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8월 31일 금요일

2007년 8월 31일 금요일

BBQ 매운양념치킨을 먹었다.

7월 말 신용카드 도난 및 부정사용 신고 후처리 관계로 은행에 전화했다.

[플루토] 4권을 봤다.

거실 청소를 했다.

사진을 하드디스크로 옮기고 일부를 정리해 일기에 올렸다. 그리고 팜 하드리셋을 하고 데이터를 복원했다.

2007년 8월 30일 목요일

2007년 8월 30일 목요일

귀국. 시차를 맞추기 위해 스무 시간 가까이 깨어 있었더니 정신이 몽롱했다. 저녁에 한 시간 반 정도 자고 다시 일어나 밀크티를 한 잔 마시고, [펭귄혁명] 5권, [행복카페 3번가] 7권, [스킵비트] 15권을 읽었다.

2007년 8월 29일 수요일

2007년 8월 29일 수요일

어제 밤에 다섯 시간 동안이나 가방을 싸느라 고생했는데, 아무리 해도 가방에 다 안 들어갈 뿐 아니라 무게도 너무 무겁다. 그래서 결국 포기하고 책만 거의 다 꺼내 따로 무게를 달아 보았더니 9kg정도 된다. 뭐야, 처음부터 불가능한 태스크였잖아!-_- 허탈해 하며 국제우편 비용을 인터넷으로 검색하고 우편보험을 독일어로 어떻게 신청하는지 찾아 본 다음 열두 시 조금 넘어 잠들었다.

늦게 잠들었는데도 일곱 시 반 쯤 일어났다. 다시 조금 더 자려고 했으나 왠지 잠이 오지 않았다. 어제 먹다 남은 과일을 먹고 아침 9시쯤 우체국에 갔다. 소포 상자를 샀는데, 우리나라 것과 달라서 설명을 읽어도 어떻게 해야 하는지 잘 모르겠다. 설명대로 하면 상자가 망가질 것 같아서 망설이고 있자니, 어떤 부인이 다가와 도와줄게요, 하고 상자를 척척 뜯어서 조립해 준다. 고마워용 하고 상자 두 개에 책을 나누어 넣어 선편으로 집에 부쳤다. 직원 분이 선편이면 오, 육 주는 걸릴 텐데 괜찮느냔다. 잊어버릴 때 쯤 되면 오겠지.

출국시에 시간이 부족해 고생했기 때문에 이번에는 일찍 출발했다. 주인아주머니가 1층까지 큰 가방을 들어다 내려 주셨다. 공항에 도착하니 겨우 열한 시 반이다. 세 시 프랑크푸르트 행 비행기인데, 너무 빨리 왔구나! 체크인 카운터 앞에서 기다리다가 빵집에 가서 피자와 커피를 먹고 돌아왔다.

프랑크푸르트에서 환승하는 승객들이 있어서인지 한국인들도 눈에 띄었다. 그냥 멍하니 앉아 있는데, 옆에 앉은 중년 한국인 분들의 대화가 들린다. '공항에서 우연히 만난 교회를 다니지 않는 중년 부부(대화내용 상 사회과학자로 추정)'를 '전도사님과 교회신도분들'이 성령에 충만한 마음으로 설득하고 있었다. '안타깝게도 은혜를 아직 입지 못한 분'이 상당히 짜증스러울 상황에서도 점잖게 대응하셔서 감탄했다. 인격자로세. 하지만 나는 얼른 두 자리 옆으로 옮겨가 못 알아듣는 척 하며 영국 소설책을 한 권 꺼내들어 읽었다.;
 
나중에 계속

2007년 8월 28일 화요일

Alte Nationalgalarie / Pergamonmuseum










2007년 8월 28일 화요일

2007년 8월 27일 월요일

오전에 슈퍼마켓에 가서 장을 봤다. 그새 다시 모아 뒀던 페트병 네 개를 가져가 보증금을 돌려받고, 수요일 오전까지 먹을 음식을 샀다. 오늘은 날씨가 눈에 띄게 싸늘해져서, 긴 트렌치 코트를 입은 사람들도 적잖이 눈에 띄었다. 장 보러 나갈 때는 별 생각 없이 민소매를 입었는데 추웠다. 그래서 오후에는 긴 후드로 갈아 입었다.


S-Bahn 헤커셔 마르크트역에서 프리드리히 슈트라세 역까지

다섯 시쯤 프리드리히슈트라세에 갔다. 두스만은 큰 서점이니 찾기 쉬울 것 같았지만 역시나 방향을 잘못 잡아서 한참 못 찾아 헤멨다. 원래 향했던 것과 반대 방향이더라. 두스만에서 여러 책 구경을 하다 보니 시간이 금세 갔다. 사고 싶은 책이 너무 많아서 고민에 고민을 거듭했다. 사고 싶었지만 부피와 무게 때문에 못 산 책 중에는 '세계의 오케스트라'라는 할인서적이 있다. 유명한 오케스트라들을 하나씩 소개한 두툼한 하드커버였는데, 컬러인데다 할인매대에 있어 저렴했지만 이미 다른 책을 몇 권 고른데다 너무 무거워서 못 샀다. 하지만 하드커버 칸트 위인전은 샀다.

서점에서 나오니 어느새 일곱 시가 넘었다. 한 시간이 넘게 서점을 몇 번이나 돌면서 정말 갖고 싶은 책만 추리고 추렸지만, 그래도 책값을 너무 많이 썼다 싶어서 빵집에서는 제일 싼 샌드위치를 골랐다. 수십 유로치 책을 산 다음에 수십 센트를 절약해 봤자 계산이 안 맞지만 말이다.; 그래도 [교양-사람이 알아야 할 모든 것]의 원서 오디오북과 원서를 산 건 잘 했다고 생각한다. 이것만 끝까지 제대로 들으면서 다 읽어도 독일어가 많이 늘겠지.

어제 밤에는 [Rosen unter Marias Obhut]을 읽다가 잤다. 사실 [오란고교 호스트부] 독어판도 저번에 샀는데 (있으면 사겠다고 일기에 쓴 다음 날인가에 서점에서 정말로 발견해 버렸다!) 만화는 오히려 축악어와 속어가 많아서 이해하기 어렵고 그다지 도움이 되지 않더라. 이 정도 가벼운 소설이 생활어를 익히는 데는 가장 부담 없겠다 싶었고 결과는 성공이다. 당장 나가서 쓸 수 있을 것 같은 표현이 많았고, 말로 할 줄은 알았지만 정확한 철자나 문장 내 자연스런 위치를 확실히 몰랐던 표현들도 제대로 확인해 보는 기회가 되었다. 나에게 기쁨과 희망을 준 이 소설의 원저자는 콘노 오유키 님이시다.;;;

참, 프리드리히 슈트라세에 '유다는 또다른 예수'라는 옷을 세트로 맞춰 입은 사람들이 유인물을 나눠주고 있었다. 어딜 가나......- _)

2007년 8월 27일 월요일

2007년 8월 26일 일요일

일요일이다. 며칠 전까지 귀국일이 목요일인 줄 알고 있다가 그제야 어머니와 메신저 중에 수요일임을 뒤늦게 깨달았다. 어쩐지 하루를 날로 뺏긴 기분이다. 베를린에서는 대부분의 박물관, 미술관, 성이 월요일에는 문을 닫으니, 실제로 베를린의 미술관에 갈 날은 일요일과 화요일밖에 남지 않은 셈이다. 그래서 오늘은 아침 일찍 나가 박물관섬에 가야지 생각했다.

늦잠을 잤다.

조금 남은 우유에 시리얼을 섞어 아침으로 먹고 잠시 지나니 배가 고팠다. 하지만 먹을 것이 없었다. 그래서 만들기가 번거로워 서울에 가져가서 먹으려 했던 스프를 2인분 끓여(우리나라 오뚜기 스프 같은 것인데 훨씬 묽고 10분동안 저어야 한다) 한 쪽 남아 있던 토스트 빵과 함께 먹었다. 이제 정말 먹을 게 없는데 계속 배가 고파서 초코 시리얼을 날로 먹었다. 우유에 넣어 먹으면 무척 맛있는데 그냥 먹으니까 맛이 없었다.

이러다가 오후에 잠깐 잠이 들었다. 깨어보니 네 시 반. 여섯 시 전에 나가서 뭔가 사오지 않으면 저녁-밤 내내 정말 아무 것도 못 먹는 사태에 직면할지도 모른다는 절박한 심정으로 일어나 쿠담까지 갔다. 일요일에는 슈퍼마켓이나 백화점이 모두 문을 닫고, 빵집도 열지 않거나 오전에만 영업을 하며, 카페도 오후에 문을 닫는다. 그래서 사실 며칠 전에 슈퍼마켓에서 장을 많이 봤었는데, 이상하게도 장을 많이 보면 슈퍼에 가는 빈도수가 줄어드는 것이 아니라 그냥 매 끼를 더 많이 먹게 된다. 즉 장을 많이 보나 적게 보나 한 번 장 본 음식을 소모하는 시간은 거의 같다.


동네 트램 역. 늘 여기에서 트램을 탔다.

쿠담에는 문 연 데가 있을 줄 알고 게까지 갔는데 거기 슈퍼마켓과 백화점도 모두 문을 닫았다. 꽤 멀리 나갔는데.....허탈했다. 그래서 오늘 영업 한다는 것을 미리 확인해 놨던 베를린의 유서깊은 초콜릿 전문점에 가기로 했다. Fassbender&Rausch라는 곳으로, 초컬릿 카페와 예약제 초컬릿 레스토랑까지 운영하는 곳이다.

F&R은 참으로 훌륭하였다. 커다란 초콜릿 타이타닉, 카이저 빌헬름 교회, 국회의사당 등이 있었고, 각종 수제 트뤼플, 바 초컬릿, 여행자 초컬릿, 예쁜 초컬릿, 쿠키 초컬릿, 초컬릿 쿠키, 초컬릿 스프레드, 핫초컬릿 등이 아주 많았다. 선물로 몇 가지 골랐다. 정말 맛있어 보이는 분홍색과 귤색 트뤼플 세트도 있었다. 우리나라에 비하면 수제 초컬릿 치고는 무척 저렴했지만, 그래도 나 먹으려고 사려니 아까워서 고민하다가 결국 안 샀다. 그런데 계속 먹고 싶다. ㅠㅠ 바바라가 이곳의 초컬릿 카페를 극찬했었기에 갈까 했는데, 빈 속(이라기보다는 인스턴트 스프와 마른 시리얼 등이 대충 섞여 있는 속)에 진한 핫초컬릿을 마시면 좋지 않을 것 같아 바로 알렉산더 광장으로 끼니거리를 찾아 갔다.


알렉산더 광장 에스반 역에 있는 아시안 누들 집에서 닭고기면을 사서 한 그릇 깨끗이 비우고 집에 돌아와서 민트 차를 마시고 귀국 가방을 쌌다. 여기 온 후로 짐이 꽤 늘어나서, 무게와 부피를 가늠하기 어려워 일단 가방에 넣어 보고 다 안 들어가면 어떻게 할지 미리 생각해 놓기 위해서다. 올 때 짐이 가벼웠으니(위탁수화물이 15kg이하) 웬만하면 규정을 넘지 않을 것 같긴 한데, 늘어난 짐 대부분이 부피에 비해 무거운 책이라 불안하다. 아직 베를린에서 가장 큰 서점인 쿨투어카우프트하우스 두스만(Dussmann)에는 가 보지도 않았는데. 그리고 프랑크푸르트에서 환승할 때 기내수화물을 모두 들고 다녀야 할 일도 걱정이다.    

내일 계획: (1)슈퍼마켓에 가서 물, 우유, 채소를 사고 (2)프리드리히슈트라세에 있는 두스만과 (3)월요일에도 문을 여는 미술관(예:바우하우스)에 간다.

어제 쓰려다 잊은 것: 한 짝씩 사라진 양말 세 개가 화장실 하이쭝에 걸려 있기에 걷어 왔다. 나중에 부엌에서 마주친 주인아주머니가 양말 봤느냐고, 세탁기 안에 있는 걸 못 보고 한 번 더 빨았다고 웃으신다. 그래서 엄청 엄청 깨끗해졌겠네요! 했다.

중간에 일기에 써 넣으려다가 잊은 것: 독일어에는 schon(already)과 schoen(beatiful, o 움라우트)이라는 단어가 있다. 종강 며칠 전, 수업 시간에 스페인 학생들이 이 두 단어의 발음와 의미를 잘 구분하지 못하자 내가 즉석에서 만든 바람직한 예문-
Ich bin schoen, und ich war schon schoen als ich ein Kind war.
(I'm beautiful, and I was already beautiful when I was a kid.)

이런 것도 있다.
'Schlecht Deautsch' ist schlechtes Deautsch. (내가 너무 헷갈려서 만들었다.)

2007년 8월 26일 일요일

2007년 8월 25일 토요일

 

오후-마리나와 필름뮤제움


(빌리 와일더 감독이 작업실에 걸어 두었다는 현판. 'How Would Lubitsch Do It?')

저녁-필하모니에서 베를리너 필하모니커의 본공연. 사이먼 래틀 경이 지휘하는 말러 9번을 지척에서 들었다. 너무 훌륭해서 연주가 끝나지 않고 오래오래 계속되었으면 싶었다. '공연장의 음향이 좋다'는 게 무엇인지도 확실히 이해. 베를리너 필하모니커에서는 바순이 아니라 파곳을 쓰더라. 두 악기의 느낌이 생각보다 차이가 났다.(듣다가 지금까지 들었던 바순과 달라서 오케스트라 단원명단을 확인해 보니 파곳이었다)

쉬는 시간 전에 연주된 린드버그의 곡은 그냥저냥이었다. 모르는 곡이다 보니 음악보다는 연주와 음향에 감탄하면서 들었다. 쉬는 시간에 필하모니커 잡지를 보니 꽤 상세한 린드버그 프리뷰/소개기사가 있기에 훑어보았는데, 기사 제목이 'Nur das Extreme ist interessant'이다. 역시 내 취향이 아니었구나, 하고 납득했다. 그래도 린드버그와 래틀 경이 내 눈앞에서 포옹한 건 좋았다.; 그리고 내가 '처음으로 가까이에서 본 총보'가 사이먼 래틀 경의 악보라고 생각하니 어쩐지 감동적이었다.

어쨌든 예술은 위대하다. 정말로. 피곤한데 잠이 오지 않는다.

2007년 8월 25일 토요일

2007년 8월 24일 금요일

어학원 종강. 다같이 근처 카페에서 커피 한 잔 마시며 뒷풀이. 나는 파인애플 주스를 마셨는데 벌이 내 주스에서 헤엄치는 바람에 반밖에 못 마셨다.-_-


(뒤에 보이는 노란색 자동차는 마리나가 만든 귀걸이. 실제로 굴러가는 자동차 장난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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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이틀간 무리한 것 같아 장만 보고 집에 들어왔다. 카페에 있을 때 까지만 해도 날씨가 굉장히 좋아서 어디 바람 쐬러 나가야 할 것 같았는데, 슈퍼에서 나오니 굵은 빗방울이 뚝뚝 떨어지고 천둥이 친다. 집에 와서 샐러드와 새우팩초밥을 먹고 뒹굴뒹굴 하며 [Nine Layers of Sky]를 마저 읽었다. 기대에 미치지 못해서 아쉬웠다. 좋은 책이지만 훨씬 더 훌륭한 작품이 될 수 있었는데 해결되지 못한 문제들과 너무 쉽게 해결된 고민들이 뒤섞여 평작에 그쳤다.

우주개발 프로그램에 참여하던 소련의 여류 천체물리학자가 소비에트 연방의 몰락으로 인해 직장을 잃고, 카자흐스탄에서 빌딩 청소를 하면서 가족과 모스크바로, 그리고 캐나다로 떠날 자금을 모으며 살아간다는 설정에서 이끌어 낼 수 있는 현실적이면서도 애틋한 감동은 결코 적지 않았을 터이다. 실제로 초중반 까지는 그런 절박한 아름다움이 꽤 살아 있다. 그런데 뒤로 가니 겨우 '800년을 산 전설의 영웅과 섹스를 하려는데 콘돔이 없어서 어쩌지' 따위로 이야기를 진행하냐?! 이럴 거면 엘리자베스 문이나 낸시 크레스 같은 작가한테 아이디어를 양보하지 그랬어! orz

2007년 8월 24일 금요일

2007년 8월 23일 목요일

오늘은 수업을 마치고 마리나, 바바라와 함께 학원 맞은편에 있는 팔라펠 가게에서 같이 점심을 먹었다. 수업 시간에 '국제적인 도시여야 하는' 베를린 사람들이 갖는 폐쇄성에 관한 이야기가 나왔기 때문에, 점심을 먹으며 같이 그 이야기를 좀 더 했다. 확실히 이곳에는 '유색인종'이 굉장히 드물고, 출신지역이나 문화가 다른 사람들이 섞여 살아가고 있는데도 원주민들이 이를 잘 받아들이지 못한다는 -거부한다기보다는 어색하고 낯설어 한다- 느낌이 있다. 아이러니컬하게도 그런 일종의 보수성이 런던과 같은 역동적인 대도시와 다른, 베를린 특유의 '살기 좋은 느긋한 도시'의 분위기를 만들어 낸다고 생각한다.

바를 경영하는 독일인 친구와 살고 있는 마리나가 어제 파티에 간 얘기를 했다. 마리나는 춤을 좋아해서 크나이페나 디스코에 즐겨 가는데, 그럴 때면 아무도 마리나에게 말을 걸지 않는다고 한다. 마리나는 독일어도 썩 잘 하고 영어에 능숙하며(오스트레일리아에서 어학연수를 하며 배웠다는데, 정말 영어로 깊은 이야기까지 하는 데 아무 문제가 없다) 이탈리아어도 이탈리아인인 척 할 수 있을 만큼 한다. 그런데 아무도 말을 걸려는 시도도 하지 않고, 좀 술에 취하고 나면 '남자들만' 말을 건다며 분통을 터뜨렸다. 어쨌든 어제 파티에서는 마리나를 제외하고는 모두 독일인이었는데, 한 시간 정도 아무하고도 얘기를 못 하다가, 좀 나이 든 독일인 부인 한 명이 다가와 어디에서 왔느냐고 묻더란다. 저쪽에 있는 자기 친구는 마리나가 ***(까먹음)에서 왔으리라고 했는데 자기는 남미에서 온 사람 같다고 생각했다며 정답을 가르쳐 달라고. -_- 그래서 바르셀로나에서 왔다고 했더니 알겠다고 하고 돌아가더란다. 대단히 불쾌했으리라.

마리나가 이곳 사람들은 가슴 아래의 몸을 움직일 줄 모른다고 했다. 배와 허리로 자연스럽게 리듬을 타는 라틴계와 달리, 이곳 사람들의 움직임을 자세히 관찰해 보면 하반신이 굳어 있는데, 이것은 자연스럽지 못하기 때문에 좋지 않다고 생각한단다. (바바라도 동의) 마리나는 본인이 모델 일을 해서 사람 몸이 움직이는 방식이나 사람들이 취하는 자세 같은 쪽에 관심이 많다. 한 번도 문화적인 차이를 그런 시각에서 생각해 본 적이 없어서 무척 흥미로웠다.

나중에는 영화며 예술 쪽으로 화제가 흘러갔다. 마리나가 조지 클루니와 찍은 사진도 보았다. 조지 클루니가 바르셀로나에서 영화 출연 할 때 조연으로 같이 촬영했었다는데, 조지 클루니는 실제로 키가 별로 크지 않아서 깔창을 쓴다고 한다. 바바라는 로빈 윌리엄스를 인터뷰 한 적이 있는데, 화면에서는 작고 통통해 보이지만 실제로 보면 키가 180cm가 넘는 유쾌하고 존재감이 뚜렷한 사람이란다. 조니 뎁의 훈훈함에 셋 다 동의했다.

즐겁게 식사를 하고 나서 Kulturebraurei 호프 안에 있는 카페에 촬영을 하러 들어갔다. 바바라는 '내 인생의 마법'이라는 소재로 다양한 사람들의 짧은 인터뷰를 모으고 있다. 아직 어떤 형태의 영상으로 만들지는 결정하지 않았다지만, 좋은 소재이니 흥미로운 작품이 나올 것 같다. 세 시에 일어나야 하는 마리나가 먼저 자기 이야기를 영어로 나에게 해 주고, 카메라를 보고 스페인어로 다시 했다. 나도 마리나와 바바라에게 내가 생각해 온 이야기를 영어로 들려 준 다음 한국어로 다시 말했다. 마리나가, 지금까지 만난 사람들 중에서 내가 가장 표현력이 풍부한 사람이라고 해서 기뻤다. 바바라가 동의하며, 나는 하고 싶은 말을 굉장히 선명하게 표현하는데 그게 내가 단어를 선택하는 방식과 관련이 있는 것 같다고 거든다. 후...역시.....-_-v

마리나는 먼저 일어서고, 나와 바바라는 함께 우리 집까지 걸어가며 이야기를 했다. 바바라가 내일 이탈리아로 돌아가기 때문에 집에 둔 명함을 오늘 주기로 했다.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이나 관심사가 비슷해서 바바라와 대화하면 굉장히 즐겁다. 하필이면 내가 출국하는 목요일에 베를린으로 돌아온단다. 바바라도 많이 아쉬웠는지 몇 시 비행기냐고, 혹시 쇠네펠트 공항이면 입/출국하는 길에 만날 수 있지는 않겠느냐고 물어 보았는데, 안타깝게도 나는 테겔 공항으로 나간다. 헤어지면서 포옹을 하고 뺨을 부볐다. 내가 웃으며 한국에서는 이렇게 부비면서 인사하지 않는다고 했더니, 바바라가 알아서 다행이라며, 나한테 키스하려고 했단다. 순간 말 하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뻣뻣한 사람이라, 아무래도 입맞춤까지는 부담스럽다.;;

바바라와 헤어지고 기세를 몰아 동네에 있는 영어 헌책방에 갔다. 혹시나 엘러리 퀸이 있을까 했는데 없더라. 버트런드 러셀의 책을 한 권 샀다. 

그리고 집에 갔다. 오늘은 학원 종강 파티가 있는 날이다. 파티 시간이 8시인 줄 알고 앉아서 초콜릿을 먹고 있다가, 학원 안내문을 다시 보니 8시가 아니라 18시다. 한 숨 자고 나가려고 했는데 이런, 하고 허겁지겁 바베큐 파티를 하는 공원까지 가는 길을 vbb-fahrinfo에 검색해 보고 나섰다.

중략하고 근처에서 학원 선생님에게 전화-슈퍼에서 장보느라 바빴던 선생님이 내 말을 잘못 알아듣고 학원에 가보라고 함-학원에 갔더니 그게 아니었음-다시 트램을 타고(총 5번 탐) 파티장소로 감-허겁지겁 부르스트와 빵을 먹음-스페인어로 쉴새없이 얘기하는 학생들 틈에 끼여 있다가 재미가 없어서(특히 그 자리에 없는 학생들의 이름이 대화중에 섞여 나오자 무척 불편) 독일어를 하는 쪽으로 옮겨감-고등학교 철학선생님인 이탈리아 아저씨와 고전음악 얘기를 하다 보니 재미있어짐



파티에서도 재미있는 일이 많았는데 요약만 해놓고 나중에 써야겠다. 10시에 집에 와서 샤워를 하고 잤다. 독일어와 영어로 즐거운 대화를 많이 하고 부르스트와 파스타, 빵을 많이 먹어 좋았지만 무척 피곤했다. 아무리 늦어도 12시 전에는 자는데, 어제 밤에 아사로에게 낚여서 새벽 2시까지 [The Final Key]를 읽은 탓이 크다. 너무나 뻔한 결론을 알고 있으면서도, 어서 마지막 페이지가 나오길 바라며 꾸역꾸역 읽느라 잠을 제때 못 자다니......orz 오늘 낮부터는 Liz Williams의 [Nine Layers of Sky]를 읽고 있는데, 서평을 읽었을 때 생각했던 것과 상당히 다른 내용이었다. 하지만 무척 재미있고, 물론 아사로보다 글맛도 훨씬 낫다.  

2007년 8월 23일 목요일

2007년 8월 22일 수요일

학원에는 나, 세실리아, 바바라 세 명 밖에 안 왔다! 어제는 네 명이었는데, 갈수록 줄어든다고는 해도 너무 심하잖아......늘 성실한 마리나가 어제 몸이 좋지 않다고 하더니 오늘 오지 않아서 걱정했는데, 쉬는 시간에 캄프에서 우리 셋이 차를 마시며 수다를 떠는 데 나타났다. 컨디션 난조로 고생하고 있는 것 같았다. 쉬는 시간 이후에 마리나, 알바, 이자벨, 안나가 왔다.

오늘은 날씨가 참 이상했다. 아침부터 비가 제법 내렸고, 쉬는시간에는 커피를 마시는데 비가 점점 많이 오더니 교실에 다시 들어갈 때가 되자 천둥번개까지 쳤다. 하지만 오후가 되니 해가 쨍쨍하고 덥다.

쉬는 시간에 얘기를 하던 중, 바바라가 80% 다크 초콜릿을 꺼내 먹겠냐고 하기에 한 조각 먹고, 초콜릿을 좋아하느냐고 물어 봤더니 무척 좋아한단다. 그래서 오후에 다른 계획이 없다면 DDR 박물관 옆에 초콜릿 카페가 있으니 박물관 단체관람 시각보다 같이 초콜릿 한 잔 하지 않겠느냐고 데이트 신청(?)을 했다.

그래서 오후에는 카카오 샴파카에서 바바라와 아이스 초콜릿을 마시며 얘기를 했다. 아아, 이국 땅에서 데렉 저먼의 [비트겐슈타인]의 연출에 관해 이야기 할 사람을 만나다니 이것은 기쁨을 넘어 감동이로세. ([비트겐슈타인]은 독일 감독의 영화지만 DVD 출시가 안 되었기 때문에 아는 사람이 별로 없을 줄 알았는데, 바바라는 데렉 저먼의 단편 영화까지 봤더라.) 바바라가 예전에 음악 방송국에서 일한다는 얘기를 했었는데, 들어 보니 자신도 미술을 전공하고 미디어 아트에 관심이 많고 실제로 조금씩 작업도 하고 있단다. 지금 바바라가 하고 있는 작업에 참여하게 될지도 모르겠다. 물론 제작이 아니라 촬영 대상으로. 영화 외에도 여러가지 책이나 베를린의 생활, 밀라노와 서울에 관해 이야기하다 보니 시간이 금세 갔다. 김기덕 감독 얘기를 하고 있는데 세실리아가 지나가다가 우리를 보고 약속 시간 지났다고 알려 줬다. 그래서 서둘러 넷이서 (세실리아의 어머니도 동행) DDR 박물관에 갔다.

박물관은 무척 재미있었다. 아무래도 북한과 비교하게 되기도 했고, 학원 선생님 중 구 동독 출신인 톰이 전시물을 하나하나 설명해 주시고, 실제로 자신의 생활담도 들려 주셔서 (통독 당시 19살이었단다) 더 흥미로웠다. 독일어 설명이라도 본인이 독일어를 우리에게 가르치고 있다 보니 천천히 설명해 주면서, 잘 못 알아 들으면 더 쉬운 단어로 다시 말씀해 주셔서 좋았다. 

박물관 구경을 마치고 샴파카에서 쌀이 들어간 다크 초콜릿을 하나 사서 트램을 타러 가면서 먹었다. 집에 오는 길에는 아사로의 책을 읽다가 한 정거장을 놓쳐서 도로 걸어 왔는데, 초콜릿 덕분에 힘도 나 있었고 오늘 하루가 즐거웠기 때문에 기분이 좋았다. 집에 오니 주인 아주머니가 어제 구워서 식혀 뒀던 초콜릿 케이크를 가리키며 먹고 싶을 때 잘라 먹으라신다. 사실 어제 굽는 걸 봤을 때부터 맛있어 보여서 헤-하고 있었기에 좋아요, 좋아! 하고 밀크초코 코팅과 다크초코 코팅을 한 조각씩 잘라 레몬민트차와 같이 먹었다. 본 대로 맛있더라.

오늘은 바바라 선생님과의 마지막 수업 날이기도 했다. 한국에서 준비해 간 연날리기 책갈피를 선물로 드렸다.

2007년 8월 21일 화요일

2007년 8월 20일 월요일

보통 직업이 무엇이냐는 질문을 받으면 나는 철학과 학생이라고 대답한다. 이곳에서처럼 내 신분이 일단 어학원생이고 주위 사람들도 대부분 자국의 대학생이나 갓 대학을 졸업한 유학희망자인 경우 일단 학생이라는 답만큼 무난한 것도 없다. 유럽에는 사회복지가 학부전공이 아닌 나라가 많기 때문에(사회학의 분과학문이라고 들었다) 사회복지학과라고 말했다가는 구텐탁 프로이트 미히 다음 단계부터 왠지 의사소통이 잘 안 되는 듯한 기분이 되겠다 싶어서다.

우리 반의 스페인 남학생 루이스는 몇 번을 들어도 외워지지 않는 뭔가 독특한 학문을 전공하고 있는데 -산림학 비슷한 것인 듯- 공부 얘기가 나올 때 마다 아무도 루이스가 산에서 무엇을 하는지 이해하지 못해 난감한 분위기가 된다. 만국공통 기초학문의 최절정 철학을 복수전공해서 참 다행이다.

어쨌든 실제로 어학원에는 철학 전공자가 많은데, 독일철학의 위상과 타 유럽도시(특히 영국 런던)에 비해 저렴한 학비와 생활비를 생각하면 자연스런 일이다. 한국인이 없는 어학원이라서인지 뜻밖에 음악 전공자는 지금껏 한 명도 만나지 못했다.

집에서 버스를 타고 이십 분 정도만 가면 훔볼트 대학이 있다.  훔볼트 대학은 우리로 치자면 신촌에 있는 연대처럼 시내 한가운데에 있지만 왼쪽으로는 미술관 섬(뮤젠 인젤)의 박물관과 미술관이 보이고 오른쪽으로 조금 가면 국회의사당 끝자락과 브란덴부르크 토어가 보인다.

내가 여기 오고 이 주 쯤 지났을 때였나, 메신저로 대화하던 중에 동생이 "거기서 공부하고 싶어?"라고 물었다. 나는 이곳의 대학 생활에 관해 잘 알지 못하므로 아직 그 질문에 대한 답은 모르겠다. 하지만 이 곳에서 살고 싶다고는 생각한다. 석박사 과정은 영어로 코스를 밟을 수도 있고, 그래서 실제로 한국인들이 독일에서 영어 논문으로 석박사를 받기도 한다고 들었다.

독일어로 읽기는 말하기보다 훨씬 쉽고, 쓰기도 그다지 어렵지 않다. 말을 할 때 제일 곤란한 부분이 독일어와 영어의 어순 차이와 문화 차이로 인한 타이밍의 문제인데, 타이밍은 훈련과 학습으로밖에 해결할 수 없는 것이고, 어순 쪽은 읽거나 쓸 때는 (1)작자가 원래 맞게 쓴 글을 바로 읽거나 (2)쓰면서 생각을 정리해 어순을 맞출 수 있으니 괜찮다. 지나치게 성급한 자만인지는 몰라도, 이곳에서 일 년 정도 어학과정을 제대로 밟고 나면 영어 문헌을 보조삼아 독일어로 대학 공부를 할 수 있으리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훔볼트 대학 앞을 종종 지나며 내가 느끼는 동경은, 학교 중앙도서관의 서고에서 1930년대의 사이언스 지 원본을 펼쳐 볼 때 느끼는 감정과 매우 비슷하다. '지식'이나 '시간', '통찰' 같은 추상적인 관념들이 실질적인 형태를 띠고 오감에 닿을 때면 황홀해진다. 그 형태가 꼭 거대하고 유서 깊은 독일 대학 건물일 필요는 없어서, 사실 나는 신림 2동에서 맨큐의 거시경제학 제 3판을 보다가도 황홀해 하곤 했다. (시험장에서 제2차 시험지를 보면서는 아무래도 황홀해지지 않는 것이 내 고시 공부 과정의 어려움이다) 그제는 포츠담 광장에 있는 쇼핑 센터 아르카덴(Arkaden)에 놀러 갔다가 2층 서점에 빠져서 헤어나질 못했다.

책을 많이 사 가고 싶은데 책은 무거워서 살 마음먹기가 어렵다. 책 가격은 우리나라에 비해 비싸지 않다. 특히 두툼한 사진집이나 화보집을 할인해서 8-9유로 정도에 살 수 있는 코너가 있었다. 세계 지도나 이집트 문명 사진집처럼 평소라면 엄두도 내지 못할 몇 킬로그램 짜리 책들에 절로 눈이 갔다. 커다란 여행 가방과 그 안에 딱 맞게 들어가는 괴테 전집도 있었다.

SF와 판타지 코너도 물론 꼼꼼히 살펴 보았다. 필립 케이 딕 전집이 예뻤다. 밝은 노랑, 분홍, 연두 등 색으로 각권을 입혀 전집 형태로 나와 있던데  딕을 썩 좋아하지 않는데도 탐이 나더라. SF와 판타지는 청소년 서적 코너에도 굉장히 많고, 자국 작가들의 작품도 창소년 서적 쪽에 더 많았다. 이곳은 미하엘 엔데의 나라이기도 하다.

독일 청소년 도서가 우리나라에 얼마나 소개되어 있는지 잘 모르겠다. 좋은 책을 단번에 발견해 낼 정도로 독일어를 잘 하지 못해서 안타깝다. [문자메세지와 사랑의 스트레스]라는 책은 재미있을까나.; 우리나라와 가격이 비슷하니, 좋은지 아닌지 모르겠지만 일단 턱 하고 살 만큼 싸지는 않다. 그래서 요즈음은 길 가다가 서점에서 벌려 놓은 할인 매대(대체로 재고품이나 헌 책으로, 영어/독일어/기타언어 책이 섞여 있는 경우도 적잖음)를 보면 꼭 멈춰 서서 뒤져 본다.

오늘의 일과도 간단히 쓰자면 - 아침에는 빵집 캄프에서 밀히카페와 '네모'라는 맛있어 보이는 설탕+사탕가루를 입힌 돌고래 모양 쿠키(신제품), 아몬드를 입히고 초컬릿 소스로 장식한 빵을 사서 학원에 갔다. 다들 제 시간에 안 오는 것 같아서 9시 27분에 교실에 들어갔는데 역시나 내가 제일 먼저 왔더라. 교실 발코니에 있는 탁자에 앉아서 아침 바람을 맞으며 커피를 마셨다. 선생님이 35분쯤 들어오셨고, 다음으로 성실한 마리나와 바바라가 왔다.

밀린 일기를 조만간에 쓰지 않을지도 모르니 더 늦기 전에 여기 써 놓자면, 바바라는 지난 주부터 합류한 이탈리아 직장인으로, 텔레비전 방송국에서 근무하고 있다. 극본이나 극작가에 관심이 많고 지금은 휴가를 내어 온 참이라 다음 주에 돌아가지만, 앞으로 독일 영화 산업에 뛰어들고 싶어한다. 나이는 꽤 많은 편인 것 같은데, 성실하고 독일어도 꽤 잘 한다. 예전에도 독일에 몇 번 왔었고 런던에서도 일 년 살았단다. 회화는 고만고만하지만 듣기를 잘 하고 말을 받는 타이밍이 좋아 역시 벤치마킹 대상이다. 비슷한 수준의 독일어라도 세실리아가 어린 학생 답게 통통 튄다면, 바바라는 정중하고 신중하게 말하는 느낌을 준다. 한 등급 높은 반으로 갔어도 괜찮았을 듯 한데. 여름과정 중간에 들어오다 보니 우리 반으로 온 것 같다.

수업 시간에 세실리아에게 선생님이 '소연이 무엇을 잊어버렸니?"라고 물었다. 문장 만들기 놀이 중이었다. 그러자 세실리아가 고민하다가 'Sie vergisst morgens 'Guten Tag' zu sagen(She forgot to say good afternoon in the morning)'라는 문장을 만들었다. 그래서 씩 웃으면서 즉시 'Aber morgens muss man 'Guten Morgen' sagen!(but in the morning, you should say good morning!)' 이라고 농담을 했는데, 상당히 훌륭한 리액션이었다. (스스로 만족)

학원 수업을 마치고는 곧장 카이저에 가서 장을 봤다. 또 먹을 게 없어서; 다시 나오기 귀찮을 것 같아 어제 밤에 장바구니아 장 볼 목록을 미리 가방에 넣어 놨었다. 과일, 채소샐러드, 빵, 우유, 물을 사고, 고민하다가 연어와 새우 팩초밥도 샀다. 내가 좋이하는 새우라서.......집에 와서 점심으로 먹었는데, 우리나라 슈퍼마켓 팩초밥과 비슷한 맛이었다.; 어쨌든 새우를 섭취해서 만족했다. 과일은 후식으로 먹었다.

지난 며칠 동안 방에서 무선인터넷이 잘 되지 않아 꽤 스트레스를 받았는데 - 아예 안 되는 것도 아니고, 연결되었다가 끊겼다가 하니 산만해서 더 신경이 쓰였다. - 오늘 오후에는 갑자기 굉장히 신호가 잘 잡힌다. 그래서 앉아서 웹서핑을 하다 보니 시간이 금세 갔다. 저녁으로는 우유 한 컵과 요거트꿀버터를 바른 빵을 먹었다.

어제는 빨래를 했는데, 널면서 보니 어째서인지 양말 세 켤레가 다 한 짝 밖에 없다. 세탁기에는 두 짝을 넣었는지 기억이 잘 나지 않지만, 보통 양말은 벗어서 그때그때 빨래통에 넣어 놓으니 한 짝만 있을 이유가 없는데 대체 왜 세 켤레나 짝이 사라졌는지 영문을 모르겠다. 세탁기 안에 남아 있나 들여다 봤는데 없었다. 사실 어제 밤에 주인 아주머니가 세탁기 안쪽에 붙어 있던 한 짝을 갖다 주셨다. 나머지는 어디에 간 걸까?

이제 씻고 잠깐 쉰 다음 학원 숙제를 하고 원고를 할 계획이다. 원래 원고에 관해 쓰려고 했는데, 옆길로 새서 일상 잡담이 되었네. 글의 앞과 뒤가 미묘하게 어긋난다.

2007년 8월 20일 월요일

2007년 8월 19일 일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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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심으로 먹은 태국 국수. 집 앞에 있는  MAO THAI라는 유명한  태국음식점에서 먹었다. 론리 플래닛을 비롯, 웬만한 여행 책자는 물론이고 베를린 거주자들이 보는 잡지에도 거의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곳이다. 먹어 보니 과연 유명할 만 하다. 볶음밥도 맛있는데 양이 너무 많아서 다시 주문할 엄두가 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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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 주변에 맛집이 많아서 좋다. 귀국하기 전에 여기저기 많이 가 볼 수 있을까.



 

2007년 8월 16일 목요일

2007년 8월 15일 수요일

오늘 학원 수업에는 다섯 명 밖에 오지 않았다. 30분 약간 지나서 교실에 들어갔는데 바바라, 소냐, 마리나밖에 없어서 깜짝 놀랐다. 늘 앉던 곳에 자리를 잡고 나니 나란히 앉은 이 세 명과 내가 마주보는 형태가 되었다. 수업을 시작하고 잠시 후 세실리아가 와서 총 다섯 명. 이것이 바로 새미가 말하던 '어학원 학생들이 서서히 줄어가는 모습'이로구나. 하긴 나도 어제 결석했지.

선생님이 함부르크 여행은 어땠느냐고 하셔서 쿤스트할레(시립미술관)에 가서 그림을 많이 보았다고 했더니, 어느 화가의 그림을 보았냐고 물으신다. 그런데 그림을 수백 점이나 봤으면서 순간적으로 램브란트 한 명 밖에 생각이 안 나더라. 그래서 "램브란트......(4초간 고민하다가 눈을 크게 뜨고) Ich habe shone vergessen!(그세 까먹었어요!)" 라고 하고 같이 웃었다. 세실리아를 벤치마킹 해서 다이내믹하게 표현하려고 애쓰니 대화가 즐거워진다. 참, 세실리아는 스페인 전국 대회에서 프리스타일 힙합 부문 2등상을 받았던 춤꾼이었다. 듣는 순간 역시-싶었다.

수업에는 장소전치사 활용과 복합문장 만들기를 했는데, 좋아하는 작가와 책에 관한 화제가 나왔다. 데미안을 일곱 번 읽었다고 했더니(사실 엄청 많이 읽었는데 수십 번은 너무한 것 같아서 좀 줄였다) 선생님이 왜 그렇게 많이 읽었냐신다. 그래서 헤르만 헤세를 좋아하기 때문이라고 말하려다가, 순간적으로 "Weil ich Hermann Hesse liebe."(헤르만 헤세를 사랑해서요)"라고 해 버렸다. 말이 떨어진 순간 어감의 차이를 깨닫고 "그게 아니라 책, 그 사람 책 말이에요!" 라고 말했지만 이미 폭탄은 투하된 뒤. 다같이 책상을 두드리며 엄청 웃었다. 소냐는 쥐스킨트를 좋아한다고 하더라.

파트너 인터뷰 시간에 '-을 그만두고 싶다'는 표현을 사용하기 위한 질문이 나왔는데, 그만두고 싶은 습관이나 활동이 없었다. 그래서 "Ich moechte nie aufhoeren."이라고 했더니 옆에 있던 선생님이 물었다. "그만두고 싶은 게 하나도 없어? 흡연은? (Ich rauche nicht 안 피움), 술? (Ich trinke nicht 안 마심) 잠 많이 잠?(Aber das ist gut 그건 좋은 거잖아요;).......소연, 너 지나치게 긍정적이잖니!" 그런데 정말 아무리 생각해도 내가 이미 하고 있는 활동 중에 그만두고 싶은 것이 하나도 떠오르지 않아 당황스러울 정도였다. 내가 하는 건 다 계속해도 좋을 일처럼 느껴졌다. --; 결국 '-을 시작하고 싶다'로 바꿔서 인터뷰를 계속했다. 그만두고 싶은 것이 있나 종일 고민해 보았는데, 내가 말을 너무 많이 하지 않았으면 싶기는 하다. 아, 그리고 돈도 너무 많이 쓰지 않았으면 좋겠다.

오늘 오후에는 학원에서 독일 국회의사당(Deutche Bunderstag) 견학을 갔다. 4시 30분까지 여권이나 신분증(EU국가들끼리는 ID카드만으로 신분증명이 된다)을 가지고 꼭 시간 맞춰 오라기에 4시 10분 쯤 갔더니 아무도 없다. 의사당 앞 커다란 계단 앞을 왔다갔다 하며(더웠다!) 어학원 사람들을 찾아 봤지만 20분이 넘어도 보이지 않아서 정문 예약관객 문으로 가서 스피커에 대고 어학원에서 같이 오기로 했는데 일행을 못 찾겠다고 난잡한; 독일어로 말했더니 문을 열고 들여보내 준다. 오늘 단체 견학을 예약한 국제학생단체가 있다고 하기에 보니 우리 학원이 맞다. 그런데 다섯 시 시작이란다. 애당초 학생들이 늦을 걸 생각해서 4시 30분이라고 써 놓았는데, 나는 꼭 시간 지키라는 말을 곧이곧대로 듣고 20분 일찍 갔으니 40분이나 먼저 도착한 셈이다. 어쨌든 이 팀이 맞다고 했더니 다른 직원 분이 나를 북문으로 데려다 주고, 우리 견학은 이쪽 문에서 시작하기로 되어 있으니 다른 사람들이 오면 얘기해 주겠단다. 정문에서 만난다고 쓰여 있었는데 이상하네, 생각하면서 보안검색대 뒤 계단에 앉아 기다렸다. 심심해서 어제 빵집에서 받았던 젤리 한 봉지를 다 먹었다.

4시 50분이 되도록 우리 일행이 나타나지 않자, 젤리를 먹는 내 옆을 왔다갔다 하던 견학 안내를 맡은 할아버지 박사님이 다가와 일행이 어디 있는지 아느냐고 묻는다. 그래서 밖에서 제가 안 왔다고 생각하고 기다리고 있을지도 몰라요, 했더니 나가서 같이 찾아보잔다. 그래서 나가 봤더니 저 멀리에서 바바라 선생님(학생 바바라와 구분)과 낯익은 얼굴들이 나타난다. 역시 정문 앞 집합이었다. 너무 빨리 와서 못 찾았어요-힝힝 하고 같이 들어갔다. 다행히(?) 나 외에도 나타나지 않은 학생이 서너 명 더 있었다고 한다.

지난 주말부터 찾았으나 쉬는 시간마다 어디로 가는지 좀체 보이지 않던 알렉스와 첸이 일행에 있어서 반가웠다. 예전에 알렉스가 이번 주까지만 수업을 듣고 마지막 주에는 독일 여행을 간다고 했었기 때문에, 혹시 금요일까지 못 만나지 않을까 걱정했었다. 내 연락처를 주고 대만과 한국은 가까우니 서울에 놀러오면 꼭 연락하라고 했다.

독일 국회의사당 건물에서는 유리 돔이 제일 유명한데, 하필 이번 주에는 공사중이라서 돔까지 보지는 못했다. 하지만 18일에 공사가 끝난다니 다음 주에 다시 가 보면 되겠지. 독일 국회의사당은 전세계에서 가장 많은사람들이 방문하는 국회로, 1994년에 통독 의회를 위해 지금 형태로 완공된 건물이다. 내벽에 낙서가 있어서 '여기 사람들은 국회에도 낙서를 하나봐;'하고 생각했는데, 알고 보니 2차 세계대전 말기에 국회건물을 점령했던 소련 군인들이 써 놓은 욕이나 자기 이름, 정치선전 문구들을 건물을 새로 지으면서 없애지 않고 그대로 남겨 두었단다. 역사를 반영하는 국회라는 테마를 반영해서, 벽 곳곳에는 그 공간이 오십 년 전, 이십 년 전 즈음에 어떤 형태였는지를 보여주는 사진도 같이 걸려 있었다. 히틀러, 소련, 동서독 분단으로 이어지는 정치사의 굴곡을 그렇게 남겨 놓고, 견학 온 학생들에게 "저게 독일에 대한 무척 나쁜 욕이다"고 설명하는 것이 흥미로웠다. The Story of Berlin에 갔을 때도 느꼈던 바지만, 과거에 새롭게 가치를 부여하고 그 시간을 재구성해서 의미있는 문화유산으로 만들어내는 과정과 방식에 감탄하게 된다.

국회 안에는 종교 의식을 위한 방도 있었다. 개신교나 천주교는 물론이고, 이슬람교나 힌두교처럼 다양한 종교 의식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이 자유롭게 활용할 수 있도록 여러가지를 갖추어 놓았다. 벽면에는 지상-천상-끝을 의미하는 연작이 걸려 있었다. 못을 이용하는 개성있는 작풍으로 독일에서는 무척 유명한 화가라 한다.

국회와 티어가르텐, 슈프레 강 주위를 1500:1으로 축소해 만든 모형을 보았는데, 주요 지점에 점자 표시가 되어 있었다. 안내 박사님이 베를린 장벽이 있었던 부분을 가리키고, 장벽을 넘는 과정에서 어느 지점에서 몇 명이 사망했는지도 이야기했다. 그 옆에는 국회의사당 본 건물의 100:1 모형도 있었다. 시각장애인들이 직접 만져 보고 국회의 구조를 이해할 수 있게 하기 위해 마련된 것이라 한다. 실제로 시각장애인이 만져 보면 옥상은 옥상 느낌이 나고 벽면은 벽면이 이런 느낌이구나, 하고 알 수 있도록 만들어졌다는데, 나는 만져 봐도 잘 모르겠더라. 또 체스의 폰과 같이 생긴 작은 말이 있어서, 우리가 현재 어디에 있고 어디로 가는지 등을 그 모형 위에 놓아 보며 설명할 수도 있었다.

그 다음에는 일반적인 국회의원 회의실에 갔다. 크기만 다르고 내부는 똑같이 생긴 회의실이 여럿 있다는데, 우리가 간 곳은 FDP의 회의실 같았다. 천정에 작은 유리판 같은 것을 설치해서 해가 움직이는 방향을 따라 빛을 반사, 실내를 밝게 유지하면서도 열기를 차단해 인공 냉방을 최소한으로 줄일 수 있게 구성된 환경친화적인 공간이었다. 현재 독일의 국회의원은 총 630명이고 국회에 근무하는 직원은 총 오천 여 명이다. 투표시에는 거수나 전자 투표가 일반적이지만, 특이하게도 본의회실에 '기권','찬성','반대'라는 세 개의 유리문이 있었다. 의원들이 모두 본회의실 밖으로 나갔다가 세 문 중에 하나를 골라서 도로 들어오면, 국회 직원이 각 문 앞에서 그 문으로 들어오는 사람 수를 세는 방식으로 투표할 때 쓰인단다. 양 머리수 세듯이 사람을 세기 때문에 영어로 거칠게 옮기자면 'Hammel vote'라고 불린다. 박사님이 최첨단 투표법이라고 농담을 했다.

본회의실의 위에는 유리 돔과 전망대 같은 공간이 있어서, 기자들은 그 위에서 국회를 내려다보며 사진을 찍고 취재를 할 수 있었다. 위에서 의원들의 책상이 다 보이기 때문에, 중요한 투표나 회의를 할 때는 그 유리창 위로 차단막이 내려오고, 그러면 사진 촬영을 해서는 안 된단다. 독일 국회의 구성 방식에 대한 설명도 들었는데, 정치학에서 자세히 공부했던 내용이다 보니 독일어는 숫자밖에 안 들려도 무슨 뜻인지 알 수 있어서 재미있었다.

본회의실 안에 들어가 단체 사진을 찍었다. 안내 박사님이 카메라를 모두 받아서 죽 찍어 주셨다. 그리고 돔은 닫혔지만 의사당 옥상으로 올라가 베를린 시내를 둘러보았다. 돔이 열리면 참 예쁘겠더라. 옥상에는 관광객을 위한 카페가 있었다.

내려와 보니 출구에 아까 나의 엉망 독일어를 대충 알아듣고 영어에 능통한 직원에게로 데려다 주었던 무전기 할아버지가 아직 있어서 눈을 맞춰 인사를 했다. 할아버지가 손을 흔들어 주었다.

오늘의 지출
아점 3,30
생필품 1,69
공중전화 19,50
저녁 22,00

2007년 8월 15일 수요일

2007년 8월 11일 토요일

새벽 두 시 사십 분까지 발버둥쳐서 간신히 초고를 써 놓고 조금 잔 다음 프라하로 출발했다. 중략하고 (1)공항에서 배낭 분실 - 중략- (7) 프라하에서 인터넷 호텔예약 중복오류로 인해 방이 없어, 체크인을 못하고 한 시간 가까이 카운터 앞에서 기다리는 사태 발생.....대체 내가 무엇 때문에 여행경비의 대부분을 숙소에 쏟아부었는데! 베스트웨스턴이잖아! 왜이래! 라고 생각하며 호텔 안을 세 번 오르락내리락 한 끝에(이유: (8)호텔에 작동하는 카드키 수가 방 수보다 부족해서 키 오류로 방에 못 들어감) 어쨌든 예약한 것보다 훨씬 좋아 보이는 방에 안착하는데 성공했다. 하지만 그래서 시간이 너무 늦어져 프라하의 인형극은 못 봤다. orz

학원에 가야 하므로 나중에. 아아, 일기가 밀리고 있어....  

2007년 8월 11일 토요일

2007년 8월 10일 금요일

벌써 8월 10일이다. 어제 밤 열두 시까지 분투했으나 C사 원고가 잘 풀리지 않았다. 결국 새로운 글을 쓰기로 마음 먹고 자기 전에 새 글의 시작 부분을 고심했는데, 그 영향으로 일찍 잠에서 깼다. 마치 드라마나 영화의 NG 장면 반복처럼, 새벽에 꿈 속에서 소설의 도입부가 되풀이되었다. 생각해 두었던 도입부를 한 가지 방식으로 전개했다가 중간에 아니야, 하고 대사를 바꾸거나 시점을 변경해서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는 식으로 주인공들이 식탁 앞을 떠나지 않았다. 실제로 침대에서 일어난 시각은 여덟 시가 조금 지나서다.

아침으로는 시리얼 요리를 먹었다. 수업 시간에 맞춰 학원에 갔는데, 아홉 시 반에 교실에 올라갔건만 학생이 한 명도 없다. 혹시 어제 밤에 파티에서 다들 술을 너무 많이 마셔서 수업 시작 시간이 바뀌었나 하고 순간 고민했다. 독일 식으로 생각하면 그럴 리 없지만 스페인 학생이 대부분이라 예측하기 어렵다. 참, 어제 일기에 쓰는 걸 까먹었는데, 말하기가 무섭게 일어난다고, 어제 세실리아가 교실에 커피 종이컵을 갖고 들어왔다. 금요일이라서인지 다들 슬렁슬렁이다. 아홉 시 오십 분 정도가 되어서야 대충 수업을 진행할 수 있을 정도의 학생이 모였다.

알무데나가 내일 스페인으로 돌아가기 때문에 엽서를 쓰고 싶다고 하고 연락처를 받았다. 내 연락처도 주었다. 다른 학생들은 대부분 코스 끝까지 있는 것 같다. 쉬는 시간에는 카페에 카페라떼와 애플파이를 사러 가서 세실리아와 이야기를 했다. 세실리아는 영화감독을 목표로 하여 영화이론을 공부하고 있는 스페인 대학생이다. 한국에서 독일까지 오는 것은 스페인에서 오는 것보다 훨씬 복잡하지 않느냐고 묻기에 열한 시간 걸렸다고 하니 끄엑, 한다. 세실리아는 정말 사랑스럽고 에너지가 넘치는 타입으로, 누구나 웃으면서 대할 만한 명랑하고 밝은 느낌을 갖고 있다. 특히 독일어로 말하다가 잘 생각이 안 날 때면 그 답답함을 온몸으로 격렬하게 표현하는데 굉장히 귀여워서......사실 벤치마킹 하고 있다.

집에 와서는 토스트에 허니버터를 발라 먹고 콜라를 마신 후 원고를 시작했다. 아침에 NG를 많이 낸 덕에 도입부까지는 쉽게 풀렸는데 다음부터가 문제다. 중간에 일어나 프라하 행 배낭을 싸고 6시쯤 부엌에 들어가 뭘 먹을까 고민하는데, 주인아주머니가 샐러드를 잔뜩 만들었는데 훈남아들이 안 들어왔다며 샐러드를 좋아하는지 묻는다. 아, 좋지요! 하고 얼씨구나 먹었다. 파스타, 오이, 양치즈 등이 들어간 끼니형 샐러드인데 참 맛있다. 든 재료도 모두 내가 좋아하는 것들이고. 이번에는 내일 프라하에 간다고 미리 말씀드렸다. 더 먹고 싶으면 가져다 먹으라고 하셨으니 또 갖다 먹어야지. 정말 엄청 많더라.

내일은 학원 수업이 없으니 아무리 오래 걸려도 오늘 밤에 원고를 다 하고 자야지. 부끄럽지 않은 글을 쓰지는 못하더라도, 최소한 책임질 수 있는 글을 내놓기는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고료를 받는 글인 경우 그 부담이 당연히 훨씬 크다.  

2007년 8월 10일 금요일

2007년 8월 9일 목요일

어제 밤에는 방에 있는 텔레비전을 켜서 보았는데, 'Ein Job, deine Chance'라는 프로그램을 하더라. 다른 직업을 갖고 있는 사람들에게 원하는 직업의 훈련을 받을 기회를 주고, 그 결과를 평가해 취직시켜 주는 프로그램이었다. 독일에서 최근 급성장한 저가 항공사인 에어 베를린(Air Berlin)의 스튜어드/스튜어디스를 지망하는 사람 셋이 나와서 음료 제공, 기내 문제상황 대처, 긴급시 수영, 영어 시험, 화재 진압 등의 훈련을 받았다. 스물 한 살인 화장품 가게 점원(여), 스물 여섯인 치과 보조원(여), 서른 여덟인 호텔 매니저(남) 세 사람이었는데, 마지막에 취직시켜 줄지를 결정하는 자리에서 앞 아가씨 둘이 합격하자 한 명은 떨어지리라고 생각했는지 호텔 매니저 청년이 바짝 긴장했으나 모두 합격했다. CSI나 Without A Trace의 광고도 나왔는데, 모두 더빙이더라. 사우스파크도 했다. 패션이나 스포츠, 자동차 관련 잡지 광고가 텔레비전에 많이 나오는 것이 특이했다.

오늘은 여덟 시 조금 전에 일어났다. 아침으로는 베이컨, 에그스크램블, 토스트, 체리토마토, 우유를 준비해 먹었다. 콧물이 너무 심하게 나서 한국에서 준비해 간 비염 약을 먹었다. 학원에 가려고 준비를 다 했다가, 아무래도 오늘 할 일을 생각하면 시간이 부족할 것 같아서 나가면서 방향을 바꿔 알렉산더 광장으로 갔다. 즉, 땡땡이다. 알렉산더 광장 역사 내에 있는 라이제젠트룸에 가서 저먼 레일 패스를 갖고 있는 외국인인데, 토요일에 베를린 중앙역에서 프라하로 가는 표를 사려고 한다고 했다. 마음 속으로 시뮬레이션을 해 보고 갔지만 대화란 상호작용인지라 중간에 한 번 위기가 왔다. 그래서 '슈프레헨 지 엥글리쉬?(영어 하시나요?)' 하자 즉시 '니이-'라는 답이 돌아온다.

통일된 지 여러 해가 지났지만, 구 동베를린 지역과 서베를린 지역의 차이는 적지 않다. 영어 실력은 확실히 차이가 나서, 알렉산더 광장의 라이제젠트룸에서 영어가 통하지 않자 아, 여기는 구 동베를린이지, 라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중앙역이나 동물원 역의 라이제젠트룸에서는 영어가 완전히 통했었다. 그리고 갓 왔을 때는 눈치채지 못했는데 생활 공간 자체의 분위기가 상당히 다르다. 독일어에는 키츠(Kiez)라는 말이 있는데, 작고 폐쇄적인 지역 커뮤니티를 의미한다. 베를린은 국제적인 도시이지만, 평생 자신의 키츠를 거의 벗어나지 않고 그 안에서만 생활하면서 키츠 외부인들에게는 폐쇄적인 태도를 보이는 사람들도 많이 있다고 한다. 내가 지금 머무르는 곳은 프렌쯔라우어 베르크(Prenzlauer Berg)의 구 동베를린 지역이다.

어쨌든 독일어로 해결했다. 저먼레일패스는 독일 국경 안에서만 유효하기 때문에 추가로 구입해야 했던 체코 내 왕복 표도 제대로 사고, 원하는 시간대의 열차 시간표도 받고, 24살인데 유스 할인이 될지 물어보아 확인도 했다(안 된단다). 처음에는 프라하 중앙역이 아니라 다른 역으로 가는 직행 시간표를 출력해 주시기에, 그 역이 아니라 다른 역이라고 해서 맞는 시간표를 받았다.

독일어로 대화하는 요령을 좀 알 것 같다. 한국어나 영어로 소통할 때처럼 빨리 해결하려는 마음을 앞세워 자꾸 다짜고짜 영어로 넘어가거나 먼저 답답해 하면 안 된다. 일단 웃는 얼굴로 타이밍에 맞춰 인사를 한 다음 -여기서는 슈퍼 계산대에 설 때는 물론이고, 그냥 가게에 들어설 때도 주인과 눈을 맞추고 인사를 한다.- 천천히 성의 있게 말을 하면 충분히 기분 좋게 뜻을 통할 수 있다. 어차피 외모를 보면 외국인인 게 단번에 표시가 나니까 상대편도 내 말에 주의를 기울여 준다. 라이제젠트룸에서 영어를 전혀 하지 않고 표를 사고 기분 좋게 당케 쇤-하고 나와서 무척 뿌듯했다.

그리고 쿠담에 가서 벼르고 있던 짧은 청바지와 샌들을 샀다. 이제 굉장히 더운데, 샌들이 없으니 더 더웠다. 운동화 한 켤레만 갖고 간 런던에서 공동 샤워장에서 나올 때마다 쩔쩔 맸던 걸 생각하면 정말이지......런던과 베를린에서 온갖 샌들을 다 봤기 때문에 고르기가 더 힘들었다. 한 가지 주제만 갖고 많은 물건을 보면 비싸고 좋은 것과 싼 물건의 차이가 점점 명확히 보인다. 정말 탐이 나는 편하고 예쁜 신발이 두엇 더 있었지만, 결국 무난하게 한국에 돌아가서도 신을 만 한 할인 품목으로 선택했다. 엄청 고민해서 골랐는데, 고른 신발을 카운터에 들고 가니 하필 내가 고른 신발만 맞는 사이즈가 다 팔리고 없다. 직원이 기다리라고 하고 여기저기 뛰어다니더니 전시되어 있던 것의 나머지 한 쪽을 찾아서(한 쪽 신발만 전시해 놓고 카운터에서 풀셋을 찾아 주는 시스템이다) 이거라도 괜찮겠느냐며 준다. 도저히 더 고를 힘이 남이 있지 않았고 전시품이라도 깨끗해 보여서 그냥 알겠다고 하고 가지고 나와서 갈아 신었다. 샌들을 신어 보기 위해 한국에서 콘서트 용으로 가져온 구두를 신고 나갔다 보니 발이 아파서 힘들었다. 벌써 발가락에 물집이 잡혔다. 굽 없는 샌들을 신으니 천국이로세.

참, 샌들 사려고 구두 가게를 돌아보는데 어떤 사람이 나에게 독일어로 베를린 사람이냐고 묻는다. 길을 물어보려는 것 같았다. 나 역시 지리를 잘 모르니 그냥 아니라고 했는데, 현지인으로 위장하려고 꾸준히 노력한 성과를 마침내 얻은 듯 뿌듯했다. 처음 왔을 때는 내가 생각해도 이방인 티가 너무 역력해서 엄청 튀었고 중간에는 새미의 표현을 빌리자면 '신혼여행 온 새신부(orz)' 같았다. 그제는 마리나가 내게 원피스 예쁘다며 어디서 샀나고 물어보았다. 우리나라에서 가져간 옷이었는데, 옷을 겹쳐 입는 방식을 조금 바꾸어 봤었다. 조금이라도 덜 도드라지려고 (특히 지갑을 도난당한 다음부터는 이 필요를 더욱 절실히 느꼈다) 내 나이 또래 아가씨들의 옷이나 화장, 장신구를 얼마나 열심히 관찰했는지 모른다.

그리고 지하철 역 근처의 슈퍼에 가서 청포도와 콘아이스크림을 샀다. 콘아이스크림의 윗부분이 모두 물렁해서 찌그러진 줄 알았는데, 뜯어 보니 크림을 짜 놓은 형태가 그대로 들어 있는 예쁜 아이스크림이었다. 하지만 계산서를 보니 길가의 아이스카페(Eiscafe)에서 파는 콘 아이스크림보다 비싸다. 더 쌀 줄 알고 슈퍼에서 샀는데. 더워서 지하철을 타기도 전에 다 먹었다. 알렉산더 광장까지 지하철 2호선을 타고 가서, 트램 M2번으로 갈아 탔다. 2호선으로도 집에 갈 수 있지만 지하철 역이 멀어서 트램을 타는 편이 편하다. 알렉산더 광장 지하철 역사에 있는 빵집에서 점심과 저녁으로 먹으려고 애플파이를 두 개 샀다. 여기에는 빵집이 정말 많지만 이상하게 애플파이는 없는 곳도 있어서, 보일 때 사서 들어가려는 생각이었다. 봉지 값은 우리나라처럼 받는 것이 원칙인데, 우리나라와 마찬가지로 작은 동네 슈퍼나 빵집에서는 받지 않기도 한다. 체인점에서는 확실히 받는다. 잠깐만요,하고 처리할 기회를 노려 주머니에 모두 담아 왔던 1,2,5 센트 짜리를 우루루 내고 어머나, 하는 빵집 아주머니에게 웃으면서 아마 맞을 거예요- 했다. 그런데 1센트 더 냈다고 돌려받았다.

집에 들어오니 두 시 반 즈음. 정말 더웠다. 텔레비전을 보면 밖에서 땀을 흘리고 온 주인공이 집에 들어서자마자 냉장고 문을 열고 맥주를 꺼내서 들이킨 다음 시원하게 캬-한다. 이왕 맥주를 사 놨으니 나도 한 번 그렇게 해 봐야지 결심하고 갓 사온 포도를 씻어 보울에 담고 냉장고에서 맥주를 꺼내 땄다. 포도를 보울에 담은 이유는 어제 본 프로그램에서 중간평가를 통과한 지원자 세 명이 술을 한 잔 마시면서 과일을 보울에 담아 놓고 안주 삼아 먹는 장면을 보았기 때문이다. 이래서 텔레비전이 애들 망친다는 소리가 나오는 거다.

하지만 맛이 없었다. 무알콜일 뿐이지 맥주니까 맥주 맛이 난다면 쓴 것이 당연한데, 써서 실망했다. 포도와 먹어도 애플파이와 먹어도 썼다. 나중에는 민트초컬릿과 함께 먹어서 두 잔을 마셨다. 아까워서 혹시 보관이 될까 하고 뚜껑을 다시 잘 여며 딱 소리나게 꽂은 다음 책상 구석에 눕혀 놓아 보았는데 조금 지나니 맥주가 새어 나오더라. 낙심해서 병을 도로 세워 열고 반 잔 더 마셨다.   

이른 저녁으로는 어제 산 냉동 버터야채를 물에 끓여 익히고 토스트를 구워 우유와 함께 먹었다. 냉동 야채는 브로콜리, 콩, 당근 등이었는데, 역시 냉동했다가 끓여 먹는 거라서 썩 맛은 없었다. 어차피 불을 써야 하는 것은 마찬가지이니, 차라리 재료를 사서 직접 씻어서 데치면 훨씬 맛있겠지. 하지만 그 시간을 아끼기 위해서 만들어진 식품이니까.  

먹고 나서는 머리가 아파서 한 숨 잤다. 일어났는데 덥고 여전히 쿡쿡 찌르는 듯한 두통이 있다. 설마 무알콜 맥주의 후유증인가? 

2007년 8월 9일 목요일

2007년 8월 8일 수요일

오전에는 수업을 들었다. 런던에 다녀온 이후로 기상시간이 늦어졌다. 피로가 채 풀리지 않았는지 어깨도 뻐근하고.....하지만 3주차에 접어든 때문인지 말이 통하는 영국에서 며칠 보내고 와서인지 (행복했어. ㅠㅠ)독일어로 생활하는 것 자체에 대한 부담은 많이 줄었다. 쉬는 시간에 사무실에 가서 다음 주 수요일의 국회의사당 관람에 대해 여쭈어 봤는데, 남자 직원 분이 콘서트는 재미있었냐신다. 주인 아주머니가 놀라서 "학생이 사라졌어요!"하고 학원에 전화했었다는 얘기를 하시는 걸 보니 전화를 받았던 분이신 가 보다. 아이고.;

이제 날씨가 굉장히 덥다. 하지만 기온 차 때문인지 바람이 불어서인지 계속 콧물이 났다. 휴지를 가지고 있지 않아 학원 수업을 마치고 집까지 훌쩍거리면서 걸었다. 집 바로 옆에 있는 종이가게에 편지봉투를 사러 들어갔는데, 겉으로는 귀여운 어린이 책/공책을 파는 분위기였던 가게 안에 뜻밖에 멋진 노트와 앨범, 포트폴리오가 가득했다! 여러가지 하드커버,소프트 커버 노트들과 다양한 크기와 재질의 색지와 앨범, 직접 디자인 할 수 있는 카드 만들기 재료 등 온갖 종이로 만들어진 것들이 잔뜩 있어서 보물을 발견한 기분이었다. 하지만 콧물 때문에 제대로 볼 수가 없었다. 일단 원래 목적이었던 봉투만 골랐는데, 계산대의 언니가 나에게 휴지를 내밀며 쓰겠느냔다. 고맙게 받아서 코를 휑 풀고 괜히 날씨 탓을 했다. 본격적으로 구경하고 노트를 고르러 다시 가고 싶은데(정말 바로 두 집 옆이다) 이 콧물 사건 때문에 어쩐지 쑥스러워서 내일 당장은 못 가겠다. 다음 주에 가야지. 집에 와서 찾아보니 홈페이지도 있는 가게더라.

오늘 학원에서는 내셔널 갤러리를 가지만 나는 집에 있기로 했다. 집에 와서 학원 쉬는 시간에 샀던 달디단 빵을 먹고, 인터넷을 좀 한 다음 슬슬 나가야겠다 싶어 챙기는데 -또 물도 우유도 없다. 역시 혼자 살면 식사가 가장 큰 문제다- 천둥이 치고 비가 내리기 시작한다. 뭐, 이제는 이 정도에 놀라지 않아. - _) 피곤하기도 해서 창문을 닫고 한 시간 반 정도 잤다. 잠결에 천둥 소리가 여러 번 들렸다.

자고 일어나니 다섯 시 반 쯤이다. 비도 그쳤다. 장바구니를 들고 윈스터 가의 카이저에 가서 휴지, 물, 우유, 빵, 샐러드, 스프, 삶아먹는채소, 그리고 무알콜 맥주를 샀다. 독일에 왔으니 맥주도 마셔 봐야지. 독일에서는 물보다 맥주가 싸다는 얘기도 있던데 어떤 물이고 어떤 맥주냐 따라 다르다. 맥주가 더 비싸지는 않고, 그냥 대충 비슷하다. 무알콜 맥주가 모여 있는 선반에서 한 병 골랐다. 그리고 페트병 보증금 받는 방법도 알아냈다. 지금 방 구석에 페트병이 일곱 개 있는데, 열 개 채워서 가져 갈까나.

사실 내일 밤에 단찌거 가(Danziger Str.)에서 학원 파티가 열린다. 밤 8시부터 늦게까지 할 모양인데, 나는 아직 참석 여부를 결정 하지 않았다. 집에서 무척 가깝고 나간다면 사람들과 조금 더 이야기할 수 있기는 하겠지만, 다들 독일어가 아니라 스페인어를 쓰리라는 확신(;)이 들고 8시 시작이면 해가 지고 나서 귀가해야 하는 것도 부담이다. 만약 오늘 밤-내일 낮 사이에 C사 원고를 다 한다면 그래도 한 번 가 보고, 아니면 집에서 계속 일해야지. 참석할 경우를 생각해서 이 맥주를 샀는데, 생각해 보니 병맥주는 따면 한번에 다 마셔야 하는 건가? 만약 파티에 안 가서 남으면 어떻게 보관하지?;; 원래 맥주는 한번에 일 리터 씩 마실 수 있는 종류의 음료인가?;

저녁으로는 방금 사온 샐러드를 먹은 다음 토스터에 버터식빵을 가볍게 구워 우유와 함께 먹었다. 나의 채소 섭취량을 걱정하시는 어머니를 위한 인증샷 첨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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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선하고 드레싱과 포크까지 포함된 훌륭한 샐러드. 열어보면 이렇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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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 할 일은(날씨가 좋을 경우) 1)시내에 나가서 샌들 사기 2)라이제젠트룸에 가서 베를린 중앙역-체코 프라하 구간 기차표를 독일어로 알아보고 구입하기 이다.

2007년 8월 7일 화요일

2007년 8월 7일 화요일

8:20 늦게 일어났다. 피로가 덜 풀렸는지 어깨가 뻐근하다. 8시에 알람 소리를 듣고 눈을 떴으나 너무 피곤해서 조금 더 잤다. 아침으로는 얼마 남지 않은 우유로 시리얼을 타 먹었다. 학원에 5분 정도 늦게 갔는데, 교실에 들어가니 아는 사람이 없다. 2분 전에 경쾌하가 구텐 모르겐! 하고 뛰어올라갔다가 황당한 얼굴로 내려와 반배정표를 찾아보는 나를 보고 사무실 직원이 웃으며 월요일이라 반이 바뀌었다고 가르쳐 준다. 선생님은 그대로 바바라/마티나인데 학생이 약간 바뀌었고 총 인원이 10명으로 늘었다. 여전히 나 빼고 모두 스페인인이다.

11:15 쉬는 시간에 학원 근처에 있는 배커라이인 캄페Kampe(체인 빵집인 듯) 에서 커피와 애플파이를 사먹었다. 날씨가 굉장히 아이스 커피가 없기에 그냥 커피를 주문했는데 마시다 보니 덥다. 어제도 그렇고, 지난 주의 추위가 거짓말처럼 느껴질 만큼 더워졌다. 옷을 한 겹 벗고 꿋꿋이 빵과 커피를 먹고 마셨다. 런더너 (이름 물어 볼 타이밍을 완전히 놓쳤다.)가 런던에서 재밌었냐기에 재밌었다고 했다. 그리고 교실에서 마리나, 알무데나(알데모나가 아니었다! 앗차로소이다) 와 이야기를 했다. 어제 학원 팀에서는 베를린 장벽을 보러 갔다고 한다. 알렉산더 광장 쪽 장벽이 상당히 괜찮다고 들었기 때문에 아쉬웠지만, 굉장히 오래 걸어서 피곤했단다. 참, 그런데 여기에서는 교실에 마실거리를 가지고 들어오지 않는 것 같다. 밖에서 먹고 들어온다. 지난 주부터 나만 테이크아웃 컵을 책상에 놓고 있는데, 우연인지 스페인식 습관인지 모르겠다. 선생님은 쉬는 시간에 마시던 커피를 그대로 들고 들어오시기도 한다.
 
오늘 오후 프로그램이 없을 줄 알았는데 The Story of Berlin을 보러 간단다. 어제 장벽 보고 온 사람들은 피곤하다며 빠지는 분위기였다. 대체 어제 뭘 하고 왔기에?! 선생님이 런던이 어땠냐고 물어보셨는데 어제 밤 11시까지 두 장 가득 써 놓은 말을 반도 못 해서 조금 속이 상했다. 역시 제대로 읽어 보고 나왔어야 했어. 아침에 일어나서 하려고 했는데 늦잠을 자는 바람에 눈으로만 다시 보고 나왔더니 말이 잘 안 나왔다. 수업을 마치고 사무실에 가서 탄뎀 파트너 신청을 했다. 영어로는 language exchange, 우리말로는 뭐라고 하는지 까먹었다. 마리나가 가르쳐 줬다. 나는 머무르는 기간이 짧고 스페인어나 프랑스어 원어민이 아니라 구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조금이라도 말할 기회가 늘어나면 좋겠다.

2:40 이제 슬슬 나가봐야지.

7:30 경 귀가. The Story of Berlin 을 보고 지하 벙커까지 다녀와서 시간이 생각보다 많이 걸렸다. 쿠담 카이저에서 마침내 기름과 버터, 식빵을 샀다.

9:00 저녁을 만들어 먹고 후식으로는 홍차를 한 잔 우려 민트 초컬릿 한 쪽을 곁들여 마셨다. 평화로운 저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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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8월 6일 월요일

8월 3,4,5,6일 일기는 역순으로 올라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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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0 경에 눈을 떴다. 너무 이른 시각이라 다른 사람들이 움직일 때까지 기다리느라 이십 여 분 뒤척이다가, 오른쪽 침대에 자리 잡은 일본인 관광객들이 세면대를 쓰기 시작하기에 나도 일어났다. 바깥 샤워실에서 샤워를 하고(침실 세면대를 쓰기에는 조금 이른 것 같았다.) 문제의 분홍색 수건을 쓰레기통에 버린 후 짐을 싸서 체크아웃하니 7시다. 아침식사를 하지 않아 아까웠지만 그래도 일찍 나가서 준비하는 편이 낫지. 지하철 첫차 시간이 안 되어서 유스호스텔 앞 공중전화에서 어제 차이나타운에서 마련한 전화카드로 어머니와 통화를 했다. 싼 전화카드를 덕분에 오랜만에 여유있게 통화할 수 있어서 좋았지만 차이나타운 판매상의 뻥에 당했다는 개운치 않은 기분은 남더라. 어디 한국에 전화할 때 400분이야. 20분이더구먼. 400분일 거라고 믿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95%나 차이가 나다니, 뻥의 밀도가 너무 높잖아!

7:30 서클라인 첫차를 타고 베이커 스트리트로 갔다. 이 곳의 코치 스테이션(Coatch Station 19)에서 출발하는 스탠스타드 행 8:30분 이지버스를 예매해 두었었다. 지하철 역사에서 나오니 아직 7시 50분 정도밖에 안 되었다. 여유롭게 정류장을 찾아나섰는데......아무리 걸어가도 정류장이 안 나온다! 7시 57분 쯤 옆으로 빈 이지버스 한 대가 지나갔다. 배차 시간이 30분 간격이니 방금 지나간 버스가 8시 버스일 터, 그렇다면 맞는 길로 가고 있다는 뜻인데 왜 안 나오지? 이 길이 아니다 싶어서 이번에는 반대편으로 걷기 시작했다. 그런데 또 아무리 가도 표지판이이 안 보인다. 설상가상으로 꽤 굵은 빗방울이 떨어진다. 8시 20분이 넘자 다급해져 지나가는 사람에게 묻기 시작했지만, 모른단다. 최후수단으로 한창 에딘버러행 기차를 타고 있을 새미에게 전화를 했는데, 전화를 하다 말고 휴대폰 배터리가 끊어졌다. 웨스트민스터 대학 뒤편에서 경찰을 발견, 다시 물어봤는데 다행히 설명을 해 준다. 아까 그 길이래. -_- 그래서 다시 처음에 가던 길로 갔는데, 이번에도 보이지가 않아서 그 길에 선 경찰 2에게 또 물었다. 모른단다.

이미 시간은 8시 55분. 9시 버스라도 타야 공항에 갈 수 있다는 절박한 심정으로 야성의 감각을 동원해 뛰듯이 걸어서 9시 조금 넘어 정류장을 찾아냈다. 뭐야, 경찰 2 자리에서 직진이잖아. 막상 정류장에 도착해 보니 약도의 그림이 이해가 되긴 하더라. 경찰 1은 오른쪽 왼쪽을 잘못 가르쳐 줬었다. 이럴 때 나침반과 동서남북 방향 표시가 필요하구나 싶었다. 빈속에 어제 산 책과 여행짐을 들고 땀을 뻘뻘 흘리며 비를 맞고 나니 이미 기진맥진했다. 버스 너댓 정거장 정도 거리를 한 시간 반 동안 두 번 왕복했으니. 그래도 스탠스타드 공항에 어떻게 갈지 생각해야 했다. 아, 이것 때문에 급한 마음에 베이커 스트리트 지하철 역을 네 번째 지날 때 -_- 현금인출기에서 마스터카드로 20파운드를 출금했다. 안되면 현금으로 차비를 내고라도 버스를 타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정류장에 가 보니 여행객들이 몇 명 있는데, 이지버스와 내셔널 익스프레스를 기다리는 사람들이 섞여 있는 것 같았다. 눈으로 어림셈을 해 보니 9시 버스에 자리가 있을 것 같다. 만약 9시 이지버스가 만석이면 9시 15분 도착이라는 내셔널 익스프레스에 재빨리 타야 한다) 궂은 날씨 탓인지 이지버스와 내셔널 익스프레스 둘 다 연착, 이지버스가 9시 22분 정도에나 도착했다. 예정보다 한 시간이 늦어 굉장히 초조했는데, 8시 30분 차를 놓쳤는데 지금 현매로 탈 수 있느냐고 하자 그냥 태워 준다. 

한 시간 반 정도를 달려 스탠스타드 공항에 도착했다. 저가항공/유럽내 항공의 경우 보통 이런 외곽 공항에서 타고 내리는데, 런던의 경우 공항과 시내 사이가 정말 멀고 교통편이 마땅치 않더라. 이런 코치를 이용하지 않으면 다른 일반적인 대중교통 수단으로 공항에서 시내로 진입하기가 굉장히 어렵다. 베를린의 경우 제1공항인 테겔 공항의 교통이 가장 좋긴 하지만 유럽내 항공사들이 이용하는 템펠호프나 쇠네펠트 공항도 에스반, 트램, 버스 등으로 쉽게 갈 수 있으니 훨씬 편하다.

공항에 도착하자마자 셀프 체크인을 하고 보안 검색대에 섰다. 영국에서는 손가방(hand luggage)을 일인당 무조건 하나만 가지고 나갈 수 있다. 이 규칙이 굉장히 불편한 것이, 예를 들어 나처럼 작은 배낭과 크로스백, 여권이 든 목걸이 가방을 가진 사람은 가방이 3개 있는 셈으로 이 셋을 하나의 가방에 모두 넣어서 검색대를 통과해야 한다. 안 그러면 못 나간다. 더 괴상한 것은 검색대를 통과한 다음에 다시 도로 꺼내서 따로따로 들어도 상관없다.; 짐을 다시 싸는 자리까지 마련해 놓았는데, 내 옆의 여자아이는 A4크기 정도인 작은 가방 두 개를 들고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곰돌이 인형을 넣었다 뺐다 하고 있었다. 안타까웠다.

새미가 미리 알려 줬기 때문에 어제 구해 놓은 커다란 파운드랜드(Poundland)비닐봉지에 책과 차가 든 위타드 가방, 배낭, 크로스백, 목걸이 가방을 넣어서 통과했다. (다 들어가고 크기 규격에 맞는지 어제 밤에 넣어 봤었다.) 가장 시간이 걸리는 체크인과 보안검색을 지나고도 11시라 조금 여유가 생겼다. 스타벅스에서 샌드위치와 토마토 주스를 사고 터미널로 가는 전차(?)를 탔다. 스탠스타드 공항을 포함, 런던 전반의 교통 환경을 생각하면 런던에 두 번 다시 가고 싶지 않다. 맞는 터미널에 제때 도착했는데, 탑승 수속을 하지 않는다. 뭔가 문제가 생겨 지연되고 있단다. 예정보다 십오 분 정도 늦게 탑승 수속이 시작되었다. 비행기는 11시 55분 출발이다.

12:20 사람들은 55분 전에 다 탔는데, 안전벨트 매고 기장 소개 하고 안전교육까지 했는데 비행기가 움직이지를 않는다. 설명도 없다. 12시 10분쯤 되어서 조금 움직이더니 다시 가만히 멈춘다. 그리고 또 설명 없이 기다리다가 25분쯤 되어서 마침내 비행기가 이륙했다. 이륙이 늦었으니 오늘은 모두에게 샌드위치와 차를 비롯한 각종 음료를 무상 제공하겠단다. 옆 자리의 노부부가 설명과 사과를 안 한다고 투덜거린다. 나는 삼십 분 동안 몸을 배배 꼬며 어제 산 스타더스트(Stardust) 8월호를 한 번 반 정독했다. 오랜만에 글을 읽으니 좋긴 했지만, 최근 Sci-fi 드라마를 거의 보지 않아서 내용을 잘 모르니 썩 재밌지는 않았다. 데이비드 테넌트가 10대 닥터가 된 다음부터 보다 말았던 닥터 후(Doctor Who) 의 세 번째 시즌에 흥미가 생겼다. 그리고 스타트렉 영화 캐스팅이 거의 확정되었고(스폭의 젊은 시절) 엑스 파일 영화도 내년 여름 개봉을 목표로 하고 있단다.

기상 상황 때문에 중간에 비행기가 심하게 흔들리고 계속 앉아 있으라는 둥 고도를 조정한다는 둥 방송이 나와서 불안했다. 첫 해외여행에서 1)배낭분실 2)지갑소매치기 3)자정에 납량특집 공원 가로지르기 4)런던지하철 연착 5)공항버스 놓침 6)비행기 연착 을 경험한 상황에서, 여기에 '7)기상악화로 다른공항에 내리기' 가 더해져도 이상하지 않을 것만 같았기 때문이었다. 다행히 30분 정도 늦긴 했어도 세 시 사십 분 쯤 테겔 공항에 무사히 내렸다. 공항에 내려 공중전화로 집에 전화를 했는데, 신용카드를 꽂으라기에 쓰는 만큼 나갈 줄 알고 꽂았는데 바로 15유로를 과금해서 깜짝 놀랐다. 그래서 집에 전화 하고, 무척 걱정하고 있었을 새미에게 무사히 베를린에 도착했다고 연락했다. 아아, 독일이야! 버스가 넓어! 안전운전이야! 트램도 있어! 모두 쾌적하고 깨끗해! 다들 신호등 바뀔 때까지 기다렸다가 길을 건너! 버스에서 다음 정거장 방송을 해줘! 사람들이 뭐라고 하는지 다시 모르겠어! ......라고 기뻐하며 전력을 다해 집으로 돌아갔다.

주인 아주머니가 나를 보더니, 베를린에는 비가 왔는데 내가 집에 안 들어와서, 학원에 전화해 물어보셨었단다.(학원 선생님에게는 수업시간에 주말 계획으로 말씀드렸었다.) 런던에 간다고 말을 할까 하다가 자유롭게 다니라고 했는데 개인적인 여행 얘기를 할 것 까진 없겠다 싶어서 금요일에 집을 나서며 그냥 튀스-하고 방문 잠그고 나갔었는데 역시 얘기하고 가는 게 맞았구나.; 그리고 비가 많이 와서 부득불 내 방에 들어와 창문을 잠궜다고, 원래 그렇게 나흐미터의 방에 들어가는 건 아주 나쁜 일이니 앞으로 외박할 때는 창문 잠그고 알려 주고 가라신다. 아이고 죄송해라. 그래도 선물로 아주머니가 좋아하실 것 같은 홍차를 사 와서 그나마 다행이었달까. 홍차를 드리며 할 말도 독일어로 다 생각해 놓아서 다행이었달까. (...)

본인 말씀을 이해했냐고 물으시기에 이해했다고, 학원 다니고 나서부터 독일어가 좀 는 것 같다고 씩씩하게 덧붙이려다가 또 말이 꼬였다. getting better 라고 생각하고 게팅 베써 라고 말한 것이다. orz 원래 쓰기보다 말하기가 어렵다고, 주인아주머니도 스페인어를 배웠는데 읽는 덴 문제가 없는데 말은 못 한다며 위로해 주시더라.

방에 들어와 짐을 가방에서 대충 꺼내 정리하고 옷을 넌 다음, 메신저에서 어머니와 지인들에게 인사를 하고 며칠만에 인터넷을 좀 했다. 시리얼 요리도 해서 한 그릇 먹었다. 그리고 누워서 쉬다가 씻고 세탁기를 돌리고 이제 일기를 쓴다. 지금 시각은 밤 열 시. 어학원 수업을 두 번이나 빠졌기 때문에 최소한 1)목요일까지 배웠던 내용을 확실하게 복습하고 2)영국에서 있었던 일을 독일어로 써 보고 자야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급한 C사 원고도 해야 하는데, 이건 내일 어학원 수업을 마치고, 인터넷에 추천가게로 나왔던 동네 빵집에서 빵과 커피를 사와서 먹은 다음에 쓸 생각이다. 아마 내일은 화요일이니 어학원 프로그램이 없을 터이니 할 수 있을 거다. 그리고 확정된 일정을 알리는 연락이나 독촉이 없어서 불안하지만 F지 원고도 아마 마감이 이달 중순일 텐데......자, 자. 동요하지 말고 이럴 때를 위해 영국에서 업어온 스파이더 맨 만화책이나 캐서린 아사로의 달짝지근한 로맨스 판타지를......

2007년 8월 3일 금요일

2007년 8월 2일 목요일

또 방에 모기가 들어와서 잠을 설쳤다. 꿈자리도 사나웠는데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모기 때문에 괴로워하면서 자려고 애쓰다가, 추워서 잠결에 양말을 찾아 신었다.

아침으로 어제 사온 또 다른 5분 인스턴트 스파게티를 먹었다. 어제 토마토 소스가 짰기 때문에 오늘은 크림소스에 도전했다. 어제 것 보다는 맛있었는데, 이 인스턴트 스파게티 도전을 계속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세 가지 먹어 봤으면 됐다.; 아직 아무도 안 일어난 것 같아 부엌 문을 닫고 조용히 움직이고 있었는데, 주인 아주머니가 갓 일어난 얼굴로 부엌에 들어왔다. 이미 완전히 깨 있던 내가 별 생각 없이 모르겐, 하자 사람이 있을 줄 생각을 못 하셨는지 엄청나게 놀라셨다. 그런데도 모르겐,이라고 하면서 화들짝 놀라다니 역시 생활습관이란 굉장하다.

오늘은 월화수와 다른 선생님이 들어오셨다. 원래 월화수/목금 선생님이 다른데, 한 사람이 일 주일 내내 가르치면 힘들기 때문이란다. 오늘은 동사의 과거/현재완료형을 주로 공부했다. 그런데 월화수 선생님과 달리 목금 선생님인 마티나는 스페인어를 할 줄 알아서, 내게는 상당히 곤란했다. 스페인인 학생들은 선생님의 독일어 설명을 못 알아들으면 서로 스페인어로 얘기하곤 한다. 그런데 마티나는 학생들의 말을 알아 듣고 그냥 그게 맞다고 해 버린다. 그러면 나 혼자 계속 모른다.; 점점 짜증이 나서 항의하려고 결심할 때 쯤, 마티나가 나의 짜증을 눈치챘는지 다른 학생들에게 나에게 설명해 주라고 하더라. 마리나와 알데모나가 영어로 가르쳐 줬다. 어제 숙제 하다가 영독사전을 책상 위에 놓고 나왔기 때문에 더 불편했다. 그 뒤에도 딱히 내가 스페인어를 몰라서 수업 내용을 이해하기 어려울 일은 없었지만, 스페인어와 독어를 아는 사람만 알아듣는 농담에 나머지 6명이 웃음을 터뜨리는 모습을 관조(-_-)하며 수업을 듣고 나니 수업 마칠 때 쯤에는 굉장히 피곤했다.

오늘 학원 오후 프로그램은 발리볼 또는 독일의 메가히트 영화 '발코니에서의 여름' 시청이었다. 원래는 운동 하기는 싫으니 독일 사람들이 다들 얘기하는 저 영화나 볼까 했었다. 독일어 음향에 독일어 자막이다. 참, 독일에서는 영화에 모두 더빙을 한다. 해리포터 같은 미국 영화들도 예외 없이 더빙으로, 더빙 안 한 영화를 보려면 소니센터 같은 곳을 일부러 찾아 가야 한다. 그런데 폴란드에서는 더빙을 하기는 하는데 원 음향을 없애지 않고 한 사람이 대사를 다 읽는 것을 겹쳐 틀어준단다! 즉 해리포터라면 헤르미온느의 영어대사+영어음향+다큐멘터리 성우같은 중후한 저음 번역이 동시에 들린다. 정말 헷갈릴 것 같은데 폴란드 사람들은 적응 되면 그게 이해하기에 더 편하다고 말한다니 참 신기하다.

어쨌든 오늘 오후 프로그랭이 둘 다 썩 마음에 들지 않았는데, 쉬는 시간에 마리나와 루이스(같은 반의 스페인 남학생), 알데모나가 목요일에는 베를린의 내셔널 갤러리 등 몇 군데 미술관/박물관이 밤 10시까지 하니까 자기들은 미술관에 갈 생각이라고 하더라. 같이 가면 재밌게 볼 것 같았지만, 수업이 끝나니 피곤하고 식은땀이 나서 집에 가서 자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침부터 계속 컨디션이 좋지 않았고, 지난 며칠 사이에 많은 일이 있었는데다 베를린에 온지 이제 일 주일이 넘었으니 건강에 각별히 주의해야 할 시점이다. 그래서 그냥 곧장 집으로 갔다.
 
집에 오는 길에 애플파이와 굉장히 달아 보이는 설탕 코팅된 파이를 샀다. 아침에 집 열쇠를 책상 위에 두고 나와서 벨을 눌렀다. 마인 슐뤼스 이스트 임 찜머. ㅠㅠ 우유 두 잔을 곁들여 달달한 빵을 먹고 침대에 누웠다. 낮인데도 왜 이렇게 추워! 베를린은 해가 일찍 뜨고 늦게 지는데, 우리와 달리 오후 4시 정도가 가장 따뜻한 시각인 듯 하다.

어쨌든 한두 시간 정도 설잠을 잤다가 일어나 카데베에 가서 지난 주에 새미가 못 샀던 초콜릿을 대신 샀다. 원래는 월요일에 새미가 친구들 선물로 사려던 것이다. (내 옷과 이것 때문에 쿠담에서 만났었다) 내 지갑 도난 때문에 일정이 틀어져서 새미가 카데베에 아예 가지도 못하고 공항으로 바로 나가게 되자, 내가 사서 금요일에 주겠다고 했었다. 누구나 무난하게 좋아할 만한 밀크 초컬릿이나 견과류가 든 초컬릿을 부탁하기에 카데베, 베를린, 브란덴부르크 토어 등이 쓰인 정말 관광지 기념품 같은 초컬릿을 골랐다. 그래도 맛있겠지. 그리고 어제 살까 말까 하던 민소매 옷을 샀다. 한 번에 결정을 안 해서 두 번 움직여야 했다. 이제 더웠다. 저녁으로는 집에 오는 길에 알렉산더 광장에서 아시안 누들 박스(닭고기와 면, 숙주, 파인애플 등)와 코카콜라를 사서 TV탑 근처 벤치에 앉아 먹었다. 따뜻하고 고기라서; 좋았다.

오늘의 지출
점심식사 1,90
초컬릿 12,01 (8,03 + 3,98)
옷 14,27
저녁식사 5,80

2007년 8월 1일 수요일

7:40 기상. 어제의 신용카드는 보상 처리가 가능하다는 결론이 나왔다. 악당씨는 간도 크지, 그 큰 돈을 모두 내가 지갑을 도난당한 가게인 H&M에서 썼더라. 보통 뭘 훔치면 일단 거기서 나오지 않나?; 이번 일로 서울에 있는 가족들이 신경 쓰느라 고생했다. 아버지가 은행까지 다녀 오셨다고 한다. 심신 양면으로 민폐를 끼치지 않을 때도 생각하는 점이지만, 역시 가족이 있어서 큰 힘이 된다. 어머니에게 새미가 서울에 오면 우리 집에서 재우면서 고기라도 구워 줘야겠다고 하자, "네가 구워주고 네가 재워줘라 흥" 하신다.

일찍 일어났는데 어쩌다 보니 아침을 못 먹었다. 학원 쉬는 시간에 학원 앞 빵집에 가서 우유커피와 빵을 사먹었다. 같은 반의 알데모나도 커피를 사러 와 있다. 지갑 잃어버린 게 어떻게 됐느냐기에 가져간 사람이 650유로나 썼더라고 했더니 깜짝 놀란다. 자기도 마드리드에서 지갑을 잃어 버린 적이 있었는데, 천만 다행히 모두 무사히 돌려 받았었단다. 알데모나는 마드리드 출신으로, 나와 수업 시간 파트너이다.

점심으로는 새로운 5분 인스턴트 스파게티에 도전해 보았다. 토마토소스였는데, 짰다. 오늘 오후에는 학원에서 신청자끼리 베를린 관광선을 타기로 했다. 베를린에는 슈프레 강(Spree Fluss)이 흐른다. 스물 네 명이 신청을 했다. 집합 시각이 오후 3시인데 집합 장소 찾기가 어려워서 조금 헤메다가 맞는 버스를 타고 나니 벌써 세 시다. 베를린의 필수 관광 코스를 돈다는 2층 버스인 100번을 탔더니 역에서마다 사람들이 너무 많이 타고 내려서 시간이 걸렸다. 혼잡한 버스 앞쪽에 서 있다가 뒤로 가 보니 어학원 학생들이 무더기로 있다. 다들 지각생이다. 세 시 십 분 쯤 버스정류장에 내려 선생님들과 함께 선착장으로 뛰어 세 시 반 배를 탔다.

이런 전면적인 관광선(?)은 처음 타 보았다. 마산에서 돝섬 가는 배나 제주도 배, 군함, 금강산여객선; 같은 배만  탔지 한강 유람선도 타 본 적 없기 때문이다. 사실 1) 독일어 설명을 알아들을 수 없고 2) 다들 스페인어로 얘기했고 3) 배가 느려서 처음에는 지루했다.

그런데 근처에 앉아 있던 마리나와 알모데나, 그리고 이름 까먹은 전 런더너(스페인 사람이지만 베를린에 오기 전에는 런던에서 4년간 살았다고 한다) 아가씨가 영어로 말을 걸어 줘서 나중에는 영어와 서툰 독일어로 이야기하며 즐겁게 배를 탔다. 함께 사진도 찍었다. 유럽권이라고 해도 다 영어나 이탈리아어, 프랑스어를 잘 하지는 않고, 어학 실력과 출신 지역 사이에 뭔가 상관 관계가 있다는 것 같았다. 원래 다른 스페인 여학생도 같이 있었는데 우리가 영어로 대화를 시작하니까 다른 자리로 가 버렸다.;

마리나는 스페인에서 어린이 영어 선생님이었고 알모데나는 학생인데 영어와 이탈리아어를 잘 한다. 마리나가 수업 시간에도 다들 스페인어로 얘기하면 무슨 얘기 하고 있었는지 영어로 나에게 다시 말해 주며 신경을 써 줬는데, 나중에 집에 가는 버스에서 들어보니 예전에 다니던 독일어학원에서는 마리나만 스페인 출신이고 다들 베트남/일본/한국인이라서 무척 곤란했다고 한다. 그래서 그랬구나, 싶더라.

며칠 동안 무척 날씨가 나빴는데 오늘은 웬일로 약간 덥게 느껴질 정도로 맑고 시원했다. 슈프레 강은 넓지 않았고 주위로도 계속 다른 유람선들이 다녀 번잡한 관광지 느낌이 났지만, 그래도 걸어 다닐 때와 다른 시점에서 여러 건물들을 보고 티어가르텐을 지날 수 있어서 즐거웠다. 나와 마리나, 런더너(...;) 셋은 지하철 팀에서 갈라져 나와 산책을 좀 하다가 버스를 타고 알렉산더 광장으로 갔다. 내가 수업시간에 주말에 런던에 BBC PROM을 보러 간다고 했었기 때문에 음악 얘기가 나왔는데, 마리나가 [디스 이즈 리듬]이라는 다큐멘터리를 추천해 주었다. 베를린필의 역사를 다룬 영어 다큐멘터리라고 한다.

이동 거리는 길었지만 오랜만에 햇빛을 쐬고 사람들과 얘기도 해서인지 기분이 좋았다. 여세를 몰아 슈퍼마켓에 가기로 했다. 이번에는 윈스트 가에 있는 카이저에 갔다. 우리 집에서 가장 가까운 슈퍼마켓이더라.

큰 슈퍼마켓에 가니 물이 동네 슈퍼에서보다 싸서 두 병을 사고, 따뜻한 요리를 해 먹으려고 달걀과 베이컨, 당근을 샀다. 베이컨 굽고 당근 볶고 계란 얹으면 대충 마음만은 뉴요커? 푸힛. 날씨가 추우니 밤에 꿀물을 타 마시고 자려고 꿀도 장만했다. 그리고 집에 있는 맛없는 건강 시리얼(새미한테 이 시리얼 얘길 했더니 상표를 바로 알더라. 원래 아무 맛이 안 나는 건강 시리얼이란다)을 처분하기 위해 우유와 아주 달아 보이는 켈로그 초코시리얼도 한 통 샀다.

집에 오는 길에 장바구니가 무거워서 힘들었지만 며칠 치 식량과 물이 있으니 안심이 된다. 저녁으로는 새로 산 햄을 빵에 끼우고 꿀요거트버터를 발라 먹었다. 그리고 나중에 또 배가 고파서 초코시리얼, 블루베리(아, 이것도 오늘 샀다), 건강시리얼을 우유에 타 먹었다. 승민오빠가 이런 걸 '시리얼로 요리하기'라고 했던 기억이 나서 낄낄 웃었다. 

밤에는 숙제를 하고 잤다.

오늘의 지출
아침식사 2,80
배삯 6,40
슈퍼마켓 15,78

2007년 8월 1일 수요일

2007년 7월 31일 화요일

어제는 열한 시 쯤 되어서 잠들었다. 새벽, 일어나기 직전에 무척 인상적인 꿈을 꾸었다. 중국 한 말기와 이집트 클레오파트라 시대가 섞인 듯한 고대 왕국이 배경이었다. 왕국은 융성했고 화려했으며(왕궁에 고전적인 양식의 엘리베이터가 있어서 시녀들이 음식을 왕족과 마주치지 않으며 엘리베이터로 나를 정도였다) 왕과 왕비는 드높은 황금 왕좌에 앉아 있었다. 하지만 시대가 변했고 큰 전쟁이 있었다.  적의 대군이 시시각각 다가오는 위기 상황, 왕은 눈 먼 예언자 무리를 궁으로 불러 예언을 요구했다. 허름한 옷을 입고 낡은 수레를 탄 에언자들이 화려한 궁에 들어와 왕과 왕비의 아래에 서서 예언을 했다.

그 예언의 내용이 '왕비는 재가 되고 조연출(정말 꿈속에서 조연출이라고 했다. 제 2 시종장 정도의 사람을 의미했는데, 꿈 꾸는 와중에 시종장이라는 단어가 생각이 안 났다;;)이 그 재를 폐허에 뿌린다'였다. 왕은 그 예언이 왕국이 전쟁에서 패해 멸한다는 뜻이라고 생각하고, 크게 노해 물러가는 예언자들을 모두 죽이라고 명했다. 그런데 옆에 앉아 있던 왕비가 '우리가 패했다면 2시종장이 나의 유해를 수습할 리가 없다. 멸망의 위기라면 나와 당신, 그리고 우리 아들이 가장 마지막까지 살아남을 터이지 낮은 신분인(왕족이 아닌) 2시종장이 그렇게 오래 살아있을 리가 없으므로 저 예언은 나라의 패배가 아니라 단지 나의 죽음을 말한 것이므로 예언자들을 죽이지 말라.'고 말했다.

왕이 신과 같은 지위에 있는 시대, 자신의 죽음과 나라의 멸망을 분리해서 생각하며 내가 평민들보다 먼저 죽을 리 없다고 당당하게 말하는 왕비의 절박한 오만함이 대단히 강렬하고 인상적이었다. 그 얼울이 일어나서도 잊혀지지 않았다. 왕국은 대패해 멸망했고 화려했던 왕성은 폐허와 잿더미가 되며 한 시대가 끝났다. 이 이야기는 음식 나르는 엘리베이터에 숨어서 살아남은 한 시녀에 의해 전해져 역사가 되었다.

이런 스펙터클한 꿈을 꾸고 일어나 학원에 갔다. 어제 먹을거리를 아무 것도 못 사 왔기 때문에 집에 아침으로 먹을 음식이 하나도 없었다. 그래서 학원 앞 빵집에서 커피와 초코크로와상, 초코도너츠를 테이크아웃해 학원 라운지에서 먹었다. 벽에 반 편성 배치표가 걸려 있었는데, 우리 반 학생 수가 가장 적어서 (여섯 명!) 기뻤다. 2층 교실에 올라가 보니 어제의 초미인 롱다리 아가씨, 마리나가 있었다. '어? 우리 같은 반이야? 솔직히 네가 나보다 잘 한다고 생각했는데?'(진심)라고 하자 사실 자기도 그렇게 생각했단다. 다들 비슷한 심정인가봐-했다. 우리 반도 역시나 나 빼고는 모두 스페인 출신으로, 마드리드 두 명, 바르셀로나 한 명, 마드리드 옆 도시 한 명이다. 같은 스페인이라도 생김이 참 다르다. 선생님이 수업시간에 스페인어를 쓰지 말라고 주의를 주었다.

오늘 수업에서는 두 명씩 짝을 지어 서로에 대해 묻고 답한 다음, 선생님과 다른 학생들이게 자기 파트너에 대해 설명했다. 그리고 쓰기 수업으로 평서문의 특정 단어를 묻는 문장을 만들고 각자 자기가 경험한 일/ 어제 있었던 일을 이야기했다. 디즈니랜드에서 일했던 사람이 둘이나 있었고, 다른 나라에 가 본 적 없는 사람은 나 뿐이었다. 어제 있었던 도난사고를 외운 대로 이야기해 볼 기회여서 열심히 말했는데, 몇가지 틀린 부분을 고칠 수 있어서 기뻤다.

집에 와서는 서울로 연락을 했다. 그런데 어제의 악당이 비자카드를 가져간지 30분도 지나지 않아 자그마치 650유로 이상을 결재했단다! 신용카드는 타인이 쓰기 어렵기 때문에 대체로 훔쳐 가도 버린다고 들어서 그렇게 걱정하지 않았는데, 너무 큰 액수가 나가서 어질어질했다. 털자마자 길 건너 카데베 1층에 가서 오메가라도 산거야?

어쨌든 날씨는 계속 춥고 비가 왔다. 어제 갔던 H&M에 가서 새미와 골라 놓았던 후드티와 봄가을에 어울릴 법한 깔끔한 니트를 한 벌 샀다. 어제 봤던 옷을 바로 갖고 나왔는데, 집에 와서 입어보니 약간 작은 것 같기도 했다. (하지만 수요일에 다시 입고 다녀 보니 살짝 늘어났는지 괜찮았다) 옷을 사고 쿠담 근처에 카이저가 있기에 들어가서 빵, 꿀요거트버터(라고 쓰여 있음), 체리토마토를 사서 집에 돌아왔다. 참, 낮에 주인 아주머니에게서 배낭도 받았는데, 물건들이 모두 무사히 들어 있었다.

오늘의 지출
아침식사 3,30
옷 36,70
슈퍼마켓 4,56
배낭 운송비 21,00
학원비 100,00

2007년 7월 30일 월요일

어학원 개강일이었다. 수업 시작 시간은 9시 30분. 9시 20분쯤 어학원에 도착해 번호표를 받았다. 인터넷으로 반편성 시험을 보았었지만 일고여덟명으로 나누어서 다시 시험을 본단다. 인터넷 평가는 정확한 결과가 나오기 어려워 신경이 쓰였는데, 다시 평가를 한다니 수준에 맞는 반에 편성 받을 수 있껬다 싶었다.

아홉 시 사십 분 정도부터 주관식 쓰기 시험을 한 시간 정도 보고, 답안을 낸 다음에는 30분 정도 쉰 다음 인터뷰 시험을 보았는데 준비 땅, 하지 않고 갑자기 질문을 시작해서 조금 당황스러웠다. 게다가 10여 명이나 있는데 -주관식 시험 치고 나서 지각생들이 들어왔다-  왜 내가 첫 번째? 예뻐서? (아마 정답은 '원형 탁자에서 선생님 정면 자리에 앉았기 때문'인 듯)

자유 질답을 한 다음에 칠판에 걸린 사진을 보고 5분 정도 생각한 다음 그 사진의 내용을 설명하는 시간을 가졌다. 사진 네 장 중에 하나를 고르는 방식이었는데 같은 사진을 보고도 다른 생각을 하고 모두들 그 생각을 독일어로 잘 표현하지 못해서 답답해 했다. 사진 설명만 들어도 그 사람의 성격과 관심사를 알 수 있는 점이 재미있었다.

예를 들어, 내가 고른 사진은 젊은 남자가 혼자 책상 앞에 앉아 사진을 들어 보는 장면이었다. 나는 그 남자가 젊고, 첫 번째 전시회를 앞두고 전시할 사진을 고르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 장면 이전에 에이전트가 오늘까지 사진을 골라야 한다고 압박전화를 했고, 지금 그 남자는 '이 사진이 최고야!'라고 막 결정해서 이제 에이전트에게 전화를 하려는 참이라고 했다. 그런데 스페인에서 온 배우 지망생 아가씨(초초초미인!)는 남자가 실력있는 영화감독으로, 새로 찍는 대규모 영화의 캐스팅을 위해 배우들의 사진을 놓고 고민하고 있으며, 그 장면 이전에는 인터뷰를 했다고 말했다. 역시 스페인에서 온 (사실 대부분 스페인 사람이다) 철학전공자 아마추어 작가 청년도 같은 사진을 골랐는데, 그는 사진 속 남자가 작가로 글이 잘 안 풀려서 쓰다 말고 보드카를 마시고 있었고 나중에는 계속 술을 마시다가 죽었단다.--; 내 옆에 앉았던 프랑스에서 공부하다 온 아가씨(스페인인)는 남자의 아내가 부부싸움으로 아이들을 데리고 떠나버러서; 남자가 가족사진을 보면서 자신의 잘못을 후회했는데, 나중에 아내가 돌아온다는 러브스토리를 이야기했다.

편성 시험이 끝나니 12시였다. 또 잠시 쉬었다가 생활 정보와 이번 주 쿨투어 프로그람을 안내받고 1시부터 점심을 먹었다. 학원 근처에 있는 작은 갤러리를 빌려 부페를 차려 놓았더라. 우르르 몰려가서 식사를 했다. 여름 어학 프로그램 참여학생들이 모두 다 있는 자리였는데, 한국인은 한 명도 없는 것 같았다. 한국인이 없는 어학원을 찾은 보람은 있었지만 이렇게까지 스페인 사람이 많을 줄은 예상치 못해서 난처하기도 했다. 다들 스페인어를 쓴다. 아시아 인은 다 합해서 다섯 명 정도? 그 중 둘은 나와 함께 반편성 시험을 본 타이완 의대생 동기(커플로 추정)로 올해 예과를 끝냈다고 한다. 지난 주에 와서 쾰른과 본, 하노버, 함부르크를 여행한 다음 어제 베를린에 들어왔는데, 집에서 인터넷이 안 되어서 중앙역에서 두 시간이나 걸려 무선랜을 연결해 쓰느라 고생했단다. 우리 집에서는 느리지만 인터넷이 된다고 했더니 몹시 부러워했다. 3주간 코스를 밟고 다시 독일을 일주일 여행한단다. 참, 한국에서 왔다고 하면 북한인지 남한인지 다들 물어 보는 것이 신기했다.

새미가 영국으로 돌아가기 전에 같이 옷을 사러 가기로 했기 떄문에, 식사 다음에 함께 학원 주위를 걸어다녀 보는 프로그램에는 참여하지 않고 중간에 서둘러 나왔다. 너무 추워서 옷 살 일이 급했다. 기온이 계속 최고 15도를 넘지 않는데다 바람이 세게 불고 드문드문 비도 와서, 반편성 시험을 보면서도 추워서 집중이 잘 되지 않았다. 이곳 사람들은 엉덩이를 덮을 정도 길이의 점퍼나 초겨울에 어울릴 법한 니트를 입고 다닌다. 여기 기준으로도 이상저온 상태라고 한다.

2:00 새미와 동물원 역에서 만나 쿠담에 갔다. 몇 군데 옷 가게를 돌아보다가 싸고 무난한 디자인이 많은 H&M에 들어갔다. 이 곳에서 마음에 드는 후드를 발견했는데, 사이즈를 정확히 가늠하기 어려워서 새미와 번갈아 가며 입어보았다. 그러다가......지갑을 도난당했다.-_- 크로스백에 지갑을 넣어 매고 있었다. 만약을 대비해 한 사람이 옷을 입어 볼 동안 다른 사람은 두 사람의 크로스백을 받아 매고 있는 식으로 움직였는데, 옷을 입고 거울 앞에 갔다가 돌아온 새미에게 가방을 건네면서 보니까 내 가방이 반쯤 열려 있었다. 그러니까 채 1분도 되지 않는 사이였던 것이다. 내가 새미에게 '이거 원래 열려 있었어?'라고 말하는 순간 둘다 핏기가 가셨다. 원래 열려 있었을 리가!

이럴 리가 없는데 하며 가방에 든 물건을 모두 꺼내 보았으나 지갑만 쏙 없다. 게다가 이게 바로 가는 날이 장날, 프랑크푸르트 공항에서 동네 무인 센터로 보내 준 배낭을 찾으려면 현금 카드가 필요하다고 해서 현금 카드 두 장에 비자카드까지 들고 나왔던 참이었다. 무인 센터까지 갔다가 카드가 안 먹히면 곤란하니까. 만약을 대비해서 모두 두 장씩 만들었으면서 같은 지갑 안에 넣어놓다니 지금 생각하면 허술했다. 어학원비 잔금도 들어 있었다. 이것도 원래 어학원에서 나오면서 내려고 하다가, 옷 사러 가니까  현금이 좀 있어야 할 것 같아서 집에 들르지 않고 그 돈을 그대로 갖고 시내로 나온 것이다. 바로 직원에게 도난당했다고 얘기했다. 직원이 신고를 하고 오더니 경찰이 거기까지 오지는 않으니 경찰서에 가서 신고하라고 한다.

정말 땡전 한 푼 없는 대위기였다. 혼자였다면 경찰서에서 차비를 빌려 집에 돌아가, 서울로 연락해서 '아빠가 보내준 돈으로 여름캠프에 간 지영이'처럼 웨스턴유니언을 이용해야 할 처지였던 것이다. 그런데 새미가 자기 영국은행 현금 카드 두 장으로 일일 최대 출금 한도에 육박하는 돈을 빼서 빌려 주었다. 물가 비싼 런던에서 아르바이트 하면서 생활하는 유학생의 사정이 정말 빤한데, 그래도 옆에 있으니 도와 줄 수 있어서 다행이란다. 이 은혜를 어찌 갚으리오.

그리고 물어물어 30분 정도 걸어 가장 가까운--; 경찰서에 갔다. 영어를 할 줄 아는 경찰관을 통해 신고서를 작성하고, 지하철을 타고 동물원 역으로 돌아왔다. 한국에서도 봉사활동 할 때 밖에 안 가본 경찰서에 독일에서 이런 일로 가게 되다니! 새미가 부르스트와 감자튀김을 사 주어서 같이 앉아서 먹었다. "너 경찰서에서 정말 너무 순진하고 얌전하게 앉아 있더라. 그래서 내가 (괜히 걱정돼서) 자꾸 중간에 말 했잖아."라는 새미 말에 그 와중에도 웃음이 나왔다. "사실 경찰서에서 뭐라고 했는지 기억이 잘 안 나. 네가 내가 30일에 출국한다고 했잖아? 그 때 29일이라고 말하려고 했는데 세상에, 영어로 29일이 뭔지 모르겠더라고." "그래서 내가 30일이라고 했을때 움찔 했구나." "엉.--;" (영어로 29일이 생각 안 났지만 다행히 3초 정도 후에 독일어로 29가 생각났었다.)
참, 신고접수를 끝내고 일어서는데 영어를 하는 경찰관이 난데없이 해브 어 나이스 데이! 라고 인사를 해서 새미와 내가 동시에 웃음을 터뜨렸다. 너무 안 어울리잖아!

새미는 영국으로 돌아가고, 나는 집에 들어왔다. 집에 와서 우선 신용카드 분실신고를 했다. 외환카드 신고시에는 전화 상태가 안 좋아서 신고번호는 받았는데 사용 내역까지 확인하기가 어려웠다. 이러고 나니 이미 밤 9시가 지났다. 여권과 디지털 카메라를 갖고 있지 않았던 것만도 천만 다행이다. 현금은 속이 쓰리지만(그게 원고지로 하면 몇 매야!) 여권 분실에 비하면 낫다고 생각하기로 했다. 그리고 몸 안 다쳤으니까. 아무리 생각해도 새미 말처럼 처음부터 노리고 있다가 가져간 것 같다. 여기에서 동양인(특히 여행객)은 굉장히 도드라지는데다, 계속 가방을 보고 있었는데 잠깐 안 본 사이에 지갑만 빼가는 일이 우발적인 범행일 리가 없다. 아우.

그래서 프랑크푸르트 공항에서 보내 준 배낭도 못 찾았다. 집주인 아주머니에게 (독일어와 손짓으로)에체 카르테가 없어서 소포를 찾아 올 수 없으니 도와 달라고 했는데, 흔쾌히 내일 아침이라도 괜찮다면 장 보러 가는 길에 가져다 주겠다고 해 주셔서 정말 고마웠다. 좋은 분을 만나서 다행이다. 내가 독일어를 좀 잘 하면 훨씬 친해질 수 있을 텐데; 안타깝기도 하다.

그러고 나니 대충 아홉 시 반. 내일부터 정식 어학원 수업이 시작하니까 독일어 공부도 해야지. 영독 사전을 보면서 오늘 있었던 일을 독일어로 써 본 다음, 내일 어학원에서 써먹으려고 외우고 잤다.

오늘의 지출
1회 승차권 2,10x 2= 4,20
베를린AB구간 1개월 승차권 70,00
식사 약 6,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