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11월 26일 토요일

2005년 11월 26일 토요일

지구정복비밀결사 모임일이자, 오늘의 운세에 '손에 쥔 것을 놓치기 쉬우니 스스로 삼가라'라고 쓰여 있을 것 같은 하루였다. 일단 목요일부터 수상한 상태이던 데스크톱이 금요일이 되자 부팅불능 상태가 되었다. 금요일 저녁에 컴퓨터를 이리저리 만져 보다 '에이, 모르겠다' 라고 생각하며 일단 잠자리에 들었으나, 어디 신경이 쓰여서 도무지 잠을 잘 수가 있나! 결국 새벽 세 시 반 까지 드라이버와 각종 메뉴얼을 들고 씨름했으나 잘 되지 않아 방치. 토요일 아침에는 콘택트 렌즈를 떨어뜨렸는데, 넓지도 않은 욕실 어디로 빠졌는지 결국 못 찾았다.

화실에서는 파스텔(두 동강 남)과 연필파스텔(심이 부러짐)을 떨어뜨렸다. 연필파스텔의 경우, 충격을 받으면 '속 심이 조각나서 깎아도 쓸 수 없는 상태'가 된다고 한다.

화실 수업을 끝내고 잠시 헤매다 인사동 커피빈에 가서 결사원들과 접선. as님, scifi님, 파란날개님, yarol님과 만나 점심 때 드셨다는 곱창인지 내장인지와 엠티계획에 대한 얘기를 듣고 있자니 luke님(귀여운 네팔 등산복을 입고 오심.) 과 동진님('게임회사이야기' 저자 사인본 자랑)도 오셨다. 커피빈 실내가 대화가 어려울 만큼 소란스러워, 아트선재센터 근처에 있는 카페 EGG로 옮겨 갔다. 이 곳에서는 스타트렉, 스타워즈 등 티브이시리즈와 그에 등장하는 배우들, 술, SF, 미스테리 등 흥미로운 주제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 이원님께서 내가 연습장에 그린 거실 그림이 왜 어색해 보이는지 가르쳐 주셨다. 에라오빠와 강명님도 등장, 여덟 시 정도까지 EGG를 점령하고 앉아 놀았다. 나는 일곱 시 쯤 부턴 춥고 배고프고 졸려서, 구석에 웅크리고 앉아 식사 시간을 기다렸다. (...)

scifi님과 파란날개님은 귀가하시고, 나머지 사람들은 근처에 있는 덮밥집 '밥店'으로 갔다. 수제카메라를 만드는 주인아저씨가 혼자 운영하시는 한산한 음식점이었다. 카메라를 가지고 갔으나, 어이없게도 메모리카드를 빼 놓고 나와 내 카메라로는 사진을 한 장도 못 찍었다. 따뜻한 별채에 앉아 덮밥과 우동과 계란말이를 먹었다. 다른 분들은 데운 정종(?)과 맥주도 드셨다. (따라서 나는 절대 '지구정복을 위하여'라고 외치지 않았다!'위하여' 만 했....) 근래의 시사논점과 주도와 다양한 술의 명칭과 분류 기준과 인터넷 실명제와 팬덤의 음모와 마이너리티의 거부감과 후세에 발굴될 ㅋㅋㅋ와 이름의 힘과 체계와 개인의 책임에 대해 이야기했다. 늘상 하는 말이지만, 재미있게 놀다 보니 정말 시간 가는 줄 모르겠더라. 다른 분들이 이야기 하시는 걸 들을 때면, 일단 아는 것이 많으신 것에, 그리고 그 앎을 표현하는 방법에 감탄하게 된다. 나도 그렇게 대화의 완급을 잘 조절하고 흥미로운 화제를 흥미롭게 이끌어 갈 줄 아는 사람이 되고 싶다.

아스님과 버스를 타고 가다, 지하철로 환승하려 이대역에서 내렸다. 그런데 십 분 가까이 기다려도 지하철이 아니 오더니, 잡음 섞인 안내 방송이 울렸다. 홍대입구역 방향으로 가는 지하철은 지금 신당역에 있으니 참고하시란다. orz 버스를 타고 홍대입구로 가서 집으로 가는 버스로 다시 갈아타 간신히 귀가했다. 열한 시 오십 분. 정말 오늘 왜 이러지- 싶은 피곤한 하루였지만, 무척 즐거웠던 덕분에 마음은 편했다.

댓글 1개:

  1. 집에 와서 찾아봤는데 '자(字)'는 관례 때, 명(名)과 비슷한 뜻 아니면 품성과 관련된 말로 스승이나 집안 어른이 붙여주는 이름이고 '호(號)'는 자유롭게 붙이는 별명 비슷한 것 맞더군요. 단지 주로 친구들이 붙인다기보다는 친구들이 붙여주기도 하고 스스로 붙이기도 하고 등등... 이었던 것 같아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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