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3월 12일 금요일

2010년 3월 12일 금요일

현민의 구속일이었다.

수강신청변경기간에 법조윤리를 넣었기 때문에, 1교시에 맞추어 학교에 갔다. 버스를 탈까(시간이 오래 걸리지만 환승할 필요가 없고 앉아 갈 수 있다) 지하철을 탈까(두 번 환승해야 하지만 출퇴근 시간에는 버스보다 빠르다) 고민하다가 아직은 괜찮을 것 같아 버스를 탔는데, 정말 아슬아슬하게 들어갔다. 지정좌석제인데 내 자리는 맨 앞이다. 올해의 운은 어제로 다한 모양이다.

그래도 가나다 순으로 앉아서, 지난 학기에 가까이 앉았던 앞번호 기봉오빠, 뒷번호 어연씨와 이번 학기 들어 처음으로 얼굴을 보고 인사할 수 있었던 것은 좋았다. 기봉오빠는 참 멋진 분이다. 성실하고 겸손하고, 상대방을 공격하지 않는 말하기를 할 줄 아신다고 할까. 가까이서 자세히 보고 배우고 싶은 부분이다.

법조윤리 시간에는 [뉴스 후] 비디오를 보고 변호사의 윤리에 관한 설명을 들었다. 2시간 연강인데 쉬지 않고 이어져서 나중에는 무척 힘들었다.

수업이 끝난 후에는 버스를 타고 센터로 갔다. 다행히 현대백화점 앞에서 센터 근처까지 한 번에 가는 버스가 있더라. 바람이 많이 불어 몹시 추웠는데, 센터 문을 열고 들어가보니 평소보다 더 복작복작해서 사람 열기로 따뜻했다. 어제 선물로 들어왔다는 롤케이크를 나누어 먹고 있기에, 얼른 끼어들어서 허겁지겁 먹었다. 필리핀에서 오신 두 분이 새로 오전 수업에 참여하신다고 한다.

오늘의 읽기 수업은 잘 되지 못한 것 같다. 예문을 하나 잘못 들었던 것 같아서 계속 신경이 쓰인다. E씨와 한국어능력시험 3급 공부를 시작했는데, 이 시험 너무 어렵다! 한국인에게 풀라고 해도 만점을 받지 못하는 사람이 있을 것 같은 수준이다. E씨가 J씨의 아들을 보며 "저도 아기 있고 싶어요."라고 했다. E씨는 아침에는 빵집 청소를 하고 저녁에는 식당 설거지를 한다. 설거지 시급은 5,000원이다. 오전에 새로 온 필리핀 출신 W씨는 한국에 온지 삼 년이고 아이도 둘 있지만, 남편이 집에서 내보내주지 않아 한국에 대해서 거의 모르고 한국어도 텔레비전을 통해서밖에 배우지 못했다고 한다. 그래서 한글 자모 쓰기도 잘 안 되는 상태. 게다가 집에서 잠시만 나가도 남편이 전화를 해서 어디에서 뭐 하느냐고 화를 낸단다. 남편이 센터에도 여기 뭐냐고 불쑥 찾아왔다가, 대표님을 보고 돌아갔던 모양이다. 국적과 영주권에 관한 이야기가 나왔는데, 아이가 둘 있고 센터에도 자주 오시는 G씨가 아직 국적도 영주권도 없는 외국인 상태라는 사실을 알고 조금 놀랐다. 아이 나이를 생각하면 결혼한지 오 년이 넘었을 텐데, 왜 영주권조차 없는지는 묻지 못했다. 그보다도 당장은 G씨의 허리 통증이 걱정이다. 몇 년 동안 계속 아이를 업고 다녀서 이제는 조금만 허리를 써도 누워서 쉬어야 할 정도로 상태가 나빠졌지만 아직 정형외과에 가지 못했다. 병원에 가서 디스크인지, 어느 정도인지 검사를 받아 보았으면 좋겠는데......활동 외 시간에 근처 병원에 함께 가고 싶은데 그렇게까지 개입해도 되는지 잘 모르겠어서 망설이고 있다.  

수업을 한 다음에는 집으로 급히 가서 옷을 갈아입고 노트북을 놓아 둔 다음, 저녁을 먹을 시간이 없을 것 같아 인스턴트 떡국을 먹었다. 그리고 서부지검으로 갔다. 오늘은 동기 신행, 02학번 수영 씨, 날맹 씨, 나, 다큐멘터리 촬영을 하고 계신 분(성함을 미처 여쭙지 못했다) 다섯이 현민을 배웅했다. 5시 40분까지 출두라 근처 뚜레주르에서 커피와 빵을 먹고 (먹이고?) 45분쯤 지검으로 갔다. 함께 간 사람은 올라가지 못하니 엘리베이터 앞에서 인사. 지난 주에 그냥 돌아왔을 때는 얼떨떨했는데, 막상 이렇게 가는 것을 보니 정리할 시간이 있어서 다행이었다 싶었다. 웃으면서 갔고, 웃으면서 보냈다. 호송차가 나가는 것을 보려고 지검 앞에서 벌벌 떨면서 기다렸는데, 여섯 시 좀 넘어서 커다란 버스가 한 대 나갔다. 문제는 완전히 새까매서 안에 있는지 없는지 알 수가 없었다는 점. 9층까지 갔다가 이렇게 빨리 나오지는 못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 앞에서 밍기적거리면서 더 기다렸다. 호송차로 가는 경우도 있지만, 이런 도주우려가 없는 양심범의 경우에는 퇴근하는 검사 승용차를 타고 감옥에 가는 경우까지도 있어서 가늠하기 어렵다고 한다. 마냥 기다릴 수 없어 결국 수영 씨가 이미 갔는지 알아보겠다며 검찰청 1층으로 들어갔다. 한참 있다 나와 "신분을 쓰고 싶지 않았지만......"하고 머리를 절래절래 흔들며 아까 그 호송차로 간 것이 맞다고 한다.

나는 신촌 쪽으로 갈 일이 있다는 날맹 씨와 택시를 타고 학교로 갔다. 날맹 씨도 병역거부자로, 현민이 나오기 전에 들어갈 예정이기 때문에 현민과는 오늘을 마지막으로 면회를 제외하면 몇 년을 보지 못하리라고 한다. 신촌에 있는 비폭력 대화 센터에서 열리는 비폭력 대화 연습모임에 가는 길이란다. 비폭력 대화를 배우는 곳이 있다니 이번에 처음 알았다. 상대방에게 상처를 주거나 상대를 공격하지 않고 공감하는 말하기를 하는 법을 배우는 곳으로 상담가나 아이들을 많이 대하는 교사 같은 분들이 찾아오신다고 한다. 입문 반은 한번에 세 시간씩 해서 6주 코스. 날맹 씨는 코스를 다 들은 사람들끼리 만나서 연습하는 단계에 있단다.

추운데 너무 오래 떨었기 때문에 택시를 타고 학교까지 들어갔다. 그러나 공익인권법 학회 모임 장소인 강의실에 가 보니 문이 굳게 닫혀 있었다. 준성에게 전화하니 조금 전에 나와서 밥 먹으러 가는 길이란다. 춥고 힘들었으나 고기 먹겠다고 다시 학교 밖까지 꾸역꾸역 걸어갔다.

고기집에 도착해 보니 딱 고기를 받아서 굽기 시작하는 참이었다. 좋은 타이밍이다. 개강하고 처음으로 만난 동기 분들도 꽤 있었다. 2기 분들을 본 것도 물론 처음. 뒤늦게 끼어든 터라 누가 누구인지, 어떤 이야기가 오갔는지 잘 알 수 없었지만 조금 들뜬 분위기가 즐거웠다. 일 년 버텼다는 실감도 났다. 고기를 잔뜩 먹었고, 고기 먹은 기세로 27일 세미나 발제에 참여하겠다고 했다. 현주언니와 수진이 한다고 해서 좋은 팀이다 싶었기 때문이었다. 공감에서 인턴하며 성소수자 인권 사건을 맡았던 수진에게, 원래 정한 주제인 '난민' 말고 '성소수자'로 발제를 하는 것은 어떻겠냐고 해 보았다. 

2차를 갈까 집으로 갈까 망설이던 차에 퇴근길인 동진님에게서 시부모님이 잠깐 들르신다는 문자가 와서 집으로 왔다. 고기 냄새가 잔뜩 밴 옷을 벗고 샤워부터 했다. 시부모님은 동진님 몸보신 약만 주고 차에서 내리지도 않고 바로 돌아가셨다. 모처럼 오셨는데.

아슬아슬한 컨디션으로 이렇게 무리를 한 끝에, 밤에는 다시 목이 아파 끙끙 앓기 시작했다.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