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9월 4일 화요일

2007년 9월 4일 화요일

월요일에는 수업이 없어 오늘이 개강일이었다. 첫 수업인 인식론이 10시 수업이라 일곱 시 반 즈음에 일어났다. 그다지 늦지 않게 일어났다고 생각했는데 어째서인지 바빠져 아침 식사를 하지 못하고 일찍 집을 나섰다. 출근길 2호선 지하철에서 시달리고 나니 학교에 올라가기도 전부터 기진맥진이다. 정말이지, 학교가 너무 멀어!

분석철학-인식론에서 제기하는 문제들에 관해 듣고 있자니 점점 흥분되면서 짜릿짜릿했다. 아아, 수업이 주는 긴장감이란 역시 좋다. 그런데 김기현 선생님이 추석과 학회로 휴강이 두 번이나 있다고, 개강일부터 두 시간 사십 오 분 수업을 꽉 채워 하시더라. 한 시간 반 쯤 지나니 짜릿짜릿도 찌릿찌릿도 좋지만 배가 고프고 졸려서 힘들었다. 의욕 충만해서 맨 앞 가운데 자리에 떡 앉았는데, 나중에는 에너지가 소진돼 졸지 않으려고 엄청난 속도로 눈을 깜박인다던가, 눈알을 뱅글뱅글 굴려본다던가 했다. 깬 다음에 내 모습을 상상해 보니 차라리 잠깐 조는 편이 나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시간표 상 인식론과 서양고대철학특강이 붙어 있어 점심 식사를 할 시간도 없었다. 수업이 끝나자마자 6동으로 달려 서양고대철학특강 수업에 들어갔다. 교실에 학생이 꽉 차 있어서 놀랐다. 청강생도 제법 있는 것 같다. 이 수업은 정말로 재미있었다! 미케아(영어 필기체) 문명(한자)이라고 칠판 한가운데에 커다랗게 쓴 다음 안경 끈을 만지작거리며 학생들 사이에 서서 강의하는 백발 철학과 교수님이라니 이것은 로망의 절정!

어째서 철학을 공부한다면 철학사를 공부해야 하는지에 관한 선생님 말씀이 정말 인상깊었다. 젊었을 때 선생님은 니체에 심취했었단다. '신은 죽었다'나 니힐리즘에 정말 큰 충격을 받았고, 감동을 받았다(고 생각했단다). 그런데 철학 공부를 여러 해 하고 나서 보니, 실제로 선생님은 '신의 존재를 믿어 본 적조차 없었다'. 신의 존재를 당연한 것으로 가정하는 세계관이나 그 시대적 상황에 대한 문제의식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상황에서 철학을 논하는 것은 자기반성(self-reflection)을 본령으로 하는 철학도의 자세가 아니다. 감동의 참/거짓의 문제가 아닌 다른 차원에서 요구되고 추구해야 하는 엄밀함과 치열함에 관해 뜨끔한 기분으로 생각했다.

이 강의도 개강일인데 75분 수업을 85분 동안 했다. '잃어버린 문명'인 기원전 2000년~1200년의 미케아 문명, 즉 실재했던 역사가 고대의 암흑기를 거쳐 기원전 750년 경 호머의 [일리아드]와 [오딧세이]에서 신화로 재구성되는 과정이 실로 흥미로웠다. 어서 다음 수업을 듣고 싶다.

서양고대철학특강 수업을 F지의 모 님과 같이 듣더라. 같은 과인 줄은 알고 있었지만 실제로 뵌 것은 몇 년 만이다. 수업 끝나고 제대로 인사를 해야지 싶었는데, 배가 너무 고파서 사람을 만날 에너지가 없어 일단 학생회관으로 달렸다. 6동에서 학생회관까지 가서 식권을 사서 돌솥비빔밥을 깨끗이 비운 다음 16동으로 가는 데 30분 정도밖에 안 걸렸다.

16동에서 수현님을 뵙고 같이 라운지에서 차를 한 잔 마신 다음, 다시 6동으로 돌아와 서양현대철학 강의에 들어갔다. 이 수업은 조금 불안......선생님 말씀이 너무 느려서 졸기 딱 좋겠더라. 그리고 소르본에서 공부하신 분이 어째서 하이데거와 헤겔로 수업을 시작하시는 건가요?!; 그래도 같은 시간에 있는 다른 전공 강의인 '서양중세철학'에서 토머스 아퀴나스를 배우느니 니체와 맑스를 읽는 편이 훨씬 마음이 편할 터이다. F지 모 님이 이번 수업에도 들어오시기에 수업 마치고 인사를 했다.

집에 오는 길에는 퇴근길 러시아워에 휩쓸려 엄청 고생했다. 버스-지하철-지하철로 거의 정확히 두 시간이 걸렸다.

아참, 하나 깜박했군: 귀국하는 날 선편으로 부쳤던 책이 어째서인지 오늘 도착했다! 주말을 끼워서 일 주일이 안 걸리다니! 가끔 항공편에 자리가 남으면 선편 소포를 넣어 주기도 한다던데, 운 좋게 그런 경우가 되었나 보다. 열어 보니 다른 책들은 대체로 무사한데 러셀 하드커버의 표지가 다른 책들에 치여 벌어져 나갔다. 살짝 안타깝지만 본문 괜찮으면 됐다. 밤에는 [Bildung] 씨디를 아이튠즈로 추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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