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10월 20일 토요일

2007년 10월 19일 금요일

1. [서양고대철학특강] 수업은 정말로 재미있다. 이미 몇 번 썼지만, 정말 말로 표현하기 힘들 만큼 재미가 있어서, 수업을 들을 때 마다 황홀해진다. 고대 희랍에 대단히 심취한 나머지 최근에는 누굴 만날 때 마다 이 수업에서 들었던 이야기를 한 번은 꼭 꺼냈는데, 나만큼 황홀경에 빠지는 사람은 없는 것 같았다. 내게는 '어쩌면 이럴 수가'라고 그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선생님을 납치 유레카춤을 추고 싶을 만큼 놀랍고 경이로운 이야기가 타인에게는 '아, 신기하네요.' 라고 듣고 넘어갈 정도의 얘깃거리이다. 내 전달 방식이 선생님만큼 노련하지 않고 내 지식이 선생님보다 훨씬 얕고 어설픈 탓도 있겠지만, 그보다는 사람에 따라 좋아하는 연예인이 다른 것과 어느정도 비슷한 일이 아닐까 싶다.

2. 오늘은 저녁 7시에 [인식론] 보강을 했다. 셔틀도 끊긴 밤 7시 수업에 몇 명이나 올까 했는데, 아침 수업과 다름없이 교실이 차서 깜짝 놀랐다. 게다가 9시가 다 되어도 어서 집에 갈 생각을 않고 질문을 자꾸 던진다. 요즈음은 다들 공부를 참 열심히 한다. 지난 주에 1차 발표를 한 아동복지론 수업의 경우, 선생님이 조당 4-5 매 정도의 보고서를 쓰라고 하셨는데 각자 맡은 부분을 합쳐 보니 제시분량의 네 배가 넘는, 스무 쪽 짜리 보고서가 나왔다. 이제 1차인데! 내심 과하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발표일이 되어 보니 옆 조도 그 정도를 써 왔더라. 프레젠테이션도 영어로 하는 부담이 겹쳐서인지 며칠 전부터 발표대본을 쓰고 몇 번이나 연습했다. 역시 내심 과하다고 생각했지만 발표일이 되어 보니 다른 조는 손가락 인형을 이용해 대본까지 있는 동영상(!)을 직접 찍어 왔다.

3. 미국의 경우 미혼(부)모의 98%가 낙태나 입양이 아닌 육아를 선택한다고 한다. 생각보다 훨씬 높은 수치라 깜짝 놀랐다. 우리나라 비정규직 노동자 중 의료보험 혜택을 받고 있는 사람은 전체의 37%에 불과하다. 생각보다 훨씬 낮은 수치라 깜짝 놀랐다.

4. 1번부터 3번까지의 내용을 종합한 결론 : 시대에 뒤떨어진 삶

5. 화요일에는 이다 님과 사당역 근처 크리스피 크림 도넛에서 만났다. 이다 님이 고맙게도 꽃다발을 전해 주셨다. 집에 돌아오자마자 꽂아 놓았더니, 대엇개 있던 연두색 나리 봉오리 중 두엇이 벌어질 듯이 부풀기 시작했다. 매일 물을 갈고 방을 오갈 때마다 한 번 더 확인하며 꽃이 피기를 기다렸다. 두 송이가 피었고 세 번째 봉오리도 필 듯이 옅은 분홍색을 띄기 시작했다. 어차피 시들어 버리게 될 줄 알면서도, 꽃이 피었으면 하는 바람을 접을 수가 없다.

6. 지난 겨울 즈음, 무언가를 처음 경험할 때의 기쁨과 놀라움에 관해 어머니와 이야기한 적이 있다. 어쩌다 보니 예로 연애경험 없이 맞선으로 결혼한 부모님을 들게 되었다. 내가 어머니에게 무엇이든 새롭고 설레었던 그 때로 돌아가고 싶거나, 순진하고 어렸던 시절이 그립지 않느냐고 물었다. 어머니는 조금도 망설이지 않고 전혀 그렇지 않다고 대답 하셨다. 지금의 관계가 바로 그런 순간들을 차곡차곡 쌓아 나가서 만들어낸, 말하자면 그 뒤에 있었던 많은 (좋고, 즐겁고, 힘들고, 고통스러운) 경험들까지 모두 포함하는 훨씬 큰 것이니, 당연히 어제보다 오늘이 좋고 오늘보다 내일이 더 좋지 않겠느냐고, 또 그렇게 생각할 수 있도록 살아야 하지 않겠느냐고 반문하셨다. 꼭 관계맺음만을 두고 하는 말이 아니다. 어느새 쇳소리를 내기 시작한 바람을 맞아 옷깃을 여미며, 나는 각오를 다지듯 새삼스레 고개를 끄덕였다.        

댓글 4개:

  1. 멋진 어머님이시군요. 뭐, 저희 어머니도 좋은 분이니 부럽진 않지만요: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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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우헤헤헤. 강의실이 아닌 곳에서 '와, 신기하네요'까지 끌어내는 것도 굉장한 설득력과 언변인 거예요. 제 친구 중에도 역사에 심취한 애가 있는데... ^^; 그 녀석은 칭기스칸 이야기며 고대사 이야기 같은 걸 이야기하다보면 여자들이 다 떠나간다고 울며 산다고요. 우리한테도 가끔 들떠서 이야기하다가 분위기 싸해지면 '미안하다'하고 구석에 쭈그러들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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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ida/그 정도면 양반이네요. 제 대학원 후배 중 한 명은 선 봐서 아가씨하고 분위기 좋게 잘 만나다가 흥에 겨워 백석 시를 읊는 바람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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