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 8월 6일 금요일

2004년 8월 6일 금요일

이사를 하고 나니 남는 것은 폭 몇 미터짜리 책장, 책상에 달린 책장, 책상에 안 달린 책장, 뒷면에 금이 간 책장, 만화책이 숨듯이 차곡차곡 쌓인 서랍과 제 자리를 찾아 들어가려 버둥거리는 책 한 무더기였다. 전화콘센트 앞 밖에 책장이 들어갈 자리가 없어, 이사하기에 앞서 인터넷부터 연결해야 했다. 인터폰 때문에 들어가지 못한 한 칸의 책장은 덩그러니 거실 복판에 서서 왜 나한테 이러냐고 울부짖었다. 얘야, 넌 세번째랑 네번째 칸처럼 흠집이 생기지는 않았잖니.

저녁 내내 책을 꽂았다. 몇 권 되지도 않는 주제에 무겁기는 엄청 무거웠다. 내가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겠다고 덜 먹고 덜 놀고 덜 입은 돈으로 이걸 사모았나 생각하니 절로 한숨이 나왔다. 이건 아무리 봐도 마음의 양식이 아니었다. 몸의 양식을 떼어다가 마음의 군것질에 썼을 뿐이다. 깨달음을 얻은 것을 기념하여 이달에는 책 따위 내버려 두고 두건과 여름옷을 사기로 마음먹었다. 동대문에 가면 이천오백원에 가로세로 오십삼 센티미터짜리 두건을 살 수 있다. 들어갈 곳이 없어 아우님의 책꽃이에 모로 누운 책 한 권이면 머리 위로 빨주노초파남보 화사한 무지개를 두르고 꽃이며 잔디까지 심을 수 있었다. 나도 이제 환경 친화적인 사람이 될 거다.

가끔 소녀의 감성이 대체 뭐냐고 묻는 사람들이 있다. 백문이 불여일견이다.

격월간 순정만화잡지 윙크, 7월 15일자 '궁'

댓글 9개:

  1. 트아하하하핫(뒤로 넘어갑니다)

    아니, 이게 아니지 참. (눈물 닦고) 고생하셨습니다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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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이사는 많은 것을 깨닫게 한다고 생각중. ...그나저나 로켓매니아 이 많은 난이도가 있는 이유가 뭔지? 미세한 차이밖에 없는 것 같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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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축하! 책들이 소리높여 교환 가치를 주장하기 시작하면 드디어 <때>가 온 겁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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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보면서 설마-_-했는데;; 진짜 너였구나-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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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 암튼-_-요새 스토리는 엽기괴기스러워졌어-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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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 as님/ 웃으시는 거 다 봤어요! :P

    펠님/ 플레이어의 성취감을 높이기 위해서지요.

    shambleau님/ 우웃!

    북극곰님/ 오랜만입니다.:)

    재강오빠/ ......설마 오빠도 윙크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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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 이사 잘하셨나보아요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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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 웹서핑 하다가 우연히, 정말 우연히 오게되었는데 윙크매니아시라니 ^^ 저도 가끔 독자목소리에 글이 실리곤하는 윙크팬이랍니다. 윙크는 정이죠 다른건 몰라도 이것만은 꾸준히 봐주세요! 그럼 이만. ...-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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