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1월 17일 일요일

2010년 1월 17일 일요일

어제가 동진님 생일이었기 때문에 아점을 먹으러 시부모님과 형님, 시조카들이 왔다. 콩나물북어국을 끓였는데 어머니가 해 주시는 것처럼 맛있지 않아서 낙담했다. 마지막에는 결국 좌절해서 국선생을 투입했다.

어머님께서 내게 하고 싶은 잔소리를 식사 기도문에 넣으시는 것을 들으며 속으로 웃었다. 점잖고 너그러운 분이다. 내가 생각하기에 우리 집의 고부관계는 평균 50점으로, 내가 10점에 어머님이 90점이다.

신이 기도를 듣고 있다고 믿지 않는 나는, 다른 사람이 소리내어 하는 기도를 들을 때마다 그 사람의 지극히 개인적인 욕망과 치부를 억지로 마주하는 것 같아서 당혹스럽고 불편하다.

이 생각을 하다 보니 양성과정에서 들은 흥미로운 이야기가 생각났다. 주기도문을 보면 주격 조사로 '이'만 쓰고 있는데, 이것은 한국어의 주격 조사 중 '가'가 훨씬 뒤에 나온 것과 관련이 있다고 한다. 한국어에서는 받침이 없는 주어에는 조사로 '가'를, 받침이 있는 주어에는 '이'를 붙이는데, 이중 '가'는 중세 국어에 이르러서야 나온 것으로 그전에는 '이'만을 사용했다. 개신교는 근대에 이르러서야 한국에 들어왔으니, 개신교 기도문이 번역된 시점에는 이미 주격 조사 '가'가 널리 쓰이고 있었다. 그런데도 주기도문에 비문법적인 '이'를 쓴 것은 종교 기도문의 특수성 때문이다. 한국어 주기도문 뿐 아니라 많은 종교에서 기도문은 언어의 원형에 가깝게 만들어지거나 번역되어 있다. 신은 (인간 식으로 따지자면) 아주 나이가 많을 테니, 고어에 가까운 기도일수록 신에게 잘 들리리라는 인간의 소박한 바람에 기인한 것으로 보고 있다고 한다.

시조카들은 한창 아지트 만들기에 재미를 붙인 나이라 들어오자마자 소파와 탁자 사이에 담요를 걸고 아지트부터 만들었다. 나도 식탁과 의자 사이에 보자기나 이불을 걸고 아지트를 열심히 만들던 때가 있었는데 싶어 어릴 적 생각이 많이 났다.

함께 점심을 먹고, 형님이 가져 오신 딸기와 시부모님이 가져 오신 케이크를 먹었다. 동진님은 출근하고, 나는 소소한 집안일을 하고 한국어 개인지도 시간에 쓸 텍스트를 골라 학생에게 이메일로 보냈다. 밤 12시 마감인 문법교수 수업지도안 수정본을 간신히 마감에 맞춰 보낸 다음, [사무라이전대 신켄쟈] 제46화를 보았다. 자신에게 아무 것도 없다고 느낀 시바 타케루는 쥬조와의 일전에 몸을 던지고, 시타리는 도코쿠의 부활을 위해 자신의 목숨을 반 나누어 초 힘센 아야카시를 인간 세상에 내보낸다. 죽는 것보다는 반쪽 짜리 목숨으로라도 사는 것이 낫다는 시타리의 절규가 귀에 남는다. 중간중간 미묘하게 힘을 준 특수효과들이 등장했다.

어쩐지 길고 피곤한 하루였다. 내일이 월요일이고 화요일에는 수업참관, 수요일에는 문법시험, 목요일에는 개인발표가 있다니 아득하다.

그러고 보니 어젯밤에도 학교가 나오는 악몽을 꾸었다.

댓글 3개:

  1. 비밀 댓글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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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Anonymous - 2010/01/18 11:01
    말씀대로입니다! 지적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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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학교가 나오는 악몽ㅎㅎㅎㅎ 저도 너무 자주 꿔서 미치겠어요ㅎㅎㅎ



    건프라 얘기를 보니 여러가지 생각이 나는게...



    아들이 만든 프라모델을 손자가 만지려는데 못 만지게 하시는군요. 일단 이게 좀 신기했어요, 그 대상이 프라모델이라는 점에서 말이죠.



    제가 중학교 때 미술과제로 아크릴판과 우드락 등으로 만든 우리집 모형을 적당히 부수고 (검사 끝난 거니), 로봇 프라모델 두어개를 넣어 나름 포즈도 멋지게 잡아서 본드로 고정시켜놓고 아주 흐뭇하게 보관하고 있었는데... (나름 피규어랄까ㅎ)



    어느날 학교에서 왔더니 집에 엄마 친구분들이 놀러왔다가 그 집 꼬맹이들이 갖고 놀려고 잡아당겨서 집은 집대로 뜯기고 프라모델들도 부숴져 있고!!!



    엄마에게 항의했으나... 당연히 다큰 애가 그런 거 가지고 징징댄다고 혼만 난 기억이 ㅠ,.ㅠ 아아 잊고 있었던 아픈 기억이 되살아나버렸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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