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년 11월 11일 화요일

2003년 11월 11일 화요일 : 제인 구달 강연회 '침팬치와 나의 삶'



문화관 대강당에서 동물행동학자 제인 구달 초청 강연회를 했다. 지난 주 내내 공부 시간이 부족했고 수요일에도 약속이 있었기 때문에 갈까 말까 조금 망설였으나, 놓치기에는 너무 아까운 기회였다. 살아 생전 제인 구달 박사님을 실제로 만날 기회가 올 줄은 정말이지 상상도 못 했으니.

어린 아이들이나 교외 사람들도 많이 와 있었다. 주최측 사회자 말로는 몇 년 전 스티븐 호킹 초청 강연회 이후 처음으로 대강당이 가득 찼단다.

강연은 제인 구달의 책을 읽은 사람이라면 특별히 새로운 것은 없을 내용이었다. 무모해 보였던 꿈을 지지하고 북돋아 준 어머니 이야기, 처음 바나나를 받아갔던 침팬지 그레이비어드, (유명한) F가족을 비롯한 침팬지의 생태에 대한 간단한 설명에 환경 파괴에 따른 침팬지 수 격감에 대한 경고, 주변 지역 사회와 함께 일어서고자 시작한 운동인 '뿌리와 줄기' 소개가 이어졌다. 우리나라에서도 한국 영장류 연구소 최재천 교수님의 주도 하에 이 프로그램을 시작한단다. 희망을 가지고 보다 나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자는 메세지가 분명하게 담긴 강연이었다. 새삼스런 주장은 아니지만, 평생을 그런 마음으로 살았고 지금까지도 일 년에 삼백 일 이상 전 세계를 돌아다니는 노학자에게서 직접 들으니 책과는 비교할 수 없는 절박함과 설득력이 느껴졌다.

강연 뒤의 질문 시간은......참으로 난감했다.-_-; 어린 아이들은 정확하고 중요한 질문을 쉽게 하는데, 대학생이나 대학원생을 비롯한 어른들은 공개 강연의 간단한 문답 시간에 어쩜 그렇게 주구창창 말을 늘어놓는지, 듣는 내가 민망할 지경이었다. 대체 자기가 가이아 이론을 믿고 인간을 암적 존재로 생각하는 거랑 침팬지가 무슨 상관이람? 자기가 생명 관련 세미나를 했는데 학우 A는 생명이 *라고 하고 학우 B는 생명이 &라고 하고 어쩌고저쩌고....그래서 뭐 어쩌라고! (엄청난 서론을 붙여가며) 최초의 인간 루씨의 식사 중 곡물 비율은 왜 물어봐! 그 들뜬 마음이야 모르는 바 아니지만,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을 뿐 아니라 초점이 어긋난 식자(識者)의 장광설은 피곤했다. 그리고 혹시 나도 말을 떠드는 데 열중하며 모르는 사이에 저렇게 되어가고 있는 것이 아닐까 생각하니 암담해졌다.

강연 후에는 싸인회를 했다. 줄 선 사람이 엄청 많았고 선생님도 피곤해 보이셔서 깔끔하게 싸인만 받고 사라지려 했는데, 막상 눈 앞에 제인 구달 선생님이 있으니까 정신이 혼미해지면서 정말 영광이라고 한 마디 안 할 수 없었다.; 자신이 말하는 것을 믿고 실천한 사람의 존재감이란, 대단하다.

기다리던 중에 법대 선배 성렬오빠를 우연히 만나 함께 저녁을 먹었다. 이제 휴학하고 사시 준비를 시작하셨단다. 언제나 멋진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오랫만에 만났는데도 자신감 있고 분명하신 모습이 여전하여 기뻤다. 역시, 멋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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