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물일곱 살이 되었다.
스물여섯살에 나는 대학을 졸업하고, 대학원에 입학하고, 결혼을 했다. 좋아하는 것에 대해 다른 사람들 앞에서 말하기 시작했다. 여기저기에서 선생님이라는 말을 들었다. 신혼여행을 했다. 처음으로 1박 2일로 봉사활동을 갔고, 꽤 목돈을 저금하는 데 성공했다. 일본어를 할 수 있게 되었다. 생전 처음으로 아이돌 가수의 콘서트에 갔다. 생전 처음으로 절에 조문을 갔다. 지금까지 경험해 본 적 없는 지독한 슬럼프를 겪었다. 영원히 말로 표현할 수 없을 것 같은 행복을 느끼고, 존재를 압도하는 그 기쁨이 생활 구석구석으로 따뜻하게 퍼져나갈 때의 충만감을 경험했다. 십여년 만에 남이 짠 시간표대로 남이 정해준 자리에 앉아 남이 결정한 교수에게 배웠다. 그것만으로도 숨이 막혀 견딜 수가 없어서, 내가 지금까지 참 마음 내키는 것만 하고 살았음을 확실하게 깨달았다. 앞으로도 하고 싶은 일만 하고 살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진지하게 고민했다. 열두 번째 책을 냈다. 무심한 젊음이 어르신들에게 얼마나 잔인한 흉기가 될 수 있는지 막연하게나마 깨닫기 시작했다. 노화와 죽음과 쓸쓸함에 대해 많이 생각했다. 생각할 때마다 가슴이 아팠다. 시대정신과 무력함과 좌절감에 대해 생각했다. 이것도 생각할 때마다 가슴이 아팠다. 스물하나, 스물둘, 스물셋, 스물넷, 스물다섯살 때와 마찬가지로 아무래도 떨쳐낼 수 없는 허영과 오만을 인지했지만, 매년 그랬듯이 그런 나의 모습까지 긍정해도 괜찮다 싶었다. 할 수 있는 일을 할 수 있는 만큼씩 해나가면 된다고 믿었다. 그러나 할 수 있는데 하지 않은 일도 분명히 있었다. 여느 해보다 괴로운 일도 반성할 것도 많은 일 년 이었다. 그래도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은 여전히 마음에 들었다.
스물일곱살이 되기 삼십 분 정도 전에 귀가했다. 나는 지하철 역 에스컬레이터에 서서 2010년에는 제대로 살고 싶다고 절실히 생각했다. 썩 다정한 성격이 아닌 것이야 어쩔 수 없다 하더라도, 스물일곱 살에는 더 상냥한 젊은이라도 되고 싶다고 생각했다. 한 살 나이를 먹는 만큼 받은 것과 가진 것이 늘어만 간다. 나를 둘러싼 넓고 깊은 너그러움에, 목이 메었다.
2010년 2월 25일 목요일
2010년 2월 24일 수요일
2010년 2월 24일 수요일
새미가 생일 축하 저녁을 샀다. 서울대입구역 근처의 외래향에서 탕수육과 자장면을 먹었다. 식후에는 조용한 카페를 찾다가 2층에 있는 WILL이라는 곳에 들어갔는데, 옛날 다방 분위기인데다 흡연이라서 미묘했지만, 비교적 조용하긴 했다.
2010년 1월 17일 일요일
2010년 1월 17일 일요일
어제가 동진님 생일이었기 때문에 아점을 먹으러 시부모님과 형님, 시조카들이 왔다. 콩나물북어국을 끓였는데 어머니가 해 주시는 것처럼 맛있지 않아서 낙담했다. 마지막에는 결국 좌절해서 국선생을 투입했다.
어머님께서 내게 하고 싶은 잔소리를 식사 기도문에 넣으시는 것을 들으며 속으로 웃었다. 점잖고 너그러운 분이다. 내가 생각하기에 우리 집의 고부관계는 평균 50점으로, 내가 10점에 어머님이 90점이다.
신이 기도를 듣고 있다고 믿지 않는 나는, 다른 사람이 소리내어 하는 기도를 들을 때마다 그 사람의 지극히 개인적인 욕망과 치부를 억지로 마주하는 것 같아서 당혹스럽고 불편하다.
이 생각을 하다 보니 양성과정에서 들은 흥미로운 이야기가 생각났다. 주기도문을 보면 주격 조사로 '이'만 쓰고 있는데, 이것은 한국어의 주격 조사 중 '가'가 훨씬 뒤에 나온 것과 관련이 있다고 한다. 한국어에서는 받침이 없는 주어에는 조사로 '가'를, 받침이 있는 주어에는 '이'를 붙이는데, 이중 '가'는 중세 국어에 이르러서야 나온 것으로 그전에는 '이'만을 사용했다. 개신교는 근대에 이르러서야 한국에 들어왔으니, 개신교 기도문이 번역된 시점에는 이미 주격 조사 '가'가 널리 쓰이고 있었다. 그런데도 주기도문에 비문법적인 '이'를 쓴 것은 종교 기도문의 특수성 때문이다. 한국어 주기도문 뿐 아니라 많은 종교에서 기도문은 언어의 원형에 가깝게 만들어지거나 번역되어 있다. 신은 (인간 식으로 따지자면) 아주 나이가 많을 테니, 고어에 가까운 기도일수록 신에게 잘 들리리라는 인간의 소박한 바람에 기인한 것으로 보고 있다고 한다.
시조카들은 한창 아지트 만들기에 재미를 붙인 나이라 들어오자마자 소파와 탁자 사이에 담요를 걸고 아지트부터 만들었다. 나도 식탁과 의자 사이에 보자기나 이불을 걸고 아지트를 열심히 만들던 때가 있었는데 싶어 어릴 적 생각이 많이 났다.
함께 점심을 먹고, 형님이 가져 오신 딸기와 시부모님이 가져 오신 케이크를 먹었다. 동진님은 출근하고, 나는 소소한 집안일을 하고 한국어 개인지도 시간에 쓸 텍스트를 골라 학생에게 이메일로 보냈다. 밤 12시 마감인 문법교수 수업지도안 수정본을 간신히 마감에 맞춰 보낸 다음, [사무라이전대 신켄쟈] 제46화를 보았다. 자신에게 아무 것도 없다고 느낀 시바 타케루는 쥬조와의 일전에 몸을 던지고, 시타리는 도코쿠의 부활을 위해 자신의 목숨을 반 나누어 초 힘센 아야카시를 인간 세상에 내보낸다. 죽는 것보다는 반쪽 짜리 목숨으로라도 사는 것이 낫다는 시타리의 절규가 귀에 남는다. 중간중간 미묘하게 힘을 준 특수효과들이 등장했다.
어쩐지 길고 피곤한 하루였다. 내일이 월요일이고 화요일에는 수업참관, 수요일에는 문법시험, 목요일에는 개인발표가 있다니 아득하다.
그러고 보니 어젯밤에도 학교가 나오는 악몽을 꾸었다.
어머님께서 내게 하고 싶은 잔소리를 식사 기도문에 넣으시는 것을 들으며 속으로 웃었다. 점잖고 너그러운 분이다. 내가 생각하기에 우리 집의 고부관계는 평균 50점으로, 내가 10점에 어머님이 90점이다.
신이 기도를 듣고 있다고 믿지 않는 나는, 다른 사람이 소리내어 하는 기도를 들을 때마다 그 사람의 지극히 개인적인 욕망과 치부를 억지로 마주하는 것 같아서 당혹스럽고 불편하다.
이 생각을 하다 보니 양성과정에서 들은 흥미로운 이야기가 생각났다. 주기도문을 보면 주격 조사로 '이'만 쓰고 있는데, 이것은 한국어의 주격 조사 중 '가'가 훨씬 뒤에 나온 것과 관련이 있다고 한다. 한국어에서는 받침이 없는 주어에는 조사로 '가'를, 받침이 있는 주어에는 '이'를 붙이는데, 이중 '가'는 중세 국어에 이르러서야 나온 것으로 그전에는 '이'만을 사용했다. 개신교는 근대에 이르러서야 한국에 들어왔으니, 개신교 기도문이 번역된 시점에는 이미 주격 조사 '가'가 널리 쓰이고 있었다. 그런데도 주기도문에 비문법적인 '이'를 쓴 것은 종교 기도문의 특수성 때문이다. 한국어 주기도문 뿐 아니라 많은 종교에서 기도문은 언어의 원형에 가깝게 만들어지거나 번역되어 있다. 신은 (인간 식으로 따지자면) 아주 나이가 많을 테니, 고어에 가까운 기도일수록 신에게 잘 들리리라는 인간의 소박한 바람에 기인한 것으로 보고 있다고 한다.
시조카들은 한창 아지트 만들기에 재미를 붙인 나이라 들어오자마자 소파와 탁자 사이에 담요를 걸고 아지트부터 만들었다. 나도 식탁과 의자 사이에 보자기나 이불을 걸고 아지트를 열심히 만들던 때가 있었는데 싶어 어릴 적 생각이 많이 났다.
함께 점심을 먹고, 형님이 가져 오신 딸기와 시부모님이 가져 오신 케이크를 먹었다. 동진님은 출근하고, 나는 소소한 집안일을 하고 한국어 개인지도 시간에 쓸 텍스트를 골라 학생에게 이메일로 보냈다. 밤 12시 마감인 문법교수 수업지도안 수정본을 간신히 마감에 맞춰 보낸 다음, [사무라이전대 신켄쟈] 제46화를 보았다. 자신에게 아무 것도 없다고 느낀 시바 타케루는 쥬조와의 일전에 몸을 던지고, 시타리는 도코쿠의 부활을 위해 자신의 목숨을 반 나누어 초 힘센 아야카시를 인간 세상에 내보낸다. 죽는 것보다는 반쪽 짜리 목숨으로라도 사는 것이 낫다는 시타리의 절규가 귀에 남는다. 중간중간 미묘하게 힘을 준 특수효과들이 등장했다.
어쩐지 길고 피곤한 하루였다. 내일이 월요일이고 화요일에는 수업참관, 수요일에는 문법시험, 목요일에는 개인발표가 있다니 아득하다.
그러고 보니 어젯밤에도 학교가 나오는 악몽을 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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