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1월 19일 화요일

2010년 1월 19일 화요일

수업참관일이었다. 정장을 입고 머리를 넘겨 올린 다음, 어그부츠를 신고 구두는 따로 넣어 갔다. 이번에 참관한 수업은 총 6급 중 중급 정도에 해당하는 3급 반이었다. 학생 열두 명 교실에 참관교사 두 명이 들어갔다. 자신의 수업을 다른 사람이 와서 몇 시간 동안 지켜보고 있다면 꽤 부담스러울텐데도 교실을 공개해 주셔서 감사했다. 개인발표 지도안에 수업을 어떻게 진행하려고 하는지가 보이지 않는다는 지적을 두 번이나 받았었다. 실제 수업을 보니 그 말씀을 잘 이해할 수 있었다. 내가 맡은 부분은 초급에 나오는 한국어의 'V (으)려면' 표현이다. 지도 선생님이 이 표현을 이용해서 학생들이 참여할 수 있는 게임(!)을 만들어 보라는 조언을 해 주셨지만 아직 아이디어가 전혀 떠오르지 않는다.

어제 투명인간처럼 있으라는 얘기를 들었으나, 내가 들어간 수업의 선생님은 수업 중간 중간에 우리에게도 질문을 하셨고, 학생들이 둘씩 짝을 지어 연습하는 부분에서는 학생과 짝을 지어 주셨다. 나는 김연아, 아사다 마오와도 친구사이라는 방콕에서 온 태국 학생과 짝이 되었다. 스케이팅 선수로, 세 살 때부터 스케이팅을 했고 안무도 짠다고 한다. 태국에서는 스케이트가 그다지 잘 알려진 스포츠가 아닌데 한국에 왔더니 다들 김연아를 알고 있어서 깜짝 놀랐단다. 9시에 시작하는 한국어 수업에 스케이트 연습을 하고 왔다니 대체 몇 시부터 훈련하는 걸까?; 한국에서는 스케이트 연습을 어디서 하는지 물어 봤더니 목동 아이스링크에도 가고, 안양에도 연습할 수 있는 곳이 있다고 한다.

의욕적인 학생과 의욕이 없는 학생, 자만하고 있는 학생과 그렇지 않은 학생들이 한눈에 보였다. 나도 교실에서 선생님들께 이렇게 맨얼굴을 드러내고 있으리라고 생각하니 무서웠다.

정장 입고 머리를 묶었을 뿐인데(원래 올렸는데 지하철에서 사람들에 치이면서 망과 핀이 뒤에서 당겨 떨어졌다) 사람들이 놀랄 만큼 못 알아봐서 조금 재미있었다. 같은 팀 분들도 한 박자 쉬고 "......아!" 하는 반응. 함께 참관수업에 들어간 분은 4시간 동안 둘이 나란히 앉아 수업을 들은 후 함께 점심을 먹을 때까지도 내가 누구인지 몰랐던 모양이다. 휴게실에서 샌드위치를 먹던 중에 우리 팀 분을 보고 내가 인사를 하자(그 분도 한 박자 쉬고 "어어, 아? 아, 선생님!") 그제서야 "아, 선생님이 그 선생님이었어요?" 하고 깜짝 놀랐다. 그 뒤에도 "이런 사람이 있었나?"하는 표정으로 보는 분들께 두 손을 주먹쥐어 귀 밑에 갖다 대며 양갈래 시늉을 하면 "아!"하는 반응이 돌아왔다. 따지자면 3주 째라고는 해도 다들 종일 수업을 듣는 것만으로도 벅차 서로의 얼굴을 자세히 관찰할 기회는 그다지 없었던 탓이 크겠지만, 이거 무슨 변신물도 아니고......

오후에는 한국어 이해교육론 수업을 들었다. 기억에 남는 이야기를 하나 써 둔다. 학생들 중에는 언어를 배우면서 규칙화, 조직화를 하려고 하는 경향이 강한 이들이 있다. 이런 학생들의 경우 종이는 한 '장' 인데 책은 왜 한 '권' 이라고 하는지를 묻거나 한다. 가르치다 보면 이런 식의 질문을 하는 학생을 분명 만나게 될 텐데, 이럴 때에 교사는 모든 것의 이유를 설명해 주어야 한다고 생각해서 무리해서 답을 찾으면 안 된다. 언어는 조직화된 것이기 때문에 사용되는 것이 아니라, 언어가 먼저 있고, 그 언어를 더 쉽게 사용하고 익히기 위해서 문법이나 각종 규칙들로 조직화된 것이다. 따라서 이와 같은 질문을 받았을 때에는 옛부터 그렇게 쓰여 왔던 것이라고 답하면서 가능하다면 질문한 학생이 이해할 수 있는 다른 언어나 모어의 예를 들어 주면 좋다. 선생님이 드신 예는 영어에서 cabbage를 head로 세는 것. 보통 이런 예를 들어주면, 지금까지는 눈치채지 못했지만 자신의 모어에도 조직적인 근거를 댈 수 없지만 계속 사용되어 온 표현들이 있음을 깨닫고 납득한다고 한다.

아참, 그리고 오전에 참관한 수업에서 어느 학생이 질문해서 알게 된 것인데, '천만에요'의 '천만'의 뜻은 '천 번 만 번 아니에요(괜찮아요)'라는 의미였다. 나는 당연히 한자가 다르리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한자는 똑같이 千萬이다.

저녁에는 무척 피곤했지만, '오늘의 메뉴' 사이트에 학생회관 저녁이 순두부 찌개라고 나와 있었기 때문에 학생회관까지 열심히 갔다. 그런데 가서 보니 '두부김치'였다. 아아, 자정에 메뉴를 확인한 다음부터 저녁에 학관 순두부찌개 먹을 생각으로 버텼건만 두부김치라니! 슬퍼하며 인삼곰탕을 먹었다.

집에 와서는 피곤해서 한 숨 잤다. 한 시간 알람을 맞춰 놓고 누웠는데 어찌나 곤히 잤는지 눈 감자마자 알람이 울린 것 같았다. 내일 문법시험을 보기 때문에 책을 한 번 훑어본 다음 일기를 쓰고 있다. 피곤해서 못 버틸 줄 알았는데 무사히 지나간 듯 하다.

내일은 정치적 병역거부를 선언한 동기 현민의 구형공판일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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