터 먹은 후 - 맛있었다. 서울대입구역 근처에서 마땅히 갈 곳이 없어 늘 고민이었는데, 아마 앞으로 종종 찾게 될 듯. 사진기를 안 가지고 가서 아쉬웠다. - 다시 회의. 식사가 끝날 때 즈음 s님에게 번역자의 말을 내일 오전까지 써 보내 달라는 전화가 와서, 번역자의 말 쓰기가 얼마나 어려운가에 대한 얘기가 잠시 나왔다. 그런데 듣다 보니 그 책이 내가 애타게 기다리고 있는 [제인 에어 납치 사건]의 후속작, [카르데니오 납치 사건]이 아닌가!

제이: (훠이 훠이) 가세요! 가셔서 얼른 쓰세요!
M님: 그러면 제이님이 대신 쓰세요.
C님: 대리 번역이 아니라 대리 후기? s님은 "일곱 시간만에 한 장 다 썼다." 하시고, 출판사는 "우리는 한 사람에게만 청탁했다." 하고, 제이님은 일 년 있다가 "나는 고료도 안 받았다!"하고 폭로하시고......

이렇게 진지한 이야기를 하다 보니 어느덧 아홉 시 반이 되었다. 장장 일곱 시간동안 계속 말을 하고 들었더니 나중에는 몹시 지쳤지만, 굉장히 즐거웠고, 두근두근했다. 특히 개인적으로도 줄곧 관심을 갖고 생각하고 있던 부분이라 더욱 기대가 된다.

2006년 10월 26일 목요일

2006년 10월 26일 목요일

오전에는 화실에서 크로키를 했다. 몸 그리기는 얼굴보다 훨씬 어렵다. 늘 어딘가 커지거나, 작아지거나, 짧아지거나, 길어진다. 점심은 화실 바로 앞에 있는 '30년 전통 박찬숙 순대집'에서 먹었다. 맛있었다!

화실 수업이 끝난 다음에는 독일어 수업 전까지 원고를 할 요량으로 카페 뎀셀브즈에 갔다. 그런데 다섯 시 쯤 독일어 선생님이 전화하셔서, 학원에서 다른 회의가 있어서 오늘 보강을 못 한다셨다.(이 수업은 다음 주로 밀렸다.) 원래 수업이 없는 날이니 어쩔 수 없지, 하는 심정으로 나간 김에 원고나 더 하고 왔다. 요즈음은 일정이 널을 뛴다.

2006년 10월 25일 수요일

2006년 10월 25일 수요일

기호논리학 중간고사 날이었다. 평소보다 일찍 집을 나섰으나, 합정역에서 2호선 지하철이 연착되어 20분 정도 기다렸다. 게다가 연착된 다음에 오는 지하철은 신도림행. 서울대입구역에 도착하니 이미 열두 시 사십 분이 가까웠다. 버스를 타면 인문대까지 올라가는데 이십 분 이상 걸리기 때문에 (-_-) 급한 마음에 택시를 탔는데, 차를 출발시키며 기사님 왈, "그런데 인문대가 어디 있어요?"

......결국 문화관 앞에서 내려서 필사적으로 뛰었다. 열두 시 오십구 분에 교실에 들어서서 시험은 무사히 치렀다.

중간고사도 시험은 시험인지, 전날 공부하고 오늘 시험 치고 한국철학사 수업까지 듣고 나니 꽤 힘이 들었다. 그래서 독일어 수업을 목요일 저녁으로 미루고 집에 일찍 들어왔으나, 묘한 각성 상태가 계속되어 실제로 잠들기까지는 꽤 오래 걸렸다.

2006년 10월 23일 월요일

2006년 10월 23일 월요일

농생대에 있는 (비교적) 새로 생긴 식당, 두레미담에서 동기 미진, 보미와 점심을 먹었다. 농생대 건물에 처음 가 봤는데, 두레미담의 한쪽 벽이 유리창으로 되어 있어 관악산 중턱이 내려다보였다. 산이 보이는 쪽에는 일인용 바(bar)형 자리를 죽 놓아 두었던데, 그 자리에서 산을 바라보며 식사를 하고 싶더라.

후식으로는 대추차를 마시며 특히 보미가 최근 쓰고 있는 아시아 출신 외국인이주노동자 자녀의 교육환경에 대한 논문 이야기를 들었다. 왜 연구가 없나 했는데, 현장에 나가 보니 수도권에 거주하는 혼혈이 아닌 이주노동자의 자녀 수가 생각보다 훨씬 적더란다. 특히 예상과 달리 동남아 출신 노동자의 취학 연령대 자녀는 매우 적고, 있는 아이들은 대부분이 몽골 출신이다. 이것은 문화적인 이유 때문이다. 몽골에서는 가족이 함께 사는 것을 중요한 가치로 인식하기 때문에, 부모가 한국에서 어느 정도 자리를 잡고 나면 불법체류라고 하더라도 자녀를 데리고 온다고 한다.

흥미로운 이야기라 열심히 듣다가 그만 기호논리학 시간에 10분 정도 지각했다.

저녁은 동기 영호, 지홍, 그리고 02학번 수연과 후생관에서 먹었다.

2006년 10월 21일 토요일

2006년 10월 21일 토요일 : '오늘의 책'은 어디로 사라졌을까?

오전 열 시 반 쯤에 전션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최대한 멀쩡한 목소리로 받았다(고 생각했다). "응 전숑~"
"안녕 정션. 어, 자고 있었어?"
"아니, 가만히 누워서 눈 감고만 있었어."
".......미안, 자고 있었구나."
어떻게 알았지.;

낮에 어머니의 고모분 가족께서 오신다고 하셨다. 인사라도 드리려고 기다리다가, 예상보다 늦으시기에 그냥 나와 카페 뎀셀브즈에서 마끼아또 더블을 마시며 원고를 했다.

오후 세 시 이십 분 쯤 동진님과 만나, 대학로에 있는 이음 아트에서 연극 ['오늘의 책'은 어디로 사라졌을까?]를 보았다. 클럽발코니 회원이벤트에 당첨된 덕분에 처음으로 연극 시사회에 가 보았다. 원래는 무대에서 하는 공연이지만, 서점이 배경인 공연이라서인지 시사회는 진짜 서점에서 진행되었다.

연극은 '민주화 투쟁'의 막차를 탔던 사람들 내지는 386과 문민정부시대 학번 사이에 끼어 있는 사람들인 91학번들의 이야기를 다룬 것이었다. 문학부 동기였던 세 남자가 운동하다가 복역까지 했던 여자 동기가 개업한 헌책방에 모인다. 한때는 꽃병을 던지고 쇠파이프를 돌리고 밤새 술을 퍼마시던 이들은 이제 국문학과 박사과정을 자퇴한 백수, 일등신문 문화부 기자, 꽤 유명한 단편영화 감독이 되어 있다. [희미한 옛사랑의 그림자]와 [대학 시절]과 브레히트처럼 서점이라는 장소를 잘 활용해 의미를 담은 소재와, "대학 들어오고 첫 세미나 때 '지식인을 위한 변명'을 했는데, 군대 갔다 와서 복학해 보니 후배들이 '지식인의 종언'을 읽고 있더라." (요약) 같은 대사들이 인상깊었다. 대사와 관계설정이 무척 현실적이라 몰입해서 봤다. 단, 서점 바닥에 낚시용 의자를 줄세운 객석이 현장감 면에서는 일품이었지만(...) 두 시간 남짓 앉아 있기에는 너무 불편했던 점은 아쉽다.

연극 후에는 서태지, 시위, 85~92,3 학번대 사람들, 출연 배우들 등의 인터뷰가 담긴 영상물을 보았다.

저녁은 오랜만에 동대문역 근처에 있는 네팔음식점 에베레스트에서 먹었다. 볶음국수와 커리 둘 다 맛있었지만, 역시 커리에는 밥보다는 난이다. 그러게, 그냥 주인이 권하는 걸 먹어야 한다니까.;

집에 와서는 [The Absolute Sandman] 1권을 주문했다. 11월 출간 예정이었기 때문에 아직 안 나왔을 줄 알았는데, 벌써 나왔단 소식을 어제 A모님에게서 듣고 즉시 구입.

2006년 10월 20일 금요일

2006년 10월 20일 금요일

바쁜 하루였다. 오늘 동선은

집->사회대도서관->16동->6동->16동->사회대도서관->동원관->본부->중앙전산실->종로구 모 동 파출소->종로구 K출판사->종로 3가 카페 뎀셀브즈->종로 3가 학원->집 (헉헉)

오늘 짐은 :

집을 나설 때: 노트북(+어댑터), 노트 2권, 수첩, 수업교재 프린트 한 묶음, 필통, 소품주머니(주머니는 소형이 아님), 텀블러, MP3P, [십이국기] 3권, 포장한 미니머핀, 지갑, 번역 중인 책, 날짜도장, 비상식량(린트 70%), 함박웃음물수건
집에 올 때: 노트북(+어댑터), 노트 1권, 수첩, 필통, 소품주머니, 텀블러, MP3P, [살인의 진화심리학] 등 책 총 7권, 지갑, 번역 중인 책, 날짜도장, 비상식량, 물수건, 닥스 다크초콜릿

오늘 한 일은 :

1. 아스님께 책 돌려드리고
2. 수업: 서양근대경험주의 - 흄 (사모하고 있다.)
3. 수미언니에게 부탁했던 60주년 기념 할인도서전 책 몇 권 받아서 (동기 미진과 마주침) 사물함에 넣어 두고
4. 반가운 동기, 지훈과 동원관에서 식사(카레라이스)한 후 동원관 앞 벤치에서 이야기하고 선물로 닥스 다크초컬릿을 받고
5. 본부에 들렀다가 중앙전산실로 가서 네이버 지도 찾고
6. K출판사 가다가 파출소에 들어가 길 물어보고
7. 동사무소 앞에 그려진 번짓수 지도 보고(....전에도 갔던 곳인데!) 건물 찾아 들어가서
8. 오렌지 주스 마시고 계약서 쓰고 책 받고
9. 한참 기다렸다가 버스 타고
10. 버스가 종로 2가까지 가는 차라서 종로 1가에서 내려 3가 가는 버스로 환승하고
11. 카페 뎀셀브즈에 들어가서 로스트비프샌드위치+마끼아또 더블 먹으면서 원고 하고
12. 독일어 학원 가고
13. 집에 와서 부산서 올라오신 외조부모님께 방가방가 퐁퐁 뽀뽀 하고
14. 행담도휴게소 호도과자를 많이 먹고
15. H사 원고(단)와 B사 초고(오늘작업분량)를 인쇄하고
16. 일기를 쓴다.

오늘의 충격적인 사건은 :
전션으로부터, 맡은 일의 일정이 계획했던 여행 기간과 겹치게 잡혔다는 연락을 받았다. 비행기 표까지 예약했는뎃!

오늘의 느낀 점은 :
K사 사무실은 역시 멋지다. 나도 주인의 취향이 보이는 사무실을 갖고 싶다.

오늘의 기뻤던 일은 :
선물을 받았다. 외조부모님께서 오셨다. 집에 휴게소 호도과자가 있다.

오늘의 아쉬웠던 일은 :
수미언니를 못 만나서 책만 가지고 왔다.

오늘의 난감했던 일은 :
학원 텔레비전이 고장 나서, 동영상을 선생님 노트북 화면으로 봤다.

오늘의 다행스러웠던 일은 :
16일에 텀블러를 잃어버려서 18일에 새로 샀는데, 새 텀블러를 또 학원에 두고 나왔다. 다행히 금세 기억해 내, 돌아가서 챙겨 왔다. 또 잃어버렸다면 우울했을 터다.

오늘의 뿌듯했던 일은 :
일 관련.

오늘의 안타까웠던 순간은 :
외할머니 키가 더 작아지셨다.

2006년 10월 15일 일요일

2006년 10월 15일 일요일

추석 연휴가 끝나고, 하루하루가 평온하게 흘러가다 보니 일기를 쓰지 않는다. Books도 표지만 달아 놓고 미루어 놓았더니 이제 와서 쓰기도 귀찮고 힘들고......그리하여 간단히 근황.

10월 6일 금요일 (추석) - 루미큐브가 대히트.

10월 8일 일요일
추석이 간신히 끝난 일요일. 저녁을 차려 놓고 7시쯤 안방에 들어가 보니 어머니가 가만히 누워 계셨다. 30분만 주무시겠다고 한지 한 시간이 지났다. 어머니 얼굴 가까이에 몸을 숙이고 귀를 기울였는데, 숨소리가 잘 들리지 않아 덜컥 겁이 났다. 손등을 어머니 코 밑에 대어 보는 순간, 어머니가 깜짝 놀라며 깨셨다. "저녁 식사 하실 건지 여쭤 보려 왔어요. 왜 그렇게 놀라세요. 하하. 그럼 일단 덮어 놓을 테니 나중에 드세요." 하고 대충 얼버무리고 나왔지만, 사실은 무척 무서웠다.

10월 10일 화요일
영등포구청에 가서 여권을 만들었다. 성수기에는 새벽부터 기다려야 한다는 얘기가 많았기에 아침 일찍 서둘렀는데, 생각보다 훨씬 한산해서 접수 시작하자마자 끝났다. 참으로 오랜만에 '굿모닝 세트'를 먹었다. 일찍 일어나니 하루가 길었다.

10월 11일 수요일
중앙도서관에서 사회대도서관으로 내려가던 길에 이번에 복학한 동기 지훈을 만났다. 다음 주에 함께 식사 하기로 했다.

10월 12일 목요일
금요일의 성과에 고무되어, 일찍 일어나 원고를 했다. 화실에서는 크로키에 들어갔고, 화실 수업 후에도 해질녘까지 자판을 두드렸다. 정진정명 프리랜서 모드.

10월 13일 금요일
올해 박사과정이 끝나는 수미언니, 환경대학원에 다니는 혜수언니와 동원관 3층에서 점심식사를 했다.(참치스테이크) 혜수언니와는 작년 졸업식 후 일 년여만에 만났는데, 기억하던 그대로셔서 무척 반가웠다. 수미언니는 유학을 준비중이라니, 출국하기 전에 자주자주 보면 좋겠다. 혜수언니는 식후에 일이 있어 대학원으로 올라가고, 수미언니와 나는 언어교육원 1층에 있는 카페 FANCO에서 차를 마시며 한참 이야기를 했다.
저녁은 화실 선생님과 오무토토마토에서 먹었다.

기타등등

1. 개교 60주년 기념으로 학교 교문이 은색으로 새로 칠해졌다. 처음에 은색으로 한다고 했을 때는 반짝이는 펄을 생각했는데, 완성되고 보니 은회색에 가까운 진중한 느낌이다. 그래도 밤에 조명을 넣으니 제법 멋있다. 5년이나 10년마다 다른 색으로 칠하면 재미있겠다.

2. 9월 말 가을 축제 기간에 자하연에 큼지막한 '괴물' 조형물이 설치되어 있어 좋았는데, 사진을 찍기 전에 사라져 버렸다.

3. 역시 60주년 기념으로 교문과 미술관 사이에 이상한 조형물이 생겼다. 설치 초기에는 크립토나이트(주: 수퍼맨의 고향 크립톤에서 온, 수퍼맨의 힘을 약하게 하는 정체불명의 광석) 를 연상케 하는 모양이라 두근두근했는데, 이제 자주색과 청록색이 들어가서 그냥 조형물로 보인다.

4. 미묘한 쾌감의 제공자, 비열남 크렌셔 씨의 근황
“아하, 네......아렌델 씨로부터 당신이 장애인 고용 지원 조치를 비판하신다는 말씀을 들었습니다.”
“그런 식으로 말하지는 않겠소.” 크렌셔 씨가 말한다. “정말 필요한지 아닌지에 달려 있어요. 휠체어 경사로라든지 하는 것들은 좋지만, 소위 지원입네 하는 것들 일부는 그저 사치스런 - ”
“그리고 당신은 실로 전문가이셔서 무엇이 정말 필요한지 잘 아시는군요?” 크렌셔 씨의 얼굴이 다시 붉어진다. 나는 스테이시 씨를 본다. 그는 전혀 겁먹은 얼굴이 아니다.
(중략)
“당신들은 세금으로 먹고 살잖소. 이윤에 대해 걱정할 필요가 없지. 우리는 당신네들 따위에게 봉급으로 줄 돈을 벌어야 한단 말이야.”
“덕분에 맥주가 시원하시겠수."

2006년 10월 4일 수요일

2006년 10월 4일 수요일 : 라디오 스타

아우님과 불광CGV에서 [라디오 스타]를 보았다. 틀에 딱 들어맞는 '전통적인' 드라마로, 누구나 아는 이야기를 완급을 조절하며 잘 풀어나가 관객이 대단히 몰입하게 만드는 힘이 있었다. 뻔한 얘기를 뻔하게 하면서 뻔한 감동을 불러일으키기란 굉장히 어렵다고 생각한다. 줄줄 울면서 봤다.

영화를 본 다음에는 집에 와서 오랜만에 온 가족이 함께 식사를 했다. 내일부터 추석 연휴로 친인척 분들이 오시기 때문에 집 정리를 했다. 지난 주부터 차일피일 미뤄 왔던 복합기 설치와 책장 정리를 하고, 작년부터 찍은 폴라로이드 사진을 모두 스캔했다.

집에서 추석을 쇠니 소소하게 신경이 쓰이는 일은 많으나 막상 '명절'이나 '연휴' 다운 흥은 그다지 나지 않는다. 그래서 추석 연휴 한정 서비스를 마련해 보았다. (10월 7일 종료)

2006년 10월 3일 화요일

2006년 10월 3일 화요일 : 우회

용진군과 압구정 라리에또에서 점심을 먹었다. 오랫동안 못 간 터라 라리에또의 파스타를 꽤 그리워하고 있었는데, 어제 아우님과 어머니가 가서 맛있게 먹고 왔다고 하기에 나도-하고, 본래 종로에서 만나기로 했던 약속을 변경, 압구정으로 갔다. 리코타 치즈 샐러드와 루꼴라 스파게티를 냠냠 먹고 현대백화점에 가서 용진군이 선물 고르는 것을 구경했다. 현대백화점 와인샵에 갔는데, 소뮬리에 박모님이 용진군의 표현을 따르자면 '[신의 물방울]에서 튀어나온 것 같은' 매우 인상적인 분이었다. 하지만 선물은 아루의 티라미수로 결정.

현대백화점 지하에 있는 카페 자작나무에서 용진군이 가져온 다크 초콜릿을 곁들여 더치 커피 (Dutch Coffee)를 한 잔 마시고 헤어져, 나는 서울아트시네마에 가서 에드가 울머 회고전 [우회(Detour 1945ㅣ미국ㅣ69minㅣB&W)]를 봤다. 기대에 부응하는 멋진 영화로, sabbath님이 말씀하신 살인 후 시선을 따라 가는 카메라 처리는 보다가 무릎을 칠 만큼 훌륭했다. 그리고 베라 역을 맡은 배우가 정말로 무서워서, 이 여자가 나온 다음부터 영화가 심리 스릴러에서 공포물로 장르전환한 느낌이 들 정도였다. 베라가 내뿜는 존재감은 섬뜩한 숙명의 존재감이나 어떤 계기로 서서히 끌려나오는, 인간에게 내재된 범죄에 대한 불가피한 매혹을 상징하는 것으로 읽히기도 한다.

10월 25일부터 10월 29일까지 메가박스에서 제 7회 유럽영화제(http://meff.co.kr) 가 열린다. 서울영화제에서 보지 못했던 주요 상영작이 포함되어 있고, 그 외에도 꼭 볼 만 하다 싶은 영화가 많이 있는데 행사 기간이 워낙 짧은데다 중간고사와 겹치기 때문에 실제로 몇 편이나 볼 수 있을지 모르겠다. 일단 내가 주목하고 있는 영화들은:

1. [코미디 오브 파워(Comedy of Power)] 서울영화제에서 놓쳤던 영화. 끌로드 샤브롤 감독의 2006년 작이다. 공금횡령 사건을 조사하게 된 여판사가 권력의 복잡한 이면을 마주하면서 느끼는 갈등, 사법체계의 문제점, 유혹과 현실 등을 풍자적으로 다룬 작품이라 한다.

2. [수면의 과학 (The Science of Sleep)] 미셀 공드리 감독의 2006년 작. [이터널 선샤인]을 대단히 인상깊게 봤던 터라 절대 놓치고 싶지 않은 영화이다. 수업이 없는 날 상영하길 간절히 바라고 있다. 이번 유럽영화제 제1의 기대작으로, 제목에서부터 포스가 느껴지는 로맨틱 코미디.

3. [퀸즈 (Queens)] 마뉴엘 고메즈 페레이라 감독의 2005년 작. 스페인의 첫 게이 합동 결혼식에 참가하기 위해 모인 어머니 다섯 명을 통해 '편견에 대한 폐부를 찌르는 대사와 유쾌한 이야기, 어머니와 귀여운 아들들이 보여주는 사랑과 가족의 이야기'를 보여준단다. 혹할 수 밖에 없는 작품 설명이로세.
유럽 영화를 본다고 해도 사실 프랑스/독일, 기껏 더해봐야 영국과 이탈리아 영화 정도밖에 보지 않았던 터라, 경험의 폭을 넓힌다는 의미에서도 가능한 한 꼭 볼 생각이다. (스페인 영화임)

4. [어둠 속으로 사라지다 (Fade to black)] 1948년, 오손 웰스는 헤이워드와의 이혼 후 새출발을 위해 이탈리아에 찾아온다. 그런데 새로이 사귀게 된 여배우의 아버지가 촬영 중 죽임을 당하는 사건이 일어나고, 웰스 감독은 이 살인 사건의 배후에 있는 정치적 음모에 휘말리게 된다-는, 영화팬이라면 일단 눈이 번쩍 뜨일 스릴러다. 실제 영화를 봐야 확실히 말할 수 있겠지만, SF 팬에게는 대체역사로도 해석될 수 있을 설정이다. 감독은 올리버 파커.

5. [르네상스 (Renaissance)] 흑백 애니메이션. '2054년 파리는 모든 행동이 감시되며 녹화되는 미로 같은 도시가 되어버렸다. 파리는 이제 거대 기업 아바론의 암영 아래 있게된 것이다. 한편, 미와 지성을 모두 갖춘 젊은 과학자 일로나가 납치당하는 사건이 일어나고, 아바론은 유능하지만 문제 많기로 유명한 경찰 카라스에게 가능한 빨리 그녀를 구출하도록 의뢰한다....(후략)' 란다. '미와 지성을 모두 갖춘 젊은 과학자'가 찜찜하긴 하지만 애니메이션이고 2054년이니 보러 가야지. 2006년 ANSI 대상 수상작이기도 하다.

그 외 세일란 감독의 [기후] (서울영화제 개막작), 소설이 원작인 [소립자], 감독 20명의 5분짜리 단편을 모은 옴니버스 영화 [사랑해, 파리], 유럽판 [트루먼 쇼]라고들 하는 [미스터 애버리지], [헤드윅] 감독으로 유명한 존 카메론 미첼의 [숏버스] 등도 (나는 그다지 볼 생각이 없지만) 관심을 기울일 만한 영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