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3월 19일 금요일

2010년 3월 19일 금요일

법조윤리 시간에 눈물 콧물 흘리면서 [인물 현대사] 조영래 변호사 편을 보고, 센터에 갔다. 남편이 과일 장사를 하는 J씨가 맛있는 바나나를 가져와서 냠냠 먹었다. 수업 후에도 바나나를 하나 더 먹었는데, 그 뒤에 컵라면을 먹어서 속이 좀 거북해졌다. S씨가 내 귀걸이를 보고 예쁘다고 하자 G씨도 그 생각 했는데 말을 못 했다며 맞장구를 쳤다. 그러다가 아니, 안 예쁘니까 여기 버리고 가시라는 농담으로 넘어가서 한참 웃었다.

타 센터에서 진행한 프로젝트 북이 나와서 한 권 받아 왔다. 우리 센터에 오시는 분들이 참여하신 프로젝트라 낯익은 얼굴이 많아 재미있게 보았다. 다만 한국어를 이미 꽤 잘 하시는 분들이 참여한 것이 한눈에 보여 안타까웠다. 한국어를 못 하는 분들은 애당초 정보에 접근할 수가 없다. 한국의 결혼중개업체를 통한 국제결혼은 대체로 저소득층에서 이루어진다. 이리저리 얽힌 주택가에 사는 경우 길을 잃을까봐 못 나와 저절로 갇히는 경우도 있다. 예전에 다른 센터에 있을 때도 영어권이나 한자권에서 오지 않은 어머니와 아이들을 데리고 오고 가는 일이 큰 문제였다. 수술할 때가 지난 듯한 익상편으로 고생 중인 E씨는 남편이 무직인데, 오늘 안과에 가려고 했으나 보험증을 가져 간 남편이 제때 오지 않아 결국 못 갔다고 했다. G씨도 아직 병원에 가지 못했다. 아파서 병원에 간다고 해도, 의사의 설명을 이해할 만큼 한국어를 할 수 있어야 한다. 거기까지 가려면 대체 어떻게 해야 할까. 경제적으로 무능한 남편과 함께 생존하기 위해 몸 쓰는 허드렛일이라도 구하려면 어디서부터 출발해야 할까. 하루하루의 생존을 위해 얼마나 큰 벽을 마주해야 할까. 그런 상황에서도 센터에 오고, 더 나쁜 상황에 있던 친구를 찾아내 데려오기도 한다. 대체 그것은 얼마나 큰 용기이고 도전일까. 가족이 화목하고 아이들이 건강하며 먹고 살 만 한 분들도 물론 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하더라도 낯선 곳에서 이방인으로 살기란 여전히 얼마나 어려울 것인가. 돈을 벌고 아이를 키우고 시부모를 봉양하고 병원에 가는 사이에 공부를 한다. 농담을 한다. 짬을 내어 운동을 한다. 나는 나로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그 삶에 대한 용기를 진심으로 존경한다.

그러니 내가 가진 것이 많다는 말을 하려는 것이 결코 아니다. 타인의 결핍은 내 풍요로움의 가늠자가 아니다. 한 사람의 인생은 타인의 생에 잣대로 쓸 수 있을 만큼 가볍지 않다.

나는 그저, 조금 체한 듯한 배를 문지르며 내가 하고 있는 공부가 얼마나 무거운 것인지, 제대로 공부하고 제대로 고개를 들어 세상을 마주하지 않으면 안 될 책임이 얼마나 무거운지를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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