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 9월 15일 금요일

2006년 9월 15일 금요일

드디어 서양근대경험주의 수업을 들었다. 지난 번 휴강은 병원 예약 때문이었단다. 생각보다 연세도 많으셔서, 이번 학기에 신청해서 다행이다 싶었다. 내가 수업을 듣기 전에 퇴임하시기라도 하면 이만 낙심이 아니니.

수업은 즐거웠다. 다들 전공 시간표를 비슷하게 짜기 때문인지 몰라도, 매 수업마다 낯익은 학생들이 들어온다. 기호논리학 시간에는 '왜/어떻게 나는 같은 수업을 들으면서 저 생각을 못 했을까!' 싶은 날카로운 질문을 던지는 사람들이 몇 있었는데, 이번 시간에는 반대로 내용과 전혀 초점이 다른 질문이 몇 나왔다. 사실 질문을 듣는 순간 속으로 '에이, 그건 아니다.' 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선생님은 질문자에 맞춘 진지한 태도로 흐트러짐 없이 논의를 계속하시는 게 아닌가. 선생님 말씀의 내용도 결국 '그건 아니다'였지만, 자세가 달랐다. 나의 방자함을 깊이 반성했다.

말이 나온 김에 쓰자면, 기호논리학 시간에도 비슷한 깨달음을 얻고 있다. 기호논리학 선생님은 이번 학기에 뉴욕주립대에서 우리학교 교수로 온, '한국어로 강의해 본 적이 없는' 분이다. 그런데도 강의 중에 함부로 영어를 섞어 쓴다거나 하는 일이 전혀 없이 - 그럴까봐 조금 걱정했었는데 - 늘 한국어-영어 순으로 말하고, 영어를 쓸 때는 반드시 칠판에 그 단어를 적고 넘어간다. 앎과 관련된 많은 일들도 결국은 태도의 문제다.

오후까지 무척 졸렸다. 학교 가는 지하철에서도 계속 잤고, 수업 사이 쉬는 시간 10분에도 꿈 꿀 만큼 깊이 잤다. 집에 와서도 쿨쿨 잤다. 오후 다섯 시 오 분에 일어나 계란말이를 만들고 (이번 주부터 반찬이 되는 음식 -다른 말로 하자면 생존형 요리- 을 매주 한 가지 이상 만들기로 결심했다.) 독일어 학원에 갔다. 학원 가는 길에 모 님에게서 빌린 [Storm Front]를 읽었는데, 초반부터 다시 떠올리기도 싫을 만큼 끔찍한 살인 사건 현장 얘기가 나와서 깜짝 놀랐다.

돌아와서는 식빵을 토스터에 구워 아이스크림을 발라 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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