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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3월 5일 금요일

2010년 3월 5일 금요일

오늘 센터에서는 '은혜 갚은 꿩' 읽기 수업을 했다. 내가 좀 이상하게 생각하는 이야기 중 하나이다. 지나가던 나그네가 꿩을 잡아먹으려던 구렁이를 활로 쏘아 죽인다. 그날 밤, 헛간에서 잠자던 나그네에게 죽은 구렁이의 누이가 와서, 동트기 전에 빈 절에서 종이 세 번 울리면 살려주겠다고 한다. 꿩이 머리로 큰 종을 세 번 들이받아 울린다. 구렁이는 약속대로 사라지고, 꿩은 머리가 깨져 죽는다.

 

오라버니를 잃은 구렁이는 자기가 한 말을 지키는 정직한 구렁이라서 복수를 하지 못했고, 나그네가 구해 준 꿩은 딱 한나절 더 살았을 뿐, 결국 죽었다. 나그네가 꿩과 구렁이 사이에 끼어들지 않았다면 꿩 한 마리만 죽었을 텐데, 나그네가 선의로 개입한 바람에 결국 꿩도 죽고 오라버니 구렁이도 죽고 나그네의 여정은 지체되었다. 뭐 이래. -_- 누이 구렁이가 불쌍해서 마음이 아팠다.

 

학기 초라 새로 온 분들이 있어서 애국가를 배웠다. 알아 두어 나쁠 것 없기도 하고, 국적심사 때 필요할 수도 있기 때문에 가르친다. 읽기 수업에 하얼빈에서 온 J씨가 합류해서 학생이 늘었고, 다음 주부터 E씨와 한국어능력시험 3급 준비를 하기로 했다. 센터에 오는 분들 중에 서글프고 안타까운 사연 없는 사람이 없지만, 오늘부터 공부하면 안 되냐고 의욕을 보이는 E씨를 마주하며 순간 목이 메었다. 그렇지만 그와 나 모두를 위해, 유약한 감상에 침잠하기보다는 그에 발을 단단히 딛고 서서 눈앞의 삶을 보아야 한다고 믿는다. 나는 침을 삼키고 "E씨 책으로 해요. 공부해 오세요. 열심히 해요." 하고 두주먹을 꽉 쥐어 들며 활짝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