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년 12월 5일 금요일

2003년 12월 5일 금요일 : 스페이스 어드벤처

옛날 옛적에 작위의 신이 살았어요. 작위의 신은 온 우주를 누비며 부지런히 일했어요. 작위의 신은 원래 부지런히 일 하는 존재였기 때문에 잠시도 쉬지 않았어요. 그러던 어느 날, 작위의 신은 할 일이 없어 고민하던 중에 어떤 항성계를 지나치게 되었어요. 사실 무엇이든 하기만 하면 되니 계속 고민을 해도 상관은 없었지만, 앞에서 말했듯이 작위의 신은 엄청나게 부지런해서 그것만으로는 만족하지 못했거든요. 여하튼 그래서 작위의 신은 이 항성계의 다섯 번째 행성에 마을을 하나 만들기로 결심했어요. 작위의 신은 헌법이라는 땅을 다지고, 그 넓은 땅을 둘러 형법이라는 벽을 높게 쌓았어요. 그 위에는 형사소송법이라는 그물까지 쳤죠. 그리고 그 안에 직접 만든 민법족이라는 생명체를 풀어넣었답니다.

만약 민법족이 형법벽을 오를 끈적한 빨판이나 형소법그물을 끊을 튼튼한 이빨이 있었다면, 이 이야기는 초대형 스페이스 어드벤쳐 로망이 되었을 거에요. 하지만 작위의 신은 부지런하기만 했지 상상력은 별로 없었고, 자기가 만든 게 아닌 스페이스 오페라에는 아무 관심도 없었어요. 그래서 민법족은 둥글둥글한 몸에 솜털같은 다리겸 눈이 잔뜩 달린 작고 수상한 모양이 되고 말았어요. 모험은 커녕 버둥거리기 바빠서 앞으로도 뒤로도 갈 수 없는 곤란한 처지였죠. 뒤늦게 실수를 깨달은 작위의 신은, 동글동글한 몸 한 쪽에 X자를 그려 넣고 앞면으로 정했어요.

그리고 앞으로 민법족들이 편하게 살 수 있도록 신전을 짓고 다섯 신을 세웠어요. 작위의 신은 어디 갔냐고요? 에이, 진짜 신이 달 세 개가 뜨고 지는 동안 내내 신전을 지키고 있을 순 없잖아요. 신전에는 존재, 부존재, 유효, 무효, 실효 의 다섯 신이 있어, 민법족들이 어려운 일을 당해 찾아오면 도와주었어요. 민법족들이 아무 때나 신전에 몰려오면 곤란하니까 작위의 신은 신전 반대편 끝에 기본권의 숲도 만들었어요. 민법족이 숲 앞에 가서 사정을 말하고(물론 우리처럼 말하는 건 아니에요) 앞면을 바닥에 대고 다섯 번 구르면 울창한 숲에서 숫자가 쓰인 나뭇잎이 하나 떨어졌어요. 그러면 민법족은 그 잎을 신전에 바치고, 다섯 신 중 그 잎에 맞는 신이 강림하시는 거죠.

민법족은 이 헌법땅 위에서 평화롭게 살았어요. 그러던 어느 날, 앞면에 X가 있는 대산 뒷면에 O무늬가 있는 민법족이 태어났어요! 대 혼란이 일어났죠. 다른 민법족들은 이 민법족(편의상 O라고 하죠)을 볼 때 마다 방향이 헷갈려서 자기 자리에서 버둥거려야 했어요. O의 어려움은 말할 필요도 없었고요. 그래서 O는 기본권의 숲에 갔어요. 하지만 다른 민법족들과 달리 앞면의 X를 바닥에 댈 수 없었기 때문에, 아무리 열심히 굴러도 나뭇잎이 떨어지지 않았어요. 좌절한 O를 가엾게 여긴 기본권의 숲지기 681(얜 사실 작위의 신이 처음에 잘못 만들었던 버둥버둥 민법족이었어요. 계속 같은 자리에만 있어야 하니 숲지기로 딱이라서 하나 남겨뒀죠)이 말했어요.
"기본권의 숲 안 아득한 곳에는 헌법소원칼이라는 신비한 물건이 있대. 그걸 가지고 신전에 가면 무언가 엄청난 일이 일어난다는 전설을 들었어."
이 전설은 엄밀히 말하자면 정말 681이 들은 것이 아니라 681의 유전자 안에 작위의 신이 서명해 놓은 흔적이었지만, 어디에서 나온 이야기이든 O에게는 희망을 주는 소식이었죠. 그래서 O는 울창한 숲을 헤치고 헌법소원칼을 꺼내오기로 결심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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