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1월 4일 월요일

2010년 1월 4일 월요일 : 한국어교사양성과정 개강

서울대학교 언어교육원의 [외국인 한국어교사양성과정] 개강일이었다. 첫날 먼 길을 가야 하는 터라 전날 밤부터 기합을 넣고 준비헀으나, 폭설로 비명이 울리는 지옥이 된 9호선을 타고 당산역에서 머리를 쥐어뜯기며 내린 후 정신이 혼란해져 습관적으로 신촌행 2호선을 탄 다음(그새 이쪽 방향을 습관적으로 찾는 자신에게 조금 놀랐다) 홍대입구역에서 반대로 돌아 도보 속도의 2호선을 타고 서울대입구역까지 간 다음 눈길을 헤치고 행정대학원 강의실에 도착하자 10시 58분이었다. 모자에 눈이 아니라 얼음덩어리가 얼어붙어 있더라. 9시 30분에 개강할 예정이었으나 강사님도 제때 도착을 못 하셔서 11시를 한참 지나서야 수업이 시작되었다.

강의는 매우 재미있었다. 흥미진진한 이야기를 잔뜩 들어서 잊기 전에 정리해 두고 싶은데 지금은 피곤하니 나중에. 특히 언어학 개론 수업을 들으면서 철학을 계속 공부했다면, 하는 생각을 많이 했다. 꼭 철학이 아니라도 괜찮았을지도 모른다. 순수학문에 가까운 지식에서만 느껴지는 고양감과 인문학적 자극에만 선명하게 반응하는, 머리 끝이 저릿해지는 것 같은 황홀한 쾌감이 분명히 있다. 무언가를 배우고 있다, 알아가고 있다는 행복에 가까운 만족감도 오랜만에 느꼈다. 그러나 철학과 석사를 갔다면 (내게 학자로서의 창조적 재능이나 끈기가 그다지 없다는 점은 차치하더라도) 행복하게 살지 못했으리라고 생각한다. 언젠가 돌아보며 가지 않은 길 운운하는 날이 올지도 모르지만, 역시 아직은 후회도 미련도 없다. 나는 행복하기 위해 더 많은 것을 필요로 하는 사람이다. 이 사실을 죄책감 없이 긍정하며 살고 싶다.

학생 중에 대단히 난감한 분이 계셔서 앞으로의 수업이 걱정스럽다. 틀림없이 가르치는 일을 이미 하고 계신 분이리라고 생각한다. 강사의 말을 자르고 뜬금없이 자신의 주장을 펴거나(예: 언어는 변하는 것이므로 '선릉'을 [설릉]으로 발음할 필요가 없다./ 나는 '자장면'표기에 반대하고 [짜장면]이라고 써야 한다고 생각한다. etc.), 강사에게 반 농으로라도 면박을 주는 모습이 당황스러웠다. 심지어 저녁 오리엔테이션 시간에는 오늘 배운 것 중에 별로 도움이 안 되는 것도 있는 것 같은데(!), 그냥 종합시험을 위한 키워드를 먼저 가르쳐 주면 안 되느나고까지 해서 들으면서 기겁했다. 아, 영어 할 줄 아는데 영어를 써서 실습 수업 준비하면 안 되느냐고도 하시더라. 다른 것은 차치하더라도, 조별로 실습 과제를 준비해야 하기 때문에 제발 같은 조에 배정되지 않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다. 내게는 양성과정을 재수강할 시간적 여유도, 이런 분과 융통성 있게 맞춰 나갈 만한 성격적 여유도 없으니 운이 좀 따라 주길 바라고 바랄 뿐이다.

학생의 자세에 대해서 많이 반성했다. 타인이 자신의 말을 경청하리라는/해야 한다는 확신, 자신의 지식과 지위에 대한 자신감, 자신의 질문이 다른 학생들에게도 시간을 할애해 들어야 할 만큼 중요하리라는 의심 없는 태도......결국은 자신이 학생인 자리와 선생인 자리를 구분하지 못해서 생기는 문제라고 생각한다. 나는 속으로 짜증을 내는 한편, 나도 십수년 뒤에는 저런 사람이 될지도 모른다는 불편하면서도 무섭도록 현실적인 두려움을 느꼈다. 오늘 보고 생각한 것들을 잘 새겨 반면교사로 삼아야겠다.

귀가길에는 김포공항 행 리무진버스를 탔다. 도로교통 상황에 비해서는 수월하게 들어온 것 같다. 하루가 정신없이 지나가서인지 오랜만에 모교에 들어가서인지 몰라도 이제야 피로감이 몰려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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