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7월 26일 목요일

2007년 7월 26일 목요일

1:55 모기가 귓가에서 앵앵가려 깼다.왼손에 두 방 물렸다. 참고 자려고 했으나 너무 시끄러웠다. 일어나서 불을 켜고 좀 기다렸더니 모기가 나타났는데, 아뿔싸, 천정이 너무 높아서 보이지만 잡을 수가 없다. 게다가 두 마리! 한 마리라도 잡아야 자겠는데 싶어 계속 노려보고 있다가 제풀에 지쳐, 그냥 귀마개를 하고 자기로 했다. 물어도 되지만 잠은 깨우지 마라-가 나의 모기와의 공생법칙이라서, 집에서도 종종 그냥 귀 막고 잤었다.  귀마개를 꺼내고 께림찍한 마음에 좀 앉아 있었는데, 마침내 한 마리가 조금 낮게 내려왔다. 그런데......너무 크다! 이런 모기 두 마리라면 바퀴벌레 반 마리와 같은 급이잖아! 나의 수용한도를 넘는다고! 그래서 모기가 다가올만한 열기와 빛을 내뿜는 노트북을 켰다. 모기가 가끔 다가오긴 하는데 너무 빨리 날다가 사라진다. 그리고 갑자기 귓가에서 앵앵거린다. 내 머리 위에 앉는 거야? 새벽 두 시 사십 분에(그새 한 시간이 지났다) 이게 뭐하는 짓이람. 어휴.

7:10 기상. 새벽에는 결국 세 시 쯤 귀마개 하고 모로 누워 잤다. 햇볕이 들어오니 왠지 늦잠 자는 기분이라 일어났는데, 동네나 집이나 조용하다. 맞은편 건물의 창들도 거의 닫혀 있다. 조금 더 기다렸다가 세수를 하고 아침을 먹어야겠다. 아침은 어제 사온 곡물시리얼과 저지방 우유다. 끓는 물 넣고 5분 있다가 먹으면 된다고 쓰인 수상한 인스턴트 컵스파게티도 사놨는데, 이건 내일이나 모레 도전해야지.

참, 그리고 왜 여기 사람들은 자꾸 나를 '미시즈 정'이라고 부르는 걸까? 나는 여기 오면 내가 나이보다 어려 보일 줄 알았는데 자꾸 유부녀 대접(?)을 받아서 황당하다. 내가 생각한 가설은 다음과 같다: '프라우'와 '프로일라인'이 영어의 '미시즈'와 '미스'에 대응하는 독일어인데, 최근 독일에서는 '프라우'로 통칭하는 경우가 늘고 있다. (영어에서 미스를 잘 쓰지 않는 것과 비슷한 이유에서다) 그런데 영어는 '미즈'라는 새로운 호칭을 만든 반면 독일어에서는 있던 말을 그대로 쓰다 보니 번역상에 혼선이 발생, 독일인이 '미즈'라고 쓰인 걸 보고 '프라우'라고 생각하고 나에게 영어로 말할 떄는 '미시즈'라고 하게 되는 것이다. 이 가설은 나를 본 적 없는 사람들(예: 프랑크푸르트 공항의 분실물 센터 직원)이 나에게 미시즈를 붙이는 것도 설명할 수 있다.

9:20 이제 가방에 민트 초콜릿을 담고 오늘의 모험을 위해 출발! 만약 쾰른으로 바로 간다면 내일 저녁까지 업데이트가 없을 수도 있다. 곡물 시리얼은 정말 맛이 없었다. 용량도 큰데 저걸 어쩐다냐.....

9:50 집에서 가장 가까운 지하철 역으로 가서 시내로 나가는 버스를 탔다. 독일 지하철 역에는 우리와 달리 앞뒤 역명이 쓰여 있지 않는 말을 들어 긴장했는데 (나는 서울에서도 지하철을 반대 방향으로 탈 때가 많다) 과연 그러하긴 했지만 LCD 전광판에 다음 지하철의 최종목적지와 도착에정 시간이 나와서 거꾸로 탈 가능성은 거의 없었다. 1회권을 사고 지하철에 탔다. 독일 지하철은 문에 있는 버튼을 눌러야 문이 열린다. (안에서 내릴 때도 마찬가지) 원래 목적지는 쇼핑의 거리이자 가장 번화가라고들 하는 쿠담가에 가까운 동물원역(Zoologischer Garten)이었으나, 포츠담 광장(Potsdamer Platz)에서 다른 관광객들과 같이 내려 보았다. 지상에 올라 보니 이곳은 오오, 내가 바라던 관광지! 남은 베를린 장벽과 안내판이 세워져 있고, 이른 시간인데도 벌써 관광객들이 모여 사진을 찍고 있었다. [베를린 천사의 시]에 나오던 포츠덤 광장과 비교되묘 묘한 기분이 들었다. 이곳에는 커다란 소니 센터도 있는데, 아이맥스 영화를 상영하는 등 역시 관광 코스라고 한다. 시티 투어 버스와 관광객 무리를 따라 주섬주섬 가다 보니 체크포인트 찰리(Checkpoint Charlie)와 구 게슈타포와 SFF의 본부였던 토포그래피 오브 테러(Topography of Terror)로 가는 길이 나왔다. ToT까지만 가 보고 지하철 역으로 돌아왔다. 아직 기념관 건물을 완성하지 않아 열린 공간에 전시하고 있었다. 베를린 내는 한 달 동안 충분히 돌아볼 수 있으리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이번에는 아까의 선택을 후회하며 아예 하루권 표를 끊었다. 동물원 역에서 내려 보니 역시나 서점이 있었다. 작은 독영-영독 사전과 펼치는 베를린 지도를 샀다. 만화 코너에 우리나라 작가들의 독일 만화도 제법 있었다. [오란고교호스트부]나 [CIEL]의 독일판이 있었으면 샀을 터인데, 내가 그만큼 좋아하는 만화는 없어서 그냥 나왔다. 일본 야오이와 원피스 같은 명랑만화가 나란히 전시되어 있는 점이 흥미로웠다.

Nordsee라는 패스트푸드 체인점에서 연어 샌드위치와 콜라를 사고, 기차 문의 코너에 저먼 레일 패스를 사려면 어디 가야 하느냐고 물어 보았다. 바로 옆의 Reisezentrum으로 가란다. 여기서도 한 번 줄을 잘못 섰다가 제대로 매표소로 가서 한 달간 유효한 저먼 레일 패스를 사서 바로 개시했다. 쾰른과 본으로 갈 생각이라고 했더니 어느 기차를 탈지 정했는지 묻는다. 11시 35분 쯤에 출발하는 편이 있던데요, 하니까 그건 이 역에서 출발하지 않는 건 알고 있는지 묻는다. 사실 나는 이 질문을 받을 때 까지 동물원 역과 중앙역을 착각하고 있었다! 어째 중앙역 분위기가 아니더라! 아뿔싸로소이다. 내가 허걱 하니 여기서 두어 정거장만 가면 된다며 노선도를 한 장 준다. 쾰른에서 본으로 오가는 기차의 정보도 받았다. 매표소 안의 간이의자에 앉아 샌드위치를 얼른 먹은 다음, 도로 집으로 가기로 결정했다. 곧장 국철을 타고 중앙역으로 가면 5시에 쾰른에 도착할 수 있었지만, 오늘 모험은 충분히 한 기분이 들기 시작했고 각종 팸플릿과 물통으로 작은 크로스백이 꽉 차서 그대로는 멀리 가기 어렵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배낭이 없으니 확실히 불편하긴 하다. 참, 모레 올 새미와 함께 타 보면 좋을 것 같아서 베를린 시내 버스 /도보관광 코스 안내도도 가져왔다.

어제는 추웠는데 오늘은 굉장히 덥다. 어제 날씨를 생각하고 긴 분홍색 니트를 가지고 나갔다가 오전 내내 들고 다니기만 했다. 게다가 긴 가을 청바지를 입었으니.....집에 돌아오니 한 시 쯤 되었다. 오는 길에는 사전에서 궁금하던 단어를 찾아 보며 머리 속으로 문장을 만들었다. Es gibt die Stechmuecken in meinem Zimmer. Haben Sie einen Insektspray? (방에 모기가 있어요. 살충제 있나요?) 음, 좋아!  이제 숨 돌리고 시원한 옷으로 갈아입고 중앙역에 가 봐야지. 사실 네 시간이나 걸리는 쾰른 말고 좀 더 가까운 곳에 가고 싶은데, 여행안내책자를 잃어버린 지금 빈손으로도 찾아갈 수 있을 만큼 미리 준비해 놓은 도시가 쾰른과 본밖에 없다.

5:00 아까는 나가려다가 귀찮아서 그만두고 누워서 사전과 베를린 지도를 보다가 잤다. 아무래도 일고여덟시에 쾰른에 도착하는 일정은 무리다 싶었기 떄문이다. 차라리 내일 아침 일찍 철도로 두 시간이 안 걸리는 거리에 있는 몽블랑의 도시, 함부르크에 갈까 생각 중이다. 함부르크는 숙박비가 비싸다는 얘기가 많으니 당일치기로 가볍게 다녀올 만 할 듯.

잠깐 졸고 깨어 보니 네 시가 조금 넘었다. 어제 사 놓은 컵스파게티에 물을 부어 먹어 보았다. 라면도 스파게티도 아닌 미묘한 느낌이지만 일단 며칠만에 따뜻한 음식을 먹었다는 점에서 만족했다. 토마토 소스 등 여러 가지 맛이 있던데 몇 개 더 사서 쟁여 놓아도 될 것 같다. 아까 일일권을 샀는데 결국 동물원 왕복 밖에 안 했다니 아까운 생각이 들어, 이제 알렉산더 광장(Alexander Platz)에 나가 볼 생각이다. 집에서 알렉산더 광장 역까지는 정확히 25분 걸린다. (아까 돌아오는 길에 스톰워치로 재어 보았다.) 지금 나가면 광장 구경하고 TV탑 보고 돌아올 수 있겠다.

7:00 알렉산더 광장에 다녀왔다. TV탑(Fernsehturm)과 Rotes Rathaus, 성 마리엔 교회(St. Marien Kirche)를 보고 사진도 찍었다. 교회는 입장가능했지만 들어가지 않았다. 베를린 돔(Berliner Dom)도 바로 건너편에 보였다. 여기도 관광 온 사람들이 꽤 많아서 여기저기서 사진을 찍고 있었다. 알렉산더 광장에서는 분수대 주위에 편하게 앉아서 쉬는 사람들이 많았다. 지하철 역사에서 나오자마자 정말 특이한 옷차림을 한 사람들이 돗자리를 깔고 음악을 크게 틀고 무어라고 소리치는 모습이 보여서 조금 놀랐다. 형광녹색으로 '그곳'만 가리고 배낭을 멘 아저씨나 형광핑크 웃옷에 체크무늬 치마를 입은 남자를 보고 놀라지 않기란 어렵지. 하하. 그 앞에는 경찰차가 서 있었는데, 나중에 집에 돌아갈 때 보니 경찰차는 가고 없고 그 사람들만 있었다. 자세히 보니 커다란 개도 한 마리 있었다.

알렉산더 광장 역사 내에 있는 아이스크림 집에서 요구르트(Jogurt)와 레몬(Zitrone)맛 콘 아이스크림을 사서 분수대 에 앉아 먹었다. 사람들이 많이 몰려 있기에 가서 도전해 봤는데 맛있어서 흐뭇했다. 바람이 불면 등 뒤로 분수의 물방울이 잘게 튀었다. 여섯 시 이십 분 쯤 일어나 다시 지하철을 탔다.

집에 오는 길에 물을 샀다. 점원이 새로 일을 시작했거나 잠시 맡아주고 있는 사람인지 내가 고른 물을 보고 '이거 85센트 짜리에요?' 하고 묻는다. 바로 알아듣고 '네, 85센트에요' 라고 대답했다. 처음으로 동전도 제대로 내고 (우리나라와 동전/지폐 체계가 다르고 우리와 반대로 소수점으로 ','를 쓰고 천 단위에 '.'를 찍기 때문에 화요일부터 계속 이걸로 헷갈리고 있었다) 나오면서는 타이밍 맞춰서 튀스-하고 인사도 했다. 여전히 왕기초 회화라도 조금씩 나아지고 있다. 아이스크림 살때는 요구르트랑 지트로네 주세요-까지는 독일어로 제대로 했는데 그 다음에 동전 내면서 헷갈려서 결국 다 꺼내서 보여주고 이중에 뭔가요? 하고 영어로 물었거든.

집에 와서 세수를 하고 물을 두 잔 마셨다. 오늘도 적당한 수준의 모험을 해서 흐뭇하다. 이제 내일 계획은 (1) 일찍 일어나 함부르크에 다녀온다 (2) 6시 전에 귀가해 C사 원고를 한다 (3) 가능하다면 버스나 전차(Tram)을 타 본다-
이다.


오늘의 지출
1회 승차권 (Einzelfahrausweise) 2,10
하루권 (Tageskarten) 6,10
물 (Mineralwasser) 1,40
사전과 지도 12,00
점심 2,40 + 1,70? (깜박하고 영수증을 안 받았다)
2등석 학생할인 저먼레일패스(German Rail Pass) 149,00
아이스크림(Eis) 1,20 ?
물(Mineralwasser) 0,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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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6,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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