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 8월 7일 토요일

2004년 8월 7일 토요일 : Sicaf 2004 Animasia 'TV & 커미션드 2' & '애니메이션의 시대'

티켓 카탈로그



TV & 커미션드 2
1. 이민자(The Immigrants), 안드레이 사슬로츠키(2003-2004)
미국에 온 러시아 이민자 두 사람의 취직담(?). 블라드가 대형 슈퍼마켓 글루스코에 취직하자, '모두가 파이를 나누어 갖는 것'이 옳다고 믿는 요스카는 그 앞에서 필요량만 파는 노점 요스카코를 연다. 네 편 중에서 제일 볼 만 했다. 하려는 말이 선명히 보이고, 진행도 자연스럽다.

2. 헤어리 스케어리(Hairy Scary), 얀 반 리젤스베르그(2003)
시작한 줄 알았는데 끝나버렸다. 일부분만 잘라내어 보여준 예고편같다.

3. 제이커스! 피글리 윙크스의 모험: 랄루의 전설, 존 오버(2003)
3-D 티비 만화 시리즈 중 한 편. 내용보다 주제가가 더 재미있었다.(...) 다민족 국가의 아이들이 각자 자신과 다른 사람들의 뿌리를 소중히 여겨야 한다는 것을 깨닫는 교훈적인 이야기이다. 어린아이들이 보면 깨닫는 바가 있겠지만 어른이 보기에는 좀 지겹다.

4. 네티비, 박상욱(2003)
티켓 카탈로그의 줄거리와 아무 상관이 없어 보이는 내용이다. 러닝타임을 맞추기 위해서인지, 전체 필름을 팔기 위한 일종의 쇼케이스 버전인지 모르겠지만 앞뒤가 전혀 안 맞고 유머는 심심하기 그지없다. 특히 주요 등장인물 남자아이가 상영한 이십삼 분 내내 아무 역할도 하지 않아 짜증스러웠다. 이야기를 앞으로 끌어가는 데 필요가 없는 등장 인물은 보는 이를 헷갈리게 한다(distracting). 그리고 굳이 '악=추함=질투하는 나이많은 여자'라는 식상하고 불쾌한 공식을 써서 얼음마녀의 정체성을 확립해야 하는 이유라도 있나. 창작자로서는 안이하고, 어린이를 대상으로 한 모험 애니메이션을 만드는 어른으로서는 위험한 자세다. 감독이 나와 같은 회에 보러 와서 만드느라 고생했다는 무대인사를 했다. 다 보고 나니 묻고 싶은 것이 많았는데 순식간에 사라져서 아쉬웠다.

애니메이션의 시대(The Animated Century)아담 스나이더, 이리나 마르골리나(2003)

대단히 유익한 애니메이션이었다. 기대를 많이 했는데, 전혀 실망하지 않았을 뿐 아니라 기대 이상이라 집에 돌아와서 비디오나 DVD가 있는지 찾아 보았다.(없더라) 애니메이션의 역사를 설명하는 다큐멘터리 애니메이션으로, 19세기 애니메이션의 태동부터 최근의 전세계 애니메이션 경향까지 폭넓게 살핀다. 다양한 자료 화면, 즉 예전의 애니메이션을 직접 보여 주며 설명하는 방식이라 애니메이션의 발전사가 한 눈에 들어오고, 국적이 아니라 발전사적인 중요도를 중심으로 설명하기 때문에 이해의 폭을 넓히는 데에도 큰 도움이 되었다. 영화관에서 보지 않았다면 필기를 하며 보았을 법한 영화. 기억나는 내용을 간단히 정리하면-

최초의 애니메이션은 다리가 실제보다 많이 그려진 선사시대의 벽화이다. 벽에 그린 그림이 불빛에 흔들리며 움직이는 것처럼 보이는 효과를 이용했다. 초기 애니메이션은 눈의 착각을 이용해 이 움직이는 효과를 내기 위해 다양한 기법과 기구를 활용했는데, 대표적인 것이 그림을 꽂아넣어 뱅뱅 돌리는 '소마트로프', '페나키스티스코프'이다. 이를 영사 가능하게 발전시킨 기계가 바로 '프락시노코프'다. 19세기 말 영화의 탄생은 애니메이션의 발달에도 혁신적인 영향을 미친 사건이었다. 그림자를 이용한 그림자 애니메이션, 조금씩 다르게 그린 그림을 일일이 사진으로 찍어 영사한 애니메이션 등이 나타났다. 그리고 셀 애니메이션이 등장한다.

미국과 유럽의 애니메이션 발달 과정에는 상당한 차이가 있다. 영화에서 드러나는 양 대륙의 차이와 비슷하달까. 미국의 애니메이션 제작소는 신문 카툰의 인기 캐릭터를 움직이게 만들고 싶어한 신문사나 잡지사에 의해 설립되었다. 그 때문에 이들 애니메이션은 대중들을 위한 재미에 중점을 두었고 캐릭터가 중요한 역할을 했다. 섹스심벌 베티붑이 등장한 것이 20세기 초반일 정도이니! 반면 유럽에서는 다양한 기법이 시도된다. 음악에 따라 빙글빙글 도는 그림 등이 나오는 추상 애니메이션, 각 프레임마다 등장하는 인물들을 나무조각으로 일일이 만든 애니메이션(그 일을 어찌 다 했을까!) 등이 주목을 받는다. 1920년대에 등장한 월트 디즈니의 스튜디오는 역동적이고 자연스러운 표현과 탁월한 표정묘사, 토키 애니메이션 등으로 애니사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 이 때 디즈니와 함께 있던 어브 아이웍스는 독립하여 - 나는 지금까지 미키마우스를 만든 사람이 어브 아이웍스라고 알고 있었는데, 이 다큐에서는 디즈니가 유니버셜 스튜디오에서 나오며 미키마우스를 가져갔다고 표현하여 좀 이상했다. 토끼 오스왈드랑 다르지 않나- 개인 스튜디오를 설립했고, 역시 디즈니에 있던 플라이셔도 플라이셔 스튜디오를 설립, 애니메이션 최초의 섹스 심벌인 자신의 캐릭터 베티 붑으로 이름을 알린다. 디즈니 파업 후 해고된(;) 애니메이터들이 설립한 UPA도 리미티드 기법 등 자신들만의 감각적인 애니메이션을 발전시켜 나간다.

그러는 사이 유럽에서는 실험이 계속된다(;) 절지 애니메이션, 인형 애니메이션-생물학자 출신인 애니메이터가 정교한 곤충 인형을 이용하여 만든 곤충 애니메이션까지 있다-, 필름에 직접 그림을 그린 애니메이션 등이 등장한다. 유럽 애니메이션 중에 흥미롭고 참신한 시도가 참 많았는데 익숙치 않고 나라가 많기 때문인지 이름이 도통 생각이 나질 않는다. 실제로 이 다큐는 미국보다 유럽 쪽의 여러가지 움직임을 중요하게 다루었다. 내가 유럽의 애니메이션 작가들을 잘 몰라서 기억을 못 하는 바람에 자세히 못 쓰는 것이다.;;

2차대전과 전쟁을 거치며 서유럽/동유럽/ 미국의 애니메이션 방향도 달라진다. 미국에서는 벅스바니나 도널드 덕이 채권을 모으고 히틀러와 싸운다. 동유럽의 억압적인 분위기는 애니메이터들에게 양날의 칼이 되었다. 정치적인 내용을 만들 수 없어 소재가 제한되었지만-춤치였던 스탈린은 춤 못 추는 뚱뚱한 주인공이 나온다는 이유만으로 애니메이션의 상영을 금지키도 했다- 대신 경제적인 성공을 거두어야 한다는 부담감이 없어, 다양하고 새로운 기법을 통해 원하는 것을 (정치만 아니라면) 바라는 그대로 표현할 수 있었다. 색으로 인물을 표현하여 투우 장면을 묘사한 애니메이션과, 역시 이름을 잊은 어느 성공한 애니메이터가 말년에 만든 억압받는 상황에 대한 고통을 거대한 손으로 묘사한 작품이 특히 기억에 남는다. 짤막한 개그물도 많이 나왔다. 우리나라가 짱이라는 내용의 애니도 나라를 가리지 않고 등장했다. 서유럽에서는 동유럽의 상황을 이해해 보려는 듯한 애니메이션이 등장했고-네살짜리가 군에 징집되는 이야기라든지- 미국에서도 인디애니가 등장하며 재미만을 찾지 않고 철학적인 소재를 깊이있게 탐구하려는 시도를 했다.(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를 놓고 닭과 달결이 토크쇼에서 싸우는 아주 재밌는 애니가 있다.) 스페인에서는 애니메이션 기법을 이용한 CF가 활발히 만들어졌고, 캐나다는 애니메이션 사업을 국가적으로 지원했으며, 이탈리아 애니메이션의 주제는 흔히 짐작하는 대로 섹스와 스포츠이다.

그 다음 컴퓨터의 등장이나 클래이 에니메이션의 재발견 같은 부분은 최근이니 생략. 우리나라 애니가 너무 무국적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백 년 전이나 지금이나 여전한 사람들의 상상력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1900년대의 흑백 애니메이션을 보면서, 창작의 근본은 역시 기술이 아니라 사람의 생각 그 자체라는 것을 새삼 느꼈다.

애니메이션에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반드시 보아야 할 다큐다. 동영상 파일 버전이라도 구할 수 있다면 꼭 구해서 두고두고 보고 싶다. 유럽 애니메이션의 역사에 대해 좀 더 공부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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