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10월 15일 월요일

2007년 10월 15일 월요일 : 농축과 희박의 코스모고니

몇 년 전, 과소동의 모 님이 '텍스트량 보존의 법칙'이라는 말씀을 하신 적이 있다. 고개를 주억였고 오랫동안 그 말이 기억에 남았었다. 그렇지만 요즈음은, 텍스트량 보존의 법칙보다 한 단계 앞에 감정 보존의 법칙이 있는 게 아닌가 싶다. 어느 정도 분량의 글을 내어 놓기 위해서는 그 글을 만들어 낼 수 있을 만큼 압축된 감정과 지식이 있어야 한다. 감정의 총량 중 상당 부분이 다른 쪽으로 새어나가는 동안은 좋은 글을 쓸 수가 없다.

나는 지난 몇 달 간 글 다운 글을 전혀 쓰지 못했다. 그나마 읽어 줄 만 한 것들은 번역 원고였지만 이는 온전히 원작자의 덕이다. 나의 글을 쓰려고 하면 머리가 텅 빈다. 모든 것이 단지 흘러들어왔다가 흘러나갈 뿐, 무엇도 충분히 고여 있지 않은 것 같은 느낌이다. 나는 지난 한 달여 간 책을 거의 읽지 않았고, 그나마 읽은 책들 중 절반 정도는 예전에 재미있게 읽은 책의 복습이었으며 (예| [엘러리 퀸의 모험]) 나머지 절반은 지난 여름 동안 밀린 장르소설 출판분이었다. 들어온 것이 적으니 고일 틈도 없이 사라질 수 밖에.  

아낙시메네스는 만물의 근원을 공기라 했다. 그는 농축-희박의 개념으로 세계를 설명했다. 딱딱한 물체는 공기가 '농축'된 상태이고 허공은 공기가 매우 '희박'한 상태이다. 압축된 것은 무겁고 희박한 것은 가볍다. 그래서 이 세계는 압축된 흙은 바닥에 있고 가벼운 하늘은 위에 있는 형태를 이룬다. 나는 희박하다. 요즈음 때때로 찾아오는 어떻게든 되겠지-라는 편안함이 단지 내가 텅 비어서 위로 떠오르고 있기 때문일 뿐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면 슬퍼진다. 나는 반드시 살아서 우주를 보고 싶지만, 이런 식으로 날아오르고 싶지는 않다. 옳은 질문을 던졌던 아낙시메네스의 답이 틀렸다는 것은, 물론 위안이 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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