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2월 25일 목요일

2010년 2월 25일 목요일 : 생일

스물일곱 살이 되었다.

스물여섯살에 나는 대학을 졸업하고, 대학원에 입학하고, 결혼을 했다. 좋아하는 것에 대해 다른 사람들 앞에서 말하기 시작했다. 여기저기에서 선생님이라는 말을 들었다. 신혼여행을 했다. 처음으로 1박 2일로 봉사활동을 갔고, 꽤 목돈을 저금하는 데 성공했다. 일본어를 할 수 있게 되었다. 생전 처음으로 아이돌 가수의 콘서트에 갔다. 생전 처음으로 절에 조문을 갔다. 지금까지 경험해 본 적 없는 지독한 슬럼프를 겪었다. 영원히 말로 표현할 수 없을 것 같은 행복을 느끼고, 존재를 압도하는 그 기쁨이 생활 구석구석으로 따뜻하게 퍼져나갈 때의 충만감을 경험했다. 십여년 만에 남이 짠 시간표대로 남이 정해준 자리에 앉아 남이 결정한 교수에게 배웠다. 그것만으로도 숨이 막혀 견딜 수가 없어서, 내가 지금까지 참 마음 내키는 것만 하고 살았음을 확실하게 깨달았다. 앞으로도 하고 싶은 일만 하고 살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진지하게 고민했다. 열두 번째 책을 냈다. 무심한 젊음이 어르신들에게 얼마나 잔인한 흉기가 될 수 있는지 막연하게나마 깨닫기 시작했다. 노화와 죽음과 쓸쓸함에 대해 많이 생각했다. 생각할 때마다 가슴이 아팠다. 시대정신과 무력함과 좌절감에 대해 생각했다. 이것도 생각할 때마다 가슴이 아팠다. 스물하나, 스물둘, 스물셋, 스물넷, 스물다섯살 때와 마찬가지로 아무래도 떨쳐낼 수 없는 허영과 오만을 인지했지만, 매년 그랬듯이 그런 나의 모습까지 긍정해도 괜찮다 싶었다. 할 수 있는 일을 할 수 있는 만큼씩 해나가면 된다고 믿었다. 그러나 할 수 있는데 하지 않은 일도 분명히 있었다. 여느 해보다 괴로운 일도 반성할 것도 많은 일 년 이었다. 그래도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은 여전히 마음에 들었다.

스물일곱살이 되기 삼십 분 정도 전에 귀가했다. 나는 지하철 역 에스컬레이터에 서서 2010년에는 제대로 살고 싶다고 절실히 생각했다. 썩 다정한 성격이 아닌 것이야 어쩔 수 없다 하더라도, 스물일곱 살에는 더 상냥한 젊은이라도 되고 싶다고 생각했다. 한 살 나이를 먹는 만큼 받은 것과 가진 것이 늘어만 간다. 나를 둘러싼 넓고 깊은 너그러움에, 목이 메었다.


 

댓글 8개:

  1. 생일축하합니다~ 새 나이의 한 해에도 더욱 마음에 드는 모습 만들어가세요 :)

    답글삭제
  2. 언니! 생일 진심으로 축하해!^^ 내 언니로 태어나주어서 고맙고(부모님께도 무한 감사를!♥) 또 영광이야.

    답글삭제
  3. 생일 축하합니다. 신간 루나가 나왔네요. '너는 비밀'도 어디서 소개해 줄까요?

    답글삭제
  4. 비밀 댓글 입니다.

    답글삭제
  5. 생일 축하해! 내 딸로 태어나주어서 고마워.외가에 다녀오느라 처음으로 미역국을 끓여주지 못했구나. 아직도 성장중인 너를 보면서 엄마도 조금은 더 `어른`이되어야겠다고 다짐하게 되네. 축하해~

    답글삭제
  6. 다소 늦었지만 생신 축하합니다^^

    답글삭제
  7. 모두들 감사합니다!! *^^*

    답글삭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