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 10월 3일 화요일

2006년 10월 3일 화요일 : 우회

용진군과 압구정 라리에또에서 점심을 먹었다. 오랫동안 못 간 터라 라리에또의 파스타를 꽤 그리워하고 있었는데, 어제 아우님과 어머니가 가서 맛있게 먹고 왔다고 하기에 나도-하고, 본래 종로에서 만나기로 했던 약속을 변경, 압구정으로 갔다. 리코타 치즈 샐러드와 루꼴라 스파게티를 냠냠 먹고 현대백화점에 가서 용진군이 선물 고르는 것을 구경했다. 현대백화점 와인샵에 갔는데, 소뮬리에 박모님이 용진군의 표현을 따르자면 '[신의 물방울]에서 튀어나온 것 같은' 매우 인상적인 분이었다. 하지만 선물은 아루의 티라미수로 결정.

현대백화점 지하에 있는 카페 자작나무에서 용진군이 가져온 다크 초콜릿을 곁들여 더치 커피 (Dutch Coffee)를 한 잔 마시고 헤어져, 나는 서울아트시네마에 가서 에드가 울머 회고전 [우회(Detour 1945ㅣ미국ㅣ69minㅣB&W)]를 봤다. 기대에 부응하는 멋진 영화로, sabbath님이 말씀하신 살인 후 시선을 따라 가는 카메라 처리는 보다가 무릎을 칠 만큼 훌륭했다. 그리고 베라 역을 맡은 배우가 정말로 무서워서, 이 여자가 나온 다음부터 영화가 심리 스릴러에서 공포물로 장르전환한 느낌이 들 정도였다. 베라가 내뿜는 존재감은 섬뜩한 숙명의 존재감이나 어떤 계기로 서서히 끌려나오는, 인간에게 내재된 범죄에 대한 불가피한 매혹을 상징하는 것으로 읽히기도 한다.

10월 25일부터 10월 29일까지 메가박스에서 제 7회 유럽영화제(http://meff.co.kr) 가 열린다. 서울영화제에서 보지 못했던 주요 상영작이 포함되어 있고, 그 외에도 꼭 볼 만 하다 싶은 영화가 많이 있는데 행사 기간이 워낙 짧은데다 중간고사와 겹치기 때문에 실제로 몇 편이나 볼 수 있을지 모르겠다. 일단 내가 주목하고 있는 영화들은:

1. [코미디 오브 파워(Comedy of Power)] 서울영화제에서 놓쳤던 영화. 끌로드 샤브롤 감독의 2006년 작이다. 공금횡령 사건을 조사하게 된 여판사가 권력의 복잡한 이면을 마주하면서 느끼는 갈등, 사법체계의 문제점, 유혹과 현실 등을 풍자적으로 다룬 작품이라 한다.

2. [수면의 과학 (The Science of Sleep)] 미셀 공드리 감독의 2006년 작. [이터널 선샤인]을 대단히 인상깊게 봤던 터라 절대 놓치고 싶지 않은 영화이다. 수업이 없는 날 상영하길 간절히 바라고 있다. 이번 유럽영화제 제1의 기대작으로, 제목에서부터 포스가 느껴지는 로맨틱 코미디.

3. [퀸즈 (Queens)] 마뉴엘 고메즈 페레이라 감독의 2005년 작. 스페인의 첫 게이 합동 결혼식에 참가하기 위해 모인 어머니 다섯 명을 통해 '편견에 대한 폐부를 찌르는 대사와 유쾌한 이야기, 어머니와 귀여운 아들들이 보여주는 사랑과 가족의 이야기'를 보여준단다. 혹할 수 밖에 없는 작품 설명이로세.
유럽 영화를 본다고 해도 사실 프랑스/독일, 기껏 더해봐야 영국과 이탈리아 영화 정도밖에 보지 않았던 터라, 경험의 폭을 넓힌다는 의미에서도 가능한 한 꼭 볼 생각이다. (스페인 영화임)

4. [어둠 속으로 사라지다 (Fade to black)] 1948년, 오손 웰스는 헤이워드와의 이혼 후 새출발을 위해 이탈리아에 찾아온다. 그런데 새로이 사귀게 된 여배우의 아버지가 촬영 중 죽임을 당하는 사건이 일어나고, 웰스 감독은 이 살인 사건의 배후에 있는 정치적 음모에 휘말리게 된다-는, 영화팬이라면 일단 눈이 번쩍 뜨일 스릴러다. 실제 영화를 봐야 확실히 말할 수 있겠지만, SF 팬에게는 대체역사로도 해석될 수 있을 설정이다. 감독은 올리버 파커.

5. [르네상스 (Renaissance)] 흑백 애니메이션. '2054년 파리는 모든 행동이 감시되며 녹화되는 미로 같은 도시가 되어버렸다. 파리는 이제 거대 기업 아바론의 암영 아래 있게된 것이다. 한편, 미와 지성을 모두 갖춘 젊은 과학자 일로나가 납치당하는 사건이 일어나고, 아바론은 유능하지만 문제 많기로 유명한 경찰 카라스에게 가능한 빨리 그녀를 구출하도록 의뢰한다....(후략)' 란다. '미와 지성을 모두 갖춘 젊은 과학자'가 찜찜하긴 하지만 애니메이션이고 2054년이니 보러 가야지. 2006년 ANSI 대상 수상작이기도 하다.

그 외 세일란 감독의 [기후] (서울영화제 개막작), 소설이 원작인 [소립자], 감독 20명의 5분짜리 단편을 모은 옴니버스 영화 [사랑해, 파리], 유럽판 [트루먼 쇼]라고들 하는 [미스터 애버리지], [헤드윅] 감독으로 유명한 존 카메론 미첼의 [숏버스] 등도 (나는 그다지 볼 생각이 없지만) 관심을 기울일 만한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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