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년 11월 8일 토요일

2003년 11월 8일 토요일 : 데릭 저먼 회고전 '비트겐슈타인'



서울아트시네마에서 11월 1일부터 14일 까지 데릭 저먼 회고전이 열린다. 지금까지의 모든 장편 작품과 단편, 뮤직비디오까지 상영한다는 소식을 듣고 작품 목록 중 비트겐슈타인을 보러 갔다. 가든이나 카라바조같은 작품도 보고 싶었지만, 영화의 감성에는 취약한 터라 지나치게 강렬한 작품은 견뎌내기 힘들 것 같아 전기 영화로 골랐다.

그리하여 저녁 6시에 일어나 홍차와 애플파이로 대충 배를 채우고 어슬렁 어슬렁 보러 간 데릭 저먼의 영화는, 엄청나게 웃겼다. 어떤 영화일까 이리 저리 생각해 보긴 했어도 이렇게 독특하게 재미있고 즐거운 영화이리라고는 전혀 짐작치 못했다. 와, 대단한 센스. 대단한 감독. 연극적이고 절묘한 비유, 군더더기를 쳐내어 간결하면서도 관객을 단숨에 빨아들이는 화면. 비트겐슈타인이 경험한 감정적 혼란에 대한 시각에서는 퀴어 감독만이 보일 수 있는 직관이 느껴졌다.

좋은 영화를 보고 나니 마음이 들떠, 광화문까지 천천히 걸어 가서 지하철을 타기로 마음먹고 인사동길을 가로질러 종로 쪽으로 갔다. 그런데......내가 방향치라는 것이 새삼스런 사실도 아니고, 몇 년을 드나든 종로에서 길을 잃은 것도 놀랍지 않지만, 30분이나 걸어서 정확히 원래 자리로 돌아오는 건 너무하잖아!

여하튼 덕분에 가을 밤바람 잘 쐬었다. -_-; 데릭 저먼의 영화를 조금만 더 일찍 보았다면 이번 회고전의 다른 영화에도 도전해 볼 텐데, 이미 좀 늦었네. 하지만 수요일에 수현님과 단편모음2를 보러 가기로 했으니 괜찮아. 벌써부터 기대 대폭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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