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2월 25일 목요일

2010년 2월 25일 목요일

부슬비가 왔다.

대학원 동기 수진을 티타임에 초대했는데, 집에 커피가 없는 것을 뒤늦게 깨달았다. 여의도역으로 가서 커피를 한 봉지 사며, 겸사겸사 조각케이크도 두 개 골랐다. 낮에는 이번에 공감에서 인턴을 한 수진과 커피+케이크로 티타임. 인턴 중에 혼자 로스쿨생이었다니 부담스러웠을 것 같다. 성소수자 쪽을 맡고 있는 장서연 변호사님과 함께 일했다고 한다. 사건에 관한 이야기도 들었는데, 실무에서 부딪히는 상황들은 역시 참 어렵겠구나 싶었다. 공익변호를 필요로 한다고 해서 모두 피해자는 아니다. 스스로 납득할 수 있는 선을 알아가는 과정도 참 힘들겠다는 생각을 했다. 내가 공감에 보냈던 밤양갱을 수진도 하나 먹었다고 해서 웃었다.

수다를 떨다 보니 시간이 금세 갔다. 생각치 않았던 속 깊은 이야기까지 해버렸(?)지만 편안하고 즐거웠다. 함께 집을 나서서 나는 홍대입구역으로 갔다. 문지문화원 겨울강의 마지막 날이었다. 배명훈 님이 오셔서 [타워]와 작품에 관한 이야기를 해 주셨다. 강좌가 끝난 후에는 다함께 카페 히비로 갔다. 커다란 테이블을 예약해 두었는데, 열한 명이 둘러 앉으니 꽉 차더라. 동진님도 퇴근길에 튤립을 한 송이 들고 왔다.

이번 강좌에는 내가 K사에서 번역하고 F지에도 실은 적이 있는, 공감각을 소재로 한 소설(만화)을 읽으셨다는 공감각인이 오셨다. 첫 강의 때, 수업이 끝난 후 와서 그 책을 읽은 공감각인이라고 말씀해 주셨었는데, 따로 여쭤볼 시간이 없어서 종강일인 오늘에야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공감각인들 한 명 한 명의 경험이 무척 다르다는데, 이 분은 마침 내가 번역한 책의 주인공과 같이 글자에 색이 보이는 공감각인이셔서 굉장히 신기했다. 이상하지 않았냐고 물었더니, "계속 다른 사람들도 다 그런 줄 알았어요."라고 하셨다. 어렸을 때 어머니께 "엄마, 나 친구 누구누구 이름 생각하면 이런이런 색이 떠오른다?"라고 한 적이 있는데, 어머니가 쏘쿨하게 "그래? 난 안 그런데." 라고 대답하고 넘기셨단다. 그래서 "아, 나 같은 사람들이 더 많지만 엄마는 안 그렇구나." 하고 납득하고(?) 살다가, 몇 년 전에야 공감각인이라는 사실을 확실히 알게 되어서 지금은 모 연구의 피실험자이기도 하단다. 한글 자모와 영문, 숫자 모두 색깔이 보이는데 숫자가 가장 선명하고,  컬러인 글자를 보면 그 색이 공감각의 색과 맞지 않는 경우에는 기분이 나빠진달까, 우울해진달까 하는 느낌이 들기도 한단다.

또 모 도서관 관장님도 "도서관 홍보하러" 오셔서 도서관에 관해 생각해 볼 거리를 많이 주셨다. 자신의 일을 확실히 알고, 애정과 책임감을 갖고 말할 수 있는 프로란 멋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정말 안 읽은 책이 없으신 듯.; 초 레어템인 [HAPPY SF]에 실렸던 [앨리스와의 티타임]까지 보셨다고 하셔서 깜짝 놀랐었다. 수강생 분들에게 종강 선물로 책갈피도 나누어 주셨다. 첫 번역서인 [노래하던 새들도 지금은 사라지고]를 감명 깊게 읽어 주신 분으로부터 종강 선물로 호두파이도 받았다. 그 외에도 이런저런 이야기를 많이 들어 즐겁고 뿌듯했다. 언제까지 사이에서 강의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봄 강좌도 개설되어 또다른 독자 분들과 만날 수 있다면 좋겠다.

집에 와서는 시어머니께서 생일이라고 보내 주신 스테이크 고기를 한 점 구워 먹었다. 굉장히 맛있었다! 후식으로는 남편이 생일 케이크 대신 준비한 PAUL의 레몬타르트를 나누어 먹었다.

멋진 생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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