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3월 3일 수요일

2010년 3월 3일 수요일 : 현민의 선고 공판

정치적 병역거부를 선언한 동기 현민의 선고공판일이었다. 서부지방법원에서 오전 10시. 밤낮이 조금 바뀐 상태라 전날 새벽 4시 즈음에야 잠들어서 못 일어날까봐 걱정했는데, 날이 날이니만큼 긴장해서 잘 일어났다. 법원에 제일 먼저 도착해서 기다리고 있으니, 동기 신행과 도호, 이어서 후원회 일을 맡고 있는 후배들이 들어왔다. 좀 더 앉아서 기다리자 [전쟁 없는 세상]의 여옥 님, 다음주에 선고를 받는 다른 병역거부자 분 등이 오셨다. 현민은 기다리는 쪽이 초조해질 때 쯤 되어 나타났다. 현민의 어머니는 오시지 않았다.

공판장 앞에서 현민은 휴대폰을 넘기며 해지를 부탁하고, 속옷과 책 몇 권이 들었다는 종이가방을 들었다. 후원회장을 맡고 있는 후배 중희가 지갑에 얼마 있는지 묻더니 혹시 모르니까, 하고 칠만원을 건넸다. 가볍게 포옹하며 인사를 했다. 나는 남자 동기라 손 한번 잡아본 적 없던 현민을 안고, 나도 모르게 등을 두드렸다.

법정에 들어갔다. 형사이다 보니 앞의 분들은 사기죄, 폭력죄.....병역법 위반으로 현민의 이름이 불렸고, 판사는 '주장하는 내용을 다 이해할 수는 없지만 현행 헌법상 국방의 의무가 주장되는 양심의 자유에 우선하므로' 징역 1년 6월을 선고했다. 그런데 법정구속이 되리라고 생각하고 바로 감옥에 갈 준비를 다 하고 있었는데, 신변을 정리할 시간이 필요할테니 오늘은 귀가해도 좋고 7일 후에 출두하란다. 우리는 우르르 들어갔다가 우르르 나와, 손을 벌벌 떨며 벤치에 주저앉은 현민을 둘러싸고 망연히 서 있었다.

현민은 아무 것도 먹을 생각이 없다며 일단 돌아가자고 했다. 법원 앞에 서서, 아침에 어머니가 갈비며 한라봉을 차려 준 이야기, 끝내지 못한 번역일정을 조정해 놓았는데 시간이 더 생겨서 감옥 간 척 잠수해 있어야겠다는 얘기, 감옥에 가져가려고 골라 놓은 책이 너무 마음에 들지 않아 아침 일찍 택시를 타고 교보문고까지 갔다가 막상 가고 보니 재판에 늦을 것 같아서 다시 돌아온 얘기를 조금 두서없이 늘어놓으며 추운데 세워 놓아서 미안하지만 내 인생에 이런 일이 언제 또 있겠냐고 했다. 두 번 없길 진심으로 바랐다. 신념을 위해 극단적인 선택을 해야 하는 순간은 한 번이면 족하다.

서부지법까지 온 김에 바로 옆 서부지검에 있는 CW양에게 잠시 들렀다. CW양은 법정구속이 안 되었다는 얘길 듣더니 판사가 예외적으로 무척 배려해 준 것이리라고 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양보할 수 없는 신념의 무게가 실감나 마음이 무척 무거웠다. 오랜만에 친정에 들르기로 했던 터라 집 근처 전철역에서 어머니와 만나 간단히 쇼핑을 했다. 딸에게 좋은 밥 챙겨주겠다고 분주히 만두를 빚던 어머니는, 현민의 이야기를 듣더니 거실 쇼파에 늘어져 있는 내 쪽을 보며 "어휴, 부모한테 어쩜 그런 불효를 하니. 하여튼 부모 마음보다 지들 신념이 중하다고......먹물이 너무들 들었어. 모르고 좀 편하게 살면 좋을텐데 알아서 그 고생을 하지."라며 한숨을 쉬셨다. 나는 어머니의 시선을 과장스레 외면하며 "그러게~말이에요~"하고 능청맞게 웃었다.

맛있는 만두국을 먹고 어머니와 수다를 잠시 떤 다음 동생의 침대에서 한숨 잤다. 생일 선물로 받은 가방에 생일 선물로 받은 옷, 모자, 내가 잠든 새 어머니가 만들어 주신 따뜻한 귀리빵 샌드위치를 두 개 받아 넣고 학교에 갔다.

집에 와서는 홍차를 우려 샌드위치를 먹었다. 두 개 다 먹었더니 무척 배가 불렀다. 나는 내 삶을 지배하는 포만감에 대해 생각하는 대신, 누워서 배를 두드리며 남편의 귀가를 기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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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군이 평생 친구로 여기고 있는 도호에게 전화 이야기를 했다. 전화를 받았을 때부터 상담하고 싶었는데 도호가 지난 토요일에 사법시험 1차를 쳤던 터라, 직접 만날 수 있는 오늘까지 기다렸었다. 몹시 걱정하며 주말에 바로 KTX를 타고 내려가야겠다고 했다. 그런데 나중에 공판장 앞에서 전화 연결이 된 B군은 멀쩡한 목소리로 나한테 전화한 적도 없다고 했단다. 내가 B군의 이야기를 하자마자, B군 일을 훨씬 더 잘 알고 있을 도호가 바짝 긴장하며 휴대폰을 꺼내들어 무척 불안했었는데, 차라리 기억하지 못할 만큼 취했었다면 되려 (아주 조금이지만) 안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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